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콩

 

'''마이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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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image]
'''이름'''
'''마이콘 더글라스 시제난두
Maicon Douglas Sisenando'''
'''출생'''
1981년 7월 26일
'''국적'''
[image]브라질
'''신체'''
184cm 77kg
'''직업'''
축구선수
'''포지션'''
라이트백
'''소속팀'''
크루제이루 EC (2001~2004)
AS 모나코 (2004~200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6~2012)'''
맨체스터 시티 FC (2012~2013)
AS 로마 (2013~2016)
아바이 FC (2017~2018)
크리시우마 EC(2019~2020)
빌라 노바 AC (2020~2021)
소냐 칼초 (2021~)
'''국가대표'''
[image] 76경기 7골 (브라질 / 2003~2014)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클럽 경력
4. 국가대표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1. 개요


브라질의 축구선수. 전성기인 2000년대 말~2010년대 초반 가히 적수가 없었던 세계 최고 수준의 라이트백이었다. 그는 엄청난 오버래핑과 연계 및 돌파로 오른쪽 측면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면서 일명 '마른쪽' 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었던 후방의 판타지스타였다. 국가대표팀에서는 FC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다니 아우베스를 누르고 부동의 주전을 차지했다.[1]

2.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 시절에 적절한 타이밍에 보여주는 오버래핑, 날카로운 크로스와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웬만한 윙어 뺨치는 공격포인트를 쌓았다. 탄탄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한 수비능력도 단연 월드클래스. 이 수비 능력으로 당시 바르사의 트레블 멤버였던 다니 아우베스를 국가대표에서 벤치로 밀어버리기도 했다.
다만 뛰어난 클래스에 비해서 속력이 그리 빠른 편은 아니라[2] 카카가레스 베일 정도의 초절정 치달러들에게 뚫리는 경우가 있었다.[3]
종합적으로 현대 풀백의 완성체같던 선수. 마이콘이 활약하던 00년대 후반부터 10년대 초기까지의 풀백들은 여전히 공격능력보다는 수비능력에 좀 더 집중받았는데, 오히려 현재의 풀백들과 흡사했다. 이 부분은 라이벌이던 아우베스와도 동일한 부분. 다만 아우베스나 다른 풀백들에 비해 신체적 하락이 너무 가파른 것이 단점이었다. 아우베스가 아직도 현역으로, 그것도 국가대표로 활동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 종합하자면 마이콩은 최전성기에 두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아우베스와의 경쟁에서 이길 정도로 훌륭한 풀백이었다.

3. 클럽 경력


2001년 크루이제루 EC에 입단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2003년 22살의 나이에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하지만 아직 브라질 최고의 양쪽 풀백인 호베르투 카를로스카푸가 현역이었기에 주전 자리를 확고히 다지지는 못했다.
2004년에는 프랑스의 축구 클럽인 AS 모나코로 이적하여 맹활약했다. 커리어는 74경기 7골. 그리고 2006년부터 2012년까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여 쟁쟁한 측면 자원이 많은 인테르에서도 확고한 주전 자리를 꿰찼었다.[4]
특히 무리뉴 감독이 이끌던 시절인 08/09, 09/10년의 마이콘은 그야말로 라이트백을 가리키는 아이콘이 될 만큼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09/10시즌에서는 무려 7골 12도움이라는 수비수답지 않은 대기록을 세웠으며,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바르셀로나 전에서 두번째 골을 성공시켜 팀의 3-1 관광을 지원했다. 그러나 해당 경기에서 마이콘은 부상을 입고 교체되었는데, 리오넬 메시의 어깨에 입부분이 충돌하는 사고로 인해 앞니가 부러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후 복귀하여 결승전에서 맹활약했으며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09/10시즌 UEFA 올해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5] 이때 마이콘을 국내에서 부르던 별명이 바로 '''The Right'''
10/11시즌의 초반은 그에게 있어서 악몽에 가까운 시즌이었다. 라파엘 베니테스 부임 이후 인테르가 '''칠테르'''라 비웃음 당할 만큼 부진한 데다가, 본인도 기량이 떨어졌는지 심리적인 부담을 받았는지 폼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가레스 베일에게 탈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축덕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6] [7]
그나마 베니테스가 경질되고 과거 AC 밀란에서 스카우터 및 감독대행을 맡았던 레오나르두 감독이 부임 후 팀이 거짓말처럼 재정비되어 되살아나고 본인의 기량도 되살아나고 있는 중. 허나 기량이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09/10시즌과 비교하면 상당히 떨어지는 활약에 팬들은 탄식했다.
2012년 8월31일 (영국시각) 이적시장 마지막날에 맨체스터 시티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
애석하게도 한국나이 33살의 나이는 풀백이라는 포지셔너에게 큰 영향을 주는지라 기량이 많이 하락하였다. 세월을 이기지 못했는지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리그 9경기, 총 13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쳤다.
[image]
7월 18일 3M 파운드의 이적료를 대가로 AS 로마로 이적하게 되었다.
로마로 이적 이후 서서히 폼을 끌어올리더니 현재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공격과 수비를 이끌며 전성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잭팟을 찍을뻔 한 로마를 2위로 끌어올려준 공신 중 한명이자, 반대쪽의 콜이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대비해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팀 자체가 유벤투스에게 모든 면에서 밀리다보니 콩라인에만 머무는 것이 안습(...) 최근 폼이 급격히 추락한 다니 아우베스에 비해서도 오히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다시 한번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이후 로마에서 방출된 후 다른 소식이 없다가 2017년 브라질 리그의 아바이 FC로 이적했다가 리그 9경기에 출장한 후 방출되었다. 2019년 크리시우마 EC에 이적했다가 13경기를 뛰고 방출되었다.
2020년 9월5일 브라질 4부리그로 이적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11월에는 이탈리아 4부인 세리에 D 소속 팀과 협상하고 있다고 한다.

4. 국가대표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맹활약했는데, 특히 북한과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 보여준 각도 없는 슛이 골로 이어지는 장면은 정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이후 경기에서도 엄청난 오버래핑을 보여주었으나 아깝게 팀은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게 지고 탈락했다. 그래도 마이콩 본인은 대회 내내 맹활약하면서 4강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대회 베스트 XI에 선정되었다.
이후 대표팀에서는 물이 한참 오를 대로 오른 라이벌 다니 아우베스에게 주전 자리까지 빼았겨 순식간에 브라질 최고의 오른쪽 풀백의 자리마져 넘겨주는 듯 햇으나...
2011 코파 아메리카 제 3차전에서, 앞의 두 경기동안 선발 출전했으나 극도로 부진한 다니 아우베스를 대신하여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팀의 답답했던 공격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본인은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며 4-2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야말로 오른쪽의 마이콩의 부활.
2014 월드컵에서는 후보였지만 라이벌인 다니 아우베스가 16강 칠레전 까지 영 아닌 듯한 모습을 보이자, 8강 콜롬비아 전부터 선발 투입되어 3-4위전까지 모두 출전했다.
하지만 미네이랑의 비극에서는 줄리우 세자르루이스 구스타부, 오스카(당시 경기를 뛴 선수들 기준)와 함께 상대적으로 덜 까이는 편인데, 마르셀루다비드 루이스가 공격본능을 주체하지 못하고 튀어나간 상태에서 돌아오지를 않자 최소한의 수비를 위해서 마이콩은 경기 내내 자신의 장기인 공격적인 오버래핑을 거의 하지 않으며 두 사람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막아보겠다고 뛰어다녔다.
경기 영상을 보면 23번 등번호를 단 마이콩이 다비드 루이스가 튀어나간 센터백 자리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센터백이 아니었던 탓에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빈 공간을 많이 노출했고, 브라질은 철저하게 유린당했다.[8]
여기서 마이콩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고, 다비드 루이스의 센터백 자리를 커버하다가 수비에서 헛점을 보인 것은 그의 원래 포지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참작이 가능하다지만 마이콩에게도 아쉬웠던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팀의 둘째 형[9]이자 베테랑급 선수로서 수비진을 조율하고, 마르셀루와 루이스의 과도한 오버래핑을 자제시킬 필요성이 있었는데, 그 역할을 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1] 그래서 브라질 국대 감독들은 그와 아우베스를 공존시키기 위해 아우베스를 윙, 왼쪽 풀백, 중미로 써보았으나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2] 2010년 기준으로 37세의 하비에르 사네티가 마이콘보다 빨랐다. 다만 사네티는 축구사를 통틀어서도 역대급 철인이라서 전성기급의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기는 했다.[3] 다만 이건 저 둘이 너무 빠른거다. 당대 베일과 카카는 속도로 따라잡는 수비수가 거의 없다했고, 카카는 치달 만으로 세계 최정상급 수비수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호날두메시를 제치고 발롱도르 수상까지 했다. 베일 역시 스피드 하면 빠질 수 없는 선수다. 참고로 베일한테 털린 이유는 당시 무리한 출전 강행으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출장하기를 원했고, 진통제까지 먹고 뛰었지만 베일을 저지하기에는 너무 무리였다. 결국 그는 이 시점부터 폼이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4] 사실 인테르 처음 이적했을 때 팬들한테 '''욕먹었다고 한다.''' 넘사벽인 그분의 자리를 뺏었다고. 하지만 그분이 융통성을 발휘해 수비형 미드필더와 레프트백이 되고, 본인이 잘해준 덕에 안티는 사라졌다.[5] 이 09/10 시즌의 사네티-사무엘-루시우-마이콘으로 이루어진 인테르의 포백은 그야말로 지구방위대 수준이었다. 팀은 트레블 달성에다가 끝판왕이라 불리는 바르셀로나까지 이겼으니...[6] 사실 이 경기 전에 마이콘은 부상이 있었지만 본인이 출전을 강행하기 위해 진통제를 먹고 뛰었었다. 그러나 진통제로는 베일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했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폼이 하락하기 시작했다.[7] 가레스 베일은 2010년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로 뽑혔으며 70m를 곡선으로 달리는 데에도 불구하고 7.2초 만에 돌파 하였으며,이 때 속력은 36.9km/h가 측정 되었다. 최근 빠르다고 소문난 킬리안 음바페(36km/h)보다 더 빠르다![8] 만약은 없다지만 주장 완장을 루이스가 아닌 세자르나 마이콩이 찼더라면 이런 참사까지 가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9] 첫째 형은 줄리우 세자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