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조별리그 3조&4조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의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3조와 4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1. 3조
시드 배정국: 우루과이
1.1. 1경기 루마니아 3 vs 1 페루
3조의 첫 경기였던 이 경기는 루마니아가 1분 만에 선제골을 넣어 앞서갔다. 그런데 페루의 주장이었던 플라시도 갈린도가 경기가 뜻대로 안풀렸는지 계속 말싸움을 비롯한 충돌을 일으켰고 보다못한 주심은 갈린도에게 후반 25분에 퇴장크리를 먹였다. 이것이 월드컵 역사상 최초의 퇴장 사례다.
소우자 페레이라가 후반 30분에 동점골을 넣어 추격의 불씨를 살렸지만 페루는 결국 갈린도의 퇴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79분과 89분에 연속골을 허용. 무너지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관중의 수는 불과 300명에 지나지 않아 역대 월드컵 역사상 최소관중경기가 되었다.[3]
1.2. 2경기 우루과이 1 vs 0 페루
최강팀 우루과이의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리고 에스타디오 센테나리오의 완공 축하 경기가 곧 홈팀 개막전이었다. 그리고 이 구장에 7만의 관중이 몰려와서 역사적인 구장의 개막을 축하했다.
한 시간 동안 오프닝 행사를 하고 펼쳐진 경기에서는 외팔이 스트라이커 엑토르 카스트로[4] 가 후반 20분에 터뜨린 선제 결승골로 우루과이가 1대0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로서 페루는 탈락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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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토르 카스트로
1.3. 3경기 우루과이 4 vs 0 루마니아
둘 중 이기는 팀만이 준결승에 진출하는 본격 단두대 매치. 하지만 단두대 매치치고는 승부가 너무 쉽게 갈렸다. 우루과이가 전반에만 4골을 폭파시키며 루마니아를 꺾고 조 1위로 4강 토너먼트에 올라갔다.
2. 4조
시드 배정국: 미국
2.1. 1경기 미국 3 vs 0 벨기에
미국은 당시 A매치 최다 출전 선수가 5경기에 그쳤을 정도로[5] 신예들만 뽑아 대회에 출전했다. 그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첫 상대 벨기에를 3대0으로 관광보내며 그에 대한 우려를 한큐에 일축시켰다. 이런 의외의 성적을 거둔 배경 중 하나로는 순수 미국인들 외에도 영국 출신 선수들이 일부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나름 스코틀랜드 등에서 종주국 물을 먹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뭉쳤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강한 전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2.2. 2경기 미국 3 vs 0 파라과이
월드컵 역사상 첫 해트 트릭이 나온 경기이다. 주인공은 미국의 공격수 버트 파테노드. 그 중 한 골이 파라과이 선수 아우렐리오 곤살레스의 자책골 또는 동료 플로리의 골로 인정되어서 해트트릭을 76년간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미국 축구협회의 조사로 파테노드의 골임을 밝혀내었고 FIFA가 이를 수용하여 파테노드가 월드컵 역사상 첫 해트 트릭의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게 되었다. 그리고 덩달아 미국은 2승으로 4강 진출 확정.
2.3. 3경기 파라과이 1 vs 0 벨기에
탈락 확정 팀들이 벌이는 진흙탕 매치. 이겨도 탈락, 져도 탈락이라면 승리한 탈락자가 되기 위한 몸부림에서 파라과이가 바르가스 페냐의 골을 끝까지 지켜 1대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렇게 파라과이는 승리한 탈락자가 되었다.
3. 4강 진출팀
3조 1위 : 우루과이
4조 1위 : 미국
이후 정보는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4강, 결승에서 기재.
[1] 괄호안은 한국시간[2] 원래 이 당시 페루 대표팀의 유니폼은 하얀색과 빨간색의 세로 줄무늬 유니폼이었다. 하지만 파라과이와 겹치는 관계로 울며 겨자먹기로 순수 흰색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 참가하였다[3] 피파의 공식 보고서에는 2549명이 왔다고 되어있기는 하다만 대부분의 다른 자료들에는 이 경기에 300명이 왔다고 기록되어 있고, 10년전의 피파 보고서에도 역시 300명이 왔다고 써 있었다. 이 경기가 열렸던 에스타디오 포시토스가 수용인원 천 명 정도의 미니구장이었던 것도 한 몫했다.[4] 13살때 전기톱을 사용하다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5] 골키퍼 지미 더글러스가 당시 팀 내 A매치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였다.[6] 키 166cm로 역대 골키퍼 중 손에 꼽히는 단신 골키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