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항공모함)
1. 제원
2.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개조항공모함 '''류호(龍鳳)'''.
본래는 '''타이게이'''라는 이름의 잠수모함이며 기존의 노후화된 잠수모함을 대체하고 주력 잠수함인 1급(伊형)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함선이자 추후 항모로 개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함선이다. 이후 이 배의 함체를 기준으로 급유기능을 확충한 함선이 나중에 쇼호와 즈이호가 되는 츠루기자키급 고속급유함[1] 이다.
3. 함생
당시 선박건조에 있어서 기존의 리벳 접합 방식 대신 세계 최초로 전기용접 방식을 채택한 덕분에 건조 자체에 걸리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쇼와 덴노에게 이 배의 건조 예정일이 알려져버린 탓에 공사기한을 연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뒷사정이 있었다. 특히 진수식 일정에 맞춰 건조를 서두르다 보니 건조 도중 전기용접으로 인한 선체의 뒤틀림이 발생하였고, 결국 뒤틀린 선체를 끼워맞추기 위해 선체를 절단하고 그 사이에 리벳을 박아넣어 일단 '''겉보기로는 멀쩡하게 보이게끔 임시로 땜빵'''한 뒤 진수식을 진행했다. 다만, 진수식 이후 그대로 예비함으로 편성되어 추가 수리에 들어갔는데, 주요 원인은 최초로 도입한 디젤엔진의 문제.[2] [3] 함의 출력이 예상보다 절반 이상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를 수습하던 도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4함대사건으로 전기용접 부위의 선체 크랙까지 발생해 선체의 강도 강화를 위한 대규모 개조 작업이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진수식은 1934년에 해 놓고 실질적인 완성은 1938년에 이루어졌다.
이후 1941년에 태평양 전쟁 발발과 함께 그 해 12월 20일 항공모함 개장에 착수, 3개월 이내로 개장을 완료할 계획이었지만 문제 발생으로 거의 1년이 지난 뒤인 1942년 11월 경항모 류호로서 취역을 한다. 첫 번째 이유는 디젤 엔진을 들어내고 가게로급 구축함에 도입되었던 터빈 엔진을 장착한 것이었는데, 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그걸 해결하느라 지연이 된 것이었다.[4] 두 번째 이유는 둘리틀 특공대의 공습이었는데, 개장 공사 도중 공습을 받고 우현에 폭격탄 한 발이 정통으로 명중하여 크게 손상되는 바람에 그거 때우느라 또 지연이 되고 말았다.
겨우겨우 연합함대의 일원이 되어 20대의 경폭격기를 트럭 섬으로 옮기는 첫 임무를 맡게 되지만, 미군 소속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맞고 다시 수리를 받는다. 1943년엔 남태평양의 항공기 운반 임무를 맡았으며 44년엔 정찰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필리핀 해 해전에 참가했으나 성과는 없었다.[5]
일본 근해에서 정찰 및 훈련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44년 말 대만으로 오카를 운반하고 돌아오던 중 미군 뇌격기의 공격을 받지만 큰 피해 없이 돌아온다. 이후 1945년 3월 구레 군항 공습 당시 미군기의 공격으로 폭탄 3발과 로켓탄 2발을 먹고 Total loss(전손/全損) 판정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폐선으로 간주되어 항구에 방치되었으며, 1945년 7월의 구레 군항 공습에서 공습을 받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살아남았다. 전후 1946년 4월 2일 스크랩 처리된다.
4. 기타
5. 매체에서
5.1. 벽람항로의 캐릭터
류호(벽람항로) 항목 참고.
5.2. 함대 컬렉션의 칸무스
류호(함대 컬렉션) 항목 참고.
6. 관련 링크
[1] 다만 츠루기자키급은 실제로는 건조 도중 추후 항모화를 쉽게 하기 위한 개조를 거친 탓에 1번함 츠루기자키(나중의 쇼호)의 경우 잠수모함으로 완성된 후 항모로 개장되었으며, 2번함 타카사키의 경우 아예 건조 도중에 잠수모함으로 예정 변경->경항모로 예정 변경의 과정을 거쳐서 바로 항모 즈이호로 완성되었다.[2] 당시 디젤엔진은 구조가 복잡한 탓에 고장이 잘 났는데, 야마토급 전함의 경우 30노트를 달성하려고 디젤엔진을 채용하려 했으나 이 문제 때문에 본래 야마토급 전함에 탑재되어야 했던 디젤 엔진은 수상기모함 닛신에 탑재되고 야마토는 신뢰성이 비교적 높은 증기 터빈 엔진을 채용했다.[3] 일본의 엔진기술이 미국, 유럽에 비해 뒤쳐져있기도 했지만 디젤엔진 자체는 독일도 수상함대에 도입하는 데 있어 많이 고생했다.[4] 인식과는 달리 터빈엔진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이게이는 원래 2선급 지원목적을 가진 잠수함 모함이었고 비교적 신기술인 디젤엔진으로만 이루어진 함선이어서 목표 속도와 출력이 그리 높진 않았고 디젤 2기에서 1만 3~4천 사이의 마력을 낼 수 있었다. 거기에 신뢰성도 높진 않았다. 그에 반해서 카게로급이 채용한 터빈엔진은 2기 합쳐서 5만 2천마력을 낼 수 있었고 이미 비슷한 함종 개장과 함께 추진방식을 변경했던 즈이호, 쇼호에도 적용된 상태였다. 이후 일본 해군의 디젤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 치토세급에 이르면 터빈과 디젤을 같이 쓰는 복합 추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여전히 디젤의 신뢰성이 높진 않았다고...[5] 필리핀 해 해전에선 폭탄을 얻어맞고 중파되었는데 이 기록은 SBD 돈틀리스가 마지막으로 함재기로써 거둔 전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