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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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부유럽에 위치한 도시이자 체코의 수도. 북위 50°, 동경 14°28'. 면적은 496 평방킬로미터, 인구는 2019년 기준 약 130만명이다. 프라하의 1인당 GDP는 2019년 52,559달러로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부럽지 않은 수준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 체코 전체의 1인당 GDP는 2019년 IMF 통계 기준으로 23,495달러(세계 39위)로, 프라하로 경제력이 집중되고 있어서 지역간 경제불균형 현상이 심하다.
영어로는 Prague라고 쓴다.
체히 지방의 중심부에 있으며, 블타바 강[1] 이 중심을 가로질러 흐른다. 스트르셰도체스키 주가 프라하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행정 관청 또한 프라하에 위치한다. 프라하 시의 중심지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가장 중세 유럽이나 19세기 유럽의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도시로 자처하고 있다.[2] 그 외에도 꼭두각시와 공동묘지로 유명하다. 베니스, 부다페스트와 마찬가지로 온 동네에 꼭 꼭두각시 극장이 있다. 또한 옛 건축물 구석구석에 메멘토 모리의 심볼(해골, 시계, 연금술 문장 등)이 숨겨져 있다. 프라하에 가면 점성술사의 시계탑을 꼭 볼 것.
2. 기후
체코 자체가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고 프라하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꼭 한국의 대구광역시 기후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여름은 매우 덥고 겨울은 추운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를 띤다.
프라하의 최난월은 7월로 월 평균기온은 섭씨 18.4도인데 최고 기온이 무려 37.8도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초가을인 9월에는 주변국과 온도 차이가 매우 심하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위도가 비슷한 영국이나 네덜란드는 9월에 아침, 저녁으로 꽤 쌀쌀하고 낮에도 서늘한데 체코는 여전히 펄펄 끓는 여름이다.
최한월은 1월로 월 평균기온은 영하 1.4도다. 서울보다는 약간 따뜻하지만 주변국과 비교하면 매우 추운 날씨다. 바로 옆나라 독일에도 평균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지역이 없다는걸[3] 감안하면 체코의 추위가 장난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3. 역사
처음 9세기에 프라하 성이 축조되었고,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현재의 구 시가지의 광장에서 교역이 시작되면서 볼티바 강의 나루터의 취락에서 교역 도시로 발전했고, 1085년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4세기에 이르자 카렐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도시는 더욱 발전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당시의 인구는 4만으로 추정된다. 그 사이인 1344년에 주교구에서 대주교구로 승격되었고, 1346년엔 카렐 4세의 통치 아래 룩셈부르크 왕조 재위기간 중 신성 로마 제국 전체의 수도가 되었으며 1348년엔 '프라하 카렐 대학교'[4] 가 건립되었다.
그러다가 1378년 얀 후스의 종교 개혁으로 14~15세기에는 후스 전쟁의 싸움터가 되었다. 이후 왕위가 합스부르크 가문에 넘어가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주요 세 도시 중 하나로 등극했고(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15~16세기에는 고딕 건축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정치적인 의미는 상실하였으나 1583년 루돌프 2세의 통치 아래 잠시나마 두 번째로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어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신교의 자유를 두고 황제 페르디난트 2세와 보헤미아 귀족들 간의 알력 다툼으로 1618년 보헤미아의 귀족들이 프라하 성에서 황제의 대리인들을 투척하면서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5] 17세기에는 바로크 건축이 번성하였고 18세기말부터 다시 수공업 등이 일어나 경제적으로 회복되어 인구도 8만을 헤아렸다. 그 후에도 인구는 늘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최대의 공업 도시로 성장하였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과 함께 그 수도가 되었다. 1968년의 프라하의 봄 사건으로 유명하며, 1993년 슬로바키아의 분리에 따라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3.1. 연표
4. 정치
체코는 지방선거에서 시장을 직접 뽑지 않는다. 지방의회(시의회)의 지방의원을 선출하여 연립정부를 구성, 의원 내각제로 시장을 뽑는다. 이전부터 프라하는 진보 성향이 강했고, 1989년 동유럽 혁명 이후 시민민주당이 시장직을 독점해 왔다. 그러다가 Bohuslav Svoboda 시장이 내각불신임결의를 맞고 TOP 09(전통 번영을 위한 책임)의 Tomáš Hudeček가 시장이 되었다. 2014년 지방선거 결과 ANO 2011의 Adriana Krnáčová가 시장이 된 것이 '''프라하 첫 보수정당 시장'''이다. 그러나 2018년 지방선거 결과 즈데네크 흐르지프(Zdeněk Hřib)가 소속된 강경 좌파 정당 해적당이 1당이 되면서 흐르지프가 시장으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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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현재 즈데네크 흐르지프(Zdeněk Hřib)[6] 프라하 시장은 강경 좌파 성향인 해적당 소속이다. 2018년 11월 15일 프라하 시장에 취임하였다. 즈데네크 흐르지프 시장은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수립 이후 24대 프라하 시장이다. 프라하 시장은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인 1784년부터 선출했는데, 1784년부터 따지면 48대 시장이다. 즈데네크 흐르지프 시장은 강경 좌파성향인 세계 해적당 중 온건 성향의 체코 해적당 중에서도 좀 더 온건한 성향이다. 시장으로의 재임 평가도 높은 편이다.
체코 수도 프라하 시는 2016년 전임 시장이 맺었던 '''프라하–베이징 자매 결연 관계를 3년 만에 청산'''하기로 했다. 즈데네크 흐르지프 시장은 대만에서 대학을 나온 대만 유학파 출신이다. 그 외에도 2019년 티베트 봉기 60주년을 맞이하여 티베트 국기인 설산 사자기를 게양하고, 이 행사에 달라이 라마 14세의 후계자인 로브상 상계 박사를 초대하기도 했다. 대만을 방문하여 차이잉원 총통과도 직접 만난 적도 싰다.
2018년 즈데네크 흐르지프가 프라하 시장에 당선된 이후, 베이징 시한테 자매 결연 협정에 있는 "하나의 중국을 강요하는 조항"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흐르지프 프라하 시장은 '''프라하–베이징 자매 결연 자체를 끊어버렸다'''. 기사 참고. 체코 중앙 정부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여 대만과의 수교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프라하 시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한 것이다.
2019년 10월 10일, 체코 수도 프라하가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며 베이징과의 자매 결연 관계를 단절한 것에 대해, 중국 외교부에서 프라하 시를 비난했다. 기사 이 때문에 프라하 필하모니의 중국 공연이 취소되었다.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중국에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 '''인권의 수호자 체코의 이미지를 복원 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원문
체코 프라하의 즈데네크 흐르지프 시장(해적당 소속)이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고, 친 대만, 친 티베트, 친 위구르, 친 홍콩 행보를 이어가면서 중국과 체코의 외교관계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2020년 1월 6일, 중국은 체코로부터 여객 비행기를 사는 협약을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과 맺은 바 있는데, 즈데네크 흐르지프 프라하 시장의 반중 성향을 이유로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기사
13일에 타이베이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5. 행정 구역
숫자로 구분해 프라하 1구역부터 22구역까지 있다. 10구역까지 있었으나 행정구역이 넓어지고 세분화되어 22구역까지 나뉘게 되었다. 숫자로 구분한 행정구역 말고 이름이 붙은 구역들이 있는데, 숫자로 나눈 구역보다 더 오래 전에 나뉜 구역들이며 숫자로 나뉜 구역과 겹치기도 하고 다른 구역에 걸쳐 있기도 하다. 예전의 행정구역들과 새로 만든 행정구역들을 병행하여 쓰기 때문에 좀 헷갈릴 수도 있다.[7] 우편을 보내거나 서류상의 공식 행정구역은 숫자가 붙은 프라하 1, 프라하 2 같은 것을 먼저 쓰며 세부 사항으로 이름이 붙은 구역 이름을 쓴다. 대체로 체코인들에게 "프라하 어느 동네에 살아?"하고 질문할 경우 이름이 있는 구역을 대답하며 숫자 붙은 구역을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프라하에서 오래 안 산 외국인들은 숫자로 구분하는 편이다.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도로명 주소와 지번 주소 간 관계를 생각하면 얼추 들어맞는다.
- 프라하 1
말라 스뜨라나, 스따레 므녜스또(구시가), 노베 므녜스또(신시가), 요제포브, 흐라드차니를 포함한 구역. 구시가, 신시가, 프라하 성이 위치한 곳. 관광객들은 다 여기 모여 있고 실제로 프라하 1구역만 보면 프라하 주요 관광은 다 한 거나 다름없다. 카렐 대학교, 프라하 공연 예술 아카데미(AMU), 프라하 건축 디자인 학교(VSUP) 등의 주요 대학도 거의 이곳에 모여 있다.
그 밖에 S사의 전 수장이셨던 이모 회장께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방문하던 장소로 포시즌 호텔(Four Seasons Hotel)이 있다. 프라하 배낭 여행 중 우연히 외국인 친구와 의기투합했는데 숙소가 포시즌이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상당한 부유층의 자녀일 것이다.
그 밖에 S사의 전 수장이셨던 이모 회장께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방문하던 장소로 포시즌 호텔(Four Seasons Hotel)이 있다. 프라하 배낭 여행 중 우연히 외국인 친구와 의기투합했는데 숙소가 포시즌이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상당한 부유층의 자녀일 것이다.
- 프라하 2
비노흐라디, 비셰흐라드, 노베 므녜스또 일부. 외국인들이나 학생들의 선호 거주 지역이며 외국 식당이나 편의 시설이 많고, 젊고 트렌디한 현지인들이 가는 핫플레이스가 많다.
- 프라하 3
비노흐라디 일부, 지슈코브[8] 구역. 비노흐라디 보다 훨씬 저렴한 집세, 외국인 상대로 한 클럽과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떠오르는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서민의 동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슈코브 지역은 집시들이 많이 살고 치안이 안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 프라하 4
미흘레, 누슬레, 비셰흐라드 일부. 우울한 공산주의 시대의 아파트들이 잔뜩 들어선 구역이지만, 미흘레나 누슬레 쪽에는 괜찮은 단독 주택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 프라하 5 - 스미호브, 말라 스뜨라나 일부. 1구역에서 가까운 5구역 지역은 살기 좋으나 스미호브 지역은 집시들이 많이 살고 치안이 안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최근 나름 재개발이 많이 되고 있는 곳. 프라하를 산지로 하고 있는 스따로쁘라멘(Staropramen영어로 직역하면 Old Spring 이라는 뜻이다. - 프라하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맥주지만 전국판매망을 갖춘 메이저 맥주 회사 중 하나) 이라는 맥주 공장이 있다.
- 프라하 6
데이비체, 브제브노브, 부베네츠 일부, 흐라드차니 일부. 꽤 넓은 행정구역으로 부촌과 프라하 구석의 싸구려 아파트촌, 프라하 국제학교, 그리고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까지 포함하고 있다. 데이비체와 부베네츠 쪽의 경우 이름난 부촌으로 부베네츠 쪽에는 각국의 대사 공관과 대사 관저가 몰려 있다. 미국 대사 관저는 궁전 같은 크기를 자랑한다. 주체코 한국 대사관도(관저는 프라하내 Troja시에 위치) 이 구역에 있다. 특성상 외국인들이 가족 단위로 많이 살며, 다른 구역에 비해 깔끔하고 치안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데이비체, 부베네츠 지역에 한한다.
- 프라하 7
부베네츠, 홀레쇼비체. 레뜨나, 스뜨로모브까 등의 큰 공원에 붙어 있는 지역이며 시내와의 접근성과 비교적 싼 집세(2017년 현재, 현실은 시궁창, 프라하 전체 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집값이 15년 대비 20%이상 상승하였다.)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기 좋은 지역이다. 오래 전부터 박람회 등이 열렸던 벨레뜨르즈니 빨라츠와 국립 미술관, 국립 예술 학교(AVU)가 위치해 있고 클럽이나 현대 미술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홀레쇼비체 일부 지역은 치안이 안 좋고 위험하다고 (2017년 현재는 Zizkov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매우 안전한 편이다. 미국의 디트로이트 슬럼가 지역이나, 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을 상상하면 안된다.) 알려져 있다. 5구역의 스미호브 지역과 함께 재건축된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다. 프라하 7지역에 속해 있는 독립시인 Troja 시는 체코내 최고부동산 가격을 자랑하는 프라하에서도 탑수준의 집값을 자랑하는 곳이며, 프라하 동물원, 식물원등이 위치하고 있다. 반면에 인구밀도는 프라하 내 최저를 자랑해, 부촌을 형성하고 있으나, 주말이되면 나들이 차량들로 혼잡해 진다.
- 프라하 8, 9, 10구역은 딱히 특징이 없는 서민 거주 지역이다.
- 프라하 8
까를린, 리벤, 노베 므녜스토 일부, 지슈코브 일부
- 프라하 9
흘로우볘띤, 리벤, 프로섹, 비소차니
- 프라하 10
말레시체, 브르쇼비체, 비노흐라디(여기는 서민 거주지역이 아닌데?) 일부.
6. 주요 관광지
프라하는 옛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많고 서유럽에서 가깝기 때문에, 동유럽(옛 공산권) 지역에선 가장 붐비는 문화 관광도시 중 하나다. 중세 건축뿐만 아니라, 근대의 신고전주의나 아르누보의 건축물들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심지어 해체주의의 거장 프랭크 게리의 춤추는 빌딩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그야말로 서양 건축의 박물관이라 할 만한 곳이다. 그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 제작 중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뉴욕이 배경이 되는 영화의 경우 프라하에서 많이 촬영한다.프라하(Prague) 시가지의 건축물들은 중세시대에 건축학적·문화적 중심지였던 프라하의 영향력을 잘 대변해준다. 프라하에는 11~18세기에 건축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하라드차니 성(Hradčany Castle), 성 비투스 성당(St Vitus Cathedral), 카를 다리(Charles Bridge) 등 세계유산에 등록된 많은 건축물은 대부분 14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4세 황제 시대에 축조된 위대한 기념물들이다.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프라하가 다른 도시와는 달리 문화유산이 많이 남은 이유는 유럽국가들에게 최악의 피해를 안겨준 제2차 세계 대전 때 전면적으로 나치와 맞붙지 않고 일찍 항복해서 직접적인 전쟁과 폭격을 피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밀고 밀리면서 초토화된 독일과 폴란드를 보면, 현재 복원한 것이 아닌 예전 그대로 남아있는 건축유산은 많지 않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13]
체코의 국민성이 "슈베이키즘"으로 대표되는 반전주의인 것은 맞으나, 민족성이 마냥 납작 엎드려 항복하는 것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실제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발전한 중공업과 부를 바탕으로, 프라하-빈-부다페스트로 대표 되는 3국 정치에 참여 하고 있었고 (형식일 뿐이었지만)부국이었다. 현대사에서 쉽게 폄하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항복은 실제로는 체코의 동맹국이었지만 전쟁에 지친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준비가 미흡했던 독일에게 체코 침공을 묵인하는 대가로 불가침 협약을 맺고 체코의 뒤통수를 날린 것이 주된 이유다.
이에 당시 체코 대통령인 에드바르드 베네쉬는(Edvard Benes) 국경에서 전투 대기하고 있던 모든 군대에 즉각 항복 명령을 내리고 항복한다. 그의 이런 결정은 지금의 프라하를 보면 현명한 결정이었을진 몰라도 당시엔 연합국이나 체코슬로바키아 국내에서나 꽤나 반발이 있었다. 항복에 복종하지 않은 많은 체코군이 연합군과 함께 싸우고 레지스탕스를 벌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어쨌든 전쟁이 끝난 직후 프라하로 돌아온 에드바르트 베네시는 프라하를 내려다보며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
베네시가 자신의 항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했던 말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덕분에 프라하는 약 10세기부터 14~15세기 룩셈부르크 왕조 하에서 보헤미아가 전성기를 누리던 때의 유산, 그리고 근현대의 유산까지 1,00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되도 않는 명분을 위해서 싸우는 것 보다는 적절하게 판세를 읽고 항복했기에 프라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별명을 얻고, 엄청난 관광객을 불러들여 체코의 주 수입원이 되었다. 베네시가 이런 미래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아름답지 않소? 중부 유럽에서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도시요. 이것은 다 내 덕분이오." #
“Is it not beautiful? The only central European city not destroyed. And all my doing.”
최근에는 특정 장소에서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자신이 느낀 만큼의 가이드비를 내는 팁 투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프라하에 방문할 계획이라면 팁 투어는 꼭 들어보도록 하자. 아래 설명할 대부분의 관광지는 그리 넓지 않은 중심가 1구역에 몰려 있어서, 평소에 많이 걷는 편인 사람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도 대부분 구역을 구경할 수 있다.
항목 참조. 참고로 천문시계가 있는 건물은 프라하 구 시청사 건물인데, 이 곳에 들어가면 지하에 있는 무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으니 참고하자. 구 시청사 입장 티켓을 구매하면 천문시계 꼭대기에 올라가 볼 수도 있고 구 시청사 관람도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천문시계의 내부를 그대로 볼 수 있으니 꼭 해볼 것을 추천한다.
벽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거기에 씌인 자유에 대한 전 세계인의 열망 그 자체가 주제인 만큼 자유에 관한 수많은 메시지로 가득하다. 최근에는 중국의 홍콩 탄압이 메인 주제인 듯하며, 벽에 누군가가 갑충류 표본으로 The Beatles를 만들어 붙여 놓은 액자가 볼만하다.
- 바츨라프 광장
- 프라하 성
정문에는 위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으며, 이따금 교대식을 하는데 이것이 볼만하다. 내부에는 각종 특별전시 및 상설전시를 위한 공간들이 있으며 관광안내소 바로 맞은 편에는 성 비투스 대성당이 있다. 티켓이 여러 종류라서 사전에 정보를 얻고 필요한 티켓을 구매하자. 티켓 중에는 성당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있는데, 프라하의 제일 높은 지대의 제일 높은 건물이나 마찬가지인만큼 여기서 보는 풍경이 정말로 기가 막히다. 물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서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천문시계와는 달리 하염없이 걸어 올라가야 하므로 주의...
- 성 비투스 성당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배경이 된 곳이다.
- 황금 소로
황금 소로는 성 내부에 존재하는 작은 골목길을 옛 분위기가 나게 재현해 놓은 구획이다. 재봉사의 집, 목공의 집 등... 옛 유럽 분위기를 한껏 느껴볼 수 있지만 별도의 입장티켓을 사야 들어가 볼 수 있다. 나가는 쪽에 프란츠 카프카의 집이 있으며, 단칸방이다. 기념주화도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앞에 소위 황금 성기(...) 소년 동상이 있는데 이 소년의 고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서 하도 많은 사람들이 만져서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다. 가보면 알겠지만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이 소년의 성기를 더 많이 만진다(...) 내부에는 중세에 사용되던 무기와 갑옷들 그리고 그 도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언 메이든이나 각종 고문기구나 형벌도구를 전시해 놓은 곳도 있고, 성 내부에서는 과거에 사용되었던 쇠뇌를 쏴볼 수 있는데 관리가 부실해서인지 명중률이 더럽다. 하지만 재밌으니 한 번쯤 쏴보자. 방아쇠가 아주아주 예민하니 주의할 것.. 물론 유료이고 자기가 쏜 표적지도 가져갈 수 있다.
그 밖에도 대장장이 아저씨가 직접 만든 제품을 팔고 있기도 하다.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의 상점 느낌이 물씬 난다. 단도부터 시작해서 클레이모어 소드, 도끼 등등 재밌는 걸 많이 만든다. 딱히 물건을 사지 않아도 칼을 벼리는 과정을 구경해도 재미있다. 단점이라면 화로에서 가끔씩 연기가 날려 눈이 맵다는 점 정도. 여기서 판매하는 단도 종류는 날이 없는 단순한 기념품으로, 위탁수하물 가방에 넣어 부치면 귀국 시에도 반입이 가능하다.
그 밖에도 대장장이 아저씨가 직접 만든 제품을 팔고 있기도 하다.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의 상점 느낌이 물씬 난다. 단도부터 시작해서 클레이모어 소드, 도끼 등등 재밌는 걸 많이 만든다. 딱히 물건을 사지 않아도 칼을 벼리는 과정을 구경해도 재미있다. 단점이라면 화로에서 가끔씩 연기가 날려 눈이 맵다는 점 정도. 여기서 판매하는 단도 종류는 날이 없는 단순한 기념품으로, 위탁수하물 가방에 넣어 부치면 귀국 시에도 반입이 가능하다.
- 카를 교
난간의 여러 조각상들과 다리 위의 각종 노상 퍼포먼스 공연으로 유명하다. 30개의 동상 중 가장 먼저 세워진 요한 네포무크 성상이 유명하다.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과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 구 시가지 광장
프라하 중앙 광장의 관람은 저녁 무렵에 하는 것이 좋은데, 밤이 되면 조명과 고건축물이 어우러져 매우 훌륭한 야경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 얀 후스 동상
프라하의 연인에서 소원의 벽으로 나왔던 곳이다. 후스가 대성당을 뒤돌아보는 구도가 나오는데, 그의 삶과 사상을 형상화 한 듯하다.
- 캄파섬
- 화약탑
과거에 화약 창고로 쓰였던 곳이라고 한다. 프라하 투어의 출발점 역할을 하는 곳이나 마찬가지로, 여기서 출발하여 프라하 성까지 올라가서 이것저것 보고 먹고 즐기면 프라하 여행은 얼추 다 했다고 보아도 좋다.
- 틴 성당
- 시민회관
- 유태인 지구
- 페트로진 전망대
- 국립 중앙 박물관
- 스트라호프 수도원
한국 사람들한테는 수도원 맥주로 유명한곳.
- 스트라호프 경기장
수용인원 20만명의 거대한 경기장. 필드 면적만 해도 축구장 9개분량이나 된다. 다만 시설이 굉장히 낡은게 흠. 현재는 스파르타 프라하의 클럽 하우스 및 훈련시설로 사용중.
7. 교통
중부유럽 지역의 도시인 영향도 커서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유명한 도시다. 같은 중부유럽 지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지척이라 그리 멀지도 않은 위치와 원활한 교통이 관광객 유치에 한몫한다.
- 도시철도 : 프라하 메트로(라인 A, B, C)
- 공항 :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이 있다. 한국에서는 대한항공과 체코항공이 인천-프라하 노선을 각각 주 4회씩 운항하며, 대한항공은 보잉 747-8, 체코항공은 A330-300을 투입하며, 대한항공과 체코항공의 관계 덕분에 한국어 표지판이 꽤 있는 편.
- 버스 : 독일의 드레스덴과 같은 체코 남쪽지방의 체스키크롬로프까지 버스로 각각 2~3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14]
- 레일젯 : 체코 철도(ČD) 및 오스트리아 연방 철도(ÖBB)에서 운행하는 고속철도인 레일젯 ( 공식홈)을 통해 오스트리아 주요 도시인 빈과 그라츠 등으로 연결된다.
8. 기타
지금은 어딜 가도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게 되었지만[15]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숨은 명소로 유명했다. 일단 위에 써져 있듯이 볼만한 것이 엄청 많으며, 무엇보다 이국적인 느낌이 짙어서 제대로 외국에 왔다는 느낌이 확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990년대 체코 물가가 굉장히 싼 편이었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의 엄청 비싼 물가에 절망한 한국 관광객 청년들의 마음을 힐링해주는 곳이었다. 지금은 폴란드 크라쿠프나 우크라이나 리비우가 잘 보존된 중세도시나 싼 물가 등 과거 프라하의 상황과 비교적 비슷한 편인데, 일반 관광객들의 서유럽 위주 루트에서 너무 먼 곳이라 아직 덜 붐비는 편이다.
9. 관광시 주의 사항
- 프라하 관광 중에는 항상 주머니를 주의하자. 전 유럽의 난다 긴다 하는 소매치기들이 프라하에서도 활동한다. 이탈리아처럼 조직단위로 움직이지는 않으나 각개 전투로 일단 시도해보고 아님 말고 식으로 도전하니 조심하길. 특히 천문시계가 있는 광장 일대에 소매치기가 많으니 유의하자. 주위에 있는 핫도그나 빵을 사먹을 때 특히 더 조심할 것.
- 프라하는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 화폐인 체코 코루나화를 사용한다. 국내에서 달러나 유로로 환전한 뒤 체코에서 환전하기도 하지만, 환전소에 따라 최대 절반 가까운 수수료를 내게 될 수도 있다. 간판에는 0% Commision이라고 써 놓아도 실제로는 환율이 좋지 않거나, 다른 명목으로 돈을 떼어가는 수가 많다고. 국내에서 코루나화를 환전해 주는 곳은 많지 않으나, 서울역 국민은행 환전센터(공항철도 타는 곳)에서 취급을 하므로 이 곳에서 환전을 하거나 현지 ATM에서 출금을 하는 것이 좋다. Euronet이라고 써져있는 ATM은 수수료가 높다고 하니 KB(우리나라 국민은행이 아니고 현지 은행) 같은 은행에서 인출하도록 하자. 혹은 아예 카드를 주로 사용해도 괜찮다. 체코인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작은 물건 하나 사도 카드를 사용한다고.
- 간혹 길에서 환전을 해주겠다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는 돈은 체코 코루나가 아니라 유통이 중지된 벨라루스 루블일 확률이 100프로이다. 따라서 사기 당하기 싫으면 길에서 절대로 환전하지 말자.
- 체코 사람들에게 친러적인 발언을 삼가는 게 좋다. 체코는 반러감정이 심한 나라다.[16] 최근에는 체코에 러시아 사람들이 자본을 잠식하고 있는 터라 반발감이 엄청나다. 아예 체코 네오 나치들은 아시안보다는 러시아어 쓰는 사람들을 조지려 든다.
10. 기타
- 어째 이 곳의 창문에서 권력자들이 많이 투척당하기로(...) 유명하다. 비공식적으로 4건의 투척사건이 일어났는데(1419년, 1483년 , 1618년, 1948년)이중에서 일반적으로는 후스 전쟁을 유발한 1419년의 투척, 30년 전쟁을 유발한 1618년의 투척이 유명하고 공식적인 프라하 투척사건들로 분류된다.
- AC 스파르타 프라하, SK 슬라비아 프라하의 연고지이다.
- 데이어스 엑스: 맨카인드 디바이디드의 배경도시이기도 하다.
[1] 이 블타바 강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연작 교향시인 몰다우(체코어로 블타바)로 유명하다.[2] 그럴만도 한게 중, 동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2차 대전의 참화로 피해를 입은 도시들이 많다. 특히 이웃국가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전쟁기간 동안 나치의 만행으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에 반해 프라하와 체코지역은 바이에른과 더불어 서방연합군과 소련이 독일로 본토로 진입하는 와중에도 가장 마지막에 수복되다보니 다행히도 전쟁의 참화를 비껴갈 수 있었다.[3] 알프스 산맥이 위치한 남부의 고지대 (1월 평균이 -2.2°c 인 뮌헨 등)를 제외하면 없다.[4]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4세가 세운 대학이다. 이후 합스부르크의 페르디난트 3세의 이름이 추가되어 카를-페르디난트 대학으로 바뀌었고, 대학의 독일어 사용 우위에 대해 체코어 사용자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1882년에 독일어 카를-페르디난트 대학(Deutsche Karl-Ferdinands-Universität)과 체코어 카를-페르디난트 대학(Česká universita Karlo-Ferdinandova)으로 분리되었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건국되자, 페르디난트 3세의 이름을 떼고 각각 이름을 바꿔 프라하 독일어대학(Deutsche Universität Prag)과 프라하 카렐 대학교(Univerzita Karlova v Praze)가 되었고, 독일어 대학은 독일계 체코인들 대부분이 추방된 1945년에 폐쇄되었다.[5] 이 사건이 제2 차 프라하 투척사건이다. 1차는 1419년에 강경 후스파들이 동료 후스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청에서 시장과 참사관들을 투척 한 사건이고 2차는 위에도 있는 1618년의 프라하 성에서 황제의 대리인으로 온 고문관과 서기들이 투척된 사건이고 3차로 꼽히는건 1948년에 외무부장관 얀 마사리크가 외무부 욕실 창문 밑에서 실족사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살해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사건을 3차 프라하 투척사건으로 꼽는다.[6] 체코어 표기법을 참고. 대부분 철자를 대충 읽은 즈디넥 흐리브라고 표기하고 있다.[7] 거리 번호도 두 가지가 있다.[8] 얀 지슈카에서 따온 이름.[9] 2012년 부분수정[10]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11]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1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13] 특히 폴란드의 바르샤바는 무장봉기 이후 에리히 폰 뎀 바흐에 의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이를 폴란드인들이 얼마 남지도 않은 과거 기록을 일일이 참고하며 도시 전체를 몽땅 복원해버린 것이다. 당연히 오래된 건물이 별로 없다.[14] 그래서 여행을 프라하 인 아웃으로 결정한다면 프라하 관광 외에 주로 가는 곳으로서 당일치기로 가는 경우가 많으며, 드레스덴은 쇼핑, 체스키 크롬로프의 경우는 레프팅으로 많은 여행객이 간다. 지역도 작아서 프라하처럼 도보로 대부분의 볼거리를 모두 볼 수 있다.[15] 얼마나 많았으면 관광객들 사이에서 프라하를 농담으로 '''경기도 프라하시'''라고 한다(...)[16] 과거 소련이 프라하의 봄을 무력 진압한 것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