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그풀 교도소 폭동사건

 


1. 개요
2. 발단
3. 전개

은하영웅전설의 에피소드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

'''라그풀 교도소 폭동사건'''

호랑가시나무관 습격사건 & 에프라임 거리의 전투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5장
  • 시기 : 우주력 802년, 신제국력 3년 4월 16일 ~ 17일 9시 40분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사건. 후세에서는 '''피와 불길의 4월 16일 사건'''이라고 칭한다.

2. 발단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정치범들을 인질로 잡고 이제르론 공화정부와 교섭을 시도한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 계획 중 일어난 사건이다. 라그풀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이 무기를 잡고 폭동을 일으킨 것이 발단이었다.[1]

3. 전개


우주력 801년 4월 16일 심야에 5000여명의 죄수를 수감한 라그풀 형무소에서 폭동이 발생하였다. 급보를 받고 현장을 지휘하러 달려간 군무성 관방장 안톤 페르너 소장이 경비병의 오인사격으로 왼쪽 위팔을 관통당해 전치 50일의 부상을 입었다. 거기에다 하이네센 중심 시가지에서는 '슈바르츠 란첸레이터'가 격발했다는 소문이 퍼져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슈바르츠 란첸레이터 육전부대가 헌병대에 저지당했고, 결국 슈바르츠 란첸레이터가 강제로 돌파하려 했으나 안톤 페르너의 적절한 대응으로 두 부대는 충돌하지 않고 라그풀 교도소로 향했다. 하지만 두 부대가 서로 경쟁적으로 진압한 탓에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게다가 사태 진압 도중 안톤 페르너 소장이 부상당해서 제대로 명령을 내리지 못해 의료부대는 형무소를 앞에 두고 3시간이나 투입되지 않았으며 그에 따라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라그풀 교도소의 폭동이 시가지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이 출동해서 공황이 시민들에게 퍼지는 것을 막았는데, 그는 이 와중에 누군가에게 저격을 당했으나 저격한 총이 열반응 추적식 총이라서 바렌 근처의 불길에 이끌려버렸기에 무사했다.
이 사건은 17일 9시 40분 진압되었으며, 수감자 중 사망자는 1084명, 중경상자는 3109명, 멀쩡한 사람은 317명, 나머지는 도주했거나 행방불명되었다. 경비병 측에서는 158명의 사망자와 907명의 중경상자가 나왔다. 이 사망자 중에는 전 자유행성동맹군 제1함대 사령관 파에타, 국립자치대학장 올리베이라 등도 포함되었고, 생존자에는 전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장 시드니 시톨레 원수, 과거 양 웬리 함대에 가담한 적이 있는 무라이 중장도 있었다.[2]
당시 얼마나 생지옥이 벌어졌는지 사망자 다수가 몸도 남아돌지 않았다. 원작에서 나오던 묘사에 의하면, 당시 한 제국군 헌병은 가 뭘 물어가고 있기에 저게 뭔가하여 자세히 보니 금방 잘려나가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 팔이라서 몸서리칠 정도로 잘려나간 몸 조각들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한편 하이네센으로 가던 이제르론 공화정부 요인들은 폭동이 일어나서 다수의 정치범이 죽고 하이네센은 사실상 계엄령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제르론 요새로 귀환했다.
일이 끝난 후 뮐러는 이것이 이제르론에 부정확하게 알려질 시 제국군이 정치범을 대량학살했다고 오해할까봐 이제르론 관련 인물을 교섭대표로 보내려 했으나 무라이가 의식불명이라 실패했으며 심지어 이후 치안이 잡히자 군무상서 오베르슈타인이 병원을 통제해 월권행위에 제지가 가해졌다.
사건에 대해 보고받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인질을 잡은 것도 마땅찮은 일인데 인질들이 살상된 점에 대해서 오베르슈타인을 심하게 질책하였다. 원작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수준으로 격노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사건의 배후로는 지구교가 의심되었으나 결국 사건의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다.

[1] 말이 죄수들이지 구 자유행성동맹의 행정과 군사방면의 고위 각료였던 사람들을 구금시켜 둔 것이다. 전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장 시드니 시톨레 원수, 양 웬리 휘하에서 참모장을 지냈던 무라이 중장, 전 자유행성동맹군 제2함대 사령관 파에타 중장 등이 포함되었다. 자세히 서술되진 않았지만 여러 높으신 분들이 잡혀 있었던 듯 하다. 실제로 쇤코프는 주전론이나 외치던 놈들이나 있으니 여기서 죽으면 민주주의의 순교자가 되는 것이므로 우린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2] 둘은 시톨레는 다쳐서 무라이는 의식불명이라 살아남았다고 서술되는데 당시 제국군은 탈출하려고 하는 이들을 향해 미친듯이 진압했으니 반대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두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