내각총리대신

 

內閣總理大臣
1. 조선 -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3. 청나라의 내각총리대신


1. 조선 -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갑오개혁 이후 조선대한제국내각 수반으로 황제 휘하에 각 행정 각부를 통할했다. 1880년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의 수장을 총리대신으로 불렀으나, 총리대신을 따로 두지 않고 영의정이 겸직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의정부내각으로 개편되면서 영의정을 비로소 내각총리대신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1896년 9월에는 내각이 다시 의정부라는 명칭으로 환원되면서 내각총리대신을 의정부 수석 대신이라는 뜻의 의정 또는 의정대신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1907년에 다시 의정부가 내각이라는 명칭으로 환원되면서 의정대신이 다시 내각총리대신으로 바뀌었다. 본 항목의 내각총리대신은 갑오개혁 이후 조선 및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의정대신을 말한다. 다만, 나라가 혼란하여 1905년 이후에는 의정대신이 더 이상 임명되지 않고 참정대신이 내각총리대신의 역할을 하였다.

  • 1896년 ~ 1907년 의정대신, 참정대신
    • 6대 김병시(1896년 - 1897년)
    • 7대 심순택(1897년)[1] ~ 1898년 / 1901년 ~ 1902년
    • 8대 윤용선(1898년 ~ 1903년)
    • 9대 조병세(1898년)
    • 10대 이근명(1903년 ~ 1905년)
    • 11대 조병식(1905년)[2]
    • 대행 한규설(1905년)
    • 12대 박제순(1905년)[3]
    • 13대 민영규(1906년)
    • 14대 조병호(1906년)
    • 15대 박제순(1906년 - 1907년)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대한제국이 멸망하면서 내각총리대신 직위가 소멸하고 한반도의 정부수반(총리)는 조선총독부 총독이 맡게 되었고,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초대 조선 총독으로 취임하였다.

2. 일본 제국 - 일본내각총리대신




3. 청나라의 내각총리대신



1911년 헌정 실시와 더불어 신설되었다. 황족인 경친왕 혁광이 초대 총리대신에 임명되었지만 황족 내각을 구성했다가 한족의 분노를 샀으며 철도 국유화를 선포했다가 1911년 10월 10일 무창봉기를 계기로 신해혁명이 터지게 되었다. 이후 위안스카이로 총리가 교체되었으나 위안스카이가 혁명군과 협상하면서 청나라는 멸망했다.

[1] 이 사람이 하던 중에 대한제국이 되었다.[2] 이후는 모두 참정대신이지만 의정대신이 더 이상 임명되지 않아 참정대신이 사실상 내각총리대신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3] 위의 한규설이 을사조약을 반대하다 해임된 후 참정대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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