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E.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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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Ervin Howard'''
1906~1936.
소설 작가. 대표작은 코난 사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와 함께 1930년대 위어드 테일즈의 전성기를 이끈 작가.
러브크래프트와는 평생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고, 펜팔로 친구를 맺었는데[1] 작품과 설정에 대해 많이 교류 했기 때문에 코난 사가의 설정은 러브크래프트 신화와 공유되는 부분도 있다. 코난 사가의 무대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이 무대로 하는 현대의 과거가 된다. 러브크래프트가 생전 자기 작품과 설정을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의견 나누고 친교맺는 과정에서 설정이 섞인 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동일한 세계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요즘 이래버리면 추후 심각한 저작권 분쟁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두 작가 모두 1930년대에 불행하게 죽어서 별 문제는 없었다. 더구나 두 작가들은 편지로 교류하면서 이런 크로스오버를 자주 얘기했기에 큰 문제는 안되었다. 러브크래프트의 편지를 보면 "자네 소설에 내가 만든 신을 넣으면 근사하지 않겠나?"하는 식의 언급이 나온다.
잭 런던,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같은 선배 소설가들과 북유럽 신화, 토마스 불핀치의 신화와 역사에 대한 저작들의 영향을 받아 야성이 살아 쉼쉬는 고대 세계를 배경으로 근육질 전사 주인공이 힘과 용기로 괴물이나 마법사 같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대활약하는 판타지소설을 주로 집필했다. 현대 판타지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작가로 특히 Sword & Sorcery 장르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는 작가.[2]
어릴 때는 허약하고 심약하며 주변의 괴롭힘을 받는 왕따였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접하고, 권투와 보디빌딩같은 운동을 꾸준히 한 끝에 마침내 '''누구도 감히 괴롭힐 수 없는 신체를 완성하여 왕따에서 벗어났다'''. 나중에는 내기 권투에도 나가서 권투를 할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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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약한 성격은 바꿀수가 없어서 이로 인한 정신질환을 심하게 않았는데 이성 교제도 거의 하지 못하고[3] 집단괴롭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여 일생동안 우울증, 공황장애로 고생했다. 주머니 사정이 호전되기 전부터[4] 결핵을 앓는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고생을 많이 했는데 1936년 6월, 그렇게 고생하며 봉양한 어머니의 결핵증상이 더욱 심해져 혼수상태에 빠지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에게 빌린 권총으로 스스로 머릴 쏴 자살한다. 다음날 어머니 역시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사회적 페르소나의 대표적인 예시로 꼽히기도 한다. 어떤 이는 '''근육질의 마마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5]
젊은 나이에 불운하게 생을 마감한 탓에 코난 사가 중에서 그의 생전에 발표된 것은 단편 17편, 장편 1편에 불과하지만, 사후에 남겨진 다수의 메모를 바탕으로 그의 친구들과 동료작가들이 정리하여 발표되었다.
그 외 유명 작품으로는 정복자 칼[6] , 솔로몬 케인이 있다. 러브크래프트가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이쪽도 영화화되어 개봉했으나 꽤 괜찮은 영화인 야만인 코난(1편)과 달리 '''핵지뢰''' 급은 아니어도 '''대전차지뢰''', 적어도 지뢰 급은 충분히 되는 물건이니 굳이 볼 필욘 없다.
인종관에 대해선 다소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다만 러브크래프트 보다는 확실히 온건했다. 러브크래프트가 그 시절 기준으로도 좀 튀는 편이었다면 하워드는 1900년생 텍사스인에 펄프 픽션 작가란걸 감안하면 특별할 것 없다.[7] 1900년에 텍사스에서 태어나 쭉 그곳에서 자란 사람이고 그가 투고한 펄프 픽션 잡지의 주된 소비계층이 백인 노동자들이라 그런 면모가 없을 수는 없었는데 악당인 캐릭터를 단순히 백인이라는 이유로 보호해주거나, 흑인들을 무더기로 죽이면서 "내 생명을 버려서 생명을 만드는거다"라고 희생하는 인물이 나오거나, 인종 스테레오타입에 따라서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자신의 아일랜드 혈통에 대각 자각이 깊어지며 이런 면모가 희석되어 흑인이나 유대인 캐릭터가 선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자신의 아일랜드 계 혈통을 자랑스러워했으며[8] 그런 점이 코난이나 칼 같은 캐릭터가 켈트 족의 조상으로 설정되었다는 관찰도 있다.
여자 캐릭터를 다루는 데도 의외의 면모가 있었는데 레드 소냐[9] 등 아예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들을 여러개 쓰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들에 여성의 대단함 등에 찬사를 보낸 구절이 여러 부분 있기 때문이다.
'''Robert Ervin Howard'''
1906~1936.
소설 작가. 대표작은 코난 사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와 함께 1930년대 위어드 테일즈의 전성기를 이끈 작가.
러브크래프트와는 평생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었고, 펜팔로 친구를 맺었는데[1] 작품과 설정에 대해 많이 교류 했기 때문에 코난 사가의 설정은 러브크래프트 신화와 공유되는 부분도 있다. 코난 사가의 무대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이 무대로 하는 현대의 과거가 된다. 러브크래프트가 생전 자기 작품과 설정을 정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의견 나누고 친교맺는 과정에서 설정이 섞인 것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동일한 세계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요즘 이래버리면 추후 심각한 저작권 분쟁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두 작가 모두 1930년대에 불행하게 죽어서 별 문제는 없었다. 더구나 두 작가들은 편지로 교류하면서 이런 크로스오버를 자주 얘기했기에 큰 문제는 안되었다. 러브크래프트의 편지를 보면 "자네 소설에 내가 만든 신을 넣으면 근사하지 않겠나?"하는 식의 언급이 나온다.
잭 런던,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같은 선배 소설가들과 북유럽 신화, 토마스 불핀치의 신화와 역사에 대한 저작들의 영향을 받아 야성이 살아 쉼쉬는 고대 세계를 배경으로 근육질 전사 주인공이 힘과 용기로 괴물이나 마법사 같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대활약하는 판타지소설을 주로 집필했다. 현대 판타지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작가로 특히 Sword & Sorcery 장르의 선구자라고 할수 있는 작가.[2]
어릴 때는 허약하고 심약하며 주변의 괴롭힘을 받는 왕따였다고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접하고, 권투와 보디빌딩같은 운동을 꾸준히 한 끝에 마침내 '''누구도 감히 괴롭힐 수 없는 신체를 완성하여 왕따에서 벗어났다'''. 나중에는 내기 권투에도 나가서 권투를 할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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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약한 성격은 바꿀수가 없어서 이로 인한 정신질환을 심하게 않았는데 이성 교제도 거의 하지 못하고[3] 집단괴롭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여 일생동안 우울증, 공황장애로 고생했다. 주머니 사정이 호전되기 전부터[4] 결핵을 앓는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고생을 많이 했는데 1936년 6월, 그렇게 고생하며 봉양한 어머니의 결핵증상이 더욱 심해져 혼수상태에 빠지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에게 빌린 권총으로 스스로 머릴 쏴 자살한다. 다음날 어머니 역시 세상을 떠났다.
때문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처럼 사회적 페르소나의 대표적인 예시로 꼽히기도 한다. 어떤 이는 '''근육질의 마마보이'''라고 말하기도 했다.[5]
젊은 나이에 불운하게 생을 마감한 탓에 코난 사가 중에서 그의 생전에 발표된 것은 단편 17편, 장편 1편에 불과하지만, 사후에 남겨진 다수의 메모를 바탕으로 그의 친구들과 동료작가들이 정리하여 발표되었다.
그 외 유명 작품으로는 정복자 칼[6] , 솔로몬 케인이 있다. 러브크래프트가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이쪽도 영화화되어 개봉했으나 꽤 괜찮은 영화인 야만인 코난(1편)과 달리 '''핵지뢰''' 급은 아니어도 '''대전차지뢰''', 적어도 지뢰 급은 충분히 되는 물건이니 굳이 볼 필욘 없다.
인종관에 대해선 다소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다만 러브크래프트 보다는 확실히 온건했다. 러브크래프트가 그 시절 기준으로도 좀 튀는 편이었다면 하워드는 1900년생 텍사스인에 펄프 픽션 작가란걸 감안하면 특별할 것 없다.[7] 1900년에 텍사스에서 태어나 쭉 그곳에서 자란 사람이고 그가 투고한 펄프 픽션 잡지의 주된 소비계층이 백인 노동자들이라 그런 면모가 없을 수는 없었는데 악당인 캐릭터를 단순히 백인이라는 이유로 보호해주거나, 흑인들을 무더기로 죽이면서 "내 생명을 버려서 생명을 만드는거다"라고 희생하는 인물이 나오거나, 인종 스테레오타입에 따라서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자신의 아일랜드 혈통에 대각 자각이 깊어지며 이런 면모가 희석되어 흑인이나 유대인 캐릭터가 선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자신의 아일랜드 계 혈통을 자랑스러워했으며[8] 그런 점이 코난이나 칼 같은 캐릭터가 켈트 족의 조상으로 설정되었다는 관찰도 있다.
여자 캐릭터를 다루는 데도 의외의 면모가 있었는데 레드 소냐[9] 등 아예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들을 여러개 쓰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들에 여성의 대단함 등에 찬사를 보낸 구절이 여러 부분 있기 때문이다.
[1] 둘의 첫 교류는 벽 속의 쥐에 나온 고대 언어를 본 하워드가 시대상 고증이 안맞는다고 러브크래프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당시 하워드는 어린 나이였는데, 러브크래프트는 이런 하워드의 지적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2] 히로익 판타지의 선구자라고도 불리는데, 정작 코난 사가의 이야기를 보면 코난이 안티히어로적인 면모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약자를 돕거나 하는 내용은 없이 보물찾기만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위기에 처하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하는 면모가 있기는 하다.[3] 살면서 딱 한번 연인이 있었다. 노발린 프라이스라는 이름의 교사였는데 2년 가량 사귀었으나 프라이스가 루이지애나주로 전근가면서 결별했다.[4] 펄프픽션 특성상 원고료가 높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유회사에 취직했지만 얼마 못가 해고되었고 아르바이트일과 속기사 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나중에 코난 시리즈가 인기를 얻어 성공을 거두자 그때서야 경제사정이 나아졌다. 죽기 직전에는 최고의 인기작가로 고향 마을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이었다.[5] 일본의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도 하워드와 인생역정이 굉장히 비슷했다. 둘다 모친에 대한 애정이 지나쳤으며, 문학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뛰어났고, 본디 허약한 체질을 가졌으나 운동을 통해 건강한 육체를 얻고 극렬 마초가 됐다던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최후까지도 똑같다.[6] 작가의 대표작인 코난 사가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인기가 있는 작품이며 king kull 이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적도 있다. 주연배우는 드라마 헤라클레스로 유명한 케빈 소보. 참고로 코난 사가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인데, 정복자 칼의 시대에서 약 천년 후가 코난이 활약하는 시대다. 코난은 이 칼의 직계 후손. 칼도 코난만큼 마초적인 성격이며 초인이다.[7]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주의적 면모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과 고립된 환경에서 자라면서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새겨진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심에 기반을 둔 거라 단순히 지역적, 시대적 여건의 영향을 받은 하워드와는 차이가 컸다.[8] 하워드가 살던 시기 아일랜드 계는 다른 백인들에게 멸시받으며 막일을 전전하던 처지였다. 그런 아웃사이더 기질 때문에 후기에는 비슷하게 아웃사이더인 흑인이나 유대인등을 선역으로 만들었다는 의견도 존재. 의외로 아일랜드계 미국인들 작품 중에 이런 식으로 (한계는 있어도) 아웃사이더들에게 호의적인 창작자들이 있는데 존 포드가 대표적이다.[9] 단 현대에 잘 알려진 비키니 아머의 레드 소냐는 하워드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코난 사가에 맞게 재창작한 캐릭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