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리
1. 소개
NBA에서 뛰었던 선수. 좋은 득점력과 리바운드 능력을 겸비한 올스타급 빅맨이었다. 한국에서의 별명은 '''이대리'''.
2. 생애
2.1. NBA 입성 이전
미주리에서 태어나 플로리다 대학교에 입학, 플로리다 게이터스에서 4년을 전부 채웠다.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에서 제법 이름을 날렸으며 졸업반일 때는 신입생 알 호포드, 조아킴 노아, 코리 브루어 등과 함께 켄터키 대학을 꺾고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 챔피언을 차지했다. 고등학교때 슬램덩크 컨테스트에 출전해서 제임스 화이트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상당한 운동능력도 함께 자랑한 선수였다.
2.2. NBA 입성 이후
2.2.1. 뉴욕 닉스
리는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마지막 픽인 30픽으로 뉴욕 닉스에 드래프트되었는데, 안습하게도 지명 당시엔 엄청난 야유를 들어먹었다. 사연인 즉, 당시 닉스엔 이미 리와 비슷한 신장의 언더사이즈 파워 포워드가 많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뉴욕이 고향인 피츠버그대의 유망주 크리스 태프트가 의외로 그때까지 지명되지 않고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래프트장의 뉴욕 팬들은 태프트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으나 정작 호명된 이름은 데이비드 리... 잠시 멘붕에 빠진 뉴욕팬들은 정신을 차리고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다.
선수생활 초기에는 주로 벤치에서 출장하는 전형적인 허슬플레이어였다. 그러나 루키시즌부터 워크에틱을 인정받아 신인을 중용하지 않기로 유명한 래리 브라운감독의 눈도장을 받고 루키시즌 중후반부터 조금씩 중용되며 뉴욕팬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무엇보다 호평받았던 것은 좋은 운동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화려한 덩크를 비롯한 쇼맨십성 플레이를 철저히 지양하고 골밑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했던 태도였다. 2년차는 벤치 멤버임에도 시즌평균 10득점 10리바운드 이상의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암흑기였던 뉴욕팬들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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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플레이를 비롯한 공격에 눈을 뜨고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나서기 시작해 평균 득점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10년에는 엘리트 빅맨의 지표인 20득점-10리바운드를 찍으며 라트렐 스프리웰과 앨런 휴스턴 이후 근 10년만에 뉴욕의 첫 올스타로 선발되기도 했다.[1] 애석하게도 뉴욕은 암흑기였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뛰는건 꿈도 못꿨지만. 드래프트에서 야유를 받았던 청년은 이제 모든 뉴욕 시민들이 사랑하는 선수가 되어있었다.
다만 2010 오프시즌에 타 팀의 거물급 FA를 2명 이상 영입할 것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던 뉴욕으로서는 이미 올스타급 포워드가 되어버린 리를 함께 잡을 여력이 없었다. 결국 리는 2010 오프시즌 때 사인 앤 트레이드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계약조건은 6년 $80M. 뉴욕 닉스의 2010년 플랜 때문에 이미 예전부터 선수 본인과 팬들 모두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기에 선수 본인도 담담하게 이적했고 뉴욕팬들로서도 타 선수가 뉴욕을 떠날 때와는 달리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으로 리를 떠나보내며 새 팀에서의 성공을 빌어줬다.
2.2.2.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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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리어스로 이적한 후에도 변함없이 주득점원으로 활약, 점점 성장해가던 스테판 커리와 함께 2013년에 골든스테이트를 오랜만에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그러나 자신의 첫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엉덩이 부상을 당하고 말았고 출장을 강행했지만 샌안토니오와의 시리즈 내내 미미한 모습을 보였다.
2014년 NBA 플레이오프에서는 팀의 빅맨진이 부상으로 초토화된 상태로 LA 클리퍼스의 블레이크 그리핀과 디안드레 조던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2014-15 시즌에는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쉬고 있던 사이 드레이먼드 그린이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이면서 벤치멤버로 내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리는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였고 꿋꿋이 감독과 팀을 따랐는데[2] 2014-2015 파이널에서 소금같은 활약을 보이곤 팀의 우승에 보탬이 되었다. 우승 이후 보스턴 셀틱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2.3. 보스턴 셀틱스
존재감이 미미해지면서 출전시간이 줄었고, 결국 출전을 더 하고 싶다는 의사를 존중한 보스턴이 바이아웃시켰고, 댈러스로 팀을 옮겼다. 기록은 30경기 출전 경기당 16.7분 출전해 7.1득점 4.3리바운드 1.4 어시스트.
2.2.4. 댈러스 매버릭스
3월 26일 15-16 시즌 처음으로 오라클 아레나를 방문했다. 경기전 스테판 커리의 소개와 함께 14-15 시즌 우승 반지를 수여받았다. 경기에서는 친정팀을 상대로 23분 뛰고 12득점 9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매버릭스는 120-128로 아쉽게 패배했다.
댈러스에서는 팀의 한 조각으로 매우 선전하고 있다. 25경기 출전, 17.3분 동안 8.5득점 7.0리바운드 2점슛 성공률 .636을 기록하며 출장하는 동안만큼은 전성기적의 생산성을 되찾은 상태.
2.2.5. 샌안토니오 스퍼스
현재 벤치 멤버로 뛰면서 쏠쏠한 활약을 하고 있다. 높이가 낮아 눈에 띄는 보드 장악력이나 세로수비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마크 상대를 성실히 잘 찾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보리스 디아우와 데이비드 웨스트가 빠지면서 샌안토니오 벤치멤버들의 패싱 게임이 헐거워질 수 있었지만, 특유의 패싱 센스와 허슬을 통해 이를 메꿔주고 있다.
16-17 시즌 종료 후 자유이적시장에 나왔지만 무릎 부상의 여파인지 팀을 찾지 못했고 한국 시간 2017년 11월 20일, 은퇴를 선언했다.
2.3. 은퇴 후
덴마크의 테니스 선수인 카롤리네 보즈니아키[3] 와 2017년부터 교제했고, 2019년 6월에 결혼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백인치고 준수한 스피드와 중거리 슛을 가지고 있어서 픽앤롤 플레이에 능한 선수였다. 뛰어난 득점력을 갖췄지만, 이타적인 마인드를 겸비하고 있어서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를 통해 팀 공격을 원활하게 하는 능력 또한 갖춘 선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온 선수인 만큼 구력이나 팀플레이, 멘탈 측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단 평범한 운동능력과 사이즈때문에 수비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포지션 역시 파워 포워드와 센터를 넘나드는 트위너에 가까웠기 때문에 운동능력이 떨어지면서 경기력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1] 앨런 아이버슨의 대타 출장.[2]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출전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팀 분위기와 동료, 감독의 의사를 존중하는 개념있는 답변을 했다.[3] 세계랭킹 1위도 했던 적이 있으며, 랭킹에 비해 그랜드슬램 성적이 좋지 못한 편이었으나, 2018년 호주오픈에서 우승하면서 그랜드슬램 무관을 탈출하였다.과거 북아일랜드의 골프선수인 로리 맥길로이와 약혼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