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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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35년에 묘청 등등 서경 중심 세력이 주도해서 세운 나라. 존속 기간은 1135년~1136년(1년)이다. 수도는 고려 서경(지금의 평양).
2. 상세
인종은 개경파 권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서경파 승려, 신료들에게 힘을 주고 별궁 대화궐(大華闕)을 지어 건룡전(乾龍殿)에서 정무를 보는 등등 서경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당시 고려는 신하였던 여진이 크게 성장하면서 역으로 신하가 된 상태였다. 고려는 이 상황에 큰 불쾌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묘청은 이를 부추겨 서경을 두번째 수도에서 첫번째 수도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즉 서경 천도를 주장했는데 그는 국왕이 서경으로 옮겨 가면 36개의 국가가 무릎을 꿇을 것이고 금국 또한 항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고려가 칭제건원을 하자고도 주장했다.[1]
묘청은 고려의 상처입은 자존심을 건드려서 본인의 거점지인 서경을 강화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력을 키울 셈이었다. 하지만 묘청의 허무맹랑한 주장은 그 누구도 진지하게 받지 않았다. 되려 반발심을 가진 개경파가 묘청을 죽이자고 상소를 시작했고 묘청이 지나치다 싶어진 인종 또한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된다.
결국 입지가 줄어들고 어그로만 끌려서 입장이 위태로워진 묘청은 반란을 일으켜서 나라를 세운 뒤 국호를 위(爲)이라 하였고[2] 연호를 천개[3] , 군대를 천견충의군[4] 이라고 하였다. 군주는 공석이었고, 이는 자신이 성공하면 인종을 데려다가 꼭두각시 황제로 세울 심산이었을 것이다. 서경파가 천도를 주도했다가 반대 세력인 개경파의 반발에 천도가 좌절된 탓이 컸기 때문인지 인종 이외의 인물을 황제를 추대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황한 고려 조정은 김부식을 보내서 서경에 대한 토벌령을 내렸다.
토벌군의 지휘관이 된 김부식은 개경에 남았던 서경파 인사인 정지상, 김안, 백수한을 묘청과 공모한 반역자로 몰아붙여서 처형하였으며[5] , 군세를 나누어 서경군의 외부 진출을 차단하는 작전을 세워 서경군을 밀어붙였다. 그러자 서경에서 내분이 일어나 조광#s-3 등이 묘청을 살해하고 수급을 개경에 보내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개경에서는 항복한 서경군 장교들을 투옥하면서[6] 협상은 결렬되었고, 조광은 항전을 지속하고 김부식은 토벌군을 이끌고 서경을 포위공격하게 되었다.
1년에 걸친 전투 끝에 서경은 함락되고 조광은 자살했으며, 이로써 묘청이 꿈꾸던 대위국은 1년만에 무너졌다. 그리고 서경은 역적의 땅으로 취급받게 되면서 지위가 하락했고, 고려 본연의 고구려 계승 의식마저도 급격히 허약해졌다. 또한 숭문천무(崇文賤武) 의식이 이전보다 더욱 강해져서 무신정변이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3. 역대 지도자
4. 같이보기
[1] 고려는 실질적으로 여러 제도를 황제식으로 했으나 군주의 시호는 어디까지나 왕이었다. 그나마도 흔히 고려를 외왕내제라 하듯이 내부용이었다.[2] 항목명은 대위국이나 대(大)는 황제의 나라를 뜻하고, 국(國)은 나라를 지칭하는 단어이나 나라 이름을 부를 땐 잘 쓰이지 않는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도 문헌상으론 고려국, 백제국, 신라국, 가야국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국호는 "위(爲)"가 맞다.[3] 天開, "하늘을 열다" 또는 "하늘이 열렸다"란 뜻.[4] 天遣忠義軍, "하늘이 보낸 충의로운 군대"를 의미한다. 혹은 "하늘이 내려준 충성스럽고 의로운 군대" 라고도 해석된다.[5] 이는 김부식이 독단적으로 반란을 구실삼아 반대파를 제거한 것이었다. 사실 다른 서경파 관료들은 묘청의 난에 연루되지 않고자 개경에 그대로 남아서 묘청을 처단할 것을 그 누구보다도 강경하게 주장했었고, 인종도 반란을 일으킨 서경 사람들도 내 자녀나 다름없으니 반란의 주동자만 없애고 나머지는 살려주라고 일렀는지라 서경 중심 세력 관료들에게도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개경파가 반란을 구실삼아 가담하지도 않았던 서경파 관료들을 선참후계(先斬後啓, 먼저 베고서 아룀.) 식으로 숙청한 것이 문제였을 뿐.[6] 김부식이 조광의 항복을 받아들이기를 주장하고 인종도 이를 따르고자 했었지만, 다른 관료들이 이를 거부하고 항장들을 그렇게 수감시킨 것이다.[7] 일수로 따지면 재임기간이 17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