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콜리슨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No. 4 '''
'''니콜라스 존 "닉" 콜리슨
(Nicholas John "Nick" Collison)'''

'''생년월일'''
1980년 10월 26일 (44세)
'''출신학교'''
캔자스 대학교
'''신장'''
208cm (6' 10")
'''체중'''
116kg (255 lbs)
'''포지션'''
파워 포워드, 센터
'''드래프트'''
2003년 1라운드 전체 12순위
시애틀 슈퍼소닉스 지명
'''소속팀'''
시애틀 슈퍼소닉스 (2003~2008)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2008~2018)
'''등번호'''
4
'''수상내역'''
NABC Player of the Year (2003)
Consensus first-team All-American (2003)
Big 12 Player of the Year (2003)
2× First-team All-Big 12 (200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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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시티 썬더 영구결번'''
'''No. 4'''
1. 개요
2. NBA 입성전
3. NBA 입성후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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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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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Thunder[1]'''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서 수비, 스크린, 리바운드를 바탕으로 굳은 일과 성실함을 도맡아 왔을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에도 공헌을 하며 팬들에게 사랑을 받은 신생팀 썬더 최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2. NBA 입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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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폴스 고등학교 시절부터 활약을 인정받아 1999년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에 선출되었고, 캔자스 대학교에서는 동기생이자 같은 아이오와 주 출신인 커크 하인릭[2]과 함께 듀오를 결성하면서 NCAA 토너먼트 베스트 4[3]에 공헌했다. 대학 생활 마지막 해인 2003년에는 드웨인 웨이드가 이끈 마케트 대학교를 누르고 시라큐스 대학교와 결승전에서 맞붙었으나 루키 카멜로 앤서니의 맹활약으로 인해 78-81로 패하면서 우승 트로피는 얻지 못했다.[4] 참고로 대학생 신분으로 2002년 인디애나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 대회 대표팀에도 출전한 경험이 있었다.[5]

3. NBA 입성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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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008년까지의 슈퍼소닉스 시절
이후 2003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2순위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을 받았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양쪽 어깨 부상으로 모든 경기를 결장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2년차에 들어서자 2004년 11월 3일에 개최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의 데뷔 경기에서 2득점, 5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하였지만 84-114로 패하고 말았음에도 불구하고 정규리그 82경기를 모두 뛴 가운데 4경기를 선발로 나갔고, 플레이오프에서는 3경기를 뛰며 두자리 득점을 기록하였다. 슈퍼소닉스 마지막 해인 2007-08시즌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는 19득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함과 동시에 더블-더블을 기록[6]하며 99-95로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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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시즌
2017-18시즌
2008-09시즌부터는 신생팀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로 옮긴 이후에도 활약을 하며 2011-12시즌에는 처음으로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에도 공헌했으나, NBA 파이널에서는 마이애미 히트에게 패하면서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2014-15시즌에 들어선 이후부터 노쇠화 등으로 인해 벤치 수가 많았고 출전 시간이 예전에 비해 많이 감소되어 버렸다. 2017년 7월 14일, 1년 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2017-18시즌을 끝으로 현역을 은퇴하겠다고 밝혔으며, 4월 12일에 개최된 멤피스 그리즐리스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코트 중앙에서 연설한 팀 동료 러셀 웨스트브룩의 부름을 받으며 팬들의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5월 10일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면서 썬더에서는 처음으로 유일한 프랜차이즈 선수가 되었으며 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을 제외[7]하면 창설해부터 은퇴까지 총 602경기를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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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9년 3월 20일에는 구단 관계자들과 가족 등이 모인 가운데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시켰다. 게다가 한때 팀 동료였지만 선더와 껄끄러워진 케빈 듀란트도 현장을 찾아 축하해 주었다. 이날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는 20점 차를 좁히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지만 결국 패배했다.
팀의 전신인 시애틀 수퍼소닉스 시절부터 팀을 지키고 롤플레이에 집중하고 락커룸 리더를 자처했던 이 노장 백인선수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는데 있어서 단 한건의 이의 제기도 발생하지 않았다. 수많은 관중과 선,후배 선수들의 박수를 받으며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첫번째 영구결번으로 남게되는 인생의 영예를 안았다.

4. 플레이 스타일


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부터 꿋꿋이 골밑을 지킨 전형적인 수비형 빅맨이다. 괴물같은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들이 즐비한 NBA에서 그가 대학만큼 활약할 기회는 없었지만 섬세한 스크린, 이타적인 수비와 골밑 싸움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해 왔기에 오클라호마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였다. BQ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 언더사이즈인데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로 활약할 수 있었다.
콜리슨의 장기는 지능적 수비위치 선점을 통한 공격자 차징파울 유도능력으로 키나 운동능력이 떨어졌음에도 골밑 수비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간 선점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날고기었던 선수들이 평균이하로 전락하는게 NBA인 만큼 그도 전철을 밟나 싶었지만, 특유의 높은 BQ와 이타적인 플레이, 군살없이 정석적인 농구로 현역 시절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믿음직한 선배였으며 락커룸 리더였고 결국 프랜차이즈 최초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러셀 웨스트브룩 역시 닉 콜리슨 같은 선배가 있어 든든하다며 여러차례 공언한 바 있다.

5. 여담



  • 2018년 3월 11일에 열린 샌안토니오전에선 발목 부상으로 빠진 스티븐 아담스를 대신해 활약했다. 득점할 때마다 환호하는 관중들을 보라!
  • 성실하고 이타적인 플레이와 성격으로 오랫동안 OKC 선수단의 라커룸 리더, 보컬 리더로 활동했다. 함께 시애틀에서부터 활약했던 케빈 듀란트가 이적을 마음먹었을 때에도 콜리슨에게만큼은 먼저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1] 케빈 듀란트가 지어준 별명이다.[2] 시카고 불스에서 주전 포인트 가드로 오랫동안 활동했다.[3] 2002, 2003[4] 슛이 전부 들어가지 못했는데, 특히 자유투가 문제였다.[5] 2003년 5월호 농구잡지 루키에서 2003-04시즌 주목할 대학생 출신 신인으로 무려 카멜로 앤서니를 제치고 가장 먼저 나왔을 정도이니 그만큼 당시 주목도가 상당한 선수였다. 그리고 브라이언 쿡, 다르코 밀리시치 역시 기사에 실렸는데 그 결과는... 즉 제 아무리 NCAA 스타 혹은 NBA 유로 스카우터들이 칭찬을 한 선수들이라고 해도 NBA는 또다른 세계임을 알 수 있다.[6] 2001-02시즌 게리 페이튼이 32번째로 기록한 이후 가장 많았으며, 득점과 리바운드는 1997-98시즌 빈 베이커가 기록한 이후 최다기록을 세웠다.[7] 308경기에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