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시

 




1. 개요
2. 생애
3. 평가


1. 개요


金炳始(1832년 ~ 1898년)
조선과 대한제국의 문신으로 개화에 철저하게 반대하던 보수파의 거두이면서도 서양 여러 국가와의 조약에 참여한 고종 시기의 대표적인 관료다.

2. 생애


자는 성초(聖初), 호는 용암(蓉庵)으로 안동 김씨 세도 정치가의 일문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김명순은 김조순과 6촌 사이였으며, 그의 아버지 김응근은 판서까지 올랐는데 안동 김씨 세도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는 철종 6년인 1855년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고, 1860년에 홍문관 교리, 1863년에는 이조참의가 되었다. 사실 안동 김씨 일문 소속이긴 하지만 같은 항렬을 쓰는 안동 김씨 사람들, 즉 김병학이나 김병국에 비하면 관직 오르는 속도가 느린 편에 속했다. 거기다 1863년 흥선대원군의 집권으로 안동 김씨 세도정치도 끝났으니 그의 정치 인생도 거기서 끝날 것으로 보였으나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1870년 공충도(충청도) 관찰사, 1874년 도승지, 1875년 형조판서·예조판서·우참찬, 1876년 도총관·병조판서, 1878년 총융사·어영대장·지삼군부사·이조판서, 1879년 규장각 제학·호조판서, 1881년 공조판서·관상감 제조 등을 역임하며 개화기 중요 문무 관직에 오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봉기군에게 붙들려 살해당할 위험에 처했으나 평소 구식군인들에게 자기 월급까지 내줘가면서 급여를 챙겨준 덕에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호조판서에서 물러났으나, 흥선대원군이 납치된 이후에 다시 올랐으며, 1882년에는 독판군국사무가 되었다. 1883년 청에 다녀온 직후에는 양향당상·선혜청 제조·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1884년 갑신정변 때는 수구파의 거두가 되어서 개화파를 몰아내는데 일조했다. 이후 성립된 내각에서 갑신정변 때 살해되었던 민영목을 대신해 독판교섭통상사무가 되어서 이탈리아, 영국, 러시아와의 조약 체결을 담당하였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을 빌미로 하여 일어난[1] 청일전쟁이 발생하기 전 6월 20일 영의정에 올랐으나 바로 다음 날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김홍집 내각을 설립하자 4일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이후 설치된 군국기무처에서 시강원사와 중추원 의장 자리를 맡았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을미개혁에서 단발령이 시행되자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을미의병에 대해서는 관리를 마구 살해하는것이 어찌 의병이겠는가 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무너진 김홍집 내각을 대신하여 내각총리대신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1898년 사망하였다.

3. 평가


여러모로 흥미로운 인물이다. 비록 안동 김씨 세도가의 일문으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거의 본인의 힘으로 관직을 올렸다. 특히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화기 때 꾸준히 중요 관직을 역임했다는 점은 그의 능력이 상당히 출중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보수적인 입장에 서있었기 때문에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개화파나 김홍집, 어윤중 등의 온건개화파와도 언제나 대립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본인의 맡은 임무는 충실히 수행하는 편이었다. 특히 1884년 갑신정변으로 죽은 민영목을 대신해서 이탈리아, 영국, 러시아와의 통상조약을 체결한 것은 특기해 볼만한 사안이다. 즉 보수적이긴 했지만 완전 수구적인 입장에 있던 것은 아닌 것이다.
여담으로 김홍집과는 여러모로 악연이다. 그가 생애 처음으로 영의정에 올랐으나, 곧바로 일본의 경복궁 점령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물러나고 말았다. 그 직후에 임명된 영의정이 바로 김홍집이다. 또한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일어난 을미의병으로 인한 혼란상에서 아관파천이 일어나서 김홍집이 살해당하고 김홍집 내각이 무너지자 곧바로 총리대신으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김병시다. 즉 김홍집이 조선의 최고 직책에 올랐을 때 최고 직책에 있던 사람이 김병시이며, 그가 무너졌을 때 역시 최고 직책에 오른 사람이 김병시가 되는 것이다.

[1] 김병시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톈진 조약에 의거하여 일본군이 청군과 같이 진입할 빌미를 줄 수 있음을 정확히 예측하고 청군에 파병을 요청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묵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