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지브 간디

 



'''6대 인도총리
Shri Rajiv Gandhi'''
'''राजीव गांधी
Shri Rajiv Gandhi
라지브 간디'''

<colbgcolor=#248c4c> '''출생'''
1944년 8월 20일
[image] 영국령 인도 제국 봄베이
(現 [image] 인도 마하라슈트라뭄바이)
'''사망'''
1991년 5월 21일(향년 47세)
'''국적'''
[image] 인도 제국[image] 인도
'''학력'''
Welham Boys' School
Ecole D'Humanité (기계공학)
'''정당'''
'''인도 국민 회의''']] '''
'''신장'''
178cm
'''종교'''
힌두교
'''직업'''
정치인, 파일럿
'''총리직'''
'''인도 6대 총리'''
'''임기'''
1989년 12월 18일1990년 12월 23일
[image]
할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와 함께
1. 개요
2. 행적
3. 가족 관계


1. 개요


인도정치인. 1944~1991. 제6대 총리를 지냈다.

2. 행적


1944년, 인도의 독립운동가 겸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외손자이자 인디라 간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원랜 정치에 별 뜻이 없어 인도 여객기 조종사 생활을 하였으나, 정치 활동을 하던 동생 산자이 간디가 비행기 사고로 1980년 요절하자 정계에 입문한다.[1]
이후 의원으로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개최 과정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이는 등 족적을 남겼고, 1984년 총리였던 모친이 암살당한 뒤엔 당내 인디라파의 지지를 얻어 할아버지~어머니에 이어 3대째 총리가 되었다. 추모 열기에 힘입어 직후 선거에서도 압승했고, 이후 개혁 정책을 펼쳤다. 경제적으론 과학기술산업육성과 친도시, 친시장 정책을 펼쳤다고 알려져있고, 대외적으론 적대 중이던 파키스탄과 대화에 나섰고, 스리랑카 내전시엔 분리주의에 반대하며 분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탈자본주의 실험 운동 중 하나인 오로빌 특별법도 그의 재임 시기인 1988년 인도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내외 이견과 타밀족들의 비토 등 불협화음에 시달렸고, 1987년엔 스웨덴 무기회사에 뇌물을 받았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결국 1989년 총선 결과 실각하고 만다.[2] 이후로 와신상담을 노리다가 1991년 총선에 다시 나섰지만, 타밀족이 많이 사는 타밀나두 주 유세를 하던 도중 꽃다발을 들고 환영하던 타밀족 소녀 텐모지 라이아라트남의 자살 폭탄 공격에 사망한다. 사후 수사결과에 따르면 소녀 역시 스리랑카 타밀엘람해방호랑이 반군이었다고 한다. 물론 소녀야 어른들의 사정에 등떠밀려 희생당했다라는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그의 사후 부인인 소니아 간디(이탈리아 출신, 결혼 후 귀화)가 90년대 인도 국민회의의 당수에 추대되었고, 인도 최초의 외국인 출신 의원이 되기도 한다.

3. 가족 관계


  • 아래 사진의 가장 왼쪽은 할아버지 자와할랄 네루, 2번째가 인디라 간디, 그 다음은 아들인 라지브 간디로 지금은 죽은 세 사람은 흑백사진이며 오른쪽에 있는 컬러 사진으로 나온 세 사람은 라지브 간디의 아내인 소니아 간디(1946~ ), 딸인 프리양카 간디, 아들인 라훌 간디(1970년생). 이 셋은 2020년 현재까지 모두 살아 있으며, 인도 국민 회의의 지도부로 활동하고 있는 인도 정계의 명실상부한 실력자들이다. 아들이나 딸이 총리가 된다면 무려 4대에 이르는 총리가 탄생하는 셈. 그렇다보니 네루-간디家는 인도 정계 최고의 명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1] 재미있게도 산자이 간디의 미망인 마네카 간디와 아들 바룬 간디는 이후 (네루-간디 가문이 주축인) 인도 국민 회의가 아닌 상대당 인도 인민당의 주요 인사로 활약한다.[2] 원내 1당은 했으나, 과반 확보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