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급 전함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
무사시
시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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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和型戦艦'''
[출처]
1. 개요
2. 제원
3. 동형함과 건조계획
3.1. 1~4번함(이름:야마토, 무사시, 시나노, 111호함(예정함명:키이))
3.2. 5번함 (개 야마토급)
3.3. 6, 7번함 (초 야마토급)
4. 대단한 스펙
4.1. 구조
4.2. 무장
4.3. 장갑
4.4. 속도
4.5. 장비 및 함내 복지
5. 문제점
5.1. 취약한 부포탑 방어
5.2. 부족한 대공능력
5.3. 장갑의 이면
5.4. 느린 속도와 짧은 항속거리
5.5. 불충분한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 이로 인해 제한되는 협차가능 사거리
5.6. 포신 안정화 장비의 부재
5.7. 부족한 예비 부품과 장비
6. 실전
6.2. 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료칸
6.3. 어뢰 피격
6.5.1. 시부얀 해전
6.5.1.1. 무사시 침몰
6.5.2. 사마르 해전
6.5.3. 이설
6.5.4. 그래서 전공은?
6.5.5. 다른 함대의 운명
6.6. 시나노 침몰
6.7. 야마토 침몰
6.8. 격침의 의미
6.8.1. 일본
6.8.2. 미국
6.9. 야마토급의 전과
6.10. 번외편: 과달카날 해전에 불참한 이유
7. 평가
7.1. 자국 군함들과의 비교
7.1.1. 일본군 전함
7.1.2. 항공모함
7.2. 타국 전함과의 전과 비교
7.2.1. 영국 해군
7.2.2. 미국 해군
7.2.3. 독일 해군
7.2.4. 소련 해군
7.2.5. 그 외에
7.3.1. 필요하긴 했다
7.3.2. 현실은 시궁창
7.4. 야마토의 설계도면
7.5. 일본인들의 야마토에 관한 인식
8. 기타
9. 매체에서의 야마토
9.1. 드라마
9.2. 애니메이션 & 코믹스 & 소설
9.3. 게임
9.4. 영화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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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세계 최대 전함 '''야마토급 전함(大和型戦艦, 대화형전함)'''.
체결국 해군의 확장을 제한해오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탈퇴한 일본이 기어이 조약의 제한을 무시하고 건조한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이다. 초도함 야마토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기 직전부터 건조를 시작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수/취역하였으며, 크기나 배수량만 봐도 현대의 대형 크루즈선이나 중형 항공모함에 필적한다.
전함 야마토는 그야말로 거함거포주의의 정점에 달했다고 할만한 전함으로서, 지금까지도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고 이제는 깨질 이유도 없는[1] 공전절후의 '''460mm 함포를 탑재한 전장 263m, 전폭 39m의 거대전함'''이다. 이 거함에 맞먹는 덩치를 지닌 함포 군함은 영국의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미국의 아이오와급 전함,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 정도이며 배수량으로 따지면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려한 규모에 비해 초라한 이력, 전과에 빗대어 여객선이라고도 불렸는데 실제로 태평양 전쟁 기간중 야마토는 취역 이후 자매함 무사시와 함께 트럭섬에 쳐박혀있던 탓에 일본 해군 수병들은 야마토급 전함을 '''야마토 호텔'''[2], '''무사시 료칸(여관)'''으로 불렀고 ‘세계에서 제일 쓸모없는 세 가지는 중국만리장성, 이집트피라미드, 일본의 야마토 전함이다’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3][4]
한자까지 똑같기 때문에 보통 일본의 고대국가 야마토의 이름을 딴 전함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율령국 가운데 하나인 야마토노쿠니(大和国, 지금의 나라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실 야마토의 자매함인 '무사시'와 '시나노'의 어원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무사시는 무사시노쿠니(武蔵国), 시나노는 시나노노쿠니(信濃国)에서 따왔다. 참고로 일본 해군의 전함 명명법은 옛 일본의 율령국에서 따온다.[5] 그 예로 나가토나 무츠도 율령국의 이름이었다.[6] 다만 야마토는 일본의 별칭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점도 고려되었을 수 있다. 쇼와 덴노가 야마토와 시나노라는 이름 중에서 야마토를 선택하여 1번함에 야마토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 야마토의 승조원이었던 해군 장교 이시다 나오요시의 증언에 의하면, 함내에서 길을 잃을 때를 고려해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를 알려주는 화살표가 함내 곳곳에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이것은 야마토만의 특징은 아니다.[7] 야마토급은 두터운 장갑 때문에 기준배수량 6만5천여 톤, 만재 배수량이 7만 2천여 톤에 달하는 괴물이었다. 이 배수량 기록은 1950년대 말 미국이 현대식 대형 항공모함인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을 취역시킬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8]
게다가 역대 군함들 중 '''잠수함 단 한 척의 어뢰'''에 격침당한 가장 큰 배도 동급의 선체에서 유래한 항모였다.

2.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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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당시의 일러스트 (현측에 155m 부포탑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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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당시의 일러스트 (현측의 155mm 부포탑이 철거되고 대공화기가 증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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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의 일러스트 (대공 무장이 더 늘어났다.)
구분
건조시(1941년)
최종사양(1945년)
기준배수량
64,000t
공시배수량 [9]
68,200t
만재배수량
72,800t
전장
263m
전폭
38.9m
흘수선
10.4m
추진력
150,000shp, 167,310shp (공시출력)
보일러
로호함본식 보일러 12기
터빈
함본식 증기터빈 4축 4기
스크류
3엽 프로펠러 방식 스크류 4기 (직경 6m)
속도
27knots (통상시), 28.5knots (과부하시), 29.3knots (승조원 증언 최대치)
항속거리
16knot (30㎞/h)로 7,200해리 (13,334㎞)
승조원
2,500명 (정규인원), 2,800명 (최대수용인원)
주포
460㎜ 45구경장 3연장 주포탑 3기 (총 9문)
부포
155㎜ 60구경장 3연장 부포탑 4기 (총 12문)
155㎜ 60구경장 3연장 부포탑 2기 (총 6문)
대공포
127㎜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탑 6기 (총 12문)
127㎜ 40구경장 2연장 대공포탑 12기 (총 24문)
대공기관포
25㎜ 3연장 기관포좌 8기 (총 24문)
25㎜ 3연장 기관포좌 52기,
25㎜ 단장 기관포좌 6기 (총 162문)
대공기관총
13.2㎜ 2연장 기관총좌 2기 (총 4문)
소나
영식수중청음기(패시브 소나)
장갑
측면장갑 410㎜, 장갑갑판 200㎜, 장갑함교 500㎜, 주포탑 전면 660㎜
함재기
수상정찰기 7대, 캐터펄트 2기 장착
건조비용
약 137,802,000엔[10][11]

3. 동형함과 건조계획


일본 제국이 해군 조약에서 탈퇴한 뒤 장래의 함대결전시 해군의 전력비상 열세를 질적으로 만회하고자 계획하였다. 당초에는 총 8척의 건조가 계획되었고, 야마토급의 완성에 따라 이전 함급이었던 공고급, 후소급 전함, 이세급 전함은 모두 스크랩처리. 나가토급은 연습전함으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산문제와 전쟁발발 등으로 인해 실제로 군함으로서 완성된 것은 3척[12], 전함으로서의 야마토급은 단 2척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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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원형인 A-140 디자인의 여러 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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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40 디자인 중 함수에 주포탑 3기를 집중배치한 안의 가상사진
야마토의 최초 건조 계획은 A140 설계안이라 명명되었으며, 실제 건조된 야마토보다 더 무거웠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G, J[13], K형 디자인에서는 화력 집중을 위해 넬슨급 전함처럼 주포탑 3기를 모두 함수 쪽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토네급의 주포배치가 전방집중형이 된 것은 야마토의 이러한 설계안을 실험제작해보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외의 설계안에 따라 2연장 주포탑을 사용하는 설계도 있었다. 계획상으로는 출력 20만 마력에 속도는 30노트로 충분히 고속전함이라 불릴만한 수준이었고[14] 배수량은 68,000톤으로 계획되었다.

3.1. 1~4번함(이름:야마토, 무사시, 시나노, 111호함(예정함명:키이))


이 설계계획에 따라서 1937년부터 제작하기 시작해서 1941년 8월 8일, 1번함 야마토가 진수되었다. 진수식은 선대에서 내려 진수시키는 것이 아닌 도크에 물을 채워 진수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졌는데, 엄중한 보안유지로 인해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은 채 오직 관료 100명과 진수식 작업인원 1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거대한 전함답지 않게 아주 외롭게 진수되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직후인 1941년 12월 16일에는 1번함 야마토가 취역, 1942년 8월 5일에는 2번함 무사시가 취역했다. 그러나 당시 해군 내에서 야마토급의 존재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며, 해군병학교의 학생들을 태운 연습기가 야마토가 건조중인 도크 상공을 날며 학생들에게 야마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함명을 알지 못하던 조선 관계자들도 카츠라기급 슬루프 두 척(야마토,무사시)이 폐함된 사실 때문에 신형전함의 함명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독일에서는 야마토의 제원을 어느정도 정확하게 예측한 부분이 있는데, 독일은 일본이 건조하는 신형전함이 함저가 삼중일 것이며 47000톤 이상, 18인치 이상의 주포를 탑재하는 전함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덩치에 걸맞게 건조비도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퍼먹었는데 야마토급의 건조비용은 당시 금액 기준으로 1억 4287만 엔(시나노 기준)으로 이는 당시 일본 제국의 국가예산의 1% 수준이며, 당시 일본 제국 교사의 월급이 50엔인 것을 감안하면 현대기준으로 1척에 적어도 1조 엔(한화 10조 원)씩 쏟아붓는 엄청난 금액이였고 이것은 야마토 단 1척으로 현대 일본의 고속철도도카이도 신칸센(東海道新幹線) 전체 구간을 건설가능한 엄청난 금액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건조된 다른 일본의 대형함들과 비교해보자면, 쇼카쿠급 항공모함이 당시 금액으로 8500만 엔, 다이호가 1억 엔, 운류급 항공모함이 9000만 엔[15]. 폭주하는 군사비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건함경쟁이 있을 당시 47%대까지 증가하던 군사비가 워싱턴 해군조약 이후 28%대로 급락하는 것만 봐도 전함건조가 국가재정에 얼마나 압박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때문에 전쟁으로 일본 제국의 경제가 개판이 되고 더불어 미드웨이에서 일본군 항공모함들이 격침되자 1940년부터 만들어 45년에 취역하려던 야마토급의 3번째 전함 110호는 1942년 6월에 제작을 중단하고 함포 대신 비행갑판을 깔아서 항공모함으로 개조했는데 이것이 항공모함 시나노(信濃)다. 이미 선체의 45% 정도를 완성했었으나 항공모함으로 개장하게 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항공전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건조에 필요한 인력과 작업 공간의 부족 및 '''예산의 심각한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4번째 야마토급 전함[16]인 111호함은 30% 정도 선체가 건조 중이었는데, 1941년 12월에 건조 취소 명령이 내려졌다. 이쪽도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예산 부족이 원인이었다. 그나마 111호까지는 선대에서 건조중이었고, 부품도 일부 만들어진 상태라서 111호용의 부품과 자재는 야마토급 전함의 수리 보수용으로 사용되거나 시나노의 건조에 사용되었다.

3.2. 5번함 (개 야마토급)


5번째 야마토급 전함인 797호함[17]은, 야마토의 155㎜ 부포를 완전히 없애고 100㎜ 대공포를 다수 장착하는 설계였다. 대공화력을 강화한 전함이었지만 이 전함의 건조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으며 이유는 역시 예산의 부족이 주요 원인이었다. 선대에서 건조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나, 건조를 위해 준비했다가 남은 자재는 역시 시나노 등 다른 함선의 제조에 사용되었다.
현측장갑과 갑판장갑을 각각 400, 190mm로 야마토급에 비해 10mm 줄어들었지만 함저의 방벽은 이중에서 삼중으로 강화되었다. 그리고 주포를 50구경장로 바꾸는 방안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어 위키 참조.

3.3. 6, 7번함 (초 야마토급)


6, 7번째 야마토급 전함, 일명 798호함과 799호함은 초 야마토급, 슈퍼 야마토급으로 불리기도 하며, A-150 전함 설계안에 따라 만들어지려 했으나 예산 낭비로 판단되어 취소되었다.

4. 대단한 스펙


보다 강력한 화력을 추구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큰 대구경의 함포(460mm = 18.1인치)를 탑재하고 기준 배수량만 6만 톤이 넘는 이 거대전함은 그 존재 자체로 거함거포주의의 극한을 추구했으며, 후소급과 공고급 전함을 비롯해 다양한 군함들을 건조하며 축적한 건함 기술과 당시 일본이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력을 집대성해서 만든 물건인지라 적어도 '''카탈로그상에서는 타국의 슈퍼 드레드노트급들을 능가하는 엄청난 스펙을 자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의 설계사상만을 놓고 보면 매우 평범한 전함이다. 보다 높은 화력을 추구하기 위해 더욱 커다란 포탑을 탑재하고, 커다란 포탑을 싣기 위해 보다 큰 배를 만들고, 그렇게 커져버린 몸집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도 두꺼워지는 식. 단순히 화력만을 위해 포신을 늘리거나 포탄을 개량하는 등의 동 시기의 다른 전함과 비교하자면 정말로 전함의 정석에 충실한 배라고 할 수 있다. 야마토는 분명 세계 제일의 스펙을 지닌 전함이었지만 이는 기술의 진보, 혁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함의 정점, 피크에 달한 것이다.

4.1. 구조


기존의 전함들을 운용하면서 생겼던 문제점들을 뒤늦게나마 야마토급의 설계에 적용했기 때문에 개선점이 많이 보인다.
  • 최대급 전함이면서 배수량을 최대한 억제했다. -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큰 전함이면서도 18.1인치급 주포를 탑재한 전함치고는 작게 설계되었다. 애초에 설계 당시에는 모든 성능을 충족시키려면 적어도 야마토의 실제 배수량보다 15,000~20,000 t의 배수량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최대한 최적화 및 신규 기술의 도입으로 인해 배수량을 최대한 억제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과도한 건조비용과 자재를 절감하고, 건조시간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일본내에서는 최대급 전함이면서 동시에 최소화를 지향한 전함이라는 평가까지 있다.
  • 3연장 주포탑 채택 - 기존의 일본 전함은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이 없었기 때문에[18] 2연장 주포탑만 사용이 가능해서 열강의 주요 전함처럼 주포문수를 12문 정도로 유지하려면 후소급처럼 주포탑을 무려 6기나 탑재해야 했고[19], 야마토가 등장하기 전의 일본군 최대이자 최강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나가토급 전함조차도 주포를 8문 탑재하기 위해 주포탑을 4기나 탑재해야 했다[20]. 하지만 야마토를 건조하면서 일본 제국도 마침내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주포를 9문이나 탑재하지만 주포탑은 3기만 배치해도 괜찮았다. 이로 인해 중량절감과 방어력 상승, 여유공간의 확보가 가능해졌다. 본래 전함 배수량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그 특유의 대구경 주포와 중장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이리하여 결과적으로 다른 함선으로 치자면 최대 주포탑 3기 분량의 배수량이 전부 함체의 여유 배수량으로 흡수되었기에 장갑이나 다른 시설을 여유롭게 강화할 수 있었고 후술할 개량에 필요한 배수량도 넉넉하게 확보됐다.
  • 연돌의 집중화 및 위치선정 최적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연돌이 2~3개라서 매연이 함교와 광학장비의 시야를 가리는 부작용을 일으켰고 공간도 많이 차지했다. 그래서 개장할 때마다 연돌을 1개로 정리하는 추가작업이 필요했다. 야마토에서는 아예 연돌을 1개로 집중화하고, 함교에서 상당히 떨어진 후방에 경사형으로 설치함으로써 매연으로 인한 시야감소를 최대한 억제했다.
  • 360도 선회식 부포탑 도입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유물인 포곽식 부포를 보유했는데, 이런 방식의 부포는 측면장갑에 구멍을 뚫으므로 방어력의 허점이 생겼다. 게다가 포신의 각도 조절에 엄청난 한계가 있으므로 대공사격이나 장거리 사격이 불가능한 데다가, 포곽의 특성상 후방부를 모든 부포가 공유하므로 부포 포곽중 한 곳에만 포탄이 관통해도 유폭이 전체로 퍼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해당 측면의 모든 부포가 파손되거나 손상을 입어서 전투력이 격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야마토에서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었으므로 부포는 독자적으로 선회및 부양이 가능한 부포탑에 탑재해서 부포의 숫자도 줄이면서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하게 되었다.
  • 대공무장의 강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주포탑의 과대 적재로 인해 대공무장을 탑재할 공간이 크게 부족해서 적군의 항공세력에 매우 취약한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야마토는 주포탑을 3기로 정리하고 적절한 위치에 탑재함과 동시에 배수량 측면에서도 대공화기의 장착에 돌릴 여유를 가질 수 있으므로 200여문에 가까운 대공무장을 탑재해서 일본군 전함 중 가장 대공방어능력이 높았다. 하지만 효율적인 관제체계가 없었고 레이더의 성능도 부족했기에 미국 함선들에 비해서는 효율이 현저히 떨어졌다.
  • 함체의 성능향상 - 기존의 일본 전함은 구식 구조라 속도 향상을 위해 나중에 함체의 구조 자체를 변경하는 일이 잦았으나, 야마토는 구상선수를[21] 처음부터 채택하고 함체 구조도 포격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저항이 적고 깔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고급 순양전함을 제외하고는 가장 빠른 속도인 27노트가 가능했다. 또한 어뢰 공격을 막는 벌지도 최대한 많이 붙이면서도 표면을 깔끔하게 처리하여 다른 개장 함선처럼 벌지를 더덕더덕 붙여서 속도가 크게 감소되는 일을 막았다.
  • 각종 시설의 첨단화, 고급화 - 기존의 일본 전함은 공간 부족과 여유 배수량 부족으로 인해 각종 시설이 충분하지 못한 데다가[22] 그 성능도 열악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승조원이 거주 및 전투하는 데 상당한 악영향을 주는 데다가 전함의 전투능력 자체도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야마토는 내부 편의시설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레이더 등 첨단 시설도 설치하여 전투력 향상과 장병 복지를 동시에 추구했다.

4.2.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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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즈키급 구축함 1척보다 더 무거운 주포탑 1기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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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인 18.1인치 주포탑과 여타 실존/비실존 병기들과의 크기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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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만 해도 2m에 달하는 거대한 포탄.
맨 왼쪽과 가운데의 탄두가 날카로운 형태의 포탄이 각각 91식 철갑탄과 그것의 개량형인 1식 철갑탄이고 오른쪽의 뭉툭한 탄두를 가진 포탄이 전함용 대공포탄인 3식 통상탄. 맨 오른쪽의 깡통을 쌓아둔 것처럼 보이는 물건은 장약이다.

포탑의 작동 모습
그 압도적인 규모에 걸맞게 탑재한 무장도 일본 제국은 물론 열강의 주력 전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우선 야마토의 주포는 대외적으로는 18인치라고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는 18.1인치이다'''. 1인치가 2.54㎝이니 18인치는 457㎜이며, 야마토의 주포는 정확히 460㎜이므로 18.1인치가 맞는다. 이는 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조약상의 주포 구경 제한인 14인치는 물론이고 기존의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주포 구경 제한인 16인치조차 넘어선 것으로, '함선에 장착된 것으로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포로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그러나 바로 아래 구경과 그리 큰 격차라고는 못하는 것이 2위가 겨우 0.1인치 작은 18인치 포이기 때문이다. BL 18인치 Mk 1이라는 영국의 함포인데, 전함에 쓰인 것은 아니고 HMS 제너럴 울프라는 모니터함HMS 퓨리어스라는 순양전함에만 장착되었다. 심지어 탄두의 중량은 야마토보다 더 무거웠다고.
함선으로만 한정하는 이유는 지상 병기중에서는 유명한 구스타프 열차포(800㎜)를 비롯하여 칼 자주박격포(600㎜), 리틀 데이비드('''914㎜, 36인치'''), 차르 대포(890㎜)같이 전함조차 한수 접게 만드는 흉악한 구경을 가진 괴물 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중량에 연연할 필요가 그다지 없는 대구경 열차포나 구식 화포였기 때문이었기에 운송과 발포가 가능했다면 구경은 큰 상관이 없었다. 열차포에 주로 쓰이는 구경이 보통 중순양함 급인 구경 240㎜ 급이었고 전함급인 300㎜나 400㎜ 급도 소수 제작되어 쓰였다.
일본 해군은 야마토급의 건조에 있어서 매우 공을 들였기 때문에 미국 등 해군열강이 기존 워싱턴-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제한을 넘는 전함 건조의 동기를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 표면상으로 '94식 40㎝ 포'라는 명칭을 붙여서 16인치 급 주포인 것처럼 위장하였다.[23] 덕분에 미군은 이 460mm 주포의 존재를 레이테 만 해전 이후에나 깨닫게 되었고[24], 심지어 야마토에 탑승했던 일본군 수병들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야마토의 포를 400mm로 알고 있었다는 모양.[25]
18.1인치 주포라는 당시 해군 조약이고 표준 규격이고 뭐고 다 씹어먹는 괴물같은 물건이 당연히 기성품으로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일본 제국이 자체적으로, 그것도 비밀리에 개발해야 했으므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래서 주포 제작에 새로운 방식의 제조 방법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긴축법(自己緊縮式, Autofrettage)이라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포신 내경을 구경보다 약간 작은 상태로 가공해 포신 내부에 고압의 압축수를 채워 가압을 시키면서 내경을 팽창시킨다. 이렇게 하면 포신에는 내경을 수축시키려는 응력이 발생하여 잔류된다. 이 잔류 응력은 포탄이 발사될 때, 폭압에 의해 팽창하려는 응력과 반대 방향의 응력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포신에 걸리는 응력이 상쇄된다. 이로 인해 같은 재질에서도 포신 두께를 얇게 할 수 있어 제작비용 및 중량을 감소시킬 수 있었다.

1908년 영국 뉴캐슬의 암스트롱 위트워스사 공장에서 강선(鋼線式, gun wire)식 공정을 통해 12인치 함포를 제작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모든 공정과 시험 발사까지 전부 담겨 있다.
초기에는 영국으로부터 습득한 소감식(焼嵌式, shrinkage fit) 방식의 포신 제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포신을 내통과 외통으로 2층 구조로 하여 외통을 가열해 열팽창시킨 상태로 내통을 집어넣어 급냉시키고 외통을 수축시켜 단단히 조인 상태로 고정된다. 이것은 중소형 포신의 제조에 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대구경 함포의 경우는 강선식(鋼線式, gun wire) 포신 제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소감식과 같은 방식이나 내통의 표면에 건와이어(gun wire)로 불리는 강선을 고장력을 걸친 상태로 감아서 외통을 씌우는 타입으로 주로 대구경 포신의 제작에 이용되었다.
그래서 야마토급 전함의 주포 제작에는 여러가지 기술이 결합된다. 일단 94식 45구경 460mm 포신은 안쪽으로부터, 1A 내통, 2A 강통, 3A 강통, 4A 건와이어, 5A 강통의 5개의 레이어 구조였다. 각각의 강통은, 소감법을 이용해 압축 응력을 갖게 하여 기본적으로는 소감식 포신이지만 강선식(鋼線式)과 자긴식(自緊式)이 동시에 적용되기도 하였다. 참조로 건와이어는 두께 1.5875㎜, 폭 6.350㎜를 사용하였다. 한마디로 종합하자면 가장 강력한 함포를 만들기 위해 당시의 일본 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력이란 기술력은 총동원된 것이다.
전함용 3연장 주포탑을 결국 완성했지만 타국의 전함들도 겪었던 3연장 주포의 명중률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떠안았다. 실제로 야마토는 일본군의 다른 전함보다 명중률이 떨어졌다고 한다.[26] 이후 초기의 1km에 달하는 산포계는 전쟁 중간의 개선으로 전후 US Naval Technical Mission to Japan report O-45(N) Japanese 18” Gun Mounts에 있는 기록에 따르면 최대 사거리[27] 일제사격에서 500(457미터)~600야드(548미터) 정도의 산포계였다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다른 주포들처럼 어느 정도 개량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28] 실제로 우가키 마토메의 전중일기인 전초록에는 이 3연장포가 당초에는 엉망이었으나 연습사격시 35km에서 300미터(원근) 수준의 살포계를 얻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밈과는 달리 그렇게까지 나쁜 수준의 살포계는 아닌 것이다.
건조 도중에는 물론 태평양 전쟁이 종전될 때까지 야마토급 전함의 실제 스펙에 대한 정보를 기밀처리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고 결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야마토급 전함의 존재나 스펙을 감추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미국은 일본이 신형 전함을 건조중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주포 구경이 18.1인치인 줄은 몰랐고, 일본 신형 전함에 맞서 건조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준수하여 "16인치 주포를 탑재할 수도 있는 14인치 포격전함"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함대결전사상에 따라 일본군이 생각한 함대결전에서는 미국의 전함 중 어떤 전함도 1대 1 승부가 불가능하리라고 예상되었다.
여담으로 이 기밀 유지에 온갖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야마토의 승무원들도 자기네 주포 구경을 잘 모르고 있었다. 연합함대 사령장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시찰을 나왔을 때에도 상세한 정보 제공을 거절했으며 레이테 만 해전 등에서 야마토를 휘하에 두고 지휘했던 구리다 다케오 중장도 전후 야마토의 주포가 460mm 인걸 모르고 있었다고 진술했다.[29], 야마토가 속했던 2함대의 포술참모 미야모토 다카오 대좌도 비슷한 진술을 했다.
부포도 일본제국의 입장에서는 기적의 성능이라고 볼 수 있는 155㎜ 60구경 3연장 포탑인데, 해당 포탑과 함포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탑재되어 아주 잘 쓰인 물건이며, 나중에 모가미급 순양함이 8인치 주포탑을 탑재할 때 8인치 주포탑이 연사력, 사정거리, 명중률 면에서 모두 불리하므로 교체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있었을 정도로 성능이 우월한 제품이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360도 선회포탑인데다가, 함체 중심선상에 배치되므로 기존의 다른 전함처럼 적이 한쪽 측면으로 붙으면 다른 쪽 부포가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를 막고, 적은 부포수량으로 충분한 방어가 가능했다. 여기에 더해서 모가미급 중순양함에 쓰였던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개량을 추가로 해서 장착했고, 나중에 대공포 증설시 철거되지만 함체의 양 측면에 동일한 부포탑이 1기씩 총 2기가 추가 탑재되었으므로 건조 당시의 부포 화력은 어떤 일본군 전함보다 우세했다.
대공포의 경우에도 89식 12.7cm 40 구경장 함포96식 25mm 고각기총등의 탑재수량이 초기부터 많았던 데다가[30] 필리핀 해 해전 이후 날로 증강되는 미군의 항공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증설을 거듭한 결과 나중에는 200여 문에 가까운 수량을 탑재했다. 그리고 일본군은 전함에 가장 좋은 대공포를 탑재했었으므로 대공능력 면에서는 함재기를 자신의 엄호에 사용가능한 항공모함을 제외하고는 일본군의 어떤 함선보다도 뛰어났다.

4.3. 장갑


야마토급 전함의 장갑
구분
상세(단위는 ㎜, 장갑판의 종류)
현측 주장갑
200 - 410 VH
횡(横)측 방어격벽
중갑판 함수부지역 340 MNC, 하갑판 지역 300 MNC, 중갑판 함미부지역 340 VH, 하갑판지역 350 VH
갑판장갑
중갑판 200 - 230 MNC, 최상갑판 35 - 50 CNC
어뢰방어격벽
50 - 200 NVNC-CNC
주포 탄약고
갑판평탄부위 200- 230 MNC, 갑판경사부위 230 MNC, 수직부위 100 - 270 VH, 바닥 50 - 80 CNC
장갑함교
측면 380 - 500 VH, 상면 200 MNC, 바닥 75 CNC, 통로 300 MNC
주포탑
전면 660 VH, 측면 250 VH, 후면 190 NVNC, 상면 270 VH, 바벳 380 - 560 MNC
부포탑
포방패 25 HT, 바벳 25 DS + 50 CNC
조타 기계실
상면 200 MNC, 측면 350 - 360 VC
연통
380 MNC
야마토급 전함의 또 하나의 장점은 장갑, 그것도 엄청난 떡장갑이다. 기준 배수량만 아이오와급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배수량답게 주포 포탑의 전면장갑 두께부터가 '''무려 660㎜''' 측면장갑은 410㎜, 즉 16.1인치. 그것도 경사장갑이었다. 갑판은 상부 200㎜, 하부 226.5㎜로 8인치급의 미친듯한 떡장갑을 자랑했다. 그리고 포탑의 전면장갑이나 현측의 측면장갑 등 중요부위에는 NVNC(New Vickers Non-Cemented)강이라는 특수강을 적용했다. 같은 시기의 다른 전함들이 가장 두꺼운 곳도 13인치 대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코 얇은 게 아니다. 실제로 주포탑 천장에 250kg 급의 폭탄이 떨어져도 관통이 안 되었고 외부에서 폭발했지만 전혀 손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사용해온 VC강철의 제조 과정은 무쇠 → 용해 → 압연 → 침탄 → 표면 담금질이며, VH강철은 상기의 침탄 작업을 생략한 표면 경화층만의 장갑판인 데 반해, NVNC강철은 침탄 이후의 작업을 생략한 균질압연장갑이면서도 특수강이었으므로 생산공정단축으로 인한 생산성 증대와 시간절약을 얻어내면서 동시에 방어력을 증대하는데 성공하였다.
어뢰에 대한 대응면에서도 벌지를 처음 건조시부터 장착해서 나중에 벌지를 추가한 전함처럼 덕지덕지 붙은 벌지가 함선의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현상을 겪지 않았으며, 그 양과 질도 스펙상으로는 높은 편이었다. 일본의 제철 기술이 연합군에게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는걸 감안해도 카탈로그상으로는 그야말로 최강이었다.
일본이 야마토급 3번함 시나노항공모함으로 개장시키면서 시나노의 포탑 전면 장갑판이 잉여로 남았는데, 2차대전 종전후에 U.S. NAVAL PROVING GROUND(미해군실험장)에서 이 포탑으로 1947년 11월에 관통실험을 벌였는데 그 실험결과는 아래와 같다

* 철강의 재질(PLATE MATERIAL)

Japanese Vickers Hardened (VH) face-hardened, non-cemented armor (used only on YAMATO-Class battleships)

일본 NVNC (New Vickers Non-Cemented) 표면경화 강판 (야마토급에 적용됨)

* 철강의 품질(STEEL QUALITY)

Steel had many tiny pieces of dirt and so forth, being about the same as pre-WWI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 armor steel in quality (VC was used for the first time in the Japanese battleship IJN KONGO, built in Britain, and manufactured in Japan under license thereafter), from which the unique Japanese armors New Vickers Non-Cemented (NVNC), the homogeneous, ductile form of VH used in a number of Japanese post-WWI warships, and VH itself was derived (this steel was not up to U.S., British, or German post-1930 steel quality).

검사에 적용된 철강은 많은 미세 찌꺼기(dirt)들을 함유하고 있고, 그러므로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영국에서 생산하였던 "British Vickers Cemented (VC) KC-type"의 방어 장갑용 강철(armor steel)과 품질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사료된다. (VC 철강은 전함인 공고(金剛)에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영국에서 건조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 기술제휴로 생산하게 된 제품이다.) 이것은 당시 일본에서 "New Vickers Non-Cemented (NVNC)"라는 제품으로, 균일(homogeneous)의 연성재질(ductile)의 VH강으로 WWI 이후에 건조된 일본의 함선에 채용되었으며, VH강의 물성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NVNC라는 철강재는 미국, 영국 또는 독일에서 사용하던 1930년대 이후의 강재보다는 열등하다.)

Carbon content was raised above VC steel level to increase ease of hardening, some copper added to allow some nickel (in short supply in Japan) to be removed (but not much), slight amount of molybdenum added to increase hardenability still more, and the cemented (carburized) thin surface layer used in VC (and in most other, foreign face-hardened armors) was eliminated with no loss of resistance from VC quality (a good design point). Surface of plate face was very smooth, unlike rough, pebbly surface of cemented plates, such as U.S. Navy Class "A" armor.

상기의 VC강의 재질의 경도강화(hardening)를 쉽게 하기 위하여 탄소(carbon)함유량이 증가되었고, 일정량의 구리(copper)를 첨가하여 다소 니켈(nickel, 당시 일본에서는 공급부족) 성분이 부족한 것을 대체하였으며, 경도강화성(hardenability)을 올리기 위하여 소량의 몰리브덴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VC강에 사용된 침탄(浸炭) 처리된(cementation- carburized) 얇은 표면층은 VC강에서 (그리고 다른 이종표면강화(foreign face-hardened) 강판에서도) 품질의 저하 없이 제거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A-클래스 강판과는 달리 표면이 아주 매끈하게 유지되었다. (디자인면에서 아주 우수한 점이다.)

* 결론(CONCLUSIONS)

The U.S. Navy Ballistic Limit (complete penetration minimum velocity with this projectile at normal) estimated at 1839 feet/second (560.5m/sec), plus or minus 3%, which gives it about a relative plate quality of 0.839 compared to U.S. Class "A" armor (estimated, as no such super-thick plate was ever made in the U.S.). This was about the same as the best WWI-era British KC-type armor, which was what the Japanese were trying for--they had not attempted to make improved face-hardened armor, as the U.S. Navy did during the 1930's, for actual ship installation.

"U.S. Navy Ballistic Limit 社"는 시험용 포탄(projectile)이 최소 탄속(彈速)에서 피사체를 완전관통(complete penetration) 하였다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560.5m/sec (±3%) 탄속(彈速)에서 미국의 표준 A-클래스 강판을 100% 기준으로 상대 품질 정도를 83.9%로 사료된다. (추정치, 미국에서는 일본처럼 그렇게 두꺼운 강판을 생산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1차 세계 대전 이전에 생산되었던 최고 성능의 영국 KC-type의 강판과 동일한 수준이고''', 일본이 영국과 기술제휴로 보유하고자 하였던 것이며, 일본은 미국이 1930년대 실제 건함(建艦)용으로 개발하였던 이전보다 개선된 표면강화 강판을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고 KC-type의 강판의 수준에서 만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The plate was excessively brittle internally, with too much "upper bainite" crystal structure due to too-slow cooling. This was due to using the same pre-WWI British Vickers KC-type armor-hardening techniques on plates over 17" (55.8㎝) thick, for which they were never intended. This problem was solved during WWII, but no more VH was ever made except for some thin experimental plates. Brittleness did not seem to reduce resistance to penetration, though cracking might cause problems due to hits that ricocheted off.

시험에 사용된 강판은 내부적으로 과도한 취성(brittle, 잘 깨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고, 저속냉각에 기인한 "upper bainite" 결정조직을 갖고 있다. 이것은 1차대전 이전에 영국의 "Vickers KC-type armor" 강판의 17" (55.8㎝) 이상의 중후판의 경화 기술과 동일한 것을 사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이러한 중후판에 적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내부취성의 문제는 2차대전 동안에 해결 방안이 개발되었는데, 그러나 실험용 강판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VH강은 생산되지 않았다. 취성(Brittleness)으로 인해 피탄 시의 저항력이 감소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포탄을 튕겨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cracking)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Note that one of these experimental plates 7.21" (18.3㎝) VH plate NPG #3133 was patterned on Krupp KC n/A (probably from data traded with Germany during WWII) and was tested by the U.S. Navy at the NPG using 335-pound 8" Mark 21 Mod 3 and Mod 5 (the latter with the super-hard AP cap, which turned out to be required to penetrate that plate intact) during this same test series. It was found to be THE BEST PLATE OF ITS THICKNESS RANGE (6-8" (15.2-20.3㎝)) EVER TESTED BY THE U.S. NAVY, even though its steel was of the same rather poor quality as the other VH plates tested!!! This caused the U.S. test conductors to state that obviously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it took to make a high-quality Class "A" plate, since the 7.21" VH plate should not have been so good from everything they thought they knew about face-hardened armor!!! Obviously the Japanese could make armor as good as anyone if the specifications had required it!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실험용 강판 중에는 18.3㎝ 두께의 "VH plate NPG #3133"이 독일의 Krupp社에서 KC n/A강으로 특허를 내었다. (아마도 일본과 독일이 기술자료를 공유하여) 그리고 이 강판은 미해군에 의해서 NPG에서 335-pound 8" Mark 21 Mod-3와 Mod-5 함포로 실험이 실시 되었는데(Mod-5 함포의 경우는 이 신형 VH 강판의 관통하기 위해 특수강화 관통용 철갑탄(AP)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는 지금까지 미 해군이 실험해본 모든 15.2~20.3㎝ 두께의 강판 중 가장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상기한 품질이 떨어지는 VH강으로 제작된 강판임에도 불구하고 이로 인해 실험자들이 실험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고품질의 A-클래스 강판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 7.21"(183㎜) VH 강판은 우리의 표면경화 강판 관련 지식에 의하면 이정도의 성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백히 일본은 만약 사양서(specification)에서 요구를 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장갑을 만들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At about 40,000 yards, the U.S. Navy 16"/50 firing a 16" Mark 8 Mod 6 AP projectile (the later Mod 7 and Mod 8 designs were post-WWII, so I usually do not count them and they were no better ballistically, to my knowledge) will hit at about 45° downward angle and 1607 feet/second (489.8 m/sec). Just as with a point blank hit at 2500 feet/second (762 m/sec) and 45° obliquity, this hit too will barely hole the plate as the projectile is hitting at 0° (normal) obliquity, though not completely penetrate it. Any slight barrel wear will lower the muzzle and striking velocities and no holing will occur at THESE OR ANY OTHER ranges, as mentioned. However, this is so far above any real fighting range (even with radar it is hard to see the target due to the earth's curvature interfering, especially in any kind of imperfect seeing conditions) that I do not even consider it in my computations, while putting the gun barrel up to almost touching the enemy turret is also a pipe dream in real life! Thus, no holing or complete penetrations, ever, though possibly some cracking of the plate and possible jamming of the turret if the crack-off plate piece is dislodged badly enough.

약 4만야드의 거리에서 미 해군의 16"/50 주포가 Mark 8 Mod 6 AP탄을 발사할 경우 (Mod 7과 Mod8은 대전 이후이며 탄도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없음) 1607피트/초의 속도로 45도로 떨어진다. 이 경우 0도의 입사각을 가지므로 영거리에서 2500피트/초와 45도 입사각과 마찬가지로 강판에 구멍을 낼 수 있지만 완전히 관통할 수는 없다. 약간이라도 주포에 마모현상이 있을 경우 속도를 낮추게 되므로 어떤 거리에서라도 구멍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4만 야드는 실제 교전거리를 아득히 상회하므로 비현실적이며 영거리 사격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실전에서 구멍이 나거나 완전 관통될 가능성은 없으며 강판에 균열이 가거나, 그 균열로 인해 포탑이 고정될 가능성은 있다.

Therefore, these plates are the only warship armor plates that could not be completely penetrated by ANY gun ever put on a warship when installed leaning back at 45°, as they were in the actual turrets!!! Even to completely hole the plate all the way through at that inclination requires a brand new 16"/50 Mark 7 or German 38cm SK C/34 gun at point-blank range firing the latest versions of their respective AP projectiles; it might be cracked at a lower striking velocity, but no hole put entirely through it! AND THEY SAID GUNS HAD COMPLETELY OVERMATCHED ALL ARMOR--*NOT SO*!!!

결론적으로 이 강판은 실제 탑재된 대로 45도 경사로 설치될 경우, 실존 전함에 탑재되었던 그 어떤 주포로도 관통이 불가능하다. 45도 입사각으로 이 강판에 구멍을 내기 위해서는 최신 주포인 미국의 16"/50 Mark 7 나 독일의 German 38cm SK C/34를 영거리에서 최신형 철갑탄을 장착하고 쏠 필요가 있다. 더 낮은 속도로도 균열은 갈 수 있지만 구멍이 날 일은 없다! 주포가 장갑을 완전히 능가했다고들 말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image]
16인치 45구경장 Mark 6[31]으로 쏜 철갑탄에 관통된 시나노 주포탑의 660mm 전면장갑[32]

4.4. 속도


야마토의 속도는 27노트까지 가능하고, 과부하를 걸면 29노트까지 가능했다. 이는 2차대전 당시의 최신예 고속전함에는 못미치는 속도지만, 일본은 이미 30노트를 내는 공고급 순양전함이 4척이나 있으며, 나머지 전함들의 속도는 개장해서 25노트로 맞췄기 때문에 그 이상 속도를 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방어력 향상과 손상 시 전체 출력이 모두 나가버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보일러와 기관을 분산해서 보일러 - 기관 - 보일러 - 기관 식의 교차배치를 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최신예 전함들이 하나같이 채용했던 방식이므로 시대의 흐름에도 부합했다.
또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크기로 폭이 제한되는 미국 전함과 달리 일본 제국에게는 드넓은 태평양에 자신의 군함들을 가로막을 육상 지형이 없었으므로 야마토는 그러한 제약을 받지 않고 설계되어 폭을 넓게 만들어서 능파성도 우수했다.

4.5. 장비 및 함내 복지


일본의 가장 강력한 전함답게 각종 전투용 장비도 최신예였으며 사격통제장치도 뛰어난 편이었다. 광학측거가 15m 측거의로 불리는 것이었는데 렌즈간의 거리가 15.5m에 달하는 물건이었다. 이런 종류의 마이크로미터는 렌즈 간의 거리가 멀수록 성능이 좋아지는데, 일반적인 일본의 전함도 고작 5m급의 물건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전대미문의 고급 물건을 탑재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성품은 있을 리가 없어서 일본광학(日本光學)[33]에서 특별히 연구해서 제작한 특제품으로, 당시 일본의 광학 기술이 집대성된 물건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중의 개량에서는 레이더까지 탑재했다. 이 개량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적의 레이더 전파를 탐지해서 경고를 알려주는 전파탐신기(電波探信機)는 1호3형(1号3型)이 2기가 장착되었고, 대공레이더로는 2호 1형 레이더가 2기, 수상용 레이더로는 2호 2형이 2기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탐지거리는 항공기면 편대로 비행시 100㎞, 단기로 비행시는 50㎞이었으며, 수상목표물의 경우 전함은 마스트 높은 곳에 레이더를 장착하므로 동급의 레이더로도 35㎞까지 탐지가 가능했다.
공/방 전투력 뿐만 아니라, 그 덩치에 걸맞게 승조원들 특히 수병들의 생활 시설 등도 그때까지의 일본은 물론 타국 해군의 열악했던 수준을 벗어나 '해상 호텔'이라 불릴 정도의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당시의 함상 생활은 전원 침상이 구비되어 있던 미국 해군 등을 제외하면 장교CPO급 되는 상급 부사관이 아닌 하급 부사관과 수병들은 '아무데나 해먹걸고 자는 것[34]'이 기본이었다. 선진 해군이던 영국 해군도 해먹을 다수 사용해서 경순양함 벨파스트 박물관에도 수병들이 해먹을 사용한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되려 독일 등 타국 해군들이 접이식이나마 수병 침대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인 부분이다. 야마토급에는 일본 해군으로서는 유일하게 승선하는 모든 수병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침대'''가 구비되어 있었다.
또한 야마토와 무사시의 장교식당 주방에는 전쟁 전에 세계의 주요 항로를 오가던 일본의 해운사들이 운용하는 호화 여객선의 주방에서 일하던 요리사가 징용되어 함내의 요리를 책임졌다. 거기다 함장 전용 취사 담당 및 준사관 이상 취사실에는 전기 냉장고가 있었고, 하사관과 수병용 부식들을 위해서 식료품 보관용 대형 냉장고가 있었다고 한다.[35]
이 덕분에 일본 제국 육군보다 평균적으로 식사가 좋았다는 일본 제국 해군에서도 야마토와 무사시의 식사는 훨씬 좋았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1942년에 트럭섬에 해군과 연락차 방문한 대본영 파견참모 츠지 마사노부 중좌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장관과의 면담 후 야마토에서 도미 소금구이와 도미회 그리고 차가운 맥주를 대접받아 매우 감격했다는 등 당시 야마토를 방문한 육군 장교들이 야마토함의 식사에 놀랐다는 일화가 많았다고 한다. 전쟁이 말기에 이르른 상황에서도 야마토함의 '''수병'''[36]이 "카레라이스가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걸 먹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라고 회고했으니... 카레라이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당시 일본 수병이 먹은 식사는 매운 카레라이스바나나, 사과가 들어간 마카로니 사라다였다.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 참여하러 가다가 미 해군 항공기들에게 격침당하기 전에, 정확히는 점심식사 이전에 전투태세에 들어가면서 전투배식으로 나온 오니기리 2개를 먹은 승조원도 있고 못 먹은 승조원도 있다고 한다. 거기다 침몰한 날의 저녁식사 메뉴로 찰밥 통조림쇠고기 통조림이, 야식으로는 단팥죽이라는 제법 푸짐한 메뉴가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야마토의 식사에 관한 이야기. 당시의 일본 제국은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기시 노부스케(당시엔 군수차관) 같은 고위 정치인이 버터 바른 군고구마를 자주 먹지 못하는 별미로 손꼽을 정도였고, 일반 국민은 물론, 일본군도 대부분이 굶주리는 상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37] 진짜 대단한 일이었다. 사실, 이건 당시 일본 제국의 정책 방향 중 하나였기도 했다. 당시 일본 제국은 미군의 기뢰밭과 폭격기밭을 무사히 뚫고 돌아온 보급선에서 가져온 물자를 일반 국민보다는 군인들에게 최우선적으로 보급하고 있었다. 그런 호화식단의 결정체가 바로 아이스크림라무네. 물론 보급품뿐 아니라 함내 소화전(=탄산가스 발생 장치)을 이용한 싸제(...) 라무네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탄산가스 발생장치를 달고 있는 군함이라면 어디든지 싸제 라무네를 만들 수 있었으나, 야마토급 전함에 비하면 양이 적기 때문에 야마토 쪽에서 만든 싸제 라무네가 인기를 끌어서 야마토급이 대표적인 싸제 라무네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이건 미군도 마찬가지였는데 경순양함 이상급 함정에 탄 경우 함내 소화전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아이스크림탄산음료를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좋은 대우를 받았던, 당시 야마토급 전함의 승조원들은 좋은 대우를 받았던 것에 대해 기밀 엄수를 강요받았다. 야마토급 전함의 승조원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던 일본군은 수상함보다 시설이 열악하기에 그만큼 대우는 더욱 후하게 해줬던 잠수 항모 센토쿠급의 승조원들이나 군 병원의 부상자들[38] 정도였으니 사실상 일본 제국 내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민간 여객선 출신 요리사 말고도 민간인 출신 군속들(이발사 3인, 재봉사 1명, 세탁공 1명)이 승선해 있었다고 한다.출처[39]
또한 야마토는 연합함대의 총기함 역을 수행하다 보니 각종 고관들이 함을 방문할 때가 많았고, 이를 위한 만찬도 빈번했다. 이를 위해 담당 장교는 호텔급 정식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했고, 만찬 때는 함의 군악대가 식사에 어울리는 음악을 연주해 줬다고 한다. 이는 야마토 이전에 총기함 역할을 하던 나가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장면은 영화 도라 도라 도라에서도 연출되었다.

5. 문제점


어떤 무기라도 문제점은 있다[40]. 특히 일본군은 제로센 같은 항공기는 물론 97식 치하 같은 전차도 거의 대다수가 무기로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한 두 가지씩은 갖고 있었다. 야마토급 전함의 경우, 기본적으로 함대결전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아래에서 다뤄질 문제가 태생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5.1. 취약한 부포탑 방어


부포의 경우에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부포탑의 장갑이 너무 약했다. 고작 '''25㎜'''라는 엄청나게 얇은 장갑을 자랑했는데, 이 수치는 '''악명높은 97식 전차의 전면장갑과 수치가 같다.''' 그러니까 명색이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의 부포탑이라는 물건이 주적인 전함이나 순양함은 둘째치고 심지어는 '''구축함의 포탄에도 바로 관통된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구축함이라도 최소한 5인치(127mm) 주포 정도는 달고 있었으므로 그 압도적인 함체 장갑에는 어쩔수 없지만 고작 25mm 장갑판으로 무장한 부포 따윈 손쉽게 파괴할 수 있다.[41][42]
부포탑 장갑을 이런 황당한 두께로 만든 이유는, 이것이 애초에 순양함 포탑을 유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여러 이유로 인해 순양함 포탑에 25mm 두께의 매우 얇은 장갑만을 적용했는데 이 포탑을 별다른 장갑 강화 조치도 없이 야마토급에 부포탑으로 박아넣어서 이 같은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43]
더 큰 문제는 '''부포 탄약고와 주포 탄약고가 인접했다는 것으로, 재수없으면 부포탑에 인화된 불길이 주포 탄약고에 옮겨붙어서 걸레짝이 되는 사태'''가 날 수 있었다. 물론 일본도 당연히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방염처리를 하고 부포 바벳을 강화했지만 그렇게 한 강화책은 고작 50㎜ CNC +25㎜ DS 정도며, 그나마 포탑부분은 포방패를 포함해서 그냥 25㎜로 유지했으므로 그 정도로는 완전한 대책이 되지 못했다. 참고로 6인치 3연장부포탑을 운용한 리슐리외급은 부포탑정면기준 각각 130mm 45도 경사장갑, 리토리오급은 아예 280mm라는 순양전함 주포탑전면급의 떡장을 둘렀다.
애초에 부포탑의 피탄이 탄약고 유폭등을 불러와 함선의 침몰로 쉽게 이어지는 문제로 인해 타국의 전함들은 일본처럼 운용하는게 화력 집중과 운용에 편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포탑을 함체 중심선이나 주포탑 인근에 놓지 않고 일부러 함체의 양 측면에 놓은 것이다. 그렇게 배치하면 동일한 화력을 내려면 중심선상에 있던 부포탑 개수의 2배의 마운트가 필요하지만[44][45], 피탄당하더라도 해당 부포탑만의 국부적인 손상으로 끝나며 최악의 경우인 부포탑 연쇄폭발이 발생하더라도 전함의 한쪽 측면 상부만 파손되므로 당장 침몰하지는 않는다. 리슐리외급처럼 함미에 부포탑 3기를 놓는 특이한 경우나 부포탑과 주포탑을 가까이 붙여 두는 리토리오급은 최소한 앞에서 말한 장갑대책 정도는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측면장갑의 보호를 받고 외부로 노출된 부위는 포탑밖에 없는 측면 부포탑은 대공화력의 증대를 위해 제거하면서, 주포탑보다 높은 위치에 존재하는 바람에 포탑과 바벳은 물론 탄약고의 일부도 갑판장갑 위에 있어서 측면장갑의 보호를 못받는 선체 중심선상의 부포탑을 남겼다는 문제점까지 있었다. 물론 해당 부포탑도 상부구조물 안에 있지만, 갑판장갑 위에 위치한 상부구조물은 장갑함교같은 일부 특수부위를 제외하고는 장갑이 없다. 적의 공격이 머리 위로 떨어지건 측면으로 날아오건 간에 이를 막아낼 장갑은 부포탑이 가진 얇은 장갑에 불과하다는 것은 실로 처참한 경우다.
부포탑과 바벳, 탄약고는 장갑으로 방어된 바이탈파트의 외곽에 위치되어 있는데[46], 이로 인하여 부포탑 및 바벳의 관통에 따른 부포탄약 유폭이 주 탄약고를 인화시켜 대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도록 설계되어 있으므로 부포탑이 폭발해도 탄약고를 방호하는 장갑 외곽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얼핏 보면 맞는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게, 실제의 탄약고 폭발은 외부보다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의 영향력이 더 크다. 밀폐된 공간에서 폭발이 발생할 경우, 상하좌우의 모든 영역에 큰 압력이 가해지게 되며 선체 전체에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힌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알량한 탄편방어용 내부 장갑판 가지고는 쉽게 막기 어렵다. 영국의 전함은 전함의 주포탄 1발이 장갑을 뚫고 내부에서 작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측면장갑을 엄청나게 강화했는데, 해당 주포탄 1발의 작약량은 잘 쳐주어도 몇십 kg에 불과하다. 그런데 부포탑의 작약량은 포탄이 많은 관계로 최소 수백 kg 이상이며, 여기에 장약까지 들어가므로 유폭 시 위력이 그냥 주포탄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
그리고 야마토의 15.5㎝ 대수상부포는 부포 탄약고로서는 지나치게 대규모였고 이것의 폭발은 장갑영역 외부에 지나치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아래와 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오후 12시 41분에 베닝턴을 떠난 6대의 헬다이버가 투하한 450kg짜리 철갑탄 6발 중 2발이 야마토의 우현에 명중했다.
<중략>
159번 프레임에 떨어진 1발은 후방 155㎜ 부포탑 천장에 명중하여 자체 탄약고를 폭발시킴으로써 치명적인 유폭과 화재가 발생했다.
포탑 내부의 인원 중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몰살당했고, 이 폭발로 레이더실과 최후미의 127㎜ 대공포좌도 파괴되었다.
이때 급강하폭격을 마치고 빠져나가던 헬다이버 1대가 대공포에 맞아 격추되었다.
즉, 야마토 후방 부포탑이 급강하 폭격기에서 폭탄을 맞아 포탑에서 1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큰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주포탑 탄약고가 유폭하는 일 없이 야마토는 2시간 동안 싸우다가 어뢰를 두들겨 맞아 2시 12분에 통신이 두절되고, 17분에 기울기가 22도까지 늘어난 다음, 23분에 전복되었으므로 주포탑 유폭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위의 문장은 부포탑 지역에 동시에 떨어진 폭탄 2발중 1발의 피해를 고의로 삭제하는 등 상황의 일부만 제멋대로 편집한 물건이다. 실제로는 1번2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래와 같은 심각한 손상을 가져왔다.
[image]
최후의 전투에서 야마토가 받은 공격과 피해
  • 후방 사격관제실과 부포관제실 파손. 이 과정에서 측거기를 포함한 광학조준장비가 몽땅 파손된다.
  • 레이더실 완파. 덕분에 레이더는 그냥 고철로 전락한다.
  • 127㎜ 대공포탑 2기 완파. 그나마 가장 쓸 만했으며, 대공화력의 주력을 담당한 127㎜ 대공포탑 12기중 2기가 한번에 고철이 되었다.
  • 후방 부포탑 탄약고 폭발. 엄청난 수준의 화재가 발생했다.
  • 후방 보수반원 전멸. 불을 끌 사람들이 전멸해버렸다.
당장 입은 피해만 추산해도 엄청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게다가 후방 부포탑에서 발생한 화재는 보수인원이 전멸하여 아예 손도 못 댔기 때문에 야마토가 침몰할 때까지 소화되기는 커녕 더 크게 번졌으며, 결국에는 '''3번 주포탑의 탄약고 유폭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올라갔다는 보고가 지휘부에 올라갈 지경이었다.''' 해당 보고는 야마토의 지휘부가 퇴함명령을 내리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말해 더이상 전투를 지속하더라도 주포 탄약고 유폭으로 인해 알아서 침몰할 운명이었다. 종합하자면 애초에 해당 위치에 부포탑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여기에 대해서 일본 측에서는 실제로는 부포 탄약고의 유폭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당시 야마토의 전투 보고서 상으로는 미군의 1차 공격 당시 떨어진 폭탄이 후방 사격지휘소 부근의 상갑판을 뚫고 들어가 터졌고, 이때 일어난 화재가 후방 부포탑에까지 이르렀지만 부포탑의 탄약고 자체는 무사했던 것으로 돼있다. 애초에 부포탑 탄약고가 폭발했더라면 그 바로 옆에 있는 주포탑 탄약고도 무사하지는 못햇을 것이다. (당시 야마토의 피해보고서. 후방 부포탑의 직격은 없는 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건 일본만의 기록이라서 교차검증이 안 된다. 야마토의 피해를 기록한 『軍艦大和戦闘詳報』는 「大和被害経過資料不足ニテ詳細不明」이라는 주석을 달아서 '''야마토의 피해 경과 자료 부족으로 인하여 자세한 것은 불명'''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표현한 데다가, 최후의 전투 당시 동행했던 제2수뢰전대(第二水雷戦)의 전투상보와도 어뢰명중등에서 차이가 나서 교차검증이 안 되는 등 매우 부적합한 자료이다.## 게다가 이 자료에서는 부포탑 날아간 것은 교묘하게 숨기고 있고 폭탄 2발이 낸 피해가 너무 크며, 침몰 직전까지 꺼지지 않은 화재를 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데다가 피해 표시에 대한 도면도 자세하게 표현한 미국의 물건과는 달리 진짜로 대충 그린 물건이다. 따라서 신빙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주장은 일위키에 실려있는 주장으로, '''어차피 부포탑 구획은 맞을 일이 거의 없을 작은 구획인데 뭐가 문제냐?"'라는 말이다. 얼핏보면 맞는 말이긴 하나 포탑과 탄약고는 당연히 탄약이 밀집한 곳으로''' '''어떤 부위보다 방호력이 요구된다.'''[47]
장갑은 자처하더라도 개장후에도 철거되지 않은 부포탑의 경우에는 주포탑보다 높은곳에 달아놓았기때문에 피격부위가 말처럼 작지많도 않을뿐더러 주포와는 아예 붙어있어 유폭시 위험성도 크다.
이 부포에 대한 또다른 일위키의 변을 보자. 야마토의 사관들은 155미리포의 수상공격력보다 대공능력을 더 눈여겨보고 있었으며, 155미리부포가 5인치 부포보다 구축함을 구축해버리기 좋으며 부포와 고사포는 분리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대공능력 자체는 고사하고 일본은 장전이 수십초가 걸리는 야마토의 주포로도 대공사격을 하였으므로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일단은 삼식탄이 있고 고각으로 발사하여 대공수단으로 사용은 할 수 있으며 야마토 이외의 함선들의 대공능력을 보았을 때 일본치고는 155미리 부포의 대공능력은 충분히 눈여겨 볼 만하다.

5.2. 부족한 대공능력


대공포의 경우도 숫자에 비해 위력이 약하고[48] 공격에 취약했다. 애초에 일본군의 대공포가 발사속도, 포탑선회능력, 포신부양능력, 명중률, 유효사거리 등 모든 성능이 영국과 미국의 대공포보다 떨어진다. 일례로 미국의 함선들은 20mm 오리콘 기관포로 60발짜리 드럼 탄창을 사용해 별다른 운용 인원 없이 퍼부어대었고 40mm 보포스 기관포도 있었다. 심지어 대전 초기를 벗어나 후기부터는 훨씬 더 고화력인 5인치 양용포로 VT 신관까지 사용했는데 그러는 동안 일본의 96식 25mm 고각기총은 겨우 15발 들이 탄창으로 고각 발사시에는 탄창이 빠질 위험성도 존재했다.[49] 설계 문제로 진동이 심해 명중률이 떨어졌으며 대공화기를 통합 운용해서 적기에게 일제사격을 한다는 개념이 부족했다. 사격명령이 대충 내려지면 실제 목표 표착과 사격은 사실상 각 포탑과 포좌별로 사수가 알아서 담당하는 구식방식을 채택했으며, 비장갑 노천배치 방식의 대공포가 너무나도 많아서 적 전투기가 기총소사만 해도 대공포가 파괴되고 포 조작원이 다수 죽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에도 비장갑 노천배치식 대공포가 많지만, 대공포의 기본 구조적, 화력성능이 좋은데다가 기본적인 포방패등의 방호수단도 있고, 대공화기를 통합해서 질서있게 운용하므로 가뜩이나 장갑도 얇은 일본군 전투기가 동일한 짓을 하려고 하다가는 먼저 항공모함 함재기들에게 도륙당하며 어떻게든 함재기들을 뚫고 함선의 방공망에 접근해도 일본기의 장갑으로는 대공포에 격추당하는데다 미군의 함재방어 대공포는 기본적인 장갑도 든든하게 구비됐기에 기총소사를 긁어대도 효과가 매우 덜하다.
여기에 더해서 건조 당시에 설치된 대공포좌에는 선체 내부에 통로가 연결되므로 탄약과 부품, 인원보급과 보충을 적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수행이 가능했지만, 나중에 설치된 대공포좌는 전함의 장갑이 너무 두꺼웠다는 등의 이유로 그런 방식의 연결통로를 만들 수 없었기에 일단 포좌에 배치된 탄약을 다 써버리면 아무런 엄폐물 없이 인력에 의존해서 포탄을 공급받아야 했다. 당연하게도 적함의 주포탄 포격과 적기의 기총소사가 난무하는 전장 한가운데에서 그런 섬세한 작업은 불가능했으므로 전투가 어느 정도 지속되면 탄약부족과 인명 손실로 인해 상당수의 대공포좌가 멈춰버리므로 대공화력이 더 격감된다.
  • 미해군은 지금 기준으로는 초보적이라도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의 도움을 받아 전기식 마운트에 연동된 다연장 대공포좌를 대소 함정에 달아 썼고 대전 후반으로 가면서 오버홀되는 함정마다 개량해 기술과 전술 모두 발전했는데, 일본해군은 그러지 못했고 레이더 개량과 대공무장 보강, 함대방어전술 모두 열악했다. 여기에, 전반적으로 미해군의 중소구경 대공화기 성능이 일본해군의 그것을 압도한 데다 함정당 달아준 수로도 압도적이었다. 대전 말기로 가면 미해군 구축함은 멀쩡한 주포마운트와 어뢰마운트를 대공포좌로 개조했고, 구축함부터 전함까지 5"/38구경장 양용포가 기본이 되었다.
또한 18.1인치 주포 발사시의 포구에서 폭발풍 압력은 1평방미터 근처 약 8톤 정도로 노출 상태의 인간이나 계측장비는 파괴될 가능성이 높았으며 당시의 일본에서도 위험성을 인식했다.[50] 그래서 주포 사격 시 후폭풍으로 인해 비장갑 대공포좌는 사람이 있으면 매우 위험해지므로 발사전에 대피신호가 울리게 되는데, 이러한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생겨서 대공포 인원들이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주포의 후폭풍을 맞게된다. 덕분에 무사시가 시부얀 해전 당시 공습을 받을 때 이런 문제가 현실화되었다. 타국에서는 이러한 주포탄을 이용해서 대공사격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51][52], 물론 광학장비의 내구성도 좋아서 주포 사격으로 인한 후폭풍등으로 망가지는 일은 적은 데다가 수리 및 보충도 쉬웠다. 특히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대공용 양용포좌는 모두 기후와 파편을 방어하기 위해서 밀폐된 포탑이었다. 야마토급 역시 원래의 12.7㎝ 포좌들은 대개 밀폐포탑식이었으나, 나중에 대공화력의 증강을 위해 대규모로 증설된 12.7㎝ 포좌들은 노천개방된 상태였다.

5.3. 장갑의 이면


1야마토급을 비롯한 일본 함선들에 주로 사용된 MNC와 NVNC 강재는 미국 함선들에 주로 사용된 B class장갑에 비해 97%,95% 강도를 지녔다. 또한 측면장갑에 사용된 VH강은 고작 84%수준의 강도를 보인다.2[53] 때문에 야마토의 장갑은 카탈로그상으로는 타 전함의 포격에 면역수준이어야 하지만 품질문제로 인해 의외로 유효한 타격을 받게 된다.
가령 아이오와급과의 대결을 가정하면, 야마토의 410mm 현측 아이오와급의 16 Inch Mk.7을 상대할 때.아래로 내리면 관통력 테이블을 살필 수 있다. 약 22km-32km의 안전지대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통상 교전거리에서 현측관통을 기준으로 할 경우 아이오와는 야마토의 현측을 대략 23000m 이하부터 관통할수 있고 야마토는 대략 25000m 이하부터 아이오와의 현측을 관통할 수 있다. 갑판관통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이오와는 야마토의 갑판을 대략 32000m 이상부터 관통할 수 있으며 야마토는 아이오와의 갑판을 대략 31000m 이상부터 관통할 수 있다. 전함 포격전이 보통 20km 내외라는 점, 측면관통력이 카탈로그 스펙과 실전이 동일하진 않다는 점[54] 야마토의 포탄이 구경이 차이가 나는 만큼 충진량이 더 많다는 점[55], 탄자중량이 더 무겁다는 점에 의해 야마토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더 가까이까지 접근을 허용한다면 아이오와의 우수한 포격능력, 약간 빠른 발사 속도[56] 로 인해 동귀어진이 될 수 있다. 다만 체급차로 인해 야마토가 더 버틸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론 야마토가 단순 공방능력은 우세하긴 하나 각종 변수가 발생하는 실전에 있어서의 비슷하다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뢰명중을 예상하고 달아놓은 벌지의 문제가 컸다. 1943년 12월 25일 요코스카에서 트룩으로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던 야마토를 포함한 수송함대는 트룩섬 서방 290㎞ 거리에 있던 미국 잠수함 스케이트(USS Skate)에게 발각되었다. 스케이트는 야마토를 목표로 어뢰 4발을 발사, 이 중 한발이 3번 주포탑 우현에 명중하여 구멍이 뚫리고 침수가 시작되었다. 일단 피격 지점은 벌지(bulge)뿐이라 정상적인 경우에는 벌지만 손상되고 끝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어뢰의 충격으로 현측장갑의 하단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가고 상부장갑 브라켓이 무너지면서 안쪽으로 구멍을 내는 '''송곳으로 작용해서''' 구멍은 더욱 커져 총 3,000톤의 물이 쏟아져 들어갔다. 게다가 브라켓이 송곳으로 변하면서 탄편 방어용 세로벽이 찢어져서 3번 주포탑의 상부 탄약고와 기계실에 침수가 일어났지만 탄약폭발은 없었고 야마토는 우측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트룩으로 향했다.[57]
여기서 벌어진 상황을 감안하면 해당 부위에 포탄이라도 맞는 즉시 침수가 시작된다는 이론이 성립돼버린다. 당연하게도 구레항에서 배를 수리하는동안 5천 톤 이상의 대어뢰장갑(수밀격벽)을 붙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더 이상 무게 증가가 어렵고, 저러면 당연히 반년 넘는 추가적인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판단, 기각되었다.[58] 일단 야마토는 손상부위를 수리하며 구조보강을 했으나 무사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이 없고 피팅할 때 그럴 시간도 없었으니(딱 봐도 최소 한 달은 걸릴 것 같지 않은가?) 보강이 전혀 되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래서야 야마토가 만약에 미국 잠수함들과 한 번 더 마주쳤다면 극적이고 장렬한 대공전투고 뭐고 없이 포 한발 못쏴보고, 후술할 시나노의 허망한 최후를 그대로 따라갔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동형함이었지만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시나노의 사례에서 설계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전후 일본에 대한 미국의 해군 기술 임무 분석가들은 시나노에는 설계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무엇보다도 '''선체의 대포탄용 장갑과 수선 아래의 대어뢰 방뢰구역(bulge) 사이의 연결 설계가 문제있었다.''' 잠수함의 어뢰는 모두 이 연결부위를 따라서 폭발하였다. 게다가 어뢰의 폭발력은 기관실 중 하나의 H형 들보를 밀어냈는데, 밀려난 들보는 두 기관실 사이의 구멍을 내는 '''초대형 망치'''가 되어버렸다. 방수격벽 문제도 침몰하는데 큰 원인이 되었는데,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침수가 너무 급격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무지 대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선하장갑과 벌지의 부적절한 리벳 접합 본 링크를 들어가보면 수선하장갑과 벌지를 충격시 지탱해주는 리벳이 실질적으로 겨우 두세 개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2차대전 당시 리벳 접합을 사용한 전함이 대부분이므로(아이오와급이나 KGV도 리벳 접합을 사용했다) 리벳 접합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 없지만 리벳 접합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부분은 방어면의 약점으로 남게 되었다.

5.4. 느린 속도와 짧은 항속거리


애초에 야마토급 전함의 속도에 대해 일본 해군이 요청한 수치는 항공모함과 함께 발을 맞출 수 있는 30노트였다. 이를 위해 최신 디젤 기관을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이 디젤 기관을 실험장착했던 류호가 시도 때도 없이 기관 트러블을 일으키는 통에 디젤 기관 계획은 취소. 엔진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까지는 어떻게 넘어간다쳐도, 집중방어구획 설계로 제작된 야마토의 경우 트러블을 일으킨 기관을 들어내고 정비하는 것이 어렵다는 정비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꼭 디젤 기관이 아니더라도 강력한 증기 기관을 추가로 장착하는 안이 있었지만, 디젤 기관을 비슷한 규모의 증기 기관으로 변경한 것만으로도 이미 3000톤의 배수량 상승이 일어났는데 여기에 추가까지 할 경우 배수량이 1만 톤 가까이 늘어난다는 결론이 나왔고, 당시 함정본부는 천문학적인 건조비의 절약을 위해 기관을 늘리는 선택지를 포기.
그 외에도 함의 길이를 늘리는 설계변경을 통해 30노트는 가능했으나, 이것 역시 집중방어구획이 넓어져 추가 예산이 소모된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의 대형군함용 엔진인 함본식 로(ロ)호 중유 보일러(艦本式ロ号重油専焼罐)와 함본식 스팀터빈(艦本式高中低圧蒸気タービン)은 유럽이나 미국의 1920년대 기술을 답습해서 모방한 수준이었다. 물론 신뢰성이나 작동성능은 다른 일본의 엔진보다 매우 우수하였지만, 아이오와급의 신형 대형 고출력 스텀 터빈 및 아이오와급의 보일러가 섭씨 468도에서 증기압력 42kgf/㎠를 내는 것을 생각한다면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같은 다른 미국의 신형 전함에 비해서도 이들이 쓰던 보일러는 섭씨 454도에서 증기압력 39.7kgf/㎠ 이므로 엔진 성능면에서 열세였다. 그래서 최신기술을 이용할 수 없으므로 안 그래도 떨어지는 출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보일러 성능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좋은 편이기는 한데 야마토와 같은 15만 마력을 채용한 프랑스의 리슐리외급 전함에 탑재된 보일러는 6기, 그것도 일본해군 구축함용 보일러의 온도 및 압력과 동일한 물건인 섭씨 350도에서 증기압력 30kgf/㎠ 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킹 조지 5세급 전함의 보일러도 섭씨 371도에 증기압력이 28bar(28.6kgf/㎠쯤 된다)으로 야마토급 전함의 보일러가 12기를 사용하면서 섭씨 300도에서 증기압력 20kgf/㎠ 라는 점과 비교하면 안 까일래야 안 까일 수 없다. 이는 일본내 팬덤에서도 야마토급을 까는 데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출력에 비해서 기관부 중량이 과대하게 많다는 것이 주요 비판점이다.
그래도 야마토의 속도인 27노트는 '''건조 당시'''에는 괜찮은 속도이기는 했다. 하지만 취역하고 나니 주적인 미국의 전함과 구식전함은 아예 상륙작전용 및 비상대응용으로 전환해버리고 신형전함은 모두 똑같이 27노트의 속도를 내며, 영국의 전함도 신형전함이 28노트를 내므로 따라잡기도 벅찼다. 특히 아이오와급 전함은 전쟁 후반부에 나오긴 했으나 30노트가 가능하며 과부하를 걸면 33~35노트까지 가능했다. 게다가 야마토의 과부하 지속능력부터 아이오와급보다 크게 떨어지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거리의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게다가 사실 이렇게 상대방 전함의 속도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 일본군의 중순양함과 같이 다니면서 화력지원을 해주거나, 조금 멀리 떨어진 지역에 파견보냈다가 적의 항공권 밖으로 탈출할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결론이 이미 일본 내부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과달카날 전투에서 공고급 순양전함인 히에이가 중순양함의 근접사격에 당해버리고, 키리시마가 급수로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막강한 16인치 주포 탑재 신형 전함인 워싱턴에게 신나게 두들겨맞는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야마토를 전장에 파견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일본 해군의 상징을 그런 '''사소한 임무'''(적의 신형 전함이 있었는데도?)에 투입할 수 없고 연료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가 붙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렇게 속도가 느린 것도 문제가 큰데, '''항속거리를 일부러 축소시키는 실책을 추가로 저질렀다.''' 원래 자력이동이 가능한 모든 종류의 장비는 항속거리가 길수록 좋다. 항속거리가 길면 공격과 방어시에도 도움이 되는데다가 도주나 후퇴, 우회 시 경로를 여러가지로 잡을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보급기지를 덜 만들어도 되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유용하다. 일본군도 그걸 인식하지 않은 건 아니라서 방탄설비의 필요성이나 해당 함재기에 탑승할 조종사의 불편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억지로 제로센의 항속거리를 크게 늘리고 나름대로 잘 써먹었다. 더 웃긴 건 같은 전함인 나가토급은 개장하면서 속력은 줄었지만 항속거리는 잡아늘렸다는 것.
하지만 야마토급 전함은 오히려 항속거리를 줄여버린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초도함인 야마토가 시험 항해 시 측정된 데이터로는 1만 해리 이상의 항속거리가 나오는 것으로 판정이 나왔다. 그래서 군령부는 '''"기름이 너무 많이 먹힌다!"'''면서 설계진들의 반발을 깔아뭉개고 3번함 이후의 야마토급은 함내의 연료 용량을 삭감해서 7,200해리가 나오도록 조치했다. 그 바람에 설계 변경[59] 등을 하느라고 3, 4번함은 기공만 하고 공사가 중단된 기간이 3개월 이상 나왔다고 한다[60]
이렇게 억지로 일본군이 연료탱크를 줄인 이야기는 현실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인데, 기름소모량이 그렇게까지 눈에 걸린다면 '''큰 연료탱크에 기름을 적게 넣는 식으로''' 간단히 해결가능했을 것이다. 굳이 설계변경과 건조시간 증가까지 불러오면서 억지로 연료탱크를 줄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군함의 항속거리는 상정되는 전장의 요구에 따라 결정되고 그러한 요구 이상의 과대한 항속거리는 불필요한 용적 낭비에 불과한 것은 맞으며, 이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시로 리토리오급 전함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좁은 지중해를 활동 무대로 삼는 이탈리아 해군과 달리 넓은 태평양에서 활동하는 일본 해군으로써는 항속거리를 늘릴 가치가 충분했다.[61][62] 더군다나 목표 성능을 충분히 달성한 이상, 굳이 용적 낭비를 줄이겠다고 항속거리가 길 때의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항속거리를 줄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유사시 연료탱크가 적은 구축함의 연료가 부족할 때, 미국 해군이나 바로 일본군 스스로가 했던 것처럼 아직 여유가 있는 전함의 연료탱크에서 연료를 빼내서 구축함에게 보급하면 호위세력을 유지하면서 보급기지까지 함께 돌아갈 수 있는데, 야마토는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니 해당 사태가 발생하면 호위세력을 내버리고 홀로 항해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되면 함재기나 잠수함등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이에 더해서 태평양 전쟁이 진행되면서 일본 해군의 연료사정이 안 좋아지자, 출동하는 순양함이나 구축함의 연료를 항구에 있는 야마토 같은 전함에게서 뽑아내서 보충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말 그대로 항행능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고 항구에 묶여있던 기간도 있었다.

5.5. 불충분한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 이로 인해 제한되는 협차가능 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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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Type 22 수상 레이더
SG 레이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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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 22 수상 레이더의 화면
SG레이더의 PPI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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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13 FC레이더
FC레이더 B스코프 화면 그림
레이더를 달았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SG 레이더처럼 대략적인 광점의 크기와 움직임을 연속으로 PPI, A스코프에 표시해줘서 각도, 방위, 거리와 함선이 대형인지 소형인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거나 성능이 개선되고 B스코프가 도입된 마크8, 마크13 FC 레이더처럼 포탄이 바다에 낙하해서 떨어지는 물기둥 탐지가 이전 보다 수월해진 물건하고 성능 차이가 났다. 이렇게 된 이유는 관료주의적인 문제와 구세대적 사상[63]으로 인해 이미 알고 있는 기술이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군도 레이더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아 개발에 착수했으나, 실전 배치된 것들은 연합군 레이더보다 성능 열세에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실전에서 협차가능한 사거리는 야간전에서 그 차이가 난다. 22호 전탐은 이론상 15km 정도 거리의 부포 물기둥을 탐지가 가능하기는 하나 방위각오차가 상당하다.[64] 대략 3도 정도인데 독일의 초기형 seetakt레이더와 거의 비슷한 성능이며 중거리의 range finding만 가능할 정도의 성능이라고 보면 된다.[65] 미국의 화기관제 레이더처럼 탄착확인이 가능하려면 2 mils 정도의 정확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야간전에서 사용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니 목측으로 탄착확인을 해야하는데 될 리가 있나. 숙련 견시원이 10km 밖의 '함정'을 겨우 발견하는 수준이다. 조명탄에 탐조등 다 써도 사격가능 사거리가 10km가 될까말까했다.
반면 진주만 공습 이후 수리되면서 레이더 및 사통장치를 최신형 전함 수준으로 개장한 콜로라도급 전함 웨스트버지니아는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3만 야드에서 사격을 시작해 22800야드에서 명중탄을 냈다.
그렇다면 야간전이 아닌 주간전에서는 비등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그럴 확률은 별로 높지 않다.
'마스트 끝이 보이는 실제 거리'는 35km이나(사마르 해전) 마스트 끝을 보고 사격을 할 순 없으니까 잘 해봐야 30km정도가 최대 사거리로, 구름이나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 그 거리는 줄어들게 된다. 물론 물기둥 확인이야 가능하겠지만 협차를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24시간 365일 중 기상상황등의 이유로 수평선까지 보이는 때는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또한 적 함대의 방해로 인해 그 사야가 제한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바, 주간전에서도 협차가능할 사거리가 비등할 확률조차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마크8 사격통제장치의 사거리는 4만 야드이며 실전에서 3만 8천 야드거리의 협차된 물기둥을 확인한 적이 있다.(전술하였듯 스코프에 친절하게 띄워준다.)
일위키에서 32km에서 야마토가 협차를 냈다는 출처없는 정보가 있으나 사실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일단 함재기 탄착수정은 하지 못했으며, 세계 최대라고 불리는 일본의 야심작 15.5m 광학측거의의 30km에서의 오차는 300미터에 달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미국의 마크8 사격통제레이더의 30km에서의 오차는 대략 - 33000/1000+15야드, 48야드(44미터) - 정도였다.[66] 30키로면 갑판 위쪽이 간신히 보일 정도의 거리인데, 이 상황에서 어림짐작해서 쏜다고 해도 거의 살포계 너비에 준하는 추가적인 오차 때문에 특히 상대는 움직이는 함선인만큼 제대로 된 협차를 기대하기 어렵다. 야마토의 (46cm포의) 교전거리는 20km 전후를 상정한다는 야마토 생존장교의 증언도 있다.[67]
전함 간의 전투거리를 3만야드(27km)로 할지 그 이상으로 할지를 차치하더라도 아이오와급이 야마토급을 협차가능사거리로 압도가능하다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아이오와급의 사거리에 제압당한 야마토급의 운신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6노트나 차이나는 아이오와급에 근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추축국에서는 자함방공이 제일 충실하기는 하나 미국군함들처럼 군용기들을 다 갈아버릴 정도는 전혀 아니니까.
물론, 일본측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상기를 통한 탄착수정사격을 통해 협차가능 사거리를 늘리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탄착수정사격을 하는 동안 수상기는 무방비상태가 되며, 대상함선에 상당히 가까이 접근해야하는 점 때문에 실전에서 쓰기는 무리라고 보았다. 원래는 제로센 같은 함상전투기가 아군 관측기를 호위하고 적 공격기/관측기를 저지해야 했지만, 시대가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넘어가며, 그리고 항공전에서 밀리며 항공모함과 함재기 전력이 개발살나는 와중에 일본 전함이 역량을 발휘할 함대결전은 찾아오지 않았다.
자세한 사항은 협차 문서 참조.

5.6. 포신 안정화 장비의 부재


미국 전함은 Stable Element MK 6라는 포신 안정화 장비가 자이로 센서를 이용해서 파도나 변침으로 선체가 흔들려도 포신은 조준한 목표를 계속 향하도록 자동으로 포신의 각도를 보정해줬다. 그래서 미국 전함들은 함선이 요동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인 사격을 할 수 있었지만 야마토급 전함에는 이런 장비가 없었다. 그래서 변침 중 사격은 굉장히 어려웠고 직진 또는 정지한 상태라고해도 파도가 높으면 자세가 안정될 때까지 사격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야마토급의 실질적인 시간당 발포 횟수는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5.7. 부족한 예비 부품과 장비


야마토급 전함은 기존 전함들마저 초월하는 거함이라 상당수의 부품이 야마토급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져야 했다.[68] 설상가상으로 진주만 즈음에나 취역한 막둥이라서 미리 전쟁 전에 예비 부품을 제조할 시간도 자원도 없었고 일단 적에게 선빵을 후려치며 전쟁에 돌입한 이상 한가하게 예비 부품 따위를 만들고 있을 처지도 아니었다. 따라서 예비 부품이나 장비의 수량이 매우 부족하거나 아예 없어서 손상되거나 고장났을 때 수리를 위해서는 건조가 취소된 다른 자매함들의 부품과 자원을 유용하여 수복하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부품이 제조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추가되므로 한번 손상되면 장기간 도크 내부에서 놀고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야마토의 자랑인 18.1인치 주포는 아래와 같은 복잡한 과정으로 제조된다.
1
강괴를 가열하여 2,000톤 프레스로 단조 가공한다.
2
강괴의 머리부분 30%와 하단부 15%를 절단한다. 강괴의 머리와 꼬리 부분은 성능을 저하시키는 불순물의 농도가 높기 때문이다.
3
강괴를 1250℃까지 가열하고 2시간 동안 온도를 유지한 후 천천히 냉각시키며 풀림 처리한다.
4
절삭가공을 한다.
5
열처리 후 담금질을 한다.
6
재가열한다.
7
시험편 채취 및 검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큰 이상을 발견하면 강괴 전체를 폐기해야 한다.
8
자기긴축처리를 한다.
9
마무리 절삭가공을 한다.
10
강선을 가공한다.
한눈에 봐도 복잡하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제국이 종전시까지 제작한 18.1인치 주포의 포신숫자는 고작 27문이었다. 1938년 3월에 첫 번째로 완성된 주포는 카메가쿠비 포격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받았고, 18문의 주포는 야마토와 무사시에 장착되었다. 따라서 남은 주포수는 고작 8문이며, 이걸로는 야마토나 무사시중 한척의 포신을 전부 교체하지도 못할 수준에 불과했다. 참고로 남은 주포의 행방은 1945년 종전 후 2문은 카메가쿠비 시험장에서 폐기되었으며 나머지 7문의 일부는 미완성 단계였으나 상태가 양호한 2문은 버지니아에 있는 Dahlgren 포격시험장으로 보내졌고 나머지 5문은 폐기되어 1950년대 고철로 처리되었다.
당시 미군은 야마토급의 18.1인치 주포에 대하여 정밀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는 아래와 같다. #
이 주포는 보기 드물 정도로 정교한 방식으로 제조되는데, 어쩌면 그런 류의 대구경포를 제조하는 일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2A라 명명된 A 튜브는 약실부터 전체 길이의 절반 정도쯤 되는 부분을 압착하여 에워싸는 3A 튜브가 있다. 이렇게 조립하고 나서 와이어 와운드(wire-wound)[69] 공정을 마치고 나면, 모든 부분에 걸쳐 조여주는 2개의 튜브층과, 2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약실부 끝의 마개가 추가된다. 포신 중앙부의 여러 튜브들은 접시 스프링 와셔로 꽉 조여져 있는데, 아마도 포신에 쌓이는 피로가 집중되는 것을 줄이고, 혹시라도 모를 "포신 내부의 공간이 좁아지는 문제(steel choke)”를 방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는 영국의 빅커스(Vickers)社에서 탄피 홈을 만든 방식과 유사하다.
1A로 알려진 내부의 A튜브는 유압을 이용해서 독립된 3단계의 과정을 걸쳐 방사형으로 팽창되어 고정된다. 내부의 A 튜브가 자리를 잡으면 강신을 새겼다. 또한 3A 튜브에는 짧은 멈춤쇠(breech ring)가 달려있고, breech bush[70]가 파여져있다. 약실은 일본판 애즈버리(Asbury) 식 약실에 웰린(Welin) 폐쇄기를 조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설치하는 방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를 재생(relining)하려면 내부의 A 튜브를 전부 파내야한다(Boring)는 점이다. 이건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이므로, 두 전함 모두 전쟁 내내 포열을 교환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단순히 사용한 포를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더 실용적일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은 이 전함들의 짧은 생애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요약 : 여러개의 튜브로 포신을 만들면서 밖에 있는 포신이 안에 있는 포신을 꽉 조이도록 만든 것인데, 재생하려면 안에 있는 튜브를 뽑아야 하므로, '''차라리 새로 만들라'''는 이야기다.
1940년 11월 1일 진수된 2번함 무사시를 끝으로 항공모함의 위력이 확실하게 입증된 진주만 공습 이후엔 함대의 주력인 항공모함과 함재기가 아니라 중요성이 떨어지는 야마토급 3번함 시나노는 물론 이와 연관된 전함 포신과 같은 부품은 생산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포신의 수명이 다 되어도 예비 부품이 없으니 교체할 수가 없었다. 야마토급 전함의 주포는 약 150발~250발을 발사할 수 있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영국이 16인치가 250발, 15인치가 330발, 14인치가 350발, 나가토급의 16인치가 300발, 소련이 소비에츠키 소유즈급에 얹으려 한 16인치도 300발, 아이오와급의 16인치가 350발, 독일이 비스마르크급에 얹은 15인치가 210발이므로 18인치에 150~250발을 기대할 수 있는 야마토급의 주포가 내구성이 특별히 약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포신 내구도 자체가 아니라 예비부품이 한 벌도 없었다는 것. 한 척에 9문을 달고 다니는 배를 위해 준비된 예비용 포신이 8문뿐이다! 즉, 야마토급 전함들은 처음 만들어질 때 받은 포를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껴 써야 한다. 이래서야 승조원들의 숙련도를 유지하기 위한 정기적인 연습사격도 섣불리 할 수 없다. 전쟁이 언제 끝날 줄 알고 교환도 안 되는 장비의 내구도를 소모시킨단 말인가?
그래서 예전에는 야마토급 전함들이 함대결전에만 맞춘 1회용 전함이란 말도 있었다. 물론 진짜 1회용으로 쓰고 버리려고 건조한 전함은 아니지만 어차피 2회용으로 쓸 수 없으니 1회용으로 취급당해도 할 말은 없다. 포신조차 교체할 수가 없었으니 포신의 내구도가 다 떨어지면 포 한번 제대로 못 쏘는 수상호텔 신세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6. 실전



6.1. 미드웨이 해전


1번함 야마토는 취역한 이후에 나가토로부터 연합함대기함 역할을 물려받고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했지만,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전장에서 삼만팔천 리 떨어진 곳에서 연합함대의 기함 역할만 했기에 실제로 야마토가 18.1인치 거포로 전투하는 일은 없었다.

6.2. 야마토 호텔과 무사시 료칸


그 후로 오랫동안 해군의 상징으로 아껴진다. 당연히 전투에 참가할 일도 없으니 그 잘난 18.1인치 포로 공을 세울 일도 없고 진짜 해상호텔 노릇만 톡톡히 했다. 그러다 전함 무사시가 취역하자 1943년 말 총기함 임무를 교대해 이제서야 태평양으로 나서게 된다. 무사시 역시 무사시 료칸으로 호화숙박시설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6.3. 어뢰 피격


1943년 12월 25일, 요코스카에서 트룩으로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던 야마토를 포함한 수송함대는 트룩섬 서방 290㎞ 거리에서 미국 발라오급 잠수함 스케이트(USS Skate)에게 발각되었다. 스케이트는 야마토를 목표로 어뢰 4발을 발사, 이 중 한발이 3번 주포탑 우현 벌지(Bulge)에 명중했다. 어뢰 벌지라는 물건은 어뢰를 막으라고 달아놓은 것이기에 원래대로라면 탈이 안 나야 하겠지만, 이놈의 벌지가 어뢰에게서 받은 충격을 미처 흡수하지 못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요상한 설계가 적용된 부분을 정확하게 타격해 야마토의 장갑 체결부가 벌어져 버렸다. 야마토는 일부 일본인들이 주장한 것처럼 어뢰가 맞은 것도 모르고 간 게 아니었다. 실제로는 3000톤의 바닷물을 먹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꽤나 중대한 손상을 입었고, 트림조절을 해서 겨우 함체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결국 구레로 돌아가 수리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겨우 수리를 끝내고 다시 전쟁터에 나가려다 보니 이미 태평양은 '''미군의 전함뿐만이 아니라, '멸적의 쇼미더머니'를 갈겨댄[71] 미 해군의 항모[72]와 함재기들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바다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때문에 또 전투에 참가해보지도 못하고 전력보존이란 명목하에 계속 후방으로만 돌려졌다.

6.4. 필리핀 해 해전


함대결전사상점감요격작전을 핑계삼아 전장에는 나가지도 않으며 그 비싼 야마토 전함을 호텔로만 써먹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탑승한 수송기가 미군에게 격추당해 사망하자 연합함대 수뇌부는 함대결전을 지휘한다는 명목조차도 내팽개쳐버리게 된다.[73]
역설적으로 야마토에는 이것이 기회가 되었다. 수뇌부들의 간섭이 사라지자 오자와 지사부로는 연합함대 편제를 항공주병에 맞춰 재편하면서 경항모와 전함을 주축으로 하는 전위부대가 미군의 압도적인 항공전력을 어느 정도 막아주기를 기대했지만 이 조치는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본대의 주력 항공모함은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눈에 띄는 전과나 피해는 없었지만, 이 전위부대에 참여한것이 야마토에게는 '''첫 실전'''이 되었다. 그러나 6월 19일 야마토의 첫 실전 포격은 후방 본대에서 발진한 일본군 공격대에 대한 '''팀킬'''이었다.[74] 진짜 적에 대한 첫 실전 포격은 그 다음날 3식탄을 사용한 대공사격 27발이 최초가 되었다.

6.5. 레이테 만 해전


'''제국의 흥폐(興廃)가 걸린 함대결전'''이 일본의 참패로 끝나자 코가 미네이치의 후임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요타 소에무를 비롯한 연합함대 사령부는 '''자기네들은 본토로 도망치면서''' 잔존 함대에는 미 육군 수송선단과 동귀어진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오자와가 이끄는 잔존 제1기동함대, 후소급 전함 2척으로 이루어진 별동대를 지휘하던 제2전대의 니시무라 쇼지는 이 명령을 우직하게 수행했지만, 야마토와 무사시가 소속된 제2함대는 오랫동안 함대결전만을 준비해 온 주력부대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 작전 자체에 불만을 품고 있었고 사기도 높지 않았다. 이것이 후술하는 구리다 턴의 큰 원인이 되었다. 2차대전 중 일본해군 지휘관을 평가한다.

6.5.1. 시부얀 해전


일본 해군이 총력을 기울인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는 구리다 타케오가 이끄는 2함대 1유격부대의 일원으로서 야마토급 전함 2번함이자 자매함인 무사시와 함께 출격한다. 무사시는 다른 배보다 눈에 띄는 밝은 색상으로 도색하고 출격했는데, "우리는 미끼다"라는 소문이 함내에 퍼지면서 승조원들이 불안해했다고 한다.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던 도중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함대 기함인 중순양함 아타고가 침몰했고, 구리다 제독은 구조된 후 야마토를 구리다 함대의 기함으로 정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오는데, 아타고에 구리다 제독과 같이 탔던 숙련된 통신병들은 못 탔다. 이게 나중에 사마르 해전에서 구리다 턴이 나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6.5.1.1. 무사시 침몰

시부얀 해전에서 구리다 함대는 미군 함재기의 공습을 당했는데 밝은 색상과 커다란 덩치 때문에 눈에 확 띈 무사시는 특히 집중공격을 받았다. 무사시는 미군의 공습에 대응하고자 주포로 3식 통상탄을 발사했지만 큰 효과를 내지는 못했고, 사전 경고없이 사격을 하는 바람에 갑판 위에 있던 대공포 요원들이 주포 발사의 충격을 그대로 받았다고 한다. 또한 사격 시의 충격으로 주포 조준 방위판이 고장났다는 생존자의 증언도 있다.
그렇게 전투를 계속하던 중, 무사시의 1번 포탑 중앙 주포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3식탄의 폭발 시간을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포탄이 포탑 안에서 폭발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75] 결국 무사시는 전열에서 이탈해 회항하던 중, 함재기들의 추가 공습까지 받으며 대량의 화재와 침수가 발생했으며 공습 후 4시간 뒤인 7시 35분에 복원력을 완전히 잃고 좌현으로 전복되어 침몰했다. 다만 미군 함재기들의 공격이 대부분 무사시에 집중되었기에, 중순양함 묘코가 피해를 입은 것 외에는 함대에 큰 피해는 없었고, 구조된 승조원들 중 절반은 본토로, 나머지 반은 필리핀 방어전에 동원된다. 무사시의 함장은 유서를 남긴 후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고 한다.
영문 위키 무사시

6.5.2. 사마르 해전


구리다 제독은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무사시를 내버려둔채 함대를 반전시켜 후퇴하기 시작했다. 구리다 함대를 쫓아낸 윌리엄 홀시오자와 지사부로가 이끄는 일본군 항모전단을 발견하고, 3함대를 이끌고 진격해서 엔가노 곶 해전을 벌인 끝에 오자와의 항모 전부를 수장시킨다. 이 해전에서 미군은 진주만을 공격했던 항모 중 마지막 항모인 즈이카쿠도 침몰시켰다.
그러나 3함대가 진격하면서 산 베르난디노 해협의 감시망이 사라졌는데 이 틈을 타서 구리다 함대는 다시 반전해서 해협을 돌파,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다가 스프레이그의 호위항모전단 '태피 3'와 마주친다.
야마토는 약 32km 거리에서 주포탄 104발을 쏘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칼리닌 베이에서는 야마토의 포격이 거리는 정확했지만 방향과 각도가 어긋낫음을 파악했다.[76] 야마토에서는 적 항모 1척의 격파를 확인하고 해당 항모의 흑연으로 조준이 곤란해지자 목표를 변경했다[77]
하지만 플레처급 구축함 USS 존스턴(DD-557)의 함장인 '추장' 어니스트 에반스가 7시 10분쯤에 일본함대를 향해 돌격하였고 이후 이에 응해서 나머지 플레처급 구축함 호엘(DD-533), 히어만(DD-532)과 존 C 버틀러급 호위 구축함 사무엘 B. 로버츠(DE-413)도 어뢰와 주포를 쏘며 덤벼들었고 호위항모들과 나머지 호위 구축함들도 도망가면서 대공포를 대함용으로 쏘면서 지상 공격용 무장들만 단 함재기들을 날리며 반격했다.[78] 첫 번째로 돌격한 존스턴은 신 들린 회피기동으로 포격을 피한 것도 모자라 일본군 모가미급 중순양함 쿠마노의 함교를 함포사격으로 불태우며 어뢰로 함수를 박살냈다. 이 공격으로 스즈야의 속도를 늦춰 함재기들의 밥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성공했지만 얼마 안 가 7시 30분쯤에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의 포격과 야마토의 부포탄 3발을 맞아 대파당했다. 하지만 존스턴은 스콜에 숨어 수리한 후 다시 전투에 참여하였고 일본 함대에 맞서다가 해전 후반에 격침당했다.
미군의 또 다른 플레처급 구축함 USS 히어만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에게 덤벼들어 어뢰를 발사했다. 하루나는 이 어뢰를 피했지만, '''이 어뢰는 바로 뒤에 있던 야마토를 향해 돌진했다.''' 야마토는 이 어뢰를 피하려다가 진로를 잘못 잡아 어뢰 사이에 끼었고, 몇 분간 어뢰를 회피한 뒤 다시 복귀한 야마토는 나가토 등과 함께 구축함 호엘을 포격했고 8시 55분 호엘이 전복된다.
한편 공고와 중순양함 부대는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에 포격을 집중시켰다. 8시 15분경 갬비어 베이의 최초 명중탄은 하구로와 토네의 20.3cm 포탄이었고[79] 토네의 함장 마유즈미 하루오는 저서에서 '전함부대의 포탄은 적 항모에 화재를 일으킨 일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미국의 전사연구가 로버트 룬드그렌(Robert Lundgren)은 야마토의 포격은 존스턴에 46cm포 3발, 15cm포 3발 피탄, 호위항모 화이트 플레인즈에 지근탄으로 기관실을 파손시킨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다.[80] 당시 야마토에 승선하고 있던 우가키 마토메는 전초록에서 31km 거리에서 포격으로 항모 1척을 격파 후 다른 함으로 목표를 옮겼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이 항모는 지근탄으로 기관실이 파손된 후 연막을 살포한 화이트 플레인즈였고 야마토가 다른 항모를 격파 혹은 격침했다는 언급은 없다. 나가사키 사세보 해군 묘지의 공고 위령비는 항모 1척과 구축함 2척 격침을 공고의 전과로 쓰고 있으며, 중순양함과 함께 갬비어 베이를 포격하다 8시 50분경 '적 항모 1척 대화재 대폭발'을 보고하고 갬비어 베이에 사격을 중단했다. 야마토가 갬비어 베이를 명중시켰다는 주장[81][82]은 일본에서는 소수설.
그리고 구리다 함대 전함의 포격은 태피 3의 항모에 큰 손상을 일으키질 못했는데, 태피3의 항모들은 수송선을 개조한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로 항모의 기능만 수행하지 그 장갑은 일반 항모보다 없는 수준이라서 과관통이 일어나 내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중순양함 아타고급 이하의 포격부터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전함 공고에서는 철갑탄의 과관통을 목격한 뒤 부포의 대공용 탄에 시한신관을 사용해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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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0 전투 상황도
2시간에 걸친 전투가 끝난 후, 태피 3은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 구축함 호엘과 존스턴, 호위구축함 새뮤얼 B. 로버츠를 잃는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구리다 함대도 중순양함 초카이, 치쿠마, 스즈야를 잃었다. 구리다 제독은 사방으로 흩어진 배들을 일단 긁어모은 후 앞으로의 방침을 고민했고, 심사숙고 끝에 레이테 만으로의 진격을 포기하고 회항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구리다 턴'''이라고 하며, 오자와 함대가 피흘리며 얻어낸 귀중한 기회를 날렸다는 이유로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구리다 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링크 참조.

6.5.3. 이설


일본에서는 이설도 있는데, 야마토와 나가토가 구축함대의 어뢰 회피를 위해 변침하다 조타 실수로 어뢰 항주가 끝날 동안 같은 방향으로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계속 되는 미함재기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뢰를 회피한 방향과 같은 방향에 형성된 스콜 속으로 대피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변침에 소요한 시간은 8분(영문 위키와 일본어 위키에선 10분)으로, 긴 시간이라 할 수 없다. 이 외에도 전함 콩고 또한 미함재기의 공격을 받아 측거의가 파손되어 스콜 속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이 주장에 대해 "야마토는 다른 군함들이 공습을 무릅쓰고 진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군 군함 중 가장 대공화력이 강력하고, 가장 튼튼한 군함이면서 기함으로서의 임무를 방기하고 도망친 셈이다." 라는 의견이 있으나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순 없다. 기함 선두가 일본 해군의 전통이라곤 하지만 반드시 지켜졌던 것은 아니며, 그 예를 타사파롱가 해전에서 찾을 수 있다. 다나카 소장은 기함 나가나미로 전투에서도 선두에 서지 않았고, 전투가 끝난후 유일하게 어뢰가 남아있는 함이었지만 적과 조우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쿠로시오를 생존자 구조에 파견했다. 이에 대해 당시엔 쿠로시오의 함장을 포함해 비겁하다며 비난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현재는 함대를 지휘해야하는 기함의 역할을 생각하면 다나카 소장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는것이 미일양국의 공통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 제국은 야마토를 기함으로나 쓸 만큼 여유롭지 않았으며, 다른 배가 공습을 당하면서도 남쪽으로 진격하는데, 혼자서만 공습을 피한다며 북쪽으로 도망간다면 병사들의 사기는 어찌되는가?" 라는 의견이 있는데, 일본군 함대도 야마토를 단순히 기함으로만 사용한것은 아니다. 사마르 돌입 당시 일본함대는 대수상전 진형이 아닌 대공원형진을 채택하고 야마토는 주포 9문 중 6문을 대공용 삼식탄을 이용한 대공포로 썼던 점에서 대공전투에 무게가 실려있었다. 이는 항공 공습을 받아 무사시가 침몰하는 등 미군 함재기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레이테만 해전에서 무사시가 집중공격을 받아 이탈하자 그 뒤엔 공격이 야마토와 나가토에 집중되어 잠시 동안 무사시는 피해를 입지 않기도 했고[83], 엔터프라이즈나 즈이카쿠도 스콜 속으로 대피해 피해를 막기도 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것이, 목표가 스콜 등에 대피했을 경우 그 함선을 공격하던 공격대가 곧바로 다른 함선으로 목표를 바꿔 공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호해 해전에서 즈이카쿠를 공격하던 요크타운 공격대는 즈이카쿠가 스콜속으로 대피하자 그 주변을 멤돌거나 길을 잃기도 했으며 그렇지 않은 편대도 다시 편대를 재정비하고 공격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 했다. 거기다 이미 태평양 초기에 미일양국 모두 비장갑함을 격침 시키는 데 전함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피 3에 전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상태서 공격이 집중되는 야마토를 적의 공격을 분산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이탈시키거나 스콜 속으로 대피시키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마토는 당시 스콜 속에서도 연달아 기총소사를 받아 적지 않은 갑판인원이 피해를 입었고, 야마토의 수상기 파일럿이었던 야스다 치카후미 비조장은 기총소사를 받는 와중에 출격하여 4기의 적 함재기와 홀로 교전한 후 돌아오기도 하는 등 매우 격렬한 상황이었다. 사기에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 또한 확인할 수 없었으며, 야마토급 전함이 아무리 뛰어난 방뢰능력을 실증한 함이라고는 하나, 어뢰가 한 발이라도 명중하면 심각한 피해를 입을 확률이 있으며 오히려 그로 인한 낙오 또는 침몰로 인해 발생하는 사기하락과 전력저하를 걱정해야 할것이다.
하지만 항공모함이 스콜에 숨는 것과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일단 공격대와 요격대를 출격시키고 나면 항공모함은 본체가 스콜에 숨더라도 공격과 요격 능력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반면 항공모함은 스콜에 의한 방어 효과를 누리므로 무조건 이득이다. 하지만 전함인 야마토는 방향을 돌려 스콜에 숨으면 자신은 안전할지 몰라도 사실상 전력 이탈인 것이고, 특히 오자와 함대를 미끼로 쓰면서 얻은 기회라는 것을 감안하면 몸을 사릴 게 아니라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태피3를 홀시의 3함대로 착각했다면 이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천금 같은 기회였고, 그게 아니라고 해도 겨우 구축함 몇척의 호위만 받는 호위항공모함 6 척은 수상함대 입장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것도 아니라 태피3 정도는 탐나는 먹잇감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빨리 태피3 를 정리하고 다시 주목표를 찾아야 했다. 시간 끌어봤자 이득이 전혀 없으니까. 그런데도 한창 태피3 와의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인데, 함교가 피격당해서 지휘에 혼란이 발생하거나, 진압이 힘들 정도의 큰 화재라도 발생하거나, 주포 고장 등 심각한 기능 고장이 발생하거나 한 것도 아닌데, 어뢰 한방에 가라앉을까 걱정해서 스콜에 숨었다면 애초에 이런 작전을 짜지도 말거나 야마토를 제외시켰어야 했다.
요약하자면 어떤 식으로 변명하든 간에, 야마토가 기함으로서 임무를 방기하고, 제대로만 전투했어도 어렵잖게 즈려밟을 수 있는 태피 3에 괜히 겁먹어 도망갔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어쨌든 위에 있는 참고링크가 모두 "야마토가 구축함의 어뢰에 쫓겨서 달아났다"고 서술하고 있으므로, 이쪽은 그냥 참고만 하자.

6.5.4. 그래서 전공은?


사마르 해전에서 야마토는 7시 30분쯤에 나가토와 함께 USS 존스턴과 호엘에 대해 부포 사격을 하여 3발을 명중시켜 대파시켰고[84] 호엘은 중반, 존스턴은 해전 후반에 침몰했다. 호엘의 명중탄이 야마토, 나가토, 하루나, 공고 중 어느 함의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의 경우는 중순양함 치쿠마가 일본 함대의 선두에 서 있었고, 영문위키 갬비어 베이 항목에서도 8시 20분에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의 포탄으로 전방 기관실이 날아가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명중탄을 냈다며 야마토의 전과로 주장하기도 하지만, 전함의 포탄으로 화재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교차검증이 되지 않으며 '''야마토에 승선하고 있던''' 우가키 마토메의 기록조차 화이트 플레인즈의 지근탄밖에 언급하지 않는다.
결국 위의 전공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일본군의 목적은 레이테 만으로 들어가서 미군 상륙함대를 박살내는 것인데 사마르 해전에서 패배하고 퇴각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당연히 태피 3의 분전이고, 그 중에서도 자살에 가까운 돌격을 감행한 구축함 4척들의 공이 매우 컸다. 특히 구축함 히어만은 마지막까지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일본군은 끝내 히어만을 침몰시키고 레이테 만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특히 야마토가 히어만의 어뢰에 쫓겨 도망간 게 결정적이었다. 위에서는 "그 후 다시 반전해서 싸웠다"고 하나, 반전해서 돌아왔건 말건 간에 히어만을 몰아내고 레이테 만으로 진입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것은 사마르 해전이 시작될 때 예상된 전과와는 다르다. 해전이 시작될 때만 해도 야마토가 태피 3을 묵사발로 만들고 레이테 만에 진입해서 대전과를 올리는 게 확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해상 포격전에서 전함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전함뿐이지만 태피 3엔 전함은 고사하고 순양함조차 없었다. 태피 3에 소속된 군함 자체가 호위항모 6척, 구축함 3척, 호위구축함 4척인데 이걸 다 합해야 야마토 한 척과 비슷한 중량이 나온다. 이런 전력으로 야마토와 포격전을 하면 괴멸되는게 상식인데 오히려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구리다 함대에 전함이 4척이나 있고, 태피 3에 전함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구리다 함대에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게임이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모 게임에서는 구축함이 전함을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게임적 허용이다. 현실의 구축함은 잠수함을 막으라고 만든거지 전함을 잡으라고 만든 배가 아니다. 물론 어뢰는 잠수함만이 아니라 다른 배를 공격하는데 쓰일 수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일본의 구축함들은 함대결전사상에 집착한 일본군의 방침으로 적 전함을 공격하는 것이 주 목적이긴 했지만[85], 현실의 구축함은 절대로 전함을 못 이긴다. 과달카날 해전에서 미군 전함 워싱턴이 일본군의 순양전함 기리시마를 박살낸 후, 일본군의 순양함과 구축함들은 사력을 다해 워싱턴에 대항했지만 결과는 36계 줄행랑이었다. 전함에 특화했다는 일본 구축함들도 이 모양인데, 뇌격전보다 대공/대잠에 중점을 둔 미군 구축함이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야마토가 히어만과 마주쳤을 때, 야마토는 무조건 히어만을 격침시키거나 쫓아냈어야 했다. 전함의 부포가 바로 그럴 때 쓰라고 달린 무기이고, 제대로 된 전함이라면 히어만이 어뢰를 쏘기도 전에 히어만을 짓밟았어야 했다. '''전함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함 뿐이며, 다른 걸로 잡을 수 있으면 그건 전함도 아니다'''라는 건 이 시대의 상식이었고, 그렇기에 태피 3의 지휘관인 스프레이그 제독도 30분만 버티면 잘 버틴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야마토 옆에 전함 나가토와 하루나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랬어야 했건만, 현실은 전함 3척이 구축함 한 척한테 밀렸다. 히어만이 사마르 해전이 끝날 때까지 버티고 있었으니, 일본의 전함들은 무려 2시간이나 히어만 한 척을 못 잡고 쩔쩔매다가 도망간 셈이다. 히어만이 토네, 치쿠마 같은 일본군 중순양함들과도 교전했음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졸전이었다. 더욱 창피하게도, 이 해전에서 히어만의 전사자는 6명.
결국 사마르 해전의 패배 원인은 많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야마토다. 야마토가 히어만을 격파하거나 그냥 쫓아내기만 했어도 일본군은 반드시 사마르 해전에서 승리하고 레이테 만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니만큼 야마토의 실책은 매우 크다.

6.5.5. 다른 함대의 운명


야마토에게 레이테 만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미끼 노릇을 한 오자와 함대는 항모 4척을 잃고 산산조각났고,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라던 즈이카쿠도 이 해전에서 격침되었다. 겨우 살아남은 항공전함 이세와 휴우가는 잔여세력을 수습해서 일본으로 도망쳤다. 그래도 미끼 작전 자체는 성공했다.
야마토를 돕기 위해 조공 겸 양동함대 역할을 한 니시무라 함대는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미군의 올덴도르프 함대를 만나는 바람에 집중포격과 뇌격을 당해 괴멸당했다. 함대의 주력인 후소급 전함 2척도 격침당했지만, 이들은 마지막까지 도주하지 않고 싸우다가 침몰했다.
야마토를 돕기 위해 출전한 시마 함대는 니시무라 함대의 주력 전함 중 1척인 후소가 두 동강이 나있는 것을 보고 도망가다가 기함인 묘코급 중순양함 나치가 퇴각하던 니시무라 함대의 중순양함 모가미를 들이받아버렸다.
레이테 섬에 병력을 증원하기 위해 파견된 16전대(기함 아오바)는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끝내 레이테 섬 오르목 만에 도착해서 병력을 내려놓는데 성공했다. 계획대로라면 야마토가 레이테 만의 미군을 박살내서 이들을 도와줘야 했지만 사마르 해전에서 야마토는 임무를 포기하고 도주했고, 16전대는 탈출하다가 미군의 공격으로 괴멸했다. 그러나 미군이 16전대를 공격하느라 전력을 분산시킨 덕분에 야마토에게 가해지던 압력이 약해졌고, 덕분에 야마토는 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철수할 수 있었다. 16전대에서 살아남은 배는 수송선 1척, 그리고 불침함 아오바 뿐이었다.

6.6. 시나노 침몰


3번함 시나노는 일단 개전 후 건조가 중지되었으나, 미드웨이 해전 이후의 항공모함 부족을 타개하고자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이었다.
1944년 11월 29일, 마무리 공정을 위해 구레 항으로 향하던 시나노는 미 해군의 발라오급 잠수함 SS-311 USS 아처피시 (Archerfish) 함의 매복에 걸려들어 어뢰 4발을 맞는다. 아무리 항모로 개조되었다고 해도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이니 정상적이라면 격침될 수가 없지만 4발을 맞고도 전속력으로 무리하게 항행하다가 들어찬 해수로 격벽들이 무너져 '''8시간도 못 버티고 침몰해버렸다.''' 그리고 시나노는 미 해군에게 '''단 1척의 잠수함이 잡은 역대 최대의 군함'''이라는 위업만 헌납한다.[86] 함장의 미숙한 조치[87]와 대미지 컨트롤의 부족이 낳은 대재난이었다.
1개월 후 12월 28일 조사위원회의 결과로는 나사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고 방수해치에 2cm나 빈틈이 있고 수밀시험 자체도 생략되는 등 부실공사의 실상이 밝혀진다. 애초에 완공되었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 부실공사, 미숙한 대미지 컨트롤, 위험한 항로 선정에 3척뿐인 호위함[88]총체적 난국으로 책임을 물을 당사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처벌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89]
아처피시 함은 복귀 후 보고에서 이 함의 존재를 모르던 상층부로부터 화물선을 잘못 보고 전과를 과장한 것 아니냐고 질책받았으나, 얼마 뒤 시나노 함의 정보를 입수하고 사과의 의미로 항복 조인식 때 아처피시 함이 미주리 함 옆에 계류토록 배려해주었다. 아처피시 함은 전쟁 중 시나노 외 화물선 1척 총 2척만을 격침시켰음에도, 그 둘 가지고 미 해군 잠수함 격침 총톤수 25위(...)를 찍었다.

6.7. 야마토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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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공격을 받는 야마토. 전속력으로 항진하고 있는 사이에 항공 폭탄이 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물기둥이 올라왔다.
결국 1945년에 들어서며 일본 제국의 전황이 악화일로를 달리자, 야마토는 '천1호 작전'의 일환으로 편도 연료와 1170발의 주포탄[90]을 싣고 오키나와로 상륙해오는 미군을 막기 위한 '키쿠스이 작전(菊水作戦)'에 나선다. '''편도 연료로 오키나와 해안에 도달해 그 상태로 해안 모래밭에 올라타(착저) 고정포대 노릇을 하는''' 작전이었다.[91] 숨겨둔 비밀 무기로 일거에 전황을 바꾸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전혀 아니라 '''그저 죽을 자리를 찾는 마지막 여정이었다.'''
이렇게 무모한 작전을 세운 이유는 당시 일본 제국의 해군 함정용 중유의 비축분이 바닥을 드러냈던 것도 있지만, 출격 자체가 제국해군의 상징답게 '''"장렬히 죽어라"'''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나고 난 뒤, 높으신 분들에게 '우리 해군은 이렇게 열심히 싸웠음에도 지고 말았습니다'라는 변명을 하기 위해서는 해군의 최대전력이었던 야마토가 살아남아있어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작전 자체가 미군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 아닌 야마토를 가라앉히기 위한, 나아가 자신들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고 '''아무도 야마토가 미군을 막아내리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더욱이 일본제국해군의 상징이던 야마토가 살아남아 미군에 넘어가 '''성조기가 휘날리는 USS 야마토'''가 될 수 있었기에 더더욱 야마토는 살아있어서는 안 되었다.[92]
미 해군의 대함대의 방해를 뚫고 오키나와까지 가는 것부터가 문제였지만 만일 오키나와 해안에 계획대로 좌초하더라도 오키나와 전투를 수행중인 일본군 수비대의 도움 없이는 그냥 고정표적 1호가 되어버린다. 재수없으면 미군에게 육박공격이나 당해서 점령당하는 막장 상황이 벌어지며, 그런 일이 없더라도 좌초된 군함의 탄약이 떨어지면 그냥 거대한 고철덩어리로 전락하는 데다 앞서 말했듯이 이동능력이 전무하므로 공중에서 폭격하는 비행기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타겟이 없다. 따라서 애초에 이 작전의 성공확률이 극히 낮은데다가 고정포대 노릇을 하는 것은 설령 야마토가 작전지역에 멀쩡하게 도착했더라도 불가능하다.
거기에 출격시기 자체도 문제가 있었다. 일기예보상 2~3일 뒤에 항공기 운용에 지장을 주는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었던지라 그나마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날이 흐려 시야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날을 골랐다. 결국 구름과 안개속에서 갑툭튀하는 미국 함재기들을 상대로 한 대공사격은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나마 당시 유류탱크 담당 장교가 윗선과는 다르게 생각이 있어서인지 유류 탱크 펌프가 닿지 않는 아랫쪽까지 인력으로 퍼내서 '적어도 멍청하게 꼬라박느니' 중간에 회항할 것을 어느 정도 가정하고 왕복연료로 메꿔서 줬다고 한다. 물론 상부에 보고한 것은 편도분 연료만 넣은 걸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류 탱크 바닥에 남아있는 연료는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분량이기 때문이다. [93] 해군 선임자들도 알면서 눈감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사실상 자살임무에 가까운 작전이었으므로 만일 배가 격침될 경우 살아남은 승조원이 주변 섬에 표류할 것을 생각해서 약간의 돈과 비상용 물자를 승조원에게 배급하기도 했으며[94] 출격 전에 술판을 벌여서 최대한 사기의 저하를 막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출항 직전에는 B-29를 개조한 장거리 정찰기에, 출항해서는 일본 근해를 벗어나기도 전에 잠수함에게 들켰으니 이미 그 상황에서 미국은 야마토의 출항을 알아냈고 오키나와에 근처에 가기도 전에 미군 함재기 부대에 포착되었다. 일본군 함대가 출항했다는 것을 포착했다는 보고를 들은 레이몬드 스프루언스 제독은 마크 미처 제독 휘하의 항모들에게 처리를 맡겼다.[95]
결국 항공모함 호넷, 요크타운, 베닝턴을 비롯한 수많은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함재기들에 공격당한다.
무사시가 양현에 골고루 어뢰를 맞아서 함내 구획이 균등하게 침수되는 바람에 오히려 격침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서 무사시는 잠수함에게 최후를 맞았다는 낭설까지 돌았었다. 해당 전투의 전훈을 살려 미군의 조종사들은 독자적인 판단으로 야마토를 공격할 때 좌현에 집중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래서 야마토는 이 해전에서 좌현에 9발의 어뢰를 맞은 반면 우현에는 단 1발의 어뢰만 피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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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야마토와 함께 거함거포주의는 막을 내렸다.
왼쪽의 구축함은 아키즈키급 구축함 후유츠키.'''
약 117대의 항공기에게 다수의 어뢰와 폭탄에 피격 당하고 배가 기울어졌다. 2시 17분경, 마지막 어뢰가 함에 명중하자 야마토는 경사각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보수반원의 전멸로 인해 진압을 못한 후방 부포탑의 유폭으로 인한 화재와 함 정면부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전체 탄약고의 온도가 급상승하여 적색 램프가 울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처리할 인원도 시간도 없었다. 야마토가 더 이상 기동이 불가능하며 곧 침몰할 것임을 보고받은 이토 세이이치 제독은 작전 중지와 퇴함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통신시설의 파괴로 함내 승조원 중 대다수가 퇴함명령을 듣지 못했고, 이미 함이 급격히 기울어진 상황이라 탈출이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96]2시 23분 야마토의 2번 포탑의 탄약고가 유폭하면서[97] 거대한 버섯구름이 솟구쳤고 뒤이어 완전히 전복된 함미부의 3번 주포탑 혹은 기관부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두 차례의 대폭발이 발생한 직후 2번 주포탑의 폭발로 인해 해당 지점에서 함수와 함미가 분리되며 두 동강이 난 야마토는 바닷속으로 기울어지며 완전히 침몰했다. 폭발의 위력이 매우 거대하여 폭음은 100㎞나 떨어진 규슈 남부까지 들렸고, 폭발연기는 160㎞ 거리에서도 관측되었으며, 퇴함한 승조원중 대부분이 폭발에 휘말려서 사망했다. 버섯구름은 6㎞ 고도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함께 출동한 함정 중 피해가 적었던 3척의 구축함이 살아남은 야마토의 승조원들을 구조하여 귀항하였다. 구조된 승조원은 전체 3000명 중 단 269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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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잔해
현재 야마토는 북위 30도 43분, 동경 128도 4분, 나가사키 현 단죠(男女)군도 남방 176km, 수심 345m 지점에 침몰해있다.
선체는 두 동강나 함선 선수부는 북서쪽(방위 310도)에, 함미 부분은 동쪽(방위 90도)방향에 있으며 나머지 부분은 진흙에 덮힌 채 침몰해있다. 함수 쪽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채 침몰해 있다. 1번 포탑 바벳은 온전하지만 2번 포탑 바벳은 탄약고 폭발로 인해 남아있지 않고, 함수의 국화문장은 남아있기는 하나 이전 탐사에서는 확인되었던 금박이 박리현상으로 인해 2016년 탐사에서는 남아있지 않았다. 함수 끝 방향이 일부 붕괴되었으며, 함수는 전체적으로 강판의 열화에 의해 붕괴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3개의 주포탑과 2개의 부포탑은 모두 전복시 빠져버렸고 탑처럼 해저에 박혀있는데, 주포 몸체는 진흙속에 박혀 관찰되지 않는다. 2번 주포탑은 심하게 파손되어 있는데, 이는 침몰 직전에 일어난 대폭발이 2번 포탑의 탄약고 유폭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1번과 3번주포탑은 손상이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1번 주포탑이 가장 손상이 없는 온전한 모습이며, 1번 포탑은 상부, 하부의 급탄실도 보존되어 있다. 부포탑도 손상이 별로 없었다. 4개의 스크류 중 3개는 본체에 남아있지만 1개는 부서진 채 빠져버렸다. 침몰시 스크류 축이 부러지며 빠졌다고 생각된다. 함선 앞부분엔 어뢰로 인한 구멍이 보이고 그 외 손상이 있지만 세부적인 손상은 알려져있지 않다.
이 전투에서 미 해군과 일본 해군의 손실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미군은 비행기 5대가 격추, 52대가 손상을 입어 그중 5대가 수리불능으로 버려지고, 2대가 해상에 불시착, 1대가 가던 중 원인불명으로 추락하여 총 13대를 손실, 또 다른 자료에선 전투기 3대, 급강하폭격기 4대, 뇌격기 3대가 격추되어 총 10대를 손실. 일본군은 전함 야마토와 경순양함 1척, 구축함 4척이 침몰했다. 인명피해에서 미군은 전사·실종자 총 13명, 일본군은 전사 총 4,044명, 또 다른 자료에선 미군은 조종사 4명, 항공승조원 8명이 사망하여 총 12명, 일본군은 야마토에서 3,055명, 야하기를 포함한 제2수뢰전대에서 1,187명이 사망하여 총 4,242명.# # 저러한 큰 손실 차이를 내며 연합함대의 자존심은 그렇게 태평양에 가라앉았다.[98] 거기에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소중한 목숨을 값비싼 수업료로 지불해 가며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온 항공모함에게 주도권을 상실당한 전함은 마침내 초거함 야마토급의 격침과 함께 거함거포주의의 종말을 맞이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야마토의 침몰 과정에서 일본 해군은 자신들이 가진 최대의 함선이자, 연합함대의 자랑이었던 함선을 미국의 본토 진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그냥 갖다 바쳤다. 이를 본 미국은 카미카제에 이어 자신들의 최고 전함까지 자살공격에 쏟아붓는 일본 제국을 일반 공격으로 굴복시키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원자폭탄의 실전 투입 의견이 강해졌다.
여담이지만 야마토를 공격하던 도중 격추된 헬다이버의 조종사는[99] 아주 가까이에서 야마토가 침몰하는 하이라이트를 보고나서 비행정에게 구조되었다고 한다.

6.8. 격침의 의미



6.8.1. 일본


야마토의 최후의 출격은 일본 제국 특유의 답이 없는 무의미한 짓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야마토가 오키나와로 출격하는 것은 당시 전황으로는 성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자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군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군 수뇌부에서 그런 반대 의견을 누르기 위해 한 말이 '''"병력을 남긴 채 패전한다면 연합함대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였고, 그 말에 모든 반대의견이 쑥 들어갔다고 한다. 설득된 것이 아니라 설득을 포기했기 때문이지만.
즉 출격작전 자체가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히로히토도 "해군이 항공작전 말고 수상함 작전은 안 하느냐"며 은근히 부추겼다. '''천황께서 이러시는데 누가 감히 반대하겠느냐 말이다.'''
그래도 제대로 된 작전이라도 세웠다면 좀 나았을 것이지만 '''하필 운용자가 일본군이라서''' 그저 닥치고 적이 진을 치고 있는 오키나와로 '''반자이 어택'''을 해버린 것. ''''''[100]
그리고 해전 결과는 미군은 전사·실종자 총 13명인데 비해, 일본군은 야마토와 기타 함정을 합쳐서 총 4,044명 전사. '''겨우 비행기 13대와 13명의 적군을 4,044명의 군인과 세계 최대의 전함 1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4척하고 바꿔먹은 거다!''' 구축함 1척만 격침되어도 비행기 13대보다 더 손해인데 이건 도대체 얼마나 손해 본 건지 계산도 못 할 지경.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미군의 공격을 얻어맞기만 하다가 죽었으니 연합함대의 체면은 완전히 망가진 셈. 일본 제국의 높으신 분들은 만족했을지 몰라도...
어차피 살아 남았어도 구레 군항 공습 등 공습으로 격침당했거나, 미군에게 노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제국의 수뇌부들로선 '''USS 야마토'''를 보고 싶진 않았을 테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작전도 안 세우고 야마토를 사지로 내보낸 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었다.
물론, 야마토 입장에서는 USS 야마토가 되는 것이 더 이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었다면 거대한 야마토를 박물관의 모습으로 현대에서도 볼 수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최대 수훈함이라고 할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도 해체되어서 사라진 현실에서 박물관으로 남을지는 미지수, 2차 대전후 오퍼레이션 크로스로드에서 많은 함선들이 최후를 맞이한 것을 감안하면 특히나 더 그렇다.

6.8.2. 미국


미국 해군 입장에서 야마토는 무조건 격침시켜야 할 적이었다. '''세계 최대의 전함이자 일본 해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미 해군 항공대의 사정도 한몫을 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항공모함 전단을 유지하려면 '''항공모함이 전함보다 세다'''는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사시의 경우도 잠수함에게 격침되었다는 설이 나돌 정도였으므로, 항모의 가치를 보여주려면 일본군의 1급 전함을 함재기로 격침시켜야 했다.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쟁이 끝나면 국방예산이 축소될 것이므로 이런 어필은 꼭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야마토가 출격하자, 미 해군 항공대는 야마토를 침몰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결국 야마토를 격침시켰다. 세계 최대의 전함도 격침시키고 항모전단의 가치 어필도 했으며 피해도 매우 적었으니 미 해군에게 야마토는 엄청난 선물 보따리였다.[101]

6.9. 야마토급의 전과


1번함 야마토의 확실한 전과는 사마르 해전에서 구축함 1척 공동대파에 불과하다. 이설이 있는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와 구축함 호엘 공동격침을 포함시킨다 해도 확실한 전과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거기에 구축함에게 쫓겨서 도망가는 바람에 작전을 말아먹은 건 분명한 사실이고, 그 덕분에 다큐멘터리 <실전최강 전투기대전 시즌1 야마토 전함과 세기의 공중전>에서도 "야마토에겐 아무런 영예도 없었다"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래도 대공포로 적기를 격추한 전과는 '''약간''' 있다. 레이테만 해전에서 야마토와 무사시가 수량 미상의 적기를 격추했다고 한다. 그리고 야마토의 최후 전투에서는 실제로 격추한 대수는 불명이며, 미군의 피해는 일본군 함선의 대공포화에 비행기 5대가 격추, 52대가 손상을 입어 그중 5대가 수리불능으로 버려지고, 2대가 해상에 불시착, 1대가 가던 중 원인불명으로 추락하여 총 '''13대'''를 손실했으며, 인명피해는 전사·실종자 총 '''13명'''이었다.
2번함 무사시는 레이테만 해전에서 일부러 타 함선과 조금 다른 색을 도색해서 미군의 화력을 끌어오는 '''탱킹''' 역할을 수행하다가 방어력을 상회하는 집중 공격을 맞이해서 폭탄과 어뢰를 신나게 얻어먹고는 '''포격전에 참가하기 한참 전에 격침당한 상태'''였다. 그래도 무사시가 입은 피해는 어뢰 20발, 폭탄 17발 혹은 어뢰 10발, 폭탄 16발 명중으로 추정되어 단일함에게 이정도의 맹공이 퍼부어진 경우는 적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탱커로서의 역할은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대함 전과은 더 안습해서 마지막 전투말고는 전투에 참여한 전과가 없다.
3번함 시나노는 야마토, 무사시보다 안습했다. 이쪽은 아직 미완성인데다가 항공모함 부족으로 인해 항공모함으로 개장했고 그마저도 본격적으로 참전하기 전에 마무리 공정과 함재기의 인수를 위해 구레항으로 가던 중 상황 오판과 불운이 겹쳐 울프팩이라 불리는 잠수함 전대도 아닌 단 한 척의 잠수함에게 걸려서 단 어뢰 네 발을 맞고 용궁으로 갔다.

6.10. 번외편: 과달카날 해전에 불참한 이유


카도쿠라 소우지 중장[102]

: 연합함대에는 아직 무츠도 있고 나가토도 있고 세계 제일의 위용을 자랑하는 이 야마토도 있다. '''그렇다면!''' 대함거포를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쓰겠는가?

우가키 마토메 중장 : 하지만, 카도쿠라...

카도쿠라 : 전 함을 동원해 최후의 총공격을 걸어야 할 때가 아닌가?

구로시마 가메토 대좌 : 카도쿠라 사령관, 죄송합니다만 저희들도 그러고 싶습니다.

카도쿠라 : 왜 안 하는가?

구로시마 : 하지만...

카도쿠라 : 하지만, '''뭔가!'''

우가키 : 사실은... '''기름이 없다...'''

카도쿠라 : ...(말없이 자리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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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에서 나오는 대사. 영상

야마토는 과달카날 해전에 참가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트럭 섬까지 내려와서 대기중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함 히에이가 미국 구축함들에게 기관포로 두들겨맞거나 기리시마가 전함 워싱턴에게 격침당하는 상황에서도 연료 부족 등을 핑계로 손가락 빨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의 영상이나 일본군의 핑계와는 달리 실제로는 미드웨이 등지에서 큰 손실을 입기는 했으나 무츠가 굉침하기 이전의 과달카날 해전의 이전시점에서는 아직 일본이 확보한 유정들과 연결되는 수송라인은 무사히 가동되고 있는데다 비축 물자들도 남아있던 상황으로 넉넉하진 않아도 물자가 부족하다고 전함을 전선에 내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야마토를 그런 하찮은 싸움에 내보내면 연합함대 체면이 깎인다'''는 게 이유.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독일 해군은 최신예 전함인 비스마르크를 그런 사소한 임무에 투입하여 순양전함 후드를 격침시키고, 신예함인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중파시키며 영국 해군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물론 그 뒤에 뭇매맞고 가라앉았지만 적어도 용감하게 전투해 공을 세운 뒤의 일이므로 야마토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103]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저렇게 댄 핑계인 연료가 부족했던 원인 중 하나가 해군과 육군 사이의 알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정부가 산업체를 통제하거나 직접 석유를 뽑아올려서 정제한 뒤 육군과 해군에 분배하겠지만,[104] 일본군은 정부의 통제를 받지않고 해군과 육군은 견원지간이라는 사정 때문에 이는 불가능했다. 덕분에 일본군에서는 해군과 육군이 각각 따로따로 유전을 배분받아서 제각기 직접 석유를 정유해서 쓰고 있었으며, 원유나 정유소를 공유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해도 심각했을 석유 부족이 훨씬 더 심각해졌다. 과달카날 해전 당시에도 일본 해군이 배정받은 인도네시아의 유전들은 정유시설이 이미 파괴된 상태였고 육군의 정유시설도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기껏 배정받은 유전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105]
야마토가 출격도 안 했는데 기름이 없는 이유는 과달카날에서 작전하는 다른 함들에게 일단 자신의 연료를 보급 해줬는데 위의 이유 때문에 야마토가 그 후에 연료를 보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야마토의 정규 최고속도가 27노트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과달카날 해역으로 출동하는 일본 전투함대의 속도는 라바울에서 과달카날 섬까지 평균 30노트였으니, 만약 야마토가 과달카날로 진출했다면 그 3노트나 느린 속도 때문에 항해 도중에 함대 자체가 미군 항공부대의 등쌀에 시달리다가 과달카날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라바울이나 트럭 섬으로 회항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 1930년대 초반에 야마토급의 제원을 정하는 과정에서 20만 마력/30노트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다가 그만한 속도는 앞서 설명했듯이 배수량 폭증과 과도한 비용 문제로 기각당했다는 점에서 만약 20만 마력/30노트가 야마토의 기관과 속력으로 채용되었다면, 야마토는 과달카날 해역에서 보다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미국의 경우 야마토와 속력이 비슷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타를 적극적으로 쓴 점을 들어 야마토가 해상호텔로 있었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군의 함대결전사상의 문제도 있지만 동 해역의 제공권 문제도 컸다. 당시 과달카날은 제공권을 활용할 수 있는 낮에는 미국이, 항공기 활동이 제한되는 야간엔 야전에 목매던 일본 제국이 제해권을 지니고 있었다. 30노트의 빠른 속력을 가진 공고급이 아니면 해가 뜨기 전까지 작전을 마치고 돌아오기가 상당히 버거웠다. 반대로 만일 일본군이 제공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면 미국 역시도 전함을 쉽게 투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함대결전사상과 점감요격작전에 근거한 축차투입으로 제공권 상실을 자초한 것이 바로 일본군 자신들이었다는 것. 점감요격작전이 상정한 대로 본토 방위전이었다면 침공군의 항공전력을 일본의 항모전력으로 소모시킨 상황에서 주력 전함부대는 본토의 기지항공대의 지원 하에서 싸울 수 있지만(실제로 과달카날 전역 당시 미국의 항모전력은 일시적으로 마비상태에 빠졌다)2차대전에서 실제 벌어진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에서 점감요격작전식으로 함대를 운용한 결과 정작 전함이 투입될 차례에는 상대방 육상비행장의 제공권이 건재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대전 전반기의 연합함대 사령장관이 항공주병론자/전함무용주의자의 대표격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임에도 항모를 보조전력으로 간주하고 전함은 아끼는 이런 모습에서 실제 가장 큰 문제는 '''수뇌부들의 보신주의'''였다는 주장[106]마저 있다. 이런 문제는 야마모토의 후임들도 여전해서, 레이테 만 해전 한 달 전 연합함대 사령부는 함대결전을 지휘한다는 명목조차도 내팽개친 채 사령부를 육상으로 이동시킨다는 명목하에 본토로 도주, 사령부가 본토로 도망치는 와중에 미군 수송선단과 동귀어진하라는 명령을 받은 함대의 사기는 높지 못했고 사령부의 작전목적을 명확하게 이해시키는 것에도 실패, 레이테 만 해전은 처참한 실패로 끝난다. 그나마 항공모함을 기함으로 삼고 전함을 그 호위로 돌릴 개념은 있었던 오자와 지사부로가 최후의 사령장관이 되었을 때는 이미 지휘할 함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연료나 속도보다도 심각한 문제로 야마토가 함대결전사상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서 운용되고 있었다는 점이 있다. 함대결전사상에서는 한 번의 중요한 결전으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수리해 가면서 계속 운용하기 위한 예비부품을 준비할 필요가 별로 없다. 게다가 야마토의 경우에는 최대급의 전함이라는 특성상 부품 제조 자체가 상당한 난이도와 시간 및 정성이 필요한 문제점까지 있다. 그 결과 주포와 같은 일부 중요한 부품은 전투중 소모 혹은 파손시 즉시 교체할 예비부품량이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107] 즉, '''함부로 해전에서 굴리다가 약간의 파손이 발생하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부품 수급문제로 상당기간 전력에서 이탈해버린다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마토는 1회용 전함'''이란 말도 있다.

7. 평가


카탈로그상 전투력은 매우 우수했고 실질적인 전투력도 나름대로 우수했으며 일부는 선진적이라 볼 만한 영역도 있었지만, 야마토급의 가장 큰 문제는 당시 국가예산의 1%를 사용해 한 척당 현대 기준으로 1조 엔이나 들어간 전함이면서 정작 '''한심한 운용'''[108]으로 인해 실전에 참가할 기회 자체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구축함한테 쫓겨 달아나는 막장 행각을 보여주고 말았다. 그 결과 위에 있는 '야마토급의 전과' 항목에 나오듯이 실적이 정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사상적으로는 구일본군하면 해군, 그리고 '야마토'하면 그 해군의 상징이었던 만큼, 당시 피해를 입었던 동아시아 주변국들은 야마토란 이름 자체와 그를 이용하는 행위를 일본 극우와 연결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당시 일본 해군에서 가장 유명한 전함은 나가토라는 게 함정. 실제로 야마토는 당시 일본 제국 내에서 야마토와 그 자매함의 수병들을 제외하고는[109] 해군의 일부 고위층 인사들만 알고 있었을 정도로 존재가 감춰졌으며, 본토에서 가장 유명했던 전함들은 나가토급 전함의 두 자매함 나가토, 무츠였다.[110]

7.1. 자국 군함들과의 비교


전설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에 있는 '비교대상' 항목에 일본군의 수훈함들이 기재되어 있으니 참조하자. 물론 야마토는 수훈이 없고 이름만 유명하다는 이유로 무수훈함 항목에 기재되어 있다. 구축함이나 순양함들까지 비교하기에는 이 항목의 여백이 좁으므로 전함과 항공모함만 기재했다.

7.1.1. 일본군 전함


솜방망이 화력과 종이장갑이라고 놀림받았지만 애초에 공고급의 태생이 순양전함이라 어쩔 수 없는 면도 있고, 일본 전함 중 가장 오래된 배이므로 변명거리는 있다. 게다가 아낄 필요가 없는 구식이라 전함이 필요한 수많은 전장에 호위함 겸 전투함으로 부름받았고 전함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적과 싸우다 최후를 맞이했다. 격침 전과는 많지 않지만 매일매일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덕에 일본 해군 전함 중에서는 최고의 수훈함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가장 높이 평가받는 건 1번함 공고이며, 구레 군항 공습까지 살아남은 하루나, 과달카날에서 미군과 포격전 끝에 가라앉은 히에이와 기리시마도 나름대로 전공은 있다.
1차대전 중반에 만들어진(1915년) 구형전함인지라 2차대전 때는 해전을 치를 능력이 부족해서 훈련함으로 쓰던 물건이었고 전공도 없지만,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 수적, 질적으로 압도적인 미군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임무를 수행하다 격침되면서 장렬히 산화하였기에, 야마토와 크게 비교되는 수훈함이라 할 수 있다.
함령 자체가 오래된데다가 항공전함으로 개조되면서 함재기를 지급받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래도 레이테 만 해전에서 오자와 함대에 소속되어 미끼 노릇을 하기도 했고, 북호 작전에서 물자 수송에 성공하기도 했다. 전함의 전과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하지만, 주어진 임무를 최대한 수행하고 소기의 목적도 충분히 달성하였기에, 야마토에 비하면 변명거리는 있다.
위의 구식전함들과 달리 일본군 내부 기준으로는 당시에도 쓸만한 물건이었다는 이유로 야마토급과 흡사하게 함대결전 교리에 의해 아껴지기만 하다가 보니 실적이 없다. 무츠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 출전했다가 너무 느려서 낙오되었고, 나가토는 야마토와 함께 레이테 만 해전에 출전했다가 미군 구축함 히어만에게 쫓겨 사이좋게 도주한 게 전부다. 그래도 '나가토와 무츠는 나라의 자랑'이라고 당대 일본 본토의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기는 했기에, 얼굴마담 역할이라도 착실하게 해 낸 것이 야마토와 비교되는 부분. 인지도부터 군부의 일부 고위 인사들만 알고 있었으며 일반 대중들은 존재의 여부조차 모르던 야마토급과 비교하기엔 문제가 많다. 야마토가 없었으면 나가토가 체면차리기 오키나와행을 해야 했을 지도.

7.1.2. 항공모함


일본군 항공모함 중에서도 전과 제로의 안습한 함들이 많이 있기는 해도, 최소한 주력 항공모함들은 야마토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전공을 올렸다.
설계 오류는 많았지만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엔터프라이즈와 전장에서 몇 번이고 맞붙었고 미국의 수호신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맹활약하며 미국 해군의 제1급 공격목표되기까지 했던 일본군 최고의 수훈함이다. 일본에서는 아카기와 카가를 더 높이 치고 있지만, 미국에선 쇼카쿠급을 일본 해군 최고의 수훈함으로 본다.
카가와 함께 일본에서는 최고의 수훈함으로 여겨지는 항공모함으로, 진주만 공습의 주역이자 전쟁 초기에 무적이었던 나구모 함대의 기함이다. 전간기에는 예산을 엄청나게 퍼먹는 걸로 유명했지만, 돈 값은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 나구모 함대의 수반함인 카가, 소류, 히류도 나름대로 수훈함 반열에 들어간다.
  • 히요급 항공모함 준요
원래 귀빈용 호화여객선으로 건조된 진짜 해상 호텔이었다가 항공모함으로 개조된 개장항공모함으로,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그 엔터프라이즈를 중파시키고 자매함 호넷을 격침시키는 대활약을 펼쳤으며 수많은 작전에 참가했고,[111]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
제대로 된 함교도 세울 수 없는 결함품이었지만,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격침될 때까지 쉬지 않고 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공을 올렸다.
경항공모함에 불과했지만, 과달카날에서 레이테 만 해전까지 쇼카쿠급과 동행하며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고, 레이테 만 해전에서 즈이카쿠와 함께 미끼임무를 성공시키고 침몰했다.

7.2. 타국 전함과의 전과 비교


이 문단에선 같은 2차대전 기간에 활동했던 야마토가 속했던 일본이 상대했던 적국인 미국과 영국의 전함, 동맹국인 독일의 전함, 그리고 소련의 전함들의 활동과 전과를 비교 해 보도록 한다.

7.2.1. 영국 해군


영국 해군의 전함들은 '''전쟁 기간 내내 쉴 시간도 없이 활약했다.'''
킹 조지 5세급 전함이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대서양, 태평양을 오가며 여기 저기서 활약을 했다. 킹 조지 5세급의 듀크 오브 요크는 수송선단을 호위하던 도중 독일 전함 샤른호르스트를 격침(노스 케이프 해전)시켰고 퀸 엘리자베스급 워스파이트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해군 최고의 수훈함'''이다. 넬슨급 전함도 기대치보단 못하지만, 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활약하는 등 다양한 전장에 참가했다. 너무 부려먹어서 전쟁이 끝났을 때는 기관부가 파열 직전에 이를 지경이었다.[112] 그나마 리벤지급 전함이 별 활약은 없었지만 리벤지급은 1917년에 나온 전함[113]이라 2차대전 때는 이미 노인. 비교를 한다면 리벤지급보다 더 오래됐지만 활약을 펼친 퀸 엘리자베스급과 비교를 해야 할 것이다. 다만 라밀리즈의 경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활약을 한 적이 있다.
순양전함으로 가면 리나운급 순양전함은 비스마르크 추격전에도 참여한 바 있으며, 리나운은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의 기습에 수송선단을 지켜낸 바 있다. 어드미럴급 순양전함은 두말 할 것 없이, '''모두가 잘 아는 그 순양전함 HMS 후드다.'''[114]
그나마 야마토급과 비슷한 함생을 살다 간 배가 뱅가드로, 뱅가드는 취역하고 나니 이미 전쟁은 끝났고, 경제는 엉망인지라 실전에 나서지도 못한 채 왕실 요트라는 전함으로선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성능은 구형 15인치 포라는 부족한 공격력과 KGV보다 1인치 준 장갑, 길어진 선체로 인해 방어력이 뛰어나다 보긴 어려운 등 좋다고 보긴 어려웠으며, 함생은 앞서 서술되다 시피 '''왕실 요트'''라는 전함으로선 좋다보기에는 어려운 별명이 붙고 어영부영 살다가 1959년에 매각 후 해체되는 함선이라... 물론 뱅가드의 경우에는 애초에 전선에 투입될만한 전쟁 자체가 없었으니 비교하기 적절한 대상은 아니다. 뱅가드가 성과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전후 국왕 일가를 태우고 해외를 순방하며 국왕 일가가 정치, 외교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합동 군사훈련을 하거나 저물어가는 영국 해군의 마지막 위용을 보여주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사실 영국 전함들의 활약은 야마토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노르웨이에서 독일 수상함대 절반 가까이를 박살내고 추축국 해군의 악몽으로 군림한 워스파이트를 제쳐두고라도, 다른 전함들도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며 성실하게 전공을 쌓았으니 구축함에게 쫓겨난 야마토와는 수준이 다르다.
그나마 일본군의 삽질과 비교될 만한 사례는 비스마르크 추격전의 결정타가 함재기의 뇌격이었음에도 말레이 해전에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를 '''항공 호위없이 파견했다가''' 말아먹은 것 정도. [115]

7.2.2. 미국 해군



7.2.2.1. 구형 전함 및 표준형 전함

와이오밍급 전함 아칸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에 화력지원을 하는 등 활발한 활약을 펼쳤고, 태평양에선 오키나와 전투 등에도 활동을 했다. 뉴욕급 전함도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며 화력지원을 했고, 네바다급 전함은 진주만 공습에 대파하는 피해를 입어 네바다만 살아남았지만, 마찬가지로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화력지원으로 할일을 했고,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펜실베이니아는 태평양에서 일본군의 후소급 전함 야마시로를 다른 전함들과 함께 다구리쳐서 격침시키며 자매의 복수를 했다.
뉴멕시코급 전함은 속도 문제로 호위항모와 함께 다니며 섬에 짱박힌 일본군들을 포격하는 활동을 했으며[116] 테네시급 전함 테네시, 캘리포니아는 펜실베이니아등 다른 전함들과 함께 야마시로를 격침시키고 이오지마, 오키나와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 콜로라도급 전함도 야마시로 격침에 함께 했으며, 이오지마 등지에서 활동했다.

7.2.2.2. 고속전함

  •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워싱턴이 대서양에서 티르피츠 잡겠다고 나섰다가 호위해야 했던 PQ-17 선단이 탈탈 털린 추태를 보이긴 했지만,[117] 태평양에서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초탄부터 협차에 성공하며 7분 만에 기리시마를 격침하는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노스 캐롤라이나급 자체가 14인치급 전함으로 설계되어 대응방어도 14인치가 한계이나, 일본의 급작스런 조약 탈퇴로 16인치로 업건된 물건이라 방어가 공격에 비해 부실해 일본군의 나가토급 전함이나 야마토급 전함을 만나면 매우 큰 타격을 입을수 있었으나 둘 다 항구에서 놀던 덕분에(...) 이미 구식으로 전락한 공고급 순양전함들을 상대로 무쌍을 펼치고 다녔다.
  •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덩치에 비해 엄청난 떡장으로 최소 26발은 넘는 포격을 받았음에도 14인치 포탄 1발만이 피해를 줄 수 있었고 그나마도 16인치 대응장갑을 지닌 사우스다코타엔 큰 영향은 없었으며, 미국 전함 중 최초로 일본 본토 포격을 한 전함이기도 하는 등 활약을 보여줬다. 자매함인 매사추세츠는 미완성에 기능도 일부라지만 그래도 해안포의 지원을 받는 프랑스의 최신 전함인 장 바르를 포격전에서 일방적으로 박살냈다. 또한 미국의 최신예 전함답게, 덩치에 비해 대공능력이 막강해서 일본군의 함재기를 26기나 격추시키는, 수상함으로선 엄청난 격추수를 기록했다.
  • 아이오와급 전함은 크게 눈에 띄는 전과가 없지만[118][119] 33노트의 빠른 속력과 16인치 SHS의 막강한 화력을 살려 2011년까지 복역하며 할 일을 다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해군력이 나치보다 못한[120] 공산군에게 만재 약 5만 8천 톤짜리 16인치 함포를 쓰는 고속전함은 범접할수 없는 존재였고, 막대한 공포를 남겨 백선엽 장군의 일지에 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이 가장 두려워 하던 무기로 기록되기까지 했다.[121] 이후 베트남 전쟁에도 다시 한번 참전해 상륙전마다 해안가를 뒤집어놓고 다녔으며, 현대화 개수까지 받아 CIWS, 토마호크, 하푼, UAV를 장착해 야마토를 제치고[122] 인류 역사상 최강의 전함이 되어버렸다. 아이오와급의 마지막 전과는 걸프전에 참전한 것, 현대화 개수를 받은 덕분에 전함이 멀리선 미사일쏘고 가까이선 함포를 갈기는 공포스러움을 자랑했다.[123] 하지만 결국 함선이 너무 노후화 된 탓에 유지비용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퇴역해 버렸다. 추가적으로 더 개장을 해서 써먹을까 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막대한 비용 대비 효용성이 낮다고 판단되어 시행되지 않았다. 대전 중엔 적이 없던 탓에 활약할 거리가 없었고, 그냥 버리기 아쉬웠던 미군 수뇌부가 살려내 전후에도 끝까지 뽑아내고 퇴역한 케이스.

7.2.2.3. 항공모함

딱 한 척으로 요약할 수 있다. '''Enterprise vs Japan'''으로 유명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2번 함 '''CV-6 USS 엔터프라이즈''' [124]

7.2.3. 독일 해군


해군력이 취약한 독일군의 비스마르크급 전함도 성능 면에서 문제가 넘쳐나지만 그래도 연합국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었다.[125] 게다가 1번함 비스마르크는 어쨌든 적인 영국 해군과 제대로 전투를 벌여서 영국의 자존심을 격침시키고, 신예전함을 중파로 두들겨패서 패퇴시키는 괜찮은 전과를 세우며 영국의 자존심을 무참히 바다에 침몰시켰고 결국 자존심이 박살나서 분노가 극에 달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비스마르크가 성능 면에서 문제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어쨌건 적 전함을 1척을 격침시키고 신예 전함 1척을 두들겨 팼던 공적도 세웠으니 적 전함 격침은 고사하고 구축함에게 도망친 야마토보다는 높이 쳐줄 만하다.
다른 자매함 티르피츠는 전적도 없었고 더 이상 전함을 잃을 수 없다는 판단하에 노르웨이에 은신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비스마르크급 전함 1척이 북해인근에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영국과 소련의 속을 벅벅 긁어놓았다.[126] 미국도 속을 많이 썩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함대 전함 전력이 싸그리 날아간 상황에서도 신예 전함인 노스 캐롤라이나급 전함이 대서양 방면에 우선 배치될 정도로 티르피츠는 연합국의 어그로를 있는 대로 끌었다.[127]특히 소련 입장에서는 독소전쟁 때문에 미국의 랜드리스 물자가 절실했는데. 북해로 물자를 나를 때 이 티르피츠 때문에 호위함대가 빈약해져서 수송대가 유보트의 먹이가 되는 일도 빈번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PQ-17 선단 사건으로, 티르피츠가 노르웨이의 정박지를 떠났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호위함대가 이를 잡으려고 수송선단을 버리고 몰려갔고 이 틈을 노린 유보트와 독일공군의 공격에 선단은 매우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결국 미국과 영국은 대부분의 물자를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이란이나 일본의 눈치가 보이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날라야 했다.[128][129] 그리고 침몰시킬 때도 항공모함과 폭격기 등 온갖 방법으로 반년 넘게 공격을 시도하고 결국 육상의 벙커파괴용인 톨보이까지 투하한 끝에 겨우 겨우 격침시킬 정도로 티르피츠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다. '''존재 자체가 상당한 위협인 셈 이었다.''' 반면 야마토는 일본 해군의 상징인 만큼 엄청난 어그로를 끈 최우선 타겟이었긴 했지만 티르피츠 같은 전략적 가치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티르피츠처럼 수송선단이나 상륙작전에 영향을 주지도 못했고, 기껏해야 미 해군 항모전대의 전후 가치를 어필하기 위한 제물로서의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130]
'''결국 비스마르크급은 전공을 세우거나, 연합군의 보급을 방해하는 전략적 가치를 지녔었지만 야마토급은 전락적 가치조차 없어서 평가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인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도 성능으로 치면 문제가 많았고 상대도 상대였던 만큼 상황이 열악했기도 했지만 노르웨이 침공 때도 참여했고 이때 항공모함 글로리어스를 격침시킴으로서 '''전함으로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첫 사례의 주인공이기도 했으며[131] 통상파괴작전으로 5만 톤에 달하는 격침 전과를 올리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할 수 있는 한의 활동을 한 편이다. 영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할 수 있는 한에선 최대한 제 할일은 한 셈이다.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은 조약에 묶인채로 최대한의 화력을 끌어내어 1만 톤이란 배수량 안에서 전함급 화력인 11인치 3연장포를 장착하는데 성공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덕분에 방어는 내다버려서 순양함간의 포격전도 위험한 물건이지만, 통상파괴전이나 화력지원 등을 담당하며 크릭스마리네의 자존심을 다시 세워준 물건이란 걸로 충분히 할 일을 했다.
독일해군에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닌 이상 아는 이가 드문편인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도이칠란트급 전함 슐레스비히-홀스타인은 1차대전 때의 노인이던 만큼 비스마르크급이나 샤른호르스트급 같은 활약은 없었지만, 1939년, 폴란드 단치히 항의 요새를 포격함으로써 '''2차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첫 포성'''을 터트린 전함이며, 이후 몇 차례 더 포격임무에 투입되거나, 쇄빙, 기뢰부설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7.2.4. 소련 해군


해군력이 취약하기로 유명한 소련군의 구식 전함인 강구트급 전함 마라도 나름대로 전과를 올렸다.[132] 마라의 경우 러시아 발트함대의 모항인 크론슈타트 내부에 정박한 상태에서 자매함과 함께 포격 지원에 참여했다. 이전에도 폭탄 몇발을 맞긴 했으나 전함의 맷집에 그정도는 끄떡없는 수준이었고 결국 독일군은 슈투카 에이스 한스 울리히 루델을 호출했다. 루델의 활약으로 기어이 항공폭탄이 1번 주포탑에 명중, '''탄약고 유폭으로 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함수부터 전방 함교에 달하는 부분이 통째로 박살'''나는 큰 피해를 받으며 사실상 폐함이 됐지만, 항구 내부라 수심이 낮은 지역인 덕분에 어떻게든 다 가라앉지는 않고 착저. 보통 군함이라면 이 시점에서 함생을 끝마쳤겠지만 마라는 심지어 3분의 1이 박살난 그 상태로도 응급복구를 실시해 더 이상의 침수를 막고 살아있는 주포탑들을 근성으로 가동시켜 육군 포병 관측반의 좌표에 따라 포격지원을 해주며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줬다.
그렇기에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마라인데 '''야마토 따위랑은 비교할 수조차 없다.''' 가성비나 전략적 차원에서 보면 바닥도 없이 비참해진다. 항목 들어가서 보면 알겠지만 강구트급은 슈퍼 드레드노트급도 아니라 카이저마리네카이저급 전함 같은 초기형 드레드노트급으로, 러시아 혁명, 적백내전, 대숙청 같은 정신나간 파란을 겪으며 해군을 새로 만들 여력이 없었던 소련 당국이 어쩔 수 없이 당시 기준으로도 노인 학대를 한 셈인데 이를 운용한 붉은 함대 장병들의 근성 덕분에 뽕을 뽑으며 분투를 한 것이다. 야마토는 어쨋든 당대 일본이 동원 가능한 최신 기술, 물자를 총동원해서 뽑은 최신예품이었지만 마라는 2차대전 기준으로도 현대사의 생증인, 살아 있는 박물관급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둘을 직접 비교하는 거 자체가 미안해진다.
크게 조명되지는 않지만, 다른 소련군 군함들도 나름대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라와 동형함인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는 마라와 함께 크론슈타트에서 포격을 날려댔고, 마찬가지로 동형함인 파리쥐스카야 코뮤나도 세바스토폴을 방어하는 임무에 투입되어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을 향해 포격을 했었으며, 이후 케르치 반도 상륙작전에도 지원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앞서 서술된 것처럼, 강구트급 전함 자매들은 '''일본 해군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이었음에도 야마토 따위에 비교하는 자체가 모욕일 정도로 커다란 공을 세웠다.'''

7.2.5. 그 외에


이탈리아군의 리토리오급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는 활약은 못했어도 여기 저기 영국 해군을 방해하는 작전에 돌아다녔고, 리토리오는 타란토 공습에서 소드피시의 항공어뢰 3발에 착저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지만, 함대를 이끌고 약간의 손상만 입고 아군 함대의 사상자가 하나도 없이 적 순양함과 구축함 여럿을 손상 입히기도 했다.
프랑스군의 리슐리외급 전함은 워낙 순식간에 프랑스가 독일에게 털려 미국으로 도주한 바 있지만 네이밍 쉽인 리슐리외는 태평양 전선의 영국 동양함대의 일원으로서 말레이반도 탈환전에 화력 지원을 하고 일본의 항복 조인식에도 참석했으며 이후 인도차이나 전쟁에도 참전한 바 있다. 동형함 장 바르는 미완성 상태에서 미 해군 전함 메사추세스와 포격을 주고받으며 논란은 있지만 순양함 오거스타를 물리친 전공은 세운 바 있다.
물론 야마토급 전함의 전과의 부실은 야마토급 전함의 능력 자체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나 강구트급보다 전함으로서의 스펙은 훨씬 좋았음에도 당시 세계 최강 미 해군과 상대 해야했다는 점과 사용자가 일본군이라는 점이 더 문제였다. 위의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나 강구트 급 전함이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연합함대의 소속 전함이었으면 똑같이 비참한 꼴을 당했을 것이며 반대로 야마토급 전함들이 저 위의 사례에 해당되었다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결국 '''무기의 성능도 성능이지만, 쓰는 놈이 누구였냐가 가장 큰 문제였던 셈.'''

7.3. 과연 세계 최대의 삽질인가?


한줄로 요약하자면, '''진정한 의미의 해상 결전병기였지만, 시대도, 주인도 잘못 만난 비운의 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실 결국 만든 건 일본이었기에 주인을 잘못 만났다는 표현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초대형 전함에 미쳐 있었고 그나마 기술력도 어느 정도 받쳐주었던 일본이기에 세상에 탄생이라도 할 수 있었고 또 일본이어서 이러한 생을 살다가 가버린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이 배가 USS 야마토(...)였다면 그 위용을 역사에 새겼을지도 모르는 일. 물론 6·25 때도 북한을 신나게 포격하는 데에도 잘 써먹었을 것이다.

7.3.1. 필요하긴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시대를 역행하는 일본군의 흔한 삽질 사례 중 하나로 보이지만, 사실 이는 철저히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이다. 야마토가 기획되고 취역할 때까지만 해도 전함 대신 항공모함이 함대결전의 주역이 될 거라고는 일부 선각자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 야마토가 건조될 당시 동시대 여러 해군국들도 막 전간기 '해군의 휴일'이 끝나면서 신형전함을 다수 건조하고 있었다.참조 일본군이 무언가 신형전함을 건조중이라는 불확실한 정보만 입수한 미국의 대응 역시 똑같은 거함거포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었다는 걸 볼 때 최소한 당시로서는 결코 시대착오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총톤수와 건함능력에서 미국에게 압도적 열세를 보이는 일본이, 개함우월주의에 입각하여 개별 함정의 전투력을 극대화하자는 선택을 한 것은 당시로서는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133][134] 또한 결과론적으로도 7척의 항공모함과 5척의 경항공모함에서 출격한 377기[135]의 함재기 중 117기[136]가 2시간 가까이 어뢰와 폭탄을 쏟아부은 끝에 가라앉힐 수 있었던 6만 톤짜리 철 덩어리였다. 즉 상대가 미국, 그리고 운용하는 측이 일본만 아니었다면 당시 기준으로 충분히 활약할 가능성은 있던 함이었다.
물론 미국의 전쟁수행 역량이 '''고작 초대형 전함 몇 척 갖고 어떻게 해 볼 수준을 한참 넘는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부터 상당한 과실임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 물론 아주 인식이 없는것은 아니어서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고노에 수상에게 말한 것과 같이, 개전 전에는 '1년이나 1년 반은 백중지세일 수 있으나 2년이나 3년이 되면 장담할 수 없다'라는 인식은 있었다. 준비가 너무 안 된 연합군 상대로 초전에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가 그걸 잊어버린 게 문제.
하지만 야마토는 분명 대단한 함선이였고, 지금도 아이오와급과 함께, '''전함의 상징'''과도 같은 전함이다. 구축함의 주포를 능가하는 수많은 부포와 18.1인치짜리 거대한 주포. 그리고 자신의 주포도 견뎌내는 전함 특유의 장갑과 크기까지 말 그대로 '''전함의 극'''으로서, 만일 일본군이 적극적으로 야마토를 내보냈다면 함생이 달라졌을 것이다.[137] 당시 최고 위혁의 주포와 장갑을 둘렀다는 것은 그만큼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므로.
이에 더해서 2차 대전은 해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던 시기였고 일본 또한 전간기 때는 나름대로 항공전력을 중시한다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함대결전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138] 얼마 안 가서 일본 해군은 진주만 공습에서 그들이 재미를 본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미드웨이 해전부터 지옥을 맛보기 시작했고[139], 야마토 자매들 또한 그 와중에 1척씩 용궁행 관광버스를 타게 된다. 물론 야마토급의 건조시기는 여전히 해전의 패러다임이 거함거포주의인 시점이라 변명의 여지는 있다.

7.3.2. 현실은 시궁창


문제는 야마토급 전함이 강력하다고 해도 일본군 수뇌부가 야마토급을 '''5성급 호텔'''로만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여러차례 언급한 사실이지만, 만일 일본군 수뇌부가 야마토급을 진정한 주력함으로서 계속 전면에 내세워 싸우게 만들었다면 비록 완벽한 설계의 전함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위력과 장갑이 어디가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야마토의 평가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일본군에겐 야마토를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아예 없었다. 예를 들어 포격전을 몇 번만 하면 포신 수명이 다 돼서 갈아끼워야 하는데, 일본군엔 예비포신이 없다. 야마토를 전선에 내세우려면 충분한 연료를 공급해줘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데, 일본군엔 연료도 없다.[140] 충분한 예비부품도 연료도 없으니 당연히 야마토는 제대로 운용될 수가 없고, 승조원들의 훈련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후방에서 호텔 노릇이나 하다가 미군 구축함에게 쫓겨 도주하는 현실만이 남는다.
그래서 결론은? 야마토 정도의 전함을 운용하려면 충분한 보급과 정비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군엔 그런 거 없다. 아무리 강력한 전함이라도 군수지원이 안 된다면 그냥 고철일 뿐이다. 일본군이 야마토를 제대로 운용하고 싶었다면 군수지원능력을 키워야 했지만 일본군은 그러지 못했고 결과는 망했어요.
아무튼 만약 야마토가 제대로된 국가에서 제대로된 지원을 받으며 운영했다면 어찌됬든 성과는 냈을것이다. 카탈로그상 스펙은 동시대 전함중 최강이였기에 온갖 비효율의 극치를 달았던 동맹이였던 나치의 마우스 전차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141]
그러니까 '''일본이 문제다.'''

7.4. 야마토의 설계도면


설계도면이 그대로 남아서 연구자들과 애호가들에게 다대한 참고를 제공하는 비스마르크와는 달리, 야마토급은 일본이 패전후 관계된 일체의 자료를 완전히 폐기하는 바람에 설계에 참가한 사람들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자료를 복구해야만 했다는 낭설이 떠도는데, '''그럴 리가 있나?''' 야마토급의 설계도는 꽤 많은 양이 남아있다. 물론 군의 것은 폐기되었지만 건조업체 것은 대부분 남아있었고, 특히 무사시를 건조한 미쓰비시와 시나노 하청 건조를 맡은 카와사키는 미군 조사관이 오자마자 줬다. 당연히 전범 면죄 거래지만 말이다. 그런데 맥아더가 준 건 자이바츠(재벌) 해체였다. 이미 때가 늦은 격.
이를 통해 분석이 많이 되어 있다. 야마토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무사시 및 시나노급의 설계도는 더 많이 남아있고, 이를 통해 구조 분석 또한 많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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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의 장갑구조 (출처 : WARSHIP MAGAZINE 1987)
'''도면상''' 나타나는 장갑 구조 등을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초전함(超戰艦)"으로 불릴 수도 있었다. 다만, 위에 언급된 카탈로그에 나타나지 않는 각종 문제점과 안습 활약상 때문에 주로 까이는 것. 그러므로 제대로 된 국가에서 야마토급 전함을 건조하고, 상식적인 지휘부가 이 배를 운용했다면 적어도 이 정도로 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일본군 전투기 에이스들 같은 억울한 처지.

7.5. 일본인들의 야마토에 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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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현 동남쪽에 있는 구레 항에는 야마토 뮤지엄(大和ミュージアム)이 있다.[142] 여기에 위에 언급된 1/10 야마토 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갑판의 경우 실제 나무를 가공하여 제작하는 등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야마토 모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레고블럭으로 만든 구조물 중 세계 최대의 구조물도 야마토급 전함의 스케일 모형이다. 다만 이쪽은 '전쟁병기를 구현한 기록은 레고 관련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는 레고 본사 측의 입장 표명으로 인해 기네스북 등재는 하지 못했다.
지금으로선 야마토가 일본 해군의 상징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구 일본군 해군 기지가 있었던 지방의 해양박물관에는 1/10 사이즈의 거대 모형이 당당히 만들어져 있고, 전함 야마토란 이름으로 우주전함 야마토를 위시한 온갖 문화/오락 상품이 밑도 끝도 없이 나오고, 흥행하고, 또 나오고 있다. 일단 외관이 굉장히 특징적이기도 하고. 이것이 단순히 한때 '세계최대의 군함'을 굴렸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의 주장처럼 현재 일본이 정신 못차린 걸 상징하는 것인지는 완전하게 알 수 없는 일이지만….[143] 하여튼 여기까지만 보면 야마토라는 군함이 일본 국민들에게 체제 선전의 일환일지언정 여러모로 사랑 받고 관심을 받았던 군함인 것처럼 보이고, 각종 일본의 가상매체에서 일본 전함의 대표격으로 다루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일본 군부는 종전까지 야마토라는 세계 최대 전함의 존재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 야마토의 정식 배치는 진주만 공습 이후이며, 단 한 번도 관함식 등의 행사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다. 야마토에 대한 사진도 영상도 관련 보도도 일절 없었다. 이는 (일본 해군 관계자를 제외한) '''모든 일본인들이 종전까지 자국에 이런 전함이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몰랐다'''는 뜻이다.[144] 사실 이 전함은 내막을 제대로 알고나면 자랑보다는 치욕에 더 가까우니 일본 군부와 정부로서는 이 전함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싶었을 리가 없다.
야마토가 알려진 것은 전함이 침몰하고 일본이 패전하여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의해 이런 저런 자료가 공개된 것과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의 탓이 크다.''' 우주전함 야마토 당시에만 해도 '''이 전함을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하필 야마토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게 가장 큰 배였고 관계자를 알아서 도면 같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라고 밝히고 있다. 니시자키 요시노부는 "더 강하고 전과를 올린 전함도 많은데 왜 하필 침몰한 야마토냐?" 라는 질문에 "이 작품은 비극이기 때문에 침몰된 불쌍한 배를 쓴 것이다." 라고 답변한 바 있다. 그러니까 유명해서 갖다 쓴 게 아니란 것.
이 점을 생각하면 야마토가 일본 제국 해군의 상징적 존재로 여겨졌다거나, 일본 제국 신민들의 자부심이었다거나,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거나 하는 지금의 인식은 '''완전히 허황된 것'''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전함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긍정이든 부정이든 인식이 있을리가 있나. 결국 야마토는 전쟁 관련 저술가들이나 각종 매체의 재포장을 통한 '''국가 레벨의 '야마토 신성화 작업' 프로파간다'''를 통해 마치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던 듯 묘사되었을 뿐, 현실에선 존재 자체를 한참 동안 몰랐던 '아끼다 똥 된 전함'에 불과하다. 위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바 있지만, 이것은 그 당시의 일본 내의 군함들 중에서 전함들에 대한 인지도만 봐도 나가토급 전함의 자매함들의 인지도가 야마토보다 더 높았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제국에서는 '''나가토와 무츠는 일본의 자랑'''이라고까지 했을 정도로 야마토에 비해 넘사벽으로 인지도가 높았다.
실제 전쟁에선 야라레메카로 떨궈지기 바빴던 참새 비행기인 제로센도 전후문학에서 일당백이었던 무적의 전투기로 기술되고 있는데 이는 전후 패배감과 열등감에 휩싸여있던 일본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정신승리적인 작품이었다. 야마토도 이의 일환으로 망각의 저편에서 끄집어 내어 일본 사회에 대대적으로 선전해졌다고 생각할수밖에 없다. 즉 야마토가 지금처럼 유명해진건 어디까지나 전쟁 끝나고도 한참 이후의 일이고, 제로센과 마찬가지로 얄팍한 여론 선동의 결과일 뿐이었다.
일본 제국 신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전함, 국내외적으로 일본 해군을 상징했던 전함, 일본 해군의 가장 잘 알려진 전함은 '''아끼다 똥된''' 야마토가 아니라 일본 해군 최초의 16인치 드레드노트급 전함이자 야마토급이 취역할 때까지 오래도록 연합함대 기함 노릇을 했던 '''나가토'''이다. 니시자키 요시노부도 "왜 우주전함 나가토로 안 했습니까?" 라는 얘기를 지겹게 들었다고 한다.

8. 기타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만주, 북중국 지역에 세운 호텔 체인 이름이 바로 야마토 호텔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전쟁 이후 압수된 호텔 건물들은 중국에 의해 개명된 후 호텔 영업을 재개했고, 마오쩌둥 같은 중국 정치인들도 묵을 정도의 고급 호텔이었고 지금도 대부분이 당시 건물을 기반으로 영업하고 있다. 운영 시기로 보아 호텔이라는 별명은 여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담으로 일본에 실제로 무사시 료칸이 영업 중이다.#
야마토 최후의 함장을 지낸 아루가 코사쿠(有賀 幸作)는 미드웨이 해전 당시에 제4구축대 사령관을 지냈다. 참고로, 그 당시에 운명의 5분을 만들어낸 전설의 구축함 아라시가 바로 이 부대 소속이었다. 재미있는게, 미드웨이 해전 당시 코사쿠는 미드웨이해전 당시 아카기의 승무원을 구조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이 때 아카기 함장인 아오키 타이지로(靑木 秦二郞)가 자신은 함선과 함께 침몰해서 최후를 맞이하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코사쿠가 몸싸움까지 벌여가며 뜯어말려서 끝내 구조했다. 정작 이후에 코사쿠는 야마토에서 탈출을 거부하며 최후를 맞이했고, 타이지로는 살아서 돌아왔다는 황당한 이유로 왕따를 당하며 항공대 대장 직을 전전하다가 소련군에게 포로로 잡혀서 포로 생활을 한 뒤 귀국해서 더 심한 왕따를 당했다.
일본 나라현 텐리시(天理市)에 있는 오야마토 신사(大和神社)와 관계가 있었다. 오야마토 신사는 격으로는 이세신궁에 버금가는 곳이며, 야마토번에서 매우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신사였다. 야마토번의 이름을 따 야마토가 진수하자, 이름도 똑같은 오야마토 신사에서 분령을 받아 전함 안에 소형 신사를 설치했다. 야마토가 가라앉은 뒤 오야마토 신사에는 사망자 2736명을 조령사(祖靈社)에 모시고 2015년에는 전후 60년을 기려 '전함 야마토 발자취의 신사'(戦艦大和ゆかりの神社)라고 새긴 석비를 건립하였다. 크기도 일부러 2736명을 기리는 의미로 1300 x 2736 mm로 맞추었다방문기
미군 정찰기가 야마토의 함대를 발견하고는 "거대한 전함 1대와 중순양함들 및 호위함 발견" 이라고 보고한 일화가 있다. 사실은 그 중순양함은 '''나가토급 전함'''이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생겨버린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선 가까이서 본 것도 아니고 정찰기로 비행중에 본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 어려웠고, 함께 있는 다른 함선들을 통해서 상대적인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 한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기 자체도 야마토급이 전장 약 263m, 나가토급이 전장 약 225m이기 때문에 이 둘의 크기는 38m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미 해군의 함선을 예시로 들어 봐도,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뉴올리언스급 중순양함이 길이 기준으로 43m의 차이가 나고,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그보다 더 짧아서 볼티모어급과의 길이 차이가 28m밖에 되지 않았으니 '''정말로 야마토와 나가토는 전함과 중순양함 만큼의 크기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즉, 이 정찰기 조종사가 저렇게 보고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야마토가 얼마나 큰 함선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
수중에 있는 영상이 공개되었으며, 구레 항에는 야마토 뮤지엄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당시의 스펙을 본다면 분명히 세계 최강의 전함이었으나, 종전 후 아이오와급이 2000년대까지 운용되면서 현대화 개장을 받은 덕분에 최강 전함 타이틀은 뺏겼다. 뭐가 됐든 더 오래 살아서 강한 무기를 장착한 놈이 최강인 법이니. 물론 배수량만큼은 전함 중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고 기록을 유지하고 있고, 전함이라는 함종 자체가 현대전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도태되었기 때문에 이 기록이 깨질 일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설령 몬타나급이 있었어도 배수량 만큼은 몬타나급을 넘는다.[145]
야마토 뮤지엄의 안내음성에 경우 함대 컬렉션에서 야마토를 연기한 성우 타케타츠 아야나가 목소리를 녹음했다.
전쟁때 다행히 제대로 실력도 발휘해보지 못하고 침몰했고, 명색이 거대 전함이라는 녀석이 '야마토 호텔'이라고 불려질만큼 한심한 함생을 보냈던 전함이지만 우주전함 야마토를 기점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고 현재는 큼지막하고 멋들어진 생김새와 자태때문에 전 세계 밀덕이나 프라모델러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실제로 여러 스케일의 모형들이 온라인을 통해서나 모형 가게에서 거래되고있고, 큰 녀석은 길이가 1미터가 넘어가는 녀석들도 있다. 1/350 스케일의 경우 타미야에서 야마토 1944년 버전과 무사시, 천1호 작전 당시를 고증한 신금형 버전을 내놓았으며 하세가와에서는 1/450 스케일, 후지미에서는 스냅타이트 버전으로 1/700 스케일을 판매한다.

9. 매체에서의 야마토


일단 현실의 최후가 어쨌든 간에 일본 해군이 보유한 최강의 전함이었고 동시에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으니만큼 다양한 매체에서 야마토 자신, 혹은 야마토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군함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적으로든, 아군으로든 구 일본 해군이 등장하는 매체에서는 거의 대부분 적으로는 최종보스로서, 아군에게는 최종병기로서 등장하며 일본 해군이 등장하지 않는 매체에서도 제로센처럼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함선 의인화 게임중 야마토를 의인화하고 구현한 게임은 칸코레 단 한곳 뿐이라는것이다.

9.1.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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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교 바로 후방에 신형 레이더로 추정되는 장치가 세워진 것으로 보아 전자장비가 상당한 수준으로 개선된 것으로 보이고 함미 개조를 통해 헬리콥터[146]가 이착륙할 수 있는 갑판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147]

9.2. 애니메이션 & 코믹스 & 소설


  • 우주전함 야마토에 등장하는 주력함이자 주인공. 사람들에게는 야마토의 잔해를 건져다가 그걸 우주전함으로 개조했다는 설정이 퍼져있는데, 실제로는 야마토의 잔해는 두 동강나 떨어져 있는 데다가 부품으로 못 써먹을 수준으로 썩어있어 야마토의 잔해로 위장하여 그 아래에서 건조중이었다. 다른 수훈함들을 놔두고 굳이 야마토를 고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원작자인 마츠모토 레이지는 아주 간단하게 "가장 큰 전함이라서 골랐어."라고 대답했다. 상세는 야마토(우주전함 야마토) 참조.
  •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람보에서 등장한다. 남미 가상 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군부 장군이 야마토를 건져올려 현대기술로 수리해서 그 나라로 쳐들어오는데, 정부군 해군들이 아무리 펑펑 쏴도 끄덕도 안한다…. 그러나! 역시 람보 홀로 이 배 안으로 들어와 안에서부터 그야말로 먼치킨 위력을 보여주면서 차례로 때려부수고 주포 탄약을 탄약고로 집어 던져 폭발시켜 결국은 바다로 허무하게 가라앉는다. 이를 멀리서 본 반란군 장군이 "형편없는 고물덩어리 같으니라구!" 마구 화를 내자 부관이 말하기를 "그러기에 차라리 비스마르크를 꺼내오는 게 나았다니까요."[148]
물론 람보가 나타나는 시기에,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이오와급 전함들도 보통 "Katie" 라고 부르는 16인치 핵 포탄 Mk.23이라는 아이오와급 전함의 전용 핵포탄을 보유할 수 있다. 참고로 이 핵 포탄은 1953년에 개발이 시작되고 1956년에 완성되어 총 50발 정도가 제작되었다. 1발당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수준인 15~20kt 정도다. 그 다음은 안 봐도 비디오, 일단 2번 포탑만 핵포탄을 사용할 수 있지만, 아이오와급 1척당 핵포탄 3발 일제사격하면 야마토건 비스마르크건 일격필살할 수 있으니 굳이 람보에게 수고를 끼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렇게 되면 쉽겠지만 애니메이션에선 이 나라에선 미군의 지원이나 여러가지로 반대하여[149] 람보도 미국인임을 숨기고 비밀리에 활약해야 했기에 아이오와급을 미군이 지원할 수도 없었다. 해당 에피소드
  • 지팡구에서는 쿠사카와 그 부하들에 의해 탈취되어 두꺼운 장갑으로 미 함대의 포격을 받아내며 미 함대 한가운대에 파고들어 함내의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계획에 사용. 원폭의 폭발을 저지하려는 이지스함 미라이와 근거리 전투를 벌이며 측거의 같은 소소한 부분이 파손되거나 한다. 본디 미라이는 당시 세계관 기술력으로 보면 완벽한 오버 테크놀러지인 이지스 함이라는 특성상 미 해군 항공모함 와스프를 격침시킬 때처럼 장거리에서 하푼, 토마호크등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야마토를 일방적으로 무력화하여 격침시킬 수 있었다. ...가 아니고 엄밀히 따지면 핵도 없는 주제에 하푼과 토마호크로는 야마토를 격침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고한 야마토의 승조원 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150] 카도마츠 이등해좌의 판단과, 미라이의 승조원을 제외하고는 가장 미라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쿠사카의 지휘가 겹쳐 전함용 대공포탄인 3식 통상탄으로 미라이의 이지스 시스템을 파괴[151]하고 승조원들을 여럿 부상시키는 등 선전. 최종적으로 내부에 아무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미라이의 미사일에 격침당했으며, 수중에서 함선 내부의 원자폭탄이 폭발하여 잔해조차 남기지 못했다.
  • 스트라이크 위치스 2기에서는 워록의 참패와 교훈을 잊은 높으신 분들이 네우로이 코어를 박아넣어 야마토[152]네우로이로 만들었다. 다만 강제적으로 네우로이화로 만들어서 그런지 10분 정도가 한계인듯. 만재 7만톤이 넘는 야마토가 공중으로 부상하는 장면에서 밀덕들은 경악했다. 다른 네우로이들의 공격을 무시하고, 약간씩 손상을 입는 것은 네우로이의 재생력으로 보완하는 상태에서 네우로이 둥지까지 진격하여 주포 포격으로 둥지의 코어를 파괴하려 했으나, 포격 직전 네우로이에게 컨트롤을 탈취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10분이 지나도 네우로이화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미야후지 요시카가 열풍환으로 코어를 파괴한 이후 네우로이화가 해제되면서 바다로 추락했다. 극장판에서는 어떻게 된 것인지 라인강에서 포격지원을 해준다. 아무래도 어느 외딴섬에 고철덩이로 떠내려온 것을 끌고와서 복구시켰던가[153] 아니면 2번함 무사시를 투입했던 듯. 특히 야마토는 네우로이화가 풀리면서 그대로 바다에 입수되었기 때문에 2번함 무사시가 더 확률이 높다.
  • 달려라 부메랑에서는 합숙에서 이탈하여 귀당원 팀과 승부를 내다 번개에 부메랑을 반파시키고 온 강차돌과 돌진군단+토쿠다 사우르스가 버려진 구 일본군의 방공호 내부를 탐사하던중 지하로 떨어졌을때 발견했으며 이 버려진 야마토급 전함에서 유일한 감독의 DASH 01(이후 슈퍼 부메랑)과 레이스를 펼쳤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버려진 중국군 기지와 중국 전함으로 소개된다.
  • 역시 일본 해군은 강해 짤방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 몽환의 전함 야마토에서는 야마토가 야마구치 다몬의 기함으로 등장. 미군의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와 포격전을 벌여 서로 중파된다. 또한 과달카날의 헤리슨 기지를 포격한다. 그리고 이게 야마토의 활약 전부다. 이후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려는 에놀라게이를 막으려다 시나노와 함께 원자폭탄을 맞는다. 무사시는 별 활약없이 역사대로 레이테 해전에서 미군 함재기들의 공격을 받아 격침됐고, 시나노는 역사와 달리 야마토와 함께 오키나와에서 에놀라게이의 원자폭탄을 맞는다. 명색이 항공모함인데 함재기를 날리는 장면이 없다.
  • 하이스쿨 플릿에서는 요코스카 해양학원의 배로 등장했다. 단 1번함 야마토가 아니라 2번함 무사시 미사키 아케노의 친구인 모에카가 함장, 도중 만악의 근원인 RATt 덕분에 대다수 승조원이 감염, 함장을 비롯한 비감염된 인원들은 함교에 갇혀있어야 했다.
작중에서 토우마이 고교 교원함들을 개박살내고(그것도 10대 이상인 현대함인데도!) 블루 머메이드의 함선 4척충 3척을 행동불능, 1척은 엔진을 작살냈다. 결과적으로는 최종 보스. 마지막 12화에서 하레카제를 비롯한 연합팀에게 공략되어서 승무원 전원을 신나게 두들겨 패잡고 함교 인원들을 구출했다 만일 이때 막지 못했으면 육지에 엄청난 폭격을 가했을지도 모르는 일.
  • 청의 6호 만화판에서는 적 세력이 무려 잠수함으로 마개조한 뒤에 주력함으로 써먹는다. 함 대부분이 물에 차 있게 개조되어 침수가 거의 무의미하고 승조원들도 아가미가 달린 강화인간들이다. 우람한 몸집으로 해저를 누비며 주포로 어뢰를 쏘는 맛간 연출이 일품. 애니메이션판에서는 나가토로 하향되었다.
  • 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서도 배경으로 야마토가 등장한다.2분 15초부터 필리핀 해 해전 이후 방공을 강화한 사양으로 나오며 이맘때쯤 되면 구레 사람들에겐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 같다. 종전 후 스즈의 시아버지가 태우는 설계도 중에 야마토의 도면이 있었다.

  • 대체역사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 등장. 작중 연합군 함대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야마토가 고가 미네이치 제독의 기함으로 투입. 18인치 구경의 거포를 자랑하며 영국 함대의 기함 후드를 격침시키는 등 나름 활약을 하지만 후드가 격침되어서 분노한 왕립 해군의 킹 조지 5세급 전함들의 투혼에 끝내 격침되고 사령관 고가 미네이치 제독도 전사한다. 2번함 무사시는 원 역사의 티르피츠가 당했던 톨보이 폭탄을 맞고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와 함께 수장되어 전복된다. 그야말로 안습이지만 별다른 활약도 못하고 호텔 노릇이나 하다가 미 해군 함재기들의 공격에 격파된 원 역사를 생각하면 나은 최후일까...
  • 대체역사소설 대영제국 함장이 되었다에서도 등장. 역사가 바뀌어서 영국과 미국이 전쟁을 벌이고, 전쟁 중 영국의 편으로 참전한 일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전해 패전한 미국에서 뜯어온 전함 '오하이오' 설계를 야마토급에 도입해 3중 바닥과 3중 어뢰 방어 격벽을 도입하는 중방어를 보여준다. 작중 영국 해군의 인빈시블급 순양전함 3척을 나가토와 함께 상대해 단신으로 2척을 격침시키는 위엄을 보여주며 주인공 루이스 제독을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작중 최후반을 장식하는 연합군 함대와의 함대 결전에서 로열 네이비의 라이온급 전함 4척과 미 해군의 노스 캐롤라이나급 전함 2척의 집중 포격을 받아 끝까지 고전하나 끝내 1번함 야마토가 격침되고, 2번함 무사시는 미군이 오키나와를 침공하자 무려 20인치 주포를 장착하고 원 역사의 야마토와 비슷하게 옥쇄에 나서나 연합군 항공모함들의 집중 공습에 격침된다.

9.3. 게임


  • 워 썬더에서는 단독임무에서 잠시 나와 악역을 맡으나, 어뢰 한 발 맞고 침몰한다.[154]
번외로 단독임무에서 리얼리스틱 전투로하면 사용되는 어뢰는 mk.13이므로 속도를 205km/h 이하로 투하해야 정상적으로 가능하다 또한 공방 혹은 시험 비행에서도 출현하나 정해져있다.
일본 연습 비행이 패치 되어 연습 전투에서도 볼 수 있다
  • 다라이어스 2에서는 태양계를 침공한 베르서 제국의 지구 분견대중 일부가 야마토의 폐허를 활용해서 병기로 개조하는듯 한데, 지구 스테이지에서 상대하는 보스중 하나로 등장한다. 정확히는 야마토를 지고 다니는 집게 형태의 보스.
  • 캡콤의 슈팅게임인 1943에서는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미쳐 날뛰는 난이도 만큼이나 그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속편인 1943改에서도 최종보스로 등장했으나, 사기 무기인 샷건으로 인해 그 위용이 난이도가 좀 어려운 일반보스 급으로 떨어졌다..
  • 스트라이커즈 1945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일본 오카야마 스테이지 보스 키이(紀伊. 워싱턴 조약 때문에 실제로 건조되지 못한 전함에서 이름을 따왔다.)의 이름을 빌려서 등장. 키이급이 실제로 건조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해서인지 포탑배치는 딱 야마토급 전함과 판박이다.
  • 함대 컬렉션에서도 의인화되어서 등장. 고증을 살려서 연비, 수리비용, 수리시간, 자원소모량 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위엄을 증명하듯 처음부터 강력한 46㎝ 3연장포를 사용 가능한 것이 특징. 자세한 것은 각 항목 참고.
  • 중국 게임 전함소녀에서는 미드웨이 이벤트에서 심해함선 'YAMATO로 등장한 이래로 작중 공인 동네북 신세이다. 심해 야마토에게서 잘라냈다는 설정의 뿔이 제독 집무실 장식품으로 등장하고, '존재 자체가 심해 함대의 패배 플래그', '퇴근도 못하고 해적단[155]에게 얻어맞는 신세' 등의 자학 개그마저 구현되었을 정도. 다만 성능 자체는 흉악하기에 난이도 높은 스테이지에서 본격적인 적 기함으로 등장할 경우에는 쉽사리 격침시키기 어렵다. 2018년 봄 이벤트에서는 심해 무사시가 보스로 등장한다. 한편 함선소녀 버전 야마토는 다른 일본 함선소녀들의 대사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중국 서비스 5년, 일본 서비스 3년이 되는 2019년까지 구현되지 못했다.
  • 중국 게임 벽람항로에서는 아직 야마토와 무사시는 등장하지 않았으나, 월오쉽 콜라보를 통해 후술되는 프로토타입 J형 모델 이즈모가 프로젝트 함선으로 추가되었고, 3번함 시나노가 항공모함으로서 한정건조 추가되었다.
  • 마브러브의 공식 OST 미래로의 표효 PV와 얼터너티브 본편 및 TDA에서 포격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전후 미국의 도움으로 연합함대가 재건되고 BETA 대전 발발후 신규 기술로 업그레이드되어 미사일도 갖고 있다.
J형 모델이 모티브인 이즈모(A-140)는 워쉽 초창기 9티어에 등장해 일본 전함 트리의 유일하다시피한 기뢰 취급을 받았었지만, 2021년 초 기준으로 지속적인 버프가 쌓이고 쌓이면서 현재는 9티어 전함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품 전함이 되었다.
야마토의 경우 다른 함선들도 많이 추가된 상황에서도 순양함들의 화력이 엄청나게 강해서 자칫 잘못하면 전함들이 불타죽는 와중에 메타가 저격전으로 바뀌어서 여전히 쓸만한 함선이다. 18.1인치의 독보적인 구경은 일부 함선들을 제외하곤 오버매치를 보장하고 야마토의 시그마는 충분히 초장거리 저격을 할수 있는 명중률을 자랑한다. 포탑선회가 느리고 근접전에서 잘 드러나는 8각시타텔 약점때문에 근접전은 지양해야한다. 너무 근접하면 덩치도 큰데다 민첩성이 떨어지기때문에 순양함한테 불타 죽기 딱 좋다. 제작진이 18.1인치의 강력한 함포라는 야마토만의 장점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오버매치 시스템과 엄청난 사거리, 높은 명중율을 이용해 저격을 적당히 하면서 필요하다면 특유의 엄청난 어그로와 높은 체력, 약점부위를 제외한 매우 단단한 장갑을 이용해 팀의 방패가 되어주면서 승부를 봐야 하는 함선.
그리고 자매함 무사시 역시 야마토의 너프 버전으로 9티어에 등장한다. 개장 전 야마토급 고증에 맞게 대공이 빈약하며 함포회전과 장전 스펙이 고증급으로 너프되어있다. 그래도 화끈한 18.1인치 주포의 화력과 단단한 장갑은 어디 안가기 때문에 7티어를 만나면 벌레눌러죽이듯 찢어버릴 수 있고 10티어 상대로도 살짝 불리하지만 활약가능. 다만 항공모함 맛집이기 때문에 항공모함 방이라면 가급적 단독행동은 자제하자. 그리고 광고에서는 어뢰맞고 폭침당한다.[156] 여담으로 야마모토 이소로쿠 컬렉션에서 무사시와 함께 사진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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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솔 버전인 월드 오브 워쉽 레전드에서는 정규티어 위의 특별 티어인 전설 티어의 대표함선으로 등장한다. 획득은 무료로 가능하지만 기간이 2~3달은 걸린다는것이 큰 단점. 월드 오브 워쉽 레전드도 기본적인 메카니즘이 월드 오브 워쉽과 동일하기 때문에 오버매치의 유리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 월드 오브 워플레인(2.0 이전 버전)에서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더불어 추축국 진영의 대형 중장갑 타겟으로 등장한다. 파괴시 전술점수 32점을 획득하며, 상대방은 제공권의 최대 32%를 잃는다.
  • Naval Front-Line의 일본 해군 최종 종착점이다 .미 해군 아이오와급과 같이 레벨 60급의 전함이다.
  • 네이비필드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등장. 1편에서는 느린 속도와 짧은 팔 때문에 슈퍼 야마토를 향한 마지막 고비.
  • 네이비필드2에서는 11티어 전함으로 구현되었는데. 산탄이 심한데다 내구력도 동급에서 가장 떨어지지만, 강력한 공격력과 대공능력, 정찰기 7기 탑재로 커버 가능하다.
  •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 후소급의 뒤를 이어서 등장한다. 퍼시픽 일본 사이드 엔딩에서는 금문교 앞에 나타나 미국의 항복 서명을 받는 장소로 쓰인다. 위에 언급된 드라마판 높은 성의 사나이의 야마토 등장 장면을 보고 이것을 떠올린 사람도 많은 듯.
  • Naval Creed:Warships에서도 일본 전함의 상징이니 당연히 등장, 5티어 1차전함으로 나오며, 18.1인치의 화력과 사거리가 상당히 좋고 철갑이 아쉽지만 고폭 또한 좋은 전함, 슈퍼 야마토를 앞둔 마지막 고비이지만, 나크내 메타상 진짜 최종으로 치는 사람이 이따끔씩 있다, 성능이 약간 차이가 나는 색놀이 버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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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크래프트에서 그 유명한 전투순양함들의 주포인 야마토 포(Yamato Cannon)[157]의 어원이 된다. 명색이 인류 역대 최대구경의 함포였던 만큼 테란이 사용하는 무기들중 핵공격만이 범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로 등장하는데, 설정상 베헤모스 반응로 내부에서 핵폭발을 한번 일으킨 뒤 그 에너지를 통째로 에너지 덩어리로 전환하여 발포하는 무기다. 심지어 테란 연합때는 모든 전투순양함이 야마토 포를 탑재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병기.[158]
  • 판타시 스타 온라인 2에서는 업데이트된 행성 지구의 거대 레이드 보스로 등장했는데, 넷우익들이 난리를 쳤고, 개발자가 해명을 하는 등 시대를 역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끝내 함수부분의 국화문양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야마토 발표 라이브 때 유튜브 중계 라이브를 본 외국인들도 디렉터가 마약 한 사발 쳐드셨냐면서 욕을 바가지로 했다. 물론 넷우익들이 발광한 것과는 다른 의미.
세계정복자 4에서는 일본 제국의 슈퍼함선으로 등장한다.

9.4. 영화


  • 남자들의 야마토에서 등장. 당시 야마토에 탑승한 생존자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반전적인 메시지를 가지면서도 군국주의적 모습을 가져 논란을 가진 영화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현재 일본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한다. 하지만 정확한 해석으로는 군국주의 상징인 야마토가 침몰하는 모습은 일본이 그렇게 목맨 함대결전 사상의 몰락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맞다는 해석.영화에서 묘사된 야마토의 최후1영화에서 묘사된 야마토의 최후2영화에서 묘사된 야마토의 최후(앞의 1, 2가 한번에 나오는 버전. 좀 더 길다.)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 2차 세계 대전 갤러리에서도 왈가왈부가 있었는데 결론은 해상 재난 영화로 결론이 났다.
  • 후속작이라 하긴 그렇지만 비슷한 분위기의 일본 영화 아르키메데스의 대전에서도 등장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만화판의 이야기인 신형 함선 선정 사업에 대해 다루기에 잘 안 나오나,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기에 야마토가 침몰하는 5분 간의 오프닝 전투 장면과 후반의 미니어처 모형 그리고 건조되어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사열 뒤 처녀항해에 나서는 모습으로 나온다. 백미라 할 수 있는 초반 전투장면에서 야마토의 96식 25mm 고각기총은 위 남자들의 야마토에서 묘사된 것과는 달리 탄창을 장전수가 붙잡고 버티지도 않고 준수한 발사속도를 보여줘서 성능에 대한 고증이 다르고 침몰하는 모습도 차이가 많이 난다. 반면 주포인 94식 40cm 45구경장 함포에서 사용된 3식 통상탄의 대공 발사시 폭발모습은 제대로 고증했다.


10.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출처] http://tr4br.deviantart.com/art/Battleship-Yamato-colored-282490415[1] 엄청난 돈을 들여 이런 물건을 만들어봐야 더이상 쓸모가 없다는게 밝혀져 아무도 안만들기 때문에 기록이 깨질 이유도 없고 실제로도 깨지지 않는다. 아랫문단에 야마토급 한척의 건조비용을 원화 약 10조원으로 환산했는데, 이런 큰 돈을 들여 만들어봐야 함재기 몇대만 뜨면 가라앉는다(...). 그걸 몸소 입증한 것이 바로 본 문서의 야마토급 전함들이며, 야마토급이 가진 기록은 야마토급 자신이 스스로 무쓸모라는 걸 증명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는 셈.[2]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실제로 만주에서 운영하던 호텔 이름이었다.[3] 이처럼 커다란 규모로 유명하지만, 실용성은 떨어지는 애물단지를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으로 '흰 코끼리'(white elephant)가 있다.[4] 하지만 피라미드는 좀 억울한 면이 있는데,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도 겸사겸사 만들면서 홍수 시기에 농사짓지 못해 실직자가 되는 자유민들을 위한 공공근로 프로젝트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5] 다만 후소의 경우는 예외다. 후소(扶桑)는 애초에 일본의 쿠니가 아닌 일본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일본이 당시 후소급 전함에 걸었던 기대와 염원(...)을 엿볼 수 있다.[6] 항공모함인 카가 역시 원래 전함이었기 때문에 번국명을 함명으로 쓰는 것이다. 카가급 전함 문서를 참고하자.[7] 좀 크다 싶은 배는 지금도 대부분 이런 표식이 있다. 건물 안에 붙어있는 안내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8] 2차대전 시기로만 한정해보면 페이퍼 플랜상으로는 이보다 배수량이 더한 나치 독일 해군(Kriegsmarine)의 H-4X시리즈가 있었다. 페이퍼 플랜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그중 하나인 508mm 8문 또는 800mm 1문을 장비한 H-44의 경우 '''야마토의 2배에 가까운''' 14.15만 톤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이에 질세라 일본군도 '''100만 톤급''' 페이퍼 플랜을 계획했었다. 참고로 역사상 인류가 건조한 배들 중에서 가장 큰 배는 로열 더치 쉘이 주문해서 삼성중공업이 제작한 60만 톤짜리 해상 LNG 저장 선박 Prelude호이다.[9] 일본해군만 쓰는 배수량표시[10] 한화 약 '''2500억원.''' 물론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하면 '''10조원은 가뿐히 넘길''' 것이다.[11] 자매함까지하면 2억 5천만 엔이었다고 한다.[12] 여기서 3척 중 한 척인 시나노는 건조 도중 항공모함으로 개장[13] 참고로 이 형태가 월드 오브 워쉽 일본 전함 트리의 이즈모의 모티브가 되었다.[14] 문제는 연료가 많이 먹힌다는 이유로 삭감됐다.[15] 비용절감 양산형인 운류급의 건조비용이 쇼카쿠급보다 비싼 이유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시나노의 1억 4천만 엔도 이 영향을 받은 금액이고, 전쟁 이전에 건조된 야마토와 무사시의 건조비용은 그보다 조금 적은 1억 1천만 엔 정도. 참고로 존재 자체가 극비였던 군함인지라 사용내역은 4만 톤급 전함 1척과 구축함 1척의 건조비용 등으로 위장되었다.[16] 이 배의 이름에 대해서는 구 번국명 중 오와리, 미카와, 사누키 등 여러 가지 설이 오가고 있으나 전후 공개된 해군 자료 내용 중 이 111호함에 대해 당초 88함대 계획 5번째 전함에 붙여질 예정이었던 키이라는 이름을 따서 본함을 지칭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예정함명은 키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17] 전후 해군학자들이 거론하는 함명예측에 따르면 개 야마토급 및 초 야마토급에는 옛 키이급에 예정된 함명에 따라 4번함의 키이에 이은 오와리, 스루가, 오미 등의 함명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당시 일본 해군의 전통상 함명은 함선의 진수식에서 천황이 직접 명명하는 것으로 정식화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에, 야마토급 4번함 이후의 함명은 어디까지나 예정안일 뿐 정식 함명이라고는 볼 수 없다.[18] 사실 막 후소급 전함공고급 순양전함을 건조하던 영일동맹 기간에 영국은 12인치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도 넘겨준다고 했지만, 일본제국은 단점이 많으니 필요 없다며 거절하는 실책이 있었다. 물론 저 당시 빅커스 사의 12인치 포가 실제로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들었으며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이 장점만큼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초기 3연장 주포탑을 장착한 전함들의 경우 일제 사격할 때 생기는 충격파로 인해 포탄들이 너무 넓게 퍼져서 착탄 하는 문제가 일어나 해결하기 위한 개량이 있었다. 그와 반대로 2연장이기는 하지만 공고급에 채택된 14인치 포가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거절한 측면도 있기는 했다.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일본제국은 영국과의 친분을 완전히 끊고 나치독일과 동맹을 맺으며 추축국의 진영에 가담했으니 당연히 연합국, 즉 적국인 영국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쥐여준다고 해도 귀중한 주포탑 다연장화 제조기술을 줄 턱이 없고 일본제국이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영일동맹이 한창일 때는 12인치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2차대전으로 아예 서로 적국 관계가 되면서 끝.[19] 유틀란트 해전 이전에 설계된 후소급이세급은 그렇다 쳐도 전후에 착공되거나 계획된 카가급, 키이급, 아마기급까지 전훈을 반영하지 못한 설계를 한 것을 보면 3연장 주포탑 제조기술이 없어서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20] 물론 나가토급이 건조되았던 시기에 같이 건조된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도 16인치 2연장 4포탑이다. 이후에 더 신기술로 무장된 영국의 넬슨급 전함만이 저 당시 16인치 전함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3연장 포탑을 지녔다.[21] 선수 수면 아래에 불룩하게 튀어나와있는 구조물을 말한다. 파도를 부수어 물의 저항을 줄이고 속도와 연비를 향상시켜준다.[22] 나가토급은 화장실 변기조차 부족해서 함내 구석진 곳에다 볼일을 보는 수병들도 있었다고 한다.[23] 나가토급의 주포는 16인치(406mm)보다 근소하게 큰 41cm인데, 워싱턴 조약 이후로는 서류상 그냥 40cm으로만 표기했다. 포신에 각인된 四十一糎를 四十糎로 고쳐야 했다고.[24] 그 이전에 포로를 통해서 18인치 주포를 장착한 전함이 있다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레이테 만 해전에서 무사시와 야마토를 근접거리에서 목격한 후에 18인치라는 것을 확실시 했다고 한다 출처(영어) [25] 40cm에서 46cm는 15% 정도의 차이이므로 멀리서는 구경 자체를 확인하기 힘들고 겉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포신의 두께 정도고 가까이서 보더라도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에 자로 재보지 않는 이상은 정확한 구경을 알 수 없다. 그냥 똑같이 무지막지하게 큰 대포로 보일 뿐. 하지만 저 정도 구경의 차이는 위력에서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단순계산으로도 완전히 같은 구조의 포의 구경이 저정도 커진다면 탄두의 부피=중량은 1.15의 세제곱이 되어, 50% 이상 커지며 탄속도 같다고 가정할 경우 운동 에너지도 같은 비율로 증가한다. 실제 탄환에서는 동일 비율로 커지지 않지만 내부의 장약량의 경우에는 그보다 더 큰 비율로 커진다.[26] 다연장 주포를 장착한 전함들에게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런 문제는 대부분 조준장비의 개선이나 주포 및 구조물 개선으로 해결했다.[27] 아마도 40km정도로 에서의 연습사격으로 보임[28] 문서 정황상 이 기록은 실제로 문서화된 기록을 참조한 것이 아니라 야마토 침몰 당시 포술사관이었던 쿠로다 대좌의 인터뷰를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29] 전함 야마토 건조비록戦艦大和建造秘録[30] 다른 일본 전함들은 대구경 대공포로 콩고급부터 나가토급까지 예외없이 89식 대공포 8문이 전부였던 반면, 야마토급은 건조 당시 12문의 89식 대공포를 갖추었고 나중에 증설을 통해 89식 대공포를 24문까지 늘려 동시대의 미국 전함을 살짝 능가하는 수량의 대구경 대공포를 갖추었다.[31]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의 주포다.[32] 위 보고서를 보면 알겠지만 0°도 놓고 사격했다고 나온다. 주 장갑판은 경사각을 준 상태로 함선에 장착되었으며 실제 경사인 45도를 고려하면 단순 수직환산으로도 900mm대는 간단히 넘는다. 다만 실험을 위해 16인치 Mark 6 주포의 포구초속을 굉장히 낮춘 상황이었다.(새 주포의 701m/s 대 560m/s). 물론 nathan okun의 사견처럼 16인치 Mark 7 주포(아이오와급 전함의 주포)라면 영거리에서는 뚫릴 가능성이 높다. 혹시 SHS의 특성을 살려 장거리 고각 사격을 하면 경사장갑의 효과를 줄일 수 있으니 근거리 사격보다 더 유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포탄은 어쨌든 가장 에너지가 가장 많을 때는 포신에서 바로 나왔을때이다. SHS의 장거리 사격시 갑판 타격능력은 출중하지만 포탑 정면과 같은 주장갑판을 뚫기에는 좀 부족하다.[33] 지금도 니콘이라는 이름으로 카메라 제조 등 광학기기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상당히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34] 아카기나 카가, 시마카제 등 일본 함의 함교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물체들이 해먹이다.[35] 냉장고의 용량도 커서 야마토의 식료품 냉장고의 동력은 80,000kcal, 50마력의 터보식 냉동기 4대의 일부였던 데다 식료용 냉장고의 터보식 냉동기는 히타치 제품이었다고 말하는 증언도 있었다고 한다. 자매함 무사시의 경우에는 야마토에는 없는 자동주먹밥제조기가 설치되어 한 번에 주먹밥 10개씩을 자동 생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36] 야마토 침몰 당시 전사.[37] 이 당시를 다룬 쿠로야나기 테츠코의 자전적 소설 '창가의 토토' 중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보면, 시중에 기호품이 거의 나돌지 않아 캐러멜 자판기가 빈 깡통이 되어버렸다든가, 궁핍한 상황에서 음악을 했던 저자의 아버지로 하여금 전선으로 위문공연을 가면 가족에게 많은 식량이 배급 나올 거라는 제안이 온다든가, 전선으로 나가는 학교 용무원 아저씨를 송별하며 '대단한 음식' 인 구운 오징어로 연회를 한다든가 하는 부분이 나온다.[38] 인명경시 풍조를 가진 일본군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일단 부상당해 본토 및 주요 거점의 어느 정도 규모있는 병원에 입원한 장병들은 전방의 장병들보다 더 후한 대우를 받았다.[39] 당시 영국 해군도 함내 PX 운영을 해군과 계약을 맺은 민간인들을 일종의 계약직 군무원으로 고용해 해결했다.[40] 무기가 문제점이 없으면, 그건 백년이 지나도 그대로 쓰여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술 체계라든지, 기술력, 생산력 같은 시스템 분야는 계속 발전한다. 그래서 한번 나온 무기도 계속 개량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41] 더 심각한 문제는 이론상으로 기총 소사에도 관통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함재기가 사용하던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은 철갑탄을 사용할 경우 500m에서 19mm 두께의 장갑을 뚫을 수 있는데 여기에 비행속도가 더해지는데다 일본제 장갑의 강도가 미국 것보다 약하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미국 함재기가 철갑탄을 장전한 채로 가까이 접근해 기총 소사를 퍼부으면 부포탑 장갑을 뚫을 수 있다. 물론 실전에서 기총을 이용해 철갑탄을 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철갑탄을 쓴다 해도 부포탑을 뚫으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초근접거리까지 접근해야 하기에 실전에서 기총 소사에 의해 부포탑이 관통될 일은 사실상 없으나 애초에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의 부포탑이라는 물건이 고작 기총 소사 따위에도 관통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다.[42] 사실 기총 소사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기관포인데, 만약 과달카날 해전 당시 순양전함 히에이에게 발생했던 상황과 비슷하게 구축함이 바짝 접근해 기관포라도 쏘면 얄짤없이 부포탑이 관통당한다. 규격 외의 초거대 전함이 고작 기관포 따위에도 침몰할 수 있는 것이다.[43] 만약 포신만 유용하고 포탑은 새로 설계했다면 이 같은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후술할 문제점을 고려한다면 25mm가 아닌 250mm 이상의 두께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44] 야마토의 경우는 함체 중심선상에 부포가 전후방에 1개 마운트씩 있으므로 중심선상을 피하는 설계를 채택한다면 동일화력을 위한 마운트는 최초설계 기준 6개로 추가로 필요한 마운트는 2개가 된다.[45] 야마토처럼 선체 중심선상에 부포탑을 배치하는 방식의 전함으로는 리슐리외급 전함의 4번함으로 예정되었던 가스코뉴가 있다. 전방에 4연장 주포탑 1기와 부포탑 2기를 적층식으로, 후방에 주포탑과 부포탑 1기씩을 적층식으로 배치하는 설계였는데 실제 건조되지는 못하고 계획이 취소되었다.[46] 이는 타국의 모든 전함도 마찬가지이다.[47] 다른 전함들처럼 부포가 외곽에 있으면 구역 폐쇄 등의 대처에 여유가 있으나 야마토급이나 리토리오급은 그렇지 않다.[48] 시부얀 해전당시 공습에 의해 격침된 2번함 무사시의 함장 이노구치 도시하라 소장이 남긴 수첩에도 대공포의 위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남아있었다. 명중한 적기가 여럿 있음에도 좀처럼 격추되는 것은 없었다고 한다.[49] 미군이 테스트한 결과 고각사격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사진, 영상 등 자료들을 볼 때 탄창탈락이 자주 일어났다고는 보기 어렵다.[50] 잘 이해가 안간다면 언더 시즈를 보자. 언더 시즈에서 스티븐 시걸이 잠수함을 박살내기 위해서 16인치 3연장포중에서 하나만 사용해서 사격했지만 토미 리 존스옹이 쭈우욱 날아가고 맨정신이 아닌데# 이거도 영화 전개를 위해서 좀 약하게 표현한 거다[51] 독일은 일본의 3식탄과 유사한 대공 유산탄을 사용했다. 그러나 결과는 3식탄과 마찬가지로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한다.[52] 사실 미국도 주포로 대공사격을 한다는 생각을 해 보기는 했다. VT신관을 이용하려 했는데, 물론 주포로 대공사격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어 검토 단계에서 취소되었다. 다만 중순양함용으로는 주포를 이용해 사격할 수 있는 대공포탄이 실제 개발되기는 했는데 이 역시 실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53] 이는 균질장갑이 아니라 표면경화장갑이며 고품질의 장갑재 제조에 필수인 니켈의 공급부족 문제로 인하여 니켈 대신 구리를 일정량 첨가하는 방법으로 부족한 니켈 성분을 대체하였기 때문이다.[54] (1.티타임으로 이해하면 쉽다. 게임처럼 의도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 2.15도 이상의 낙각을 대낙각이라고 하고 이쯤부터 갑판타격 확률이 현측타격 확률보다 높다. 20키로는 대략 17도 정도. 따라서 현측엔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거리에서 명중탄을 기록하더라도 갑판에 착탄할 가능성이 높다.[55] 야먀토의 91식, 1식 철갑탄 작약 33.85kg VS 아이오와의 Mark 8 철갑탄 작약 18.55kg[56] 실전에선 명중률이나 기동, 착탄까지의 소요시간 등의 문제로 분당 발사속도 그대로 사격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실제로도 푼타스틸로 해전에서 워스파이트가 24km에서 명중탄을 기록할 때까지의 7분 동안 13회의 salvo를 기록한 사례도 있다.-32초당 1회 사격, 교전거리 27~24km까지 영 15inch 체공시간 51초~40초대 초중반.[57] 여담으로 이 사건 당시 야마토에 가 있는 동료에게 야마토가 어뢰를 맞았을 때 리벳이 빠져서 침수가 진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무사시 생존 승조원의 증언이 있다. 두 함의 승조원 사이에는 연락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것 같다.[58] 한편 이 부분의 경우, 일본군 수뇌부에서 일부러 이 같은 문제를 의식하지 않은 면도 있다. 야마토급 전함의 건조에 참여했던 마키노 시게루 주인의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치명적인 문제점을 상부에서는 누수대책을 세우면 되며, 근본적인 설계변경은 필요없다며 넘겨버렸다고 한다.[59] 연료 보유량만 줄인 것이 아니라 '''장갑판의 두께까지 줄여 버렸다!''' 현측 주장갑은 400mm, 갑판 장갑은 190mm로 삭감한 것.[60] 만약 공사 중단 없이 건조가 진행되었을 경우 야마토 건조 경험이 피드백되면서 작업이 효율화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시나노는 진주만 공격 직후에 진수 직후 단계까지 공정이 진행되었을 것이고, 111호 함은 45%까지 공정이 진척되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설계 변경을 하지 않았다면 야마토급의 3, 4번함은 전함으로 완공되거나 아니면 항모로 전환되든 간에 전쟁 중 완성될 가능성이 컸다는 이야기.'''[61] 가령 1만 해리의 항속거리로는 구레 항에서 하와이 오하우 섬까지 보급 없이 왕복이 가능하지만 7200해리로는 보급 없이는 왕복이 불가능하다.[62] 이는 이탈리아 해군의 솔다티급 구축함과 일본 해군의 아키즈키급 구축함의 항속거리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솔다티급 구축함은 항속거리가 2200해리에 불과하지만 아키즈키급 구축함은 항속거리가 8000해리에 달한다.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해군은 자국 구축함을 딱 지중해에서 작전을 펼치고 돌아올 수 있을 만큼의 항속거리를 가지도록 설계했지만 태평양에서 원활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는 구축함도 원양 항해 능력이 뛰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본 해군은 자국 구축함의 항속거리를 상당히 길게 만든 것이다.[63] 이 구세대적 사상을 단적으로 논하면 전파로 적을 감지하게 하는 전파탐신이나 한밤중에 불을 켜고 자기 위치를 적에게 알리는 봉화나 다를 게 없으며, 차라리 그런 기계를 사용하는 대신 견시병의 시력을 올려서 적을 감지하게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랬기에 미드웨이에서의 운명의 5분을 알린 것이 항공모함 카가에 탑승하고 있던 견시병의 외침이다. '''"敵機直上、急降下! (적기 바로 위, 급강하!)"''' 문제는 이 생각을 해군만이 아니라 육군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 물론 이러한 생각은 현대에 와서 상당부분 인정되고 있기는 하다. 특히 전자전 분야에서. SEAD도 이에 기반하여 레이더를 찾아 조지는 전술이기도 하다. 대레이더 미사일도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레이더에 대항할 수단이 오로지 레이더뿐이었다는 것이 문제다. 상대의 레이더를 찾으면 뭐하나. 이쪽 견시보다 저쪽 레이더가 이쪽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른데.[64] 레이더 외에도 패시브 소나가 구상선수 부분에 장착되어 있어 이 소나를 이용해 30km 거리에서 주포탄이 착탄할 때 생기는 음파를 탐지할 수 있다.[65] 참고로 독일의 저 물건은 1936년작이다.[66] 포술가가 말하는 야마토46센치 거포의 포전전법 40-41 페이지[67] NHK,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68] 당장 위에서 언급한 조준용 측거의만 해도 새롭게 특별 제작한 물건이었다.[69] 열팽창을 줄이기 위해, 강선(총열 내부에 새기는 강선이 아니라, 금속으로 된 와이어를 말한다.)을 두르는 것)[70] 소총의 총강경에 해당한다.[71] 농담조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1941년 12월 7일에 일본 제국이 미 해군 태평양 함대의 모항인 진주만에 기습적인 공습을 가한 후 FDR이 의회에 대일선전포고를 요청하면서 한 연설, 이른바 '''치욕의 날 연설'''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저 연설이 나오고 나서 의회에 상정된 전쟁참가법에 관련된 표차도 무시무시한데, 상원에서 만장일치, 하원에서 무려 388:1이라는 아예 몰표로 통과됐다. 그리고 당시에 고립주의를 고수하면서 전쟁에 끼어드는 걸 반대하던 공화당 의원들 절대 다수가 민주당 소속이던 대통령에게 충성맹세 비슷한 걸 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72] 실제로 미 해군이 항공모함과 경항공모함을 제외하고 상륙부대의 호위를 위해서 유조선, 수송선 등을 개장해서 건조한 호위항공모함의 척수만 따져도 무려 100척을 넘겼다. 게다가 그 호위항공모함들 중 한 합급에서만 무려 50척이나 나왔다는건 덤.심지어 이 함급은 생산기간으로 따지면 1주일에 한 척씩 뽑혀나왔다.[73] 이후 연합함대의 사령부는 후임 연합함대 사령장관 코가 미네이치에 의해 무사시에서 필리핀 다바오로 옮겨지지만 코가도 탑승했던 비행정이 사고로 조난되며 행방불명, 순직 처리된다.[74] 우가키 마토메, 전초록.[75] 다만 1번포탑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무사시의 침몰을 막진 못했을 것이다. 레이테만 해전 문서에서도 나와있지만, 일본군함들은 노천 혹은 포방패만 있거나 아니면 정말 마운트만 있는 대공포가 많았다. 이러다보니 전함이 포를 발사할때 마다 생기는 충격파를 고스란히 받으니 주함포를 쏠 땐 대부분 대공포반들에게 전달해 어느정도 대비를 한 후 발사하는 형식이였다. 이렇다 보니 3식탄을 쏜다면 다른 대공포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렇다면, 3식탄의 성능이 다른 대공포들보다 훨씬 좋아야 쓸 만한 것이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76] 日米全調査 決戦戦艦大和の全貌[77] 우가키 마토메, 전초록. 이 항모는 지근탄으로 기관실이 파손된 화이트 플레인즈였고 흑연은 연막살포였다.[78] 단순히 지상 기지 공격용 무장만 장착하고 있던 태피 3 호위항모들은 너무 급박해서 함재기에 지상 공격용 무장만 일부 다는 데만 성공했지 나머지는 유폭을 우려해 무장을 바다에 버리기도 했다.(물론 이 선택은 옳았고 실제로 명중탄이 있었음에도 유폭나지 않고 살아서 돌아갔다.) 함재기들을 페이크 공격 및 진짜 공격을 병행해가며 없는 어뢰도 있는 척, 없는 급강하 폭탄도 있는 척, 진짜 지상공격용 폭탄을 떨어뜨리며 싸웠다. 심지어 전함에 기관총을 쏘기도 했고 아예 탄약조차 없는 함재기조차 주변을 날아다니며 성가시게 할 정도였다. 할 수 있었다면 문고리도 던졌을 것이라는 스프레이그의 어록도 있을 정도로 급박했다.[79] 原勝洋 '日米全調査 決戦戦艦大和の全貌' 203항[80] 'The World Wonder'd: What Really Happened Off Samar' Robert Lundgren[81] Aircraft Carriers: A History of Carrier Aviation and Its Influence on World Events: 1909-1945. Potomac Books, p.434[82] Yamato (Battleship, 1941–1945) in the Battle of Leyte Gulf[83] 야마토와 나가토는 뛰어난 조함으로 어뢰를 모두 회피하긴 했지만, 양함 모두 폭탄이 명중하여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84] 경순양함의 포격이란 설도 있다.[85] 이것도 아군의 전함이 적 전함을 상대하는 와중에 끼어들어 보조하는 개념이지, 1:1로 전함과 맞짱을 뜨는 개념이 절대 아니다.[86] 이 단 한 척의 잠수함으로 단함 격침 전과 70,000t 이라는 기록은 아직도 안 깨지고 있다. 사실 이 기록은 3차 세계대전이라도 발발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다.''' 뭐 화기시험 및 개함 방어력 테스트랍시고 오만가지 무기들을 총동원해서 가라앉힌 84,000t짜리 군함은 있지만, 이건 자침이라 논외.[87] 함장의 미숙한 조치가 원인이라기엔 문제가 너무 많았다. 이유는 아래 각주를 참고하자.[88] 그나마도 그 세 척의 호위함 중 한 척은 일본군 내에서도 사신(死神)으로 이름 높은 유키카제였다...[89] 부실공사에 대해서는 시나노의 함장이 마무리 공사 예정 일정을 늦춰달라고 사령부에 진언했으나 사령부에서 이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90] 뒤에 나올 거대한 버섯구름의 주인공 되시겠다.[91] 물론 이런 식으로 고정포대 노릇을 한 전함이 있긴 하지만, 마라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인민의 적에게 1.4톤짜리 폭탄을 얻어맞아 전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럭저럭 제 몫을 톡톡히 해냈으며 각종 시설과 대공포대가 있는 자국의 군항 내부에서 고정포대가 된 것이라 야마토가 맡은 작전 같지도 않은 작전과는 거리가 많이 멀었다. 거기에 마라는 함체의 3분의 1이 박살난 상태로도 오로지 조국을 수호한다는 근성으로 레닌그라드를 수호하며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라 칭송받기까지 했으니 야마토 따위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게다가 마라는 고정포대 역할을 하기 이전에도 전공이 꽤 쌓인 군함이다.[92] 실제로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는 전후 미군에게 넘어가 성조기를 계양하고 있는 영상이 존재하며, 미군의 핵실험에 동원되어 침몰하였다.[93] 현재의 상선 역시도 펌프가 닿지 않는 바닥의 잔류 유량은 연료량으로 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는 쓸 수 없는 연료이기 때문이다. 다만 몇%, 몇톤이 못 쓰는 연료인지에 대해 정확한 기준이 있는건 아니라서, 해상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해서 선장이 서류외로 임의 보유하는 예비 연료의 의미도 있다. 한창 고유가가 천장을 치던 2011~2012년도에는 이렇게 관행적으로 없는 셈 치는 연료량까지도 박박 긁어서 선박 용선/반선시 유량을 계산하는 전문 서베이 업체들이 성행한 적도 있었다.[94] 근데 워낙 승조원이 많다보니 야마토에 실어 놓은 배급할 돈과 물자 구입비가 '''자그마치 51만 805엔, 지금 가치로 10억 엔'''이었다. 관련 4컷만화[95] 이때 미처 제독의 참모장였던 알레이 버크 제독(당시 대령)이 상관인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보낸 전문과 그 회신이 아주 유명하다. 알레이 버크 항목 참고.[96] 당시 함교 상부의 사격 지휘소의 생존자의 증언을 보면 함교밖으로 나오자 보이는 것은 바다뿐이었다고 한다. 또한 연통을 통해 해수가 유입될때 거기에 빨려들어가는 승조원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97] 화재가 탄약고로 번져 유폭했다는 설과 배가 기울면서 탄약이 쏟아져 유폭했다는 설이 있다. 다만 이때의 폭발은 2번포탑에서 발생했고, 함이 전복되는 과정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함이 전복되는 충격으로 유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98] 아무리 배와 비행기의 싸움이라고 해도 상당히 터무니가 없는 교환비인데, 전함 사우스다코타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를 호위하면서 다른 군함과 공동격추로 26대나 떨궈버리고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해 함대를 비행기로부터 보호했다. 물론 전함 사우스다코타의 경우에는 어느정도 완성된 함대원형진, 명품 대공포가 전부 갖추어져 있었던 반면에 야마토는 그중 어느것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참한 전과인건 사실. 물론 복엽기 하나도 못잡고 빌빌대다가 영 좋지 않은 곳에 어뢰를 맞아서 작전을 말아먹고 가버린 전함도 있기는 있다. 말레이 해전처럼 전함 2척을 손실하면서 항공기 6대를 격추시키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물론 말레이 해전의 경우 전함 1척은 1차 대전시 건조된 구식 전함에 별 개장도 못받은 상태임은 감안해야겠지만.[99] 불행히도 후방기총사수는 익사했다.[100] 단적인 예로 전공도 거의없고 사실상 전멸해버린 독일해군의 전함 티르피츠의 경우 북해의 외로운 여왕이라고 할 만큼 지켜줄 수상함도 없었고 공동 작전할 함도 마땅치 않아 그대로 박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독일해군은 전함이란 점을 이용해 미국의 랜드리스 물자를 운송하는 수송선들을 통상파괴작전으로 위협, 분쇄시키고 유보트와의 공동작전으로 많은 수송선들을 격침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긴 하였지만 넬슨급 전함이나 다코타급 전함 등을 대서양에 묶어놓으면서 최소한 동맹국에게 도움이라도 되었다. 여기서 언급한 넬슨도 특유의 구조와 배수량 제한으로 인해 빌빌대긴 했어도 끝까지 잘 이용하여 독일이 바다사자 작전이나 기타 영국 본토침략내지는 해전들을 꺼리게 함과 동시에 위협감을 주었으며, 하다못해 포탄 한대맞고 광침한 후드는 최소한 적군에게 위협이라도 줬지만, 야마토급 전함들은 그런것도 없이 비밀 병기라는 이유로 숨겨지며 아무런 외교적, 전략적 이득도 없이 적군의 격침기록만 늘려주었다.[101] 그렇긴 했는데, 전후 냉전 와중에도 해군에 분 군축 바람은 어쩔 수 없어서, 제독들의 반란까지 겪어야 했다. 물론 이건 공군이 홍보를 너무 잘 한 것도 있다.[102] 실존 인물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103] 사실 독일 해군으로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독일 해군 재건 프로젝트인 Z계획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 대전을 시작하면서 말아먹었고, 그나마 있는 해군은 노르웨이 침공작전 당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장갑함 그라프 쉬페는 남대서양에서 침몰당하는 등 고난의 연속이었다. 거기에 당시 히틀러가 소련을 노리고 있으니 자칫하다간 건조중인 함선들도 히틀러의 변덕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독일 해군이 보유한 최대의 전함인 비스마르크가 만약 전공을 세우고 귀환한다면 그나마 약한 독일 해군의 입지도 나아지진 않을까 하여 출격한 것. 뭐 결과는 안습하지만...[104] 실제 일본의 동맹국 나치 독일은 군수장관 슈페어가 이 일을 전담했고, 그래도 갈등이 심해지면 히틀러가 직접나서는 경우도 많았다. 미국은 전시생산국이라는 행정조직을 따로 설립해 자원 배분과 전시생산 우선권의 결정을 맡기었다.[105] 그나마 바로 쓸 수 있는 질좋은 원유를 넣고 다니다가 화를 당한 배가 다이호.[106] 御田俊一『帝国海軍はなぜ敗れたか』[107] 게다가 야마토의 주포는 위의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제작 과정이 너무 복잡한데다 포신 내구 수명도 짧았기 때문에 실사격 훈련으로도 써먹을 게 못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보통 함포로 실사격훈련을 하는데 쓰는 포탄의 수가 100발 정도는 거뜬히 넘어가는 것을 생각할 때 '''여벌 포신도 없이''' 포신 내구 수명이 200발 정도밖에 안 되는 건 치명적이다.[108] 한심한 운용도 문제지만 너무 감추려 들었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본문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것이지만, 연합군 측도 구체적인 사양을 몰랐다 뿐, 거대 전함이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를 이미 챘음에도 감추려 들었다.[109] 이 수병들조차 대부분이 자기들이 배속된 배의 사양을 모르고 있었고, 또 알고 있다 해도 외부로 발설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정도로 기밀이었다.[110] 이때문에 나가토급 전함 문서에 들어가면 알겠지만 당시 일본인들도 나가토와 무츠가 일본의 자랑이라고 생각했다[111] 엔터프라이즈가 과달카날 해전에서 설욕하지만[112] 물론 설계상으로도 조약때문에 빌빌대던 전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조국을 지키며 활약했다[113] 공고급과 차이가 몇 년 안 난다.[114] 물론 후드는 제대로 뭘 해보기도 전에 재수없게 탄약고가 털려서 죽어버린 탓에 이렇다할 전과는 없지만 호텔 노릇이나 하고 있었던 것보다야. 문제는 후드가 격침당했다는 소식에 거의 모든 영국 해군 군함들이 '''자기들 하던 임무마저 내팽개치고''' 후드를 격침시킨 비스마르크 단 한 척을 때려잡기 위해 집결했다는 거라.... 심지어 영국 총리조차 그놈을 때려잡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고까지 했을 정도.[115] 실은 프린스 오브 웨일스, 리펄스와 같이 파견 예정이었던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 인도미터블이 훈련 중 좌초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걸 수리하느라 지연된 동안에 말레이 해전이 벌어져서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가 침몰했다. 그와 별개로 영국이 일본의 전력을 만만하게 보고 방심했던 것도 있다.[116] 일명 ''' '수영장 제조기'. ''' 포격한 곳에 수영장만 한 구덩이가 생긴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117] 이는 워싱턴의 잘못이 아니라 영국 해군 지휘관의 판단 미스의 문제였다.[118] 아이오와급 중 아이오와와 뉴저지가 다른 함선과 함께하여 적 함선을 공동격침한 전과가 있었는데 아이오와가 연습순양함 1척, 뉴저지가 무장 트롤선 1척, 구축함 1척이었다.[119] 애초 아이오와가 취역할 때 즈음엔 일본 해군 자체가 괴멸한 상태라 잡을 만한 게 없기도 했다. 미군 잠수함이 잡을 게 없어서 조그마한 어선 하나 잡는데 전함 잡으려고 만든 어뢰까지 쓰는 상황이었으니...[120] 소련이 가진 가장 강력한 전함이 강구트급(개명 후 옥타브라스카야 레볼루치야급) 전함이었는데, 1차대전식 구식 전함에 포격 능력은 미군의 표준전함보다 모자란 전함이 소련 해군의 최고 전력이었다. 게다가 이런 전력을 소련이 공짜로 줄 리도 없다.[121] 실질적인 전과는 한국전쟁이라고 다를 것 없이 항공모함이 여전히 높았지만, 전과와 무관하게 적에게 각인하는 공포효과는 아이오와가 압도적이었다. 함재기 수십 대라곤 하지만 결국 함상 폭격기가 와서 폭탄 투하하고 집에 가는데 비해서, 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전장에서 대기하며 맞든 안 맞든 일단 한번 공격을 시작하면 육군 포병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지막지한 포탄이 계속 날아오면서 천지를 뒤엎는 포성과 함께 주변이 지형째로 개박살 나버리는 전함의 포격지원은 안 무서울래야 안 무서울수가 없다.[122] 물론 야마토급과 아이오와급이 직접 마주쳐서 싸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시 스펙 기준으로 어느 쪽이 더 강한지에 대해서는 밀덕들 사이에서 아직도 설전이 오가고 있다. 2차대전 해군 버전의 AK-47 VS M16과 같다고 볼 수 있을 정도.[123] 개수를 받았음에도 덩치에 비해 미사일 탑재량이 적다고 까이지만 그래도 웬만한 구축함 한척 분량의 미사일은 가지고 있다. 애초에 아이오와를 살린 목적은 미사일을 박아야지가 아니고 함포를 써먹어야지이다. 어디까지나 함포가 주무장이고, 미사일은 보조무장이다.[124] 엔터프라이즈 이후 에식스급 항공모함이 안 그래도 남은 거 없는 일본 해군의 항공전력을 압도적인 물량으로 영혼까지 탈탈 털어먹었다. 그나마도 엔터프라이즈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인 과달카날 전선 중-후반까지 현지수리도 감행하면서 버티고 있어줘서 가능한 일이었다만... CV-3 USS 세러토가는 그 때 이미 수리중이던 참이라 논외.[125] 성능이 나쁘다고 하더라도 전함의 화력과 장갑은 순양함정도로 상대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게다가 영국의 전함들은 비스마르크보다 전부 느리다는점 때문에 비스마르크가 대양으로 나와서 설치기 시작하면 영국입장에서는 대단히 곤란해질 수 있다.[126] 이는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스펙에 대해서 과대 평가가 이루어 지고 있었던 점도 한몫 했다. 비스마르크는 당시에 매우 강력한 성능을 가진 전함이라고 인식되고 있었는데, 그 동형함이 한척 더 남아있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연합군 해군에게는 위협요소가 되었던 것이다.[127] 항공모함 세력이며 전함 세력이며 전부 다 독일과는 비교도 안 될 해군력 2위의 일본 해군 앞에서 주력 함대를 날려먹은 판에 영국도 있는데 굳이 대서양 방면에 신예 전함들이 배치된 것에 이상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서양 쪽은 영국이 여러 번 삽질하며 이래저래 흔들린 것도 있고, 잠깐 놓치면 크릭스마리네가 곧장 미국 동부 해안으로 들어온다. 반면 일본은 일본 본토와 미국 본토의 사이에 지구 절반을 잡아먹는 태평양이 자리잡고, 미국 서부에 도달하려면 꼭 점령해야 하는 하와이는 미 해군 없이도 '''일본 해군 전체를 상대로 버텨낼 정도로 요새화가 완료되어 있었다.''' 추가로 둘리틀 특공대와 미드웨이 해전으로 반격도 먹였으니 시간은 좀 벌은 셈이다.[128] 소련과 일본은 45년 8월까지 불가침 조약을 유지하는 상황이라 소련 선박을 미국으로 보내 랜드리스 물자를 가져왔다. 그러나 물자의 원산지인 미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었고 소련은 일본의 동맹국인 독일과 피터지게 싸우는 중이라 엄청나게 눈치보이고 신경쓰이는 보급로였다.[129] 도착한다고 끝이 아니다. 철도가 있긴 하지만 그 광활한 소련 영토의 동부의 끝단에서 서부의 끝단으로 물자를 수송해야한다. 전선에선 당장 필요한데, 수송에는 몇 주가 걸리니 소련 입장에선 미쳐돌아버린다.[130] 티르피츠와는 다르게 야마토는 활동 해도 이미 미 해군 항공모함이 수비하고 있는 영역이고, 수비를 돌파한다 쳐도 또 하와이가 남는데, 하와이에서 날아드는 미 육군의 '''중 폭격기의 융단폭격 세례'''를 함재기 막기도 버거운 야마토의 방공능력으로 버텨야한다.[131] 야마토가 사마르 해전에서 태피3의 구축함들의 용맹한 항전에 꽁지 빠지게 내뺐던 것과 무척이나 비교되는 사례이다.[132] 마라는 후술하듯이 루프트바페의 맹공으로 함체의 3분의 1이 박살나고 포탑 4기중 2기가 가동을 중지하는 막장상황에서도 오직 '''조국을 수호한다는 근성''' 하나로 레닌그라드가 해방되기 전까지 인민의 적들에게 '''2천여 발''' 가까이 되는 인민의 불벼락을 선사해주었다. 나름대로 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마라는 적의 맹공을 말없이 버텨내며 적들이 물러나는 시점까지 포격을 멈추지 않은 '''전함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가장 훌륭히 수행한 셈이다.[133] 어떻게 보면 현재의 한국해군의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이 타국의 이지스함들보다 크고 '''과무장'''을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수 있다. 충분한 숫자를 갖추긴 힘드니 소수의 '''강력한''' 함정을 보유하자는 식.[134] 티거 전차가 이 같은 사실을 어느 정도 입증해준다. 나치 독일이 티거 전차를 적극적으로 생산해 투입한 것 역시 소련이나 미국처럼 적당한 성능의 전차를 대량생산해봤자 그 정도로는 연합군의 물량에 대응하기 곤란하니 차라리 그럴 자재로 매우 강력한 전차를 만들어 투입하는 것이 전과를 올리기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적절한 판단이었다.[135] 혹은 367기, 적 함대 상공에 도달하여 공격에 참여한 함재기는 309기.[136] 전투기 15기, 전폭기 5기, 급강하 폭격기 37기 뇌격기 60기였다고 한다.[137] 물론 반대로 더욱 일찍 손실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과는 확실히 늘어났을 것이다.[138] 1944년쯤 가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항공모함 위주로 재편하기는 하는데 그 시점서 이미 항공전력은 큰 타격을 입었고 얼마 안가서 완전히 소멸하고 만다.[139] 둘리틀 특공대의 경우 1회성 작전이었고 실질적인 전과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으므로 패스[140] 참고로 연료 문제도 문제지만, 일본 해군 함대, 특히 레이테 만 해전 당시의 함대와 본토는 거리가 너무 멀다. 이걸 감안하면 함대가 본토에 있으면 연료를 못채우고, 점령지에 있으면 탄약이나 수병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의 보급을 못 받는 것이다. 보급을 할 방법도 마땅치 않은 게, 연합군 잠수함들이 그 보급선단을 그냥 두고 보고만 있겠는가?[141] 일단 마우스는 엄청 두꺼운 장갑으로 인한 엄청난 무게 때문에 단순히 기어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 수준으로 매우 느려터졌다.그리고 그 무게 탓에 교량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무른 땅을 지날 때도 잘못 하다가는 땅속으로 전차가 가라앉는가 하면, 도로 측면에 건물이 있는 일반적인 포장도로를 지나가면 도로에 홈이 푹 파이면서 주변 건물의 유리창이 진동에 의해 몽땅 깨졌으며, 차고가 높아 기존 터널 통과가 불가능했고 정 통과하고 싶으면 포탑을 떼내야 했다.[142] 정식명칭은 "구레시 해사역사과학관"(呉市海事歴史科学館). 참고로 이곳에서 맞은편에는 퇴역한 '유시오급 잠수함이 간판이면서 옥외전시한 "해상자위대 구레 사료관"(海上自衛隊呉史料館. 애칭: 철고래관(てつくじら館))이 있다. 이곳 야마토 뮤지엄에는 입장료(일반: 500엔(약 6000원), 고등학생: 300엔(약 4000원), 초•중학생: 200엔(약 3000원))를 내야 하는 반면, 그쪽은 무료이다.[143] 실제로 야마토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에서 1/10 야마토함을 보게 되면 선미와 선교 부분에 욱일기가 장식되어있으며, 기프트샵에서도 욱일기가 그려진 텀블러나 지갑 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의 악행를 상징할 목적으로 사용한 것인지 고증 목적으로 욱일기를 사용한 것지를 따져야할 문제이지 욱일기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군국주의를 미화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욱일기는 일본의 악행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제 초창기 군대부터 태평양 전쟁기와 현재 자위대를 포괄하는 상징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 순수하게 정치적 목적으로만 쓰인 하켄크로이츠와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144] 존재 자체는 소문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다만 자세한 제원은 두 함의 수병들조차 정확히 모를 정도로 일급 기밀이었다.[145] 물론 몬타나급이 실제로 건조되었다면 아이오와급 대신 종전 후 오래 살아있었을 거고, 현대화 개수를 받았을 것이기에 배수량마저도 역전될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로 야마토급의 만재배수량은 약 72800톤, 몬타나급의 만재배수량은 설계안 기준 약 70900톤으로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애초에 실제 몬태나가 건조되어 야마토랑 포격전을 벌일 경우 현대화 개장 없이도 몬태나가 야마토를 아작냈을 가능성이 높다. 주포 화력 면에서는 16인치 SHS 열두 문의 강력한 위력을 고려한다 치더라도 태생적으로 구경이 2인치나 더 큰 야마토가 앞설지 몰라도, 레이더를 비롯한 그 외 장비들의 성능이 미군 것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포가 강해도 적을 먼저 보지 못하고, 포탄을 먼저 맞추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설령 야마토가 몬타나급과의 포격전에서 이겼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전훈을 얻은 미국은 몬타나급의 함체에 야마토와 동등한 18인치급 혹은 그보다 더 큰 함포를 제작해서 탑재하거나 기타 다른 부분을 개량하여 몬타나급의 발전형을 만들어냈을 것이고, 미국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반면 일본은 포격전에서 손상된 야마토를 고칠만한 여력이 있었는지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고, 설령 고칠 수 있었다 해도 어마어마한 수리비에 등골이 휘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야마토급만 안습.[146] 외형으로 보아서는 구 소련의 설계국 중 하나인 카모프가 제작한 Ka-27이나 Ka-32로 보인다.[147] 현실역사에서도 승전국 미국과 소련이 독일 기술자들을 포섭하여 제트기나 로켓을 개발한 사례가 있으니 저 세계관에서는 그것이 역전된 상황일수도 있다.[148] 재밌게도 실제로 야마토는 대폭발로 선체가 조각조각났으나 비스마르크는 포격전으로 치명타를 입은 뒤 중순양함의 어뢰로 마무리를 해서 선체 자체는 원형을 유지한 채 얌전하게 가라앉아 있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수백발의 주포탄을 맞아서 원형은 유지했으나 구멍투성이에 내부가 엉망이니 야마토 수준의 난이도는 아니지만 수리가 힘든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149] 극중 미국이 이전에 이 군부장군을 도와서 깽판을 돕던 일이 있어서 미국에 대하여 증오감이 크다. 정부군 장군이 되려 람보 멱살을 잡고 이 놈이 적군과 한패일지 누가 압니까? 할 정도였다ㅡ[150] 만화를 봤으면 알겠지만 와스프는 미라이를 일본군 중순양함으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항공대를 보내 격침시키려고 했다. 심지어는 돈틀리스의 폭탄까지 코앞에서 맞고 상당한 피해를 입었는데 한국인이 볼 때도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와스프를 공격할 수밖에 없는가?라고 고민한다. 와스프를 거꾸러뜨리지 않으면 미라이가 몰살당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토마호크를 사용한 이유도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 공격능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비행갑판을 정밀하게 타격하려고 한 것.[151] 대공포탄인 3식 탄의 특성상 내부에 많은 자탄(子彈)이 장탄되기 때문에 이를 일종의 산탄으로 써서 미라이의 함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혔고 그 와중에 부수적으로 외부에 노출된 이지스 시스템을 파괴했다.[152] 근데 잘 보면 함수 문양이 실제 야마토와 다르다. 국화문양이 아니라 벚꽃문양. 애초에 이 작품의 후소 황국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을 닮은 다른 나라니까.[153] 2기 마지막에 신덴 유닛과 함께 정체불명의 섬에 떠내려와있었다.[154] 침몰할때 폭발하지도 않음[155] 플레이어의 함대를 칭함[156] 광고의 나레이터가 노리기라도 한듯이 신명나는 목소리로 야마토를 뇌격하세요를 2번이나 반복하고 결국 3번째 등장에서는 얄짤없이 침몰한다.[157] 1때는 Yamato Gun이었으나 2에서 Yamato Cannon으로 변경되었다. 이나저나 대포라는 의미는 같지만.[158] 그런데 이 야마토 포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파동포가 모티브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야마토도 야마토급 전함이 모티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