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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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브라질의 전 축구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AC 밀란의 밀란 제너레이션 2기를 이끌었던 마에스트로이자 호나우두 - 히바우두 - 호나우지뉴로 이어지는 브라질리언 발롱도르 위너의 계보를 이은 마지막 선수이며 신계가 아직 기량이 완전히 무르익기 직전 세계 축구계를 평정했다.[3]
대다수의 브라질 축구선수들과는 달리 제법 유복한 가정[4] 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테니스 선수를 꿈꿨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축구는 진로라기보다는 취미 생활에 가까웠다. 카카는 상파울루 정식 유스 팀이 아닌 서포터즈 유스 팀에서 공을 차기 시작했고, 교사였던 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에 축구보다 공부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또한 어린 시절의 카카는 지나치게 깡마른 체구 탓에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한다.
2. 선수 경력
3. 포지션
오늘날 축구계는 중원에 철저한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한 선수에게 전권을 맡기지 않는 추세인데, 이에 반하는 플레이메이커들 중 하나였다.[5]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에는 전성기의 폼을 보여 주지 못했다.
현재는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가 거의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전술 변화와 축구 규칙의 개정, 경기 수의 증가 등의 이유로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가 살아남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6] 카카가 공격의 전권을 쥐게 된 것은 카카의 능력과 더불어 당시 밀란의 상황이 맞아 떨어진 까닭이지, 결코 카카가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 롤을 능숙하게 소화해 내서는 아니다. 카카보다는 차라리 비슷한 시절의 호나우지뉴나 프랑크 리베리가 비록 측면에서 뛰더라도 훨씬 더 고전적인 플레이메이커 상에 가깝고, 카카 자신도 고전적인 플레이메이킹을 훨씬 우월하게 펼칠 수 있는 후이 코스타를 주전에서 밀어낸 전력이 있다. 만약 카카가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였다면 당시 밀란의 공격수를 맡고 있던 질라르디노의 득점이 훨씬 늘어났어야 한다. 마치 바이에른 시절의 토니 크로스와 마리오 고메즈처럼. 그러나 질라르디노는 충실히 카카를 위한 미끼 역할을 수행하며 카카의 스피드와 득점력을 이용할 공간을 창출해 줬다. 카카의 주력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이지만 2선에서 최전방으로의 침투와 드리블 돌파, 정확한 슈팅으로 많은 득점을 올리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의 역할도 수행했다.[7]
밀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던 카카가 현대 축구에 반하던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카카의 능력이라기보단 AC 밀란과 안첼로티 감독의 능력이다. 카카의 공격력을 최대한 쓸 수 있게 플레이메이커의 역할인 안정적인 볼 배급 및 전체적인 경기조율은 안드레아 피를로가 맡았고 중원에서 개싸움을 펼치고 볼경합을 통해 전방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젠나로 가투소, 마시모 암브로시니, 클라렌스 세도르프가 맡았다. 이로인해 탄탄한 중원 장악이 받쳐줘 카카는 전성기인 2006/07 시즌 공격에 치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밀란에서까지의 이야기. 그는 레알 이적함과 동시에 전성기때의 모든 기량을 상실하고 축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로 전락하고 말았다.[8]
레알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AC 밀란으로 복귀한 카카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아무래도 과거 전성기의 기량과 주력이 아닐 뿐더러, 현대 축구가 발전하면서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 롤은 사장되어 가기 시작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경험이 많이 쌓였는지, 어느 정도의 조율 능력을 보여 주기도 했고 애초에 잘했던 킬패스 같은 능력이 돋보이면서 중앙 미드필더로도 꽤나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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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형 미드필더의 꽃'''[9] 이라 불릴 만큼 슈팅, 드리블, 패스 삼박자를 두루 갖춘 선수였다. 세부적으로 봐도 드리블, 치달, 중거리 슛, 골 결정력, 크로스, 스루 패스, 숏 패스, 롱 패스 모두 일품이었다.[10] 퍼스트 터치와 오프더볼 움직임도 훌륭했다. 특히 아직까지도 치달 하면 카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압도적인 최대 속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공을 컨트롤하는 기술이 월등했다. 쉽게 말해 케빈 더브라위너 같은 킬패스를 찔러 대는 선수가 가레스 베일만큼 빠르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게 기술과 스피드, 패스가 강점인 선수는 몸싸움이 약한 경우가 많은데, 카카는 피지컬도 탄탄하고 몸싸움마저 훌륭했다. 또 부상으로 먹튀가 됐다는 오명과 달리, 팀원의 노쇠화를 홀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07-08 시즌 이전에는 매 시즌 50경기 가까이 소화할 정도로 부상이 적었다. 절정의 폼이었을 때에는 초인이나 다름없었고 이러한 모습 덕분에 신계 두 명을 제치고 2007년 발롱도르를 거머쥐었다.[11]
선수로서 최전성기를 보냈던 AC 밀란 시절에는 치달의 임팩트가 부각되었지만 다른 능력도 뛰어났다. 2004-05 시즌의 리버풀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갔던 건 카카의 날카로운 공격 전개와 킬패스였다. 특히 경기를 3:0으로 굳히는 크레스포를 향한 어시스트는 문자 그대로 대지를 가르는 킬패스. 또한 전성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득점력도 무시무시했다. UCL에서 86경기 동안 30골을 넣어서 지금도 역대 득점 기록 20위 안에 들어가고, 특히 2006-07 챔스에서는 10골을 넣어 득점왕이 됐다. UCL 득점왕이 발롱도르를 타는 징크스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졌는데,[12] 이 징크스를 시작한 선수가 바로 카카였다는 것은 유념할 만하다.
카카의 능력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바로 역습상황인데 좌우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는 역대급 치달과 뛰어난 킬패스, 골 결정력으로 커리어 대부분의 공격 포인트를 역습상황에서 쌓았다. 세밀한 드리블 기술과 중거리 슛도 뛰어나 역습상황에서만 쓸 수 있는 반쪽짜리 선수도 아니었다.[13] 전성기 때는 완벽한 선수였다.
물론 이러한 장점들 중 가장 독보적이고 또 다른 장점들을 잘 받쳐 준 건 바로 '''경악스러운 스피드와 바디밸런스'''였다. 때문에 카카의 전성기를 지켜본 세리에 팬들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이지선다[14] 의 플레이를 펼치던 정상급 선수가 스피드가 죽으니 다른 능력들마저도 어정쩡해져서 폭망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또한 부상으로 신체 균형이 깨지면서 몸싸움이 약해진 것도 한 몫 한다. 테크닉과 축구지능도 뛰어났지만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에 바탕을 둔 선수였고, 그 정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준 선수. 한편 카카처럼 스피드가 죽으니 다른 장점까지 같이 죽어버린 케이스로는 마이클 오언, 안드리 셰브첸코, 페르난도 토레스가 있다.
레알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AC 밀란으로 돌아온 카카는 과거 전성기 시절의 주력은 유지하지 못했다.[15] 부상과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랬다. 결정적으로 현대 축구가 발전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이 사라짐에 따라 카카도 조금 더 밑에 내려와서 뛰는 경기들이 많아졌다. 비록 주력이 조금 줄었다고 하나, 기존에 찬스를 메이킹 할 수 있는 패스 능력은 여전했기 때문에 [16] 중앙 미드필더를 완벽히 소화하는 모습이다. 오랜 경험과 어느 정도 타고난 축구지능은 이러한 전술 수행을 뒷받침해 주기에 충분했다.
카카의 이런 유니크한 플레이 스타일과 수려한 외모 때문에 많은 팬들이 제 2의 카카를 기대하지만, 현재까지 이런 유형의 선수는 찾기 어렵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상파울루 FC (2001~2003, 2014)
- 토르네이루 리우 상파울루: 2001
- AC 밀란 (2003~2009, 2014)
- 세리에 A: 2003-04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4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6-07
- UEFA 슈퍼컵: 2007
- FIFA 클럽 월드컵: 2007
- 레알 마드리드 CF (2009~2013)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2002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2005, 2009
5.2. 개인 수상
- 발롱도르: 2007
- FIFA 올해의 선수: 2007
- FIFA FIFPro 월드 XI: 2006, 2007, 2008
-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 2006-07
- UEFA 올해의 미드필더: 2004-05
- UEFA 올해의 공격수: 2006-07
- UEFA 올해의 팀: 2006, 2007, 2009
- UEFA 올해의 궁극적인 팀: 2015[17]
- FIFA 월드컵 도움왕: 2010
-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2006-07
- UEFA 챔피언스 리그 도움왕: 2004-05, 2011-12
- FIFA 클럽 월드컵 골든볼: 2007
- FIFA 클럽 월드컵 도움왕: 2007
-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7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골든볼: 200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토너먼트의 팀: 2009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결승전 맨 오브 더 매치: 2009
- CONCACAF 골드컵 베스트 XI: 2003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003-04, 2006-07
- 세리에 A 올해의 외국인 선수: 2003-04, 2005-06, 2006-07
- MLS 올스타: 2015, 2016, 2017
- MLS 올스타전 MVP: 2015
- 옹즈도르: 2007
- 팔로네 디 아르젠토: 2006-07
- IAAF 올해의 남미 운동 선수: 2007
-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 2002
- AC 밀란 명예의 전당: 2010
-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2007
- lFFHS 세계 최우수 플레이메이커: 2007
- 마르카 레전드: 2009
- 삼바도르 : 2008
- 볼라 지 오우루: 2002
- 볼라 지 프라타: 2002
- 타임 100: 2008, 2009
5.3. 출전 기록
6. 카카에 대한 말, 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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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차 때문에 피곤해 보이는 소년이 필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 천국의 광경이 우리의 눈 앞에 펼쳐졌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엄청난 선수를 내려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그와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맨시티로부터의 이적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항상 흥미롭고 흥분된다. 우리는 그를 영입하고 싶다.'''
'''그는 완벽한 선수다.'''
'''카카가 밀란을 떠나서 아쉽다. 2~3년 동안 카카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
'''전에도 카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직접 지도하고 나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다. 카카를 지도해 행복하다.'''
'''내가 보기에 카카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다. 그의 축구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카카의 재능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축구적인 능력뿐 아니라 팀원들의 자신감을 올려 준다.'''
'''모든 걸 다 갖춘 엄친아 같은 선수다. 잘생기고, 공도 잘 차고 돈도 잘 번다.'''
7. 어록
'''닮고 싶은 선수는 있지만 되고 싶은 선수는 없다.'''
'''강한 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한 것이다.'''
'''노력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다.'''
'''절대 두렵지 않다. 나를 믿는 10명의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8. WAGs
젠틀한 엄친아의 이미지에 어울리게도 아내와 서로 혼전순결을 지키며 결혼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게다가 이 아내 역시도 엄청난 미녀 + 카카 못지않게 스펙 좋은 엄친딸 속성이라 모두가 부러워하는 축구선수 커플로 유명했었다. 이렇듯 이상적인 커플 + 순정파 이미지로 축복을 받으며 유명해졌지만, 결국 이혼했다가 재결합했다가 다시 이혼했다(...).
전 부인을 약 15살 때부터 사귀어 왔다는데 '''서로 혼전순결'''[21] 이었다고 한다. 카카가 AC 밀란에서 뛰고있었고 카롤리니는 밀라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 카카는 그녀에게 일이 있으니 베네치아에 가자고 했고 카롤리니는 별 생각없이 따라갔는데 레스토랑에서 반지를 꺼내 프러포즈했다고. 그리고 그녀는 크리스챤 디오르 브라질 지부 부사장의 영애. 한 마디로 인생의 승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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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루카는 아빠를, 딸 이사벨라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2014년 11월 5일 이혼했다. # 카카가 AC 밀란 - 레알 마드리드 - AC 밀란 복귀 - MLS 올랜도 시티 계약 - 상파울루 임대 라는 꽤 복잡한 커리어를 이어 가는 동시에 부인 역시 브라질 내 패션 사업이나 기타 영리 단체를 운영하는 등 서로 만날 시간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틀어진 모양이다. 축구선수 커플 중 가장 이상적인 워너비 커플이었기에 충격이 크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이혼하고서도 계속적으로 만나고 있다. SNS 등을 통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있다. 가족 모임에도 같이 참가하고 있다. 그것도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의 SNS에서 쌍으로 올리고 있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이어지는 연말이 압권이었는데 카카가 카롤리니의 목덜미에 입맞춤을 하는 사진까지도... 그러더니 2015년 1월 5일 재결합을 선언했다(...). 이혼 파문은 순간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어난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는 듯.
그런데 2015년 8월 카롤리니가 SNS에 이혼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재결합 후 인스타에 올렸던 닭살 돋는 사진들도 전부 삭제한 상태였다. 이후 둘 다 각자 연애를 하며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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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카카가 사진 속 여인인 바네사[22] 와 만나고 있다는 뉴스가 터졌다. 처음부터 카카의 첫 이혼에 불륜설이 있기는 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카카와 바네사가 함께 찍힌 사진이 공개되었고 카롤리니와는 완전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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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또 새로운 여친이 공개되었다. 2016년부터 사귀기 시작한 12살 연하의 1994년생 브라질 배우 겸 모델 카롤리니 디아즈라고 한다.
카카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카카는 전 부인과 낳은 두 자녀와의 사이도 원만한 듯 하다. 때때로 서로의 사진이나 아이들 사진에 좋아요를 누른다든가 양가 부모들이 카카와 전 부인 각자의 사진에 좋아요나 댓글을 남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전 부인 캐롤리니는 현재 브라질 사교계 인사이자 미남 에두아르도 스카파와 연애 중이다. 브라질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교 가문으로 특히 외삼촌이 가장 유명한데 자세한 건 이 글에서 확인하자. 앞선 링크에 나와있지만, 이 쪽 남자도 카카와는 다르게 철딱서니 없는 성격의 소유자인지 카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친구들과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비웃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구설수에 올랐었다. 결국, 전세계 각지의 카카팬들에게 뭇매를 맞고 한동안 인스타그램 비공개로 돌리기도 했다.
2019년 1월 디아즈와 약혼했다. 그리고 2019년 11월 30일 가족들, 절친한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함께 결혼식을 올렸다.
2020년 10월 8일 , 디아즈가 딸을 출산해서 카카는 아들 하나 딸 둘을 둔 아빠가 되었다. 딸 이름은 에스터.
9.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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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역시 꽃미남이라는 타이틀이다. 흰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 그림으로 그린 듯한 곱상한 비주얼 덕에 남녀 축구팬들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꽃미남 축구 선수였다. 딱히 에고나 쇼맨십이 강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젠틀한 성격과 사생활, 매력적인 플레이 스타일과 귀공자 같은 이 외모까지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며 엄친아 이미지가 각인되어서 카카는 스타성이 좋은 선수로도 평판이 높았다.
10. 여담
2000년, 18세 때 수영장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척추를 다쳐 축구를 접을 뻔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기적적으로 수술이 성공하여 재활에 성공한 카카는 향후 인생의 목표 10단계를 세운다.
이렇게 거창한 목표들을 세운 것도 대단하지만, '''저 목표들을 23살에 전부 달성했다'''는 것이 더욱 대단하다.1. 다시 축구 선수가 된다.
2. 상파울루 FC에 입단한다.
3. 1군 25명 엔트리에 들어간다.
4. 거기서 다시 17명 엔트리에 들어간다.
5. 베스트 11에 뽑힌다.
6. U-20 국가대표에 선발된다.
7. 성인 국가대표에 선발된다.
8. 국가대표 주전으로 뛴다.
'''축구계에서 가장 잘생긴 선수 중 하나'''인 데다가 이것 저것 다 가지고 인생의 승리자 기믹까지 붙어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각같은 외모와 축구 실력은 물론이고 파파라치들도 포기했다 할 정도로 성실하고 가정적인 성격, 여신 미모에 브라질에서도 내로라하는 자산가의 딸인 이웃집 첫사랑인 카롤리니 셀리쿠(Caroline Celico)를 부인으로 얻은 데다, 본인을 빼닮은 자식들까지 있으니 거의 전 인생을 100점으로 살아온 격... 축구 외 다른 분야에도 관심 있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미국 리그에서 뛸 때 플로리다에서 MBA 과정을 밟았으며 주식에도 관심이 있다고 한다.
디강이라는 동생이 있는데, 형과 마찬가지로 축구선수로 활동했으며 빼어난 조각 미모를 자랑한다. 다만, 실력은 형에 비하면 안구에 쓰나미가 몰려올 정도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AC 밀란에 입단했는데, 이는 안첼로티 감독과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카카의 마음을 붙들어 놓기 위한 도구로 데려온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결국 2008년 벨기에 리그 스탕다르로 이적했는데, 카카가 레알 마드리드로 옮긴 현실을 감안하면 무조건 방출이 예상됐던 바 오히려 미래를 예견한 선견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임대 복귀해서 아직도 밀란에 적을 두고 있다. 2009/10시즌에는 하부 리그에 적을 둔 팀에 임대되었지만 제대로 경기조차 못나왔다. 결국 2013년 MLS의 뉴욕 레드불스에서 은퇴하였다.
이탈리아 방송에 나와서 진행자가 '님은 대체 못하는 게 뭐임?'이라고 질문했더니 춤을 정말 지독하게 못 춘다고 답했다.[24]
여기서부터가 차별점. 옛적의 호마리우도 그렇고 최근 아드리아누, 호비뉴 같이 브라질엔 멘탈이 영 썩어 들어간(...) 선수들이 오히려 더 많은데 어째 카카는 기분 나쁠 정도로 멘탈이 좋다. 위 선수들 덕에 애국자 줄리우 밥티스타 장군[25] 과 더불어 돌연변이(...)가 아닐까 하는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AC 밀란 시절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오랜만에 훈련 후의 뒷풀이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기자들이 선수들의 소위 X파일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추적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여러 선수들이 술집에서 놀다가 여자를 하나씩 끼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들이 포착되었고, 카카 또한 매의 눈으로 노려지고 있던 상황. 아무리 사생활이 깨끗하다 해도 혈기왕성한 20대 남자가 이럴 때는 놀 거라고 생각한 기자들이 포착한 것은...
- 동료 선수들과 헤어진 뒤 공원 벤치에서 성경을 읽는 카카
- 성경 책을 접어 가방에 넣고는 공원을 산책하며 성경 구절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카카
소문으로만 듣던 카카의 실체(?)를 똑똑히 목격한 기자들은 잔뜩 질려서 바로 철수해 버렸고 그 날로 카카는 기자들의 관심 따위 못 받게 되었다(...).[26]
실제로 카카는 매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은퇴 후에는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뿐만 아니라 매춘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적도 있다. 심지어 존경하는 사람이 한국의 정바울이라는 목사라고 한다[27] .
2006/07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AC 밀란이 맨유와 4강에서 만났는데 그때 카카가 경기 중 라이언 긱스의 목을 붙잡고 있는 사진이 찍혔다. 당시 박지성의 영향으로 맨유팬이 절대다수였던 한국 내 해외축구 팬들에게선 카카가 예의가 없다고 비판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그 후 몇년 뒤 알려진 긱스의 불륜사건으로 카카가 건실한 신앙인으로서 죄인을 미리 알아봐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냐는 농담도 있었다.
긱스의 목덜미를 움켜쥔 것도 있고 레알 마드리드 이후 AC 밀란에 돌아와서 경기 도중 혼다 케이스케에게 화를 마구 내는 장면도 찍혔다. 어떤 상황이었냐면 밀란이 상대에게 코너킥을 허용한 뒤 잠깐의 문전 위기상황이 있었다 클리어 했는데 그때 혼다가 상대 공격수 마크를 놓쳤고 카카는 이에 혼다에게 역정을 부렸는데 혼다도 지지않고 카카에게 소리를 지른 듯 했다. 이렇게 보면 신앙심이 독실하고 모범적이긴 해도 성깔은 있는듯.
카카 자신이 올스타를 뽑았다.
2016년 6월 27일 기준으로 페이스북 팔로워가 3223만여 명(축구선수 중 6위)이다.
두 팔을 벌려 하나님께 기도하는 세레모니로 유명하다.
카카의 개신교 신앙은 두 후배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그 둘은 자기들 신앙의 롤모델은 카카라고 인터뷰에서 종종 얘기한다.[28]
드리블만으로 상대 수비수의 십자인대를 파열시킨(…) 경력이 있다. 상대는 왈테르 사무엘. 그는 밀란 더비에서 카카의 드리블 테크닉을 무리하게 쫓아가려다 경기 도중 생방송으로 그의 몸 방향과 무릎의 방향이 다른 꽤나 소름 끼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십자인대 파열로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에 대한 집념으로 다시 일어나 공을 보다가 같은 팀의 수비가 공을 취득한 걸 보고 그제서야 쓰러졌다.
아무래도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 광속 드리블 실력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오른발은 위협적이고 무엇보다 활동량이 후덜덜하게 늘어났다.
한국에서 열성팬이 많은 선수다. 인기 구단인 AC 밀란의 마지막 전성기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전성기에는 플레이메이커로서 모든 공격전권을 부임받은 상태에서 화려하고 역동적인 플레이로 유럽을 석권했다. 이 때는 한국에서 해외 축구 중계가 도입기를 지나 최초의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이라 그 퍼스트 임팩트가 대단했다. 게다가 박지성 선수의 맨유 입단으로 관심이 모아지던 시기에 2006/07시즌 맨유 상대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기 때문에 해축팬들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겨준 것도 컸다.[29] 상술되다시피 젠틀한 사생활과 얼굴로 브라질 귀공자 이미지까지 더해 인기가 폭발했다. 아무튼 좋은 것만으로 가득 끌어모은 팬들이고 퍼스트 임팩트가 너무 대단한 탓이었는지 많은 열성팬들의 애틋한 팬심으로 카카에 대한 미련을 일찍 떠나보내지 못했다.
'''카카'''는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로 똥(...)이란 뜻이다. 그래서 처음에 이탈리아에 올 때 AC 밀란 말고도 유벤투스가 그를 영입하려 하는 한편 저런 이유를 대며 예명을 고쳐달라고 했다. 허나 카카는 거절하며 예명 안 고쳐도 상관없다고 한 AC 밀란으로 간 것이다.
영어 구사력이 수준급이다.[30] 이탈리아 시민권도 가지고 있어서 이탈리아어도 잘 하며, 스페인어도 유창하다.
2018년 6월 유니버셜 올랜도 리조트 광고 영상을 촬영했다.
월드 클래스로 성장하는 선수들에게 하나같이 따라붙는 제 2의 OO라는 수식어처럼, 카카도 한 때 '제 2의 지쿠', '하얀 펠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제 2의 카카로 불리던 유망주들인 오스카르, 루카스 피아존, 루카스 실바 등은 모두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마찬가지로 제 2의 카카라는 수식어가 붙은 루카스 파케타가 AC 밀란과 계약을 맺었다. 카카가 밀란 이사진으로 있기 때문에 특히 관심이 모였지만, 카카 본인은 파케타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며 자신과의 비교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2018년 브라질 대선 당시 본인의 점잖은 이미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보우소나루를 카푸, 호나우지뉴 등 브라질의 다른 레전드 선수들과 함께 지지하기도 했다. 브라질 개신교(주로 순복음 교단)신자들은 대안우파 성향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의외까지는 아니다. 점잖은 이미지와 별개로 신앙 성향은 다소 위험한 은사주의 쪽이었고...
FIFA 20에서 신규 아이콘으로 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