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 녹유 탁잔
[image]
陶器 綠釉 托盞. 7세기 경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한국의 도기 잔 1셋트.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약탈되었다가 돌아온 대표적인 환수문화재 중 하나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453호로 지정되어 있다.
[image]
전체높이 11.5cm, 뚜껑지름 10cm, 받침지름 20cm, 높이 4cm, 입지름 3.8cm, 바닥지름 13.9cm.
서기 600년 경에 신라인들이 녹색 유약을 시유하여 만든 통일신라시대의 도기 탁잔이다. 고화도 소성의 회백색 바탕흙으로 잔과 잔받침을 만든 후 녹유를 입혔으며, 받침에는 짧은 굽을 만들어 받침 내면에 잔을 꽂을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이다.
특이한 점으로 잔이 반구형 모양인데 비해 뚜껑은 경사면에서 지붕처럼 가라앉은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와 같은 곡선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잔에서도 비슷한 양식이 보이고 있어서 이러한 잔의 모양을 당시 삼국이 모두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기에 만들어진 다른 청동기에도 이러한 양식이 자주 보이고 있어서 상당히 흔하게 사용되던 양산형 식의 도기임을 알 수 있다.
이 도기 잔과 잔받침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의 초대 주임(관장·1926∼1930)을 역임했던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가 약탈했던 것으로, 당시 이 사람은 겉으로는 한국 문화재를 보호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도굴꾼 집단을 배후에서 지원하며 금관총을 비롯한 수많은 경주 시내의 고분들에서 나온 수천여건의 신라시대 유물을 빼돌리다 1933년 대구에서 파견된 일본 검찰에 전격 체포된 인물이다.동아일보 : ‘고적보존회’ 만든 뒤 신라유물 도굴… 희대의 문화재 악당 이 도기 녹유 탁잔 또한 모로가 히데오가 경주에서 발굴해 일본으로 유출했던 도난문화재로,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돌려받은 것이다. 이 한일협정 당시 한국은 모로가 히데오가 빼돌린 수천여점의 유물 중 녹유골호, 경주 노서동 금팔찌,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등을 돌려받았으나 아직도 그가 빼돌린 장물 대부분은 일본에 여전히 유출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7세기 경의 다기 셋트로, 당시 한국의 도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일본으로부터 환수된 후 1967년 6월 21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1. 개요
陶器 綠釉 托盞. 7세기 경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한국의 도기 잔 1셋트.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약탈되었다가 돌아온 대표적인 환수문화재 중 하나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453호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image]
전체높이 11.5cm, 뚜껑지름 10cm, 받침지름 20cm, 높이 4cm, 입지름 3.8cm, 바닥지름 13.9cm.
서기 600년 경에 신라인들이 녹색 유약을 시유하여 만든 통일신라시대의 도기 탁잔이다. 고화도 소성의 회백색 바탕흙으로 잔과 잔받침을 만든 후 녹유를 입혔으며, 받침에는 짧은 굽을 만들어 받침 내면에 잔을 꽂을 수 있도록 장치한 것이다.
특이한 점으로 잔이 반구형 모양인데 비해 뚜껑은 경사면에서 지붕처럼 가라앉은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이와 같은 곡선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잔에서도 비슷한 양식이 보이고 있어서 이러한 잔의 모양을 당시 삼국이 모두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기에 만들어진 다른 청동기에도 이러한 양식이 자주 보이고 있어서 상당히 흔하게 사용되던 양산형 식의 도기임을 알 수 있다.
이 도기 잔과 잔받침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의 초대 주임(관장·1926∼1930)을 역임했던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가 약탈했던 것으로, 당시 이 사람은 겉으로는 한국 문화재를 보호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도굴꾼 집단을 배후에서 지원하며 금관총을 비롯한 수많은 경주 시내의 고분들에서 나온 수천여건의 신라시대 유물을 빼돌리다 1933년 대구에서 파견된 일본 검찰에 전격 체포된 인물이다.동아일보 : ‘고적보존회’ 만든 뒤 신라유물 도굴… 희대의 문화재 악당 이 도기 녹유 탁잔 또한 모로가 히데오가 경주에서 발굴해 일본으로 유출했던 도난문화재로,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해 돌려받은 것이다. 이 한일협정 당시 한국은 모로가 히데오가 빼돌린 수천여점의 유물 중 녹유골호, 경주 노서동 금팔찌, 경주 황오동 금귀걸이, 경주 노서동 금목걸이 등을 돌려받았으나 아직도 그가 빼돌린 장물 대부분은 일본에 여전히 유출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에 만들어진 7세기 경의 다기 셋트로, 당시 한국의 도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일본으로부터 환수된 후 1967년 6월 21일에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보물 제453호
도기 녹유 탁잔(陶器 綠釉 托盞)은 황녹색 유약을 입혀서 만든 잔으로 잔을 받치기 위한 접시모양의 받침과 뚜껑을 모두 갖추고 있다.
곡선이 매우 완만한 접시모양 잔 받침의 안쪽 중앙에는 잔을 고정시키기 위한 원통형 잔받이가 높게 솟아 있으며, 잔 바닥에는 길다란 다리가 붙어 있어 접시의 잔받이에 들어가 얹히도록 하였다. 잔 뚜껑 꼭대기에는 보주(寶珠) 모양의 꼭지가 달려있다. 잔이 반구형 모양인데 비해 뚜껑은 경사면에서 지붕처럼 가라앉은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와같은 뚜껑의 곡선은 무녕왕릉에서 출토된 은제탁잔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탁잔 뚜껑에서부터 나타나는 장식적 요소의 한 특징이라 하겠다.
황녹색의 유약이 비교적 두껍게 발라져 고른 유약 처리를 하였으나, 연질이어서 많은 부분이 벗겨져 암회색의 바탕흙이 노출되었다. 접시와 잔의 몸통 부분과 뚜껑에는 평행선 줄무늬가 새겨져 있다.
출토지와 제작장소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의 탁잔 양식, 특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제탁잔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기의 청동기에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