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돔 시아모니

 

'''역대 캄보디아 국왕'''
노로돔 시아누크

'''노로돔 시아모니'''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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នរោត្តម សីហមុនី[1] (Norodom Sihamoni)
1. 개요
2. 생애


1. 개요


캄보디아의 현 국왕. 크메르 공화국크메르 루주 정권 이전의 캄보디아를 다스렸던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아들이다. 시아누크 국왕의 퇴위 이후 훈 센 총리에 의해 반강제로 국왕에 즉위했으며, 현재까지 캄보디아의 국왕으로 재위하고 있다.

2. 생애


1953년 5월 14일생(70세). 프놈펜에서 노로돔 시아누크의 7남7녀 중 6남으로 태어났고, 초중고등학교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다니던 와중에 론 놀의 쿠데타가 터지자 계속 눌러앉아 프라하 공연예술 아카데미(AMU)[2]에서 1975년 고전무용과 음악을 전공했으며, 이후 북한으로 넘어가 영화 촬영과 무용등을 배웠다. 아버지 시아누크가 북한을 방문했을때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춘 영상이 남아 있다.50:57 1977년 유학을 마치고 캄보디아로 귀국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쿠데타 후 대통령과 총리를 오가며 권력을 쥐고있던 론 놀이 삽질과 베트남전 미군 폭격 등으로 폴 포트크메르 루주에 정권을 내주자,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3]과 캄보디아 왕가는 귀국했지만,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은 1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쫓겨났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1977년부터 프놈펜 왕궁에 유폐되었다.[4] 결국 북베트남 군대가 침공한 덕에 가족들과 왕궁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 1981년부터 프랑스로 가서 20년 이상 영화 감독이나 발레 강의, 캄보디아 전통무용 소개 등을 하고 종종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있는 프라하를 다녀오며 지냈다. 캄보디아 왕국이 들어서고 아버지인 노로돔 시아누크가 다시 국왕으로 복위한 1993년부터는 캄보디아 대사 자격으로 유네스코 대사 일을 맡았다.[5]
그런데 시아누크 국왕이 2004년에 퇴위 의사를 밝히고, 2004년 10월 7일, 왕실 평의회에서 살아있는 형들(라나리드, 짜끄라뽕)을 젖히고 자신을 차기 국왕으로 지명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훈 센이 사실상 모든걸 독재하고 왕실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기에 그대로 왕위를 계승하면 남은 생애를 왕궁 안에 갇혀 감시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왕위 계승을 거부하며 중국 베이징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왕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만류에 마지못해 즉위식을 사치스럽지 않게 해달라는 조건으로 차기 국왕으로 올랐고[6], 결국 남은 생애를 그대로 왕궁 안에 갇혀 현재까지 감시받으며 가끔 가다가 서류 결재와 손님접견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 같은 입헌군주국인 일본나루히토 덴노 즉위식같은 국외 행사에 가끔 참여하는 것을 보면 총리의 허락을 받으며 어느정도의 대외 활동도 다니고 있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유럽에서 발레와 영화 등 예술 쪽에서 활동하던 왕족일 뿐, 캄보디아의 정치 상황에 밝은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캄보디아는 독재자 훈 센이 모든 것을 휘어잡고 있는 나라이다.[7] 이런 상황에서 시아모니 국왕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미혼으로, 왕비왕자도, 공주도 모두 없다. 이걸 두고 항간에서는 국왕이 동성애자라는 소문도 도는 모양.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여성들을 자기 남매들만큼 사랑한다고.
캄보디아 국민들에게는 군주제에 대한 지지가 높고 시아모니 국왕 역시 선량한 성품으로 인기가 높다. 자식은 없지만 캄보디아 법에 따라 이 국가의 왕위는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총리, 상하원 의장 및 부의장, 불교 종정 등 9명으로 구성된 국왕선출위원회가 왕족 중에서 선출한다. 따라서 시아모니 국왕에게 자식이 없다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결국에는 왕족 중에서 실권자 훈센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차기 국왕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1] 크메르어 발음대로 표기하면 노로떰 싸이하무니.[2] 한국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해당[3] 론 놀 군부독재 시절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베이징으로 망명가서 라디오로 쿠데타 정권을 규탄하고 크메르 루주를 응원했다. 이 덕분에 그는 크메르 루주의 치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4] 이 시기 7남 7녀 중 5명이 생사불명 되었다.[5]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세력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인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 시절부터 맡아달라는 요청이 계속되어왔지만 거절해왔다고 한다.[6] 빈곤한 조국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7] 대표적으로 2017년 지방선거에서 훈 센에 질려버린 캄보디아 국민들이 캄보디아 구국당이라는 반독재 야당연합체에 힘을 실어주었더니, 2018년 총선을 앞두고 구국당 당수를 체포하는 한편 구국당 자체를 해산시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