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엔 마틀레르

 

'''에티엔 마틀레르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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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에드몽 델푸르
(1935~1937)

'''에티엔 마틀레르'''
'''(1938~1940)'''

쥘 반도렌
(1942)

[image]
이름
에티엔 마틀레르
(Étienne Mattler)
생년월일
1905년 12월 25일
사망년월일
1986년 3월 23일
국적
[image] 프랑스
출신지
벨포르
포지션
풀백
신체조건[1]
180cm/ 82kg
등번호
-[2]
소속팀
US 벨포르 (1921-1927)
트르와 AC (1927-1929)
'''FC 소쇼몽벨리아르 (1929-1946)'''
국가대표
46경기 / 0골(1930-1940)
감독
FC 소쇼몽벨리아르 (1944-1946)
'''벨포르의 사자'''
1. 생애
1.1. 어린 시절
1.2. 선수 생활
1.4. 은퇴 이후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3. 뒷이야기
4. 수상
4.1. 클럽


1. 생애



1.1. 어린 시절


마틀레르는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10대 초반에는 사이클 선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자전거를 타다 형제가 죽는 비극이 터졌다. 이 때에 형의 권고로 고향 축구팀인 유니옹 스포르티브 벨포르에 들어갔다. 이때가 마틀레르의 나이 16세 때였다.

1.2. 선수 생활


1927년 이후에는 프랑스 동부의 트르와 AC에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1929년부터는 소쇼에서 활약하였다. 소쇼에서는 주로 레프트 풀백으로 활약하였고 소쇼에서 주장을 맡았다. 소쇼에서 앙드레 아베글렁, 로제 쿠르투아, 브리튼 윌리엄스 등과 활약하며 소쇼를 프로화 시절 초기의 강팀으로 만들었다.

1.3. 국가대표


1930년 5월 25일, 마틀레르는 첫 국가대표팀 경기를 치렀다. 상대는 벨기에였으며 경기는 프랑스가 2대1로 이겼다.
2차 대전 이전 프랑스 대표팀의 최다 출장 기록은 그의 차지였다. 3번 월드컵에 모두 참여하면서 46회의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14회는 주장으로 출전하였다.

1.4. 은퇴 이후


은퇴 직전에는 소쇼에서 잠시 선수 겸 감독을 맡기도 했지만 2년 차에 소쇼가 디비지옹 2로 강등당하며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고향팀 벨포르에서도 일했으며 축구계를 떠난 이후에는 Tabac라는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식품 회사의 대표로 일하기도 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마틀레르는 신체적으로 강하고 운동 능력이 뛰어났으며 용감한 수비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투쟁심으로도 유명했는데 턱뼈 골절[3], 인대 파열[4] 등의 부상을 입고도 경기를 끝까지 마쳤다. 상대 공격수들은 그를 스위퍼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소쇼가 현재까지 프랑스 리그에서 우승한 적이 2차례에 불과한데 모두 마틀레르가 있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소쇼 팬들에게는 당연히 역대 최고의 주장이다.

3. 뒷이야기



4. 수상



4.1. 클럽


[1] 영어 위키백과 등에서는 191cm로 나오지만 사진자료를 보면 180cm가 더 정확하다. [image]
169cm로 알려진 주세페 메아차와의 사진
[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1933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시합[4] 1937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시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