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다 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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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의 투수. 등번호는 18번이다. 1993년 4월 3일에 태어났으며 프로야구 데뷔년도는 2012년이다.
6살 때 소프트볼을 시작했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연식 야구부로 야구에 입문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면서 '''큐슈의 다르빗슈'''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으나 고등학교 3년간 고시엔에 나가지는 못했다.
2011년 10월 27일에 열린 NPB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1순위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2군에서 호성적을 내고있던 와중에 아라가키 나기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1군에서 말소되면서 7월 7일에 1군 무대로 올라오며 곧바로 니혼햄과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나와 6이닝 1실점 4탈삼진의 호투를 선보이며 프로 데뷔 첫 승리를 거뒀다.
이어 7월 14일에 지바 롯데와의 홈 경기에서 6이닝 8탈삼진 무실점으로 2경기 연속으로 호투하며 시즌 2승을 챙겼다.
7월 19일에는 2군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8월 4일에 세이부와 경기에서 3승, 8월 19일에 오릭스전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고졸 신인으로는 1966년 호리우치 츠네오 이후로 46년만의 4연승을 기록했다.
다음 날인 8월 20일에 투구 이닝 조정과 체력 회복 문제로 2군으로 내려갔다가 9월 2일에 1군에 다시 올라와서 니혼햄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으나 나카타 쇼에게 프로 데뷔 첫 피홈런을 허용하며 6이닝 2실점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9월 25일 오릭스전에는 111구를 던진 끝에 프로 데뷔 첫 완투와 동시에 완봉승을 기록했다.
10월 3일 니혼햄전에서 4연승을 기록하며 시즌을 끝마친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11경기(11선발) 8승 1패 67이닝 67탈삼진 '''승률 8할8푼9리''' '''평균자책점 1.07'''을 기록하며 고졸 신인으로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한다. 게다가 1군 무대 데뷔 후 호투를 거듭하며 팀의 상승세에 일조한건 덤. 비록 규정이닝 미달, 통일구 반발력 감소로 보는 이득이 있다고 하지만 굉장한 성적임은 틀림없다.
10월 14일에 클라이막스 시리즈 2차전 선발투수[2] 로 등판했지만 정규시즌과는 다른 무대의 무게감 때문인지 2.1이닝 5실점으로 물러나며 포스트시즌 데뷔무대에서 패전투수가 되고말았다.
그리고 소프트뱅크는 파이널스테이지에서 니혼햄에게 패배하며 탈락하며 데뷔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후 신인왕은 지바 롯데의 마스다 나오야가 수상했지만 퍼시픽리그에서 우수 신인상 특별표창을 수상했다.
전년도의 활약에 힙입어 개막 시리즈를 1군에 맞이했지만 3월 31일에 열린 라쿠텐과의 3차전에서 4이닝 5실점으로 패배하며 시즌을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후 7경기에 선발등판했지만 별 나아짐이 없이 5월 22일에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31일, 오릭스전에 1군으로 복귀해서 9경기를 출전했지만 제구 난조에 빠지면서 9월 26일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가 시즌을 마무리했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17경기(17선발) 4승 4패 93이닝 평균자책점 3.48로 표면상으로는 나쁘지 않아보이지만 볼넷을 무려 68개를 내주면서 리그 최다 볼넷이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는데 동시에 탈삼진은 56개를 잡아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사실 이 시기에 어깨 부상이 생긴 탓에 급작스런 제구난조에 시달린 것이 원인이었다고 2015년 오프시즌에 밝혔다. #
스프링캠프에서 어깨 피로감을 호소하며 결국 3개월간 재활 훈련 후, 5월 26일 독립리그인 만다린 파이어리츠와의 3군 경기에 복귀전을 치렀다.
이후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7월 16일부터 2군으로 올라와 3경기 연속 6이닝을 소화했고 8월 6일, 세이부전에 1군 복귀와 동시에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부상 관리 차원에서 2차례의 1군 말소가 있었지만 시즌 막판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10월 16일, 클라이맥스 파이널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유격수 이마미야 켄타의 어이없는 송구 실책과 곧바로 나카타 쇼에게 홈런을 얻어맞고 6이닝 4실점('''자책점 0''')으로 2012년에 이어 또다시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10월 26일에 일본시리즈 2차전에 등판하여 7이닝 1실점 5탈삼진의 호투를 보이며 프로 데뷔 첫 포스트시즌 승리와 일본시리즈 데뷔 첫 승리를 따내며 2차전 MVP로 선정됐다.
11월 6일, 부상으로 낙마한 오가와 야스히로를 대신해 미일 올스타전에 뽑혔다.
시즌 최종성적은 7경기(7선발) 3승 3패 43.1이닝 '''평균자책점 1.87'''을 기록하며 부상을 털어내고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탈삼진도 43개를 뽑아내며 데뷔 때의 구위를 회복했지만 볼넷을 22개 내주며 여전히 제구력 개선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간만에 부상없이 스프링캠프를 맞이하면서 시즌을 맞이했다.
4월, 5월 모두 2승 1패를 따냈지만 평균자책점이 4.24, 4.15로 약간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6월부터 본격적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6월 4경기 동안 요코하마와 교류전에서의 완봉 경기 포함, 평균자책점 1.00을 기록하면서 데뷔 처음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달인 10월에 살짝 부진했지만 그동안의 부상을 완전히 털어내고 시즌 중에 올라온 밴덴헐크와 팀의 1, 2선발을 맡으며 에이스로 자리를 굳혔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선 고전했지만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는 호투를 선보이며 2년 연속 경기 MVP를 수상하는 활약으로 팀의 2년 연속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후에 프리미어 12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25선발) 13승 6패 164.2이닝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하며 자신의 프로 데뷔 첫 규정이닝 돌파와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9이닝당 3.23개의 볼넷수(59개)를 기록하며 여전히 제구력에서 살짝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이닝당 1개꼴의 탈삼진 163개를 잡아내며 구위는 리그 정상급임을 입증했다.
평균 145km/h, 최고 154km/h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
여기에 각이 큰 커브와 횡으로 꺾이는 슬라이더, 세로로 꺾이는 슬라이더 모두 구사하며 포크볼과 체인지업도 구사하지만 주로 사용하는건 커브와 슬라이더다.
슬라이더와 커브가 모두 리그 정상급 구종에 속하는 보기 드문 유형[3] 으로 특히 커브에 변화를 다양하게 가지고가면서 구사가 가능할정도.[4]
단점은 어깨부상 경력이 있다는 점과 아직까지 제구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경기마다 기복이 꽤 있는 편으로 2015년에는 6월과 9월을 제외하고 월간 평균자책점이 2점대를 기록한 적이 없다.
프로의식이나 자기 관리가 뛰어난 편으로 항상 타자들의 타격습관이나 본인의 투구패턴, 훈련 메뉴 등을 노트에 적어넣는다고 한다.
야구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한 번 들어봤을 것이다. 왜냐하면 2015 WBSC 프리미어 12가 진행됐을 때, 당시 일본 대표 팀의 감독인 고쿠보 히로키 감독이 결승전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의 선발 투수는 다케다 쇼타다."라고 설레발을 쳐서 그렇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고쿠보 감독의 야망은 극적으로 무너지고 만다.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의 투수. 등번호는 18번이다. 1993년 4월 3일에 태어났으며 프로야구 데뷔년도는 2012년이다.
2. 프로 데뷔 전
6살 때 소프트볼을 시작했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연식 야구부로 야구에 입문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면서 '''큐슈의 다르빗슈'''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었으나 고등학교 3년간 고시엔에 나가지는 못했다.
2011년 10월 27일에 열린 NPB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1순위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3. 프로 데뷔 후
3.1. 2012년
2군에서 호성적을 내고있던 와중에 아라가키 나기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1군에서 말소되면서 7월 7일에 1군 무대로 올라오며 곧바로 니혼햄과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나와 6이닝 1실점 4탈삼진의 호투를 선보이며 프로 데뷔 첫 승리를 거뒀다.
이어 7월 14일에 지바 롯데와의 홈 경기에서 6이닝 8탈삼진 무실점으로 2경기 연속으로 호투하며 시즌 2승을 챙겼다.
7월 19일에는 2군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8월 4일에 세이부와 경기에서 3승, 8월 19일에 오릭스전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고졸 신인으로는 1966년 호리우치 츠네오 이후로 46년만의 4연승을 기록했다.
다음 날인 8월 20일에 투구 이닝 조정과 체력 회복 문제로 2군으로 내려갔다가 9월 2일에 1군에 다시 올라와서 니혼햄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했으나 나카타 쇼에게 프로 데뷔 첫 피홈런을 허용하며 6이닝 2실점으로 데뷔 후 처음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9월 25일 오릭스전에는 111구를 던진 끝에 프로 데뷔 첫 완투와 동시에 완봉승을 기록했다.
10월 3일 니혼햄전에서 4연승을 기록하며 시즌을 끝마친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11경기(11선발) 8승 1패 67이닝 67탈삼진 '''승률 8할8푼9리''' '''평균자책점 1.07'''을 기록하며 고졸 신인으로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한다. 게다가 1군 무대 데뷔 후 호투를 거듭하며 팀의 상승세에 일조한건 덤. 비록 규정이닝 미달, 통일구 반발력 감소로 보는 이득이 있다고 하지만 굉장한 성적임은 틀림없다.
10월 14일에 클라이막스 시리즈 2차전 선발투수[2] 로 등판했지만 정규시즌과는 다른 무대의 무게감 때문인지 2.1이닝 5실점으로 물러나며 포스트시즌 데뷔무대에서 패전투수가 되고말았다.
그리고 소프트뱅크는 파이널스테이지에서 니혼햄에게 패배하며 탈락하며 데뷔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후 신인왕은 지바 롯데의 마스다 나오야가 수상했지만 퍼시픽리그에서 우수 신인상 특별표창을 수상했다.
3.2. 2013년
전년도의 활약에 힙입어 개막 시리즈를 1군에 맞이했지만 3월 31일에 열린 라쿠텐과의 3차전에서 4이닝 5실점으로 패배하며 시즌을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후 7경기에 선발등판했지만 별 나아짐이 없이 5월 22일에 2군으로 내려갔다.
7월 31일, 오릭스전에 1군으로 복귀해서 9경기를 출전했지만 제구 난조에 빠지면서 9월 26일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가 시즌을 마무리했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17경기(17선발) 4승 4패 93이닝 평균자책점 3.48로 표면상으로는 나쁘지 않아보이지만 볼넷을 무려 68개를 내주면서 리그 최다 볼넷이라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는데 동시에 탈삼진은 56개를 잡아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사실 이 시기에 어깨 부상이 생긴 탓에 급작스런 제구난조에 시달린 것이 원인이었다고 2015년 오프시즌에 밝혔다. #
3.3. 2014년
스프링캠프에서 어깨 피로감을 호소하며 결국 3개월간 재활 훈련 후, 5월 26일 독립리그인 만다린 파이어리츠와의 3군 경기에 복귀전을 치렀다.
이후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며 7월 16일부터 2군으로 올라와 3경기 연속 6이닝을 소화했고 8월 6일, 세이부전에 1군 복귀와 동시에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부상 관리 차원에서 2차례의 1군 말소가 있었지만 시즌 막판에는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10월 16일, 클라이맥스 파이널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했지만 유격수 이마미야 켄타의 어이없는 송구 실책과 곧바로 나카타 쇼에게 홈런을 얻어맞고 6이닝 4실점('''자책점 0''')으로 2012년에 이어 또다시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10월 26일에 일본시리즈 2차전에 등판하여 7이닝 1실점 5탈삼진의 호투를 보이며 프로 데뷔 첫 포스트시즌 승리와 일본시리즈 데뷔 첫 승리를 따내며 2차전 MVP로 선정됐다.
11월 6일, 부상으로 낙마한 오가와 야스히로를 대신해 미일 올스타전에 뽑혔다.
시즌 최종성적은 7경기(7선발) 3승 3패 43.1이닝 '''평균자책점 1.87'''을 기록하며 부상을 털어내고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탈삼진도 43개를 뽑아내며 데뷔 때의 구위를 회복했지만 볼넷을 22개 내주며 여전히 제구력 개선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3.4. 2015년
간만에 부상없이 스프링캠프를 맞이하면서 시즌을 맞이했다.
4월, 5월 모두 2승 1패를 따냈지만 평균자책점이 4.24, 4.15로 약간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6월부터 본격적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6월 4경기 동안 요코하마와 교류전에서의 완봉 경기 포함, 평균자책점 1.00을 기록하면서 데뷔 처음으로 월간 MVP를 수상했다.
정규시즌 마지막 달인 10월에 살짝 부진했지만 그동안의 부상을 완전히 털어내고 시즌 중에 올라온 밴덴헐크와 팀의 1, 2선발을 맡으며 에이스로 자리를 굳혔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선 고전했지만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는 호투를 선보이며 2년 연속 경기 MVP를 수상하는 활약으로 팀의 2년 연속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후에 프리미어 12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25선발) 13승 6패 164.2이닝 평균자책점 3.17을 기록하며 자신의 프로 데뷔 첫 규정이닝 돌파와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9이닝당 3.23개의 볼넷수(59개)를 기록하며 여전히 제구력에서 살짝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이닝당 1개꼴의 탈삼진 163개를 잡아내며 구위는 리그 정상급임을 입증했다.
4. 투구 스타일
평균 145km/h, 최고 154km/h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
여기에 각이 큰 커브와 횡으로 꺾이는 슬라이더, 세로로 꺾이는 슬라이더 모두 구사하며 포크볼과 체인지업도 구사하지만 주로 사용하는건 커브와 슬라이더다.
슬라이더와 커브가 모두 리그 정상급 구종에 속하는 보기 드문 유형[3] 으로 특히 커브에 변화를 다양하게 가지고가면서 구사가 가능할정도.[4]
단점은 어깨부상 경력이 있다는 점과 아직까지 제구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경기마다 기복이 꽤 있는 편으로 2015년에는 6월과 9월을 제외하고 월간 평균자책점이 2점대를 기록한 적이 없다.
프로의식이나 자기 관리가 뛰어난 편으로 항상 타자들의 타격습관이나 본인의 투구패턴, 훈련 메뉴 등을 노트에 적어넣는다고 한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기타
야구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한 번 들어봤을 것이다. 왜냐하면 2015 WBSC 프리미어 12가 진행됐을 때, 당시 일본 대표 팀의 감독인 고쿠보 히로키 감독이 결승전이 확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의 선발 투수는 다케다 쇼타다."라고 설레발을 쳐서 그렇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고쿠보 감독의 야망은 극적으로 무너지고 만다.
[1] 출생지는 오이타현 벳푸시[2] 1992년 이시이 가즈히사 이후 고졸 신인으로는 최초[3] 2015년에 두 구종 모두 피안타율이 1할대였다.[4] 2014년 미일 올스타전 당시 퍼시픽리그의 젊은 괴물 투수와 센트럴리그의 젊은 괴물 투수가 다케다의 커브를 배워보려했지만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