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니-헨리 소총

 

'''Martini–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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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2. 개요
2.1. 개발 비화
3. 파생형들
3.1. Mark I (1871-1876)
3.2. Mark II (1877-1881)
3.3. Mark III (1879-1888)
3.4. Mark IV (1888-1889)
3.5. 저격용
3.6. 카빈
3.7. 그리너(Greener) 폴리스 샷건
3.8. 마티니-메트포드 카빈 (Martini-Metford Carbine)
3.9. 가헨드라 라이플 (Gahendra Rifle)
3.10. 마티니 카뎃 (Martini Cadet)
3.11. 카이베르 패스 복제품 (Khyber Pass Copy)
3.12. 카불 조병창 생산분(Kabul Arsenal Production)
3.13. 유탄발사기
4. 매체에서의 등장
5. 둘러보기


1. 제원


'''Martini–Henry'''
''마티니-헨리''

'''종류'''
후장식 소총
'''국가'''
영국
'''역사'''
'''개발'''
프리드리히 폰 마티니
'''개발 년도'''
1870년
'''생산 년도'''
1871년~1889년
'''생산 수'''
500,00정~ 1,000,000정
'''사용 년도'''
1871년~1918년
'''파생형'''
마티니-헨리 카빈
그리너 폭동진압용 산탄총
가헨드라 소총
마티니-헨리 유탄발사기
'''제원'''
'''구경'''
11.4mm
11.43mm
7.7mm
7.65mm
10.2mm
7.9mm
'''탄약'''
.577/450 복서-헨리
.577/450 마티니-헨리
.303 브리티시
11.43x55mmR
11.43x59mmR
7.65x53mm
.402 엔필드-마티니
14게이지 마티니-그리너
.310 카뎃
'''급탄'''
단발
'''작동 방식'''
폴링 블록
'''중량'''
3.827kg
'''전장'''
1,245mm
'''총열 길이'''
840mm
'''발사 속도'''
12RPM
'''총구 탄속'''
400m/s
'''유효사거리'''
370m
'''최대사거리'''
1,700m

2. 개요



Iraqveteran8888 리뷰 영상
영국의 엔필드 조병창이 1871년부터 1889년까지 생산한 폴링 블록 소총. 그 이전까지 사용했던 트랩도어 소총이었던 스나이더-엔필드 소총을 대체하기 위해서 제작된 소총이다.
소총의 이름이 마티니-헨리인 이유는, 개발의 중추를 이루었던 헨리 오 피바디[1], 스위스에서 온 총기 디자이너 프리드리히 폰 마티니, 알렉산더 헨리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마티니-헨리 소총은 헨리 소총과 같은 연발총을 제외하면 단발식 소총 중에서도 연사력이 빠른 편이다.[2]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레버를 내리면 약실이 열리면서 탄피가 배출된다. 빈 약실에 실탄을 밀어넣고 레버를 닫으면 코킹된다.[3] 레버를 닫는 동작은 곧 손잡이를 쥐는 동작과 일치된다. 탄피 배출과 재장전의 동선을 최대한 단순하고 깔끔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연사력이 빠르고 정밀한 단발식 소총의 등장은 군대의 전술까지 변화시켰는데, 기존의 느릿느릿하고 빠른 대처가 불가능한 거추장스런 큰 전열 대신 더욱 적은 수의 병력이 2열의 단순한 전열을 형성해서[4] 사격과 동시에 발빠른 전진과 후퇴를 반복함으로써 더욱 전투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전에는 산병이나 라이플(강선 머스켓) 사수들이 담당하던 엄폐, 조준 사격을 일반 병사들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5] 산병이란 병과는 일반 보병과 통합되어 사라지게 된다.[6] 즉, 이 시대의 영국 레드코트들은 근대전과 현대전 사이의 과도기적인 전술을 구사했다고 할 수 있다.
사다리형 가늠자는 2천 야드(1,828.8m)까지 조준이 가능하다. 하지만 막상 2천 야드 앞에 표적을 갖다놓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이 시대에는 쌍안경을 든 장교의 지휘에 따라서 소대 전체가 곡사(...)로 일제사격하는 전술이 확립되어 있었다.[7] 양쪽 군대가 이런 식으로 초장거리 병림픽을 벌이는 모습은 영화에 나오지 않으므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담으로, 줄루 전쟁에서 마티니-헨리를 노획한 줄루 전사들은 조준기의 원리를 거꾸로 이해했다. 가늠자를 높이 올릴수록 총알이 더 세게 날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거리에 상관없이 가늠자를 최대한 올린 채 사격하곤 했는데, 덕분에 근중거리에서 총알이 영국군의 머리위로 날아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577-450 탄약은 577구경 슈나이더-엔필드 라이플 탄약을 살짝 고친 것이다. 탄피 길이를 늘리고 병목형태로 만들어서, 탄두 지름을 줄였다. 덕분에 공기 저항이 줄어들어 탄속이 더 빨라지고, 탄도곡선이 더 평탄해져, 명중률이 향상되었다. 80그레인의 흑색화약에 480그레인의 납 탄두를 사용한다. 7.62mm NATO와 비슷한 운동 에너지를 가진다.
총신에 납이 들러붙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종이로 탄두를 싸서 탄피에 물린다.[8] 원래 황동 포일을 두바퀴 말아서 탄피를 만들고, 바닥 부분은 옻칠한 연철판을 사용했다. 당연히 찢어지거나 찌그러지기 쉬웠기 때문에 1885년부터 일체형 탄피로 바꾸었다.
그러나 단발식 소총이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었고, 만리허 소총을 필두로 상자형 탄창을 사용하는 연발 볼트액션 소총이 점차 대세가 되면서 결국 연발 볼트액션 소총인 리-매트포드로 대체된다. 이후 리-매트포드를 기반으로 무연화약 탄약을 쓰도록 만들어진 리-엔필드가 개발되어 영국군의 제식소총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1. 개발 비화


영국은 기존의 강선 머스킷을 대체할 스나이더 소총을 만들었으나 트랩도어 방식의 특성상 장전속도가 좀 느렸기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1871년에 신형 소총 제작 프로젝트를 세웠다.[9] 당시로써는 새로운 방식이었던 폴링 블록 구조를 채택하는 모험을 했으나 결과는 성공적이었으며, 후에 최신식 볼트액션이었던 리-메트포드와 리-엔필드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줄루 전쟁,보어 전쟁,제1차 세계 대전까지 사용했다. 이로써 영국은 마티니 헨리, 미국은 레밍턴 롤링블럭, 프랑스는 그라 소총으로 단발 제식 소총의 짧았던 황금기가 열린다.
마티니-헨리는 구조가 지극히 단순하여, 스프링이 2개[10], 움직이는 부품은 6개[11]에 불과하며, 개머리판에 철심을 박아서 전통적인 머스킷에 비해 훨씬 튼튼하다. 또한 개머리판 내부에 기름통 수납공간이 있다.

3. 파생형들


명중률 면에서는 동시대 타국의 단발소총[12]에 비해 별 차이가 없는 설계였다. 하지만 훨씬 단순한 구조였다.

3.1. Mark I (1871-1876)


- 리시버와 개머리판 우측면에 로마 숫자 I를 새김
- 방아쇠울에 안전장치가 달림
- 브리치블록 회전축을 청동으로 만듬
- 버트캡[13]에 체크 무늬를 새김
- 브리치블록 상면을 거울처럼 매끄럽게 연마하여 빛을 반사하도록 함. 검열할 때 총신 내부를 비춰볼 수 있도록 한 조치였으나, 블루잉[14]이 되어 있지 않으므로 금방 녹스는데다가, 장전할 때 탄피가 마찰되어 거울로서의 기능을 빠르게 상실했다.

3.2. Mark II (1877-1881)


- 마크 I을 모두 회수하여 업그레이드하고 로마 숫자 각인에 획을 추가하여 II로 만듦[15]
- 방아쇠 구조를 간략화함
- 안전장치를 생략. 별로 필요하지 않고[16] 전투중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이유였다.
- 브리치블록 회전축 재질을 강철로 바꿈
- 버트캡의 체크 무늬를 생략하여 생산성을 제고함
- 거울 기능이 뻘짓임을 깨닫고 브리치블록 전체에 블루잉 처리를 함
- 500 야드에서 영점이 맞지 않는 현상을 교정하기 위해, 가늠자의 홈을 더 깊게 팜
- 꽂을대가 저절로 빠지지 않도록 개량함

3.3. Mark III (1879-1888)


- 코킹 인디케이터[17] 크기를 줄여 카빈 버전과 호환되도록 함
- 포어엔드[18]가 총신에 고정되는 방식을 바꿈. 원래 총신에 핀으로 연결하는 방식이었으나, 연속으로 발사하면 총신의 열이 핀으로 전달되어 왼손을 데이거나 심하면 총을 놓치는 문제가 발견되어 포어엔드 하단에 후크를 추가하여 리시버에 결속되도록 함
- 브리치블록이 달그락거리지 않도록 폭을 늘림
- 파이어링 핀 지름을 늘림
- 익스트랙터를 더 두껍게 만듬
- 강선의 회전으로 인해 탄도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에 대응하여, 가늠자의 홈을 미세하게 왼쪽으로 옮김.

3.4. Mark IV (1888-1889)


- 신형 402구경 총신을 달고 출고. 45구경보다 더욱 탄속이 빠르고 탄도가 평탄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막상 채용하고보니 탄약 보급이 꼬이게 되어, 전량 리콜하여 총신내경을 45구경으로 늘렸다.[19] 그 뒤로도 402구경 탄약 채용은 없던 일로 하고 계속 45구경으로 찍어냈다.
- 리시버 형상을 바꿈[20]
- 장전 레버의 길이를 3인치 늘림. 수단 전역에서 총이 과열되었을 때 잘 열리지 않는 문제가 발견되어, 지렛대의 길이를 늘린 것이다.
- 익스트랙터 역시 지렛대의 길이를 늘림으로써 탄피 배출을 더 쉽게 함
- 녹슨 버트캡이 나무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트캡과 나무 사이에 얇은 황동판을 추가함
- 가늠쇠에 경사면을 추가하여 조준을 더욱 빠르게 함. 해당 개량으로 인해 소켓식 총검은 더 이상 쓸 수 없음.[21]
- 꽃을대의 형상을 바꾸어,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생산성을 제고함

3.5. 저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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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이 마티니-헨리 소총에 저격용 조준경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애초에 저격수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전이다. 영국, 스위스, 독일에서 민수용 마티니-헨리 소총을 생산하여 수렵용으로 조준경을 장착해 판매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수명이 다한 군용 소총을 민간인이 엽총으로 개조하기도 한다. 따라서 저격용 마티니-헨리는 표준 형식이 없이 천차만별이다.

3.6. 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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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니-헨리 소총의 길이를 줄인 것. 원래 포병용과 기병용을 통합 개발했으나, 막상 운용해보니 포병과 기병이 원하는 기능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단순히 보병총보다 짧다고 되는게 아니었다.[22] 결국 포병용과 기병용 카빈을 따로 만들었다. 마크 I부터 마크 III까지 개량되었다.
일반 보병총용 45구경 탄약을 사용하면 화약이 다 연소되기도 전에 탄환이 총구를 떠나므로, 총소리가 너무 크고, 연기가 과도하게 많이 발생하며, 총이 가벼우므로 반동도 크다. 따라서 카빈 전용 45구경 탄약을 따로 생산했다. 일반탄은 80그레인의 흑색화약과 480그레인의 납탄을 사용하지만, 카빈탄은 70그레인의 흑색화약과 410그레인의 납탄을 사용한다. 구분점은 탄환을 감싼 종이의 색이다. 일반탄은 흰 종이, 카빈탄은 빨간 종이를 사용한다.

3.7. 그리너(Greener) 폴리스 샷건



이집트, 인도, 홍콩 등 식민지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병력에 1921년부터 지급되었다. 감옥 경비 및 폭동 진압에 사용했다. 14게이지 전용 탄약을 사용한다. 탄피 꽁무니는 12게이지, 주둥이는 14게이지 규격이다. 약실도 탄피 형상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12게이지 산탄은 장전이 되지 않는다.[23] 파이어링 핀(격침)이 삼지창 형태인데, 양쪽 격침이 가운데 격침보다 길다. 전용탄 탄피 바닥에 양쪽 격침이 들어갈 공간이 있어서, 가운데 격침이 뇌관을 때릴 수 있다. 16게이지 산탄에 종이를 말아서 지름을 늘리면 장전은 되지만 격발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범죄자에게 총을 빼앗기더라도 시판되는 탄약을 장전할 수 없도록 한 조치였다. 또한 경찰용답게 안전장치를 추가했다.[24]

3.8. 마티니-메트포드 카빈 (Martini-Metford Carbine)


리-메트포드 소총과 함께 채용된 303구경 탄약을 사용한다.
기존의 45구경 카빈을 리콜해서 총신을 303구경으로 바꾸고, 총신에 맞는 새 포어엔드를 달았다.
드물게 리시버 측면에 박스 탄창(...)을 장착한 것이 있는데, 쏠 때마다 탄창에서 손으로 탄을 꺼내어 약실로 밀어넣어야 하므로, 탄창이라기보다는 스피드로더에 해당한다. 아예 연발총으로 개조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리-엔필드의 채용으로 인해 철저히 묻혔다. (...)[25]
- 참조링크

3.9. 가헨드라 라이플 (Gahendra Rifle)


네팔 왕국의 가헨드라 슘셰르 장군이 마티니-헨리를 개량해서 만들었다.
원래 영국 측에서 네팔 왕국 군대에 영국제 무기를 공급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네팔은 멀기도 하거니와 지형이 너무 험한 나머지, 필요한 물량이 제때 공급되지 않았다. 네팔인들은 차라리 현지에 공장을 차리고 총을 찍어내는 게 낫다고 결정하였다. 근대 교육을 받은 몇 안되는 인사 중 하나였던 가헨드라 장군이 설계를 담당했다.[26] 가헨드라는 마티니-헨리가 생산 및 사용은 쉽지만 조립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27] 그래서 움직이는 부품들을 리시버에 직결하지 않고 별도의 방아쇠뭉치에 결속하여 쉽게 분해 조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 577-450 마티니-헨리 탄약을 사용한다. 명색이 국가 주도로 만든 무기인만큼 품질은 나쁘지 않다. 강선도 제대로 파여있어 명중률도 양호하고, 내구도 역시 영국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모든 부품이 100% 수제이므로 운이 나쁘면 호환이 안 될 수도 있다. (...)[28]
일단 공장을 차리긴 했지만 동력기관을 활용하지 못하고 운영은 장인들의 손에 의지했다. 그래서 생산속도가 매우 느렸으며, 가헨드라 라이플 생산을 개시한 뒤로도 영국은 계속 무기를 보냈다. 네팔군은 영국제 마티니-헨리 라이플과 가헨드라 라이플을 둘 다 쓰다가, SMLE가 나오자 45구경 소총을 전부 왕궁 무기고에 저장했다.
이렇게 쌓아두고 있던 구식 총기[29]를 2000년부터 외국 수집상에 팔고 있다. 상태에 따라서 500-1000달러 선에 거래된다.
- 참조링크

3.10. 마티니 카뎃 (Martini Cadet)


오스트레일리아 사관 생도들의 사격 훈련용으로 1891년에 개발. 엄청나게 큰 안전장치가 달려있다. (...) 전용 310구경 탄약을 사용한다. 모든 부품이 일반 45구경 마티니-헨리보다 작게 만들어져 호환이 안된다.

3.11. 카이베르 패스 복제품 (Khyber Pass Copy)


카이베르 패스 또는 카이베르 고개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싸제 총기 장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유명하다. 이들은 못 만드는 게 없다. 식민지 시절부터 냉전과 현대의 개인화기까지 복제하고 자기들만의 독창적인 무기들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품질은 복불복이다. (...)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이기도 한다.
2차 앵글로-아프간 전쟁 이후 영국군이 버리고 간 마티니-헨리 소총을 수선해서 쓰다가 아예 대장간에서 복제했는데, 수량이 꽤 많다. 복제품의 경우 현지인들의 취향에 맞게 블링블링한 (...) 아라베스크 장식을 한 것이 많다. 또한 단발식 권총 형식도 있다.
영국제 총의 각인을 흉내내어 찍은 것이 많은데, 대부분 각인 위치부터가 맞지 않는다. 철자를 틀리거나, 쓸데없이 여러번 찍거나,[30] 엉뚱한 각인을 찍기도 한다. 심지어 가늠자에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 대신 아무 알파벳이나 박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 심지어 이걸 '''권총화''' 한 물건도 있다(...)

3.12. 카불 조병창 생산분(Kabul Arsenal Production)


1880년부터 1901년까지 카불을 통치한 에미르 압둘 라흐만(Emir Abdul Rahman)이 영국인 기술자를 초빙하여 생산한 소총. 577-450구경 보병총과 기병총 둘 다 생산했다. 모든 각인이 아랍 문자로 되어있다. 공장제인만큼 카이버 패스 카피보다는 낫다고 간주된다.

3.13. 유탄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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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니 헨리의 몸체에 유탄 발사기를 결합한 것, 수는 얼마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류탄을 총류탄 집어넣듯 집어넣고 공포탄을 발사하여 수류탄을 발사한다.

4. 매체에서의 등장


배틀필드 1에서 정찰병의 주무기로 등장한다. 단발식인데다 연사력과 탄속 모두 저격소총 중 가장 느리지만, 근거리 피해량이 가장 강력하다. 때문에 아슬아슬함과 극단성이 묘하게 끝내주는 손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생형인 유탄발사기형도 3번째 DLC인 Turning Tides의 엘리트 병과 '잠입병'의 주무기로 등장한다.
커스터마이즈 화면에서 자세히 보면 마크 IV의 리시버에 마크 I/II/III의 레버를 달고, 포어엔드에는 마크 I/II의 핀과 마크 III의 후크가 둘 다 달린[31] 해괴한 형태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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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에서 세바스찬 모런이 마티니-헨리 소총에 특수한 소음기, 조준경 등을 장착한 이후 '''거의 600m 바깥에 있는 적을 사살했다.'''[32] 홈즈가 이런 실력의 소유자는 유럽에서도 6명밖에 안된다고 하는 것은 덤이다.
프로스트펑크의 마지막 가을에서 노동자의 인민의용군과 기술자의 보안요원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처형하는 장면이 있다.

5. 둘러보기







[1] 헨리 오 피바디는 이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피바디 소총을 개발한 전력이 있다.[2] 전시대의 트랩도어 소총인 스나이더-엔필드나 스프링필드 M1873의 연사력이 분당 10발이었는데, 동시대의 미합중국 제식 소총인 레밍턴 롤링블럭이 분당 13발이었으나 마티니 헨리는 그보다 조금 못미치는 분당 12발이다.[3] 볼트액션식이 아닌 단발식 소총들의 대다수는 장전후 외부의 해머를 당겨줘야 하지만 마티니-헨리 소총은 탄피 배출 과정에서 내부의 공이가 자동으로 코킹된다.(싱글 액션 자동권총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쉽다.)[4] 다만 영국군의 전열은 마티니-헨리의 등장 이전에도 2열횡대였다.[5] 장교가 더 이상 전열을 유지해서 순차사격을 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대열을 해쳐서 자유롭게 산발사격을 가하도록 지휘했는데, 총기의 명중률과 장전속도가 처참했던 머스켓 시대의 전열보병들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전투 방식이었다.[6] 마치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던 창병이 총검의 등장으로 일반 보병과 통합되어 사라진 것과 비슷한 변화였다. 다시 말해, 아직 기병돌격과 전열이 주요 전술 교리로 남아있던 이 시기의 마티니-헨리 사수는 창병+전열보병+산병의 역할을 혼자서 맡은 것이다.[7] 보어 전쟁에서 실제로 써먹었다.[8] 현대의 풀 메탈 재킷 탄환의 재킷 역할을 종이가 대신하는 식이었는데, 풀 메탈 재킷이 도입되기 이전의 다른 소총탄들도 대부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Gew71의 탄약인 11×60mmR이나 그라 소총의 11×59mmR, 버든 소총의 10.75×58mmR도 탄두를 종이로 감싸 탄피에 물리는 구조를 하고 있다.[9] 슈나이더 소총은 전장식 머스킷을 바탕으로 극한까지 개량한 것이어서 더 이상 개량의 여지도 없고, 총신도 많이 노후화된 상태였다.[10] 메인스프링, 트리거 스프링[11] 브리치블록, 방아쇠, 텀블러, 장전 레버, 익스트랙터, 파이어링 핀[12] Springfield 1873, Remington Rolling Block, Berdan, Gras 1874, Mauser 1871[13] 개머리판 뒤쪽에 대는 철판[14] 인산염 피막 처리. 비나 이슬에 녹슬지 않도록 해준다.[15] 단, 회수한 물량들은 생산성 제고를 위해 삭제한 부분들까지도 굳이 똑같이 없애지는 않았다. 이는 이후 모델들도 마찬가지.[16] 원래 행군중에는 실탄을 장전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전투 직전에 장교의 명령에 따라 장전했다.[17] 격발 준비 여부를 나타내는 물방울 모양의 부품. 리시버 우측에 붙어있다.[18] 왼손으로 받치는 목제 부속품[19] 이미 402구경을 6만 4천정이나 찍어낸 뒤였다.(...) 소총탄 구경을 바꾸는 일의 어려움은 구 일본군의 무기체계 참고[20] 마크 III까지는 리시버 위쪽에 타원형으로 오목하게 파놓은 부분이 있다. 딱 엄지손가락 지문만하게 파놓았다. 마티니-헨리 소총의 반동이 꽤 강하기 때문에, 엄지손가락을 손잡이 위로 걸쳐놓고 쏘면, 발사와 동시에 엄지손가락 관절로 콧구멍을 때리게 되어, 높은 확률로 코뼈가 부러진다. 그래서 제발 엄지손가락을 손잡이 오른쪽에 대고 쏘라는 의미에서 홈을 파놓은 것이다. 배틀필드 1에서 마티니-헨리의 독특한 파지법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홈의 위치가 은근히 불편했기에, 마크 IV부터 아예 리시버 뒤쪽을 몽땅 파버린 것이다. 덕분에 엄지손가락을 아무데나 올려둘 수 있다. 수집가들은 마크 IV가 못생겼다고 생각해서 마크 II가 더 비싸게 팔린다는게 아이러니.[21] 마크 III까지는 소켓식 총검과 단도형 총검 양쪽 다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두가지 총검을 동시에 장착하는 것은 불가능.[22] 예를 들어 포병용 카빈은 총신이 짧은 대신, 보병용 총검보다 훨씬 긴 총검을 달아서, 총검전에서 보병에게 지지 않도록 했다. 기병용의 경우 총검 장착돌기가 아예 없다. 말 위에서 쉽게 다루려면 무게중심을 조금이라도 뒤로 빼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 위에서 편히 휴대할 수 있도록 멜빵고리 위치가 다르다.[23] 대부분의 그리너 샷건이 12게이지로 개조되어 팔리고 있다.[24] 보병용 마크 I에 달린 것과는 다르다.[25] 그러나 마드센-라스무센 1896, 마드센 경기관총등이 이와 유사한 작동방식을 채용하여 그 명맥이 이어졌다.[26] 가헨드라는 독자설계의 수동식 기관총 비라 건(Bira Gun)을 만들기도 했다.[27] 총을 완전 분해한 뒤 다시 조립하려면 4개의 움직이는 부품을 동시에 붙들고 짜맞추어야 한다. 하나씩 리시버에 꽂아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다시 시도해야 한다. 사실 브리치블록을 제외한 모든 부품을 조립한 뒤 브리치블록을 마지막으로 끼워 넣는 게 표준교범이지만 이것도 한참 붙들고 씨름해야 겨우 들어간다.(...)[28] 일단 인치 규격을 썼기에 웬만하면 호환된다.[29] 무기가 구식화될 때마다 왕궁 무기고로 보내기를 200년 이상 반복한 결과 무려 430톤, 트레일러 30대 분량이었다고.[30] Forgottenweapon에서 ENFIELDENFIELDENFIELD(엔필드엔필드엔필드)제 명품을 소개하는 장면이 압권이다.(...)[31] 이 두 가지 부품은 동시에 달릴 이유가 없다.[32] 그 시절에 600m 저격이라면 대단한 실력이다. 모런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