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 샹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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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딸 아노슈카 샹카르로 역시 시타르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노라 존스와는 이복 자매다.
1. 개요
2. 생애


1. 개요


이름
라비 샹카르(Ravi Shankar)
생년월일
1920년 4월 7일
사망
2012년 12월 11일 (향년 92세)

'''Godfather Of World Music[1]

'''

인도의 음악가.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연주했고,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과 세계 각지에서 대형공연도 했었고, 그래미상도 여러 차례 수상했다.

2. 생애


인도 바라나시에서 태어났으며, 열살 무렵 무용수인 형 우다이 샹카르의 무용단의 전속 악단에서 여러 악기를 연주하며 프랑스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2] 당시 형을 따라서 전 유럽과 미국을 돌면서 공연했고 국제적인 감각을 키웠다. 또 이때 미래의 스승인 알라우딘 칸이 잠시 형의 무용단의 악사로 잠깐 있었는데, 어린 라비는 그의 연주에 감동을 먹고 악단 생활을 그만두고 인도에 가서 스승으로부터 본격적인 시타르 수련에 들어간다.
30대 초반 스승 밑에서의 수련을 마친 라비는 바로 시타르 연주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때는 주로 서양 클래식 음악과들과 교류를 했으며 소련을 시작으로 영국과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
다시 한 번 라비 샹카르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사건이자 그의 이름이 서양 록 음악 팬들에게 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바로 비틀즈와의 만남이다. 비틀즈의 멤버들이 인도와 요가에 관심을 가지고 인도를 방문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특히 조지 해리슨은 라비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그에게 시타르와 인도 음악에 관해 배우기도 했다.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의 1965년도 앨범 러버 소울에서 시타르를 직접 연주를 삽입하였고, 이후의 앨범들에서 서양 록음악과 인도 음악풍의 사운드를 융합시킨 독특한 곡들을 만들기도 했다. 라비는 조지 해리슨과 만나기 전까지 서양 록/팝음악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비틀즈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며 조지가 비틀즈의 멤버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인도의 문화와 민속음악에 관심을 가지던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졌던 그의 이름이 비틀즈와의 교류를 통해 서양의 록/팝 음악 등 대중음악 팬들과 뮤지션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당시 히피 문화와 대형 음악행사의 전설이 된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과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연주하기도 했다. 조지와는 오랫동안 음악과 정신적인 교감을 나눴다.
참고로, 조지는 샹카르에게 시타르를 열심히 배워서 상당한 실력의 시타르 주자가 되었다. 조지의 시타르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첫번째 곡은 러버 소울에 수록된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이다. 그 곡에서 시타르의 음색을 들을 수 있지만 여기선 이국적인 무드를 조성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쓰였고 곡 자체가 인도음악풍인건 아니다. 반면 리볼버 앨범의 "Love you to"나 페퍼 상사 앨범에 수록된 "Within You Without You"는 훨씬 인도 음악풍에 가까운 시타르 연주곡이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의 바람이 거세게 일던 1960년대 미국에서 젊은이들의 반문화 운동이 절정을 이룬 행사다. 1969년 8월 15일,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첫날 밤. 인도의 전통 현악기인 시타르를 연주하는 샹카르(Ravi Shankar)가 다섯 번째 무대에 올랐다. […] 샹카르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비틀즈의 멤버 해리슨(George Harrison)에게 시타르를 가르친 스승으로, 이미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관중 수만 명을 사로잡았다.”''

'''- 이희경,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 빈.파리.베를린.뉴욕, 20세기 대도시를 가로지르는 현대음악의 풍경, 휴머니스트, 2015'''

뉴욕에서 활동할 때 수 존스라는 프로듀서 사이에서 태어난 재즈 가수 노라 존스의 아버지.[3] 성이 다른 것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외모를 보면 인도계의 피가 흐르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노라 존스가 태어난 지 2년 만에 다른 여성 사이에서 딸 아노슈카 샹카르가 태어났다. 아노슈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시타르를 배웠다. 2003년 그래미에도 월드 뮤직 부문에서 가장 어린 여성 뮤지션으로 지명된 바 있는데, 재미있는 건 이 때 노라 존스가 상이란 상은 거의 싹쓸이했다는 것. 아노슈카는 가끔 노라 존스와 같이 곡을 작업하기도 한다.
2012년 12월 4일에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12월 11일 건강 악화로 샌디에이고에 있는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류시화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도 언급된다.

[1] 실제 많은 뮤지션들이 붙여준 닉네임이다.[2] 이 시절 익힌 영어프랑스어가 나중에 그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의 대부분의 인도 음악가들은 영어를 전혀 못 했기 때문... 그래도 라비의 실력이 워낙 출중했으니 외국어 능력만으로 성공했다는 비판은 패스.[3] ...라지만 노라는 혼외정사로 얻은 딸이다. 라비가 젊은 시절 워낙 그런 일이 많은 사람이라 노라 존스가 그래미 상을 타고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그런 딸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