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던
1. 소개
아일랜드의 前 축구 선수이다. 그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활약하였고 3 시즌 동안 팀의 주장으로서 맨체스터 시티가 EPL에서 살아남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가 팀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지는 올해의 맨체스터 시티 선수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번 연속이나 선정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아일랜드 축구대표팀 소속으로서 축구 약체에 속하는 국가대표팀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에버튼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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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9월 21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난 던은 1994년에 15살의 나이로 에버튼 유스팀에 입단하면서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1997년 초 에버튼과 5년 기간의 프로계약을 체결했고 1998년엔 토니 히버트, 리온 오스만과 함께 유스팀에서 활약하며 유스 FA컵 우승을 달성했다.
던은 조 로일 감독 휘하에서 1997년에 프로 첫 데뷔전을 치뤘지만 이후 유스팀에서 줄곧 활동했으며 뒤이어 에버튼 감독으로 부임한 월터 스미스의 지시로 라이트백 자리에서도 활동했다. 던은 에버튼에서 2000년까지 60경기를 뛰었는데 주로 라이트백 자리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2000년 여름, 던은 맨체스터 시티로 전격 이적했다.
2.2. 맨체스터 시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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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여름, 맨체스터 시티는 3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던을 전격 영입했다. 당시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다름아닌 던을 프로 데뷔시켜줬던 조 로일이었다. 던은 처음에는 에버튼 시절 처럼 라이트백 자리에서 활동했지만 나중에 센터백에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걸 파악한 수뇌부에 의해 센터백에 안착했다. 그러나 그가 이적한 2000-01 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챔피언쉽으로 강등되고 말았고 조 로일은 경질되었다. 이후 새 감독으로 부임한 케빈 키건은 그를 핵심 센터백으로 기용해줬고 그는 이에 보답해 맨체스터 시티를 한 시즌 만엔 EPL로 복귀시켰다.
이후 던은 맨체스터 시티의 핵심 센터백으로서 팀이 강등권 언저리에서나마 EPL에 잔류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그리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에 4번 연속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또한 그는 2005-06 시즌이 끝난 뒤 실뱅 디스탱이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려 하다가[1] 주장직을 박탈당함에 따라 26세의 나이로 팀의 주장이 되어 매시즌 잔류 경쟁을 하는 팀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 특히 2007-08 시즌에는 라이트백인 마이카 리차즈가 센터백으로 뛰었고[2][3] 이 때, 던과 리차즈의 센터백 조합은 꽤 훌륭한 수비를 보였었다.
그러나 던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량이 차츰 쇠퇴하는 경향을 보이다가 거대 자본이 들어온 맨체스터 시티에 적합하지 않은 선수로 분류되어 2009-10 시즌에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4] 결국 2009년 아스톤 빌라로 이적해야 했다. 그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296경기에 출전해 7골을 기록했다.[5]
2.3. 아스톤 빌라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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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여름 맨시티가 수비수 보강을 위해 콜로 투레와 졸리온 레스콧을 영입하면서 자리를 잃은 던은 그해 8월 27일 아스톤 빌라로 전격 이적했다. 던은 아스톤빌라에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95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아스톤 빌라에서 종종 안좋은 일에 연루되곤 했다. 2011년 3월 18일, 던은 제임스 콜린스와 함께 전지 훈련 도중에 음주를 즐기다가 적발당해 20만 파운드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2012년 2월 12일엔 친정팀인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 도중 맨시티 골키퍼 조 하트와 충돌해 오른쪽 빗장뼈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는 바람에 시즌을 도중에 마감하는 악재를 맞이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012-13 시즌을 통채로 날리고 말았고 2013년 여름에 자유계약 선수로 방출되었다.
2.4. QPR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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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여름, 던은 자유계약으로 QPR에 입단했다. 이후 그는 챔피언쉽에서 리그 41경기, 컵대회 4경기에 출장하며 팀을 EPL로 재진입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2014-15 시즌엔 형편없는 수비력[6] 으로 일관해 팀을 강등권에 놓이게 만들고 말았고 결국 QPR은 EPL로 올라오자마자 꼴찌로 떨어졌다. 시즌이 끝난 뒤 방출 통보를 받은 던은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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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7 유로피언 18세 이하 챔피언십 대회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아일랜드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그는 성인 대표팀 선수로서 2000년 4월 26일 그리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다. 던은 곧 아일랜드 대표팀의 핵심 센터백이 되었고 아일랜드가 2002 월드컵에서 지역 예선을 무사히 치르고 본선에 진출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는 2002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되었으나 정작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이후 던은 아일랜드 대표팀의 핵심 센터백으로서 줄곧 활약했으나 축구 약체팀인 아일랜드는 월드컵과 유로 본선 진출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유로 2012에서 아일랜드가 마침내 유로 본선에 진출함으로서, 던은 고대하던 유로 대회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하필이면 조별 예선에서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스페인과 한 조가 되는 악재를 맞이하고 말았고 결국 3전 3패로 광탈하고 말았다. 던은 2013년까지 대표팀에서 활동했고 2014년 1월 31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수상
4.1. 클럽
- 에버튼
- FA 유스컵 우승: 1998년
- 맨체스터 시티
- 챔피언십 우승: 2001-02 시즌
- 아스톤 빌라
- 풋볼 리그컵 준우승: 2009-10 시즌
- QPR
- 챔피언쉽 승격 플레이오프 우승: 2013-14 시즌
4.2. 국가대표
- UEFA 18세 이하 챔피언쉽 우승: 1998년
4.3. 개인
- PFA 올해의 팀: 2010년
- 올해의 아일랜드 국가대표 선수: 2007년, 2011년
- 맨체스터 시티 올해의 선수: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5. 여담
EPL 통산 최다 레드카드 기록자이기도 하다. 파트리크 비에라, 던컨 퍼거슨과 함께 통산 8회의 퇴장을 당했다.
또 EPL 통산 최다 자책골 기록자이다. (10골)
[1] 결국 디스탱은 그 다음 시즌에 포츠머스로 이적했다.[2] 단단한 피지컬과 헤딩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센터백이 부족해진 당시 맨시티에서 센터백으로 뛰어보게 하였고 이게 성공적이었다. 이 활약 때문에 리차즈의 전성기 시절 주요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알고 있던 사람도 많았다. [3] 참고로 두 시즌 동안 리차즈가 센터백으로 뛰었을 때 라이트백으로 뛴 선수로는 베드란 촐루카 그리고 파블로 사발레타가 있다. 사발레타도 맨시티 입단 초기에는 리차즈가 라이트백으로 뛸 때는 후보로 내려간 시절이 있었다.[4] 전 시즌에 '''뱅상 콤파니'''가 맨시티에 왔고 09-10 시즌에는 '''콜로 투레, 졸레온 레스콧'''이 맨시티에 입단했다. 콤파니가 본격적으로 주전이 된 것이 2010년이긴 하지만 그를 제외해도 투레와 레스콧이 있었기에 던이 밀릴 수 밖에 없었다.[5] 또한 EPL 역사상 가장 많은 자책골(10골)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6] 2014-15시즌 자책골 10골로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