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에 코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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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3]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코바치는 1924년부터 키네줄 티미쇼아라에서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했으며 1부 리그 데뷔는 1928년, 바나툴 티미쇼아라에서 했다.
그는 리펜시아 티미쇼아라를 거쳐 4년간 CA 오라데아에서 뛰었으며 1934-35 시즌 마지막 4경기엔 리펜쇼아 티미쇼아라에서 뛰면서 선수 커리어 중 유일한 우승을 맛보았다. 프랑스 발랑시엔 FC에서 1년을 보낸 코바치는 CA 오라데아에서 2시즌을 더 보내고 플로이에슈티에서 2년을 보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너지바러디 AC와 검머 부다페스트에서 활동했으며 페러르 클루지를 거쳐 1947년, 크리샤나 오라데아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1.1.2. 국가대표
코바치는 1929년 9월 15일, 불가리아를 상대로 루마니아 대표팀에 데뷔했다.
코바치는 루마니아 대표팀 멤버로 총 37회 A매치에 참가했다. 그리고 코바치는 FIFA 월드컵 공식 보고서상으로 베르나르트 포르호프, 에드몽 델푸르, 에티엔 마틀레르와 더불어 30년대의 3차례 월드컵에 모두 출전한 유일한 루마니아 선수이자 4명의 선수 중 하나로 남았다.[4]
그의 마지막 A매치는 1938년 월드컵 1라운드 쿠바전이었고 주장으로 출전하였다. 하지만 루마니아는 단 한번도 1라운드 이상에 올라가지 못했다.
1940년, 북부 트란실바니아가 헝가리로 넘어가면서 코바치는 1경기를 헝가리 대표팀으로 뛰었다.
1.2. 이후
코바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우니베르시타테아 클루지와 페러르 클루지에서 감독으로 활동했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는 친정팀 오라데아의 감독으로 있으면서 팀의 디비자 A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폴리테흐니카 티미쇼아라에서는 디비자 B 우승으로 팀을 승격시켰다.
2. 뒷이야기
- 코바치는 초대 대회에서 페루를 상대로 한 첫경기의 쐐기골을 넣어 18세의 나이로 월드컵 최연소 득점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멕시코의 최연소 선수 마누엘 로사스(1912년 4월생)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그의 월드컵 최연소 득점 기록은 단 5일 만에 깨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코바치의 득점 기록은 월드컵 최연소 득점 부문에서 4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그보다 더 어린 득점자는 펠레, 마누엘 로사스, 마이클 오언 이 3명 밖에 없다.
3. 가족
- 리누스 미헬스의 뒤를 이어 AFC 아약스의 지휘봉을 잡아 유러피안 컵 2연패를 이끈 명장 슈테판 코바치가 그의 동생이다. 재미있는 것은 선수로서는 형 니콜라에의 커리어가 훨씬 좋지만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동생 슈테판의 커리어가 훨씬 좋다는 것이다.
4. 수상
4.1. 클럽
- 디비자 A 우승 1회: 1935-36(리펜시아 티미쇼아라)
- 쿠파 로므니에이 우승 1회: 1935-36(리펜시아 티미쇼아라)
4.2. 감독
- 디비자 A 우승 1회: 1949(CA 오라데아)
- 디비자 B 우승 1회: 1952(폴리테흐니카 티미쇼아라)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개근 출전은 못했어도 3대회 모두 명단에는 들어간 선수로는 에밀 베낭트, 아르놀 바주가 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