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칼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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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매버릭스 감독'''
'''리처드 프레스턴 "릭" 칼라일
(Richard Preston "Rick" Carlisle)'''

'''생년월일'''
1959년 10월 27일
'''국적'''
미국
'''출신지'''
뉴욕 주 오그덴스버그
'''학력'''
버지니아 대학교
'''드래프트'''
1984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70번, 보스턴 셀틱스)
'''소속팀'''
보스턴 셀틱스 (1984~1987)
앨버타 패트룬스(CBA) (1987)
뉴욕 닉스 (1987~1988)
뉴저지 네츠 (1988~1989)
'''지도자'''
뉴저지 네츠 어시스턴트 코치 (1989~1994)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어시스턴트 코치 (1994~1997)
인디애나 페이서스 어시스턴트 코치 (1997~2000)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감독 (2001~2003)
인디애나 페이서스 감독 (2003~2007)
'''댈러스 매버릭스 감독 (2008~)'''
'''2002년 NBA 올해의 감독상'''
래리 브라운

'''릭 칼라일'''

그렉 포포비치
1. 개요
2. 일생
2.1. 선수시절
2.2. 지도자 시절
2.2.1.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2.2. 인디애나 페이서스
2.2.3. 댈러스 매버릭스
3. 감독 스타일
4. 여담


1. 개요


미국의 농구감독으로, 현 댈러스 매버릭스 감독이다.

2. 일생



2.1. 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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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에 메인 대학교와 버지니아 대학교를 거쳤으며, 특히 버지니아 대학교 시절 마지막 시즌인 1983-84 시즌에서 공동 주장으로 활약하면서 팀을 전국 토너먼트 Final Four(4강전)에 올려놓았으며, 12.5득점과 3.3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1984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70번이라는 낮은 픽으로 보스턴 셀틱스에 입단, 1989년에 뉴저지 네츠에서 은퇴하기까지 5년동안 그저 그런 벤치멤버로 머물러 있었다. 다만 1986년에 우승반지를 낄 수는 있었다.

2.2. 지도자 시절



2.2.1.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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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올해의 감독상 수상 당시 척 데일리와 함께 찍은 사진.
선수를 은퇴하자마자 뉴저지 네츠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하여 지도자 생활을 시작, 이곳에서 빌 피치 감독과 척 데일리 감독을 보좌하며 5년동안 활동하다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거쳐 1997년에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 이곳에서 래리 버드 감독을 보좌하면서 2000년에 팀을 파이널에 끌어올리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페이서스를 떠난 이듬해에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감독에 취임, 벤 월러스를 축으로 2000-01시즌 당시에 32승밖에 못 거뒀던 팀을 50승 이상으로 올려 리빌딩에 성공함으로써 플레이오프 컨텐더로써의 기초를 다졌지만, 2년만에 팀을 떠났다.[1]

2.2.2. 인디애나 페이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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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페이서스의 사장이자 셀틱스 시절 팀메이트였던 래리 버드의 부름을 받고 감독으로 부임, 팀의 심장인 레지 밀러가 노쇠하긴 했지만, 론 아테스트, 저메인 오닐, 알 해링턴, 제프 포스터 등이 활약함에 따라 부임 첫 시즌인 2003-04 시즌에 61승을 거두면서 대권에 다시 도전했지만, 래리 브라운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지면서 도전 실패. 그리고 밀러의 은퇴 시즌인 2004-05 시즌에 다시금 정상 도전에 나섰지만, 정규시즌 도중 론 아테스트의 돌출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최악의 난투극으로 인해 전력이 망가지면서 결국 정상 도전에 실패했고, 밀러는 은퇴했다.
밀러가 떠난 이후 팀은 재빠르게 암흑기에 돌입하였고, 제프 포스터 중심으로 팀을 재편하려고 했지만, 저메인 오닐은 부상으로 기량을 잃었고, 팀을 망친 원흉인 론 아테스트는 페자 스토야코비치와 트레이드되면서 팀을 떠났다. 새로운 팀의 구심점을 찾지 못하면서 팀은 어정쩡한 상태로 변했는데 아예 확 망해서 드래프트 1픽이라도 얻으면 좋았겠지만 인디애나는 꼭 8위에서 10위 언저리를 맴돌면서 5년동안 플레이오프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칼라일은 2006-07시즌을 끝으로 경질당한다.

2.2.3. 댈러스 매버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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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 마크 큐반과 함께.
2008년에 에이버리 존슨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 부임 첫 시즌인 2008-09 시즌에 전년도 대비 1승이 하락한 50승을 기록했지만 순위는 1위 상승한 6위로 마감했다.플레이오프에선 1라운드에 만난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무난히 격파했으나 2라운드에서 덴버 너게츠에게 패배했다.
2009-10 시즌 55승으로 서부 2위에 안착해서 다시 대권을 노려봤지만 1라운드에서 이빨 빠진줄 알았던 호랑이인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배한다. 패배 후 감독 릭 칼라일의 자질논란이 불거졌고 경질되어야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구단주 마크 큐반은 계속 릭 칼라일 체제로 가기로 결정하면서 그는 유임에 성공했다.
2010-11 시즌 시작전 에릭 뎀피어카드로 샬럿 밥캐츠로부터 타이슨 챈들러를 받아온다. FA신분이였던 더크 노비츠키도 4년간 8000만달러라는 계약을 체결하며 댈러스에 잔류하게 되었다. 시즌 개막후 영입된 타이슨 챈들러의 맹활약,그리고 노비츠키도 진지하게 MVP를 다시 한번 노려볼만한 모습을 보여주며 순항했었다. 하지만 노비츠키의 부상과 주전 스몰포워드 캐론 버틀러의 시즌아웃으로 잠깐 주춤. 하지만 노비츠키가 복귀한후엔 다시 순항중. 트레이드시장에선 별로 눈에 띄는 무브가 없었지만 바이아웃 시장에서는 토론토 랩터스와 바이아웃한 페자 스토야코비치,뉴욕 닉스와 바이아웃한 코리 브루어를 영입하며 부족하다고 평가받은 2,3번진영을 보강하였다. 올해 우승에 대한 집념을 엿볼수 있는 부분.
그리고 대망의 2010-11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만나 4-2로 승리,2라운드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를 만났지만 4-0으로 완파하고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라간다.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오클라호마시티 선더. 하지만 젊은 썬더의 패기는 댈러스 노장들의 투혼을 막을수 없었고 댈러스가 4-1로 승리, 구단 역사상 2번째 NBA 파이널에 진출한다,
파이널에서 만난 상대는 2005-06 파이널에서 댈러스에게 좌절을 맛보여준 마이애미 히트. 서부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댈러스였지만 마이애미가 동부 플레이오프에서 보여준 모습은 압도적 그 자체. 전문가들이나 여론은 모두 마이애미의 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1차전 84-92 패
2차전 95-93 승
3차전 86-88 패
4차전 86-83 승
5차전 112-103 승
6차전 105-95 승
'''우승했다.'''
첫 마이애미 2연전 원정에서 1승만 챙기면 우승할 수 있다던 릭 칼라일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파이널에서 마이애미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칼라일 감독의 적절한 전술 변화를 통해 마이애미를 공략한 것이 굉장히 컸다. 페자 스토야코비치를 3차전까지 투입했으나 공수 양면에서 완전한 구멍의 모습을 보여주자 스토야코비치 대신에 브라이언 카디널을 기용[2]한 것, 히트 선수들이 노비츠키의 픽앤팝에 대한 대처법을 찾아내자 노비츠키를 픽앤롤 공격에서 빼고 챈들러를 활용한 점[3], 4차전과 6차전에서 갑작스런 존 디펜스를 활용함으로서 경기 페이스를 다운시켜 추격의 기틀을 마련한 점, 스테거드 스크린[4]의 갑작스런 활용으로 중요한 순간에 연속적인 득점을 만들어 낸 점 등, '이게 바로 용병술이다!'를 보여주었다. 이로써 감독을 바꾸지 않고 밀고 나갔던 구단주 마크 큐반은 11년 간 그리도 소망하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되었다.[5]
2011-12 시즌에서는 서부 7위로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게 스윕당했고, 그 다음 시즌인 12-13 시즌때는 부진한 성적 때문에 승률 5할을 맞추기 전까지는 선수들이 면도를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다들 털보가 되어가고 있다. 플레이오프는 물건너갔지만 4월 14일 뉴올리언스 호네츠전에서 승리해 5할 승률은 찍어서 면도는 성공했다.(…)
2012-13 시즌에는 2001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데다 FA 대어였던 드와이트 하워드와 크리스 폴 모두 영입에 실패, 부랴부랴 센터 달렘버트 및 호세 칼데론, 몬타 엘리스와 계약을 하면서 스타팅 멤버를 재구성했지만 칼데론-엘리스 듀오는 허약한 수비력이 걱정스러운 백코트 조합인게 문제. 그러나 공격력으로 만회하면서 그들은 노비츠키-엘리스 쌍포를 앞세워 플레이오프권에서 시즌 막판까지 피닉스 선즈,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함께 살얼음판 경쟁을 계속했고, 둘 다 1위인 샌안토니오를 피하기 위해 4월 16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결과는 105-106으로 멤피스의 승리, 댈러스가 49승 33패로 8위가 되었다.
그리하여 1차전은 샌안토니오와 만났는데 탈탈 털릴거라는 예상하고는 달리 샌안토니오 특유의 물흐르는듯한 볼 움직임을 잘 저지하고, 몬타와 역전 버저비터를 성공시킨 빈스 카터, 데빈 해리스 등 가드들의 슛을 앞세워 3:3까지 잘 끌고 갔으나, 7차전에서 샌안토니오의 공격에 일방적으로 당하며 1라운드 탈락으로 플레이오프를 마쳤다. 노비츠키가 역시 나이때문에 예전같지가 않은게 아쉬웠다.
14-15 시즌, 노비츠키-몬타 엘리스 조합에서 한계가 드러나면서 50승 32패에 그쳤다. 괜찮은 성적이긴 하지만, 빡센 서부지구 중에서도 가장 박센 사우스웨스트 디비전[6]이라 리그 7번시드, 지구 순위는 4위에 불과하다. 꾸준한 성적과 트레이드로 인한 픽 유출로 장기적인 리빌딩을 추진할 여건도 안 되는지라 다시 챔피언 자리를 노리기 위해 디안드레 조던과 계약에 합의했는데, 그만 디조던이 뒤통수를 치고 클리퍼스로 돌아가버렸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결국 그 빈자리를 자자 파출리아로 땜빵하면서 15-16시즌을 준비했다.
15-16 시즌, 디조던의 통수 때문에 나락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을 뒤로 하고 1월 13일 현재 22승 16패, 서부지구 5위로 선전하고 있다. 디조던이 뛰고 있는 클리퍼스의 바로 밑. 15-16시즌 서부지구 경쟁력 약화의 덕을 본 탓도 일부 있지만 이는 다른 지구도 마찬가지이니 매버릭스의 선전에 감독의 역할이 크다고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애초 땜빵이었던 자자 파출리아 외에도 브루클린 네츠에서 용도폐기될 위기였던 데론 윌리엄스나 샤크의 남자 자베일 맥기,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역귀 취급 받았던 J.J.바레아 등이 모두 제 역할 이상을 해주고 있는 것이 호성적의 원동력. 3월과 4월에는 얇은 뎁스와 함께 체력이 떨어지며 성적도 안좋아졌지만, 유타 재즈, 휴스턴 로케츠와 살떨리는 플레이오프 경쟁끝에 결국 매버릭스는 정규시즌 1경기 남겨두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3. 감독 스타일




디트로이트와 인디애나 시절엔 페이스 느리고 상대 오펜스를 꽉꽉 틀어막는 템포 느린 수비팀이었다. 디트로이트에는 벤 월라스가, 인디애나에는 메타 월드 피스(당시엔 론 아테스트)라는 전방위 수비수가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상대 팀의 득점을 90점 초반 밑으로 틀어막는 것이 장기였다.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과거 감독했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스가 격돌했던 03-04시즌 플레이오프에서는 양 팀 합쳐 60점대 경기가 나올 정도로 숨막히는 경기가 펼쳐지기도 했다.
원래 공격팀이었던 댈러스로 와서는 그전같은 수비팀을 굴리지는 않고 있다. 대신 댈러스로 와서는 장기간의 호성적으로 안습해진 팀자원 때문인지 기능이 제한된 노장이나 비 올스타 선수들을 써먹는데 도가 튼 느낌. 다수의 볼핸들러를 운용하며 공간을 창출, 효율 높은 점프 슈팅을 기반으로 하는 공격 농구를 추구한다. [7] 디조던을 대신해 데려와 2016년 1월 15일 현재 팀 승리기여도(WS) 1위를 달리고 있는 자자 파출리아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역귀 취급받았던 JJ 바레아[8], 무뇌 플레이어의 대명사인 저베일 맥기 등등. 2017년엔 언드래프티 출신으로 브루클린 넷츠에서 방치되어 있던 요기 패럴을 데려와 실력을 개화시켰다 팬들에겐 제2의 바레아로 받아들여 지는중.[9][10]

4. 여담


한 방송에 나온 바론 피아노를 굉장히 잘친다. 주변선수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실력이 상당한 수준. 소속팀 선수인 해리슨 반즈의 결혼식에서도 축하겸 건반을 좀 주무르셨다 연주는 두말하면 잔소리로 굿.
짐 캐리 닮은 꼴로 유명한데 지금에야 헤어스타일의 차이로 분간이 쉽지만 젊은 시절엔 정말 별반 차이가 없었다(...) 본인은 이를 즐기고 았는지 할로윈파티때 자신이 짐캐리의 친형이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녔다
뭔가 루이스 엔리케도 닮은거 같다.
다른 NBA 감독들인 드웨인 케이시[11], 테리 스토츠[12]와 인연이 있는데, 칼라일이 인디애나에서 해고된 뒤 댈러스에 감독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케이시와 스토츠도 면접대상으로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감독을 하다가 잘려 백수신세(..)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던 세 명은 의기투합해서 한 명이 감독이 되면 다른 두 명을 코치로 임용해 주기로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이 된 칼라일은 약속대로 케이시와 스토츠를 코치로 들였고 세 사람은 댈러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승 후에 케이시는 토론토, 스토츠는 포틀랜드의 감독으로 옮겨가서 각각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래리 브라운이 취임하면서 팀을 2004 NBA 파이널에서 우승시켰다.[2]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코리 브루어 대신에 카디널을 기용한 것에 의문을 표했고 처음 나왔을 때는 개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공수 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래 페자가 기용될 때는 노비츠키가 쉴 때 스몰라인업을 돌리는 때인데, 페자 대신 PF인 카디널을 기용함으로서 수비 매치업 상황의 문제도 해결하고, 공격 면에서도 카디널의 슛이 꽤 정확한 편이어서 중요한 3점 몇방을 꽃아주기도 했다. 실제로 페자 기용시 온코트 마진 -23점(...), 카디널 기용시 +6점이다.[3] 노비츠키가 픽앤롤 공격에서 빠짐으로서 히트 수비수들의 시선이 분산되는 결과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히트의 로테이션 수비를 꼬이게 만들었다.[4] 노비츠키와 챈들러를 동시에 스크리너로 활용하는 전략. 마이애미는 픽앤롤 상황 시에 볼 핸들러에게 강한 압박(또는 트랩)을 가하는 수비를 했는데 스크리너를 2명을 둠으로서 수비수들에게 혼선을 주었고 이는 곧 마이애미의 로테이션 수비에 구멍을 낸 결과로 이어졌다. 마이애미는 끝까지 이 전술의 대항책을 찾아내지 못했다.[5] 물론 전술적 승리를 뛰어넘어 아직도 온전히 설명이 안 되는 르브론 제임스의 역귀짓이 최고의 승리요인이긴 했다.[6] 14-15시즌 사우스웨스트 디비전은 5팀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지구 꼴찌 성적이 45승 37패 .549였다.[7] 2019-20 시즌 기준으로는 메인 볼핸들러인 루카 돈치치와 더불어 J.J. 바레아, 제일런 브런슨, 트레이 버크, 델론 라이트 등이 있다.[8] 다만 바레아는 이적한 당시만 못했던것뿐이지 댈러스에선 잘했다(...) 물론 댈러스에서도 초반엔 욕을 많이 얻어먹었지만 우승시즌엔 소금같은 활약으로 공헌, 그 뒤 포텐셜이 폭발했고 현재도 상당히 잘해주고있다[9] 참고로 요기 패럴의 전 소속팀인 브루클린 넷츠에선 그를 거의 벤치만 뎁히게 했었다.[10] 여담으로 트레이드를 통해 댈러스가 너렌스 노엘을 데려 왔을때 손대범 기자는 릭 칼라일이 '''사람 하나 만들것 같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몸관리부터 기량적인 부분까지 상당히 잘 해주고 있다.[11] 전 미네소타/토론토, 현 디트로이트 감독[12] 전 애틀랜타/밀워키, 현 포틀랜드 감독. 칼라일에게서 공격 전술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또한 밀워키 감독 시절에 하승진에게 방출 통보를 했던 악연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