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1. 개요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99번길 5-1 (대청동2가)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부산교구의 주교좌성당. '대청동성당' 또는 '부산대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주보는 성 구주.
2. 역사
1903년 부산에 들어와있던 일본인 성공회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가정예배를 드리기 시작되면서 부산교회가 시작되었다.
1914년 캐나다 선교사 카트라이트(Stephen H. Cartwright)[3] 가 한국에서 풍토병으로 숨지면서 나온 사망보험금으로, 당시 대청동 2가 17번지와 18번지의 385평을 매입하게 된다. 한 선교사의 순교가 성당 건축의 초석이 되었던 것.
1924년 10월 31일 40여평 규모의 성당 건축을 완성하여, '성 구주 성당'(St. Saviour's Church)으로 명명하고 조마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하였다. 이는 서울대성당보다 2년 정도 먼저 지어진 것이다. 성당의 형태는 우측 회랑 부분을 제외하고는 현재도 건립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에서는 100년 가까이 된 기독교 건축물이 이 성당이 유일해서[4] , 이 지역의 근대 종교 건축을 연구할 때도 중요한 자료로 사용된다. 안타까운 것은 구체적으로 누가 설계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건축됐는지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점이다.
1946년 초대 한국인 관할사제로 임인재(요셉) 사제가 부임하였다. 이전까지는 일본인 신자들이 주축이 된 교회였으나 해방과 더불어 '한국인의 교회'로 거듭나게 된 것.
1951년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몰려 온 피난민들을 성당에 수용하고 의식주를 돕기 위해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 '성공회 의용봉사단'을 결성했다.
1952년 전쟁고아들을 수용하여 식사 및 주거를 제공하고 학습 지도 및 질병 예방을 지원하기 위해 '성 니콜라 어린이 안식소'를 개소했다.
1954년 부산시 교육청 제3호 인가로 '성화 유치원'을 개원했다.
1962년 지역 여성들의 자립과 자활을 지원하기 위해 해외 성공회로 부터 재봉틀 50여대를 기증받아 교회회관을 이용하여 '양재학원'을 개원했다.
2010년 문화재청에서 등록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하다가, 건축물이 등기는 물론 건축물관리대장이 없는 무허가 건물로 밝혀져 문화재로 등록을 철회하였다. 이후 중구청은 ‘1962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가옥대장 없이도 시장과 군수의 판단 하에 등재가 가능하다’는 건축법 시행규칙 중 부칙을 적용하여 90년 만에 준공을 허가하였다
2012년 박동신 오네시모 주교가 부산주교좌에 착좌하였으며, 2021년 현재까지 교구장 주교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3년 등록문화재 제573호로 지정되었다. 교세가 약한 대한성공회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부산교구 입장에서는 주교좌성당의 관리와 보수에 단비와 같은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된 것.
3. 건축 양식
대지 면적 456.2㎡ / 건축 면적 269.92㎡(81평) / 연면적 507.51㎡으로, 아담한 규모의 지상 1층 건물이다.[5][8] 조적조 건축물로, 목재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본떠 만든 성당으로 제대부는 둥글게 아치 형태로 틀을 형성하였으며, 반원형으로 둥근 천장에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교차 볼트가 설치되어 있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모양새를 갖춘 것.
현재 우측 회랑 부분을 제외하고는 건립 당시의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지만[9] , 증개축을 이어 오면서 외벽의 벽돌과 줄눈의 거듭된 치장의 흔적이 확연히 나타난다.
4. 여담
- 천주교 부산교구의 공동 주교좌인 주교좌중앙성당과 마주보고있다.
5.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대구광역시·경상북도·경상남도·제주특별자치도의 성공회 교회들이 대한성공회 부산교구를 구성하고 있으며,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이 부산교구의 모든 교회들을 치리하고 있다.
[1] 주교좌성당의 관할사제는 해당 교구 교구장이 겸임한다. 단, 교구장 주교의 주교좌성당 관할사제 업무는 주임사제가 대리한다.[2] 교단을 막론하고 부산광역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3] 한국 전역을 순회하며 사목을 하다가 1909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수원에서 임종하였다.[4] 그 다음으로 오래된 기독교 건축물이 1932년 준공된 천주교 언양성당이다.[5] 대성당임을 감안하면[6] 그때 당시에는 영국성공회 캔터베리관구의 치리를 받고있을때이다.[7] 성공회는 세개의 교구가 있어야만 하나의 ''''관구''''로 독립할 수 있었기에.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급한 교구분립으로 부산교구가 강제적으로 생기면서 자립능력이 없게되었다는것이 현재까지도 큰 문제다.[8] 그러나, 그도 그럴것이 원래 주교좌성당이 아니였다. 본래 대전교구소속 '부산 성공회 성 구주 '''성당''''이였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성공회[6] 는 관구설립을 목적으로 교구하나를 새로 분리,설정할 계획이였다.[7] 그래서 당시 대한성공회에선 부산에 교구를 신설하고, 부산대성당을 주교좌로 설정했다.[9] 우측 회랑부분 때문에 성당에 실제로 가보면 불균형감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