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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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평안북도 의주군 월화면 마룡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최동오(崔東旿)이다. 한국 광복군 출신으로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에 복무했고, 해방 이후에는 한국 육군 장교가 되어 6.25 전쟁에는 제8사단과 제11사단의 사단장으로 참전하였으며 막바지에는 휴전회담 대표를 역임하였다. 제1군단장을 지낸 뒤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으며, 박정희 정권 하에서 외무부장관과 주 서독 대사를 역임했다.
동백림 사건 당시 서독 대사로서 서독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결국 실패하여 외교 문제로 비화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국제적인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고, 사태 수습을 위해서 박정희는 최덕신을 해임해 버렸다.
정권에서 내쳐진 최덕신은 천도교 교령으로 취임하는데,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감인지 서서히 친북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976년 2월 미국으로 이주한 후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고 공개적으로 6.25 전쟁 북침설을 주장하는 등 친북 활동을 벌이다가 1986년 북한으로 망명하였다.[1]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6.25 전쟁 당시 훈공이 박탈되지는 않았고, 인민의 에어브러쉬질로 유명한 북한과 달리 6.25 전쟁 관련 기록도 그대로 남아있다.
김일성은 10대 소년 시절에 최덕신의 부친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선생이 만주에 설립한 화성의숙을 다닌 과거가 있는데, 김일성은 이런 인연을 들면서 최덕신을 설득했다고 한다.
북에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북한에 거주하던 3년 동안 여러 직책을 역임했는데, 북한의 조선골프협회 회장을 맡는 등 나름 이색적인 직책을 맡기도 했다.
사후 북한판 현충원인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이때 김일성이 직접 조문했다고 한다.
3. 논란
* 6.25 전쟁 당시 '''거창 양민 학살사건'''으로 대변되는 영호남 지역 민간인 학살의 주동자로 지목된다. 최덕신은 게릴라전에서는 중국 국민당군(국민혁명군)이 자주 했던 견벽청야 즉 청야 전술이 해결책이라며 동일한 개념을 지리산 빨치산 토벌에 적용하라는 작전 지침을 하달했고, 그 결과 빨치산이 쓸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파괴하기 위해 지리산 곳곳에서 '''수천명의 양민들이 학살당했다.'''
* 독일 여비서와 NTR하다가 복상사시켰다는 도시전설급 이야기도 있다. 다만 이 이야기는 남한 정부의 모략일 가능성도 있다.
4. 기타
남한 최고위직 월북자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사회주의의 정신적[2] 우월성을 선전하는 연작 프로파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3] 그의 일대기도 방영했다.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면서 독립군을 이끌고 귀환했지만 미군에 의해 좌절되었고, 6.25 전쟁 당시 카리스마 있는 장군으로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4] 북에 있는[5] 아버지가 잘 살면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아들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과거를 상징하는 사진 세 장에 총질을 하고[6] 북한에 들어가서 편안한 일생을 보내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1980년대 후반 주체연호를 창시해서 이런저런 과정을 거친 뒤 약 10년 후인 1997년 9월 9일 김정일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2000년대 북한 이산가족 방문단이 왔을 때 최덕신과 함께 월북한 아내 류미영[7] 이 남한에 와서 남겨진 가족들과 상봉했다. 류미영은 2016년 11월 24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
2019년 7월 6일에 최덕신의 차남 최인국도 대를 이어 월북했다. #
[1] 천도교는 10년 뒤인 1997년에도 오익제 교령이 월북해서 큰 곤욕을 치뤘다.[2] 물질적으로는 어려운 걸 인정한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사회주의권 영화를 비교해 보면 동독이나 소련 영화는 사회주의의 합리성을 강조하는데 반해, 북한 영화는 일관되게 민족주의적 순수성과 정신력을 강조한다는 것이다.[3] 90년대 후반부터는 독립운동가나 사회 현상 기타 다른 주제로 나갔지만, 초기는 월북자 전기 영화였다.[4] 북한 영화에서 이 부분에서 동백림 사건과 김대중 납치 사건이 재현된다. 물론 사실과 다르게도 영화에서 최덕신은 동백림 사건이 터지자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며 노발대발한다.[5] 최덕신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6] 군인으로서의 과거, 외교관으로서의 과거, 천도교 교령으로서의 과거.[7] 독립유공자 유동열의 딸. 대한민국을 버리고 월북한 사람이 갑자기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의 대표자로 나타났기 때문에 남한 일각에서는 북한이 우릴 우롱하는 것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