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국(프랑스 제1공화국)

 



1. 개요
2. 역사
3. 관련 문서


1. 개요


18세기프랑스군로마를 점령하고 수립한 괴뢰국으로 고대의 로마 공화국과는 수도가 로마라는 것 이외에는 관계 없다.

2. 역사


프랑스 혁명 이전의 앙시앵 레짐 하에서 고위 성직자들은 제1신분으로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렸는데,이는 혁명 세력이 가톨릭 교회를 청산 대상으로 간주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혁명 이후 수립된 프랑스 제1공화국이 급진적인 정교분리 정책을 시행하자, 교황 비오 6세는 혁명 세력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혁명 정부에 협조하는 성직자들을 파문하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프랑스에서 가톨릭 교회의 입지를 더욱 악화시켜, 자코뱅 정권의 로베스피에르교황청의 입장을 따르는 성직자들과 신도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공포 정치를 폈다.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고 처형된 이후에는 공포 정치와 같은 과격한 탄압은 없어졌으나, 혁명 정부와 교황청의 대립은 끊이지 않았다. 마침내 1798년 2월에 프랑스 정부는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가 이끄는 프랑스군을 파병하여 로마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베르티에는 비오 6세를 프랑스로 압송하고 교황령의 폐지를 선언한 뒤, 괴뢰국을 수립했으니 그 나라가 바로 '로마 공화국'이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혁명에 반대하는 나폴리 왕국의 페르디난도 4세가 로마에서 프랑스군을 축출했으나,바로 다음달에 프랑스군이 탈환하여 교황령 부활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비오 6세는 프랑스로 압송된 이듬해인 1799년선종하였고, 루이지 바르나바 키아라몬티 추기경콘클라베에서 교황 비오 7세로 추대되었다. 비오 7세는 교황령을 되찾기 위해서는 나폴리보다 강력한 반혁명 세력의 도움을 필요하다고 파악했고, 러시아 제국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원을 받아 1800년에 로마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교황령을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듬해인 1801년에는 당시 프랑스의 통령이었던 나폴레옹과 정교 협약을 맺음으로써 교황령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고, 가톨릭 교회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탄압 또한 중지되었다.

3.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