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류미영
柳美英 | Lyu Mi-young'''

<colbgcolor=#bc0021> '''출생'''
1921년 2월 14일
[image] 중화민국 하얼빈
'''사망'''
2016년 11월 23일 (향년 95세)
'''국적'''
[image] 북한
'''학력'''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최종 당적'''

'''종교'''
천도교
'''경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1. 개요
2. 생애
3.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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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 독립운동가 유동열의 딸, 한국의 군인이며 외교관이었다가 월북한 최덕신의 아내이다.

2. 생애


1921년 1월 7일, 만주 하얼빈에서 태어났다.
1976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했다가, 1986년 4월, 남편과 함께 월북했다. 당시 김일성 정권은 1980년대부터 종교정책을 활성화하기 시작하였으며, 마침 월북한 최덕신 부부를 환영하여 최덕신은 천도교정우당 중앙위원장에 임명하였고, 류미영은 1989년 5월,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지향하는 북반부의 모든 종교인들이 평화와 통일과 애국애족의 민족적 이념 밑에 하나로 굳게 결속'하기 위해 결성된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에 임명하였다. 이후 1990년 3월 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으로 취임했으며 1990년 4월 최고인민회의 9기 대의원에 당선되고 1991년 1월 국가훈장 1급을 수여받는 등 월북 초기부터 주요인사로 대접받았다. 1991년 4월 범민련이 출범하면서 북측본부 중앙위원이 되었으며 1993년 7월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93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다. 1994년 1월에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적극적인 김씨일가 우상화에 참여하여 1993년, 김일성김정일이야 말로 '민족대단결의 구심점이며 통일의 구성, 현시대의 '''한울님''''이라고 칭송하는 담화를 발표하는 등 김정일 숭배사업에 동원되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았는지 1995년 8월 조국통일상을 수상받았으며 1996년 11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공동의장에 임명, 1998년 단국민족통일협의회 회장에 임명되는 등 대남사업에 주로 모습을 드러냈다.
1998년, 김정일 체제의 본격적 출범이었던 10기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되자 대의원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죽을 때까지 대의원에 계속 선출되었다. 2000년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을때,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하여 아들 최인국, 차녀 최순애와 손자 등 가족들을 북한 정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워커힐 호텔에서 극비리에 90분 동안 만났다. 하지만 장녀 최근애는 상봉하지 않았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사이의 2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영남, 로두철, 강능수, 박관오, 김용진, 박순희 등 북한의 당, 내각, 최고인민회의의 거물들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배석했다.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한 후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고, 각종 통일 관련 행사, 개천절 행사에 참석했으며 김양건, 강석주 장의위원에도 위촉되었다. 사망 직전까지 소위 '조국통일 운동'에 관련하여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2016년 7월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 남, 해외제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의 부위원장에 위촉된 것을 마지막으로 11월 23일에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2019년, 차남 최인국이 월북하였다.

3. 참고문헌


  • 김병로, 『북한 종교정책의 변화와 종교실태』(서울: 통일연구원, 2002)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17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