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매니악

 


1. 설명
2. 범죄 내용
3. 체포
4. 범행의 동기
5. 근황
6. 기타
7. 관련 링크


1. 설명


[image]
범인들. 왼쪽부터 빅토르 사엔코, 이고르 수프루니유크.[1]
'''The Dnepropetrovsk maniacs(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의 미치광이)'''
흔히 인터넷에서 "3 Guys 1 Hammer" 혹은 "3 Guys 1 Screwdriver"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사건.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우크라이나 21'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007년 6월부터 7월까지 우크라이나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2]란 곳에서 3명의 10대 후반 소년들이 21명을 재미로 살해하고 비디오를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건이다. 특정 대상 없이 여자, 어린아이, 노인, 노숙자, 취객, 성인 남성 등 무작위로 약해 보이는 사람을 살해했다. 범인들은 신나치주의를 신봉하는 미성년자며, 단지 재미를 위해 동물을 학대하고 21명의 사람을 살해한 뒤 휴대전화로 촬영해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뿌렸다.
21번 중 12번의 살인이 동영상으로 남겨졌고, 총 300개가 넘는 사진을 찍었다.
용의자들은 이고르 수프루니유크(Igor Suprunyuck), 빅토르 사엔코(Viktor Sayenko)와 알렉산드르 한자(Alexander Hanzha)로 모두 1988년생이며, '''검거 당시 19살이었다.'''

2. 범죄 내용


범죄 행각은 1988년생인 그들이 14세가 되던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지역에 살고 있던 러시아 출신 빅토르 사엔코, 이고르 수프루니유크, 알렉산드르 한자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겁이 많고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였다. 수프루니유크와 사엔코는 고소공포증이 있었고, 둘은 그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14층 건물 난간에 서 있거나 매달리는 등의 기행을 하였다. 피 공포증을 가지고 있던 한자는 셋 중에서 가장 겁이 많았는데 수프루니유크는 두 친구에게 떠돌이 개를 죽여서 두려움을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셋은 길을 떠도는 개들을 잡아 목을 매달거나 내장을 꺼내고, 피부를 벗기는 식으로 고문해 죽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번 사체 옆에서 기념 사진을 남겼는데 동물의 피로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그리기도 했고, 나치식 경례를 하거나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콧수염을 달고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2007년, 19세가 된 그들은 인간으로 표적을 옮겨서 여름 한 달 동안 살인 계획을 짰다.
첫 번째 살인은 2007년 6월 25일 늦은 밤에 일어났다. 피해자는 33살의 동네 여성이었는데, 친구 집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집으로 걸어 돌아가던 중 살해당했다. 여자가 그들의 곁을 지나갈 때 망치를 가지고 있던 수프루니유크가 기습하여 그녀를 공격했다. 그녀의 시신은 어머니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1시간 후, 사엔코와 수프루니유크는 한 명을 더 살해했다. 살해된 사람은 남성이었는데, 살해될 당시 벤치에서 자고 있었다. 그의 시신을 찾았을 때 그의 머리는 묵직한 무언가로 몇 번 내리쳐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진 상태였다. 그가 죽은 벤치는 검찰관의 사무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두 번째 살인은 2007년 7월 1일에 일어났다. 총 2명이 죽었는데 피해자들의 시신은 노보모스코프스크(Novomoskovsk)라는 마을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2007년 7월 6일에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에서 3명이 더 살해되었다. 첫 번째 피해자는 공격을 받았을 당시 클럽에서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의 시신은 어머니에 의해 아파트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두 번째 피해자는 28살의 여성이었고, 야간 경비였다. 사엔코가 진술하기를 여성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을 때 수프루니유크가 자신의 옷 속에 숨겨두었던 망치로 그녀를 몇 번이나 내리쳤다고 한다. 그러고서는 그녀의 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 망치를 닦은 후 가방을 던져버렸다고 한다. 같은 날 밤, 또 다른 여성이 살해당했는데 그녀는 세 아이의 어머니였고 장애인 남편이 있었다.
다음 날 2007년 7월 7일, 포드고로즈노예(Podgorodnoye)라는 마을에 살고 있던 14살 소년 2명이 대낮에 낚시를 하러 갔다가 마을 근처에서 공격을 당했다. 두 소년들 중 한 명은 살해당했고, 다른 한 명은 도망쳐 살아남았다.
[image]
▲ 도로변에서 피해자 세르게이 야트젠코를 기다리는 범인 이고르 수프루니유크. 손에 든 것은 노란 비닐봉지로 안에는 '''망치'''가 담겨 있었다.
[image]
▲ 세르게이 야트젠코가 도로에 내동댕이쳐진 사진.
2007년 7월 12일, 48세의 남성 세르게이 야트젠코(Sergei Yatzenko)가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가 사엔코와 수프루니유크, 한자에게 살해당했다. 야트젠코가 살해당할 당시의 동영상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정말 죽을 동안 끔찍한 고문들을 겪었다.[3]인간쓰레기들은 고통에 울부짖는 야트젠코를 보면서 비웃으며 즐거워했다. 결국 범인들은 야트젠코를 때려 죽인 뒤 피 묻은 망치와 손을 씻고 그 장소를 떠났다.
[image]
▲ 세르게이 야트젠코의 사진을 들고 있는 아내 류드밀라 야트젠코(Lyudmila Yatzenko).
범인들 중 한 명인 알렉산드르 한자는 겁이 나서 중간에 그만두었다. 하지만 사옌코와 수프루니유크는 범행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들은 그 후에도 13명을 더 죽였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반항할 힘이 없는 약한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쇠파이프로 죽였지만 죽이는 데에 시간이 너무 걸려 망치로 바꾸었다. 살해당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까지 고문을 당했고, 몇몇은 살아있는 채로 눈 등의 장기가 꺼내지기도 했다. 살해당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임산부였는데, 태아가 뱃속에서 꺼내져 있었다.
[image]
더불어 이들은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몰래 참석해서 뻐큐를 날리고 기념사진을 찍는 등 대놓고 고인모독을 하기도 했다.

3. 체포


[image]
▲ 법정에 출두한 범인들.
이들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14세 소년이 두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진술하면서 수사가 시작되었다. 경찰은 몽타주를 인근 술집과 전당포에 뿌리고 비공개로 수사를 진행했다. 7월 23일, 수프루니유크가 피해자의 휴대폰을 전당포에 팔러 왔다 체포되었고, 곧 나머지도 검거되면서 범행을 시작한지 28일만에 이 끔찍한 살인 행각은 막을 내렸다. 수프루니유크와 사멘코는 당시 법정최고형인 무기징역에 처해졌고 한자는 9년형을 선고받았다.
살인범들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은 "살인같은 짓 안 했다"며 "아이들의 자백은 강요된 것"이라고 지껄였다. 물론 아무리 금수저라도 연쇄살인마는 어떻게 해도 감쌀래야 감쌀 수가 없었기에 결국 법의 처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4. 범행의 동기


검찰의 말에 의하면 특별한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사엔코와 수프루니유크는 돈 많고 힘 있는 집안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스너프 필름을 팔아 부자가 되려 했다고 한다. 한 용의자의 여자 친구가 말하기를 그들은 각기 다른 40개의 스너프 필름을 만들려 했다고 한다. 용의자의 동급생에 의하면 수프루니유크가 의문의 남자와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사이트의 운영자가 수프루니유크에게 스너프 비디오를 주문했고, 비싼 돈에 스너프 비디오를 산다고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맞다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상업용 스너프 필름을 찍은 셈이 되는 것이지만 자백 결과 그냥 기념으로 찍었고, 나중에 나이 들고 나서 '''추억'''으로 감상하려고 저지른 짓에 불과했다고 한다. 어차피 뭐라고 말하건 살아서는 교도소에서 나가지 못할 인생들이니 그들이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니라는 게 경찰의 판단인 듯.
범인들이 살인 당시 찍었던 사진들에는 이러한 글귀가 있었다. '''"The weak must die. The strongest will conquer (약한 자는 죽어야만 한다. 가장 강한 자가 정복할 것이다)"''' 결국 자신들보다 훨씬 강한 공권력에 의해 체포당했으니 결국 자기들이 한 말 그대로 되돌려 받게 됐다.
그들이 집착하는 개인의 강함은 쓸데없는 개소리이자 억지스러운 자기합리화라는 것도 증명된 것, 훨씬 강한 공권력이라는 것도 개별 경찰이나 군인의 강인한 체력 때문에 강한 것이 아니라 그 '약한 자'들이 그들 각자의 '권력'을 위임해줬기 때문에 경찰과 법원, 군대가 강한 것이다. 결국 자기들을 체포하고 벌한 강함은 죽어야 한다던 약한 자들의 힘이다.

5. 근황


수프루니유크와 사멘코는 현재 우크라이나의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고, 한자는 만기 출소했다. 대부분 동유럽 국가들의 교도소는 전반적으로 흉악범은 인권이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냉전이 끝나고 민주화가 이뤄진 뒤 극단적인 사회 혼란 속에 엄벌주의 분위기는 오히려 공산체제 시절보다 더 강화되었으므로, 잡범이나 과실범이라면 몰라도 흉악범에 대한 대우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한 편이다. 또한 금수저라 쳐도 이 정도면 집에서도 포기할 수준이므로, 이들의 삶은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6. 기타


인터넷상에서는 아직까지 그 당시 살해행각의 동영상이 "3 guys 1 hammer"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으며 해외에서는 이 영상의 리액션 비디오를 찍는다. 다만 정신건강에 매우 안 좋을 뿐더러 죄 없는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가는 영상을 단순 오락용으로 보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대부분 수사와 명사가 붙은 모 영상 덕분에 포르노 종류인줄 알고 호기심으로 보려다가 잔인함에 당황하는 경우도 있다.
혹시라도 3 guys 1 hammer을 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절대'''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말기 바란다. 정말 잔인해서 보는 순간 정신이 마모되어간다. 정 궁금하다면 위 사건 내용 문단의 피해자 세르게이 야츠젠코 살해과정을 읽고 그 이상의 호기심은 가지지 않는게 좋다.
이후 동유럽 곳곳에서 신나치주의 청년들에 의해 아카데미 매니악과 같은 모방 범죄가 발생했다. 물론 이 범죄자들 모두 무기징역을 받고 교도소로 끌려갔지만 애초에 자기보다 하등한 사람은 죽여도 된다고 믿는 미친 작자들이 형량 따져가며 범죄 저지르지는 않는다.

7. 관련 링크



[1] 사진을 찍은 인물이 올렉산드르 한자이다. 뒤에 보이는 모자이크 처리된 것은 목 매달린 개의 사체다.[2] 약칭은 드네프르. 율리야 티모셴코의 고향이기도 하다. 유로마이단 이후 실시된 탈공산화 정책으로 2016년 5월 드니프로로 개명.[3]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지나던 야트젠코를 급습하여 자전거를 넘어뜨린 뒤 바닥에 엎어진 야트젠코를 도로에서 얼마 떨어진 풀숲으로 끌고 간다. 이후 여러 차례 야트젠코의 안면부를 긴 쇳덩이로 죽탕을 쳐버린다. 영상에서 함몰되어 피가 묻어 있는 야트젠코의 안면에 카메라를 들이대 그 끔찍한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 뒤 '''스크류드라이버'''로 야트젠코의 배와 장기를 푹푹 찌르며 쑤시는데, 그래도 죽지 않자 눈을 찌르고, 눈을 통해 뇌를 쑤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트젠코는 죽지 않고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손으로 눈을 감쌌다. 그들은 계속해서 망치로 야트젠코의 얼굴을 몇 번이나 내리쳤는데, 야트젠코는 말 그대로 얼굴이 반으로 갈라지고, 눈이 빠지고, 뇌와 장기들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지만 동영상의 화면이 야트젠코를 더 이상 찍지 않을 때까지 숨이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