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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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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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영화배우이자, '''할리우드의 젊음과 반항의 아이콘'''. "원조 반항아."[1] 혹은 "원조 오빠"로 불리기도 한다. 그 전까지 영화배우가 여자들에게 인기를 누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딘은 최초로 여자들 및 남자들에게 모두 인기를 누린 영화배우였었다. 연기 능력 또한 인정받아서, 역사 최초로 사후 아카데미 오스카 상 후보에 오른 연기자가 되었다.'''Dream as if you'll live forever. Live as if you'll die today.'''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
“젊음과 반항의 아이콘”처럼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고로 요절했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극적인 죽음으로 인해서 실체 이상의 과대평가, 일종의 허명을 얻은 대표적인 케이스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인기를 2~3년 반짝 끌고 사라진 배우는 꽤 많으며, 생전 주연작 3편 전성기 2년정도의 제임스 딘이 오래 살았더라면 대배우가 되었을지 아니면 그냥 잊혀졌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망한지 아주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아직도 젊음과 반항아, 오토바이, 청바지 하면 제임스 딘을 떠올릴 정도로 전설이다.
2. 생애
1931년 미국 인디애나 주 매리언에서 농부 윈튼 딘과 밀드레드 마리 사이에서 태어났다. 1938년 아버지가 치과의사가 되려고 농사를 포기하자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로 옮겨 브렌트우드 초등학교를 다녔다가 매키니 초등학교로 전학했지만, 1940년에 어머니를 자궁암으로 잃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다시 인디애나 주 페어마운트에 있는 삼촌 마커스 윈슬로의 집으로 이사했고, 청소년 시절 제임스 디워드 목사와 어울리며 투우와 영화, 자동차 경주 등에 관심을 지녔다.[3] 페어마운트 고등학교 때에는 야구와 농구를 즐기다가 연극으로 진로를 바꿨다. 고졸 후 아버지와 애견 '맥스'를 만나려고 산타모니카로 돌아와 산타모니카 칼리지에서 법학을 배우다가 UCLA로 편입했으나, 연기에 전념코자 중퇴했다.
무명시절에는 여러 영화 및 TV드라마, TV광고 등에서 보조 출연[4] 도 했다가 54년 《배덕자》(The Immoralist)라는 연극에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해 연극 최우수 신인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알려지게 되는데 이 연극을 보고 그를 주목한 엘리아 카잔 감독 아래에서 연기수업을 쌓다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주연을 맡게 된다.
그의 두 번째 영화였던 《이유 없는 반항》에서 딘은 그 유명한 붉은 잠바를 입고 당시 미국의 10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재현하여 청춘을 상징하는 불멸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연기에 대한 평도 좋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젊은 나이에 거론되었다.
영화배우이자 카 레이서로 활동 중인 딘에게 워너 브라더스는 영화를 끝낼 때까지 경주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계약의 일부로 서명하게 했는데, 이 편지는 2013년 발행된 "James Dean Ultimate collector's edition"에 부록으로 첨부되었다. 흠좀무. 사실 카 레이서로서의 딘은 3번이나 3등을 하였는데, 마지막 경주 때에는 포르쉐 550 스파이더가 이미 고장이 난 적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 작품 《자이언트》 촬영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딘은 자신의 애마였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5] 를 타고 캘리포니아 국도를 시속 180km로 달리다 맞은편에서 오던 트럭과 충돌해 목과 내,외부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던 앰뷸런스 안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24세. 이 사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수사 중인 사건들이 많다. 그의 무덤이 고향 인디애나에 위치해 있다.[6]
당시 사고 장면. 검은 옷을 입은 남자 왼쪽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나이가 제임스 딘이다.[7]
불과 사고 64일 전에 찍은 공익광고.[8]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운전자들에게 '''과속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고속도로에서 과속하는 것이 트랙에서 경주하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Take it easy driving — the life you might save might be mine."(운전은 느긋하게 하세요 - '''당신이 내 생명을 구해주게 될지도 모르니까[9] .''')라고 충고한다.
관 안에서 장난을 치는 제임스 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죽어서 들어가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리라...
3. 애정관계
그와 사귀었던 여배우로는 피어 안젤리, 나탈리 우드, 우르줄라 안드레스, 후에 에드 우드와 엮이면서 불행해진(?) 벰파이라 등이 있었으나,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는 폴 뉴먼의 아내인 조앤 우드워드(1930년~ )라는 소문도 자자했다. 물론 우드워드는 헛소문이라고 일축했으며 뉴먼과 50년 넘게 원앙부부로 할리우드에서 지냈다. 실제로 뉴먼과 딘은 친한 사이였으며, 피어 안젤리를 딘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 뉴먼이기도 하다. 뉴먼의 영화 데뷔작 《성배》는 원래 딘이 제의받은 영화였다. 딘은 시나리오가 형편없다고 거절했고, 뉴먼은 나중에 공개사과를 할 정도로 졸작이었지만, 그 시대 당시 최고 인기 배우 3명이 폴 뉴먼 - 말론 브란도 - 제임스 딘 이라고 하니 알만하다.
보통 알려진 제임스 딘이 진정 사랑했던 여자는 배우 '피어 안젤리'였으나, 안젤리의 엄마가 딘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배우와 강제로 결혼시켰다. 다만, 둘이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종교 탓만이 아니라는 주장도 많다.
안젤리는 빅 데이먼(1928~2018)이란 가수와 결혼했는데 실제로 1955년 9월 27일 죽기 사흘 전에 데이먼과 만난 딘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또는 데이먼이 '그녀는 내 아내이지 제발 잊어주시오...'라는 말을 하자 쓴웃음지으며 알았다는 답변을 했다고도 한다.) 그리고는 이 만남 이후 딘은 미친 듯 차를 몰았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안젤리와 데이먼은 갈등 끝에 1959년 이혼했고 그녀는 1962년에 재혼하지만 7년만에 이혼했으며 이후 3류 영화에나 출연하는 신세로 떨어졌고 그러다가 1971년 멕시코에서 만든《옥타맨》이라는 저예산 괴작영화[10] 를 유작으로 안젤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유서에는 자신이 사랑한 단 한 남자는 제임스 딘뿐이었다고 써있었다.
딘은 게이들에게도 아이콘으로 통하기도 한다. 현대의 게이 아이콘들처럼 딱히 성소수자 인권 운동 면에서 무언가를 이루거나 성명을 발표했다는 건 아니고, 제임스 딘의 성적지향 의문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게이는 아니지만 한손을 등 뒤에 묶인 채 살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증언들로 그와 애인관계 또는 성적으로 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추측되는 영화업계 남성들이 다수 있다. 그 때문에 한때 이성애자임에도 영화 배우적 성공을 위해 업계의 거물들과 성적 관계들을 가져왔다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기도 했다.
4. 기타
모두 31편 영화 및 TV드라마에 나왔지만 조연이나 단역작품도 거의 없다시피 할 만큼 대부분이 보조출연이었고 확실한 주연영화로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 세 편이다. 죽은 뒤에 《자이언트》로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 소문에 의하면 원래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유력시되었다는 말이 있다. 참고로 딘은 (3톱 주연 영화니까 원칙적으로 주연은 맞지만) 유일하게 《자이언트》에서만 비중이 가장 높은 주인공이 아닌데다가 악역을 맡았다. 오히려 내용상 대지주 아들인 록 허드슨이 가장 비중이 높은 진주인공이었고, 딘은 그의 집 하인으로 나와, 나쁜 남자 컨셉에 가깝게 허드슨을 몰래 괴롭히고 배신하며 그의 부인을 유혹하기도 하고 주인집 가정을 망가뜨리려 하는 연적으로 나오며, 비중도 상대적으로 꽤 차이나게 적은데다가 매우 부정적인 결말을 맞으며 끝나는 세번째 비중의 주인공[11] 이었다. 물론 역할상 본인을 대스타로 만들었던 기존의 이미지인 아웃사이더나 반항아적인 모습을 버리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악역이라는 연기변신에 성공하여[12] 진주인공인 록 허드슨이 아닌 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그의 연기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가 죽자 미국에선 소녀 5명이 그를 따라간다면서 자살했으며 이탈리아에선 수백명이 넘는 여자들이 충격을 받아 살아갈 뜻이 없다며 창녀로 전락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무수한 소문으로 그가 안 죽고 교통사고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얼굴이 흉측하게 변해서 죽은 걸로 위장하고 숨어산다는 소문은 30년이 넘도록 나왔을 정도였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던 곁눈질하며 바라보던 장면이 실은 그의 시각장애라는 게 사후에 드러나서 화제가 되었다.
더불어 그가 묻혀진 무덤에 비석은 분홍색으로[13] 칠해졌는데 묘지 관리는 후사가 없는 탓에 사촌 마커스 윈슬로 주니어가 관리해왔으나, 2000년대 와서까지 수십번이나 도난당했다고 한다. 몇몇은 범인이 잡혔는데 역시나 그의 팬들. 이 무덤은 KBS2 스펀지 2004년 2월 28일 방영분에도 소개됐지만 지식의 별(하트)는 고작 1개밖에 못 받았다.
2001년 그의 인생을 다룬 영화가 나왔는데, 미국의 배우 제임스 프랭코가 주연을 맡았다.(이름도 둘 다 제임스다.). 2015년에는 '라이프'라는 제목으로 또 영화가 나왔는데 이번엔 데인 드한이 제임스 딘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 우연인지 둘 다 스파이더맨의 해리 오스본 역으로 연기한 적이 있다. 감독은 다르지만...
한국에서 여러 번 상영 및 더빙 방영, 2차 매체 판매 등도 했는데, 1981년 9월 12일 한가위 특선으로 KBS 2TV에서 아침 11시 40분에 더빙 방영했으며 이후 더 자이언트와 에덴의 동쪽을 더빙 방영했으며 1996년 KBS2에서 이 3편을 토요명화로 3주에 걸쳐 제임스 딘 특집 화질 보정판으로 더빙 방영한 바 있다. 5월 4일에 에덴의 동쪽, 11일에 이유없는 반항, 18일에 자이언트를 방영했는데 제임스 딘 역은 장세준이 맡았다. 1989년에 SKC를 통해 <이유없는 반항>과 <자이언트> 등이 비디오테이프로 발매된 바 있는데, 제작은 서륭프로덕션이 맡았다. DVD는 워너브러더스코리아가 배급했다.
주병진이 설립한 속옷 브랜드를 무단으로 제임스 딘이라고 지었다가 유족들의 항의로 보디가드로 바꾸기도 했다. 물론 유족들의 항의와는 별개로 "제임스 딘"을 팬티나 속옷을 지정상품으로 하여 상표등록하는 것이 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2호[14] 에 해당하느냐 문제는 상표법에 있어 꽤나 중요한 이슈이기도 하였다. 결론은 고인드립이 아닌 이상 제34조 제1항 제2호에 해당하지 않고 아무 수식 없이 그냥 "제임스 딘" 이라고 출원하는 것 자체가 고인드립이 아니다.
제임스 딘의 포르쉐 550 스파이더 사고 차량[15] 은 현재 도난상태다. 차량 개조 관계자 조지 베리스에 팔린 이후로 사고관련 전시에 활용되었다가 1960년 이후 말 그대로 증발되었다. 자동차 수집 박물관에서도 현상금을 걸고 추적했지만, 아직까지 차량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가수 DEAN의 이름은 제임스 딘처럼 반항적인 음악을 하고 싶어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DEAN의 2016년 발매 미니(EP)앨범 ''130 mood' '중, 130은 제임스 딘의 포르쉐 550 스파이더의 보닛에 적혀있었던 숫자이다.
2019년 11월, 제임스 딘이 '''네번째 영화'''로 부활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레스 크로커의 소설 "파인딩 잭"의 영화화에 제임스 딘을 캐스팅하겠다는 것으로 제임스 딘을 CGI로 구현하고 목소리는 다른 배우가 녹음하는 형태로 구현될 것이라 한다. 제임스 딘의 유족도 이 기획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소식이 발표되자 할리우드 배우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크리스 에반스는 "컴퓨터로 피카소의 새 그림이나 존 레넌의 새 노래를 얻을 수도 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라면서 비판했고 일라이저 우드는 "이래서는 안된다"라고 대놓고 비판을 날렸다. 로빈 윌리엄스의 딸인 젤다 윌리엄스도 기술 발전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수년전부터 말해왔다면서 우려를 표한 상황. #
그는 죽은지 65년이 지난 지라 아주 옛날 사람 취급받지만[16] , 그를 찍은 사진들은 전부 현대 사진들이라고 보아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이다.
외아들이면서 독신으로 요절했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그의 가장 가까운 방계후손은 5촌 조카의 혈통이다.
5.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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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제임스 딘의 반항아 스타일 연기는 원래는 말론 브란도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2] 딘의 대표작 <이유 없는 반항>의 촬영지이다.[3] 그러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1997년 당시 제임스 딘이 디워드 목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밝혔는데, 그녀의 발언은 2011년 테일러 사후 그녀를 취재했던 케빈 세섬이 밝혀냈다.[4] 데뷔작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첫 방송 출연작은 펩시 광고의 보조 출연이었다. 광고가 친구들끼리 하는 파티에서 콜라 건배를 하는 설정인데, 거기서 주인공의 콜라 건배요청에 잔을 높게 드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래도 딘은 그 중 얼굴이 나름 카메라에 잘 나오는f 위치에 있었다. [5] 일명 리틀 바스터드. 저주받은 물건으로 꼽히는 차 중 하나로, 친구가 불길하니 타지 말라고 충고했으나 타서 사망했다는 썰이 전해지며, 사고 수습 후 멀쩡한 부품을 회수하기 위해 작업자가 건드렸다가 다리가 골절되고(...) 이 차에서 회수된 변속기와 엔진을 탑재한 2인승 레이서 차량은 타이어가 빠져 마침 거기에 있던 경찰관이 부상당하고 차는 나무에 충돌해 1명이 즉사(...), 이 리틀 바스터드를 훔치려던 도둑 2명도 부상당했다고 한다. 이후 이 차는 전시되었지만 여전히 사고를 일으켰고, 지금은 뿔뿔히 분해되어 행방을 알 수가 없다고 한다.[6] 기묘하게도, 배우 알렉 기네스는 딘이 사고를 당하기 얼마전에 그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그가 새로 뽑은 차를 보고는 "그 차를 처분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 것이다"라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딘은 이 말을 가볍게 웃어 넘겼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예언이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다.[7] 흑백 사진이고 화질도 좋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잔인하거나 고어하지는 않지만, 불쾌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링크 처리했다.[8] 이 광고는 1955년 7월 28일에 찍혔고 딘은 9월 30일에 사망했다.[9] 더 정확히는 '''당신이 구할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될지도 모르니까'''라고 보는게 좋다.[10] 혹성탈출(리메이크판)을 비롯하여 할리우드에서 털복숭이 영화 분장에 둘도 없다는 특수분장전문가(아카데미 특수분장상을 7번이나 수상한 거물이다!) 릭 베이커(1950~ )가 바로 이 영화로 분장 데뷔(21살 때)했다. 영화 《그렘린 2》를 보면 잠깐 나오는 버스에서 문어인간이 나오고 촉수로 사람을 두들겨 패던 영화가 바로 이 영화이다.[11] 대지주 아들(록 허드슨), 그의 부인(엘리자베스 테일러), 하인(제임스 딘) 순서의 비중이었으며, 크레딧의 이름도 같은 순서로 나왔다.[12] 그 전의 두 작품에서는 작품 전체로 비중이 가장 높은 주연이었고, 반항아면서도 환경의 영향에 의해 성격이 그렇게 된 것이 충분히 설득력있게 표현되고, 결말이 좋게 끝나면서 마음속은 따뜻하다는 게 확실히 보여지는 인물이기에 악역의 속성은 전혀 없는 선역만을 맡았었다.(이유없는 반항은 원톱 주인공. 에덴의 동쪽은 형제 역할 두명이 투톱 주연이지만, 극중 형이 죽기 때문에 동생 제임스 딘 비중이 더 높고 더 중요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자이언트에서는 반항아나 나쁜남자이더라도, 마음이 따뜻한 쪽이 아니라 열등의식에 쩌든 정말 나쁜 놈 역할을 맡았다 [13] 딘 집안의 전통이라서 그의 아버지나 조상들도 비석이 분홍색으로 칠해졌다.[14] 국가·인종·민족·공공단체·종교 또는 저명한 고인(故人)과의 관계를 거짓으로 표시하거나 이들을 비방 또는 모욕하거나 이들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할 우려가 있는 상표[15] 별명은 Little Bastard로, 이후에도 여러 사고에 연루된 저주받은 차량으로 유명하다. 수리한 지 얼마 안 돼서 사고를 쳐서 운전자가 죽는가 하면, 손상되지 않은 타이어를 다른 차에 끼웠더니 그 차도 사고가 났으며, 심지어 차 안에서 기념품을 빼 가려던 도둑들도 부상을 입었다. 여담인데 스타워즈에서 오비완 케노비를 연기한 알렉 기네스 경은 (위에서도 언급되었고 알렉 기네스경 문서에도 언급되어 있지만)이 차를 보고 딘에게 '''"이 차는 불길해 보인다. 당신이 이 차에 타면 일주일 후에 죽은 채로 발견될 것이다."'''라고 했다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16] 제임스 딘이 요절하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 해도 90세 이상 장수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2020년대 기준으로 고인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