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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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十誡命
- Ten Commandments
1. 개요
(신명기 5장 / 공동번역)
1.모세는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그들에게 일렀다. "이스라엘은 들어라. 내가 오늘 너희의 귀에 들려주는 규정과 법령들을 들어라. 이것을 익히고 성심껏 지켜라.
2.우리 하느님 야훼께서는 호렙에서 우리와 계약을 맺어주셨다.
3.야훼께서 그 계약을 우리 선조들과 맺으신 줄 아느냐? 아니다. 우리와 맺으신 것이다.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하나하나와 맺으신 것이다.
4.야훼께서는 그 산 위 불길 속에서 너희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면서 말씀하셨다.
모세가 야훼로부터 받았다는 계율. 전체적으론 10가지가 넘는 계명이지만 후대에 추려서 10가지로 구분하기 때문에 '십계명'으로 불린다. 기독교에서는 이 십계명을 위반한 여부를 가지고 대죄이냐 소죄이냐를 판별하기도 한다. 최초로 문자로 기록된 성경이기도 한다.[1]복음은 신앙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명령하지 않고, 나머지 것들은 무관심하여 명령하지도 금지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한다거나, 또는 '''십계명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자는 파문될 것이다'''
원래 모세가 40일 동안 시나이 산에 있으면서 깨끗한 석판에 하느님의 말씀을 적어서, 기쁘게 들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자기 형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화가 난 모세는 석판을 던져서 깨버렸다. 이후 모세가 자기 형 아론에게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냐고 따져보니 "사람들이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길래, 금을 가진 사람들에게 금을 모아서 불에 던졌더니 금송아지가 나오더라"고 변명했다. 화가 나서 모세와 레위인들은 우상을 숭배했던 3,000명 가량의 사람들을 숙청해 버린다. 이 사건 때문에 레위 지파가 성직자 지파가 됐다. 그 후에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가서 다시 받았다고 한다.
현대적으로 봐도 모세의 행동은 말이 된다. 기껏 고생하면서 하느님의 말씀, 그러니까 타락하지 않기 위한 행동지침을 곰곰히 생각하며 새겼건만, 그 사이를 참지 못한 백성들이 우상 숭배나 하면서 타락했으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미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론 실제 성서에서는 단순히 석판을 깨고 군사를 모아 우상 숭배자들을 몰살했다는 기록만 남아있지만, 모세가 석판을 깨자 땅이 진동하고 번개가 쳐서 우상 숭배자들이 죽었다는 해석도 있다. 영화 십계에선 한 술 더 떠,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금송아지에 집어 던지자 금송아지 주변에 있던 땅이 갈라지는 것으로 묘사했다. 거꾸로 현대 느와르물 처럼, 우연히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 날에 사건이 일어났다는 해석도 이론적으론 가능하다.
원래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개신교의 경우 성경을 출판할 때에 따로 발췌하여 부록으로 수록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톨릭 성경에는 부록으로 발췌하진 않고 대신 기도서에 들어있다.[2] 원래 성경 겉표지 안쪽에 십계명을 넣은 이유 자체가 '''예배 때 외우라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의 보수적인 장로교나 개혁 교회에서는 오전 예배 시작 때 이것을 낭독하며, 흔히 생각하는 사도신경은 저녁 예배 때 낭독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배 순서에서 십계명을 외우는 개신교는 사실 별로 없다.
가톨릭에서도 가톨릭 기도서 내 주요 기도문으로 십계명이 실려 있다.
타 종교에서 비슷한 개념을 들자면, 불교에서 재가인(평신도)이 지켜야 할 규정인 오계가 있을 것이다. 음주를 금하는 것을 제외하고는[3] 오계의 내용은 십계명에서도 비슷한 규정을 찾을 수 있다. 오계 이외에도 팔계, 십계 등도 불교에 있으나 너무 빡세서 잘 안 쓰인다.
십계명이 아톤 18계명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아톤 18계명의 존재여부가 불분명한지라 신빙성은 떨어진다. #기독교 측에서 역수입해서 10계명에서 18계명이 나왔다고 보기도 한다.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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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모세의 십계명에 대한 직접적 서술을 한 곳은 출애굽기(탈출기)와 신명기다. 밑의 내용은 출애굽기(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십계명에 대한 구절이다.
3. 구분법
이 두 가지를 비교하면, 가톨릭과 루터회의 제1계명이 정교회나 다수 개신교에서는 제1계명과 제2계명으로 나뉘어져 있다. 반면에 가톨릭과 루터회의 제9계명과 제10계명이 정교회나 다수 개신교에서는 제10 계명으로 합쳐져 있다.
첫 1~4(가톨릭 및 루터회에선 1~3)계명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나중에 있는 5~10(4~10)번은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인 도덕규범이다. 특히 앞선 계명들은 인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하나님과 같은 자리(또는 그 위의 위치)에 오를 수 없음을 의미하기에, 훗날 나타난 개념인 메멘토 모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십계명 역시 1등은 항상 하나님이 차지하고 있으니 절대로 교만에 빠지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살라는 지침이었다.
또한 굳이 유대교,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5~10(4~10)번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높은 확률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 살인, 강간, 위증, 절도, 강도는 모두 형법상 죄이며, 간통의 경우 한국에서는 더이상 형법상 죄가 아니지만 민사상으로 여러가지 불이익이 뒤따른다. 굳이 따지자면, 이혼 시 높은 위자료를 청구 받거나 재산 분할에서 큰 불이익을 당하는 등, 다시 말해 이혼을 요구할 권리를 잃는 모든 일을 말한다.
물론 모든 도덕과 법이 항상 지켜지지 않듯, 십계명 또한 심지어 기독교 내에서조차도 항상 지켜지지는 않는다. 종교적 해석에 기인하자면, 인간이 타락한 이래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날마다 계명들을 어긴다. (전도서 7:20, 요한 1서 1:8, 창세기 8:21, 야고보서 1:14, 3:2-8, 시편 19:1–12, 열왕기 상 8:46) 심지어 현대에도 기복신앙에 젖은 몇몇 탐욕스러운 종교인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십계명을 온전히 준수하려는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며, 계명 어기는 것에 대한 여러 성경 구절들은 인간의 영적인 나약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결국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도움 없이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지론.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국 한두 번은 어길 수밖에 없는 마당에, 대놓고 십계명을 어기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8]
4. 구분법에 대한 논쟁
이렇게 구분법이 다른 이유는, 개신교(감리회, 침례회, 성공회 등)와 정교회에서 쓰는 십계명은 유대교인이자 유대인인 필론이 구분한 십계명을 쓰는 것이며, 가톨릭과 루터교회는 아우구스티노가 구분한 십계명을 쓰기 때문이다. 다만 루터회 소요리 문답에서는 '질투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부분을 십계명 자체에 대한 준수 여부로 해석하고 따로 떼어서 설명해 놓았다. (#) 애초에 10가지의 계명이라고만 전해졌지, 번호가 매겨져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성경을 장과 절로 구분지은 것도, 십계명에 번호를 붙인 것도 후대의 일이다. 성경 저자는 절대 자신이 쓴 글이 수천년 많은 이들이 참고하는 '성경'이 될 줄도 몰랐고 장과 절로 자기 글을 토막토막 내놓을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우상 숭배에 대한 논쟁이 좀 크다. 가톨릭에서 제1 계명에 유일신 흠숭과 우상 숭배 금지를 한데 묶은 걸 가지고 일부 극우 성향 개신교인들은 가톨릭이 십자고상이나 성상에 대고 기도하는 등 우상 숭배를 하기 위해 (자신들 기준의) 2번째 계명을 '삭제'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런 과격파가 아니고도 반가톨릭 성향의 보수 개신교인들 사이에서도 '가톨릭이 성상을 교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십계명을 조작, 왜곡했다'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다. 성경에서도 명시적으로 성경의 내용을 가감하지 말라는 언급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어서,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개신교와 유사한 분류법을 택한 정교회는 우상 숭배 관련 내용을 두 번째 계명으로 다룸에도 이콘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이치에 맞지는 않는다. 정교회에서 필론식 2계명을 해석하는 방법에 관해서는 이 링크를 참고할 것. 성공회 역시 십계명 분류법은 타 개신교와 비슷함에도 십자고상을 비롯한 여러 형상을 사용한다. [9]
아우구스티노의 구분법에서는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를 굳이 따로 둘 필요가 없다고 봤는데, 이건 앞선 '흠숭'이라는 단어에 이미 '우상숭배 금지'가 당연히 따라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신교에서 제10항으로 합쳐져 있는 것이 따로 분류되어 있는 까닭은, 아내를 탐내는 것과 재물을 탐내는 것은 탐한다는 것 외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죄악(배우자 ≠ 물건)이기 때문에 객체가 아닌 죄의 종류에 따라 분류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데, 사실 큰 이유는 다르게 봐야 한다. 그것은 첫 번째 계명과 두 번째 계명을 하나로 합치다 보니 10계명이 9계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는 내용을 두 개로 분리해서 "남의 아내를 원하지 말라"와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로 구분하게 된 것이다. 사실 가톨릭의 6계명이나 9계명이나 같은 내용을 두 번이나 쓴 것이다. 남의 아내를 원하는 것이 사음 곧 간음하는 것이지, 이게 아니면 왜 남의 아내를 원할까?
본래 초기 가톨릭에서도 필론의 구분법을 쓰고 있었다가 성 아우구스티노가 이 십계명을 재분류하였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 분류로 바꾸게 된 것이다.
한편 가톨릭 측에서는 구약의 성상 금지 규정이 신약에서는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 그 자체로 인하여 약화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정교회도 마찬가지이며 십계명에 대해 필론의 구분법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이콘이나 십자고상 목걸이를 잘만 사용한다. 오히려 정교회의 공식입장에 따르면 구약시절에는 하느님이 "보면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경고했으나, 예수가 세상에 내려온 이후 하느님은 본 모습을 예수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였으므로 오히려 성화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이단적이라고 본다. 마르틴 루터도 면죄부, 성인 통공기도, 성유물 등 가톨릭의 다른 교리들은 직접 쓴 대요리문답서에서 대놓고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성상 금지 규정만큼은 '연약한 신자'들을 위해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으므로 가톨릭식 분류법을 그대로 유지했다. 물론 루터교는 가톨릭과 달리 성상을 아예 두지 않거나 십자고상만 예외로 두는것이 가능하다.
5. 오해
일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로, 십계명이 로마서에서 언급되는 인간이 지키기 힘들고, 도리어 인간을 죄로 구속하는 여러가지 구약 율법들과 동일하며, 인간을 지옥가게 만드는 법이라는 식의 주장이 있는데, 이는 십계명에 관한 기독교의 설명과 어긋난 주장이다.
그리스도교 신학에 따르면, 먼저 구약의 율법을 설명한 해당 로마서의 서술은 구약 율법의 불완전성을 강조하고 '행위'가 아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서술일 뿐, "구약 율법 = 사람들 지옥 가게 하는 법" 식으로 단정짓는 말이 절대 아니다. 또한, 신학적으로 십계명은 구약의 의식적, 전례적 율법과 구분되는, 신약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도덕법에 들어가는 법이다. 구약 율법의 일부이긴 하나 신약시대에도 적용되는, 영속적인 법인 것. 또한 신약 시대에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십계명의 일부 가르침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된 것은 사실이나(하단 문단 참조), 성경과 그리스도교 신학에서는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은총을 받고,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회개를 통해 끊임없이 다시 일어섬으로서 십계명을 지킬 수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분명히 강조한다. 즉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십계명은 오히려 믿음과 은총을 통한 준수로 구원의 길을 걷게 하는 법이지, 십계명 = 사람들이 지키지도 못할 법을 만들어 지옥 가게 하는 법이라는 주장은 절대 아닌 것이다.
또 다른 오해로, 안식일에 대한 오해가 있다. 구약 성경의 뿌리인 유대교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하여 쉬지만, 훗날 기독교 등에서는 일요일로, 이슬람교에서는 금요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이 때문에 안식일에 대한 논쟁이 간혹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범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냥 끼워맞추기일 뿐이고, 정작 원전인 십계명에서조차 정확하게 지정한 요일은 없다. 그저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키라'(출 20:8)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10] 따라서 요일이야 어떻든 간에, 일하는 동안에는 근면하게 일하고, 6일 동안 일한 후에는 재충전의 의미로 하루동안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과로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하나님에 봉헌하는 행위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성경에서 이미 '주 6일 근무 제도'를 정착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 여기에 가축들에게도 쉬는 날을 보장해줘야 한다(출 20:10)고도 확실히 언급되어 있지만, 이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목사는 적다. 실제로는 이 '쉬는 날 보장' 부분이 진짜로 중요한 부분인데도 말이다.
6. 신약 시대 이후
이후 신약에서는 예수가 등장하여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공동번역, 요한 복음서 13장 34절)"라며 새로운 계명을 주었다. 이는 곧 신, 구약과 전승을 총 망라하여 핵심적으로 요약한 계명으로 곧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계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계명을 간단히 두 개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라고 정의하였다.[11]
또한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기독교인들에게는 복음서와 사도들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십계명의 기존 규정에 포함되는 계명이라도 더욱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의무 / 다소 완화된 의무 등으로 어느정도 변화가 생겼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서는 복음서의 가르침에 따라 형제에게 성을 내거나 모욕하는 것을 금하는 것도 포함되었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같은 경우는 마찬가지로 복음서에 따라 이성을 보며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을 금지하는 계명이 포함되었다. 반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는 계명은 절대다수의 기독교 교파는 계명 자체는 유지하되 점차 주일로 변경되었고, 그 빡빡하기로 유명한 안식일 규정 역시 상당히 완화되었다.
7. 살인 금지 계명에 대하여
7.1. 전쟁 범죄
전쟁사를 살펴보면, 정작 유대교인과 그리스도인들은 이 계율, 특히 '''살인'''을 스스로 어겨온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넘겨 짚고 넘어가야 할 분명한 점은 바로 십계명의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그 의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십계명에서 말하는 살인의 금지는, 오늘날의 어감으로 따지면 살인(Kill)보다는 살육(Murder)에 더 가까우며, 십계명을 기록한 신명기계 본문 그 어디에서도, 전쟁 등의 행위를 계명에 대한 위반이라 해석하는 것은 찾을 수 없다. 즉 신명기계 본문에서 언급한 것을 후대인들이 무시하거나 왜곡했다기보다는, 신명기계 본문에서 '전쟁 금지' 등의 의도를 남기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상당수 현대 영어 성경(NRSV, NIV, NLT 등)에서는 계명을 murder로 번역하기도 한다. kill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으나(예: King James Version, Revised Standard Version, New Jerusalem Bible, 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kill은 아니다. 다만 ESV 성경의 난해주에 따르면, 십계명의 murder/kill은 오늘날 형법의 과실치사죄가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이는 반대로 뒤집어 말하면 요컨데 십계명은 살인이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불가피하거나 필요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흔히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거나,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운 참전 용사들은 분명 '살인'을 했지만 우리가 그들을 살인자 취급하지 않듯, 성경에서도 이들의 살인을 눈감아준다는 말이다. 가톨릭 신학에서는 이런 경우의 살인(전쟁시 교전)을 넓은 범위의 정당방위로 간주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정작 십계명을 가장 잘 지켜야 할 것 같은 유대교인과 그리스도교인들이 살인을 스스로 무시해왔다는 식의 서술은 이해에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이 종교 전쟁들은 조금도 불필요하고 부도덕한 것이 아닌 하느님을 위한 '''성전'''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본인들은 십계명을 어기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십자군 전쟁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전쟁시 살인에 대한 십계명 해석에 대해서, 가톨릭 신학은 '불의한 전쟁'과 '정당한 전쟁'을 구분한다. 정당한 전쟁이 벌어질 사유는 가톨릭 신앙의 박해를 막기 위해서, 또는 국가 주권의 침해를 막기 위해서 등이 있고, 비전투원에 대한 학살과 인권 침해 요소가 없어야 한다. 이런 경우가 아닌 단순한 침략 전쟁이나 학살, 약탈은 불의한 전쟁에 들어가 십계명을 어기게 된다. 이 기준으로 십자군 전쟁을 해석해보면, 성지 수복을 통해 중근동의 가톨릭 박해(또는 동로마 제국에 대한 이슬람권의 침략 및 정교회 박해)를 막기 위해 벌인 전쟁이므로 종교적 동기 자체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진행 과정에서 벌어진 유대인, 아랍인, 로마인(제4차 십자군 원정)에 대한 공격 및 민간 학살 등은 명백히 불의한 전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십자군 전쟁 과정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 공식 사죄하였다.
필요에 따른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이다. 정당방위나 긴급 피난 수준에 이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인을 정당화한다. 애초에 방어를 위할지라도 군대를 인정하고, 평화주의나 군대 무용론을 비웃으며 국가를 위한 참전을 찬양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며, 제도권 교육에서도 가르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 피해자가 강제로 징집된 군인 등 죄 없는 사람일지라도 불가피한 살인은 인정되며, 법적으로도 전쟁시의 살인은 죄가 아니다.
종교 역시 그 시대의 사상의 영향을 받는데[12] , 지금보다 더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과거이니 당연히 살인에 대한 개념이 흐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특별히 위선적이거나 사악한 게 아니라 그냥 기독교인이나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나 비슷했던 것이다. 실제로 살인의 이분론에 입각한 전쟁 참전 연설은 근대부터 현대까지 보수적 목회자, 신학자, 신도들에 의해 많이 이루어져 오기도 했다. 요는 A국과 B국이 싸울 경우 서로가 각자의 국가를 위해서 '기사도' '애국자' 정신으로 전쟁터에서 서로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극악무도한 죄인들의 인권은 생략되는게 전근대에서는 당연한 사고방식이었고, 심지어 현대에 와서도 범죄자 인권 하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는 걸 생각하자.
이것에 대한 안티테제로서는 마크 트웨인의 '''War Prayer'''(전쟁을 위한 기도)가 있다.[13] 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에 맞아 죽을지언정 남을 해하지 않겠다거나, 징병을 거부하다거나 하는 등의 평화주의적 기독교인들은 늘 존재해 왔다. 평화주의적, 진보적 기독교인의 시각에서는 위에서 거론된 '''살인의 이분론'''을 윤리학 뿐만 아니라 신학, 정치학적 관점에서도 아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비교적 보수적인 복음적 신학자들 중에서도 요더나 크레이빌 같은 사람들이 유명하다.
7.2. 사형제도
사형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으로는 국가권력이 범죄자를 정당하게 처벌하는 것이라 보기 때문에 계명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더군다나 성경 본문 곳곳에서도 사형제도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다만 랍비 유대교 이후로 유대교에서는 사형제 반대의 논거로 십계명을 거론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스라엘 형법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사형제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사형/국가별 현황 문서 참고. 가톨릭도 2018년부터 사형제를 완전히 반대하기 시작했으나 다른 기독교 종파에서는 여전히 사형제를 필수불가결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7.3. 자살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위 사항의 살인하지 말라는 내용은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이 된다. 단, 순교 등의 희생은 자살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가톨릭의 철칙이 되었는데, 십계명 자체에서의 살인 범주에 자살 역시 들어간다고 보는 관점은 기독교뿐 아니라 이미 마사다 항전 시기의 후기 유대교 등에서도 있었다.
8. 여담
맨 프롬 어스에서는 뭐든 하지 말라는 내용이라고 나온다.'''"I can sum up the ten commandments in ten words: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don't!"'''
난 십계명을 열 단어로 요약할 수 있어요.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 맨 프럼 어스[14]
조지 칼린은 더 쌈빡하게 십계명을 '너희는 항상 정직하고 배우자에게 충실해라'와 ''''살인을 하지 않도록 엄청 노력해봐라. 다른 신들을 섬기는 놈년들 빼고''''라고 단 2가지로 정리해 놓았다. #
멜 브룩스의 코미디 영화 '세계의 역사'에서는 모세가 원래 15계명을 받았는데 실수로 석판 하나를 깨뜨려서 십계명만 받았다고 둘러댄 것이라고 한다.
킹 제임스 성경에서는 이 십계명에서 전설적인 오자를 낸 적이 있었다.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지어다'(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에서 인쇄사의 실수로 'not'을 빼먹어서 '''간음할지어다(Thou shalt commit adultery)'''로 잘못 써버린 것. 그 바람에 실수를 저지른 인쇄사는 무거운 액수인 300파운드[15] 의 벌금형을 받았고, 해당 판본은 대부분 회수되었다. 약 40여부 정도가 세상에 남아 있는데, 모두 고가에 거래되는 등 희귀 수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보수적인 칼뱅주의자들과 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십계명 중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로마서 13장과 연관시켜 부모 뿐 아니라 국가지도자나 직장 상사, 학교 선생 등 위에 있는 모든 '정당한' 권위[16] 에 순종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에반 올마이티의 엔딩 크레딧에는 신이 11번째 계율로 너희는 춤출지어다!(Thou shalt do the dance!)를 선포하자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온다.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은 주체사상판 십계명이라는 말도 있다.
현재 기독교 종파들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있는 중국에서, ‘중국화’ 조치를 취한다는 핑계로 허난 성 뤄닝 현 지방당국이 현지 교회의 십계명 판에서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빼라고 강요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 당국, 모세의 십계명 대신 구계명 강요해, Bitter Winter, 2019.01.01일자 기사
섀도우버스의 확장팩 '열 개의 재앙'에서는 각 십계명이 의인화돼서 카드화되었다. 십계명 순서대로 유일의 재앙 마젤베인, 파괴의 재앙 리셰나, 침묵의 재앙 루르나이, 안식의 재앙 마윈, 모멸의 재앙 가르미유, 불살의 재앙 에즈디아, 정념의 재앙 바나레이크, 약탈의 재앙 옥토리스, 진실의 재앙 라이오, 결핍의 재앙 기르네리제. 특징으로는 5명의 남성 캐릭터는 모두 대응하는 십계명을 지키는 쪽으로 컨셉을 잡았고, 5명의 여성 캐릭터는 모두 대응하는 십계명을 어기는 쪽으로 컨셉을 잡았다는 것. 이를 하와가 뱀의 말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아담에게도 먹게 한 것에 연관짓는 해석이 있다.
대구광역시에 계명대학교라는 이름을 가진 대학이 있는데, 그 학교와는 개신교 계열의 미션스쿨이라는 것 외에는 이 십계명과는 딱히 관련이 없다. 애당초에 계명대학교의 계명은 '啓(열 계)明(밝을 명)'으로 한자에서부터가 다르다.
클라우드에서 데이터를 다운로드하여 태블릿에 저장한 최초의 인간이 모세이고, 그 데이터가 십계명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클라우드(cloud)는 구름, 즉 하나님의 인도를 상징하고, 태블릿(tablet)은 태블릿 컴퓨터가 나오기 전부터 판때기(성경에서는 석판)를 의미했기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우스갯소리.
[1]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이 살았던 족장시대에 야훼의 말씀을 기록한 성문화된 경전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십계명이야말로 야훼의 말씀을 문자로 기록한 최초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다.[2] 이는 기도서의 유무에서 비롯된 차이인데, 가톨릭은 개신교보다 정형화된 기도문이 많기에 따로 기도서를 발행하고 십계명도 여기에 적은 것이다. 즉 개신교 입장에서는 정형화된 기도문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주기도문, 사도신경 정도가 전부이기에, 성경의 부록으로 합쳐서 휴대성을 극대화한것.[3] 그것도 평신도에게는 완화되어 술에 취하지 마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승려들은 술 마시지 마라고 해석한다.[4] 모르몬교도 이 십계명 구분법을 사용한다.[5] 여기에 인용된 구절은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된 십계명을 따랐다.[6] 이 구절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등에서 가톨릭이 성경을 변개했다고 딴지를 걸기도 한다.[7] 이 부분이 조선 역사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기해박해로 인해 정하상이 잡혔을 때 정하상은 천주교를 옹호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 때 조선에서는 천주교도들을 두고 무부무군(無父無君; 아버지도 임금도 안중에 없는 이들)의 무리라 불렀다.(신해박해 당시 정하상의 아버지인 정약종의 책에서 무부무군이라는 표현이 나온 바 있는데, 왜 썼는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썼다는 이유로도 문제였다. 정약종은 천주교인이었다. 안 그래도 천주교는 이미 정조 시절 진산 사건으로 인해 불효자 집단 취급을 받아왔는데, 이 일로 그러한 부정적 인식이 굳어졌다.) 이에 정하상은 십계명에도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구절이 있다고 하여 해명하려고 했다.[8] 그런 행위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예레미야 7:9절 에서 대놓고 까발렸던 이유이기도 하다.[9] 논외지만, 성공회에서 예외적으로 십자고상을 성상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모세 시기 막대에 들려올려진 뱀(민수기 21장 9절)처럼 예수도 들려올려진다'(요한복음 3장)는 성경구절에 기반한다.[10] 물론 정확히 토요일이라고 표기가 안 되었을 뿐 애초에 유대인들이 철저히 지키던 토요일의 안식일은 창세 시절 하나님의 안식을 따라서 이뤄진 것이며 또 성경상에선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했기 때문에 맥락상으론 토요일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11] 가톨릭 성경 마태오의 복음서 22장 37절~40절[12] 반대로 시대사조를 형성하기도 한다.[13] 얇은 그림책 비슷한 형태이고 인터넷으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유튜브에 치고 보면 현대의 전쟁 영상과 같이 나오는 버전들이 많다. 브레히트의 전쟁교본(영문판 War Primer)과 함께 꼭 읽어볼 만한 글귀들이다. http://blog.daum.net/agohcl/8130334[14] 개신교, 정교회의 방식을 따르면 4번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와 5번째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Don't'가 아니라 'Do'다. 따라서 이 문장은 "Don't, don't, don't, '''do, do,''' don't, don't, don't, don't, don't"가 되어야 맞다. 가톨릭, 루터교회의 방식을 따르면 첫 번째, 3번째, 4번째를 Do로 바꿔야 한다.[15] 약 6000만 원.[16] 단, 가톨릭과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정당하지 못한 권위(종교 박해나 정치적 탄압과 폭정을 가하는 국가권력과 지도자, 상급자라든지, 학대나 박해를 저지르는 부모 등)에게는 해당 명령과 지도에 대해 순종할 의무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