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노지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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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개
3. 아케치 미츠히데는 왜 난을 일으켰나?
3.1. 야망설
3.2. 원한설
3.3. 시코쿠 원정 회피설
3.4. 초조설
3.5. 흑막설
3.5.1. 아시카가 요시아키 설
3.5.2. 조정 흑막설
3.5.3. 예수회설
3.5.4. 하시바 히데요시설
3.5.5. 도쿠가와 이에야스 설
3.5.6. 기타설
4. 변 이후
5. 창작물 별 묘사


1. 개요


本能寺の変[1]
1582년 6월 2일(텐쇼天正 10년), 일본 교토 혼노지에서 일어난 사건.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인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인 노부나가에게 반란을 일으켜 숨지게 한 사건이다.
이 일은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의 나비효과로, 야마자키 전투, 키요스 회의를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집권하면서 16~17세기 동아시아 역사를 뒤흔들어 놓았다.

2.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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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2년, 오다 노부나가는 수도인 교토 인근을 거의[2] 장악하고 3월에는 숙적이었던 다케다 가문을 멸망시켰다. 간토와 토호쿠는 노부나가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남은 지역은 이제 주고쿠, 시코쿠, 호쿠리쿠, 큐슈뿐이었다. 주고쿠의 모리 가문은 하시바 히데요시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세가 약해진 상황이었고, 호쿠리쿠의 우에스기 가문은 우에스기 겐신이 사망한 뒤 후계자 문제로 내분이 일어난 상황이었다. 시코쿠에서는 원래 시코쿠의 절반의 지배자인 미요시씨 일족인 소고 마사야스 · 미요시 야스나가 · 아타기 노부야스 등이 노부나가의 편에 서서 초소카베 가문과 일전을 치룰 태세였기 때문에 초소카베 가문은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바야흐로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했다.
그런 가운데 미츠히데는 다케다 가문 토벌전에서 귀환한 뒤 다케다 가문 토벌전에서 큰 공이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접대할 것을 명령받고 5월 15일부터 이를 진행했다. 하시바 히데요시가 모리 가문을 상대하는 와중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본거지로 돌아가 주고쿠로 출전해 히데요시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츠히데는 이에 5월 26일, 자신의 본거지 성 중 하나인 탄바의 카메야마 성으로 가서 출진 준비를 했다. 그리고 5월 28일과 29일, 아타고 산의 신을 숭배하는 아타고 신사에 공물을 바쳤다. 통상적인 출전 준비 과정으로 볼 수 있으나, 이때 미츠히데는 의미심장한 시를 지었다.

'''지금 이때는 / 비가 밑을 적시는 / 5월이로다(時は今 雨が下しる 五月哉)'''

이는 단순히 비가 세상을 적시는 5월 풍정 혹은 노부나가가 지배하는 세상의 5월 풍정을 노래한 글(時は今 天が下知る 五月哉)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발음인 ときはいま あめがしたしる さつきかな는 "토키(土岐)는 지금, 천하(天が下→天下)를 지배하는(知る→支配する) 5월이로다"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토키[3] 출신의 내가 바야흐로 이 5월에 천하를 얻겠다''''는 뜻.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칠 것을 암시한 걸로 해석한다.
한편 노부나가 본인도 5월 29일, 히데요시를 구원하기 위한 병력을 기다리기 위해 아즈치성을 출발해 교토 혼노지로 향했다. 이때 노부나가가 데리고 간 수행원은 1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적은 수행원만 이끌고 간 것은 혼노지가 있는 기나이 지역을 담당하는 장수가 미츠히데였기 때문이었다. 노부나가는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케치가 이끄는 병력이 있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뒷통수를 맞았다'''. 게다가 혼노지는 단순한 절이 아니라 방비가 잘 되어있는 성채[4]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점도 노부나가가 안심한 요인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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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노지 복원도
어쨌든 노부나가는 혼노지에 도착했고, 장남인 오다 노부타다는 교토 안의 묘카쿠지에 들어갔다. 노부나가는 6월 1일, 혼노지에서 다과회를 베풀고 있었다. 한편, 비슷한 시간에 미츠히데는 휘하의 1만 3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교토로 향했다. 기록 중에는 미츠히데가 카메야마 성을 떠나면서는 병사들에게 노부나가가 열병식을 하려한다고 했다가 카츠라가와 강을 건넌 뒤에 노부나가를 치겠다는 이야기를 병사들에게 선포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역사학자들은 실제 혼노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일반 병사들은 미츠히데의 의도를 몰랐고 극소수의 가신들 말고는 노부나가를 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고 본다.
6월 2일 새벽, 미츠히데가 이끄는 1만 3천여 명의 병력은 혼노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미츠히데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敵は 本能寺に あり!)'''[5]

6월 2일의 이른 아침[6] 미츠히데가 이끄는 병력이 혼노지를 완전 포위했고, 노부나가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처음 노부나가는 하인들이 싸우는 소리로 생각하고 측근에게 무슨 일인지를 보고 오게 했다. 그러나 측근이 "혼노지가 많은 병력에 의해 포위되어 있고, '''병력의 문장이 도라지[7]였다.'''"라고 보고하자 노부나가는 미츠히데가 역모를 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노부나가는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군. (是非に及ばず)"'''[8]이라고 말하며 몰려드는 적들에 활을 쏘며 맞섰다. 그러다가 활이 끊어지자 창을 잡고 계속 싸워나갔다. 그러나 적의 숫자는 훨씬 많았고 전투과정에서 노히메가 죽고[9] 노부나가는 심한 부상을 입게 되자 싸움을 포기하고 안쪽으로 들어가 모리 란마루에게 불을 지르게 한 뒤 그안으로 뛰어들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이후 란마루도 아케치군의 장수 야스다 사쿠베라는 무장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해진다.
재미있게도 혼노지 근처에는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성당이 있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도 혼노지의 변을 다루고 있는데, 프로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케치 군은 새벽 3시 무렵,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혼노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6월 2일에 아케치 군이 합류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다 가의 문지기들이 방심한 탓이었다고. 노부나가는 화살을 쏘며 아케치 군에 맞서다가 아케치 군 휘하의 조총 부대의 총격으로 왼쪽 어깨에 총알이 관통하자 안쪽의 미닫이문을 닫은 뒤 불을 질러 자살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는 사이토 토시미츠의 가신인 야스다 사쿠베가 모리 란마루를 죽이고, 노부나가를 부상입혔다고 한다. 여담으로 야스다 사쿠베는 몇년 후 참수됐는데 기이하게도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날이었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탓에 이것이 후대에 상당한 떡밥으로 남았다. 하지만 불탄 혼노지가 워낙 거대했던 탓에 그 잔해를 헤치고 노부나가의 시체를 찾는 게 무리여서 그냥 내버려뒀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편 묘카즈지에 들어간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는 혼노지에서 위급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구원하러 가려했지만 이미 상황이 종료돼버리자 측근들은 노부타다에게 도망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노부타다는 이미 미츠히데가 아즈치 성으로 향하는 길을 봉쇄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해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수비가 용이하지 않은 묘카즈지에서 니조 성으로 옮기게 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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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미츠히데는 노부타다를 잡으러 니조 성으로 향했다. 니조 성의 인원은 소수였으나 워낙 완강하게 저항하여 아케치 군은 세 번이나 퇴각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교토의 기마무사들까지 움직일 조짐을 보여 반란이 실패할 우려가 생기자, 아케치 군은 최후의 수단으로 니조 성 바로 옆의 고노에 사키히사의 저택 지붕 위로 올라가 총과 화살을 마구 퍼부었다. 이 공격으로 노부타다의 대부분의 측근들이 사망했고 결국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게된 노부타다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죽은 가신은 무라이 사다카츠, 스가야 나가요리, 사이토 토시하루[11]등이다.

3. 아케치 미츠히데는 왜 난을 일으켰나?


혼노지의 변은 일본 역사 최대 미스테리로 꼽힌다. 미츠히데가 대체 왜 노부나가에게 모반을 했는 지 명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동자가 뜬금없이 사건을 일으켜 상관을 살해했고, 빠르게 진압되었으며, 후대까지 많은 추측을 낳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10.26 사건과 흡사한 점이 있다.
실제로 미츠히데의 모반은 대단히 뜬금없는 일이었던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후쿠치야마시 향토자료관에서 소장 중인 미츠히데가 직접 쓴 "아케치 미츠히데 가중군법"이라는 문서를 통해 볼 수 있다. 아케치가의 군비와 군사체제에 대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이 문서의 말미에는 노부나가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아케치 가문 대대로 충성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적혀있다. 게다가 이 문서가 작성된 시점은 1581년(텐쇼 9년) 6월 2일, 즉 '''혼노지의 변 1년 전'''이다. 이 문서대로라면 미츠히데는 불과 1년 만에 노부나가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지고 모반을 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심지어 '''미츠히데 자신조차도 왜 노부나가에게 모반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미츠히데가 죽기 며칠 전 직접 호소카와 후지타카에게 편지를 써보냈는데 이 편지에서 의문스러운 문구가 등장한다. 바로 "我等不慮の義"라는 문구가 그것. 혼노지의 변은 '''우리에게 뜻하지 않게 갑자기 일어났다'''라는 것이다.
미츠히데 자신이 왜 노부나가에게 모반을 했는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주장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대체로 미츠히데가 천하를 갖기 위해 그랬다는 '야망설'과 노부나가에게 품은 원한 때문에 그랬다는 '원한설', 시고쿠 출전을 회피하기 위해 그랬다는 '시코쿠 원정 회피설', 초조함 때문에 그랬다는 '초조설', 미츠히데의 모반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미츠히데의 뒤에 숨은 흑막이 있을 것이라는 '흑막설' 등으로 크게 다섯 가지 설이 오늘날까지 논의되고 있다.

3.1. 야망설


어찌 보면 제일 단순하면서도 납득되는 설명. 미츠히데가 ''''그냥 일본 내가 먹고 싶어서''''천하를 손에 넣기 위해 노부나가를 쳤다는 것이다. 전국 시대 연구의 대가인 타카야나기의 주장으로, 그는 원한설의 근거로 제기되는 사항들이 후대에 부풀려지거나 억측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프로이스의 "일본사" 기록을 근거로 합리적인 성격인 미츠히데와 노부나가가 서로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미츠히데가 뜬금없이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야망 때문에 그랬을까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상식적으로 아케치가 모반을 일으키면 아케치에게 동조해줄 사람도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진짜 야망이 있었다면 사전 작업도 하지않고 모반을 일으켰을까라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미츠히데는 자신과 사돈인 호소카와 유사이나 츠츠이 준케이 등 기나이의 유력자들이 자신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아 실패했다. 애당초 노부나가를 뒤엎을 생각이 있었다면 우선 이들부터 완전히 포섭한 뒤에 난을 일으켰어야 정상이 아닐까?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동서고금의 모반이나 쿠데타 가운데 정말로 '''철저하게 완벽한 준비'''를 갖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명한 카이사르의 사례만 해도, "카이사르만 죽이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별 준비 없이 죽였다가 뒷 수습에 실패하여 엉뚱한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가져가지 않았던가. 미츠히데도 일단 저지르면 전부 다 자기 것이 되리라고 생각했건, 아니면 다른 다이묘들과 사이좋게 나눠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건간에 노부나가만 죽이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대의 권력자가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부하들에 대한 경계는 당연히 하기 마련이고, 100%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는 쿠데타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어느 정도는 운에 맡기고 실행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쿠데타는 별별 어처구니 없는 이유, 심지어 지극히 사소한 불운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성공한 경우라도 기록을 자세히 검토하면 필연적이었다기보다는 상당한 '행운'이 따라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까 노부나가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미츠히데가 완벽한 모반 준비를 갖추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야망설에 대해서는 혼노지의 변 전후에 미츠히데의 움직임은 일관해서 노부나가를 타도하고 자신이 일본의 정점에 서는 것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근거가 될 수 있다.
다만, 아케치 미츠히데 자신이 그렇게 무모한 야심가가 아니었다는 것이 또 걸림돌. 인격자나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인식은 후대의 묘사니까 차치하더라도,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술에 의하면 상당히 약아빠진 인물로 묘사되는데 그건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걸 사람도 아니라는 말'''도 된다. 더군다나 이전에 주군을 바꾼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래에서 언급할 원한설 등이 겹쳤다고 하더라도 당대의 혁혁한 다이묘인 오다 노부나가를 직접 치느니 다른 데에 의탁하는 쪽이 상식적으로 안전한 방책이었다.
가장 간단한 설명이긴 하지만 정황상으로도 시기상으로도, 심지어 반란의 주체까지도 왜? 라는 의문이 남는 것은 여전하다는 것.
다만 평소에는 똑똑해보이던 인물들도 막상 권력을 잡을 기회가 보였다 싶으면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소위 '''"권력욕이 이성을 마비시킨 경우"'''. 위에서 예를 들었던 카이사르의 사례에서도 언급되지만 카이사르만 제거하면 다 될 것이라고 믿었던 원로원 세력들처럼 미츠히데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으리라는 법은 없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키케로옥타비아누스의 역량을 제대로 재지 못해 몰락한 것처럼 미츠히데도 주요 가신 몇몇만 제압하면 오다 가의 가신단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젖었을 가능성도 있다.

3.2. 원한설


아케치가 노부나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다는 주장. 에도 시대에는 노부나가가 계속 아케치에게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자 아케치가 원한을 품었고 이것이 폭발해 혼노지의 변을 일으키게 된 것이란 식의 설명이 대세였다고 한다. 대체로 원한을 품게 만든 사건들로 제기되는 사항은 이렇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접대하다가 그만 악취 나는 물고기가 나오는 바람에 노부나가가 노하여 이에야스의 접대 임무에서 해임되고 체면이 구겨졌다는것. 분노한 아케치는 그릇을 연못에 집어던졌다고 한다.
  • 아직 복속되지 않은 지역인 이즈모, 호키, 이와미로 영지를 옮기라고 명령받은 것.
  • 야카미 성 전투에서 노부나가를 위해 숙모를 죽게 한 것.
  • 다케다 가문을 토벌한 뒤 축하 잔치에서 "저희도 애쓴게 있습니다."라고 하자 노부나가가 "이 새끼야, 네가 뭘했는데!"라고 면박을 당한 것.[12]
  • 사카모토 성을 몰수당한 사건.
어떤 기록에는 아케치가 고바야카와 다카카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나는 요즘 노부나가 때문에 화가 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라고 써보냈다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원한을 품게된 사항들이란 것도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게 중론이다. 일부 학자들은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혼노지의 변 몇 달 전에 아케치가 노부나가에게 뭔가를 말하면 노부나가가 화를 내고 아케치는 방문을 열고 나와버리는 일이 있었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이때 화가 나서 모반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32권짜리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과 NHK 대하드라마 토시이에와 마츠, 사나다마루에서는 이 설을 채택하였다. 소하치의 소설에선 이에야스에 대한 대접 문제가 원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코슈에서의 전승을 축하하기 위해 이에야스가 방문하자 오다 노부나가는 아케치에게 이 일을 맡겼다. 아케치는 오다 가문의 힘을 과시할겸 상당히 거창하게 준비했는데, 노부나가는 이 준비 상황을 보고 '아무리 응접이 중요하다지만 이에야스 따위에게 이런 식으로까지 하냐? 이건 오히려 나를 모욕하는 일이다.'라며 노발대발했다. 옆에 있던 시동에게 아케치를 때리게 하는 모욕을 줬을 정도. 이 일과 이후의 사건들 때문에 아케치는 자신이 오다에게 버림받았다고 오해하고 보복을 행했다는 주장.
토시이에와 마츠에서는 미츠히데가 가짜인질, 다케다와 내통을 한것으로 노부나가가 의심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숙청후보에 올랐음을 알고 있었다. 위의 원한설이 다 채용되어 연못에 접시를 던지는 장면을 제외하면 다 영상화되었다. 니와 나가히데로 부터 영지 몰수를 전해들으며 모반을 결심. 다만 미츠히데의 캐릭터가 다소 음흉하게 그려졌고 혼노지에서 다케다의 넋을 달래주겠다는 소리를 하는것을 봐선 야망설도 조금은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3.3. 시코쿠 원정 회피설


미츠히데가 시코쿠 원정을 피하기 위해 모반을 꾀했다는 설.
이는 시코쿠의 정세와 관련이 있다.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시코쿠의 쵸소카베(長宗我部) 가문을 복속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츠히데는 자신의 가신인 사이토 토시미츠의 여동생을 쵸소카베 모토치카와 혼인을 맺게 했다. 이로 인해 사이토 토시미츠와 쵸소카베 가문은 인척 관계가 되었고 미츠히데와도 연줄이 닿은 상태였다. 한편 초소카베 가문의 아와 침공에 저항하다 성을 내주고 항복한 미요시 야스토시의 아버지 미요시 야스나가(자신은 가와치 슈고다이로 있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항복해 오다 가문을 섬기고 있었다)는 하시바 히데요시와 연결해 시코쿠를 되찾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미츠히데는 쵸소카베 가문을 앞세워서 시코쿠를 통일해야 한다고 노부나가에게 진언했지만, 노부나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1582년 2월, 미요시 야스나가와 쵸소카베 모토치카에게 교토로 올라올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이를 거부하자 시코쿠를 무력 정벌하기로 결정하고 간베 노부타카를 총대장으로 삼아 시코쿠 정벌에 나서게 했다. 다시 말해서 미츠히데의 시코쿠 정책이 노부나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
이에 따라 미요시 야스나가가 먼저 선봉으로 시코쿠에 들어가고 노부타카 등이 이끄는 본대가 6월 2일 오사카에서 출진할 예정이었다. 미츠히데는 이를 막기 위해서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다는 것이 이 설의 핵심이다. 어느 정도는 체면을 구기게 된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분노가 생겨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을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3.4. 초조설


미츠히데가 앞날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모반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주장. 미츠히데는 사실 오다 가의 고유 가신도 아니었고, 노부나가 밑에 있은지도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가신 중 신참자였다. 그럼에도 미츠히데는 가신들 중에서 상당히 중용되었는데 미츠히데 자신의 능력이 있기도 했지만 노부나가의 신임이 컸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볼수 있다.
그런데 1580년, 노부나가가 여러 가신들을 내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록 미츠히데는 내쳐지지는 않았으나 노부나가의 신임을 점점 잃어가는게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들었고 이 때문에 모반을 일으켰다는 것이 초조설의 핵심이다. 대체로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의 신임을 잃어가고 있었던게 아닌가에 대한 사항으로 꼽히는 것들은 이렇다.
  • 노부나가에게 시코쿠 정책을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복속되기 전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가신이었기 때문에 아시카가가 추방된 이후에 노부나가의 심중에 미츠히데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는 것.
  • 히데요시가 주고쿠를 원정할 때 노부나가가 구원하러 가라고 명했는데 미츠히데는 자신보다 낮은 신분 출신인 히데요시의 밑에서 그의 지시를 받으며 전쟁을 치뤄야 하나에 대한 반감 때문에 모반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미 이전에도 미츠히데는 히데요시 밑에서 전투를 치룬 적이 있었기 때문에[13] 이것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학자는 당시 미츠히데의 나이가 무려 67세였고, 자신의 뒤를 이을 적자인 아케치 미츠요시의 나이가 겨우 19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자신이 죽은 뒤에 아들이 노부나가에게 기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반의 원인이 된게 아닌가라고 보기도 한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오다 노부나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아케치 미츠히데와 오다 노부나가의 복잡한 관계를 묘사하면서 초조설을 베이스로 해서 원한설, 야망설을 적절히 조합한 복합적인 원인을 제시하였다.

3.5. 흑막설


미츠히데의 모반이 워낙 뜬금없었기 때문에 사실 미츠히데의 뒤에 누군가가 있는게 아닌가라는 주장.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흑막으로 제기되는데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주장도 있는가 하면 거의 음모론 수준의 주장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된다.

3.5.1. 아시카가 요시아키 설


노부나가에게 추방당한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자신의 원래 가신이었던 미츠히데를 사주하여 노부나가를 쳤다는 설. 미에 대학의 후지타 교수가 이 설을 주장하고 있다.
날로 세력이 커져가는 노부나가에게 불안감을 느낀 조정은 원하는 대로 직책을 주겠다고 하는 사네히토 친왕의 친서를 보내 노부나가를 슬쩍 떠보려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여기에 답을 하지 않고 친서를 되돌려보냈다. 이 사건을 듣게 된 아시카가는 '노부나가가 조정에 정이대장군, 즉 쇼군의 직을 요구하지 않겠는가.'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노부나가의 신임을 잃고 한직으로 쫓겨난 자신의 원래 가신인 미츠히데를 사주해 노부나가를 죽이게 했다는 것이 이 설의 핵심이다.
후지타 교수는 이 설의 근거로 미츠히데가 혼노지의 변 직전에 우에스기 카게가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쪽에서 진수성찬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라고 말한 것[14]에서 미츠히데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의 존재가 드러나는 점이라든지, 혼노지의 변 이후 미츠히데가 기슈의 사이가당이나 토바시 시게하루에게 보낸 서신에서 "상의(上意)"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미츠히데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의 명령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는데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또한 노부타다를 제압할 때 실제 전투를 지휘한 인물이 아시카가의 중신인 이세 타다오기였다는 것도 근거로 제기된다.
하지만 이 설을 따르게 될 경우 아시카가를 비호한 모리 가문이 혼노지의 변을 미리 알고있어야 하는데, 모리 가문이 혼노지의 변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설이 성립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만약 아시카가가 혼노지의 변을 사주했다면 아시카가를 비호하던 모리 가문에게도 이를 미리 알렸어야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다만 모리 가문이 혼노지의 변을 미리 알았느냐 몰랐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혼노지의 변 이후, 히데요시는 전투 중이던 모리 가문과 급히 강화를 맺게 되는데 모리 가문이 히데요시와 화해할 때의 반응이 이미 혼노지의 변을 알고 있었던게 아닌가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고[15] 또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지금 노부나가를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히데요시이기 때문에 지금 화해해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화해를 지지했다는 점도 근거로 제기된다. 또한 기슈의 사이가당이나 토바시 시게하루가 미츠히데를 지지했기 때문에 모리 가문이 혼노지의 변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지만 히데요시와 모리 가가 화친할 때 이 조건으로서 모리측의 중신 시미즈 무네하루가 자결했는데, 만약 혼노지의 변을 양쪽 다 알고있는 상황이었으면 어째서 모리가 좀 더 튕겨서 시미즈를 살리도록 하거나 히데요시로서도 이유 없이 강짜를 부렸는지가 의문이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으로는 미츠히데가 아시카가의 가신이었는가를 확실하게 증명할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아시카가 흑막설은 나름 근거가 있는 듯 하면서도 여전히 논란 중이다.

3.5.2. 조정 흑막설


노부나가의 힘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조정에서 미츠히데를 사주했다는 설. 사주의 주체로는 오기마치 덴노, 사네히토 친왕, 고노에 사키히사 등의 문신세력 등이 제기된다.
노부나가는 어떤 직책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겠다는 사네히토 친왕의 서찰을 받고도 이에 답을 하지 않고 돌려보냈었다. 조정의 의도는 노부나가가 쇼군 직을 원할 것인가를 알아보려고 서찰을 보낸 것이었지만, 노부나가가 답을 하지 않고 돌려보내자 노부나가가 이전의 가마쿠라 막부무로마치 막부같이 바쿠후의 쇼군 직에 만족하지 않고 조정을 토벌하려 하는게 아닌가라고 불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16]
조정 흑막설의 근거로는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를 평정한 뒤 미츠히데가 조정에 들어가자 조정에서 미츠히데의 공을 치하하며 금품을 하사한 점, 간베 노부타카가 고노에 사키히사에 대해 대해 추토령을 내려 집요하게 행방을 뒤쫓은 점, 당대의 중요 기록인 겸전어기에 혼노지의 변의 전후 1개월의 상황이 빠져있다는 점등이 꼽힌다.
당시 조정에서는 '노부나가가 바쿠후의 쇼군이 아니라, 조정의 중요 정무직책인 산쇼쿠(三職)를 요구하려는게 아닌가.'라고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노부나가가 혼노지에 온 것을 사네가와 친왕의 서찰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온 것으로 생각하고 노부나가가 쇼군이 아닌 산쇼쿠를 원한다는 대답을 하는 것을 막기위해 혼노지를 쳤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조정 흑막설 역시 여러가지 반론이 제기된다. 노부나가가 산쇼쿠가 아닌 쇼군에 취임하겠다고 대답하려고 혼노지에 온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흑막의 한 명으로 지적되는 고노에 사키히사는 대표적인 친노부나가 공가 중의 한 명이며, 노부나가가 죽은 뒤에 노부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와카(和歌)를 남겼고 출가까지 했다. 간베 노부타카가 고노에 사키히사의 행방을 뒤쫓은 것은 그가 흑막이라서라기 보다는 니조 성의 바로 옆에 있던 고노에 사키히사의 집의 지붕에 아케치 군이 올라가도록 허용한 것을 따지기 위함이었다는 지적 역시 존재. 또한 오기마치 덴노나 사네히토 친왕도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사네히토 친왕은 니조 성의 싸움에 휘말려 위험할 뻔 했던 사실이 알려져서 조정 흑막설의 반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뒤에 조정에서 내린 칙서나 칼의 하사에서 미츠히데를 칭찬한 부분이 없고 미츠히데 자신도 조정의 칙명을 받아 노부나가를 쳤다고 말한 바가 없다는 점이 가장 강력한 반론의 근거로 제기된다. 만약 미츠히데가 조정의 은밀한 칙명을 받은 것이라면 '왜 조정에서 그에게 전혀 혜택을 주지 않았는가?'라는 모순이 생기는 탓이다.[17]

3.5.3. 예수회설


예수회가 일본의 정권 교체를 획책하여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다는 설. 타치바나 쿄코가 이 설을 주장했다.
이 설은 애당초 노부나가가 예수회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는데, 노부나가가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두자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날것을 우려해 미츠히데를 앞세워 노부나가를 죽이게 했다는 것이다. 예수회의 최종 목적은 명을 정복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노부나가에게서 히데요시로 권력을 넘어가게 해서 이 목적을 이루려 했다는 것이다.
예수회 흑막설의 근거로 제기되는 것은 미츠히데가 그리스도 교인이었다는 것, 예수회가 노부나가에게 막대한 자금 지원을 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를 말도 안 되는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미츠히데가 그리스도 교인이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다. 미츠히데가 사용한 문장이 그리스도 교와 관련된 것이고 딸 타마코와 가신인 타카야마 우곤 등이 그리스도 교인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것이 혼노지의 변의 배후에 예수회가 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또한 예수회가 노부나가에게 막대한 자금 지원을 했다는 것 또한 터무니없는 낭설로 치부되고 있다. 오히려 예수회는 일본에서 얻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인도에 송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내 예수회를 유지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고 한다. 이 설을 주장한 타카야마 쿄코가 근거로 삼는 문헌이 에도 시대에 작성된 신빙성이 떨어지는 "아케치 전쟁기" 등이고 이런 문헌들의 이야기를 검증 없이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3.5.4. 하시바 히데요시설


하시바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흑막이라는 설. 만약 이 설이 사실이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전국시대 다이묘의 전형적 모습인 하극상 루트를 탄 인물이 된다.
히데요시는 주고쿠의 모리 가문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에게 구원병을 요청했다. 당시의 상황은 모리 가문이 매우 불리한 처지였기 때문에 빗추 타카마츠 성을 구원하러 보낼 병력은 1만 5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과연 히데요시가 구원병을 요청할 이유가 있었나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다. 그리고 혼노지의 변의 소식을 듣자마자 타카마츠 성에 대한 공격을 중단했다. 그리고 모리 가문과 화해한 뒤 전력을 온전히 보전하여 귀환했다. 11일만에 대군을 이끌고 귀환했다는 점, 혼노지의 변 이후 한달도 안되는 기간에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하고 키요스 회의에서 1인자로 서게 된 점을 들어 사전에 미리 모의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없다는 관점에서 흑막설을 주장하고 있다.
히데요시가 불필요한 구원 요청을 한 이유에 대해서 이 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노부나가가 관직 취임 문제나 덴노의 퇴위 논란 등으로 교토에 올라와야 했기 때문에 히데요시가 이 때를 노렸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노부나가가 의심하지 않고 노부나가를 칠 병력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히데요시는 불필요한 구원 요청을 하여 미츠히데의 병력이 움직일 근거를 마련했고 이에 노부나가는 의심 없이 미츠히데에게 히데요시를 구원하러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의 약점은 히데요시와 미츠히데가 공모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전혀 찾을수가 없다는 점이다. 히데요시가 구원을 요청한 것은 히데요시가 출전할 당시 모리 가문의 병력이 5만이라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고, 또한 히데요시의 전선과 미츠히데가 출동할 전선이 서로 달랐으며, 모리 가문과의 화해로 이뤄진 이른바 주고쿠 반환에 대해서도 히데요시가 우연히 그런 공을 세운 것이지 미리 예측하고 그랬 던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또한 히데요시가 구원을 요청한 것은 히데요시 특유의 보신책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자칫 히데요시 혼자서 큰 공을 세우게 되면 노부나가가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구원병을 요청하여 노부나가 자신을 불러서 공을 양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히데요시와 미츠히데가 공모했다면, 히데요시가 미츠히데를 토벌할때 미츠히데가 왜 이 사실을 폭로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히데요시가 미츠히데와 공모했다는 것을 밝히게 되면 히데요시는 궁지에 빠지게 되는데도 말이다.
또한 히데요시에게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인 움직임이나 음모의 기미가 보였었다면 히데요시를 적대한 오다 노부오, 시바타 가츠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왜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겠는가도 히데요시 흑막설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혼노지의 변 최대의 수혜자가 히데요시라서 그런지 흑막설 중에서는 은근히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설로, 창작물에서도 제법 많이 차용되곤 한다. '폭렬닌자 고에몬'이라는 영화와 '효우게모노', 노부나가 콘체르토 극장판이 그 예[18]. 류성룡의 징비록 같은 조선의 기록에서도 '히데요시는 전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라는 기술이 있을 정도.[19]

3.5.5. 도쿠가와 이에야스 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흑막이었다는 설. 이 설은 흑막설 중에선 가장 정황 증거가 많은 편에 속하며 미츠히데가 히데요시에게 토벌되어 죽은게 아니라 도망쳐서 이후 이에야스의 치세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승려인 난코보 텐카이, 즉 텐카이가 되었다는 설과 결부되어 논의되고 있다.
혼노지의 변 직전인 5월 15일, 미츠히데는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과정에서 물고기가 썩는 사태가 벌어졌고 노부나가는 미츠히데를 심하게 질책하며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임무에서 해제했다고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야스 흑막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노부나가가 심하게 질책한 이유는 물고기가 썩어서가 아니라 실은 미츠히데에게 이에야스를 은밀히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지만 미츠히데가 이를 수행하지 못하거나 혹은 수행을 거부하자 노해서 심하게 질책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한다.
흔히 노부나가와 이에야스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알려졌지만, 실은 노부나가에게 이에야스는 이마가와와 다케다를 견제하기 위한 장기말에 불과했다고 이들은 본다. 그래서 다케다 가문이 멸망하게 되자 노부나가는 '이제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진 이에야스를 완전히 복속시켜 가신으로 만들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멸망시킬 것인가.'하는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야스도 이런 노부나가의 의도를 간파하고 미츠히데와 공모해 노부나가를 암살하게 된 것이 혼노지의 변이라는게 이 설의 핵심.
어느정도 정황적으로 봤을 때 이에야스로선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한 이후의 상황을 장담하기 힘들었던 것일 수도 있고, 노부나가의 살의를 눈치챈 이에야스가 먼저 선수를 치려했던게 아닌가라는 추측도 있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는 "아케치의 병사들은 혼노지를 치는 것이 대체 무슨 유익이 있는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노부나가를 노린게 아니라 이에야스를 노린게 아닐까."라고 했다는 기록이나, "노인잡담"이라는 책에서 "아케치가 난을 일으켰을 때 이에야스는 이것이 노부나가가 틈을 보아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이다."라고 했다는 라는 것이 근거로 제기된다.
그런데 이에야스의 이용가치가 떨어졌다고 보기는 다소 애매한 감도 있는게 사실이다. 비록 다케다를 복속시켜 영지를 편입해도 동쪽에는 이마가와 잔당과 호조 우지야스가 구축한 판도를 물려받은 호조 우지마사후호조씨세력이 있었고, 북쪽에는 우에스기 세력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주고쿠에는 하시바 히데요시를 보내 모리와 일전을 치르고 있었다. 호조나 우에스기나 강성한 세력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동쪽을 막아줄 수 있는 이에야스의 이용가치가 여기서 주장하는대로 적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에야스가 노부나가로 인해 부인 츠키야마도노와 장남 노부야스를 잃은 원한을 풀려했다는 설도 있다. 미츠히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미츠히데의 가신인 사이토 토시미츠의 딸인 후쿠[20]도쿠가와 이에미츠유모로 천거했다는 점에서 양측간에 뭔가 오고가는 것이 있지 않았겠는가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신중한 성격의 이에야스가 과연 이런 모험을 감수하려고 했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후쿠를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유모로 천거한 것은 미츠히데가 아니라 교토의 치안을 맡았단 이타쿠라 가츠시게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츠히데와 이에야스가 관계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에야스가 흑막이었다면 왜 히데요시보다 먼저 앞서서 행동에 나서지 않았겠는가라는 점 또한 이 설의 약점이다. 당시 이에야스는 히데요시보다 먼저 앞서서 행동에 나서기는 커녕 오히려 이가 닌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망쳤기 때문이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후손인 역사학자 아케치 켄자부로(明智憲三郎, 1947~)는[21] 굳이 따지자면 이 설에 위 히데요시 배후설이 섞인 것에 가깝다. 이 사람의 주장으로는 노부나가가 일본 통일 후 '명나라 원정(唐入り)'을 계획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이에야스와 내통하여 변을 일으켰다는 것. 변을 일으킨 결정적인 방아쇠는 주고쿠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 노부나가가 이에야스 암살 작전을 흘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호소카와 후지타카(細川藤孝)가 히데요시와 내통하고 있었고, 이에 미리 준비하고 있던 히데요시가 변이 터지자마자 회군하는 바람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결과적으로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음모론에서는 그래서 누가 득을 보았느냐라고 따지면, 결국 오다 노부나가의 구 영지였던 카이, 시나노 지역은[22] 이에야스의 영토가 된다.

3.5.6. 기타설


  • 노부나가 자작설: 노부나가가 모종의 이유로 미츠히데에게 명하여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것이라는 주장. 근거로는 노부나가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점을 꼽는다. 혹은 다른 설들과 엮어서 노부나가가 이에야스를 궁지로 몰기 위해 미츠히데에게 자작극을 명했는데 원한이나 사주 때문에 미츠히데가 진짜로 노부나가를 치는 바람에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노히메 흑막설: 본래 노히메는 아버지인 사이토 도산에게 "노부나가가 멍청이라면 그를 죽이고 오와리를 손에 넣어라."라는 비밀 명령을 받고 있었는데, 노부나가가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이 비밀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미츠히데와 공모해서 일을 벌였다는 설. 노히메와 미츠히데와의 관계에 대해선 미츠히데가 사이토 도산의 신하였다는 것부터[23] 심지어는 사촌지간, 비밀스런 연인 관계였다는 주장까지 있다. 실제로 미츠히데가 사이토 도산의 신하였던 것은 유력하기 때문에 노히메가 그에게 명령을 내릴수 있는 위치였던건 분명하다. 그러나 혼노지의 변을 전후로 노히메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이나 혹은 노히메가 혼노지에서 노부나가와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기 때문에 이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24]
  • 노부나가의 적들: 노부나가의 남은 적들이었던 주고쿠의 모리 가문이나 시코쿠의 초소카베 가문, 큐슈의 시마즈 가문 등이 흑막이라는 설. 모리 가문의 경우에는 당장의 위급을 해결하기 위해서, 초소카베 가문의 경우는 시코쿠 무력정벌에 대한 원한으로, 시마즈 가문의 경우는 주고쿠와 시코쿠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큐슈일 것이기 때문에 불안감에서 노부나가를 암살하려 한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모리 가문의 경우는 미츠히데와의 연계가 없었다는 점, 초소카베 가문은 미츠히데와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 약점이다. 시마즈 가문의 경우는 조정의 문신들과 공모하고 이 문신들을 통해 미츠히데와 연결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시마즈 요시히사의 측근인 우와이 가쿠켄의 일기가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1582년에 6월 2일부터 11월 3일까지의 일기가 공백이라서 우와이 가쿠켄이 시마즈 가문의 연루 의혹을 남기지 않으려고 일기 내용을 삭제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우와이 가쿠켄의 일기는 그 외에도 수년 동안의 공백이 있는 탓에 이것이 증거가 되기는 어렵다는 게 약점이다.
  • 신념의 이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시리즈인 '사무라이의 시대'에선 미국의 학자들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미츠히데는 계속된 오다 노부나가의 잔혹성[25] 때문에 결국 오다에게 회의심을 품던 휘하 장군들을 모아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일명 발키리 작전으로 히틀러 암살을 도모햇던 독일군 장교 및 여타 세력들도 독일의 부흥과 별개로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과 잔혹성 때문에 암살 작전을 시도하였는다.

4. 변 이후


절대자였던 노부나가가 반란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오다 세력권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쵸소카베 모토치카 공략을 위해 사카이에 모여있던 시코쿠 원정군은 많은 이탈자가 발생하여 원정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오다 노부타카와 오다 사천왕이었던 니와 나가히데는 미츠히데를 독자적으로 공격하지 못하였고 이로 인해 미츠히데 토벌의 공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시바타 카츠이에는 사건 당시, 우에스기 카게카츠를 밀어붙이고 있던 중으로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당일에는 우에스기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우오츠성을 함락시켜 에치고를 눈 앞에 두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나 노부나가 사망 소식을 듣고 급히 군을 물릴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우에스기 카게카츠는 엣추, 시나노 양 쪽에서 오다군에게 협공당할 위기였으나 혼노지의 변으로 멸망의 위기를 탈출하게 된다.
오다군이 점령하였던 타케다 가문의 영지인 카이, 시나노에서는 구 타케다 유신들과 호족들을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나 해당 지역에 다이묘로 임명되었던 오다가의 가신들은 영지를 포기하고 달아날 수 밖에 없었으며 오다 가문 세력들이 빠진 카이-시나노는 영지 자체가 공백지가 되어버려 이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호조 우지마사 간에 치열한 영토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코스케에 영지를 받고 관동관령에 임명된 오다 사천왕 타키가와 카즈마스후호조씨에게 공격받아 대패, 시나노를 거쳐 미노로 귀환하였으나 시간을 너무 지체하여 키요스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해 오다 가문 내에서 위상이 추락하게 된다. 오다 세력권의 한복판이었던 기나이 지방에서도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이 알려지자 도적 및 무사 사냥이 횡행할 정도로 치안이 나빠졌으며 사건 당시 사카이에 와 있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목숨을 걸고 이가 지방을 넘어 겨우 미카와에 도착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하여 히데요시가 미츠히데를 토벌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대혼란을 종식한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사건 직후 '''믿기지 않는 속도'''로 회군[26]하여 아케치 미츠히데를 바로 제거하여 혼란을 수습하였으며 이 후 열린 키요스 회의에서 대권을 잡게 되었다.[27]

5. 창작물 별 묘사


대체로 근래의 일본 사극들에서는 미츠히데를 모반을 꾀한 인물로 보기보다는 동정적이거나 우호적으로 그리고 있다.
  • 노부나가 킹 오브 지팡구: 1992년 NHK에서 방영된 사극. 당시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과로사 문제와 더불어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 반기를 드는 것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그린다. 미츠히데가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뒤 한 대사는 이제는 잘 수 있다(…). 미츠히데의 모반에 대해서는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식으로 본다.
  • 히데요시: 1996년, NHK의 사극. 여기서는 이에야스와 다도로 유명한 리큐가 서로 공모하고 노부나가에게 원한을 품은 미츠히데를 충동질하여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것으로 묘사한다. 마왕 급으로 묘사되는 노부나가는 '신이...신이 죽다니!!'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목을 베어 자결하고, 노부나가를 죽인 후 리큐는 미츠히데를 초청해 차를 대접하는데 차를 마시면서 미츠히데는 "이제야 차 맛을 알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에서 노부나가는 과격한 마왕 같은 캐릭터로 나와 미츠히데의 어머니를 죽게 만들고, 미츠히데는 점잖고 부지런하며 가정을 사랑하는 모범적 샐러리맨으로 나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공명의 갈림길: 2006년 방영된 NHK의 사극. 여기서는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걸로 해석하며 노히메와 미츠히데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 미츠히데,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남자: 2007년 후지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여기에서는 노부나가와는 달리 백성들을 위하며 평화적으로 일본을 통일하고자한 미츠히데와 히데요시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는 가운데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칠 것을 드러내고, 이후 히데요시에게 자신을 토벌하게 하여 히데요시로 하여금 일본을 통치하도록 했다는 상당히 비약이 심한(…) 설정으로 전개된다. 또 노부나가가 미츠히데에게 조정을 토벌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자, 미츠히데의 반응이 이상해진 것을 보여주어 조정을 지키기 위해 노부나가를 친 것이 아닌가라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 효게모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자 다도가인 후루타 오리베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 여기에서는 권력욕에 가득찬 히데요시와 그를 이용해 예술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야심찬 다인 센노 리큐가 공모하여 미츠히데로 하여금 모반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교묘하게 몰고 간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혼자 혼노지에 잠입해 노부나가를 척살한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역사대로의 전개이긴 하다. 노부나가의 몸을 반 토막으로 벤 히데요시였으나 노부나가의 잘린 상하체가 다시 합체하면서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이놈! 그 칼은 싸구려로구나!"라고 일갈하고 덤덤하게 걸어가서 앉아서 "대머리(히데요시의 별명), 어렴풋이 이렇게 될 건 알고 있었다"라고 말한 뒤, 자신의 피를 히데요시에게 한 잔 대접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는 일방적으로 빼앗고 뺏기는 관계였지만 오직 너와는 동등하게 주고받는 관계였다'[28]라고 한 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잘렸던 상반신이 그제서야 넘어가며 사망. 노부나가의 적장자인 노부타다는 니조에서 할복한 반면 동생인 나가마스는 할복하는 척 하다가 도주한다. 한편 혼노지에서 히데요시가 노부나가를 죽이고 도망치는 것을 목격한 노부나가 휘하의 흑인 사무라이 야스케가 이를 야마자키 전투 직전에 주인공 후루타 사스케에게 알려주었고, 사스케는 증거로 삼기 위해 변란이 마무리된 후에 야스케를 보호하려고 하는데, 이것을 눈치챈 히데요시는 후루타에게 죽든가 진상에 대해 침묵하고 부하가 되든가 결정할 것을 강요한다.[29]
  • 몽환처럼(국내 번역명은 '일기당천 노부나가'): 이 만화에서는 미츠히데가 에스파니아의 선교사인 카브릴이나 조정의 신료들에게 충동질 하고, 더욱이 노부나가로 인해 가족을 잃은 미츠히데가 원한을 품어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것으로 묘사한다. 히데요시는 미츠히데의 모반을 어느 정도는 예감했지만 설마하니 모반을 할까 생각했다가 진짜로 모반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대성통곡한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모리 란마루와 함께 혼노지를 탈출하여 결국 모반은 실패로 끝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 귀무자 3: 환마왕으로 부활해 세상을 환마의 세계로 만들려는 노부나가를 막기 위한 스토리인데 3편에서 혼노지의 변이 다뤄진다. 1편과 3편의 주인공 아케치 사마노스케는 미츠히데의 조카라는 설정으로, 3편에서 혼노지의 변은 환마왕인 노부나가를 막아 세상을 구하는 격이 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츠히데보다는 사마노스케에 초점이 맞춰졌다. 다만 미츠히데의 명대사로 널리 알려진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말은 나온다.
  • 어쌔신 크리드에서는 노부나가가 지니고 있던 에덴의 조각 '검'을 노린 미츠히데가 일으킨 것으로 나온다.
  •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역사 편에서는 이원복교수는 원한설이나 흑막설은 배제하고 야망설을 채택,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만 없어지면 천하가 내 것이 된다. 혼노지를 쳐라!" 라는 대사를 함으로서 천하에 대한 야심이 동기였던 것으로 묘사했다. 노부나가는 "아케치, 내놈이 네게 이럴 수 있느냐?!" 라고 외침으로서 '학대했던 부하에게 복수'가 아닌 '신뢰했던 부하에게 배신'을 당한 것으로 묘사된다.
  • 고에몬: 이시카와 고에몬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최홍만이 나온다고 해서 꽤 말이 많았던 영화다. 하지만 복장 고증부터가 거의 안드로메다로 판타지 영화다. 여기서 노부나가가 꽤 비중있는 역할로 나오는데, 직접 사건이 나오지는 않고 플래시백 형식으로 나온다. 여기서는 히데요시가 흑막. 히데요시가 미츠히데와 정변을 획책하여 노부나가를 제거한 후 미츠히데까지 제거하여 주군 제거의 책임을 모두 미츠히데에게 돌려버린다. 그래 놓고 노부나가의 장례 때 큰 소리로 울어제끼는 이중성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여기서의 히데요시는 엄청나게 비열한 인물.
  • 전국무쌍 시리즈: 아케치 미츠히데가 '자신의 능력을 백성을 위해 쓰고 싶어하는 사나이'라는 컨셉이라 그런지 혼노지의 변은 오다 노부나가의 패도가 과연 정도가 맞는가 하는 의문에 빠진 미츠히데가 고뇌 끝에 '자기 손으로 세상을 바꿔 보이겠다'는 이유로 정변을 일으킨다. 불타는 혼노지를 배경으로 노부나가와 미츠히데가 결투를 벌이는데, 노부나가로 진행할 때와 미츠히데로 진행할 때의 스토리가 다르다. 여기선 미츠히데와 노부나가 사이가 엄청나게 끈적끈적하다. 그런 가운데 노부나가에게 한을 품은 사이카 마고이치가 난입하는데...

전국무쌍 2는 다음과 같다.
  • 노부나가 플레이: 노부나가가 미츠히데를 제 손으로 직접 베고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미츠히데의 시신을 공주님 안기로 들고 불타는 혼노지로 들어가는 노부나가의 뒷모습. 이 이벤트는 노부나가 스토리의 엔딩이다.(외전 제외)
  • 미츠히데 플레이: 둘이 칼싸움을 벌이다가 마지막에 결국 미츠히데는 노부나가를 베지 않는다. 노부나가가 왜 베지 않았냐고 묻자 미츠히데 왈, "사실 당신이 만드는 세상을 보는건 누구보다도 내가 원했어!" 결국 모반 중 끈끈한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뒤에서 마고이치가 노부나가를 저격. 노부나가는 "미츠히데가 만드는 천하, 이 노부나가도 보고 싶군."이란 말을 남기고 죽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츠히데의 절규. 이 장면의 미츠히데 표정은 정말 안습. 쓰러진 노부나가에게서 "살아라, 미츠히데"라는 말이 들려온다.
  • 마고이치 플레이: 사이가슈를 몰살시켰다는 한 때문에 노부나가를 저격한다. 하지만 저격한 후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자괴감에 빠지는데, 대충 노부나가가 없는 상황에서 천하의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나는 개인의 원한 때문에 천하를 통일할 자를 죽인 건가 이런 상황이다. 그 혼란 속에서 안개가 낀 혼노지를 탈출한다. 자신을 쫓는 미츠히데의 부하들을 없애고 나가다 보면 죽었던 노부나가가 등장하는데, 깨고 보니 후마 코타로가 꾸민 것. 결국 탈출한 마고이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설득돼서 히데요시의 천하를 돕게 된다.

전국무쌍 3, 전국무쌍 4도 혼노지의 변의 기본은 이런 구조다. 중도에 배신의 계기가 추가되고 사이고 마고이치의 비중이 줄어들 뿐. 압권은 3편 오다 노부나가로 플레이시로 아케치 미츠히데를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천하가 자기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천하는 재미없다며 미츠히데를 용서하고 불타는 혼노지 본전에 들어가 자살한다.
4편 경우는 '오다의 장'에서 플레이 가능한데 미츠히데 시점만 존재.[30]불타는 혼노지 본전에서 노부나가와의 대결 중, 자신의 노부나가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끝내 그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지만, 노부나가는 그 특유의 무가치란 한 마디과 함께 미츠히데, 끝까지 배신해보거라.란 말을 남기고 불타는 혼노지 본전으로 들어가 역시나 자살한다.
전국무쌍 4-Ⅱ에서는 '반역의 장'에서는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모반을 일으켜서 폭사하는 이벤트가 있었으나 죽지않고 살아남아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다. 이것을 숨기기 위해서 군기를 아케치 군의 깃발로 바꾸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한 듯 속였다. 이때 원군이 탈출하지 못하게 다 막은 후에 마츠나가는 노부나가, 미츠히데, 모리 란마루, 노히메를 모두 죽이고 자신도 혼노지에서 폭사한다.
스핀오프 포켓몬 + 노부나가의 야망에서 미츠히데 스토리가 모반에 대한 고민인데 결국 여기서 조차 반란을 일으킨다.
  • 천지인: 노부나가가 우에스기와의 전쟁 중인 히데요시를 도우러 가라고 한 명령에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나온다. 노부나가는 불 타는 침소에서 이미 죽은 우에스기 켄신과 심오한 대화를 나눈 후 자결.
  • 군사 간베에: 천하통일을 앞둔 노부나가가 미츠히데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노부나가가 천하통일이 완성되면 자신이 일본의 왕이 될 것이라는 발언 (일본에 왕은 두명일 필요가 없다)을 듣고 친 조정파 영주였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군사를 일으켜 혼노지를 친 것으로 묘사된다. 이전부터 노부나가가 이에야스를 앞에 두고 반찬투정을 하며 갑질을 하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노부나가의 역심때문에 노부나가를 쳤다는게 가장 큰 이유. 이후에 히데요시가 재빨리 군사를 돌려 미츠히데를 치는것은 쿠로다 칸베에의 아이디어로 나오는데 [31] 정작 히데요시는 그런 발상을 하는 칸베에를 보고 소름끼쳐 하며 이후로는 칸베에를 멀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고우 ~공주들의 전국~: 노부나가 님이 짱이라능!!!이라는 모토가 돋보이는 대하드라마. 아케치를 업신여기고 영지를 몰수하고 일부러 적대 중인 다이묘의 영지를 하사하면서 죽기살기로 공략하라고 한 것은 모두 아케치를 시험하기 위한 노부나가님의 웅대한 뜻이었다고 나온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 오다는 모리 란마루와의 대화에서 아케치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것이라는 발언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아케치는 노부나가의 심모원려를 알아채지 못하고 결국 변을 일으킨다. 사망하기전 노부나가는 조카인 고우의 환영을 보고 유유히 불타는 혼노지의 안쪽으로 사라진다. 노부나가를 빨아도 이 정도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 심지어 왜 백부를 죽였느냐는 고우의 질문에 스스로도 정확한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 사나다마루: 여기선 그냥 깔끔하게 원한설로 정리. 모두 수고 많았다는 아케치의 말에 오다가 발끈하여 화를 내면서 "네가 대체 한게 뭐냐?"고 아케치를 떡이 되도록 두들겨 패고 그런 오다를 바라보면서 원한을 품은것처럼 묘사되었다, 이때 옆에서 이에야스가 안절부절하다가 오다의 구타가 멈추고 자리를 떠나자 종이로 아케치의 피를 닦아 주는데 혼노지의 변이 발생하자 이에야스가 도망칠까 고민하면서 혹시나 오다가 살아있는게 더 무섭다는 식으로 말해 오다의 행동이 주변의 두려움을 사고 있었다는 식으로 나온다.
  • 수라의 각: 무츠원명류의 역사에도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 무츠 타츠미의 쌍둥이 아들인 무츠 토라히코와 무츠 코마히코가 무츠라는 이름을 이어갈 자를 누구로 할 지 결정하는 싸움을 혼노지에서 벌인다. 노부나가를 이해하는 입장이었던 토라히코가 노부나가를 보호하기 위해 혼노지 본당으로 가려 하나 이를 코마히코가 막고 무츠의 이름을 걸고 싸움을 벌인다. 결과는 코마히코가 승리하여 무츠의 이름을 잇는다. 토라히코는 쓰러져 있다가 노부나가가 죽은 뒤에 시신을 수습하고 야마자키 전투에서 패주하는 미츠히데를 죽여버렸다. 그 후 토라히코는 불타버린 아즈치 성에 노부나가의 시신을 묻고 아버지 타츠미로부터 '후와'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그 후 4백여년 후에 수라의 문의 주인공인 무츠 츠쿠모와 후와의 계승자 후와 호쿠토가 일전을 벌이게 된다. 미츠히데의 모반 원인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작가 카와하라 마사토시는 야망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한다.

  • 4월 이야기: 이 영화가 혼노지의 변을 다룬건 아니고, 주인공이 영화관에서 혼노지의 변에 대한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 속 영화에서 미츠히데는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는 사람으로, 이에야스가 그런 평화로운 세상에 어울리는 사람이란 생각에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한다. 그러나 히데요시군에 쫓기는 미츠히데 앞에 노부나가가 나타난다. 미츠히데의 속셈을 파악한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에게 카게무샤를 시켰던 것. 노부나가는 자신이 이에야스의 이름으로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선언하며 미츠히데와 그의 부하를 죽이는 장면에서 이 영화 속 영화는 끊기고 장면이 전환된다. 여담으로 이 장면에서 오다 노부나가 역을 맡았던 에구치 요스케는 2014년 대하드라마 군사 간베에에서 같은 역을 맡게 된다.[32]
  • 이인도 타도 노부나가: 코에이에서 만든 롤플레잉 게임. 게임 극초반부에 아케치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간접적으로만 언급된다. 여기선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살아남아 아즈치 성으로 귀환한다.
  • 바사라 2: 작중 시대 배경이 이 때로 미츠히데는 플레이어블 중 하나로, 노부나가는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 키타판 라이더 그림두루마기 - 격돌! 덴키바 VS 노부나가: 노부나가가 마귀(이매진)와 계약했음을 안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 살해의 오명을 무릅쓰고 노부나가를 제거하려 한다. 당연히 인간이 이매진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온 가면라이더 덴오가면라이더 키바의 도움을 받는다. 이후 아케치는 세상이 평화로워진 것에 만족하고 오명을 쓴 채 죽는다.
  • 왜란종결자: 직접적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마수들에게 영혼을 판 오다 노부나가아케치 미츠히데가 일본 각지의 고승들의 법력을 받아 물리친 것으로 작중 인물들이 추정한다. 하지만 나중에 마수들이 히데요시와도 계약해서 도로아미타불..
  • 전국 바사라 시리즈: 시리즈마다 빠지지 않고 반드시 나오는 전통의 스테이지. 다른 넘버링작들의 혼노지 스테이지는 그나마 멀쩡하게 묘사되는데 전국 바사라 3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부활했다는 설정에 더해 스테이지 자체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조건을 만족시켰을 때 '환출(幻出)'이라는 메세지와 함께 출현하고, 맵 자체도 마계를 연상시키는 어둡고 괴기스러운 분위기이다. 니코니코 동화의 전국 바사라 관련 영상들에 붙는 태그 중 '本能寺が変'[33]이라는 태그도 있다.
여기서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을 일으킨 이유가 단지 노부나가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는 설정이다. 외전 전국 바사라 사나다 유키무라전에서는 다른 이유가 나오는데, 오다군이 납치했던 다케다 카츠요리사나다 마사유키가 목숨 걸어 구하려는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받아 그보다 더한 행위를 하고 싶다며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노부나가를 죽이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이 설정은 본편의 이유가 될 수 없는데, 본편에서 마사유키는 이미 고인이기 때문.
  • 히데요시로소이다: 마지막권인 7권의 주요사건으로 그려진다. 오다 노부나가가 아자이 나가마사아사쿠라 요시카게와 싸운 아네가와 전투에서 아사쿠라군 장수 마가라 나오타카에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노부나가는 무의식 세계에서 사탄을 만나 그와 계약을 하여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자신의 빙의신으로 삼은 사탄의 힘으로 자신의 적들을 멸망시키며 천하 통일에 다가선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관백인 고노에 사키히사의 계략이었다.[34] 사키히사는 일본을 통일하여 조정과 귀족들을 지켜줄 인물로 노부나가를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키히사가 노부나가 포위망을 획책한 편지가 발견되면서 노부나가와 사키히사의 사이가 나빠지게 된다. 사키히사는 편지의 문양이 고노에가문 것이 아니라 분가인 타카츠카사 가문의 것이라며 가짜편지라고 억울해 한다. 이에 노부나가는 자신이 태정대신에 오르겠다고 선언하고 사키히사는 그랬다가는 노부나가가 조정이고 귀족이고 다 박살낼 것 같아서 먼저 선수쳐서 태정대신에 오른 후 시마즈가로 달아난다. 그리고 노부나가가 다케다가와 우에스기가를 박살내자 결국 돌아와 태정대신 자리를 넘겨줄테니 조정만은 없애지 말라고 간청하기에 이른다. 노부나가는 쿠테타를 일으켜 오기마치 덴노와 귀족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려 했으나, 사키히사의 간청을 받아들인다. 한편 아케치 미츠히데는 화양부인을 통해 덴노로부터 노부나가를 토벌하라는 밀서를 받게 된다. 이에 미츠히데는 모리 란마루를 죽이고, 노부나가의 모든 것을 빼앗겠다며 노부나가의 아내인 노우히메를 겁탈한다.[35] 그리고 군사를 이끌고 혼노지로 진군한다. 한편, 노부나가는 사키히사가 벌인 주연에 참가했는데 이때 화양부인이 몸속에 숨긴 거대한 낫에 베어 살해당한다. 노부나가는 죽기 전 사탄에게 살려달라고 하나, 사탄은 아마테라스때부터 덴노가를 수호하기로 계략해서 자신도 어쩔수 없다며 지옥으로 돌아가버린다. 사키히사는 노부나가의 시체를 술독에 숨겨 니조어궁으로 옮겼고 오기마치 덴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즉 이 모든 것은 오기마치 덴노가 꾸민 계략. 덴노는 노부나가의 시체를 궁안에 묻어 버린다. 이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화양부인이 카멜레온 한마리를 잡는데 이 카멜레온이 구로다 간베에의 빙의신이었다.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노부나가와 사키히사의 뒤통수를 치려고 사키히사의 편지를 위조하는 등 계략을 꾸며놓은 것. 히데요시는 카멜레온을 통해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미츠히데를 토벌하러 회군한다. 한편 미츠히데는 혼노지에 도착했으나 이미 혼노지는 불바다인데다, 노부나가의 시체는 없어졌고, 자신이 받은 밀서도 나뭇잎으로 변해 꼼짝없이 역적이 되고 만다. 결국 야마자키 전투에서 히데요시에게 패배. 다만 히데요시가 미츠히데에게 미안해서인지 미츠히데가 죽은 것으로 하고 노우히메와 함께 달아나도록 나름 배려해준다.
  • 노부나가 콘체르토: 영화판에서 주요사건으로 그려진다. 타임슬립으로 노부나가와 주인공 사부로가 바뀌고, 실제 노부나가는 미츠히데가 됐다. 하지만 둘이 서로를 이해하며 천하를 통일 직전까지 갔지만, 원래 노부나가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히데요시에게 노히메를 인질로 잡혀 협박당한 미츠히데(실제 노부나가)가 지금까지 얼굴을 가리던 복면을 벗고 자신이 진짜 미츠히데이며 혼노지에 있는 건 자기 행세를 하는 카게무샤라면 변을 일으키게 된다. 그 결과 진짜 노부나가는 사부로를 대신해서 노부나가로서 죽고, 사부로는 히데요시에게 노부나가를 죽인 자로 잡혀서 참수되게 된다. 참수 되는 순간, 다시 타임 슬립이 일어나서 사부로는 현대로 돌아오게 되고, 거기에서 이전에 자신과 같이 타임 슬립했던 윌리엄 애덤스로부터 노히메의 영상 편지를 받게 된다.
  • 쾌락 히스토리에 전국시대편: 아케치 미츠히데가 혼노지에 쳐들어 왔을 때 이미 노부나가는 사망한 상태. 그리고 곧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한다. 때문에 미츠히데는 히데요시가 노부나가를 죽이기 위해 미리 선수를 쳤고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히데요시는 육상부 소속의 여고생이라 빗추 다카마쓰 성에서 혼노지까지 뛰어왔던 것. 그리고 노부나가는 야한 망가를 보며 자위를 하다가 자위의 한계를 찾기 위해 저너머로 떠나버린 것. 미츠히데는 그런 노부나가를 존경해하며 자신도 자위의 한계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이런 변태같은 모습에 질린 히데요시에게 죽는다. 히데요시는 혼노지를 불태우고 노부나가가 할복자살했다고 역사를 바꾼다.
  • 명군이 되어보세!: 여기에서는 정사처럼 오다 노부나가아케치 미쓰히데에게 혼노지에서 습격받는 것은 똑같으나, 다행히 살아남게 되고,[36] 히데요시의 평가로는 혼노지 이후로는 좀 느낀 바가 있었는지 성질머리가 많이 죽었다고. 따라서 통일 일본의 지도자는 하시바 히데요시 대신 오다 노부나가가 되었으며 주인공은 죽도록 노력하여 기껏 조선을 강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강해진 일본의 침략을 받게 생겼다. 단 차차와 하성군이 볼모로 교환되는 등 오다는 아직까지는 조선에 우호적인 입장에 있다. 그러나 자기 몰래 조선이 아이누와 오랜 세월 무역해왔다는 것이 들킨데다 히데요시를 쏜 시마즈 가의 사람이 조선으로 망명한 것을 조사 중인 관계로 언제까지 이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될지는 회의적이다. 오다는 조선을 회유하여 함께 명을 치고 중국 땅을 나눠먹자고 구슬리려는 망상을 하고 있는 중. 현재 가장 유력한 최종보스 후보로 살아남아 있는 셈.

이후 조선의 군사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만일 조선과 싸움을 벌인다면 성가실 것이라고 생각하나 자신이 우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주인공측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유사시 아예 총동원령을 이용해서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100만 대군이라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결국 전쟁을 결정하고 에조치의 거목들을 베어 전선 3천척을 건조[37]하는 한편, 자기 딸 아이히메를 임해군에게 또 내주고 이를 미끼로 임해군을 꼭두각시 조선 왕으로 내세우기로 회유한다. 멍청한 임해군도 그러겠다고 했는데, 이를 통해 조선의 주력군이 오위이고, 조선왕이 도감군에 상당한 비용을 들이며 신경쓰고 있다는 고급정보[38][39]를 얻게 된다.

그리고 1590년 4월 경인왜란을 일으킨다. 본인이 조선에 친정할 예정이라는데..... 문제는 예정된 진공로인 부산 상륙지에서 그를 기다릴 조선 함대는 다름아닌 원균의 삽질로 상실한 함선이 원 역사와 달리 전무한, 갈레온들을 위시해 100여척이 넘는 판옥선과 24파운드급 거포를 줄줄이 단 거북선으로 이루어진 치트공의 함대다. 치트공의 수급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 역시 갈레온과 텟코센 같은것들을 끌고 오겠지만,[40] 조선 수군도 갈레온을 보유중이고 실제보다 더 커진 거북선이 기다리고 있다. 덤으로 조선 수군 함포는 천자총통보다도 큰 24파운드급으로 업건된 상태.
  • 오다 시나몬 노부나가: 혼노지의 변 때 오다 노부나가가 내세에는 개로 태어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가 진짜로 시바견으로 태어나버렸다. 그후 2014년 대하드라마 군사 간베에를 보다가 노부나가가 475번째로 혼노지에서 타죽는 걸 보고 발광한다.[41] 다만 노부나가 본인은 혼노지의 변때 아케치 미츠히데를 보지 못했으며 모리 란마루가 쪼개면서 말하길래 농담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강한데다 불까지 질러서 사망. 이때 역시 개로 태어난 다케다 신겐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벌인 짓 아니냐고 물으니까 그새끼 하는 짓으로 봐선 그것도 그럴듯한 설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기억이 완벽하지 않지만 확실한 건 미츠히데는 싫다고. 그리고 미츠히데와 같은 얼굴을 한 꽃미남을 만난다...
  • 몇 번을 반복해도 혼노지가 불타잖아!? : 어느 곰돌이가 노부나가에게 혼노지 변 이전 단바공략전 회의로 돌려보내주는데...[42]
  • 기린이 온다에서는 위에 열거된 반란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요소들이 거의 모두 종합되어 나온다. 우선 미츠히데를 향한 노부나가의 폭행[43]과 독단[44], 노부나가의 권세가 커짐을 우려한 천황과 공가의 불안감, 노부나가가 내친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에 대한 정[45], 노부나가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감[46] 등이 중첩되어 미츠히데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만한 상황으로 이끈다. 결국 미츠히데는 사이토 도시미츠, 후지타 덴고, 아테치 사마노스케와 반란을 모의하고 혼노지로 향하는데. 대부분의 창작물이 어두컴컴한 밤을 배경으로 혼노지의 변을 묘사했다면, 본작은 비교적 밝은 새벽녘을 배경으로 묘사한다. 노부나가는 소식을 듣고모리 란마루 등의 시동들과 사투를 벌이지만 화살과 총탄 등에 맞아 부상이 심해져 결국 불타는 혼노지 안에서 죽는다.[47] 이후 하시바 히데요시는 반란의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 있던 호소카와 후지타카를 통해 혼노지 소식을 듣고 회군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5.1.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혁신에서는 원한설, 시코쿠 원정 회피설 등에 기반한 이벤트 발동 조건을 가지고 있다.
원한설에 기반한 혼노지의 변 발동 이벤트
도쿠가와 가문의 시점에서 보는 혼노지의 변
혼노지의 변 이벤트 /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승리하는 가상의 결과
천도에서는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정이대장군에 취임할 수 있도록 공작했으나, 노부나가는 이것을 각하하고 미츠히데에게 서쪽으로 군을 수송할 것을 명령하고 스스로는 사의를 표할 뜻으로 조정에 갈 채비를 한다. 이 때 모종의 결심을 한 미츠히데는 노부나가가 혼노지에 머무른 날 밤에 야습을 감행한다. 아케치 대의 공격 대상은 혼노지 근처의 니조 성이고 니조 성의 성주는 노부타다로 설정되어 있다. 니조 성이 함락되면 노부나가는 란마루에게 안쪽으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때를 보아 불을 지를 것을 명한 뒤 안쪽으로 사라진다. 불타는 혼노지를 보며 탄식하는 듯한 미츠히데의 독백으로 혼노지의 변 이벤트는 일단락되며, 결과로 오다가는 사분오열되며 아케치는 야카미 성과 니조 성을 수중에 두게 된다. 후속 이벤트로 회군하는 히데요시의 군에 대처하기 위해 야카미 성을 버릴지 말지의 여부를 정하는데, 여기서 야카미 성을 버리지 않을 경우 패배하고 미츠히데는 농민들에게 암살당한다. 니조 성이 함락되지 않은 경우, 오다 가는 유지되고 아케치는 소수의 병력만이 남은 야카미 성에서 독립하게 된다. 여러모로 미츠히데가 주인공 격인 이벤트. 이벤트 내내 이어지는 미츠히데의 독백이 백미.
창조에서는 전국전 이벤트로 노부나가,노부타다,히데요시,미츠히데,카츠이에를 지정된 장소에 옮기면 실행된다. 이벤트 영상 후, 노부나가의 가독이 히데요시에게 계승되고 (만약 서국을 완전히 정벌한 이후라면 서국 전부가 히데요시의 영역이 된다)카츠이에는 북쪽, 이에야스는 동쪽의 전국전 이전 노부나가 영지를 계승하며 미츠히데는 니조고쇼 주변 지역을 차지한다. 사이슈 오다가가 부활해 있으며 다른 노부나가 진영과는 아케치를 제외하고 모두 동맹 상태. 군사력이 충분하다면 시나리오 시작하자마자 니조고쇼로 쳐들어가 엔딩을 볼 수도 있다.

5.2. 태합입지전 5


여기서는 조정 흑막설과 아시카가 요시아키 흑막설이 결합된 형태. 미츠히데가 조정과 요시아키 둘에게 모두 사주를 받아 정변을 일으킨다. 미츠히데로 플레이하여 노부나가를 처치하고, 회군한 히데요시 부대까지 박살내면 역사대로 죽지 않고 계속 플레이가 가능한데, 어이없게도 미츠히데가 다이묘가 되는 게 아니라 '''아시카가 요시아키 소속 국주(삼국지 시리즈로 치면 군단장)'''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를 격파하였다고 하더라도 세력 전부가 와해된 건 아니라, 주변의 히데요시, 가츠이에, 노부오, 노부타카는 물론이고, 도쿠가와와도 적대관계가 되어 난이도가 꽤나 높다. 물론 미츠히데는 국주 신분이라 마음대로 동맹을 맺을 수 있으니 사나다 가문과 동맹을 맺고 유키무라에게 풍림화산을 배운다면 난이도가 매우 낮아진다.[48]

5.3. 오다 노부나가전



게임 최후반부의 중요 전투이자 본 게임의 스토리를 결정하는 분기점.
게임 진행중에 미츠히데를 팰건지 말건지가 3-4번정도 뜨는데 이 중 두 번 이상 미츠히데를 패면 미츠히데가 배신하지만, 한번 이하로 패면 미츠히데가 배반하지 않아 혼노지의 변과 해당전투 결과에 따라 파생되는 다음 전투가 생략되고 시코쿠 평정전-관동평정전-천하통일엔딩 루트로 넘어간다.
전투 전에 '도망친다'와 '포기한다'를 선택할 수 있다.
포기하면 '''불타는 혼노지에서 자결하는 엔딩 동영상과 함께 사망 엔딩'''으로 끝난다. 이러면 스토리는 여기서 끝.
도망친다를 선택하면 전투가 시작된다. 적군의 엄청난 병력을 뚫고 북서쪽의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승리. 적이 엄청 많긴 한데 멍청하게도 북쪽은 텅 비어있는 배치라 너무나도 쉽게 클리어 가능. 시작시에 사쿠마 노부모리와 하야시 히데사다,[49] 3턴 시작때 원군으로 아들 노부타다와 우군들이 등장하므로 얘들로 적당히 길막해주며 그냥 도망가면 된다.[50] 전장이 교토라서 동서남북으로 가도도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는데다가 적군은 대부분 보병인데 노부나가는 기병이라 일찌감치 달아날 수 있다. 참고로 이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 도망가던 노부나가가 강가에서 체포당하고 미츠히데 면전에서 참수당한다.
승리 분기로는 3가지가 있는데 미츠히데를 퇴각시키거나 11턴 이내로 퇴각할경우 야마자키 전투[51], 12턴 이후에 북동쪽으로 도망갔을 경우 시즈가타케 전투[52], 12턴이후에 동쪽으로 도망갔을 경우 나가쿠테 전투[53]분기이다. 야마자키 전투 분기의 경우 이후 미츠히데가 배반하지 않았을때의 분기와 동일하고, 나가쿠테 전투 분기의 경우는 이에야스와 싸우게 되는 일직선분기이나, 시즈가타케 전투 분기의 경우는 11턴이내에 시바타와 접촉하면 시코쿠 분기로 가게 되고, 12턴 이후에 접촉하면 이에야스분기로 가게되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혼노지의 변에서 살아남은 뒤의 최종 분기는 크게 시코쿠 평정 후 호조 우지마사를 잡는 분기 or 이에야스를 먼저 격파하고 이에야스-우지마사 연합군을 잡는 분기로 나뉘게 된다.

[1] 한국식 한자 발음은 "본능사의 변"이다.[2] 불교 세력인 고야잔이 아직 노부나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고 기이 지방 무사들도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던지라 완전히 장악한 상황은 아니었다.[3] 土岐, 무로마치 바쿠후가 미노 슈고로 임명하여 미노를 지배한 집안으로, 겐지의 분파이고 아케치 가문의 원류. 토키 가문을 몰아내고 미노를 차지한 것이 사이토 도산, 즉 '''오다 노부나가의 장인'''이다.[4] 1580년 절을 대대적으로 개증축하여 성채를 갖춘 절로 탈바꿈된 상태였다. 2007년 혼노지가 있는 일대를 발굴한 결과 이런 흔적들을 확인했다고 한다.[5] 이 말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에도 시대의 라이 산요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그나마도 역사 기록이 아니라 '''라이 산요의 시 한 구절'''이다. 그렇기에 미츠히데가 정말로 이 말을 했는지는 불확실하며, 이 말 자체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현재 일본에서 이 말은 적은 내부에 있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아이러니한 건 배신자가 반역 저지르면서 외친 말이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6] 대체로 새벽 4시로 추정한다.[7] 아케치 가문의 가몬이다.[8] 미카와모노가타리三河物語에 의하면 "조노스케(城之介=노부타다의 옛 관직명)가 배신했나"라고 했다고 되어 있다. 미카와모노가타리는 신빙성이 좀 의심되는 사료긴 하지만.[9] 죽었다는 설도 죽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노히메의 행적은 상당히 불분명하다.[10] 하지만 이것은 노부타다의 판단 착오였다. 미츠히데가 포위를 하고는 있었지만 포위망이 허술했던 탓에 오다 나가마스 등은 도망칠 수 있었다. 노부다타가 니조성이 아닌 아즈치 성으로 도망쳤다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노부타다의 운명이 거기까지였던 모양.[11] 사이토 도산의 막내 아들[12] 바리에이션에 따라서는 이 말을 들으면서 하급자들이 보는 앞에서 개맞듯 두들겨 맞았다는 말도 있다.[13] 히데요시가 하리마노쿠니의 칸키성 공략 시나 미타 성을 공격할 때 원군으로 히데요시를 구원했던 적이 있었다. 게다가 히데요시가 비록 천한 신분 출신이라고는 해도 미츠히데보다 먼저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기 때문에 히데요시가 선배인 셈이고 미츠히데도 여기에 딱히 이론을 제기한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14] 이 쪽은 우에스기 가문을 말하며, 진수성찬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는 것은 협력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우에스기 가문이 진수성찬을 대접해 드려야 할 존재가 대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아시카가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15] 사쿠마 전쟁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16] 여기에 대해서는 산쇼쿠 취임문제 논란참조.[17] 토사구팽 내지는 증거인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혼노지의 변은 성공했고 오다는 확실히 죽었다. 조정 입장에선 딱히 숨길 이유가 없는 것.[18] 효우게모노의 경우, 여기서는 히데요시가 슬쩍 미츠히데를 간접적으로 부추겨 미츠히데가 스스로 봉기하게 유도(+ 아직 정복도 제대로 못한 촌구석으로 보내려 함)했다는 설정이다.[19] 단 류성룡은 히데요시가 전왕을 몰아냈다는 기록과 함께, '다른 얘기도 전해지는데 전왕은 다른 이에게 죽었고 히데요시는 그 자를 없앤 후 왕이 되었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20] 후의 카스카노 츠보네[21] 단 실제 후손인지는 다소 불확실한 면이 있다는 듯. 참고로 난코보 텐카이와 미츠히데가 동일인물이란 설을 제기한 아케치 타키로(明智滝郎)가 이 사람의 조부다.[22] 시나노 북쪽 지역의 사나다 마사유키를 제외.[23] 통설로도 미츠히데의 집안이 사이토 도산을 섬겼다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노히메와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는 못 되지만.[24] 애초에 혼노지 당시면 사이토 도산은 아들의 모반으로 죽고 노부나가는 성공적으로 미노 장악을 끝냈는데.. 뜬금없이 사이토 도산의 반쯤 농담인 밀명이 근거로 나오는 게 우습다.[25] 포로들 학살은 기본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그대로 살려준다는 그 당시의 암묵적인 룰까지 깨어가면서 사람들을 죽였다[26] 대략 '''30시간 만에 70km를 주파한 셈이라고 한다.''' 맑은 날이었다고 해고 충분히 비현실적이지만, 히데요시가 회군할 때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27] 혼노지의 변 이 6월 21일 발생하였으며 키요스 회의가 7월 16일 열렸으니 한달도 안되는 시간 동안 모든걸 수습하고 대권을 잡은 셈이다.[28] 후일 주인공인 후루타와 히데요시도 같은 관계를 갖게 되는데, 정치적인 득실을 계산하거나 밀고 당길 것 없이 그냥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사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말년의 히데요시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인 노부나가를 명예욕, 출세욕에 눈이 멀어 죽인 것에 대한 후회 때문에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29] 본심은 이런 형태로 후루타에게 일부러 노부나가를 죽인 죄책감을 털어놓고 편해지고 싶어서.[30] 덕분에 플레이 가능 무장이 미츠히데 외에는 다 싹쓸이 오다군 이외의 인물로 교체되어 버린다. 분명 오다의 장인데.[31] 히데요시에게 '지금이 천하를 차지할 절호의 기회(天下を取るべき好機ではないか)'라고 부추겼다는 기록이 있다.[32] 또한 영화 고에몬에서는 주인공 이시카와 고에몬으로 출연하는데, 작중 노부나가의 갑옷을 입고 세키가하라 전투에 난입하는데, 이를 보고 병사들이 노부나가가 살아돌아왔다고 놀라는 장면이 있다.[33] 의역하자면 혼노지가 미쳤어요 내지는 혼노지가 약빨았다 정도.[34] 이 만화에서 사키히사는 화양부인이라는 구미호를 빙의신 겸 섹스파트너로 거느린데다 중국무술을 익힌 괴물같은 사내다. 더불어 계략도 뛰어나다.[35] 본래 노우히메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으나 사이토 도산에 의해 파혼된 과거가 있었다.[36] 덤으로 란마루도 생존했으며 노부나가가 멀쩡하게 살아있으므로 야스케도 아직 추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장남 오다 노부타다는 사망한다고.[37] 참고로 이 3천 척은 이미 거의 건조된 상태고, 북해도까지 합치면 5천 척 가량의 함대가 나올 수 있다고.[38] 조선은 아직 일본의 주력군을 모른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급정보 맞다.[39] 다만 멍청이 임해군이 도감군을 후려쳐서 '돈만 퍼부었지 별거 아니고 오위가 제일 세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만약 이 정보를 그대로 믿는다면 전쟁 초반에 피 좀 볼 듯하다. 게다가 원균은 이순신을 임금에게 잘 보여서 부마가 되고 높은 관직에 오른 아첨꾼 간신배라고 소개한다.[40] 노부나가가 뭔가 엄청난 배를 만들고 있다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대형 안택선 '니혼마루'도 건조 중인 것으로 보인다.[41] 역시 개로 태어난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통쾌하다고 말한다.[42] 1회차에 모반 일으킨 아케치를 살해하자 혼노지 변 시점으로 돌아가는데 아케치가 아니라 시바타가 혼노지 변을 일으키고...2회차에서는 아케치+시바타를 살해하자 히데요시가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다...[43] 이전에도 몇번 미츠히데를 걷어차는 등의 묘사가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자리에서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의 옷에 음식을 쏟자 미츠히데를 부채로 때린다.[44] 대표적으로 노부나가가 혼간지와의 싸움에 지친 제장들을 위로하기는 커녕 계속 압박하고 무리한 싸움을 요구한다. 더불어 이전에 성을 지을 때 노부나가가 신성한 불상을 함부로 탁탁 치며 별 것 아닌 듯 여기는 부분이 있는데, 여기서도 미츠히데가 이를 탐탁치않게 바라본다.[45] 아라키 무리시게를 비롯해 아시카가 쇼군을 받드는 세력이 계속 노부나가와 적대해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아케치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요시아키를 찾아가 교토로 복귀할 것을 종용하지만 요시아키는 미츠히데 혼자 있는 교토라면 복귀를 생각해보겠다고 답한다. 즉, 노부나가가 있는 한 교토로 올라갈 생각이 없다는 의미.[46] 본작에선 노부나가에 반발한 인물들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노부나가를 배신하며, 미츠히데에게 그 이유를 토로하고 히라구모를 맡긴다. 미츠부치 후지히데는 끝까지 아시카가 쇼군을 따르며 할복한다. 사쿠마 노부모리 역시 오케하자마 전투 때부터 묘하게 노부나가를 못 미더워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결국 밉보여 추방된다. 미츠히데의 사돈 아라키 무리시게 역시 아시카가 쇼군에 대한 충성심을 토로하며 끝까지 노부나가에게 적대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마츠다이라 노부야스 할복때부터 계속 일이 이렇게 된다면 자신들도 자신들의 뜻을 관철할 수밖에 없다.며 노부나가에 대한 불만을 미츠히데에게 대놓고 드러낸다.[47] 죽기 직전 아츠모리를 부르거나 할복하는 장면은 없다. 또한 노히메 역시 등장하지 않는다.[48] 히데요시와의 이벤트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되며 미츠히데는 1582년 시나리오에선 시작부터 국주이므로 다케다 가문이 망하고 사나다 가문이 독립하자마자 풍림화산을 배워두는 것을 추천.[49] 다만 이들을 추방했다면 원군으로 나오지 않는다.[50] 실제 역사에서 노부타다는 혼노지의 변 때 사망하지만 노부나가가 도망치는데 성공하면 얘들은 퇴각하더라도 사망처리되지 않고 바로 다음 전투에서 버젓이 살아 돌아오니 굳이 살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다.[51] 여기서는 노부나가가 미츠히데를 직접 토벌하며 턴이 흘러가면서 차례대로 아군 장수들이 원군으로 온다.[52] 노부나가가 숨어서 요양하는 사이, 히데요시와 시바타 카츠이에가 싸움을 벌이는데 이때 노부나가가 난입하여 전투를 멈춘다.[53]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히데요시가 싸울때 노부나가가 개입하고 이에야스가 최종보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