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르론 공화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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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정치-군사 세력. 일명 8월의 신정부(The New government of August).[3]
존속기간은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8월 8일~, 수도성은 알테너 성역 이제르론 요새.
2. 역사
2.1. 성립
우주력 799년, 자유행성동맹 소속 엘 파실 성계의 주석 프란체스크 롬스키가 바라트 화약으로 민주주의를 저버린 자유행성동맹에 분노하여 세력을 모아 독립을 선언한다. 그 직후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하이네센을 탈출한 양 웬리 함대가 엘 파실 자치정부로 합류하고, 롬스키 주석은 기뻐하며 엘 파실 독립정부를 창건하였다.[4]
엘 파실 독립정부는 이제르론 요새를 은하제국군에서 탈취하면서 제국에 정면도전했고, 결국 회랑 전투에서 양국은 충돌한다. 두 국가의 전쟁은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회담 요구로 일시중단되었으나, 지구교의 테러로 회담장으로 가던 양 웬리와 프란체스크 롬스키를 비롯한 독립정부 중진들이 모두 사망하였다.
사실상 지금까지 양 웬리와 프란체스크 롬스키의 명성에만 의지하여 유지되던 엘 파실 독립정부가 구심점을 잃고 와해될 위기에 놓이게 되자, 엘 파실 혁명군의 주요 멤버들, 즉 자유행성동맹군 '양 웬리 함대' 시절부터 양을 보좌해왔던 참모들과 지휘관들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민주공화주의세력을 결성하게 된다. 모두들 민주주의의 수호와 계승에 관한 양의 이상을 깊이 새긴 '양의 후계자'들이었던 것이다.
공화정부를 대표하는 주석직에 오른 프레데리카 그린힐은 양의 미망인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멤버들에게 등 떠밀린 경우고, 율리안 민츠는 겨우 중위 신분임에도 마찬가지로 양의 양자로서 후계자라는 상징성으로 등 떠밀려 실전부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신랄한 평가에 의하면 '''"고아와 미망인이 세운 연합정권."'''
우주력 800년 6월 6일 엘 파실 독립정부가 해체되었고, 양 웬리가 죽은 지 69일 후인 우주력 800년 8월 8일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라이 중장이 자진해서 나가면서 불안감을 느끼거나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제르론 요새를 나가 하이네센으로 돌아갔다.[5]
이름은 올리비에 포플랭이 이제르론 코뮌,commune,이라는 이름을 제안했으나, 혁명사상 코뮌이라는 이름을 붙인 혁명조직은 모조리 도중에 실패했다고 더스티 아텐보로가 반론하면서 기각, 카스퍼 린츠가 제안한 이제르론 공화정부라는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2.2. 제국과의 수호관계
이렇게 새로운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회랑 전투와 양 웬리 암살사건에서 다수의 장병과 간부들이 죽고 함선도 다수 파괴되었기에 은하제국과의 전쟁은 자살행위였다. 마침 카이저도 페잔에 돌아가서 내정에 집중하고 있었으므로 양국 간의 충돌은 없었다.
그런데 우주력 800년,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우르바시 사건을 계기로 반란을 일으킨다. 로이엔탈 원수는 무라이를 이제르론 요새에 보내 자신을 도와 은하제국군이 회랑을 통과하는 걸 막아준다면 구 동맹령의 지배권을 내어주겠다는 제안과 더불어 그들이 증오하는 욥 트뤼니히트의 신병을 인도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로이엔탈이 실패하리라 판단한 율리안 민츠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에르네스트 메크링거가 지휘하는 제국함대가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하는 걸 묵인하였다.
결국 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실패하였고, 노이에란트 전역 당시 제국에 협조해준 것 때문인지 한동안 양국은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2.3. 제국과의 대결과 화평
이제르론 공화정부와 제국과의 수호,修好, 관계는 이듬해 끝이 났다. 우주력 801년 하이네센에서 대폭동이 일어나고, 페잔 항로국의 데이터가 삭제되는 등 구 동맹령에 혼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이 이제르론의 공화주의 세력을 쳐서 훗날의 우환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구 동맹령의 반제국 세력은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자신들을 방관하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이제르론 공화정부 내에서도 주전론이 득세했고, 마침내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제국군과 싸우기로 결정했다.
우주력 801년 2월 이제르론 혁명군과 은하제국군은 마침내 교전했고 그 결과는 제국군이 4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승리였다. 이 승리는 '카이저의 정강이를 걷어차 줬다'고 구 동맹령에 선전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직접 노이에란트의 혼란을 진정시키려 하이네센으로 친정하려 했으나 건강 문제로 무산되었고, 대신 전권을 위임받은 군무상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가 하이네센으로 왔다.
하이네센으로 온 오베르슈타인은 먼저 자유행성동맹의 유명인사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교도소에 수감하고 이제르론 공화정부 요인들에게 항복을 강요했다. 이제르론 공화정부 요인들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하이네센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 사이 누군가의 계략으로 공인들을 수감한 라그풀 형무소에 폭동이 일어나면서 공화정부 요인들은 이제르론 요새로 돌아갔다.
우주력 801년 5월 말, '신세기호'라는 이름의 난민선이 구동맹령에서 탈출하여 이제르론 공화정부로 가다가 제국군에게 발각되었다. 곧 신세기호를 두고 제국군과 이제르론군간의 전투가 벌어졌고, 이 사실이 보고되자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친정하기로 결정했다.
우주력 801년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 벌어진 시바 성역 회전에서 율리안 민츠는 제국군의 방해를 뚫고 카이저 라인하르트까지 가는 데 성공했고,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그를 높이 사 전투 중지를 명령했다.
이후 하이네센을 비롯한 바라트 성계에 내정자치권을 반환하는 대신 이제르론 요새를 제국에 반환하는 것을 논제로 양국은 토의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후 역사는 알려져 있지 않다.
3. 국가 개괄
3.1. 정치
표면적인 이념은 민주공화주의. 과거 은하연방, 자유행성동맹, 엘 파실 독립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이념이다.
다만 주요 요직을 전부 군인들이 차지했다. 엘 파실 독립정부만 해도 롬스키 주석을 비롯한 정부요인들은 죄다 민간인이었지만, 이제르론 공화정부는 주석인 프레데리카 그린힐을 비롯하여 거의 전부가 군인이었고 투표가 아닌 엘 파실 혁명군의 간부들의 일방적인 회의로 결정된 사안이었다.[6] 거기에다 군사국장에 군인이 취임함으로써 문민통제가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체계가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엘 파실 독립정부가 해체되면서 남은 정치인들은 정부를 해산하고 죄다 이제르론 요새를 떠나버렸고, 남은 사람들 중에서는 군인이 민간인보다 훨씬 많았으며, 양 웬리의 명성을 기반으로 한 세력인 만큼 그와 함께 싸운 사람들이 집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민간정부를 구성하고 싶어도 앉혀놓을 민간 관료도 없고 그렇다고 모셔올 수도 없어 민간정부는 물 건너 갔는데 당장 정부는 구성하고 봐야 하니 군사정권이 되어버린 것. 당초 공직이라곤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으며 군 경력에서도 당시 소령에 양 웬리의 부관이었던게 전부인 프레데리카 그린힐이 정부 주석인 것만 봐도 얼마나 이들이 정부는 구성해야 하는데 마땅한 인재가 없었는지 알 수 있다.
최후의 근거지가 된 이제르론 요새의 인구가 채 백만이 되지 않으며, 요새에 상주하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군인 혹은 군인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군사국가'였다는 실상과, 또 전투를 통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이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7]
국가원수인 주석은 과거 양 웬리의 부관이자 아내였던 프레데리카 그린힐이다. 정치체계는 자유행성동맹을 참고해 주석 밑에 7개의 부국,部局,을 두었다. 각각 관방, 외교정보, 군사, 재정경제, 공부, 법무, 내정이다. 이 중 공부국,工部局,은 은하제국의 공부성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요새 내 비군사적 인프라와 에너지를 관리하게 했다.
자유행성동맹의 국부 알레 하이네센과 양 웬리의 초상을 나란히 걸었는데, 영웅숭배를 우려하여 총회의장, 중앙위원회, 주석집무실, 혁명군 사령부에만 걸었다. 그 외의 장소에서는 금지되었다.
3.2. 영토와 인구
영토는 오직 알테나 성역의 이제르론 요새 뿐으로 엘 파실 성계와 이제르론 요새 사이의 공역을 해방회랑으로 가지고 있던 엘 파실 독립정부에 비해서 크게 쪼그라들었다.[8]
그에 걸맞게 인구도 적어서 겨우 94만 4087명이었으며, 성비 또한 맞지 않아 남성 61만 2906명, 여성 33만 1181명으로 남초였다. 이는 당연하겠지만 소속된 인물들의 상당수가 군인이었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3.3. 군사
4. 주요 인물
- 프레데리카 그린힐 - 국가원수
- 율리안 민츠 - 군 사령관
- 알렉스 카젤느 - 군사국장
-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 더스티 아텐보로
- 올리비에 포플랭
- 발터 폰 쇤코프
- 라오
- 마리노
-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 보리스 코네프, 마리네스크를 비롯한 불효자호 승무원 - 협력자
- 카스퍼 린츠
- 카테로제 폰 크로이처
[1] 사실상 미래 영어[2] 공화정부 연호인 우주력 (SE)으로 표기함.[3] 설립이 우주력 800년(신제국력 2년) 8월 8일. 이런 별명이 붙여진 건 엘 파실 독립정부와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4] 당시는 독립은 했는데 딱히 정해둔 이름도 없었다.[5] 애당초 무라이가 이탈한 이유도 이것이다.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제 발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이탈할 가능성이 없는''' 자신이 나간 것[6] 하다못해 이 결정은 모든 휘하의 장병들이 다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수뇌부는 이들을 설득해야했다.[7] OVA에서 율리안과 아텐보로가 대화할 때 "어쩔 수 없이 군사조직의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8] 사실 회랑 전투 직전 이미 엘 파실 독립정부는 엘 파실 성계의 무저항선언을 해 사실상 엘 파실을 포기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