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페이튼

 

[image]
'''개리 드웨인 페이턴
(Gary Dwayne Payton)'''
'''생년월일'''
1968년 6월 23일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오클랜드
'''출신학교'''
오리건 주립대학교
'''신장'''
193cm (6' 4")
'''윙스팬'''
203cm (6' 8")
'''체중'''
82kg (180 lbs)
'''포지션'''
포인트 가드
'''드래프트'''
'''1990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시애틀 슈퍼소닉스 지명'''
'''소속팀'''
''' 시애틀 슈퍼소닉스 (1990-2003) '''
밀워키 벅스 (2003)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03-2004)
보스턴 셀틱스 (2004-2005)
마이애미 히트 (2005-2007)
'''등번호'''
'''20번 (1990-2007)'''
2번 (1990[1])
'''수상내역'''
'''NBA 챔피언 (2006)'''
'''올-NBA 퍼스트 팀 2회 (1998, 2000)'''
'''NBA 올해의 수비수상 (1996)'''
NBA 올스타 9회 (1994-1998, 2000-2003)
올-NBA 세컨드 팀 5회 (1995-1997, 1999, 2002)
올-NBA 서드 팀 2회 (1994, 2001)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9회 (1994-2002)'''
NBA 올-루키 세컨드 팀 (1991)
NBA 올해의 스틸왕 (1996)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3)'''
'''1996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
'''2000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image]
'''2006'''
1. 개요
2. 커리어
2.1. NBA 이전 커리어
2.2. 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
2.3. 시애틀 슈퍼소닉스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1. 개요


[image]
'''THE GLOVE'''
NBA 선수. 포지션은 포인트가드. 17시즌 동안 NBA에서 뛰었으며 그 중 13시즌을 시애틀 슈퍼소닉스 소속으로 활동한 소닉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득점력도 뛰어났지만 특히 포인트가드로서 탁월한 수비력을 보이며 가드 중 '''역대 최고의 수비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한 유일한 포인트가드.'''

2. 커리어



2.1. NBA 이전 커리어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출신으로, 같은 동네에 제이슨 키드브라이언 쇼가 살았다고 한다. 길거리 농구를 하면서 서로 알던 사이였다고. 오레곤 주립 대학 시절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대학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으며, 1990년 데릭 콜먼[2]에 이어 1라운드 2픽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에 지명된다. 1990년은 유난히 스타급 선수들이 빈곤했던 해로[3] 게리 페이튼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

2.2. 시애틀 슈퍼소닉스 시절


[image]
96 파이널에서 마사장님과.
페이튼은 루키 시즌부터 주전 포인트가드로 출장한다. 첫 3년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리그에 적응하며 서서히 스텝업을 하더니 4년차부터 올스타급 가드로 올라서고, 5년차부터는 20+득점 8+어시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톱가드로 발돋움한다. 올스타 9회, All-NBA팀 9회(퍼스트 팀 2회), 9년 연속 디펜시브 퍼스트 팀 선정은 공/수/어시스트의 밸런스가 완벽하게 갖춰진 그의 전성기를 반영하는 이력.
그보다 한해 일찍 팀에 들어온 파워포워드 숀 켐프와의 듀오는 "소닉 붐"으로 불리는 리그 최고의 원투 펀치 중 하나로 꼽혔으며, 소닉스가 90년대 서부 지구 최고의 강팀 중 하나로 군림한 원동력이 되었다. 다만 플레이오프는 꾸준히 진출한 반면 플레이오프 성적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다. 파이널에는 1회, 컨퍼런스 파이널에는 1회 밖에 진출하지 못했으며 1993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찰스 바클리피닉스 선즈에게 3-4로 패배했고, 1996년 파이널에서는 마이클 조던의 72승 10패 시카고 불스에게 2-4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2.3. 시애틀 슈퍼소닉스 이후


페이튼은 2003년 시즌 중에 레이 앨런 등 5명의 플레이어와 묶인 트레이드로 밀워키 벅스로 이적한다. 벅스에서 잔여 28경기를 치른 후 FA로 풀린 페이튼은 이미 35세로 커리어 막바지에 도달해 있었다. 우승을 위해 LA 레이커스로 가기로 결정한 페이튼은 같은 꿈을 품고 온 칼 말론과 함께 반지원정대로 불리는 03-04 레이커스 라인업을 형성한다.
[image]
그러나 게리 페이튼 - 코비 브라이언트 - 칼 말론 - 샤킬 오닐의 무시무시한 네임 밸류를 자랑하던 이 라인업은 2004 NBA 파이널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1-4로 털리며 한 시즌만에 해체되고 만다. 페이튼은 기량 하락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맞물려 플레이오프에서 8.0득점 5.4어시스트 FG 36.6%라는 안습한 성적을 찍었다.
[image]
[image]
2005년 레이커스는 페이튼을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시켜 버리는데, 보스턴에서 1년간 선발 출장하다가 2006년 마이애미 히트와 1년 계약을 맺고 제이슨 윌리엄스의 백업으로 뛰게 된다. 그런데 이 해 드웨인 웨이드의 대폭발로 파이널에서 댈러스 매버릭스를 꺾고 우승을 하고 만다! 16년만에 NBA 우승을 차지한 페이튼은 스탯상으로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3차전과 5차전에서 게임 위닝 샷을 넣으며 관록을 입증한다. 우승 후 마이애미에서 1년을 더 뛴 페이튼은 39세의 나이로 은퇴한다.

3. 플레이 스타일


[image]
뛰어난 공격력과 최고의 수비력, 좋은 어시스트와 리바운드 능력이 조화된 올어라운드형 포인트가드.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포인트가드치고 큰 신장에 빠르고, 말라보이지만 힘이 좋아서 돌파 및 포스트업 플레이에 능했다.[4] 1999-2000 시즌 평균 24.2득점을 비롯, 무려 7시즌 동안 20+ 이상의 평균 득점을 기록한 한편 동시에 8~9 어시스트를 찍었는데 이는 공격형 포인트가드로서 최상급의 스탯. 그런데 수비력은 훨씬 더 좋았다(…). 가드 포지션에서 빅맨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올해의 수비수 상을 따낸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이며 페이튼 이후 17-18시즌 현재까지 가드 포지션의 수상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악착같은 대인 수비는 그에게 "마치 글러브로 공을 감싸듯 상대를 잡아버린다"는 의미로 "The Glove"라는 별명을 부여했으며[5] 대인 수비 못지 않게 팀 수비에도 뛰어났고 손이 크고 빨라서 스틸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1996년 시즌에는 평균 2.9 스틸을 기록, 스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리바운드를 페이튼보다 많이 잡은 포인트가드는 오스카 로버트슨, 매직 존슨, 제이슨 키드 정도 밖에 없다.
마이클 조던을 가장 잘막았던 선수로 유명하며, 1996년 파이널에서 시애틀이 처음 3차전에서 내리 털리자 페이튼이 나섰고[6], 페이튼은 이후 조던을 23점/26점/22점으로 묶었다.
특히 6경기에서 조던은 5-19의 필드골과 22점을 기록했으며, 이는 조던의 파이널 커리어 로우. 1996 파이널에서 조던은 평균 27.3, 야투율 0.415, 파이널 gmsc 18.5로 상당히 고전했다.[7] 낮은 득점을 기록했다. 96년 파이널을 제외하면 조던의 파이널 평균득점은 30점을 상회한다. 물론 우리의 마사장님께서는 "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라고 하면서 자신의 부진이 페이튼 때문이 아니라고는 하였지만 경기 내내 조던은 페이튼을 상당히 귀찮아 했던 것이 역력히 드러났다. 운동실력도 운동실력이지만 말빨로도 밀리지 않는 페이튼은 조던에게 상당히 귀찮고 짜증나는 상태였음을 부인할수는 없다.
본인의 회상에 따르면, 조던을 직접적으로 막기보다는 좀 더 많이 움직이게 하고 슛도 터프샷을 강제시키면서 조던을 육체적&정신적으로 피곤해지게 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페이튼의 대인마크능력과 당시 소닉스 로테이션 수비가 조던을 괴롭혔음은 명확하다. 게리 페이튼이 1차적으로 조던에게 붙었지만 조던이 볼만 잡으면 나머지 소닉스 선수들이 일제히 견제하고, 3점라인 안쪽으로 돌파해들어가면 득달같이 더블/트리플팀해가는 엄청난 팀수비로 조던의 움직임을 봉쇄했던 것.[8][9][10]
내구력도 무지 좋은 선수라 큰 부상에 시달린 적이 없고, 17년 동안 단 25게임을 결장했다. 단점도 있었는데, 일단 가드치고 슈팅이 별로 좋은 선수가 아니었다. 자유투가 70%대 평균 였고 점퍼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준이었으며 3점슛은 좀 안좋은 편.[11] 또한 분명히 모든 방면에서 탁월하고 장기간 기복없이 정상급의 실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MVP급이라든가 리그를 지배했다고 할만큼 압도적인 임팩트를 보여준 것은 또 아니었다.
물론 페이튼은 리그 MVP는 없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같은 포지션에서 존 스탁턴, 제이슨 키드 그리고 현재의 크리스 폴 역시 압도적인 임팩트를 보여준 적이 없다. 그리고 패트릭 유잉, 레지 밀러 역시도 MVP와 우승이 없으며 무엇보다 압도적 임팩트는 주관적인 기준 이기에 위 기재된 선수들과 페이튼의 단점으로 기술된 MVP 유무, 임팩트로 선수의 가치를 폄하할 수 없다.
스탁턴은 어시스트과 스틸 부분에서 도저히 깰수없는 역대1위를 차지하고 있고, 키드역시 가는팀 마다 약체팀을 우승권으로 만드는 1차스탯 이상의 에이스였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페이튼 역시 당시 켐프와 시애틀의 상징이었고 그만한 스타성이 없다면 나이키에서 페이튼의 시그내쳐 농구화를 선보였을리가 없으며, 90년대 초중반은 스탁턴, 중후반과 2000년 초반까지는 키드와 함께 엘리트 포인트 였다는 점을 명심하자.

4. 트래쉬 토크


한 가락한다는 선수들이 잘한다는 트래시 토커 중에서도 거의 탑을 차지하는 선수. 역대 테크니컬 파울 숫자 랭킹에서 제리 슬로언, 라쉬드 월라스에 이은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벌금을 2만 달러씩 물기도 했다. "최고의 트래쉬 토커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에 조던, 버드와 원탑을 다툴 정도. 대부분 1위를 차지하고는 한다.
하루는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입에 질렸던 존 스탁턴이 "자네 입엔 모터가 달렸나 그만 좀 하지?" 라고 일침을 놨는데, 이에 페이튼은 "영감님이 내 젊은 혀가 부럽나보군."(…) 이라 화답했다. 오죽했으면 한 말빨 하는 마이클 조던마저 "페이튼의 아가리에 농구공을 쳐넣고 싶었다." 라고 회고했을 정도.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찰스 바클리 역시 최고의(?) 트래쉬 토커를 뽑아달라는 질문에 '나의 현역 시절 중에서는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 레지 밀러, 그리고 게리 페이튼이다'라고 대답했다.
한 입담하는 샤킬 오닐도 최고의 트래쉬 토커로 개리 페이튼을 뽑으면서 말하기를 "그 양반의 트래쉬 토킹은 최고 수준이었어요. 그냥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죠. 근데 더 미친 사실은 그 양반은 코트 밖에서나 안에서나 그랬다는 점입니다." 라고 하면서 페이튼을 흉내내는데 꽤 볼 만하다.
본인도 이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 명예의 전당 입상 연설에서도 이 점에 관해서 언급한 점이있다. 자신을 역대 최고의 트래쉬 토커로 언급하면서[12] 말하기를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였다기보다는 내 자신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했다."라고 하면서 악의적은 아니었다고 언급하였다. 하도 트래쉬 토크를 남발한 탓에 별 의도 없이 가볍게 '너네 엄마...' 까지만 나와도 심판이 파울을 불 정도였다고(…).
현역 시절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로는 존 스탁턴을 꼽고 있다. 마이클 조던은 투쟁심의 화신같은 인간이라 트래쉬 토크가 쉽게 먹혀들고 이 경우 결과야 어쨌든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대응이 편해지는데 비해 존 스탁턴은 아무리 떠벌려도 신경을 쓰지 않는 타입이었다고. 오히려 묵묵히 파울을 유도해서 자기를 벤치로 내쫓아버린 뒤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게 매우 거슬렸다고 한다. 당연히 조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이건 내 의견이야" 라고 강조하기도......[13] 단순히 조던에 대한 열폭이라고만 할 수 없는게 스탁턴이 상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은 페이튼만은 아니며, 나름 그 이유도 타당해서[14]
사실 플레이스타일 상성을 따지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물론 조던이 페이튼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인 점은 명확하지만 그의 커리어를 통틀어봐도 조던을 가장 잘 막았던 선수들은 190 언저리의 재빠르고 강골인 포인트가드들이었다. 조던은 수비를 달고 쏘기보다는 특유의 민첩함으로 수비를 제껴놓고 쏘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이 때문에 그의 파워를 기본적으로 견딜 수 있다면 작고 재빠른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그를 더 잘 막았다. [15]현대 농구로 비유하자면 오히려 카와이 레너드같은 선수들보다 토니 알렌같은 선수들이 더 잘 막을 스타일.
실제로 피스톤즈에선 카와이와 같은 키에 운동능력이 빵빵한 로드맨은 피펜을 막거나 막판 조던만 막으면 되는 상황에서 공격권에서 조던을 막고, 주 매치업은 듀마스였다. 반면 스탁턴은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부상 후 수술을 한 이후 기동력을 잃은 97,98년 전까지는 대단히 빠른 선수였다. 스탁턴은 뛰어난 슈터였음에도 외곽을 노리기보단 공격적으로 돌파를 하는 선수였는데, 겉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거칠고 힘이 좋기까지 해 절대 만만한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 80년대에는 지금보다 신체접촉에 관대했기 때문에 스틸의 달인들이 거친 수비를 해 뺏는 경우가 많았는데 [16] 스탁턴 역시 굉장히 터프하고 재빠른 선수였다.
즉, 페이튼이 조던을 막을 경우 민첩함에서 우위인데다 시애틀 특유의 팀수비 덕분에 조던의 돌파나 골밑 쇄도를 견제하고 외곽 위주로 풀어가도록 할 수 있었다. 조던의 중거리 슈팅력은 역대급이지만, "돌파하는 조던"보다 "슛 쏘는 조던"이 상대하기 낫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그러나 작은 덩치로 조그만 틈만 나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존 스탁턴은 그런 식으로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외곽을 강요할 경우 슛거리가 길기 때문에 외곽에서도 넣을 수 있으며, 더블팀이 들어오는 순간 귀신같이 오픈된 선수를 찾아 빼준다는 점에서 상대하기 더 까다로운 것.
물론 조던이 스탁턴보다 훨씬 위력적인 선수인 것은 맞다. 그러나 상성 상으로 조던의 가장 강한 무기에 어느 정도 대응은 가능했던 페이튼 입장에선, 조던만큼 강력하진 않지만 더 다양한 옵션이 있던 스탁턴이 더 까다로울 수 있는 것이다.
2004년에 방한하여 행사를 갖기도 했는데, 동행했던 손대범 편집장의 후일담에 따르면 인터뷰 끝나고 탁구를 몇 게임 쳤는데 '''거기서도 쉴새없이 나불댔다'''(...)고 하니 상대와 종목을 가리지 않는 진정한 트래쉬 토커라고 할 수 있겠다.

5. 기타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레전드였기에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후신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영구결번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은 슈퍼소닉스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하기사 OKC가 형식상 슈퍼소닉스의 후신이긴 하지만 연고이전을 하면서 슈퍼소닉스 프랜차이즈 권리 일체를 포기한 상황이라[17] 사실상 남남에 가까운 상황이긴 하다. 만약 시애틀에 슈퍼소닉스의 프랜차이즈를 제대로 잇는 구단이 창단된다면, 그 팀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20번으로 영구결번이 될 확률이 높다.
2004년과 은퇴 후인 2012년에 한국에 방문하기도 했다.
아들인 게리 페이튼 2세도 농구선수이며 현재 워싱턴 위저즈에서 뛰고 있다.
[1] 루키시즌때만 사용[2] 94년 드림팀 2에 선발되었을 정도로 유망했다. 물론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개인스탯도 좋았다. 필라델피아, 샬럿 등 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3] 콜먼과 페이튼을 제외하면 1라운드는 데니스 스캇, 켄달 길, 타이론 힐, 엘든 캠벨, 2라운드는 토니 쿠코치, 세드릭 세발로스, 안토니오 데이비스 정도가 있다. 이 중 올스타가 된 선수는 안토니오 데이비스, 그것도 단 한 번이다. 그래도 주전급 선수들이긴 하기 때문에 완전 망한 해는 아니지만, 스타급이 적었던 게 사실. 게다가 콜먼은 제2의 칼 말론이 될 거란 기대를 받았지만 나태함과 끊임없는 부상 때문에 재능 대비 아쉬운 커리어를 보냈다.[4] 특히 하체가 매우 강했다고 한다. 그의 대인 수비 원동력도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마이클 조던과의 매치업을 보면 포스트업의 귀재였던 조던과의 몸싸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호리호리하지만 역대급 수비능력을 보유한 케빈 가넷과 비슷한 케이스.[5] 1993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유래.[6] 당시 조던도 등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긴 했지만, 페이튼 역시 허벅지 부상중이었다. 이 탓에 3연패를 하기 전까지는 감독이 조던과의 매치업을 허락해주지 않았다고.[7] 당장 14파이널에서 카와이 레너드에게 '락다운'을 당했다고 평까지 받았던 르브론이 해당 시리즈에서 평득 28.2, 야투율 0.571, 파이널 gmsc 22.5 정도를 기록했다.[8] 해당 영상 당시 조던이 당한 수비. 이 정도로 집중수비를 당하니 다른 선수들이 오픈되어 조던이 볼을 빼줬지만 안타깝게 당시 불스 선수들은 안정적으로 슛을 넣어줄 수 있는 선수가 쿠코치 정도밖에 없었다. 2옵션 피펜은 부진에 빠져 집중수비에 시달리는 조던보다도 더 낮은 3할대의 성공률을 기록했고, 론 하퍼는 슛거리가 짧았다. 유일하게 평상시보다 활약한 건 시애틀의 저질 센터진과 매치업된 룩 롱리였지만 그래봐야 롱리였다. 당시 불스는 팀공격이 잘 풀리면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통해 물 흐르듯 공격이 이뤄졌지만, 조던을 제외하고 자기 득점을 스스로 만들어낼 선수가 거의 없다는 이유 때문에 한번 팀공격이 안 풀리면 조던의 아이솔레이션에만 의존해야 했다. 문제는 당시 소닉스의 수비는 조던을 상대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 95-96시즌 당시 수비레이팅 1위는 불스, 2위는 소닉스였는게 소닉스에 올디펜스 팀 멤버가 페이튼 단 한 명 뿐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성과였다. 당시 시애틀엔 수비력 자체가 좋은 선수는 많이 없었지만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기계처럼 돌아가는 강력한 로테이션 수비가 있었다. 즉, 3차전부터 리그 최강의 맨투맨 수비수 페이튼이 자기 공격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조던에게 붙어 공을 잡기 전부터 악착같은 디나이로 괴롭혀 안 좋은 위치에서 잡도록 했고, 볼을 잡아도 포스트업 시 탄탄한 몸과 강한 힘으로 잘 밀려나지 않고, 조던이 돌파시 더블,트리플 팀이 항상 붙어 어렵게 하는 걸 볼 수 있다. 조던이 다른 동료에게 킥아웃해주면 바로 커버 들어가는 로테이션은 덤. 즉, 리그 최강의 수비수와 리그 최강의 로테이션 수비가 합쳐진 성과인 것이다.[9] 조던을 가장 잘 막은 팀은 배드보이즈 피스톤즈, 팻라일리, 유잉이 이끄는 92, 93년 닉스 정도인데 두 팀 모두 강력한 골밑존재감이 있었다. 닉스는 앤소니 메이슨, 찰스 오클리 등 강한 파워포워드들과 리그 최고수준의 센터 유잉이, 배드보이즈는 유잉수준의 블러커는 없었지만 마혼, 레임비어, 로드맨, 존 샐리, 제임스 에드워즈로 이어지는 터프하고 더티한 육탄공세가 있었다. 그런데 소닉스는 운동능력에 비해 수비력이 안 좋은 켐프와 볼 것도 없는 수준의 센터들만 갖고 조던을 막았는데 이는 그가 골밑까지 돌파할 수 없게 막은 소닉스의 가드, 포워드들의 공이었다. 게다가 94년 핸드체킹룰 개정 이후 이전처럼 거칠게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막은 것. 아무리 조던의 컨디션이 안 좋고 시카고 공격진이 한심해도 놀라운 성과였다.[10] 후에 게리 페이튼은 4차전이 아닌 1차전부터 조던 대인수비를 했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사실 0-3으로 뒤지고 있던 4차전마저도 당시 시애틀 감독 조지칼은 페이튼의 조던 대인마크를 탐탁치 않아 했는데(아마도 허벅지부상을 달고 있었던지라 불안했던 모양) 페이튼이 이번만큼은 감독님이 거부하셔도 제 뜻대로 할거에요. 라며 도전한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1차전부터 막았다고 해서 그 시리즈를 이겼을거라고 장담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시도는 했어야 했다고...[11] 페이튼은 현재와는 다른 리그 흐름에서 뛴 선수다. 과거 선수들 특히 3점슛은 현역 선수들에게 중요한 옵션이지 과거부터 ~ 2000년대 중후반 까지 뛴 선수들에게 적용하면 안된다. 또한 페이튼은 조던, 페니와 함께 포스트업이 굉장히 강한 선수였고 이 공격을 주요 옵션으로 선택했다.[12] 그 자리에 앉아있던 역시 트래쉬 토킹으로 유명했던 레지 밀러에게 "내가 최고의 트래쉬 토커임" 하고 자부심을 드러낸다(...).[13] 실제 그의 명예의 전당 연설에 그것과 관련된 댓글이 굉장히 많다.[14] 또 한가지 이유는 그는 포인트 가드였기 때문에, 주로 1:1을 막으면 되는 조던과는 달리 스탁턴은 틈만나면 패스질을 해대서(...) 더 힘들었다고도.....[15] 물론 상대적이다. Head to head 매치업 기록을 보면 그를 가장 잘 막았다던 조 듀마스를 상대한 조던의 커리어 평균 득점은 30점, 마찬가지로 페이튼이 뛰던 시절 소닉스를 상대로 한 그의 커리어 평균도 30점이다. 다만 소닉스는 페이튼이 아닌 허시 호킨스 등을 그에게 붙힐 때도 있었다.[16] 8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역대 평균 스틸 1위에 빛나는 알빈 로버트슨 역시 작은 덩치에도 힘이 장사였다고 동시대 선수들이 회고할 정도였다.[17] 슈퍼소닉스의 프랜차이즈 권리는 시애틀 시가 소유하고 있다. 2013년에 시애틀 연고의 사업가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하여 새크라멘토 킹스를 매입하여 슈퍼소닉스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구단주 회의에서 부결되어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