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킴 노아
1. 소개
미국의 前 NBA 농구선수.
아버지는 1983년 롤랑 가로스 우승에 세계랭킹 1위(단 싱글은 세계랭킹 3위. 1위는 더블 세계랭킹이다)도 해봤던 프랑스 테니스계의 전설이자 은퇴 후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야닉 노아(Yannick Noah)이며, 어머니는 미스 스웨덴 출신인 세실리아 로드로, 미국/프랑스/스웨덴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2] 슈퍼스타 데릭 로즈가 부상으로 쓰러지고, 루올 뎅도 트레이드되어 안습이 될 줄 알았던 시카고를 꿋꿋이 지탱하며, 2013-14시즌 올해의 수비상을 차지하는 등, 맹활약을 했지만, 이후 시즌에서 부상 빈도가 늘어나고, 노쇠화로 부진한 14-15 시즌을 보낸 뒤 벤치멤버로 내려갔다. 15-16 시즌에 결국 본인이 계속해서 식스맨 역할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인터뷰를 하는 등, 시카고 불스와의 결별이 예상되는 가운데, 데릭 로즈가 트레이드된 뉴욕 닉스와 4년 7200만 달러의 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노아는 닉스에서 전혀 몸값을 못하고 있다.[3]
2. 플레이스타일
좋은 사이즈와 날렵한 스피드, 뛰어난 패싱센스를 겸비한 수비형 센터.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으며, 공에 대한 엄청난 집착과 투지로 리바운드를 따내고 상대를 막아낸다.
2013-2014 시즌 리그 최저실점팀인 시카고 수비의 선봉장. 여기에 더해 로즈가 뻗은 다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 패싱 센스가 특징으로, 2014년에는 경기당 평균 5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적립하는 포인트 센터로 활약하고 있다. 로즈 없는 불스를 혼자서 이끈 결과 2014년, 드디어 선수 생활 처음으로 올해의 수비수 상을 차지하게 되었다.[4]
시카고의 저질 공격력을 해결할 정도로 득점 센스가 뛰어나지는 못하며[5] 가끔 점프슛을 던지긴 하는데 폼이 좀 저질이다.(…)[6] 경기 도중에 지나치게 흥분해 상대 선수와 트러블을 일으키는 일이 제법 있다. 심판에게 뻐큐! 라고 외치고 퇴장당한 적도 있으니...
3. 커리어
뉴욕 출생으로 1988년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살았다가, 부모님이 이혼을 해 13세 때 뉴욕으로 돌아왔다. 농구는 프랑스에 있을 때부터 해봤으며 키가 크기 전에는 가드로 플레이했다고. 2004년에 플로리다 대학교에 입학해 신입생때는 평균 9분 남짓밖에 뛰지 못했지만, 2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해 알 호포드, 코리 브루어[7] 와 함께 NCAA판을 휩쓸었다. UCLA와의 결승전에서 16득점 9리바운드로 팀내 최고 기록을 찍고 우승, Final Four 최고 선수로 선발되었다.
노아는 주가가 많이 올라갔지만 NBA 무대에 진출하는 대신 대학리그에서 1년 더 뛰기로 하고, 다시 한 번 팀을 최고 시드로 이끌며 두번째 결승 무대에 올랐다. 상대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였는데, 이때는 1학년 센터 그렉 오든의 포스에 밀려 고전했지만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이후 노아는 동료들과 함께 NBA 드래프트에 나선다.
호포드가 3픽, 브루어가 7픽으로 뽑힌 뒤 노아는 9번째로 시카고 불스의 선택을 받았는데, 드래프트 날 패션이 참 끝내줬다.(…) 첫 시즌은 플레이오프에도 가지 못하고 조용히 보냈으나 데릭 로즈가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입단한 후 부흥기를 맞이한 구단과 함께 성장한다. 2009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전년도 챔피언인 보스턴 셀틱스와의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는 등 팀 내 에너자이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8]
이후 불스에서 이런저런 부상을 당하며 제법 많은 결장을 하곤 했지만, 불스는 뛰어난 수비형 센터로 자리를 잡아가던 노아와 2010년에 5년 $60M에 계약을 체결한다. 2011년과 2012년에 시카고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으나 로즈가 2012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팀에 암운이 끼기 시작한다. 노아 자신도 3차전에서 왼쪽 발목을 다치면서 필라델피아에게 업셋을 당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로즈가 복귀하지 않은 12-13 시즌, 노아는 자신의 패싱 센스를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로스터가 부실해진 시카고의 추락을 저지하면서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하게 된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족저근막염을 앓으면서도 출전을 강행하는 투혼을 보여주면서 브루클린 네츠를 꺾는 데 성공했다. 로즈가 돌아오자마자 또다시 시즌아웃을 당해 암울해보이던 13-14 시즌에도 시카고를 플레이오프로 이끄는 1등공신으로 활약했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올 NBA 팀에도 들어갔으며 올해의 수비왕으로 뽑히기까지 한 만족스러운 시즌이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워싱턴 위저즈와 만나 공격력의 열세를 극복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몸 상태가 많이 안좋아져서 심하게 부진한 14-15 시즌을 보낸 뒤 감독이 혹사의 대명사 톰 티보도에서 프레드 호이버그로 교체된 뒤 벤치멤버로 내려갔다. 15-16 시즌에는 본인이 계속해서 식스맨 역할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인터뷰를 하고 있고, 12~1월 경에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다, 불스팬들은 이번 시즌이 노아의 불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미네소타의 감독으로 부임한 톰 티보도가 노아를 원한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데릭 로즈가 트레이드된 뉴욕 닉스와 4년 7,200만 달러의 계약을 맺는다.[9]
노아는 이미 불스 마지막 시즌부터 빠르게 기량을 잃기 시작했고 닉스 이적 이후에는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어졌다. 또한 연간 1,800만 달러를 차지하는 등 트레이드 조차도 어려운 상황이며 라커룸 리더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진정한 먹튀의 길로 들어섰다.[10] 닉스 계약 이후 워낙 빠르게 존재감을 잃고 코트에 나서지도 아예 먹튀라인에서 조차 보이지 않는다.
2018년 12월 4일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올 시즌 잔여 기간 동안 조아킴 노아가 등번호 55번으로 뛴다고 밝혔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의 경기에서 오랜만에 시카고 불스 시절 동료인 데릭 로즈, 타지 깁슨, 루올 뎅과 재회했다. 이후 2020년 3월 9일에 LA 클리퍼스와 10일 계약을 맺었다.
2020년 7월 코로나19로 인해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재개된 리그에서 얼음통을 떨어뜨렸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쳤고, 그 여파로 고작 5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클리퍼스에 방출한 후 현역에서 은퇴한다고 밝혔다.
4. 여담
- 슈팅 폼이 매우 특이하다. 마치 투핸드 샷처럼 양팔을 쭉 뻗으며, 보통 선수들의 종방향 스핀이 아닌, 횡으로 스핀을 넣는 기괴한 슈팅인데, 전혀 들어갈것 같지 않으나 간간히 롱 2까지 꽂아주면서 상대 수비수의 멘탈을 붕괴시킨다.
- 모델 라이스 히베이루와 열애 중이다가 2019년에 약혼했다.
[1] 착화 신장은 7' 0" = 213.3cm 드래프트 익스프레스 홈페이지[2] 국가대표로는 프랑스를 선택했다.[3] 17-18시즌 주전 센터는 에네스 칸터이고 공격, 리바운드에서 노아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4] All-NBA 퍼스트 팀에도 들었다[5] 플로리다 게이터스 시절부터 완성형 선수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일정수준 이상의 득점 생산력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6] 비슷한 유형으로 숀 매리언의 장풍슛이 있다[7] 17-18시즌 현재 오클라호마시티에서 백업 가드로 뛰고 있다.[8] 6차전 연장 123-123 상황에서 폴 피어스의 볼을 스틸한 후 득점, 자유투까지 성공시키며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9] 닉스는 로즈와 멜로를 포기했고 포르징기스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했다.[10] 멜로 및 포르징기스와의 불화, 무분별한 트라이앵글 오펜스 신뢰, 데릭 피셔 감독 선임,노아와의 악성 계약 등이 필 잭슨 체재하에서 일어났고 그의 명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