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엔그린(오페라)
'''Lohengrin'''[1]
1. 개요
리하르트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작성하고 곡을 완성한 3막의 오페라이다. 중세시대의 유명한 전설인 로엔그린의 전설을 바탕으로 작곡된 낭만주의 스타일의 오페라로, 바그너 음악인생의 초기를 마감하고 원숙기를 예고하는 중요한 작품이다. 1850년 8월 28일 프란츠 리스트의 지휘로 독일 바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전작인 탄호이저와 더불어 오늘날 바그너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그만큼 자주 공연된다.
2. 작곡과 초연
바그너는 젊은 시절부터 중세 전설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볼프람 폰 에센바흐가 중세 전설을 바탕으로 쓴 파르지팔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바그너는 파르지팔의 아들인 로엔그린 전설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845년 요제프 괴레의 로엔그린을 읽고 마침내 이 작품의 대본에 착수하게 된다. 집필 과정에서 바그너는 원래는 별개의 이야기였던 기사 텔라문트와 부인 오르트루트의 전설을 여기에 결합시켰다. 그 밖에도 악역과 관련된 몇몇 소재는 니벨룽의 노래에서 가져왔다.
음악을 포함한 로엔그린 전체 작품은 1848년에 완성되었는데, 1848년 혁명이 한창인 와중에 바그너는 1849년 5월 드레스덴에 봉기에 적극 참여하는 바람에 당국으로부터 수배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바그너는 단속을 피해 취리히로 피신했으며 로엔그린의 상연도 무기한 연기되었다[2] . 이 때 바그너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프란츠 리스트가 바그너 대신 로엔그린의 공연을 맡게 되었으며 결국 리스트에 의해 이듬해(1850) 8월 28일 바이마르에서 초연이 이루어졌다. 당시 바그너는 수배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초연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초연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초연 이후 한동안은 바이마르 근처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다가 1855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공연된 것을 계기로 독일 외에서의 공연도 본격화되었는데, 그가 로엔그린 공연을 직접 본 것은 초연시점에서 무려 12년 뒤인 1862년 빈의 가극장이었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로엔그린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극장에 작곡가가 직접 나타나자 관객들이 열렬하게 환호했다고 한다.[3]
1871년 볼로냐에서 이태리어 번역본으로 공연되었을 때는 당시 이태리 오페라계의 대부였던 베르디가 관람을 했는데,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상당히 인상적이라는 평을 남겼다. 참고로 유럽에서(동유럽 포함) 바그너의 오페라가 가장 늦게 유행한 곳이 바로 프랑스였는데, 이 로엔그린도 바그너 사후인 1887년이 돼서야 겨우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번역된 대본을 바탕으로 공연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일단 공연이 성사된 후에는 프랑스에서도 큰 환영을 받았다.
3. 줄거리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하인리히 1세(876 ~ 936)는 실존인물로 919년 독일국왕이 되었다(항목 참조). 따라서 이 오페라도 10세기 초반의 독일/네덜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물론 오페라에 나오는 하인리히 1세의 행적은 실제 행적과는 무관한다.
3.1. 1막
'''브라반트 왕국 안트베르펀성이 있는 세그데 강변'''
독일왕 하인리히 1세가 브라반트 왕국을 방문해서 현재 독일 동부국경에 마쟈르(헝가리)인들이 분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이들의 토벌에 브라반트 왕국이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다. 브라반트 왕국의 왕(영주)인 고트프리트공(公)은 현재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텔라문트 백작이 일종의 섭정이자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고트프리트공이 얼마전부터 행방불명 상태라는 것.
하인리히왕을 만난 텔라문트 백작은 고트프리트의 실종에 대해 그의 누나인 엘자가 동생의 작위를 이어받기 위해 고트프리트를 죽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엘자를 고발한다. 물론 엘자는 자신은 무고하다고 주장했고, 하인리히왕은 신만이 이 사건을 재판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이에 엘자는 즉시 끌려가는 대신 신의 재판을 받기로 하는데,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기사가 텔라문트와 싸워서 이길 경우 무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
엘자는 자신이 지난 밤 꿈에서 만난 기사가 있으며 그가 자신을 대신해서 텔라문트와 싸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배석한 기사 중에는 아무도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텔라문트와 싸우려고 나서지 않았고, 이 경우 규정에 따라 엘자가 직접 텔라문트와 싸워야 했다. 엘자와 시녀들은 자신을 지켜줄 기사를 보내달라고 신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데, 위기의 순간에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다. 백조의 인도를 받아 성으로 오고 있는 작은 배가 세르데 강변에 나타났는데, 이 배에는 바로 신의 축복을 받은 기사 로엔그린이 타고 있었으며 엘자가 꿈에서 본 바로 그 기사였다.[4] 텔라문트의 아내 오르트루트는 백조의 목에 감긴 쇠사슬을 보고 질겁을 하는데, 이 백조는 바로 저주를 받은 고트프리트의 변신이었으며 그에게 저주를 내려 백조로 변신시킨 사람이 다름아닌 오르트루트였기 때문.[5]
엘자는 성에 도착한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에게 무릎을 꿇고 자기 대신 텔라문트와 결투를 해줄 것을 요청하는데, 로엔그린은 이를 수락하면서 대신 엘자에게 자신이 결투에서 이기면 자신과 결혼해야 하며 한편으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절대 물어보지 말라는 두가지 조건을 건다. 엘자가 조건을 수락하자 하인리히왕이 신의 재판(결투)의 시작을 선언하는데, 애초에 텔라문트는 로엔그린의 적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결투는 금세 로엔그린의 승리로 끝나버린다. 승부가 싱겁게 끝나자 엘자를 지지했던 시녀와 청년들이 신이 나서 로엔그린과 엘자를 방패에 태워서 데리고 나간다.
3.2. 2막
'''안트베르펀 성의 광장'''
결투에서 진 텔라문트 부부가 교회의 계단 위에 있는데, 텔라문트는 결투에서 패한 후 하인리히왕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은 상황이다. 낙담한 텔라문트는 브라반트를 떠나려고 하지만 오르트루트가 이를 말린다. 오르트루트는 남편에게 엘자를 꼬드겨 로엔그린이 금지한 질문을 하도록 부추기든지 아니면 로엔그린을 죽이자고 설득한다.
오르트루트는 엘자에게 접근해서 용서와 동정을 구걸하고, 엘자가 용서하자 로엔그린이 이제 당신의 남편이 될텐데 그가 누구의 아들이고 어디 출신인지 전혀 모른다면서 엘자가 로엔그린을 의심하도록 부추긴다.
다음날 하인리히왕은 텔라문트 부부에게 추방을 명령하고 로엔그린-엘자가 결혼할 것이며 그와 동시에 영주가 된다는 것을 선포하려고 하는데, 로엔그린은 영주의 지위를 사양하는 대신 '브라반트의 수호자'라는 명칭을 얻겠다고 한다. 이어 하인리히왕을 도와 동부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헝가리인들을 물리치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약속도 한다.
이어 결혼을 위해 엘자가 교회로 들어가려고 할 때 오르트루트가 엘자에게 '당신에게까지 이름과 신분을 밝히지 않는 저 기사는 사악한 인물이 틀림없다'고 주장하면서 말다툼을 벌인다. 한편 텔라문트는 로엔그린에게 하인리히왕 앞에서 자신의 출신지역과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로엔그린은 그것은 왕에게도 밝힐 수 없으며, 오직 엘자가 원한다면 그녀에게만은 대답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오르트루트가 다시 엘자에게 그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으면 큰 불행이 닥칠 수 있다고 꼬드긴다.
3.3. 3막
'''안트베르펀 성안의 신부 방'''
드디어 로엔그린과 엘자의 결혼식이 시작된다. 결혼식 개막을 알리는 웅장한 축혼곡(Epithalamium)에 이어 신랑 신부가 입장하면서 '''결혼행진곡'''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혼례의 합창(Bridal chorus)이 불려지고, 이어 하인리히왕이 두 사람의 신혼을 축복한다.
결혼식을 마치고 단둘이 남게 된 엘자는 기사의 신분에 대한 의심이 갑자기 솟아 올랐다. 오르트루트의 부추김 때문에 새신랑에 대한 의심이 깊어진 엘자는 결국 로엔그린과 굳게 언약한 맹세를 깨뜨리고 그의 출신지역과 신분을 묻게 된다. 엘자가 금단의 질문을 하는 순간 잠복해 있던 텔라문트가 부하 4명과 함께 칼을 빼 들고 두 사람을 공격한다. 그러나 로엔그린은 넘겨받은 칼로 가볍게 텔라문트를 살해한 후 다른 부하들의 항복을 받아낸다.[6]
상황이 정리된 후 로엔그린은 하인리히왕 앞으로 텔라문트의 시신을 옮겨가도록 하고 자신과 엘자도 같이 왕 앞에 선다. 한편 이 자리에는 하인리히왕을 도와줄 브라반트 군대도 도열해 있다. 로엔그린은 일단 텔라문트가 자신을 죽이려고 매복해 있다가 덤볐기 때문에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를 죽였다고 설명한 후, 자신은 몬살바트성에 모셔 놓은 성배(聖杯)를 수호하는 기사의 한 사람으로 '''성배를 지키는 몬살바트의 왕 파르지팔의 아들 로엔그린'''이라고 고백한다. 이어 엘자가 자신을 믿지 못하고 금기시된 질문을 하는 바람에 비밀이 깨졌으며, 이제 신과 통하는 힘을 잃고 있기 때문 자신은 이제 몬살바트성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브라반트 군대를 지휘해서 하인리히왕을 도울 수도 없게 되었다.
이에 엘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실신하는데, 이 때 백조가 이끄는 배가 세그데 강변에 나타난다. 배가 도착할 무렵 갑자기 오르트루트가 나타나서 로엔그린의 배를 이끌고 온 백조는 엘자의 동생인 고트프리트의 저주받은 모습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백조(고트프리트)와 로엔그린 모두 브라반트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됐으니 결국 자신이 승리자라고 기뻐한다. 하지만 오르트루트의 기쁨도 잠시, 로엔그린이 꿇어 앉아 기도를 하자 흰 비둘기가 배에서 내려와 백조의 목에 감긴 쇠사슬을 풀어주고, 이어 백조는 원래의 고트프리트로 되돌아온다. 로엔그린은 엘자에게 고트프리트를 인도하고 이 광경을 본 오르트루트는 낙담해서 그대로 자살해 버린다.
로엔그린이 탄 배는 이제 백조 대신 비둘기가 인도하게 되었고, 강을 따라 배가 사라진다. 절망에 빠진 엘자는 동생 고트프리트의 팔에 쓰러진다.[7]
4. 주요 장면과 음악
바그너의 오페라(음악극)들은 화려하고 유창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며 따라서 연주회에서도 성악보다 관현악 위주로 선별되어 연주된다. 로엔그린 역시 이러한 궤에 있는 작품으로 전작인 탄호이저 못지 않게 금관악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1막의 전주곡, 2막에 나오는 엘자의 성당으로의 행진(procession to the cathedral)과 2막 마지막 신부의 행진(Bridal Procession), 3막의 전주곡(결혼 축전곡)과 이어지는 신부의 합창(결혼 행진곡), 3막 후반부의 경배하는 하인리히 왕이시여(Heil König Heinrich)!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 대부분이 관현악곡이다.
물론 성악도 놓치면 안되는데, 1막 막판 로엔그린과 텔라문트가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나 3막의 피날레에서 로엔그린이 고트프리트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 주고 떠나는 장면등은 로엔그린의 백미이다. 참고로 로엔그린은 말 그대로 음악극이기 때문에 기존의 오페라처럼 가수가 독창으로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며 등장인물들이 대화(노래)를 주고 받는 장면이나 합창의 비중이 훨씬 높다. 때문에 극적인 대목도 독창이 아니라 장면(scene)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바그너의 모든 작품이 그렇듯이 이 로엔그린도 음악만 듣기 보다는 동영상으로 공연을 직접 보면서 듣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직접 공연을 보는 것이겠지만.
1막 전주곡 :
바그너는 이전 작품인 탄호이저까지는 오페라 서두에 서곡을 붙였으나 로엔그린 이후부터는 음악극에 대한 본인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반영하면서 서곡(overture) 대신 전주곡(vorspiel)을 붙였다. 전주곡은 서곡과 달리 끝부분이 명확하게 종결되지 않고 바로 극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로엔그린의 전주곡은 성배와 로엔그린의 신비로움과 성스러움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시종일관 느리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움은 당대부터 격찬을 받아왔다. 클라이맥스 후 종반부 현의 하강은 성배의 하강을 묘사했다고 한다.
1막 피날레 :
1막 마지막 부분의 로엔그린과 텔라문트의 결투씬 및 이어지는 합창은 이 작품의 초반 클라이맥스라할 수 있다.
2막 "Gesegnet soll sie schreiten" / Elsa's procession to the cathedral / 엘자의 성당으로의 행진 :
브라스 밴드곡으로 편곡되어 윈드오케스트라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이 테마는 2003년 방영된 미드 '히틀러: 악의 탄생'(Hitler: the rise of evil)에서 히틀러가 바그너의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 삽입되었다. '히틀러: 악의 탄생' 삽입 장면
2막 피날레 : Elsa's Bridal Procession
3막 전주곡과 결혼 행진곡 :
3막 전주곡과 뒤이어 나오는 결혼 행진곡은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3막 전주곡은 연주회에서 독립적으로 자주 연주된다.[8] 3막 전주곡에 연이어 나오는 엘자와 로엔그린의 결혼식 장면에 나오는 음악이 그 유명한 결혼 행진곡이며 결혼을 해 본 사람이나 결혼식에 가 본 사람이라면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곡이다.
3막 Morgenröte / "Heil König Heinrich" :
3막에서 장면이 전환될 때 나오는 음악으로, 출병을 앞두고 사열식을 알리는 팡파르를 묘사하고 있다. 이 부분을 실제 독일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주할 때는 금관주자들이 발코니 등 여러 곳에서 분산해서 연주할 때가 많기 때문에 음향적으로 대단한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은하영웅전설 6편의 오프닝 음악으로도 쓰였다.[9][10] 은하영웅전설 오프닝
3막 "In fernem Land" :
작품 종반에 로엔그린이 부르는 In fernem Land는 로엔그린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11] 라 할 수 있다. 청중들은 다 알고 있지만 극 중에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자신의 이름 "로엔그린"을 밝히는 장면이다.
5. 영향 및 평가
5.1. 음악
로엔그린은 탄호이저와 더불어 바그너의 명성과 인기를 확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한 작품이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더불어 그의 생애 중에 대중적으로는 가장 큰 인기를 끈 작품이다. 전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탄호이저도 명작이지만 당시 대중적인 인기에서는 로엔그린이 압도적이었는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세의 전설을 소재로 했으며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스토리, 신비로우면서도 화려한 무대장치 등 여러 측면에서 당대 청중들에게 큰 매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인기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는 작품인데, 탄호이저에서 보이기 시작했던 악극(Musikdrama)의 모습이 로엔그린에서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로엔그린에서는 기존 오페라의 서곡(overture)이 사라졌으며 대신 극의 분위기를 암시하다가 끝나지 않고 바로 극으로 연결되는 전주(vorspiel)가 도입되었다. 또한 기존의 오페라처럼 독창과 레치타티보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유기적으로 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소위 말하는 선율(Sprech-melodie)을 도입하고 있으며, 덕분에 가수들의 연기력과 무대연출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졌다. 또한 한 막이 끝날 때까지 음악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무한선율' 형식을 갖고 있다. 또 특정 인물이나 특정 상황을 상징하는 짧은 선율을 도입해서 극의 상황과 분위기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라이트모티프도 전폭적으로 사용되고 있다.[12]
관현악의 중요성도 한층 강화되었는데, 특히 로엔그린은 '관현악을 위한 오페라'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다채로운 관현악 수법을 자랑하고 있다. 기존 오페라(및 바그너의 이전 오페라)에서 관현악은 주로 가창의 반주 역할에 충실한 반면 로엔그린에서는 관현악이 상당히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심지어는 가수와 경쟁하듯이 함께 질주하기도 한다. 다만 공연 측면에서 보면 이와 같은 관현악 수법이 바그너 작품의 공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데, 가수 입장에서 이렇게 막강하게 울려대는 관현악을 뚫고 자신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성량과 폐활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13]
이처럼 로엔그린은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오페라 문법을 뛰어넘은 파격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조성을 무너뜨리거나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악구를 사용하는 테러(...) 수준의 파격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으며 화성체계도 상대적으로 무난한 편이다. 때문에 후기 작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기 쉬운 편이며, 이처럼 작품성과 직관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인기를 높이는데 한몫 하고 있다.
5.2. 대본 및 서사
로엔그린은 음악적으로도 그렇지만 내용상으로도 전형적인 낭만주의 오페라에 해당된다. 대체로 로엔그린을 비극으로 분류하기는 하지만 후에 작곡된 트리스탄과 이졸데나 베르디의 '운명의 힘'처럼 처절한 비극성이 극을 관통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며, 오히려 좀더 활기차고 신비롭고 동화적인 분위기가 오페라 전체를 감싸고 있다. 한편으로 엘자와 로엔그린이 결국 헤어지기는 하지만 막판에 저주에서 풀린 고트프리트가 브라반트의 영주로 복귀하고 있으며 연출상으로 엘자를 굳이 죽게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이 작품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풀어 보자면 '백마 탄 기사가 위기에 처한 여인과 나라를 구한 후 여인의 구애를 거절하고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 정도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엘자가 죽지 않는 쪽으로 연출을 한다면 이 작품은 비극이 아니라 연인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로맨틱 드라마(drama)가 된다.
한편으로 로엔그린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 비해 이야기가 훨씬 다채로우며 탄호이저처럼 '타락으로부터의 구원'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표방하지도 않고 좀더 스토리텔링에 충실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을 알고 봐도 충분히 보는 재미가 있다. 작품성과 별도로 로엔그린이 바그너의 작품 중에 가장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등장인물과 관련해서 전작들과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여주인공 캐릭터성의 변화에 있다. 전작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나 탄호이저에서는 여주인공의 지고지순하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이 남자 주인공에게 구원을 가져다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탄호이저 항목에도 있지만 바그너는 여성의 조건없는 사랑을 이상적인 사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로엔그린의 여주인공 엘자는 전작의 여주인공들과 반대로 구원의 주체가 아니라 파국의 주체가 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여주인공의 역할 변화에 대해 바그너의 여성관이 좀더 현실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나타난 변화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여성관이 바뀐 것이 아니라 동일한 여성관이 다른 형태로 표출된 것 뿐이다. 엘자는 자기 남편을 의심하는 바람에 파국을 맞게 되는데, 이를 바꿔 말하면 여성은 남성을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하며 남성을 믿지 못하는 순간 애정관계는 끝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바그너의 여성관은 오늘날 관점에서 당연히 남녀차별적이고 비현실적이다. 바그너 당대부터 이 분의 자기중심적인 여성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심지어 당시 바그너의 부인이었던 민나 플라너 조차도 남편의 음악적 능력은 정말 훌륭하지만 그가 쓴 오페라는 이해할 수 없다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음악이 훌륭한 탓에 대본에 나타나는 이런 복잡한 논란은 대체로 묻히는 분위기(...).
6. 기타
- 바그너 당시 바이에른 국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가 이 로엔그린에 완전히 빠져들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로엔그린이 공연될 당시 사춘기 소년이었던 루트비히 2세는 이 작품이 주는 낭만성과 환타지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며, 후에 자신이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축할 때 로엔그린에서 받은 영감을 마음껏 표출했을 정도였다.[14]
이 작품 덕분에 이후의 바그너의 작품들은 모두 루트비히 2세의 후원하에 작곡되었다. 로엔그린 덕분에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 된 소년 왕자 루트비히2세는 19세에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빚쟁이를 피해 은신하던 바그너를 찾아내어 빚을 모두 갚아주었으며 후에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을 짓는데도 상당한 거금을 지원했다. 로엔그린이 없었다면 바그너의 후기 작품들은 제대로 완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로엔그린은 간접적으로 서양 음악사를 바꾼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음악사를 바꾸기 위해 자기 나라를 말아먹었다는게 문제이긴 하지만.
- 이 작품의 초연을 담당했던 프란츠 리스트는 3막의 결혼축전음악 - 결혼행진곡과 2막에 나오는 엘자의 '신부의 행진(Bridal Procession)'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리스트답지 않게 화려한 기교를 드러내는 대신 원곡에 상당히 충실하게 편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 로엔그린이고 발음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실제 독일에서 상연할 때는 로헨그린이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 사실 이때 봉기에 가담한것도 이유지만, 여전히 빚을 안갚았기때문에 그 '''채무가 쌓여서''' 수배받는 이유도 컸다.[3] 바그너는 1862년 이전에도 도피처인 취리히를 비롯해서 런던, 파리 등의 대도시에서 로엔그린의 관현악곡이나 성악곡 일부를 발췌해서 연주한 적은 있었다. 다만 오페라 전체 공연을 처음으로 직관한 때가 1862년이다.[4] 참고로 설정상으로 이 기사의 이름이 로엔그린이라는 것은 3막이 돼서야 밝혀진다. 물론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오페라상에서는 자신이 직접 밝히기 전까지 그가 로엔그린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냥 백조의 기사 정도로 지칭된다.[5] 오르트루트는 프리슬란트 후작의 딸로 흑마법에 능한 마녀이다. 텔라문트와 오르트문트는 고트프리트의 후견인을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고트프리트와 엘자를 몰아내고 자신들이 브라반트의 영주가 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6] 텔라문트는 엘자가 금단의 질문을 하는 순간 로엔그린이 힘을 잃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런 거사를 벌였던 것. 하지만 이는 텔라문트의 완벽한 착각이었다. 오페라 상으로는 엘자의 질문 때문에 로엔그린이 힘을 잃기는 하지만 서서히 잃는다.[7] 작곡자 본인은 이 시점에서 비탄에 빠진 엘자가 죽는 것으로 처리했는데, 실제 공연에서는 엘자를 굳이 죽이지 않거나 쓰러진 후 생사여부를 명확하게 가리지 않고 열린 상황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8] 오페라에서는 전주곡이 완전히 끝나지 않고 바로 결혼행진곡으로 연결되며, 연주회용으로는 별도의 종결부를 붙여 연주한다.[9]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하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가 연주한 음원을 사용했다. 음반으로 찾고 싶다면 EMI 에서 1997년에 CD 로 발매한 버젼의 음원을 멜론과 벅스 에서 제공하고 있다.(CD 는 현재 절판되어 신품으로 찾기가 매우 어려움.)[10] 게임 오프닝의 경우는 오페라 성악 부분이 잘려 있다[11] 로엔그린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아리아는 없다. 후기 작품과 마찬가지로 무한선율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의 막 전체가 끊이지 않고 연주되기 때문이다.[12] 이런 파격적인 수법들은 전작인 탄호이저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다만 로엔그린에서 좀더 강화되고 본격화 되었다. 탄호이저 항목 참조.[13] 이런 측면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는 도니제티/벨리니/베르디처럼 가수에 대한 배려를 1순위로 놓는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대척점에 있다. 오늘날에도 작품성과 별도로 이탈리아 오페라에 비해 바그너 오페라의 공연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바그너 오페라를 제대로 부르기 위해서는 음악성과 가창력 연기력을 모두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엄청난 체력까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태리어에 비해 독일어가 상대적으로 악센트가 강하고 격음이 많다는 점도 바그네리안 가수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바그너 음악에 대한 존경심이 없이는 바그네리안 가수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빠심이 없이 직업적인 의무감만으로 이런 작품에 도전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14] 예를 들어 노이슈반슈타인 성에는 백조머리가 조각된 문고리들이 있는데 이는 로엔그린에 등장하는 백조를 본따서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