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나미 신타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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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즈 소속의 야구선수. 등번호는 19번. 포지션은 투수로써, 2013년 한신 타이거즈 드래프트 1위에 빛나는 초특급 유망주였다.
오사카 지역 출신에 지역 내 고등학교인 오사카 토인 고교를 고시엔 우승[1] 으로 이끈 실적, 프로에서도 일찍이 두각을 나타난 점 등등의 요소가 겹쳐 '''오사카 순혈 한신 프랜차이즈 에이스''' 후보로서 현지 팬들의 기대와 인기가 매우 크다.
다만 데뷔 직후 첫 3년간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다가 하필 2016년 카네모토 토모아키 감독이 부임한 시기와 맞물려 제구난이 더욱 악화되어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2020년들어 사생활에서 연달아 문제를 일으키면서 부진한 성적에도 지지를 보내줬던 팬들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오사카 출신이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팬이었다고 한다.
고교시절과 프로 입단 이후 오타니 쇼헤이와 비견되며 라이벌로 묶이기도 했지만 오타니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본인은 신인 시절 이후 성적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이는 다나카 마사히로와 사이토 유키의 행보와도 흡사하다.
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이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야구를 시작, 중학교 때 투수로서 142km를 기록하였을 정도로 투수로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중3때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였다. 신장은 초등학교 졸업 때 180.2cm, 중학교 졸업시 19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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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졸업 후, 오사카 토인 고교에 진학, 1학년 여름부터 경기에 출전, 2학년 봄부터 에이스가 되었다. 2학년 여름 고시엔 지역예선에서는 결승전에서 떡실신당하며 팀을 탈락시키고 통곡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3학년이 된 2012년에 대각성, 봄 고시엔에서는 선발로서, 여름 고시엔에서는 주전 투수로 1년 후배인 모리 토모야와 배터리를 이루며 모교의 봄/여름 연패에 공헌했다.[2] 2012년의 오사카 토인 고교는 고시엔 역사상 최강의 팀이라고 불린다. 고시엔에서의 통산 성적은 76이닝, 방어율 1.07, 90 탈삼진. 이른바 "나니와의 다르빗슈"로 불렸던 시절이었다.
2012년 대한민국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만전 13탈삼진 완봉, 대한민국을 상대로 2실점 완투승을 거뒀다.[3]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2항목 참조.
2012년 드래프트에서 한신 타이거스, 오릭스 버팔로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1위 지명을 받았고, 추첨 결과 한신이 교섭권을 획득했다. 추첨 다음날인 10월 26일 GM인 나카무라와 감독 와다 유타카에서 직접 교섭에 나서, '타도 교진의 의미를 담아, 등번호 19을 제시했고,[4] 11월 15일에 계약금 1억 엔, 연봉 1500만 엔의 최고 조건으로 가계약했다.
2.2. 한신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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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2013시즌
이도류를 시도하던 오타니 쇼헤이는 발목 염좌로 주춤하는 사이에, 2013년 1군에서 개막을 맞이하여 4월에 3승을 거둠으로써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5월 26일 닛폰햄과의 교류전에서 오타니 쇼헤이와 맞대결을 가졌는데, 오타니가 3타수 2안타(2루타 2개)로 투타대결은 오타니의 승리로 끝났지만, 후지나미는 이 경기에서 호투하며 승리를 챙겼다.
8월 22일 기준 17경기 9승 4패 97.1이닝 83피안타 89K/30BB ERA 2.59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부상으로 인해 로테이션에 빠졌던 것 때문에 규정이닝에 아직 들어서지는 못했다.
2013년 시즌 최종 성적은 10승 6패 137.2이닝 방어율 2.75에 삼진 126개.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대결한 클라이맥스 시리즈 1차전에서는 고졸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차전 선발로 내정되어 마에다 겐타와 맞붙었으나 패전하고 말았다. 그리고 소속팀 한신은 2차전도 패배하며 탈락했다.
2.2.2. 2014시즌
그리고 2014시즌에는 생각보다 부진한 경우가 많다. 이길 때는 확실하게 이기는 투수이지만 문제는 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 경기 초반부터 출루를 너무 쉽사리 허용한다거나 쓰리 투 풀카운트 상황이 너무 자주 연출 된다는 것. 풀카운트 상황에서 강하게 승부수를 두지 못하고 그것이 출루로 연결이 되면서 루상 주자가 늘어나게 되는 악순환의 상황이 허다하게 일어난다. 허나 투구 개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상하게 제구가 더 좋아지기 때문에 국내에서 한신 홈경기를 중계하는 아프리카tv의 캐스터진은 후지나미가 경기 초반 실점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경기 전 5~60개 정도 미리 던지게끔 하고 등판해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2014년 시즌 최종 성적은 11승 8패 163이닝 방어율 3.53 탈삼진 172개.
2014년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선 3차전 선발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팀이 1승 1무로 통과하는 바람에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 선발로 등판했다. 아베 신노스케에게 솔로홈런을 맞았지만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해 승리 투수가 되었다. 특히 7회말 무사만루 대위기에서 쿠바 국가대표 타자 프레데릭 세페다에게 3-2-3 병살 유도, 이바타 1루 뜬공 처리를 통해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호투를 했다.
2.2.3. 2015시즌
2015년에는 탈삼진율이 비약적으로 올라가며 평균자책점도 2.62로 리그 3위에 자리했다. 113.1이닝 동안 120개의 탈삼진을 적립, 리그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이 활약을 발판으로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 1차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이 끝나가는 10월 1일 현재, 27경기에 등판해 방어율 2.32, 14승 6패 194이닝 216탈삼진 7완투 4완봉이라는 후덜덜한 성적을 기록했다. 7완투 4완봉은 모두 세파를 통틀어 톱. 한신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에서 손꼽히는 에이스로 성장했다. 그러나 9월 이후로 팀이 추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1승만 더하면 클라이맥스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는 상황에서 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팀의 명운을 걸고 선발로 등판을 했으나 5이닝 4실점의 부진으로 8⅓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한 상대팀 선발투수 구로다 히로키와의 대결에서 완패. 덕분에 한신은 히로시마의 남은 1경기 결과에 따라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다행히 히로시마가 마지막 경기에 패함으로써, 팀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는 성공하였으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1승 2패로 패함으로써,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본인 역시 처음으로 200이닝 가까이 던진 시즌이었고, 탈삼진왕을 차지했기에 한신팬들의 후지나미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높아졌다.
2.2.4. 2016시즌
2016시즌 전반기에는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는데, 한신 팀 자체가 타선, 불펜, 수비 모두 총체적 난국을 겪었기에 후지나미가 손해를 보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전반기의 모습은 아쉽다는 평.
6월 2일 라쿠텐전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승리를 챙기지 못하던 와중에 등판한 7월 8일 1위 히로시마와의 홈경기에서는 제구난조를 보이며 8이닝 7피안타 13탈삼진 8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날 투구수가 '''161구'''라 자연히 벌투 의혹이 있었는데, 가네모토 도모아키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그런 의도가 있었음을 밝히면서 꽤 논란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26경기 등판 7승 11패 169이닝 70볼넷 176탈삼진 평균자책점 3.25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물론 승운이 없었던 건 있지만, 그에 대한 기대치를 감안하면 확실히 아쉬운 성적이라는 평.
2.2.5. 2017시즌
2017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는데 연습경기와 예선에서 제구력 난조로 인한 볼넷 남발로 인해 본선에서 중요한 경기에는 등판 자체를 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한신팬들 사이에서 이럴거면 오픈전에 나와서 컨디션 조정이라도 하게 팀에 복귀시키라는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
그리고 그 여파인지 시즌 개막후 첫 등판인 4월 4일 야쿠르트와의 시합에서 5회까지 8개의 볼넷을 내주면서 제구력에 심각한 문제를 보이다가 야쿠르트의 주력 선수인 하타케야마 카즈히로에게 위협구에 가까운 몸에 맞는 볼을 내주었고 이로 인해 양팀간에 난투극이 발생하였다. 참고로 후지나미는 2016년에도 야쿠르트의 선수를 몸에맞는 볼로 부상 시킨 적이 있기에 난투가 벌어진 것. 이 과정에서 야쿠르트의 블라디미르 발렌틴과 한신의 야노 아키히로 코치가 서로 밀치고 발차기를 날리는 등 과격한 행동을 보이며 양 팀 간의 벤치 클리어링이 난투극으로 크게 번졌다.
그 뒤로도 실점만 안 할 뿐이지 제구력 난조로 인해 답답한 투구가 계속 이어졌고 몸에 맞는 볼로 인한 논란도 커짐에 따라 결국 5월 26일에 등록이 말소 되었다.
3달여 뒤인 8월 16일 히로시마전에 복귀했는데, 여기서 또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경기가 끝난 후 다시 등록이 말소되었다. 얼마나 제구력이 안 좋냐면 타격 의지가 없어서 베이스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상태였던 투수인 오세라 다이치에게까지 머리에 가까운 쪽에 몸에 맞는 볼을 내줄 정도로 제구력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몸에 공을 맞은 오세라가 후지나미에게 괜찮다고 미소를 지어보일 정도였고 이후에도 2루수 기쿠치 료스케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외에도 몇 번 더 사구를 내줄 뻔한 것은 덤. 이날 어찌나 제구력 난조가 심했는지 위험한 코스로 공이 많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히로시마 선수들이 코칭스탭들이 후지나미를 안 좋게 보기는커녕 되레 불쌍해 하는 듯한 모습까지 나왔을 정도.
8월 17일 등록이 말소된 시점에서 후지나미의 성적은 8시합을 선발로 나와서 방어율만큼은 2.98로 일견 준수해보이지만 45.1이닝을 던지는 동안 사사구를 무려 43개나 내줄 정도에 whip도 1.74로 최악 수준의 모습이고 FIP도 5.62로 방어율과의 괴리가 심해 사실상 1군에서 던져서는 안 되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데뷔 이후 2016년까지 후지나미의 통산 탈삼진율은 9를 넘을 정도로 삼진을 잘 잡는 스타일이었는데, 2017년은 45.1이닝을 던지는 동안 겨우 25개밖에 잡지 못할만큼 저조하다. 이는 사실상 상대타자와 애초에 제대로 된 승부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밖에는 볼 수가 없다. 신인 시절부터 상당한 재능을 보였고 2015년까지 준수한 성장곡선을 보였던 후지나미인 만큼, 가네모토 감독 취임 이후 급격하게 무너진 모습을 두고 가네모토 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가네모토 감독이 경기 못하면 벌투시키거나 올리지도 않는 등 관리와는 담을 쌓고 다루는 주제에 후지나미를 정신적으로 나약하다면서 갈굼 수준으로 질타하면서 멘탈에 문제가 생긴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또한 후지나미 본인의 문제도 있는데, 팀 동료인 랜디 메신저는 후지나미가 무너지기 전에도 "하체 단련을 게을리 한다. 저러면 오래 못 간다"라고 지적했으며 현지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제구 난조의 원인이 하체의 불안에 있다고 지적하는 등 여러모로 재능으로만 야구하는 게으른 선수가 되어버렸다는 평이 지배적이다.[5]
2.2.6. 2018시즌
2018시즌에는 2017시즌을 뛰어넘어 안 좋게 말하면 공만 빠른 쓰레기가 돼버린 상태. 시즌 종료가 다 되어가는 9월 23일 기준으로 49이닝 35볼넷 47K ERA 6.43 WHIP이 무려 1.837이라는 경악스러운 성적을 찍었다. 우스갯 소리로 9월 16일 요코하마전에 만루홈런을 쳤는데 오타니처럼 타자를 하라는 소리도 있을 정도다.
결국 2018년 연말 연봉 협상에선 3년 연속 삭감으로 전년 1억 2천만 엔에서 3600만 엔이 삭감된 8400만 엔에 사인하여 억대연봉이 깨지게 되었다.
2.2.7. 2019시즌
재기를 꿈꾸며 맞이한 2019년에도 여전히 제구불안을 고치지 못했다. 자체 홍백전에서도 타자 머리를 향해 공이 두 번씩이나 날아갔고 주니치와의 시범경기에서도 타자 머리쪽으로 공을 던지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신 구단은 320구 불펜피칭이라는 무리수로 후지나미를 갉아먹었다.
그러던 와중 무기한 2군행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지고 말았다. 불안불안했지만 시범경기에서 릴리프로 등판해 꾸역꾸역 막으면서 희망을 조금이나마 본 듯 싶었으나 제구 난조를 확실히 잡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결국 2019년은 입단 후 처음으로 1승도 없이 달랑 1군에서 1경기 던지고 끝났다.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콜업되었지만 8월1일 후반기 경기에서 4.1이닝 1실점 3탈삼진 6볼넷 2사구로 돌아버릴 것 같은 제구력을 보이고 2군으로 다시 강등. 2020년도 연봉삭감을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2.2.8. 2020시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개막이 2020년 4월 24일로 잠정적으로 연기된 가운데 3월 26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6] 일본 야구계에서는 최초 감염 사례다. 이후 같은 팀 외야수 이토 하야타[7][8] 와 포수 나가사카 켄야[9] 역시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후 4월 7일에 퇴원했다. 하지만 퇴원 후 인터뷰에서“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려 반성하고 사과드린다. 더욱 야구에 정진하겠다”라고만 언급하고 당시 모임에 대해 명확하게 해명을 하지 않아 많은 팬들이 실망한 상황이다. 요 몇년간 성적이 계속 추락해 입지도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속에 이런 사건에 연루되면서 언론에선 트레이드 기사가 나오고 팬들에겐 그냥 꺼지란 소릴 들을 정도로 야구 외적으로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후 5월 29일에 무기한 2군행을 통보 받았다. 전날 연습때 지각을 했다는게 그 이유. 심지어 야노 아키히로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지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후지나미와 면담 후 2군행을 통보한 것.
결국 시즌을 2군으로 출발하였으나 7월 승격, 7월 23일 히로시마전 선발로 예고되었다. 그 경기에서 호세 피레라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하면서 6이닝 4실점 5탈삼진 4피안타를 기록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30일 야쿠르트전 선발등판, 7이닝 4실점 1자책 패전. 그러나 시합결과와는 별개로 내용은 두 경기 다 무척 좋았다. 23일 경기는 만루홈런 이전까진 6이닝 3피안타 무실점이었고, 30일 경기는 7이닝 10K 1볼넷이었다. 지긴 했으나 내용이 무척 좋아서 앞으로도 몇번 더 기회를 받을 듯 하다.
8월 5일 교진전 선발등판, 8이닝 4실점 1자책 패전. 8이닝 7K 4피안타 1볼넷으로 이번에도 투구내용이 무척 좋았는데 또 졌다. 방어율은 2.57까지 끌어내렸고 몇년만에 부활한 모습을 보여줘서 3경기만에 로테이션 한 자리를 받았다. 특히 제구력이 무척 좋아진 점이 고무적.
이후는 로테이션이 꼬여서 9일쉬고 8월 14일 히로시마전 선발등판. 6이닝 8피안타 6K 4볼넷 6자책으로 오랜만에 쌌다. 0승 4패째. 그래도 이닝당 탈삼진이 1이 넘어가는 좋은 구위를 보이고 있다.
8월 21일 야쿠르트전 6.1이닝 6k 4실점 2자책 QS로 호투하며 무려 692일 만의 첫 승을 올렸다. MLB에서도 후안 소토나 아롤디스 채프먼 등 코로나에 걸렸던 선수들이 돌아와서는 리바운딩한 성적을 내고 있고 축구에서는 디발라가 코로나 완치 후 MVP를 먹은 데다 후지나미도 부활투를 던지는 등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에 걸렸다 돌아온 선수들의 성적이 향상되어 코로나 바이러스가 운동능력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농담반 진담반삼아 돌고 있는 상황.
위의 설레발이 무색하게 다음 카프전 4.2이닝 4실점으로 ND, 교진전 4.2이닝 11실점 7자책 패전으로 2경기연속 무너졌다. 탈삼진은 여전히 많은데 볼질이 급작스럽게 늘어나며 왕년의 안좋은 모습이 다시 보이고 있다.
9월 13일 카프전에 다시 등판했으나 3.1이닝 5실점 ND. 잘 나가다가 갑자기 3경기 연속 무너져내렸는데 그 와중에 5일 교진전 11실점 경기에서는 덕아웃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보여서, 정신적으로 굉장히 몰려있지 않냐는 의견이 많다.
결국 불펜으로 전환이 결정. 불펜은 프로 초년병 시절 1번 등판한 이후 7년만이다. 2군에서 재정비후 9월말 올라왔으며 불펜 첫등판인 26일은 2이닝 1자책으로 패전을 기록했으나 다음날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9월 29일에는 불펜 전환 후 최고구속인 시속 159km를 기록하였고 1이닝 무실점으로 프로 첫 홀드를 올렸다.야후 재팬 기사 무실점 투구후 웃으며 덕아웃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멘탈은 많이 회복이 된듯.
10월 1일 8회초 2: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중계투수로 올라왔다. 주니치 타선을 상대로 156km/h와 160km/h를 오가는 속구를 던졌으며 이 중 160km/h의 속구를 4번이나 던졌다. 첫타자 도바야시에게 2B 2S에서 승부구로 빠지는 슬라이더를 던졌으나 헛스윙삼진을 이끌어 냈고, 세번째 타자인 이료를 상대로 6구승부 끝에 낙차 큰 커트를 던지면서 삼자범퇴를 하고 내려갔다.
10월 4일 교진전 1.1이닝 3실점으로 털렸고, 이틀 후 카프전에 1이닝 공 9개로 2탈삼진 3자범퇴 무실점을 하고 내려갔다. 확실히 불펜으로 전환한 후에는 다시한번 좋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4일 교진전 3실점 이후 등판 전경기 무실점을 기록하며 필승조까지 올라갔다. 이닝당 탈삼진이 1개를 넘어가는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19일 야쿠르트전 1이닝 3K를 기록하는 장면이 압권.
이후 확실히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판단되었는지, 28일 주니치전에 선발로 예고되었다. 선발로 복귀할지 불펜으로 남을지 분수령이 될 듯.
이날 결과는 4이닝 76구 2피안타 2볼넷 6K 1실점(무자책) ND. 팀은 9대 1로 대승했다. 투구내용은 좋았는데 한동안 불펜으로 돌았던지라 급작스럽게 투구수를 늘리지 않기 위해 4이닝으로 끊은 것으로 보인다.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다시 선발로 기회를 몇번 더 줄 것으로 보인다.
이후 2번 더 선발로 등판했는데, 야쿠르트전 6이닝 무실점, 요코하마전 5이닝 무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쳤다. 10월 4일 경기 이후 시즌 종료까지 자책점이 없었던 점이 고무적. 5선발~불펜을 오가며 76.1이닝 방어율 4.01 85탈삼진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오래간만에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어쨌든 결국 1승과 방어율 4.01밖에 기록하지 못했고 계투 강등까지 경험했으며 시즌 전 코로나 감염 등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6300만엔에서 소폭 삭감된 6000만엔에 재계약했다. 20시즌 불펜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2021시즌 마무리 카드로 쓰는 구상도 있었으나 기존 마무리 로베르토 수아레스와 재계약했고 후지나미 본인도 선발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했기 때문에 21시즌은 일단 선발로 가게 될 듯.
3. 피칭 스타일
197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최고 구속 160km/h의 직구와 컷 패스트볼을 주무기로 변화구로는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을 던진다. 폼은 쓰리쿼터로 타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구속보다 구질을 중시하고 있어 "직구 한 개로 막아내는 것이 궁극의 이상입니다. 하지만 사실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기는 승리에 집착하는 피칭을 합니다."라고 언급했다.
다만 장신 속구파 투수의 전형적인 단점인 제구 문제도 함께 지니고 있다. 볼넷 뿐만 아니라 몸에 맞는 볼도 적지 않아서 논란이 꽤 많이 되는 편인데, 가뜩이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컨트롤에 기복까지 있다보니 상대하는 타자들 입장에서는 위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야마다 테츠토는 후지나미와 대결하는 것이 무섭다고 했을 정도이다. 이 컨트롤 부분은 데뷔 시즌 이후 지적받아온 부분임에도 여전히 발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2016년 카네모토 토모아키 감독 취임 이후에는 아예 1군에서 뛰기 힘들 정도의 투구 내용을 보여주는 정도로까지 슬럼프를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라이벌인 오타니가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비해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2016년 들어서 많이 나오고 있다.
이는 명백히 혹사로 인한 제구력의 상실에 가깝다. 구속은 떨어지지 않았기에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의외로 있는 케이스로, 어깨 관절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회전동작을 담당하는 회전근개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어 릴리스 시 팔을 안정적으로 받쳐주지 못하게 되어 제구가 불안해지는 것. 회전근개가 완전히 찢어지면 회전근 파열로 수술을 받게 되지만 과사용으로 인해 근육이 힘을 잃어버리면 파열되진 않아서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은 망가져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것이 데드암 증후군. 소위 말하는 '''골병든다'''고 하는 것이다. 보통 구속이 떨어지거나 제구와 구속이 동시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네 개의 회전근개가 전부 다 망가지지 않고 일부만 망가질 경우 제구력만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비슷한 경우로 KBO의 이혜천. 이쪽도 본래 완성형 투수였으나, 어린 나이부터 계속된 혹사로 제구력을 상실해 버려서 익히 아는 핵폭탄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이혜천은 제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역이용해 어디로 날아들지 던지는 본인도 모르는 강속구를 앞세워 그나마 불펜투수로서 리바운딩할 수 있었는데, 후지나미도 과연 리바운딩이 가능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공이 타자 몸을 향하는 경우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몸이 타자를 향하거나, 팔만 타자를 향하거나, 팔이 늦게 나온 경우이다. 투구에서 몸이나 팔이 포수가 아닌 타자를 향했다면 고의가 담긴 빈볼이란 뜻이므로, 후지나미의 여러 사구는 팔이 늦게 나온 케이스.
투구의 메커니즘에서 투수의 몸이 먼저 나온 후 팔은 몸의 움직임에 의해 '휘둘려지게' 된다. 이 때 휘둘려지는 팔이 적당한 릴리스포인트에 도달해야 하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릴리스포인트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팔이 제 때 탑포지션에 올라오지 못한 경우, 상체의 근력이 몸통 회전토크를 감당하지 못한 경우, 하체가 열려있어 팔을 끌고나올 수 없는 경우, 딛는 발의 착지 시 상체가 이미 앞으로 쏠려 있는 경우, 어깨의 회전방향과 팔의 회전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후지나미의 경우 일본 특유의 '이쁘게 위에서 내리 꽂아라'는 코칭이 있지 않을까 의심되는 케이스. 오버핸드를 만들기 위해 상체가 과도하게 꺾여있는 반면, 팔은 미묘하게 탑에 올라오지 못한 상태에서 쓰리쿼터로 휘둘리는 느낌이 있다. 팔을 휘두르고 나서도 팔이 휘둘렸던 방향과 몸으로 내려오는 방향이 다르다. 몸과 팔의 방향을 본인이 갖고 있는 내추럴 스윙에 맞추어 힘껏 휘두른다면 제구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4. 이모저모
여담이지만 오승환은 후지나미를 부를 때 성이 아닌 이름인 신타로라고 불렀다.[10]
수영을 잘 한다고 한다. 2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 영력검정에서 1급을 받았다고. 또한 중학교 3학년 때 영검 준2급 판정을 받는 등 영어에도 자신이 있는 듯.
루키즈의 작가 모리타 마사노리가 루키즈x한신 콜라보레이션에서 후지나미의 모습을 만화로 그리기도 했다. 본인은 아다치 미츠루 작품 H2 팬.
고시엔에서 오타니 쇼헤이에게 홈런을 내준 적이 있다. 2012년 봄 고시엔 32강, 오사카 토인 고교 대 하나마키히가시 고교[11] 와의 경기중 타자로 나온 오타니 쇼헤이에게 투볼 투스트라이크로 선전하던 중 솔로 홈런을 맞았다. 스트라이크 하나만 잡아내면 아웃인 상황에서 홈런을 맞았기에 후지나미는 많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고 공수가 바뀐 2회에선 오타니 또한 후지나미에게 볼넷을 허용해 1루 진격을 허용했다. 하지만 오타니가 제구난조로 무너지며 오사카 토인 고교의 완승으로 끝났고, 오사카 토인 고교는 기세를 이어가 수준 높은 경기를 보여주며 봄, 여름 고시엔 우승을 달성한다.
2015년 4월 25일 센트럴리그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한신 타이거스 경기 도중 구로다 히로키가 타자로 나온 상황에서 2구가 번트 자세였던 구로다가 이를 피하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곧바로 후지나미는 모자를 벗고 달려가 상황을 살핀 뒤[12] 3구를 던진 순간 또 몸에 맞을 뻔한 볼이 나왔다. 2구와 마찬가지로 구로다는 피하려고 몸을 던졌고 순간 분을 참지 못한 구로다가 배트를 들고 후지나미에게 다가가며 화를 낸뒤 곧 바로 벤치클리어링이 발생하였다. 양 팀 선수들 모두가 나와 상황을 중지시켰으며 상황이 진정되고 후지나미는 2개의 직구만으로 투스트라이크를 잡아냈고 풀 카운트 상황에서 구로다가 친 공이 아웃되면서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키가 큰 것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는 듯하다. 라이벌인 오타니 쇼헤이가 자신의 키가 193cm인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애기하자 후지나미는 키가 큰 것이 좋지 않냐며 쓴 웃음을 지었다. 오타니가 2cm정도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자신의 키에서 2cm를 나눠주고 자신은 195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넷에 자신의 키가 198로 적힌 것을 보자 자신의 키는 197이니 수정해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신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선수 중 하나. 2010년대 중반이후 한신의 주전이 투수진은 메신저, 니시, 야수는 이토이, 니시오카, 후쿠도메 등 투수, 야수를 막론하고 용병이나 타팀 이적생 출신이 많은데다 노미, 토리타니 등 프랜차이저들은 노쇠화로 부진한데 몇 안되게 2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부터 리그 정상급인 실력에 탈삼진 펑펑 잡는 파이어볼러 선발투수라는 화끈한 플레이스타일, 큰 키와 잘생긴 얼굴, 비율좋은 탄탄한 몸매까지 갖춘 멋진 외모, 뭐니뭐니해도 오사카 토박이 고시엔 스타인 로컬 보이로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밖에 없었던 선수. 2군급 실력으로 추락해버린 2010년대 후반 들어서도 인기만큼은 웬만한 1군을 압도하는 선수다. 2020년 들어 코로나19와 관련돼 문제를 일으켰고 이후에도 지각으로 사생활 관련 문제를 연달아 일으켰지만, 여전히 후지나미가 등판하는 날이면 쏟아지는 기사가 웬만한 일본 메이저리거들보다 많을 정도로 인기 하나는 끝내주는 선수.[13]
5. 연도별 성적
[1] 2012년에 학교 역사상 첫 봄대회-여름대회 연속우승(춘하연패)에 우리나라의 전국체전격인 국체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오사카토인고는 2018년에 고교야구 역사상 최초로 한학교 춘하연패 2회 기록을 달성한다. 2018년 오사카 토인고 야구부는 황금세대로 불리었고, 그 선수들이 졸업한 후인 2019년에는 지역예선에서 끝내기 볼넷을 허용해 고시엔 진출에 실패했다.[2] 아오모리 현의 코세이 학원과 봄, 여름 고시엔 모두 결승에서 맞붙었는데, 봄, 여름 고시엔 결승에서 같은 팀끼리 맞붙은 최초의 사례이다.[3] 기록은 4경기 평균자책점 1.11.[4] 과거 거인 킬러라고 한 고바야시 시게루가 착용한 번호.[5] 본인도 프로 2년차 때 "프로보다 고등학교 때가 훈련이 더 빡셌다."라고 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프로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고치기 위해서 스스로 하는 훈련의 중요함을 채 알기도 전에 성공부터 거두면서 자신도 모르게 프로를 만만하게 본 결과가 현재의 상황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왔다. 반면 고등학교 때 본인과 배터리를 이루던 모리 토모야는 비록 1군 정착과 주전자리 차지는 본인보다 늦었지만 타격이라면 너도나도 한가락 한다 하는 세이부의 핵타선 선배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 결과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로 성장해서 좋은 대조를 보였다.[6] 하지만 현재 난교파티로 인한 코로나 확진이라는 기사가 떴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사의 원본인 닛칸 겐다이는 도쿄 스포츠랑 비슷하거나 그 밑 수준으로 기자들 뇌내망상으로 기사 쓰기로 유명한 곳이다. 해당 증언을 한 평론가 카네무라 요시아키 역시 억지 주장까지 해가면서 골수 한신까로 활동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라(워낙 한신을 싫어해서 한신에게 연고지 팬들을 다 빼앗긴 오릭스 골수빠 아니냐는 말도 있다. 실제로 오릭스에서 뛴 적이 있었으며, 유명 야구 평론가들이 전원 B클래스로 예측한 오릭스를 2020년 우승후보로 꼽았다.) 신빙성은 낮다. 타 신문에서는 고우콘合コン으로 보도했는데, 한국말로 미팅이나 소개팅 정도의 의미. 같이 밥먹고 2차로 술먹고 하는 한국에서도 대학교 과팅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흔한 단체미팅이다. 정황상 후지나미 포함 선수 여럿이 미팅 나갔다가 걸린 것으로 보이며 여러 신문사가 이쪽으로 공통되게 보도한 걸로 보아 이쪽의 신빙성이 높다.[7] 한신의 1라운더 잔혹사 중 한 명.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주장을 맡던 잘나가는 외야수로 한때는 여러 구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공수주 모두 미달이라는 이유로 한신을 제외한 다른 구단들은 아예 관찰을 그만둔 상태였다. 심지어 한신 스카우터들조차도 동일본 쪽 스카우터들은 타카하시 슈헤이를, 서일본 쪽 스카우터들은 타케다 쇼타를 1라운더로 추천했는데도 케이오대 선배였던 구단 사장이 독단적으로 1라운더 지명을 결정해버린 케이스. 덕분에 학벌로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고 신나게 까였고, 예상대로 프로에 와서 공수주 모두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부진하고 있다. 똑같이 망한 1라운더 취급받는 타카야마 슌(2015년 1라운더 및 2015년 신인왕)이나 오오야마 유스케(2017년 1라운더)는 망했다고 까이기는 해도 주전 한 자리 정도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판인데 이 선수는 30대가 되도록 백업 외야수에 그치고 있다. [8] 빠른 발을 갖고 있다면서 9시즌 동안 1도루를, 장타력을 갖고 있다면서 9시즌동안 10홈런을 기록했으며 수비는 타구판단 능력이 좋지 않아서 공이 휘는 코너 외야수로 나가면 툭하면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하는 수준이고(이런 케이스는 사실 종종 나오는 편이다. 그래서 중견수는 보는데 좌익수, 우익수를 못 보는 특이케이스. 한국에도 이택근이란 예시가 있다.), 무리하게 공을 쫓아가다가 다른 선수와 부딪혀서 6개월짜리 부상을 팀메이트에게 입힌 적도 있었다.[9] 2019년 10할 타자와 동시에 OPS 5.000을 기록했었다.[10] 일본에선 각별한 사이가 아니면 성씨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11] 이와테현의 고시엔 단골 학교로, 오타니 쇼헤이와 키쿠치 유세이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12] 그도 그럴 것이 카프의 홈구장에서 다른 선수도 아니고 카프의 영웅인 구로다 히로키에게 위협구를 던진 셈이 되었으니. 후지나미 본인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13] 다만 한국 언론에서는 반일감정과 정보부족 등의 문제가 겹쳐서 악의적인 찌라시도 정설인 양 갖고오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일본 현지에 비해서 한국에서 얻는 후지나미 정보는 과장된 게 꽤 있으므로 적당히 걸러듣는 것을 추천. 난교파티 얘기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