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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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아시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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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종이 재질이 좋지 않은데, 북한은 제지 기술이 떨어지고, 종이의 원료로 쓸 나무도 많이 없기 때문에 로동신문, 우표, 상품 카탈로그, 엽서, 서점 책자 같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이런 재질의 종이로 책을 만든다. 초중고 등지에서 가정통신문용으로 받는 종이나 이마트의 990원 노트보다 조금 열악하다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1974년 최초제정된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 원조이다. '서문'과 10개조의 원칙, 부연설명, 각 원칙에 따른 몇가지 항목을 더한 총 10개 원칙 65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2013년 개정된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에서 60항으로 줄어 10개 원칙 60항이 되었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헌법''', '''로동당 당규'''를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지만 10대 원칙을 모르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의 8~9할이 10대 원칙에 위배사항으로 얻어걸린 추측이 있을만큼 북한 사회에서는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초헌법적 원칙'''이 바로 10대 원칙이다. 당의 모든 지령, 지시사항, 입안과 정책의 발의는 10대 원칙으로부터 비롯되어 10대 원칙을 옹위하는 것으로 끝마친다. 즉, ''de facto''(사실상) 헌법인 셈.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이라는 책을 쓴 탈북자 김현식 예일대학교 초빙교수는 이 10대 원칙을 두고 '''김정일 십계명'''이라고 책에 적었으며, 책에서 계속해서 "김정일 십계명"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김일성이 김정일 십계명을 승인함으로써 김일성의 권력은 이 내용을 승인한 순간 김정일한테 넘어갔다고 저술하였다.
1967년 6월 28일 김일성의 동생이자 당중앙위원회 조직부장인 김영주의 제청에 의해 당중앙위 제4기 16차 전원회의에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가 의제로 채택되었다. 이 회의에서 '10대 원칙'이 작성되었던 것이 처음이다. 이후 김영주와의 후계자 싸움에서 승리한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 확립을 위한 항목을 추가하는 등 몇몇 부분이 수정되어 1974년 4월 14일 김일성의 생일 전날에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공포되었다. 김정일이 추가한 항목은 10조의 ''''대를 이어''''라는 표현과, 그 하위 다섯 조항에 나오는 '당중앙의 유일적지도체제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 '당중앙의 권위를 백방으로 보장하며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여야 한다.'와 같은 '당중앙'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여기서 '당중앙'이란 김일성에 의해 후계자로 지정된 김정일을 가리키는 명칭이다.[2] 이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이 가로 7.5cm에 세로 10.5cm 크기의 소책자로 발간 배포되었다.
특별한 업적이 없는 김정은의 명분 약한 입지와 북한내 신흥 자본가 세력으로 인해 추락한 지도자와 당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조선로동당과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김씨 일가의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핵보유국 선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과 조선로동당 규약에서 공산주의를 완전 삭제하는등 변화된 시대상황에 맞게 첨삭후 개정해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6월 19일 김정은의 직접 연설을 통해 공표후 제정되었다.
전체 북한주민들은 누구나 다 암기하여 통달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NK지식인 연대 대표 김흥광의 발언과 같이 이걸 '자다가 일어나서 외칠 수 있을 정도'로 외워야 한다.
반면, 같은 탈북자인 안찬일은 초창기에는 다 외우는 것을 FM으로 했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각 학교나 기관 별로 잘 외우는 사람 몇 명을 골라서 이들을 내세워 잘 외운 것처럼 포장하기가 보편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0대 원칙을 어겨서 처벌 받은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못 외웠다고 위반에 중하는 중대한 처벌을 받은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10대 원칙의 보급을 주민들에게 강요코자 각 직장이나 학교에서 부서나 학과별로 팀을 짜서 외우기 대회도 연다. 다음과 같이 연다고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초법적조치 때문에 10대 원칙을 위반하고도 살아남은 일도 있다. 1998년 탈북해 남한으로 온 최영주의 증언으로 남편이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김일성의 액자를 닦다가 깨뜨리고 말았고, 자아비판 후 숙청당할 위기에서 병원에 검열대가 들이닥쳐 고발하지 못하고 15일이 지나는 바람에 함께 처벌받을 것이 두려운 병원관계자들이 공론화하지 않고 없었던 일로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1974년 4월 14일 제정된 '당의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서술용 참고자료로 기재했고, 개정후의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은 수정된 내용 이외에는 개정 전과 동일하므로 개정된 부분만 기재했다.
'위대한'은 50번, '김일성'과 '김정일'은 합해서 54번 들어갔다.
북한에는 10대 원칙 외에도 소학교에서부터 외는 10가지 항목의 이른바 "충성의 선서"라는 것이 있어 이 선서를 북한판 황국신민서사라고 할 만 한데, 2018년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대성을 인지하고 그들의 사상으로 무장하며, 조직생활, 학습, 생산,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실천 활동에서 철저히 구현하여 대를 이어 영원히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로동당의 위업을 위하여 목숨도 초개처럼 바치겠다는" 내용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선대의 뜻과 정신만 간략하게 서술되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상과 영도를 무조건 받들어 충성하겠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데일리NK가 보도했다.
조선인민군에는 북한판 복무신조인 군인선서와 전투력 강화 5대 방침, 군무생활 10대 준수사항이 존재한다. 군인선서는 신병교육 수료 후 시행하는 선서이여, 전투력 강화 5대 방침과 군무생활 10대 준수사항은 군사규정의 양대 축으로서 자대 배치 후 군인들의 복무지침으로 강조된다. 김일성이 전군 주체사상화 강화방침을 주장하면서 제시하였고, 김정일 지시로 일부 내용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의 하루 일과 중, 오후 6시의 저녁식사 후 7~8시까지는 정책학습시간, 8시부터 보도청취시간,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문화오락시간, 9시 30분부터 40분까지 자아비판/상호비판 및 총화, 9시 50분부터 취침시간을 가진다.[출처] 정책학습시간에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과 더불어 전투력 강화 5대 방침, 군무생활 10대 준수사항을 암송하며 자아비판/상호비판은 5대 방침과 10대 준수사항을 기반으로 시행된다고 한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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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아시아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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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종이 재질이 좋지 않은데, 북한은 제지 기술이 떨어지고, 종이의 원료로 쓸 나무도 많이 없기 때문에 로동신문, 우표, 상품 카탈로그, 엽서, 서점 책자 같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이런 재질의 종이로 책을 만든다. 초중고 등지에서 가정통신문용으로 받는 종이나 이마트의 990원 노트보다 조금 열악하다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1. 개요
1974년 최초제정된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 원조이다. '서문'과 10개조의 원칙, 부연설명, 각 원칙에 따른 몇가지 항목을 더한 총 10개 원칙 65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2013년 개정된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에서 60항으로 줄어 10개 원칙 60항이 되었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헌법''', '''로동당 당규'''를 몰라도 사는데 지장이 없지만 10대 원칙을 모르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의 8~9할이 10대 원칙에 위배사항으로 얻어걸린 추측이 있을만큼 북한 사회에서는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초헌법적 원칙'''이 바로 10대 원칙이다. 당의 모든 지령, 지시사항, 입안과 정책의 발의는 10대 원칙으로부터 비롯되어 10대 원칙을 옹위하는 것으로 끝마친다. 즉, ''de facto''(사실상) 헌법인 셈.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이라는 책을 쓴 탈북자 김현식 예일대학교 초빙교수는 이 10대 원칙을 두고 '''김정일 십계명'''이라고 책에 적었으며, 책에서 계속해서 "김정일 십계명"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김일성이 김정일 십계명을 승인함으로써 김일성의 권력은 이 내용을 승인한 순간 김정일한테 넘어갔다고 저술하였다.
2. 상세
1967년 6월 28일 김일성의 동생이자 당중앙위원회 조직부장인 김영주의 제청에 의해 당중앙위 제4기 16차 전원회의에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가 의제로 채택되었다. 이 회의에서 '10대 원칙'이 작성되었던 것이 처음이다. 이후 김영주와의 후계자 싸움에서 승리한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 확립을 위한 항목을 추가하는 등 몇몇 부분이 수정되어 1974년 4월 14일 김일성의 생일 전날에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공포되었다. 김정일이 추가한 항목은 10조의 ''''대를 이어''''라는 표현과, 그 하위 다섯 조항에 나오는 '당중앙의 유일적지도체제를 확고히 세워야 한다', '당중앙의 권위를 백방으로 보장하며 당중앙을 목숨으로 사수하여야 한다.'와 같은 '당중앙'에 관련된 내용들이다. 여기서 '당중앙'이란 김일성에 의해 후계자로 지정된 김정일을 가리키는 명칭이다.[2] 이후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이 가로 7.5cm에 세로 10.5cm 크기의 소책자로 발간 배포되었다.
특별한 업적이 없는 김정은의 명분 약한 입지와 북한내 신흥 자본가 세력으로 인해 추락한 지도자와 당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조선로동당과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김씨 일가의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핵보유국 선언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과 조선로동당 규약에서 공산주의를 완전 삭제하는등 변화된 시대상황에 맞게 첨삭후 개정해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6월 19일 김정은의 직접 연설을 통해 공표후 제정되었다.
전체 북한주민들은 누구나 다 암기하여 통달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NK지식인 연대 대표 김흥광의 발언과 같이 이걸 '자다가 일어나서 외칠 수 있을 정도'로 외워야 한다.
반면, 같은 탈북자인 안찬일은 초창기에는 다 외우는 것을 FM으로 했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각 학교나 기관 별로 잘 외우는 사람 몇 명을 골라서 이들을 내세워 잘 외운 것처럼 포장하기가 보편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10대 원칙을 어겨서 처벌 받은 사례는 부지기수지만 못 외웠다고 위반에 중하는 중대한 처벌을 받은 사례는 보고된 바 없다.
10대 원칙의 보급을 주민들에게 강요코자 각 직장이나 학교에서 부서나 학과별로 팀을 짜서 외우기 대회도 연다. 다음과 같이 연다고 알려져 있다.
- 각 팀은 팀 구성원에게 번호를 미리 부여한다.
- 경기가 시작되면 각 팀의 주장은 단상으로 나와서 제비를 3개씩 뽑는다. 제비에 나온 번호에 해당하는 상대팀의 선수가 단상으로 나온다.
- 총 6명의 선수가 단상으로 나와서 다시 제비를 뽑는다. 여기서 나온 숫자는 암송해야 할 조를 말한다.
- 순서대로 자신이 걸린 조의 항까지 모조리 외운다.
- 암송이 끝나면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부르면서 마무리한다.
- 조항을 외우면서 틀린 글자가 없이 또박또박 잘 외웠는지 심사위원이 점수를 매겨서 승패를 결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초법적조치 때문에 10대 원칙을 위반하고도 살아남은 일도 있다. 1998년 탈북해 남한으로 온 최영주의 증언으로 남편이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김일성의 액자를 닦다가 깨뜨리고 말았고, 자아비판 후 숙청당할 위기에서 병원에 검열대가 들이닥쳐 고발하지 못하고 15일이 지나는 바람에 함께 처벌받을 것이 두려운 병원관계자들이 공론화하지 않고 없었던 일로 넘어가 버렸다고 한다.
3. 전문
1974년 4월 14일 제정된 '당의 유일 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을 서술용 참고자료로 기재했고, 개정후의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은 수정된 내용 이외에는 개정 전과 동일하므로 개정된 부분만 기재했다.
3.1.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개정전, 5793자)
3.2.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개정후, 2476자)[3]
'위대한'은 50번, '김일성'과 '김정일'은 합해서 54번 들어갔다.
4. 유사품
북한에는 10대 원칙 외에도 소학교에서부터 외는 10가지 항목의 이른바 "충성의 선서"라는 것이 있어 이 선서를 북한판 황국신민서사라고 할 만 한데, 2018년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대성을 인지하고 그들의 사상으로 무장하며, 조직생활, 학습, 생산,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실천 활동에서 철저히 구현하여 대를 이어 영원히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로동당의 위업을 위하여 목숨도 초개처럼 바치겠다는" 내용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선대의 뜻과 정신만 간략하게 서술되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상과 영도를 무조건 받들어 충성하겠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데일리NK가 보도했다.
조선인민군에는 북한판 복무신조인 군인선서와 전투력 강화 5대 방침, 군무생활 10대 준수사항이 존재한다. 군인선서는 신병교육 수료 후 시행하는 선서이여, 전투력 강화 5대 방침과 군무생활 10대 준수사항은 군사규정의 양대 축으로서 자대 배치 후 군인들의 복무지침으로 강조된다. 김일성이 전군 주체사상화 강화방침을 주장하면서 제시하였고, 김정일 지시로 일부 내용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의 하루 일과 중, 오후 6시의 저녁식사 후 7~8시까지는 정책학습시간, 8시부터 보도청취시간,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문화오락시간, 9시 30분부터 40분까지 자아비판/상호비판 및 총화, 9시 50분부터 취침시간을 가진다.[출처] 정책학습시간에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과 더불어 전투력 강화 5대 방침, 군무생활 10대 준수사항을 암송하며 자아비판/상호비판은 5대 방침과 10대 준수사항을 기반으로 시행된다고 한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 군인선서 - 자세한 내용은 복무신조 항목의 조선인민군 항목을 참조.
- 전투력 강화 5대 방침
- 강인한 혁명정신
- 기묘하고 영활한 전술
- 무쇠 같은 체력
- 백발백중의 사격술
- 강철 같은 규율
- 군무생활 10대 준수사항
- 군사규정의 철저한 준수
- 무기의 정통과 철저한 관리
- 군사명령의 철저한 집행
- 당 및 정치조직들에게 준 분공(分工)의 어김없는 집행
- 국가기밀·당 조직비밀 엄격히 유지
- 사회주의적 법과 질서의 철저한 준수
- 군사정치 훈련에 어김없는 참여
- 인민에 대한 사랑 및 인민재산의 침해 금지[4]
- 국가 재산과 군수물자의 철저한 보호 및 절약노력
- 군대 안의 일치단결 미풍 확립
[1] 개정 전과 비교하여 변경된 부분만 아래에 서술하고, 글자 수도 변경된 부분만 세도록 한다.[2] 김정일은 1974년 당중앙위원회 비밀회의에서 후계자로 공식선언되었으나, 1980년까지는 비공개에 부쳤다. 이 기간에 김정일의 지시는 모두 당중앙의 지시로 발표되었다. 이때문에 북한 외부에선 당중앙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설왕설래하였다.[3] 개정 전과 비교하여 변경된 부분만 아래에 서술하고, 글자 수도 변경된 부분만 세도록 한다.[출처] 임홍군 저 흔들리는 북한군 "인민군의 하루 일과" 中[4] 근데 이것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인민군들이 민가를 도둑질하고 터는 행위가 많기 때문.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