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

 




1. 개요
2. 설명
3. 상징으로 쓰는 단체
4. 대중문화 속의 봉황
4.1. 기타 작품
5. 지명
6.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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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鳳)은 수컷, 황(凰)은 암컷을 뜻한다.
예수회 선교사들의 중국 관련 서적에 묘사된 봉황.
그 아래의 새는 야생인 야계(野鷄), 우리말로는 멧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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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대조전 봉황도.[1]
鳳凰
순우리말로는 아시, 안시, 아시새라고 한다.[2]
동아시아 전설에 나오는 상상 속의 로, 갑골문자에서 봉황은 벼슬과 긴 꼬리깃을 달고 있는 새 모양의 문자로 표현된다.

2. 설명


산해경 등 전하는 말에 의하면, 덕이 높은 천자가 태어나면 나타난다고 하며,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를 갖추고 오색의 깃털을 가졌으며 오음의 소리를 낸다고 전해진다. 머리는 덕, 날개는 순, 가슴은 인, 배는 의를 뜻한다.
갑골문자의 자형으로 보면 鳳은 공작, 혹은 그와 비슷한 닭과 비슷한 볏이 달린 커다란 조류나 긴 꼬리가 달린 새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문자인 듯한데, 지금은 멸종하고 없는, 깃털이 아름다운 새를 뜻하였을 것이다.[3] 하지만 본래 이 문자가 가리키던 새가 멸종하면서 점차 상상의 동물로 바뀌었다고 추측한다.[4] 처음에는 봉(鳳) 자만 사용했으나, 나중에 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으로 나누어서 표기하였다.
한국의 봉황 관련 전승은 중국의 전승에서 차용된 것이라고 하나, 그 이전부터 솟대, 삼족오 등의 를 대상으로 한 토테미즘 신앙이 있었기에, 한국 고유의 신성한 하늘새 신앙에서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높다.[5]. 고구려에서는 장닭의 꼬리털을 봉황털로 여겨 군사들이 모자에 장식으로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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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총 금관의 새 장식. 봉황이랑 비슷하다.
또한 봉(鳳)자에서 바람 (風)자가 나왔다. 본래는 /*prəm/[6]으로 발음이 같았기 때문에 바람이라는 의미가 같은 문자에 덤으로 붙어 있었고, 풍은 봉의 이체자에 불과했으나 후세에 이르러 봉에서 풍이 완전히 분리된다. 역으로 이것 때문에 봉과 바람의 관계가 생겼다.
도교 세계관에서는 (鵬)과 함께 조류로서는 최상 랭크에 위치한 환상종이다. 과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다만 어떤 상서로운 징조로서 나타난 기록은 있으나 막상 전투에 참전했다는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서, 만물을 지배하는 성질의 용과는 달리 태평성대를 상징하는 환상수임을 추측할 수 있다.
해가 뜨면 우는 특성 때문인지 을 존대하는 표현이기도 하며, 흔히 닭고기로 만든 요리를 추켜세울 때도 쓰인다. 예를 들자면 용봉탕(龍鳳湯). 용봉탕은 보양을 위해 잉어와 닭을 이용해 끓여낸 요리로, 잉어를 용에 비유한 것은 등용문의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 잉어 대신 자라메기를 넣거나 함께 넣어 요리하는 것도 있다.
그 탄생에 대해서는 사이에서 나왔다는 출처불명의 설이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이와 같이 설명하는데 국외 웹사이트에서는 탄생에 관해 찾을 수 없다.[7]
왠지 모르게 서양 쪽에서는 불사조 하고도 연결되기도 하며, 특히 봉황과 주작의 영어식 번역어로서 사전적 분류로는 '중국식 불사조(Chinese Pheonix)'라고 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피닉스(Phoenix)라고 통칭하기도 한다.[8] 하지만 유래를 따지고 보면 봉황과 주작은 서양의 불사조인 피닉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봉황이나 주작은 옛 중국 신화산해경에서 유래되었지만, 피닉스는 이집트 신화의 불사조인 벤누(Bennu, Bnn)에서 유래되었다. 따지고보면 드래곤도 지칭하는 대상이 완전히 다른 데도 서로 번역되기도 한다.[9]
중국에선 왕비의 상징. 중의 용인 황룡군주가 쓰는데 반해, 중의 새인 봉황이 그 아내인 황후에게 쓰인 것이다. 봉황이 함부로 산짐승을 먹지 않는 점에서 유래하여 인과 덕을 뜻하여, 그것이 황후의 덕목으로서도 요구된 것. 《장자》 소요유편에 의하면, 봉황은 벽오동 나무가 아니면 깃들어서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고 하였다. 며느리인 황태자비도 봉황을 쓰지만, 문장이 황후에 비하여 작다.
시각에 따라서는 봉황은 주로 을 잡아먹고 산다는 인도 신화불교가루다(금시조) 이미지로 받아들인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런 경향도 있다 하는 정도지, 옛 미술품에 보면 금시조는 봉황과 엄연히 다르게 그려진다. 금시조는 거의 인면조로 그려진다. 다만 금시조가 봉황이 전해져 결과적으로 봉황으로부터 발전된 형상이라는 설도 있다.
봉황 그 자체는 대단히 좋은 상징이다. 신체의 각 부위는 인(仁)·의(義)·예(禮)·덕(德)·신(信)을 나타낸다고 하며, 죽었다가 부활하는 서양피닉스와는 달리 신선이나 성천자(聖天子)의 상징이라서인지 죽음과 관련된 것은 아예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하기사 천자의 상징인데 봉황의 죽음 운운하면 봉황 목숨보다 그 사람의 목숨부터 위험할 것이다.[10]
여담으로 일본어로는 호우오우(ほうおう)라고 읽으며, 포켓몬 중 하나인 칠색조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다.
기이하게도 봉황은 정작 중국이 아니라 중국 동쪽 군자국[11]에 산다는 언급이 《설문(說文)》에 나온다.

봉은 신조(神鳥)이다.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에서 나는데, 사해(四海)의 밖에서 날아올라, 곤륜산(崑崙山)을 지나서 지주(砥柱)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을 씻고,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잔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태평해진다.

해동역사 제 27권 / 물산지 2 출처

또한 《산해경》을 보면 남산경에 봉황이 나오는데, 기록을 보면 중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쪽으로 500리를 가면, 단혈산(丹穴山)이 있는데 그 산 위에는 이 많이 있다. 단수(丹水)가 이곳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흘러 발해(渤海)(보하이 해)로 흐른다. 가 있는데 그 생김새가 과 같고 오색의 채색된 무늬가 있으며 봉황(鳳凰)이라고 한다(민음사판 산해경 65쪽)". 물론 산해경의 지리에 대한 기록은 개판인데다,[12] 어디까지나 당대 중국의 영토 안팎에 대한 신화와 전설을 기록한 책이니 사실성을 따질 수는 없으며, 그저 고대에 한반도와 그 근방에 대한 중국의 관점이 남만, 북적, 서융과 같은 기타 오랑캐와 달리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고 그 중 한 가지 사례가 이것이라고 보면 된다.
조선시대부터 을 상징하는 명나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군주의 상징으로도 쓰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된 표기이다. 왜냐하면, 당장 한국어에서 어좌를 가르키는 말을 '용상'이라고 하지 '봉상'이라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 오히려 군주의 상징으로는 을 더 많이 썼다. 용상, 용안, 곤룡포 등등 용과 관련된 단어와 의복은 수두룩 하지만 봉황이 상징이 되는 것이 오히려 드물다. 심지어 청나라가 조선에 지정한 국기도 청색 바탕에 을 그리는 방식의 깃발이었다. 물론 고종은 그에 반발해 태극기를 만들었다.[13]
조선 시대 왕실유물에서 이 훨씬 더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 조선 왕의 흉배 문양에 있는 용의 발톱이 중국보다 적은 4개라는 루머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세보면 5개 맞다. 조선 왕실에서 쓰인 용 문양의 발톱은 그때그때 수가 달라지는데, 흉배에는 5개가 쓰이기도 했고 그림에는 4개가 그려지기도 했으며, 경복궁이나 경희궁 정전의 천장에는 황국의 5조룡도 뛰어넘는 7조룡을 조각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고 그저 '왕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고 막연히 추측할 따름이다.
단 봉황이 한반도에서 실제로 서식하던 동물[14] 내지는 한민족이 섬기던 영물이었다가 봉황 숭배 사상이 중국 대륙으로 퍼져나간 것이란 주장도 있다. 복희여와 등 자신의 뿌리를 뱀(용)에 두고 있는 한족과는 달리, 한민족의 건국신화는 주몽 설화나 박혁거세 설화 등 난생설화천손강림 설화가 혼재된 양상을 띠는데, 이것이 사실 ''''하늘을 날 수 있고, 알을 낳는' 새를 상징'''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한민족은 솟대 등등처럼 예로부터 새를 숭상했고, 새를 숭상하던 문화가 봉황 숭배 사상으로 발현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매우 흥미로운 주장인데, 난생설화 + 천손강림 설화 양식의 건국신화는 만주 시조 신화한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한민족을 포함한 여러 북방 민족(즉 중국에서 동이라 부르던 집단)들이 용을 숭배하던 중국 본토 한족과는 달리 봉황을 숭배했으며, 고대에 이들 북방 민족들이 한족과 중원의 지배권을 놓고 벌인 싸움에서 패배함으로써 봉황이 용보다 격이 낮은 영물로 취급받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즉 조선이 봉황을 왕의 상징으로 삼은 건 사대주의 사상도 있겠지만, 애초에 봉황 자체가 한민족에게 국조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던 거 아니냐는 주장. 당장 태양신인 삼족오만 하더라도 완전 까마귀처럼 묘사된 중국, 일본과는 달리 검은색 봉황에 가까운 외형인지라 한국의 봉황을 숭배하는 문화가 유독 특출났음을 보여준다.
봉황이 실존하던 동물이었단 주장도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닌 것이, 멀리 갈 것 없이 만 하더라도 악어왕도마뱀 종류의, 황하 유역에 서식하다가 멸종한 파충류라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마찬가지로 봉황 또한 실존했다 멸종한 조류일 확률이 높은데, 우선 봉황의 외견을 묘사하는 기록만 보아도 명백히 꽁지 긴 이나 공작새의 일종을 묘사하고 있다.[15] 즉 산해경의 기록과 조합해 보면 봉황은 금색 깃털을 가진, 한반도 지역에 서식하던 공작새 비스무리한 조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
여하튼 우리나라는 예부터 를 숭상하던 풍습이 있어, 을 숭상하던 중국과는 다른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인지 한국 신화설화 등을 볼 때, 한국에서 중국과는 달리 하위신에 위치하는 듯한 내용의 설화가 많다(인간에게 속아서 여의주를 뺏긴다든지).[16]
내용을 요약하면,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것은 중국 왕실과 마찬가지로 이었다. 이와는 별개로 봉황을 두고 사대주의의 상징으로 해석했던 의견들이 없지는 않다.

3. 상징으로 쓰는 단체


  • 광주 FC: 남방의 평화를 지키는 주작(봉황의 수컷)을 형상화 하였다고 한다.
  • 봉황중학교, 봉황초등학교

4. 대중문화 속의 봉황


주작이나 불사조(피닉스)와 얽메여서인지 대중문화에서는 속성이 붙는 경우가 많다.
라이징 모드가 봉황의 형태를 하고 있다.
불사조지만 백조의 색이 섞여있다.
이쪽은 모티브가 봉황.

4.1. 기타 작품


  • 만화 바람의 나라에서는 호동왕자의 신수로 등장한다. 고모인 세류가 준 것이다. 즉, 작중 고구려 왕실 내의 갈등의 한 원인을 세류가 제공한 셈이다. 아버지 무휼의 신수 '청룡'과 상극이라 한 번은 무휼에게 정체가 들켜 죽을 뻔한 적도 있다. 함부로 신수를 해치면 그 주인에게도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의 해가 돌아가는데, 그것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처단하려 들었다. (비록 호동을 간병하면서 기가 느슨해진 틈을 타 도망쳤지만) 이후 무휼과 호동 간의 골육상잔의 운명을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18] 본인도 무휼을 싫어해서 틈만 나면 호동에게 고구려를 떠나자고 부추긴다. 초반엔 봉황의 병아리 상태이지만, 후반에 들어 성체가 된다. 성체가 된 이후로 무휼의 청룡을 반드시 쓰러뜨리겠다고 이를 가는 중이다.
  • 삼국지 7성수 중에 하나로 등장.전투 중 계략창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봉황의 경우는 적의 군량을 상당수 불태우고 모든 적에게 화계를 걸어 피해를 입힌다. 실질적으로 큰 타격을 주지는 못하나 봄이나 가을에 사용할 경우 전장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될 수 있다. 얽히고설킨 난전 상황에서 봉황을 발동할 경우 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다른 성수들과 마찬가지로 성흔 특기를 습득한 장수가 길가던 호랑이에게 삥을 뜯으면 얻을 수 있다. 한 번 뜯어낼 때마다 전투 중 한 차례씩 사용할 수 있으므로 성흔 특기를 얻고 일기 특기를 가지고 있는데다 무력도 높다면 열심히 사냥 다니며 뜯어내자.

5. 지명



6. 관련 문서



[1]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www.gogung.go.kr)[2] 화음방언자의해는 신라어로 봉황을 아시새, 무오연행록은 봉황의 옛 방언으로 안시, 열하일기에서는 고구려에서 큰새를 안시(安市)라 불렀다하고, 조선의 방언으로 봉황을 황새라 부른다고 적혀있다. 황새는 황소의 황과 같이 한이 변한것이며 큰새란 뜻이다. 예로 신라의 관등인 대나마(大奈麻)를 한나마(韓奈麻)로 쓰기도 했다. 대(大)의 훈으로 한(韓)을 쓴 것이다.[3] 지금껏 허구의 동물로 여겼지만, 동북아시아에 실존했을 가능성이 대두되는 사례가 하나 있다. 심지어 그 동물은 당대 왕조의 자세한 기록도 남아있었다. 짐새 항목 참조.[4] 예시로 코끼리와 코뿔소는 은나라 때만 해도 밀림이었던 고대 중국에 살았었기에 그 조각상의 원형이 실제와 똑같았는데, 기후 변화와 벌채로 종적을 감추면서 후대로 갈수록 점차 그 외형이 변형되며 상상의 동물로 남았다.[5] 이 설은 동북아시아 북부의 수렵채집민이나 유목민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던 텡그리 신앙과 연관이 있다는 설로도 이어진다.[6] 백스터-사가르의 재구음.[7] 용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유양잡조(酉陽雜俎)> 혹은 <회남자(淮南子)>에 '우가(羽嘉)는 비룡을 낳았고, 비룡은 봉황을 낳았으며 봉황은 난새를 낳았고 난조는 모든 새를 낳았다.'(羽嘉生飛龍 飛龍生鳳 鳳生鸞 鸞生庶鳥)라는 구절이 있다. 하지만 학과 관계까 있단 말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8] 단적인 예로 애리조나 주의 주도인 피닉스의 경우 중국에서는 아예 봉황성(鳳凰城)으로 부른다.(...)[9] 특징은 많이 다르지만, 거대한 파충류형 환상수이자 각자의 문화권에서 중대한 존재로 여겼단 점에서 비슷하다고 보았기 때문인 듯 하다. 본래 용은 만물을 지배하고 날씨를 다스리는 상서로운 존재로 인간을 위협하는 드래곤과 취급이 다르지만, 화염을 뿜으며 난동을 부리는 흑룡을 묘사한 한국 전설도 있으므로 동양에서도 이따금씩 드래곤처럼 용을 악질로 보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10] 민담 레벨에서는 있긴 한데, 봉황이 나타나던 한 마을에서 어떤 청년이 호기심에 봉황을 죽이자, 인재가 많던 그 마을에 인재가 나지 않아 폐촌이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신화집이나 도교 경전류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11] 한국의 별칭으로도 쓰였다.[12] 동진의 인물 곽박은 아예, 남산경에 언급된 발해는 해안선이 굴곡진 곳이라는 주석을 달기까지 했다.[13] 첨언하자면 청나라가 지정해준 용기는 중국 왕실에서 쓰던 오조룡보다 격이 낮은 사조룡에, 중국 동쪽에 한국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동방의 수호신인 청룡, 즉 사조청룡이었다. 또한 태극기 이전에도 조선 왕실에서는 어기(御旗)를 사용했다. 모양은 문왕팔괘에 태극도설의 태극문양을 그려넣었으며, 이와 유사한 좌독기는 군대에서 사용했다.[14] 참고로 도 실존하던 동물이란 설이 있다. 문서 참고.[15] 특히 금계와 너무 비슷하게 생겼다.[16] 근데 사실 을 숭상한다는 중국에서도, 불교도교의 영향으로 용왕은 고전소설에서 자주 동네북으로 등장한다(...)[17] 피닉스의 경우 피닉스, 윙피닉스의 경우 불사조라고 표기되어 있다.[18] 사실 무휼은 자신이 호동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하여, 봉황이 아직 어린 시기에 아들과 때어놓을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것이다. 물론 신수를 죽이면 주인에게도 해가 가지만, 호동 경우는 아직 신수가 어리니까 그나마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휼의 골육상쟁에 대한 공포가 상당함을 보여주는 다급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