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1. 개요
특히 중대한 어떤 죄들에 대해서는 가장 엄한 교회의 벌인 파문이 내려진다. 파문을 당하면 성사를 받지 못하며, 일정한 교회 활동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파문을 푸는 권한은 교회법에 따라 그 지역의 주교와 교황, 또는 이들에게서 권한을 받은 사제들만이 가지고 있다. 파문된 사람이 죽을 위험에 있을 때에는, 고백을 들을 권한이 없는 사제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사제가 모든 죄와 파문에서 그를 풀어 줄 수 있다.
가톨릭 교리서 1463항
제명 또는 파문. 또는 그대로 추방하다는 정도의 뜻을 가진다. 말 그대로 '''"당신은 죄를 지었으니 나가라."''' 특히 교회 용어로 Excommunicate는 교회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제재를 말한다.제 1331 조 ① 파문 처벌자에게 금지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성찬 제헌의 거행이나 그 밖의 어떤 경배 의식에서든지 교역자로서 참여하는 것.
2. 성사나 준성사를 거행하고 성사를 받는 것.
3. 교회의 어떤 직무나 교역이나 임무든지 집행하거나 통치 행위를 행하는 것.
② 파문 제재가 부과되거나 선언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
1. 범죄인이 제1항 제1호의 규정을 거슬러 행하려고 하면, 그를 저지하거나 전례 행위를 중지하여야 한다. 다만 중대한 이유가 방해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2. 범죄인이 제1항 제3호의 규범에 따라 불가한 통치 행위를 행하면 무효다.
3. 범죄인은 전에 수여받은 특전을 누리는 것이 금지된다.
4. 범죄인은 교회 안에서 품위나 직무 또는 그 밖의 임무를 유효하게 얻을 수 없다.
5. 범죄인은 교회 안에서 가지고 있는 어느 품위나 직무나 임무나 연금의 수익이든지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다.
교회법 제1331조.
파문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로는 excommunication과 anathema가 있는데, 전자는 성사참여를 금지시키되 갱생의 여지를 주는 교정벌의 뉘앙스가 강하다면, 후자는 교회의 단죄+영구제명의 뉘앙스가 더 강하다. 과거에는 전자는 minor excommunication(소파문)[1] , 후자는 major excommunication(대파문)이라 구분했으나 현재는 그러한 구분은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에서는 이게 제명이다. 하지만, 영구제명은 아니다. 예컨대 카노사의 굴욕으로 유명한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에서 싹싹 빌고 파문을 철회받았다. 자동파문 중 일부 죄악(예: 이단 가입)에 대해서는 그 죄악을 빠져나가기만 하면(예: 이단 탈퇴 및 해체[2] )파문이 자동 철회된다. 물론 탈퇴만으로는 성체를 모시기는 힘들고, 본당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은뒤 성체를 모셔야 한다.
교회법을 어기고 공동체에 죄를 지은 신자에 대한 교회의 제재로는 정직, 면직, 금지, 파문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파문 제재는 마태오 복음서 18장 17절의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라는 말씀에서 유래한 것으로, 제재 대상자 중에서도 '교회에 항명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제재 수단이다. 이는 대상자를 교회 공동체에서 제외시키는 형태로 가해졌으며,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영성체를 금지하는 것이다. 사실 Excommunicate라는 단어 자체가 communion, 즉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걸 막는 것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파문을 당한 사람은 대부분 성사를 받는 등의 일부 영신적 이익과 교회 공동체에서 받는 월급 등 대부분의 물질적 이익을 박탈당한다.
교회 구성원에서 내쫓지는 않지만 7성사를 받을 자격을, (회개하고 이 회개와 달라졌다는 뜻을 인정받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조당''''(impediment)이라는 징계도 존재한다. 공무원 징계에 비유하자면, 파문은 파면(자동파문은 당연퇴직)에 조당은 정직 처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가톨릭 평신도들의 경우에는 이단과 관련된 문제이기보다는, 혼인성사 관련 사항에 개인적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교회법상 적법한 혼인무효절차를 거치지 않은 이혼 및 재혼 등) 조당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 경우는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3] 본당신부에게 이 혼인조당 문제의 해결을 물어보고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가톨릭에는 교구마다 이런 혼인법에 대해 연구하는 교회법 학자 사제들이 있으며, 교구 법원과 교구장 주교의 권한에 의한 근본 유효화/일반 성당에서 시행 가능한 단순 유효화 등으로 혼인장애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4] 자세한 것은 혼인성사 항목으로.
물론 혼인조당이 아니고 가톨릭 교리를 대놓고 거슬러서 성사참여 금지령(영성체 금지령)이 떨어진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낸시 펠로시처럼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가톨릭의 계명을 무시하고 교리상으로 엄금하는 낙태, 또는 동성결혼 등을 찬성하다가 가톨릭 교회에 의해 성사금지 조당조치가 내려진 서구권의 일부 정치인들이 있다. 이들은 비록 파문자는 아니지만, 파문자와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교정하지 않는 이상 조당을 해제받거나 구원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공식적으로 대죄 상태를 고집하는 상황이기 때문.
2. 역사
중세 유럽에서는 파문을 당할 경우 가톨릭 신자로서의 '''모든 권리가 정지됨'''[5] → 교회와 마을의 공동체원이 아니므로 인권 무시[6] → 약탈+방화+기타 등등의 단계를 거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동서 대분열 전후로는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로마가 사이좋게 상호 파문을 날려대기도 했는데, 이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분열이 어느 한 쪽이 떨어져나간 것이 아니라 동등한 두 교회가 갈라진 것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역사상 동서 대분열이라고 알려진 1054년의 상호 파문 사건 자체는 엄밀히 말하면 교황 대사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양 개인 간의 파문이었지 교회에 대한 파문은 아니었다. 사실, 동서 대분열은 당대에는 그리 큰 임팩트를 준 사건은 아니었다. 분열 이후에도 정교회 측에서 가톨릭 측에 신학적인 논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정교회 측이 외세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가톨릭 측이 십자군을 결성해서 도우러 가는 등[7] 으로 활발한 교류를 했으며, 양자 간의 재통합을 위해 여러 번의 협상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논의가 전부 무산되고 정교회와 가톨릭이 영구적으로 분열된 것은 제4차 십자군 전쟁, 피렌체 공의회 등으로 인해 정교회의 가톨릭에 대한 적개심이 강화되고,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정교회의 대표격인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바람에 양자 간의 지속적인 교류가 불가능해진 뒤의 일이다.
어쨋거나 이름이 주는 임팩트와 당시 교회의 위상 때문인지 교황의 파문선고에 왕도 뭐든 설설 기는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군주나 봉신이 파문을 당하게 되면 그 동안의 모든 봉건적 관계가 '''쫑난다.''' 봉신이 파문을 당하면 군주는 더 이상 봉신을 보호해 주고 땅을 줄 이유가 없고, 군주가 파문을 당하면 봉신은 군주를 보호할 의무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오 7세 간에 발생한 카노사의 굴욕 사건. 파문 한방으로 교황이 세속 황제를 잠재워 버린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정치적인 제스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각할 경우엔 카를 5세의 사코 디 로마와 같이 '''무지막지한 피의 보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서 파문의 경우에는 교황의 권력이 아주 막강해야 효력이 발휘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도 눈을 꿈쩍도 안하는 왕들이 많았다.
- 당장 카노사의 굴욕의 주인공인 하인리히 4세도 일전에 자기를 파문한 적이 있던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1080년에 재차 파문을 하자[8] , 이번에는 군대로 응수하여 로마로 진격하였다. 결국 그레고리오 7세는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살레르노까지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4년 뒤에 화병으로 눈을 감았다.
- 대립교황이 있던 시절에는 정규 교황과 대립교황이 서로가 서로에게 계속 파문을 때리는 등 아주 개판이었다.
- 프리드리히 1세는 1160년에 알렉산데르 3세가 파문 조치를 내리자 "니깟게 뭔데 나를 파문해?"라며 옥타비아누스 추기경을 대립교황인 빅토르 4세로 추대했다.
-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인 만프레디는 2차례나 파문을 당했다. 1254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너 내가 시칠리아 내놓으라고 했는데 왜 안 내놓냐?"라며 파문을 내리자 협상을 시도하나 결렬되었다. 이후 만프레디는 세를 불리며 교황권에 맞서는 모습을 보이자 1254년 12월에 막 재위한 교황 알렉산데르 4세가 파문을 시전했다. 그러나 그건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결국 만프레디는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지만 이후 교황의 사주를 받은 프랑스왕의 동생 앙주의 샤를에게 침공을 당하고 비참하게 죽는다.
- 실지왕이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왕국의 존 왕도 횡령 혐의[9] 로 인노첸시오 3세에게 파문 당했고 이에 존 왕이 반발했다.
- 시칠리아 왕국의 왕이었던 페데리코 3세에게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파문을 내렸으나 왕은 물론이고 백성들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 필리프 4세에게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파문을 걸려 했지만 역으로 당하면서 한 시골마을에 갇히게 된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파문을 당했지만 빡친 나폴레옹에게 그대로 교황이 역관광을 당했다. 당시 나폴레옹의 권위를 생각해보면..... 이후 교황이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갇힌 나폴레옹의 파문을 취소하고 고해성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한다.
3. 현대
과거에 비하면 어느정도 관대해지긴 했지만, 파문이 가톨릭에서 사라진건 절대 아니다. 현대에도 파문은 여전히 유효한 제재 수단으로 남아 있다. 물론 정치적인 의미는 크게 낮아졌으며,[10] 사죄, 교화 등 유화적/자발적인 제재 수단을 중시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중대한 사태가 아닐 경우 잘 내리지 않는 처분이 되었다. 심지어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몇몇 성직자들조차 직위를 박탈당하고 감옥에 갔을지언정 파문은 당하지 않았다.
자동 파문에 이르는 죄악은 성체훼손, 낙태, 교황에 대한 살해 및 폭행, 불법적인(교회법적으로 무효한) 사제 및 주교 서품 (여성 사제 서품 포함), 교황청이나 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정죄한 이단 가입[11] , 고해성사 내용 누설 등이다.[12][13] 사실 파문에 해당하는 조건은 현행 개정 교회법이 시행된 1983년 이전에는 더 많았다.
가톨릭은 만민사제론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평신도가 성체성사(미사), 성품성사, 혼인성사, 견진성사, 병자성사, 고해성사를 집전했다간 바로 파문이다. 다만 세례성사의 경우, 죽음의 위험에 있는 비신자의 요청에 따라 평신도도 세례를 줄 수 있는데 이를 대세라고 한다.
현대에도 교황청과의 일치와 화해를 거부하는 집단이나 성직자에게는 가차없이 파문결정이 내려지는 케이스가 종종 있다. 2008년 교황청의 명을 받은 대한민국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나주 성모동산과 관련한 동조자들에게 자동 파문 제재를 선고하였다. 물론 나주 일당들이 천주교에 안팎으로 끼치는 해악을 생각하면 절대 과중한 처벌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경우는 교회측에서 개개인에게 파문을 통보한 게 아니라 '''특정 집단에 가입한 경우 자동파문''' 이런 식이기 때문에 탈퇴하거나 집단을 해체할 경우에는 자동으로 파문이 해제된다.
원래는 개신교 등 그리스도교 타 종파로 옮기는 경우도 파문 대상(이단 가입행위 혹은 배교 행위)[14][15] 이라 개신교로 옮긴 가톨릭 신자들이 파문당하는 제재를 받기도 했으나 현재는 배교 및 개종을 주임신부나 교구장에게 공식서한으로 표명하지 않는 이상 파문보다는 그냥 냉담자로 처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평신도가 타 종파로 옮기는 것에 대해 실질적인 처벌을 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고, 타 교파로 옮긴 사람이 추후에 가톨릭으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 교구청 전화문의에 따르면, 개종자도 단순히 냉담자로 처리하여 교구청에서 교적을 관리하다가 가톨릭으로 복귀하면 다시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행정처리 한다고 한다. 다만, 교적에 '파문'이라는 주홍글씨를 적지 않는다는 뿐이지, 사실상 자동파문 된 것으로 해석하는 가톨릭 신자들(특히 보수파)도 있다. 자동파문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영구제명급은 아니고, 고해성사 보면 가톨릭으로 회귀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자동파문은 아니고 일종의 조당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자동파문으로 해석하든 조당으로 해석하든 가톨릭을 떠나서 타 교파로 옮긴 사람은 죽을 위험에 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가톨릭에서 영성체와 같은 성사(가톨릭으로 복귀하기 위한 목적의 고해성사는 제외)를 받을 수 없다. 다른 측면에서 얘기하자면, 단순 배교자나 개종자를 교적에 파문이라는 빨간줄을 긋는 대신에 다분히 냉담자로 처리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파문의 의미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교회법에 명시된 대표적인 경우를 하나 들어 보면, 축성된 '''성체를 고의로 모독'''(일부러 내던지거나 파손할 경우)하고 정상인으로 확인되면 즉시 자동 파문이다.(성체모독죄) 이 때는 해당 본당의 신부는 물론 주교조차 사죄를 해줄 수가 없다는 게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이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는 건 사도좌 뿐이다. 즉 교황청까지 가서 싹싹 빌어야 한다는 얘기. 이렇게 처벌이 무거운 이유는, 가톨릭에서 해석하는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이기 때문이다. 비유나 알레고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즉 만약 고의적으로 성체를 훼손한다면, 그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과 동급이 된다. 당연히 동네 신부님 레벨에서는 절대 해결이 안되는 중범죄다. 물론 안전 장치는 있어서 정신 이상 혹은 미성숙으로 파손했거나 실수[16] 임이 명백한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17] 여기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예비신자이거나,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체성사를 받는 것도 해당한다. 모령성체는 성체훼손과 달리 파문 대상은 아니고 그 부분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면 된다.
또한 가톨릭과 성체에 대해 동일한 교리(성변화)를 믿고 있는 정교회 영성체, 가톨릭 사제 출신 성공회 신부나 루터교 목사가 집전한 성만찬을 모독하는 것도 파문 대상이 된다.
또한 한국 천주교에서 예를 들자면 마리아의 구원방주에서 주관하는 성사에 참여하는 천주교 신자 역시 '''자동 파문된다.''' 다만 이는 단체에 대한 파문이므로 단체에서 탈퇴하면 파문이 철회된다.
교황이 이탈리아 마피아인 은드랑게타 조직원을 파문한 사례가 있다.#
4. 개신교에서
원론적인 의미의 파문, 곧 성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금지는 개혁교회와 같은 개신교에서도 제도적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개혁주의 교단에서는 '파문'이라는 용어 대신 '출교' 또는 '권징'[18] 이라는 용어를 쓴다. 예컨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9] 에서는 교회가 구성원에게 가하는 책벌수단 중 하나로 '성찬례의 참여금지'와 '교회에서의 제명 및 출교'를 들고 있다. 금천구 소재 모 교회에서 칼부림을 한 장로회 목사 2명이 이런 중징계 조치(예장합동 의결)를 받았다. 장로회 교회법에서는 예장통합 교단 헌법을 기준으로 하자면 출교 당한 사람이 사면을 받아 교회로 복귀한다해도 기본적으로 2년의 수찬정지(성찬식 참여가 일정기간 금지됨. 가톨릭의 조당에 해당)는 기본적으로 따라오며, 그것을 해제하려면 치리회의 결의가 필요하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에서 최대 교파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의 경우 십일조를 내지 않거나 예배에 6개월 이상 빠지면 파문이라 논란이 있다.[20] 파문된 사람은 교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장로 선출에 참여를 못하게 된다. 중세시대와 달리 근대사회 자체가 종교의 영향력이 현저히 감소해버렸기 때문에, 중세 가톨릭의 파문처럼 강력한 이미지는 없다.
다만, 갱생의 여지를 남긴 가톨릭의 파문(특히 자동파문 중 일부 죄악의 경우, 진심으로 회개하여 고해를 하고 사면 받으면 가톨릭 교회로의 복귀 가능)과 다르게 개신교의 출교, 권징은 영구제명의 의미에 더 가깝다.
5. 야쿠자
조직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꼴통을 쫓아낼 때 쓴다. 감당이 안된다고 그냥 내쳐버리면 다른 조직원들 입장에서 자신들도 언젠가 사소한 걸로 트집 잡혀 쫓겨날 것을 우려해 반란이나 배신을 할 수도 있으니 쫓아내더라도 최소한 조직원들이 수긍할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렇게 조직에서 쫓겨나 조직과 관련 없다는 의미지만, 복권이 가능하므로 이를 이용해 사건 발생 시 수뇌부의 안위를 위해 수뇌부를 대신해 총대를 맨 조직원이 파문을 당하고 자수한 뒤 출소 후 높은 지위와 함께 복권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6. 무협물
무협지 등에서도 종종 보이는데 이때의 파문은 무술유파같은 곳에서 수련하던 수련생이 어떠한 이유로 스승의 눈밖에 나서 스승이 "넌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자신의 문하에서 강제로 추방시킨다. 또한 높은 확률로 파문당한 제자의 무공을 거둔다는 명목으로 혈도를 폐지하거나, 팔다리의 힘줄을 끊거나 아예 잘라버리는 등의 처벌도 병행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교회등지에서 쓰는 파문이란 단어는 이 단어를 이용해 번역해온 것이다.
7. 예시
7.1. 실존 인물/단체
- 마르틴 루터 - 교황이 자신의 신학설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황청에 반항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 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가들의 선배쯤 되는 피렌체의 종교개혁가. 당시 교회와 교황이 타락했다고 주장하며 피렌체에 신정정부를 세웠으나 교황으로서는 당연히 그를 용납할 리가 없었고, 결국 파문당하고 후에 분노한 민중들에게 교수형-화형에 처해졌다.
- 마르셀 르페브르 - 1988년 6월 30일 교황의 허락 없이 주교 4명을 성성했다는 이유로 성성한 4명의 주교 및 성성식을 참관한 주교 1명과 같이 자동 파문되었으며, 자동 파문의 제재를 받았음을 확인하는 파문 교령은 교황청 주교성에서 1988년 7월 1일자로 발표되었다. 2009년 1월 21일 성 비오 10세회 네 명 주교들의 요청에 의하여 화해와 온전한 일치를 위한 조치로서 파문 교령이 법적 효력을 상실하였다.[21]
- 베르나르 펠레이 주교.
- 베르나르 티시에 드 말로레 주교.
- 알폰소 데 갈라레타 주교.
-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 - 2009년 파문 제재가 철회되었다가 성 비오 10세회에서 추방된 뒤에 자신을 따르는 전통 가톨릭 단체들을 지도하며 해당 사제 3명을 허락 없이 주교로 서품해서 또 다시 파문되었다.
- 다음은 리처드 윌리엄슨 주교가 독단적으로 서품한 주교들로, 모두 현재까지 파문 상태인 인물들이다.
- 팔마리아 가톨릭 교회 소속
- 히네스 헤수스 에르난데스(그레고리오 18세 자칭) - 현재 환속 후 가톨릭 교회로 복귀하였다.
- 마누엘 코랄(베드로 2세 자칭)
- 호세 오데르마트(베드로 3세 자칭, 2016년부터 자칭 '재위' 중)
- 클레벨레 도밍게스 이 고메스(그레고리오 17세 자칭)
- 콜리나이트 가톨릭 교회 소속
- 미셸 콜랭(클레멘스 15세 자칭)
- 쟝 가스통 트랑블레(그레고리오 17세 자칭)
- 진정한 가톨릭 교회 소속
- 루시언 펄버마허(비오 13세 자칭)
- 대립교황을 자처하지는 않았으나, 교황공석주의를 주장하며 독단적 주교서품 행위를 저질러 자동파문된 인물들
- 응오 딘 툭 대주교 - 남베트남 대통령이었던 응오딘지엠의 형. 베트남 후에 교구 대주교였고, 비오 12세 교황 이후의 합법적 교황은 더이상 없다는 교황공석주의에 빠져 교황청과의 일치를 거부하는 전통주의 사제들을 주교로 서품하는 행위를 저질러 파문당했다.
- 다니엘 돌란 주교
- 도날드 산본 주교.
- 조셉 산테이 주교.
- 클래런스 켈리 주교.
- 얀 스타위페스 주교.
- 마크 피바루나스 주교.
- 다니엘 돌란 주교
- 도날드 산본 주교.
- 조셉 산테이 주교.
- 클래런스 켈리 주교.
- 얀 스타위페스 주교.
- 마크 피바루나스 주교.
- 에마뉘엘 밀링고 대주교- 아프리카 잠비아 출신의 가톨릭 대주교였는데, 독신을 지켜야 하는 성직자이면서 통일교를 믿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심각한 일탈을 저지른데다, 자기와 같은 가톨릭 기혼사제 4명에게 주교서품까지 하는 짓을 저질러 결국 2006년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파문당했다.
- 레오나르도 피니 신부 -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가톨릭 교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교리를 따르지 않고 화세(열망의 세례)를 부정하는 신학으로 인해 1950년대에 파문당했다.
- 스피노자 - 소년 시절 자신의 범신론적 사상을 전개했다가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했다. 몇 번이나 마음을 바꿀 것을 요청받았으나 결국 스스로 파문을 결정하고, 이후 그는 범신론 사상의 태풍의 핵으로 등극하게 된다.
- 제4차 십자군과 엔리코 단돌로 - 돈이 없던 십자군은 베네치아에서 배를 탈 수 없었고, 결국 베네치아 상인들과 합의하여 엉뚱한 곳을 약탈했다. 그리고 동로마 제국 내전에도 용병으로 개입하여 결국 가톨릭 국가인 헝가리를 공격했고, 이에 분노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파문을 선언했다. [23]
- 존 왕 - 거듭된 실패로 돈이 딸리자 교회와 수도원 재산을 강탈하자 파문... 그런데 성직자들을 내쫓아 그 수입을 존이 계속 차지하게 되어 느긋하게 버틸수 있었다. 결국 교회와 화해했다.
- 오토 4세 - 교황당 출신이어서 황제당(호엔슈타우펜)가문과의 경쟁 끝에 교황의 지지를 얻어 황제에 당선되나 배은망덕하게도 2년 만에 교황령을 침공해서 파문당했다.
- 프리드리히 2세 - 교황권 전성기에 십자군 전쟁등 비협조 및 교황청의 공의회 소집령에 대하여 시칠리아인들과 독일인 성직자들이 공의회에 참석하는 것을 무력으로 방해하려는 시도 등으로 인하여 3~4차례나 파문당했다. 1차 리옹 공의회 공식 문헌 도입부에도 프리드리히 2세를 파문하는 교황 인노체시오 4세 명의의 장문의 칙서가 수록되어 있다.
- 헨리 3세 - 역시 교황권 전성기 시절 십자권 관련 세금 비협조로 파문당했다. 그 당시 세금 안 냈다고 파문은 심하다 생각하여 오죽했으면 잉글랜드 성직자들은 교황청 대신 국왕 편을 들었다.
- 로렌초 디 피에로 데 메디치 - 교황청 자금 대출을 거절하자 교황 식스토 4세가 원수인 파치 가문의 친구인 살비아티를 피사 대주교로 발령냈는데[25] 로렌초 메디치가 깡패들을 동원해서 입국을 막아버렸다. 이일로 일단 메디치는 파문 당하고 피렌체에는 성무집행정지가 내려졌는데 파찌의 공모단 사건으로 동생이 사망하자 보복으로 파치와 대주교와 대주교의 동생을 죽여버리고 사체 훼손과 효수까지 해버렸다. 그런데 로렌초 메디치는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사돈이자, 레오 10세의 아버지이며, 클레멘스 7세의 백부이니 당연히 해제되어 성당에 묻혔다.
- 헨리 8세 - 이혼과 재혼이 교회법으로 금지되었음에도, 앤 불린과 결혼하고 싶어서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파문당했다. 하지만 쿨하게 영국 국교회(지금의 성공회)를 창설하고 스스로 영국 국교회의 수장으로 등극.
- 엘리자베스 1세 - 메리 1세(스코틀랜드) 구금 및 가톨릭 박해 등의 이유로 교황 비오 5세에 의해 1570년 파문되었다. 물론 본인은 이미 성공회 신자였으니 아버지 헨리 8세처럼 쿨하게 무시하였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파문. 나폴레옹의 위세가 전 유럽을 뒤덮은 상황에서 나폴레옹이 공표한 교황의 주교 서임권 박탈 선언에 맞서 파문을 선언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몰락과 유폐 이후, 죽음을 앞두고 있는 나폴레옹을 위해 파문을 해제해 줄 고해사제를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 이탈리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교황령을 무력으로 침공해서 합병하여 교황 비오 9세에게 파문당했다. 이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죽기 직전에 이르렀을 때 비오 9세가 파문을 취소해주긴 했지만, 이탈리아 왕국 자체는 교황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이탈리아 정부와 교황청의 험악한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베니토 무솔리니가 집권한 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바티칸 시국이라는 이름으로 교황령이 복원되어 이탈리아와 교황의 관계가 정상화되웠다.
- 나주 성모동산 - 집단에 대한 자동파문은 생각보다 굉장히 드문 편이다. 현재 이 단체의 지도자 윤홍선(율리아)와 사목을 담당해주는 장홍빈(알로이시오) 신부, 그리고 이 단체에서 신앙생활을 하거나 또는 관련된 모든 평신도들(2018년 TV조선 보도에 의하면 기도회 참석자가 100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은 전부 공식적으로 파문된 상태이다.
- 우리가 교회다(Wir sind kirche) 단체의 창립자들 - 이 단체는 독일계 여성인 마르타 하이저와 그 남편에 의해 1996년 독일과 오스트리아 남티롤 지역에서 시작된 평신도 단체이다. 교황청에서 과거 이단성이 있는 신학으로 경고를 받았던 전적이 있는 자유주의 성향의 한스 큉 신부를 영적 지도자로 삼고, 사제직을 부정하는 뉘앙스의 운동을 주도하였다. 2006년에는 하느님의 전능성 부정,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부정,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 부정, 가톨릭 교회는 보편적이지 않고 거룩하지 않다는 선언 등이 들어간 79개조 선언을 발표하여 영락없이 이단으로 낙인이 찍혔다. 현임 프란치스코 교황도 반대하는 여성사제 인정을 주장한 것은 덤. 결국 2014년 초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창립자인 마르타 하이저에게 파문을 선고했다.
- 그레그 레이놀즈 신부 - 호주의 가톨릭 신부인데, LGBT운동과 동성결혼에 대한 적극 옹호 및 여성사제 서품을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단체까지 주도하는 행각으로 인해 2013년 5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했다.
- 워마드 성체 훼손 사건의 범인 - 2018년에 성체 모독을 저질러 교황청의 별도 지시사항 없이도 교회법 규정에 의거해 자동 파문당한 상태이다.
- -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들을 파문한다'고 알려져 화제가 되었지만, 이는 강론 때 '너희들은 죄인이다'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사적으로만 발언한 것이고, 엄밀하게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 파문을 시행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은드랑게타는 마피아의 일원으로 인간말종스러운 범죄를 지속적으로 저지르고 다니고 있으므로, 이들은 사실상 파문당한 사람과 동일하게 회개하지 않으면 7성사 참례도 할 수 없고 사후에는 지옥에 갈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7.2. 가공 인물
극2의 서브스토리를 보면 길을 벗어나 파문당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추방자의 산맥 시나리오 진행 이후 신장과 대화하면 반야를 언급하는데 오래 전 함께 한 적도 있으나 큰 사고를 치고 파문되었으며, 검은 교단과 엮여 안타깝다고 말한다.
- 백염 - 빙탕후루 - 거리낌없이 살생을 저지른다고 스승이 그를 파문했다.
- 실베스테르 - 월야환담 시리즈
- 아슈르 - 판타지 수학대전 - 가톨릭의 파문이 아닌 제자로서의 파문, 본디 피타고라스 학파의 일원이었으나 알로곤에 관심을 가져 파문당했다.
- 영호충 - 소오강호 - 화산파소속이었으나 악불군에게 파문당했다.
- 장 후이롄 - 자객 오육칠 - 천련파를 이끌 수장의 후계자까지 올랐으나 붉은 이빨(아취안)을 위해 같이 파문당한다.
- 제드(리그 오브 레전드) - 문중에 내려오는 그림자 비급이 담긴 상자를 함부로 열어보았고 이를 이용해 쉔과의 대결에서 이기자 사부(쉔의 아버지)가 노하여 제드를 파문하기에 이른다.
- 존 윅 - 존 윅
- 카이진보 - 이누야샤 - 가톨릭의 파문이 아닌 제자로서 파문을 당한것, 검 한자루 만들겠다고 죄 없는 아이들을 열명씩이나 죽여 그 피와 기름을 넣어 요도를 만들었고 이에 스승이던 토토사이가 그를 파문했다.
- 카라스 신부 - 고스트 스위퍼
- 톰윰 - 몽골에서 유럽까지 - 교황이 불법적으로 파문했는데, 우선 톰윰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대공 자격으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정교회 신자임에도 비잔틴 제국과 몽골군에게 라틴 제국이 멸망,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본인이 유일한 기독교의 대표자라고 자칭하며 파문한 것, 결론적으로 자충수 중 자충수인데 톰윰은 바투 칸의 매제이자 몽케 칸의 정치적 동반자에 현 대칸 오고타이의 총애를 받으며[26] , 후일 대칸이 되는 쿠빌라이의 후견인 중 하나인 황금 씨족이다, 게다가 서방 원정의 사전준비에 관련해서는 톰윰 한 명에게 몽골 제국 전체가 의지하다시피 하는 걸 감안하면 적통 황녀까지 넘기며 알아서 긴[27] 니케아 제국과는 다르게 말살대상으로 분류된 거나 다름없다, 게다가 교황 특사가 막 쿠릴타이를 마치고 즉위한 오고타이 칸 면전에서 정면으로 이교도 야만인은 개종하고 회개해 교황의 명령을 따라 십자군에 참가하라고 운운하기까지 했으니 뭐...
- 히비키 단 - 가톨릭의 파문이 아니고 무협소설의 파문이긴 하지만 어쨌던 파문자. 아버지를 죽인 사가트[28] 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때문에 권법에 살의가 가득했고 그가 살의의 파동에 빠질것을 우려한 고우켄이 파문시켰다. 그래서 단의 기술은 전부 나사 빠진 성능.
[1] 소파문은 사실상 조당(impediment)과 다를 게 없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2] 이단 집단에 트로이 목마처럼 잠입한 다음에 결과적으로 그 집단을 궤멸시킨 경우도 포함. [3] 만일 이러한 혼인 교리를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조당 상태가 되었다면, '''조당이 해소된 뒤'''에 해당 사항에 대해 혼인교리를 어긴 것에 대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4] 만일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른 채 조당이 걸린 상태에서 고해성사를 보고 이 사실을 말하면, 고해신부는 일단 사죄경 주는 것을 보류한 뒤에 해당 신자를 위해 혼인조당 해소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이다.[5] 흔히 '신자가 아니게 됨'이라고 오해하기 쉬우나, 파문을 당했다 하더라도 신자로서의 모든 의무는 여전히 지킬 의무가 있다. 가톨릭의 파문은 개신교의 출교와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6] 현대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는 물론 잘못된 행위이다. 사실 '파문'을 문자 그대로 실행하려면 조선의 팽형처럼 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교회로부터 추방당했다 = 내 가족, 친척, 이웃이 아니다 = 이방인이므로 때려잡자 라는 무시무시한 등식이 '''일반 상식으로 성립하던 시기'''였기에 충분히 가능한 수순이었다.[7] 제1차 십자군 원정이 이렇게 시작됐다. 동로마 제국이 만지케르트 전투의 패전 이후로 셀주크 제국을 위시한 이슬람 세력에 대해 위협을 느끼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로마 황제인 알렉시오스 1세의 요청을 받아서 십자군의 결성을 유럽 각국의 군주들에게 호소하면서 원정이 시작된 것이다.[8] 1080년의 파문은 카노사의 굴욕 때와는 달리,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들이 그다지 교황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카노사의 굴욕이 있던 때는 그레고리오 7세와 대립한 하인리히 4세가 교황의 고유 권한인 주교 서임권에 간섭하려고 했기 때문에, 제후들 사이에서 이건 너무했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어서 그가 파문을 당할 때도 이들이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1080년에는 명백히 교황 측이 황제의 기를 꺾어놓겠다고 갑질하고 속세의 정계에까지 간섭하려 한 것이므로, 거꾸로 교황의 편을 들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번에는 하인리히 4세가 파문에 대해 반항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거기다 이런 정치적 이유를 제외하고 감정적으로 봐도 교황이 카노사의 굴욕 당시 보여준 모습은 제후들에게 있어 배신 그 자체였다. 기껏 교황을 도와 파문된 황제에 대한 반란까지 일으켜줬더니만 황제가 찾아와서 무릎 한 번 꿇었다고 파문을 취소하고 지지성명까지 내준 탓에 반란파는 때려잡히는 신세가 됐다. 2번째 파문에서도 이런 전례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보증이 없으니 제후들 입장에서는 교황이 망하든 말든 얌전히 있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다.[9] 정확히 말하면 대주교를 임명하지 않은 채로 교회에서 주는 대주교 월급을 낼름 먹었다(...)는 혐의였다.[10]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처럼 가톨릭 신자가 많은 지역의 경우, 정치인이 가톨릭 교회와 어떤 관계를 지니는지가 중요한 정치적 떡밥이 될 수 있다.[11] 대표적으로 프리메이슨이나 마리아의 구원방주. 그러나 이 두 단체는 단체 자체가 파문당한 것이기 때문에 신자가 탈퇴하면 얼마든지 파문을 철회받을 수 있다.[12] 참고로 이게 아동성범죄보다 왜 더 중한거냐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아동성범죄의 경우 의외로 '살인과 동급으로 나쁜 것'이라는 인식의 역사가 길지 않다(100년전만 하더라도 아동의 나체사진이 아동포르노라는 범죄라는 인식이 없었다). 성체훼손이나 (살인으로 해석되는)낙태, 교황 살해 등에 의한 파문은 긴 역사를 거치며 정립된 시스템이지만, 아동성범죄는 비교적 최근에야 주목 받은 것이다. 파문이라는 처벌의 중대성을 감안한다면, 자동파문 시스템의 발동조건을 수정하는건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바꿔말하자면, '자동 파문'이라는 시스템에 아동성범죄가 들어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참고로 최근에 가톨릭 교회에서 소아성애를 신 7대 죄악으로 규정하였다.[13] 고해성사 비밀 누설은 과거부터 가톨릭에서 "'''사제로서 최악의 죄"'''로 규정되어 왔다. 사제는 '''본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고해성사의 내용을 누설할 수 없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라는 것도 천주교 내에서 강조하는 내용.[14] 엄밀히 따지자면, 이단죄(사도전승이 끊긴 타 그리스도교 교파로 옮기는 것)/이교죄(사도전승이 이어진 비가톨릭 그리스도교 교파로 옮기는 것)와 배교죄(비그리스도교 종교로 옮기는 등 그리스도교 신앙을 아예 포기하는 것)는 따로 구별하고 있으니, 이단죄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15] 참고로 배교죄에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처럼 회복주의 기독교 교파들도 포함된다. 가톨릭은 이들을 기독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16] 모독의 의도로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닌, 영성체 도중 부주의로 성체를 바닥에 떨어뜨려 깨져버린 경우.[17] 출처 : PBC 라디오 <1분 교리>.[18] 다만, 권징은 경징계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쓰일 때 있다.[19] 청교도 혁명 당시 영국에서 제정된 신앙고백서로, 여기에 기반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함께 장로회 신앙의 핵심을 요약한 가장 중요한 문서이다.[20] 가톨릭에서는 미사에 6개월 이상 빠진다고 해서 파문하진 않는다. 냉담자로 처리할 뿐.[21] 2009년 1월 21일자 파문 철회 교령을 보면 르페브르 대주교가 임명한 주교 4명에 관한 파문 제재 사면 외에도 '오늘 날짜로 당시 발표한 교령이 법적 효력을 상실하였음을 선언한다.'고 되어있다.[22] 중세의 유명 가톨릭 신학자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동명이인이다.[23] 동로마 제국을 공격해서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건 파문하고는 관계없고 이후 세워진 라틴 제국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도 받았다. 다만 동로마 제국을 공격할 당시에는 길길이 날뛰며 반대했으나 이미 파문당하고도 버젓이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는 십자군을 통제할 방도가 없었다.[24] 그 외에도 비폭력, 금욕 등을 주장했다. 다만 파문이라는 사건에 한정하자면 이것들은 부수적인 요소이고, 가장 문제시된건 교회와 성체성사의 부정이다.[25] 피렌체는 피사 대주교 관할이었다[26] 오고타이가 사석에서 툼욤은 자신의 딸 열 명을 줘도 아깝지 않을 용사라고 극찬했다.[27] 동로마 제국이 결코 넘기지 않는 3가지, 즉 적통 황녀와 그리스의 불, 로마 황제의 제관 셋 중 둘, 즉 그리스의 불과 황녀를 바치면서 동맹을 애걸했다.[28] 그런데 이건 사가트가 암살한 게 아니라 정당한 대결끝에 히비키 단의 아버지가 죽은 것이다. 그래도 만만한 대결은 아니라서 이 대결로 인해 사가트가 애꾸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