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엔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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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사용된 영국군의 주력 볼트액션 소총이다.
2. 상세
2.1. 역사
Forgotten Weapons의 리-메트포드 Mk.I 리뷰 영상
Forgotten Weapons의 리-메트포드 Mk.I* 리뷰 영상
미국의 총기 설계자인 제임스 패리스 리(James Paris Lee)는 1880년대 후반 당시 최고의 볼트액션 소총이었던 마우저 소총을 연구하여, 마우저 소총의 장전 손잡이보다 적게 움직이고도 장전이 가능한 작동 방식과 탈착식 박스 탄창을 골자로 하는 신형 소총을 미 육군에 제안했지만, 미군은 이를 거절했고 리는 영국에 건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피력했다. 리의 설계는 마침 단발총에서 벗어나 신형 연발총을 가지고자 했던 영국 육군의 흥미를 끌었고, 리의 작동기구에 영국의 총기 기술자인 윌리엄 엘리스 메트포드(William Ellis Metford)가 설계한 7조우선 총신을 결합하게 되는데 이것이 1888년 리-메트포드 소총이다. 1893년 Mk.II부터 8발 단열탄창에서 10발 복열탄창으로 변경되었다.[1]
그러나 이미 1886년에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무연화약을 쓰는 소총 르벨 M1886를 내놓았고, 리-메트포드가 개발된 1888년에는 독일도 최초의 무연화약식 연발총 Gew88[2] 이 등장하는 바람에 흑색화약을 사용하는 리-메트포드는 완성되자마자 구식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에 1891년, 리-메트포드의 .303(7.7 mm)탄과 거의 같은 규격에 장약을 무연화약으로 바꾼 .303 브리티쉬 탄이 등장하지만, 흑색화약에 맞춰 설계된 메트포드의 총신은 신형탄을 견뎌 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엔필드 조병창에서 총신을 재설계하여 리-메트포드를 개량하고, 드디어 리-엔필드가 탄생한다.
2.2. 특징
리-엔필드는 볼트액션 소총 중에선 연사력이 매우 빠른 편이다.[3] 1차 세계대전에서는 우수한 속사능력을 발휘하여 한때 독일군이 영국 육군의 기관총 보유수를 잘못 계산할 정도의 위력을 보여 주었는데, 전간기 기간 동안 영국도 미국이나 소련처럼 신형 반자동소총 개발에 뛰어들었으나, 대전 후 경제 악화와 곧이어 불어닥친 대공황, 그리고 거대 해군과 신생 공군을 위해 육군의 예산이 삭감되는 등 여러 문제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리-엔필드의 개량으로 선회했다.
다만, 리-엔필드 소총의 이런 빠른 발사속도는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리-엔필드 소총은 빠른 발사속도를 얻기 위해서 볼트의 고정 돌기를 이전의 다른 소총과는 다르게 볼트의 중간에 달아 놓았다.[4] 또한 노리쇠의 회전 각도를 줄이기 위해 고정 돌기가 살짝 '''걸치는''' 수준으로 만들어 놓았다.[5] 요즘에도 흔히 사용되는 '마우저식' 노리쇠와는 다른 디자인으로 마우저 사는 안전성을 위해 노리쇠 머리의 고정 돌기 2개 외에도 후방에 안전을 위한 돌기를 하나 더 추가한 데에 볼트가 90도로 완전히 회전해야만 풀리게 해 놓아 폐쇄성이 아주 좋고 안정성이 높았다.[6] 때문에 볼트액션 소총의 대세로 사용된 반면, 리-엔필드의 이러한 구조는 사용함에 따라 고정 돌기가 다른 소총보다 심하게 마모되고, 고정 돌기가 없는 볼트 머리에서 가스가 샐 수 있다. 또한, 볼트가 잘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약실 내 탄피의 고정에도 영향을 주므로[7] 명중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빠른 사속을 얻기 위해 내구성을 희생하여야 했기 때문에 지금도 문제 없이 잘 맞추는 당시 생산된 게베어 98에 비해 현재 남아있는, 특히 영국에서 생산된 리-엔필드들은 고정 돌기의 마모가 심하여 명중률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8]
이 부분 외에도 볼트 부분에 후퇴 스프링을 장치하여 볼트 고정을 풀 경우 부드럽게 '''튕겨'''나오도록 한 설계도 장전 속도에 영향을 주었지만, 이 구조는 당시의 다른 소총들도 종종 채택하곤 하였으므로 리-엔필드 만의 특징이라고 보긴 어렵다.
빠른 발사속도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건 아니지만, 1차 세계대전 당시 제식 소총들 중에선 드물게 탄창이 탈착식이었으므로 한 발을 약실에 넣은 후 10발이 든 탄창을 끼워서 총 11발을 사격 하는 기술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탈착식 탄창이 한 병사가 여러 개 가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인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병사들이 탄 클립으로만 장전했고, 탄창은 정비할 때나 잠깐 빼두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니 말 그대로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지 실전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9]
2.2.1. Mad Minute
1차대전 당시 병사들은 분당 20~30발 정도 쏘도록 훈련받았으며, 1분 동안 사격해서 300야드(270m) 거리에서 12인치(30cm) 표적에 15발 이상 적중시킬 것을 요구 받았다. 이를 영국군 보병들이 '광란의 1분(Mad Minute)'라고 불렀다. 최고 기록은 1914년 기록된 분당 36발이다. 그냥 쏘기만 한 것도 아니라 300야드 거리의 30cm 표적에 38발을 맞춘 것이다.[10]
이는 제임스 패리스 리가 리-메트포트 소총의 기본 설계에서부터 속사에 적합하게 만들었기도 하고, 영국 육군의 훈련 체계가 속사를 우선시하여 이루어진 점, 그리고 세계대전 직전에 보어 전쟁을 치러 실전으로 숙련된 고참병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볼트액션 소총들은 90도 장전 손잡이를 돌려야 장전이 가능했으나 리-엔필드는 내구성을 조금 희생하고 60도만 돌려도 되고 조작감이 부드러운 구조를 사용했다.# 이때 오른손은 그립을 아예 파지하지 않고 장전손잡이를 상시 잡고 있는 상태에서 검지보다는 중지를 이용해 방아쇠를 당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가혹한 전장 환경 덕에 1914년 말 쯤에 와서 고참병들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병원 행이 되어 버리자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위 동영상에서도 숙련자가 쏘는데도 중간에 한번은 실수로 노리쇠를 놓치는 걸 볼 수 있다. 게다가 다른 Mad Minute 챌린지 동영상을 보면 관리 상태가 안 좋은 리-엔필드들은 노리쇠가 상대적으로 자주 걸려서 연사가 늦어지는 것을 볼 수도 있다.
최고 기록에 대해선 영국의 프로파간다라는 의혹이 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적고 최고 기록에 대한 내용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 업로더가 편파적으로 설명을 덧붙이긴 했지만, 최고 수준의 슈터들이 300야드의 반 남짓한 150m에서 특수 개조된 소총으로도 저 정도 성적밖에 내지 못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11]
리 어메이 중사[12] 와 영국인 개리 아쳐의 사격 대결을 보자. 스프링필드 M1903와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 모습을 보이며 리 어메이 중사도 말하기를 "내 스프링필드는 너무 뻑뻑하지만 개리의 엔필드의 볼트는 굉장히 부드럽다"라고 한번 언급하기도. 둘이 볼트 당기는 속도를 보면 확연히 엔필드 쪽이 빠르다.[13] 그래도 반자동 소총 개런드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14][15]
3. 종류
3.1. No. 1 Mk I M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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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롱 리-엔필드(Long Lee-Enfield). 8연발인 리-메트포드에서 2발 늘어나 10연발인 점을 제외하면 외형이 거의 똑같았다.
1899년 발발한 보어전쟁에 투입되어 실전을 경험했는데, 이때 영국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리-엔필드의 성능문제가 대두되었다. 사실 총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기보다는, 현지상황에 밝지 못했으며 전장의 환경이 기존과 완전 다르다는 점을 빠르게 인지하지 못한 영국군의 지휘부, 그리고 효과적으로 게릴라전을 벌인 보어군과 보어 민병대의 활약이 원인이었지만, 아무튼 리-엔필드 Mk I MLE는 아래의 Mk III SMLE로 개량된다.
3.2. No. 1 Mk III SM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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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ickok45의 SMLE Mk III 리뷰 영상.
일명 '''SMLE'''('''S'''hort, '''M'''agazine '''L'''ee-'''E'''nfield). 1차대전기 영국군 주력소총. 길이가 14cm 정도 짧아졌고, 착탈식 박스탄창을 빼지 않고도 노리쇠를 후퇴고정시킨 뒤 직접 탄 클립으로 장전할 수 있게 개량되었다.
1차대전 중 생산된 SMLE Mk III는 탄창 차단기를 조작해서 탄창을 쓰지 않고 단발로 사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느긋하게 한 발씩 손으로 약실에 밀어넣고 장전해가면서 쏘다가 급할 때에만 스위치를 누르고 탄창에 있는 10발을 쓰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었는데, 속사를 하게 되면 탄 소모가 늘어나 보급이 어렵고 명중율도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1차대전을 거치며 당연히 쓸모없는 기능이라는것을 알게 되었고, 이 부분이 삭제된 모델을 제작했다. 이 모델은 장거리 명중률을 위하여 후방 가늠자 또한 개조하여 생산하였는데 SMLE Mk III와 내부구조는 완전히 동일했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 *를 붙여 SMLE MK III*로 표기한다.[16]
저격용으로도 사용되었는데, Aldis제 M1916 조준경을 달았다.
호주군은 SMLE No. 1 Mk III*를 매우 오래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호주군은 이 소총을 영국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개량하여 사용하였다. 호주군은 여기에 중총신과 망원조준경을 부착하여 저격용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를 SMLE No. 1 Mk III*(HT)[17] 라 부르며 저격용으로 베트남 전쟁 기간까지 사용하였다.
3.2.1. Rifle No. 2 계열
Forgotten Weapons의 No. 2 Mk.IV* 리뷰 영상
1차대전을 거치고 영국군은 일부 SMLE를 훈련용으로 .22구경 탄을 사용하게 개조한 모델이다. 기존 총열 내부에 .22구경용 총열을 끼워 다시 가공한것으로 기존의 탄창은 내부를 완전히 제거한 더미를 붙여놓았다. 따라서 이 총은 별도의 급탄 기구가 없이 .22구경 탄약을 장전하여 사용하는 단발총이다. 영국군은 구별을 위하여 기존의 .303 브리티쉬 구경의 Mk III SMLE를 Rifle No. 1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이 총에 No. 2를 붙였다. 참고로 No. 3는 P14 소총이다.
3.2.2. No. 1 Mk IV
영국군은 Rifle No. 1 Mk lll* 을 새롭게 개량할 필요가 있었는데, Rifle No.2는 어디까지나 훈련용이었으므로 일련의 실험작을 새로 제작하여 기존 Mk III SMLE를 대체하려 했다. 그중 이 Mk IV는 '''배틀 사이트'''라 불리는 신속조준이 가능한 신형 가늠자를 장착한 버전으로, 독특하게도 탄창 차단기를 다시 설치하였다. [18]
3.2.3. No. 1 Mk V
Forgotten Weapons의 Mk V 리뷰 영상.
Mk V는 기존 SMLE의 생산비 절감을 위해 볼트 부분과 제작 난이도가 높은 부품들을 간략화 하였고, 명중률 향상을 위히 후방 가늠자를 총 후방 볼트 손잡이 위쪽으로 옮긴다. 이 개량은 높은 명중률 향상효과를 가져와 영국군은 Mk V를 정식 채택하여 사용하게 된다.
3.2.4. No. 1 Mk VI
Forgotten Weapons의 Mk VI 리뷰 영상.
위 Mk V의 개량형으로, 프리플로팅 중총열을 장착하여 더욱 명중률을 끌어올렸고, Mk IV처럼 탄창 차단기를 다시 달았다. 1,000정 가량이 생산되었다고 한다.
3.3. Rifle No. 4 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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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ickok45의 No. 4 Mk I 리뷰 영상
hickok45의 No. 4 Mk II 리뷰 영상
No. 1 Mk VI 기반의 개량형.
기존 영국군의 보유 소총은 대부분 Mk III와 Mk V 모델로 SMLE 계열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1940년 됭케르크 철수작전으로 대부분의 소총들을 프랑스에 버리고 오게 된다.[19] 영국군은 기왕 새로 만드는 김에 Mk VI 기반의 새로운 소총을 개발하기로 하고 1941년 공식적으로 도입하기로 한다. 이것이 Rifle No. 4이다. No. 4는 소수 생산된 No.1 Mk VI를 더욱 개량하여 대량생산에 적합하도록 변경하였다. 기존 SMLE의 외형적 특징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고, 탄창 차단기는 다시 삭제되었다.
1954년에 L1A1 SLR이 공식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 No. 4 소총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한국전쟁에서도 사용되었고, L1A1 SLR 채용 이후인 1956년에 생산이 종료되었다.
파생형으로 2차대전 중에도 더욱 간략화하여 생산성을 끌어올린 No. 4 Mk I*, 방아쇠를 개량하고 총몸을 간략화시킨 Mk II가 있다. 또 기존의 No. 4 Mk I 소총에 이 Mk II 총몸을 적용한것을 Mk I/II, Mk I*에 Mk II 총몸을 적용한 것을 Mk I/III라고 불렀다.
3.3.1. No. 4 Mk I(T)
Forgotten Weapons의 No. 4 Mk I(T) 리뷰 영상
저격용으로, T는 '''T'''elescopic Sight(망원조준경)의 약자. 망원조준경을 장착한 모델이다.
3.4. No. 5 Mk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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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hickok45의 No. 5 Mk I 리뷰 영상
제2차 세계 대전 중 위의 No. 4 계열을 동남아시아의 정글전을 위해 개조한 단축형이다.
휴대성을 위해 기존의 No. 4 소총을 짧고 가볍게 만들고, 총구에 소염기를 단 모델이었다. 그러나 반동이 강하고 소염기가 장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총구화염이 심해서 그다지 평가가 좋지 못했다.
이 소총은 '정글 카빈(Jungle Carbine)'이란 별명으로도 불리는데, 이것은 대전후 이 모델이 미국 민간 총기시장에 수출되면서 미국 수입업자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2차대전기 동남아시아 이외에도 6.25 전쟁에서도 쓰였다.
3.5. Rifle No. 6
Forgotten Weapons의 호주 SMLE 카빈 리뷰 영상
Forgotten Weapons의 이샤포어 No. 6 리뷰 영상
1956년 영국의 리-엔필드는 생산이 종료되었으나, 그보다 좀 더 오랫동안 호주와 인도에서 리-엔필드(그것도 1차대전 모델인 SMLE!!)가 계속 생산되었다. 호주에서는 실험적으로 SMLE No. 1 Mk. III*을 기본으로 위의 No. 5 Mk I를 제작했는데 이것을 Rifle No. 6라 불렀다. 이 소총도 일부 2차대전 중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대 전쟁사진에서 보이는 SMLE는 중동 암시장에서 입수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이 총일 가능성이 크다.
3.6. L42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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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otten Weapons의 L42A1 리뷰 영상.
L1A1 SLR의 보급 후 도태된 리-엔필드 소총 중 명중률이 좋은 소총을 골라 만든 저격용으로, 7.62×51mm NATO 탄을 쓰도록 개조되었다.
개발 후 저격용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나,[20] 총 자체가 오래되어 포클랜드 전쟁 이전부터 수명으로나 성능으로나 총 자체가 한계에 달했다는 평가를 받아, 영국군은 신형 저격소총 사업을 펼쳤고, 포클랜드 전쟁을 치르면서 L96A1 등으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4. 파생형
4.1. 하웰 자동소총 (Howell Automatic Ri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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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영상의 9분 44초부터 사격 장면이 나온다.
1915년 처음 등장한 리-엔필드를 개조한 반자동소총. 볼트액션을 자동화기로 개조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나라에서 행해졌지만, 하웰은 1차 대전 물건으로 이른 시기에 등장한 것들 중 하나이다.
1차 대전기에 개발된 물건이므로 주류가 볼트액션 소총이던 당대의 소총 중에서는 혁신적인 물건이지 않느냐 혹은 일반 반자동 소총의 단점인 낮은 명중률을 커버하는 소총이 아니냐, 왜 도입하지 않았느냐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위 동영상의 화자가 말했듯 당대 영국군의 교리상 반자동 소총은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보병 분대의 주요 화력은 루이스 경기관총과 수류탄이 맡았으므로 어중간한 반자동 소총은 설 자리가 없었다.
총열에 가스 포트를 붙여 뒤쪽의 노리쇠까지 닿는 가스 피스톤을 외부에 설치했다. 피스톤 끝에는 기존의 노리쇠 손잡이를 조작하는 캠이 달려 있어 피스톤의 단순 왕복운동을 회전 및 왕복으로 전환함으로서 사람의 손을 대신해 빠른 속도로 차탄을 장전하는 단순한 컨셉이다. 처음부터 반자동이나 자동으로 개발된 소총들과 달리 리-엔필드는 볼트액션 소총이므로 반자동 사격을 위한 기구가 일체 들어갈 공간이 없어 외부에 설치한 것이다.
수동이었던 노리쇠를 자동으로 강제 조작함에도 불구하고 신뢰성은 훌륭했다고 기록된다. 기존 리-엔필드를 필요한 만큼만 개조했으니 대부분의 부품이 호환되거나 약간의 가공을 통해 전용할 수 있어[21] 가격도 싸고 유지보수도 수월했지만, 군이 반자동 소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대량채용을 거절한 것이 이 총의 주요 실패 요인이었고, 사수의 입장에서도 그닥 편한 총은 아니었다고 한다.
- 조준기가 옆으로 치우쳐 있다. 이는 볼트액션을 개조한 태생적 이유 때문인데, 노리쇠가 자동 왕복운동을 하기 때문에 기존의 조준기를 그대로 사용하면 사수의 얼굴에 고속으로 후퇴하는 노리쇠가 그대로 날아온다. 이 때문에 노리쇠의 후퇴지점인 개머리판에 가림판이 설치되었고, 조준기는 왼쪽으로 연장되어 왼손잡이도 오른손으로 사격하도록 강제되었다.
- 마찬가지 이유로 손잡이 또한 새로 만들어야 했다. 볼트액션은 자연스레 오른손이 사격 위치에서 떠나 노리쇠를 조작하지만, 반자동인 하웰은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손은 계속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노리쇠는 자동으로 왕복한다. 새 손잡이는 단순한 철제 파이프로 연장되어 이전과 상당히 다른 자세를 요구했다.
- 기묘한 방아쇠도 불만거리였다. 약간만 전진했다 당기면 바로 차탄이 발사되는[22] 여타 자동화기들과 달리 하웰은 원활한 작동을 위해 일부러 발사속도를 늦추고자 방아쇠를 무조건 완전히 전진해야 차탄 발사가 가능하도록 개조되었다. 특이하게 굽어 손가락을 완전히 감싸는 방아쇠 형태는 이 때문에 만들어졌다.
4.2.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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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tern 1913 Enfield. 기존 리-엔필드 SMLE를 대체하기 위해 마우저 7.92mm 탄과 마우저 계열(특히 Gew98) 소총을 모방한 .276(7mm) 엔필드 림리스(Rimless) 탄과 같이 개발한 소총.
신형 소총과 탄약은 개발이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 순조롭게 주력화기의 교체가 이루어지나 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말았다. 1차대전이 터지면서 생산라인조차 갖추지 못한 .276(7mm)탄의 교체가 순조로울 리가 없었다. 이미 영국군 대부분의 소총 및 기관총들이 .303 브리티쉬 탄에 맞춰 있었기 때문에 이 신형 탄약은 전쟁통에 그 생산계획 자체가 폐기되고 말았다. 따라서 기존 생산한 P13을 개량하여 기존 탄약에 맞춰 다시 생산하게 되었는데 제작의 대부분을 미국 회사에 맡기면서 라인 자체가 심하게 꼬여버린다. 각 부품들의 치수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이런 총기는 말썽을 일으키기 일쑤였고, 리-엔필드의 넉넉한 장탄량와 빠른 속사능력이 주목을 받으면서 명중률도 높고 내구성도 훨씬 뛰어났던 P13은 도태되고 말았다. 따라서 영국군은 기존의 리-엔필드 소총을 계속해서 사용하였고, 1차대전의 참호전에서 적당한 신뢰성과 내구성을 보임으로써 신형소총 계획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제작된 P14는 그 높은 명중률 때문에 저격용으로 돌려지게 된다.[23]
4.3. 터너 SM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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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미국에서도 SMLE를 반자동화 시킨 모델이 있었는데, 바로 이것. 미국의 러셀 터너라는 사람이 캐나다군에 판매하기 위해 SMLE의 내부구조를 뜯어고쳐 반자동소총으로 만든 물건이다. 개발자 이름을 따서 터너 SMLE라고 한다.
위의 하우웰과는 달리 제대로 반자동으로 개조한 물건으로, 신뢰성 테스트 당시 M1 개런드보다 뛰어난 신뢰성을 보였지만[24] 복잡한 내부구조로 인해 채용되지는 않았다.[25]
4.4. 찰튼 자동소총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위의 하우웰이 단순히 반자동이라면 이건 아예 자동화기로 개조해버린 흠좀무한 물건. 1941년 영연방의 먼 변방 뉴질랜드도 일단 전쟁중은 전쟁 중이어서 유럽에 안작으로 파병도 하고 나름 일본의 침략에도 호주와 함께 ANZAC사단으로 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영연방에서 흔히 쓰이던 루이스 경기관총이나 Bren은 나치랑 싸우느라 코가 석자인 본국에서는 유보트가 득실거리는 바다를 건너 이것들을 지원해주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필립 찰튼(Philip Charlton)이라는 양반이 구닥다리 고물 리-메트포드 소총과 리-엔필드 소총을 짬뽕해서 비상시에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한 반자동 소총을 만들었다. 10발 짜리 리-엔필드 탄창이나 Bren의 30발들이 탄창을 쓸 수 있다. 이것도 두가지 버전이 있는데 뉴질랜드 찰튼 자동차 공업소(...)에서 생산된 버전[26] 과 호주에서 SMLE Mk III*를 개조해서 만든 버전이있다. 뉴질랜드에서 1942년 부터 종전까지 대충 1500정 정도가 만들어졌는데 전쟁 직후에 창고에 불이 나서 죄다 태워먹었다.(...) 런던의 전쟁기념관과 뉴질랜드, 호주의 군사 박물관에 한정씩 살아있다.
4.5. 리더 자동소총
뉴질랜드의 찰턴 자동소총처럼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 연방에서도 리-엔필드를 자동소총으로 개조해서 사용한 기록이 있다.
4.6. 이샤포어 2A, 2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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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샤포어 2A1 리뷰 영상
인도는 1980년대까지 12연발 7.62mm NATO탄 버전인 Rifle 7.62mm 2A/2A1, 일명 이샤포어 엔필드를 생산했다. RFI Rifle 7.62mm 2A/2A1로도 불린다. 일반 리-엔필드와 거의 같은 형상에 탄창이 .303 버전보다 각진 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저격용 영국제 L42A1과는 총몸으로 구분 가능하다. L42A1은 총열 하부에 있는 총열덮개를 팍 깎아놔서 차이가 크다.
지금도 경찰이나 후방부대에서 사용중이며, 2008년 뭄바이 테러사건 때 인도 군경이 들고 다니는 것이 TV나 신문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와 함께 리 엔필드를 제식 사용하는 가장 긴 케이스. 그리고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여전히 많지는 않지만 군/경,민간인들이나 무장집단의 손에 남아있다고 한다. 구하기 어려운 .303탄보다 싸고 익숙한 7.62mm NATO탄을 쓰고 탄창 또한 탈착식을 써서 편했으며, 속사능력과 신뢰성 좋은 엔필드 기반인 점 때문에 나름 민간인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는 모델이다. 캐나다 북극 경비대에서도 사용한 경력이 있다. 리-엔필드 No. 4 .303탄 버전 캐나다 생산품을 41년부터 근래까지 마르고 닳도록 써먹다가 드디어, 마지못해 바꿨는데, 극지방에선 아무래도 신뢰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 이라는 점도 있고 사실 캐나디언 레인저가 총을 쏜다면 쏠 대상이 AK 갈기는 적이 아니라 북극곰 같은 게 되다 보니 차라리 이게 낫다는 보수적 입장도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인도군에서는 FN FAL을 주력으로 쓰기로 했지만 생산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땜빵으로 만든 것인데, 이때문에 이샤포어 2A1은 정규군에서 일반 보병용으로 제식 채용된 최후의 볼트액션 소총이다. 저격총 볼트액션이라든지 민수용 볼트액션이야 이후에도 계속 등장하지만, 일반 보병용 소총으로서는 이샤포르 리-엔필드가 최후. 공업력이 딸리는 인도제라서 성능이 별로일 거 같지만, 사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이 세운 공장에서 영국이 구할 수 있는 좋은 철과 최고의 열처리 기술로 만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구형 .303 브리티쉬 소총보다 품질은 더 좋았다.
민수 시장에서 서플러스로도 팔린다. 서방 세계에서 흔하고 현재도 널리 쓰이는 7.62mm NATO탄을 쓰기 때문에, .303 버전보다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303 탄이 요샌 잘 안 쓰이다보니 탄 가격이 저렴한 7.62mm NATO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점도 2A1이 매력적인 점. 게다가 볼트액션 소총이면서 탈착식 탄창을 가졌고, 장탄수 12발이다. 리-엔필드의 전설적 연사속도야 잘 알려진 것이고, 그러면서도 저렴한 서플러스 총이라, 현재 사용되는 상당수 민수용 볼트액션 사냥총보다 오히려 매력적인 면도 있다.
다만 군용 7.62mm NATO 탄과 민수용 SAAMI 규격 .308 윈체스터 탄은 탄의 체적이 약간 다르고, 민수용 .308 윈체스터 탄이 좀 더 강한 편이기 때문에, 이샤포르 리-엔필드에는 민수용 .308을 쓰면 좋지 않다. 물론 2A1의 열처리가 월등해서 내구도가 좋아 충분히 버티긴 하는데, 7.62mm NATO와 .308 윈체스터의 탄피 사이즈의 미세한 차이 때문에 탄피가 슬쩍 부풀어 오르는 불안한 모습이 종종 보이기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는 민수용 서플러스 물량이 떨어져가며 가격이 슬슬 오르고 있어서, 흔해 빠지고 아직 저렴한 모신나강에 비하자면 보기 쉽지 않다. 2015년 시점에서 300달러 내외의 가격. 건쇼에서 직거래하면 250달러 정도로도 살 수 있을 것이다. 모신나강은 그 반값~2/3 가격 정도로 살 수 있고 서플러스 탄도 더 싸기 때문에, 가성비로는 모신나강에 훨씬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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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에 발생한 뭄바이 연쇄 테러 당시 출동한 인도 경찰 중 상당수가 이 이샤포어 2A1로 무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 때문에 개인 화력이 밀려서 테러의 초동진압에 실패했다는 의견이 강하다. 인도 경찰의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
4.7.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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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도에선 좀 특이한 개조를 한 물건이 있는데, 남아돌다 못해서 썩어 문드러지는 리-엔필드의 재고를 이용해 후장식 단발 활강 머스킷(산탄총)을 만들었다. 이는 경찰과 교도소 경비들을 위한 특수하게 제조된 개조품이었는데, 탄창이 있던 부분은 나무 플러그로 막아버려 쓸 수 없게 하고 .410 인디안 머스킷(Indian Musket)이라는 전용 탄약을 사용했다.
이 .410 인디안 머스킷이라는 탄약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410 샷쉘이 절대 아니다!''' 교도소 폭동 등으로 탈취당하거나 도둑맞아 흘러나가더라도 재사용이 어렵도록, .303 라이플 탄피를 조금 자르고 주둥이를 넓혀 만든 탄약이었다. 그래서 탄피 전체가 황동 탄피이며, .410 샷쉘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기에 호환성이 아예 없다. 상업용 .410 산탄과 구분하기 위해 보통 .410 I 라고 표기한다. I는 Indian이나 Ishapore의 약자.
나중에 군수물자를 민간 불하로 팔려나가면서 이렇게 개조한 리엔필드 머스킷도 민간시장에 팔려 나갔는데, 이쪽에서는 경찰에서도 소량만 보유하고 있던 .410 인디안 머스킷 탄을 구할 수 없기에 다시 총신을 개조해서 상업용 .410 산탄을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하거나, .410 인디안 머스킷 탄의 탄피에다 리로딩을 반복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이렇게 흘러나간 리-엔필드 샷건은 단발총이지만, 리-엔필드가 탄창이 달려있던 흔적이 있다보니 탄창을 틀어막은 나무 플러그를 뽑고 SMLE 탄창을 끼워 다시 연발총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그냥 SMLE 탄창을 달아선 소용 없고 개조를 하거나 산탄이 들어가는 특수 제조 탄창을 써야 했다.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차 및 2차 세계대전 당시 영연방군이 등장하는 매체에서 주로 등장한다. 대체로 워 호스나 덩케르크 같이 1차 세계대전 ~ 2차 세계대전 초반을 다루면 No. 1 Mk III 혹은 No. 1 Mk III*가 등장하고, 머나먼 다리처럼 2차 세계대전 중반 이후를 다룬다면 No. 4 Mk I이 자주 등장한다.
5.1. 게임
사냥용 소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5발 이상 쏘고 재장전할 시 클립을 넣고, 그 이하를 재장전할 시 한 발씩 넣고, 6발 이상 쏘고 재장전하면 클립을 넣은 후 다시 1발씩 넣는 등 고증이 잘 되어있다. 더럽게 쓰기 어려운 활과 다르게 조준만 잘 하면 사슴이나 늑대는 한 방이다.[27] 그러나 정조준이 필요하기에 달려드는 늑대를 쏴 맞추기는 어렵다.
전술성 병력 영웅인 영웅 퍼싱이 사용한다.
클립으로 10발을 한꺼번에 넣는 장전액션이 인상적이다.
No.4 Mk I이 영국군의 볼트액션 소총으로 등장. 같은 볼트액션 중에선 연사력도 가장 빠르고 장탄수도 많다. 총류탄을 부착하면 1950년대에 개발된 대전차 총류탄을 사용한다.
공식 모드인 히어로즈 오브 더 웨스트에서 No. 4 Mk I이 영국군의 기본 무기로 등장한다. 볼트액션 치고 빠른 연사속도와 10발들이 탄창을 그대로 구현하여 볼트액션계의 최강자가 될 뻔...했으나, 어느 쪽이 조준점인지 모를 괴상한 가늠자 때문에 조준하기 어려운 점이 장점을 죄다 까먹는다. 하필이면 다른 무기들마저 성능이 영 좋지 않아서 화력 부족에 시달리는 영국군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
볼트액션 소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무려 5500년대까지 살아남은 장수만세 무기. 3인 스타트 시 기본적으로 하나 주며 테크가 낮아 초반부터 제작 가능하다. 사거리가 길고 대미지가 높아 야생동물 사냥용으로 좋지만 물량의 적들을 상대할 때는 볼트액션이라 연사화기에 밀린다.
연합군의 볼드액션 소총으로 No.4 Mk I이 등장. 타 국가의 볼트액션 소총을 구현을 안해서 미군과 소련군 또한 리-엔필드를 사용한다.
SMLE Mk III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싱글 플레이에선 영연방군의 제식소총으로 등장하며 멀티 플레이에선 정찰병의 기본 소총으로 등장한다. 특이하게도 SMLE 카빈형은 시제 반사 조준경을 달고 있으며, 막스맨은 다른 막스맨 버전 소총들처럼 스프링필드 M1903이나 M1917 엔필드에 달릴 만한 미국제 M1913 조준경을 달고 있다. SMLE는 균형잡힌 성능과 우월한 장탄수 덕분에 "종언" DLC가 나오기 전까지는 사실상 정찰병과의 표준 무장이었다. 이후 장탄수 5발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쓰기 편한 로스 소총이 등장하면서 표준 무장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장탄수가 5발 많다는 장점은 여전히 존재해서 로스 소총과 함께 가장 많이 쓰이는 무장이다.
마지막 DLC "종언"에서 리엔필드를 반자동으로 개조한 하우웰이 의무병 무기로 나왔다.
마지막 DLC "종언"에서 리엔필드를 반자동으로 개조한 하우웰이 의무병 무기로 나왔다.
위의 터너 SMLE가 돌격병용 반자동소총으로, No.4 Mk I이 정찰병의 볼트액션 소총으로, 업데이트를 통해 No.5 Mk I이 의무병 볼트액션 카빈으로 등장.
No. 4 Mk I(T)가 5성 소총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건 리엔필드(소녀전선) 참조.
영국군의 기본 보병인 인펀트리 섹션, 일명 토미가 기본 무기로 사용한다. 엄폐 시 연사력이 빠른 편이다. 하지만 이동사격 시 명중률 보정이 35%로 절대 돌격용으로 쓰면 안된다.
코만도 대원의 동맹국인 연합군의 무기로 나온다. 특히 '스미스 일병 구하기' 미션 등에서 연합군이 사용하는데 무려 무한탄창이다.
영국군이 나오는 모든 시리즈에 등장한다. 당시 볼트액션 치고는 빠른 볼트 조작 속도와 10발이나 들어가는 탄창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콜 오브 듀티 1의 한글판에선 '리 앙필드'라고 나왔다.
No. 4 Mk. I(T)가 저격소총으로 등장했는데, 뭐 때문인지 총 안에 남아있는 총알 숫자에 상관 없이 5발 클립 1개만 넣으면 무조건 10발로 가득 찬다. 스코프를 달아도 클립으로 장전하는 것은 덤. 이후 업데이트로 찰튼 자동소총이 NZ-41이라는 이름으로 추가되었다. 10발짜리 리-엔필드 탄창을 사용하는데 24발이 장전되는 기묘한 물건.
2017년 아레나 뽑기에서 나오는 스나이퍼 병과 주무기로 SMLE No. 1 Mk. 3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한 클립에 5발씩 들어가는 건 잘 구현했지만, 오히려 남은 탄 상관 없이 무조건 5발 클립을 쓰기 때문에 장탄수 증가 아이템을 달아서 장탄수가 11발 이상으로 늘어나면 5발 클립을 3개나 집어넣는 괴상한 상황까지 나온다.
5.2. 그 외
1차 대전 영국군 제식소총으로 주인공을 비롯 영국군이 사용하는 소총으로 나온다.
영국군이 들고 나온다. 1940년 덩케르크가 배경인 영화 배경 상, No. 4 Mk I 소총이 배치되기 전이기 때문에 모두 No. 1 Mk. III SMLE를 들고 다닌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 토미가 속한 영국군 분대가 독일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을 때, 토미가 나름대로 응사를 하지만 독일군의 화력에 놀라서 총을 버리고 달아나는 장면, 해변에서 슈투카 공습으로 아비규환인 상황에서 한 병사가 리-엔필드로 대공사격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실제로 그랬듯, 다이나모 작전이 성공한 후 보여주는 빈 해변에 이 총들만 덩그러니 놓여있다.[28]
무자헤딘이 사용한다.
미 해병대의 주무장으로 나온다... 미군이 쓴 적도 없는 무기란 건 둘째치더라도, 시대 배경을 고려하면 M1885 레밍턴-리 같이 19세기 말에 나온 구식 소총들이 적절하겠으나, 이 작품은 대한제국 관군이 Gew71은 버리고 M1 개런드를 들고 나오는 드라마다. 자세한 건 고증 관련 문서 참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을 모티브로한 가르다리크군 병사들이 사용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바이올렛도 이들에게서 빼앗아 사용한다.
독립군 마병구가 No. 1 Mk III SMLE를 주무기로 쓴다.
시즌11 4화 The Snuke에서 영국군이 미국을 침략할 때[29] 사용했다. 하지만 침략할 때 옷차림이 1800년대 차림이다(...) 당연히 미군이 공군을 동원하면서 영국군은 실패했다.
탐험대 군인들의 주무장으로 나온다.
- 히스토리 채널
웨폰 브라더스 영국식 303구경 편에서 나온다.
5.3. 토이건
5.3.1. 에어소프트건
- 매트릭스
No. 1 Mk III SMLE를 가스식으로 발매하였다. 정식수입도 되지 않았고 빠르게 단종되어서 한국에서 구하기는 힘들다.
No. 4 Mk I과 스나이퍼 타입(No. 4 Mk I(T))의 발매를 앞두고 있다. 탄 클립 모양 탄창을 사용하는 특이한 시도로 관심을 모으는 중. 원래 2020년 카탈로그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현재 다른 제품에 집중하기 위해 중지된 상태.
- KTW
2011년 12월 에어코킹식 No.4 Mk.I을 발매하였다. 정가 134400엔으로 굉장히 비쌌으며 무게도 3.2kg으로 가벼워 장식용에 가깝다.
- RWA
2017년 비바 암즈 하청으로 에어코킹식 No. 4 Mk I을 발매하였는데, 569달러로 실총과 비슷한 가격에 CNC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반응이 좋지 않다.
- Viva Arms
하청을 주었던 RWA제 리-엔필드의 퀄리티가 맘에 안 들었는지 자신들이 직접 No. 1 Mk III SMLE와 No. 4 Mk I, No. 5 Mk I 정글 카빈을 새로 개발 중이다. 당초 2019년 가을을 목표로 하였으나 현재는 발매일 미정.
5.3.2. 더미 모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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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더미건으로는 스페인의 레플리카 클래식건 메이커인 데닉스(DENIX - denix.es)에서 레플리카 건으로 SMLE NO.1 MKⅢ를 생산해 판매중이다. 일제 모델건처럼 더미탄이 장전및 배출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장식용 제품이라 장전손잡이를 후퇴시켰다가 전진시켜 장전하고 그로인해 볼트가 코킹되어 방아쇠를 당기면 공이가 전진하면서 공격발 정도 가능한 수준이다.
전체적인 모양이나 분위기, 무게감, 우드스톡의 색감과 질감은 상당히 수준급이지만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들- 안전장치, 탄젠트리어사이트 등이 몰딩처리 되어 있다. 최근 국내업체에서 데닉스 제품을 일부 수입해 정식으로 판매중인데 그중 SMLE NO1. MKⅢ가 포함돼있어 국내에서 정식 구입이 기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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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더미건으로는 스페인의 레플리카 클래식건 메이커인 데닉스(DENIX - denix.es)에서 레플리카 건으로 SMLE NO.1 MKⅢ를 생산해 판매중이다. 일제 모델건처럼 더미탄이 장전및 배출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장식용 제품이라 장전손잡이를 후퇴시켰다가 전진시켜 장전하고 그로인해 볼트가 코킹되어 방아쇠를 당기면 공이가 전진하면서 공격발 정도 가능한 수준이다.
전체적인 모양이나 분위기, 무게감, 우드스톡의 색감과 질감은 상당히 수준급이지만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들- 안전장치, 탄젠트리어사이트 등이 몰딩처리 되어 있다. 최근 국내업체에서 데닉스 제품을 일부 수입해 정식으로 판매중인데 그중 SMLE NO1. MKⅢ가 포함돼있어 국내에서 정식 구입이 기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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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둘러보기
[1] 리-메트포드와 마우저 1893 둘다 같은 년도부터 복열탄창을 적용하였다.[2] 일명 "위원회 소총". 독일 육군이 잘나가는 마우저를 배제하고 개발한 총으로, 문제가 많아 나중에 마우저의 Gew98로 대체한다.[3] 1차대전기에 사용된 볼트액션 소총 중에 이보다 연사력이 빠른 총은 스트레이트-풀 방식인 오헝제국의 만리허 M1895가 사실상 유일하다.[4] 이러면 노리쇠의 후퇴 거리가 줄어든다. 마우저식 노리쇠는 탄피 길이+노리쇠 머리 두께만큼 노리쇠가 후퇴해야 하지만, 리-엔필드의 경우는 탄피 길이만큼만 후퇴하면 된다.[5] 대부분의 볼트액션 소총들이 노리쇠를 90도 회전시켜야 하지만 리-엔필드는 60도만 회전시키면 된다.[6] 현대 볼트액션 저격소총들은 대부분 마우저식 노리쇠를 쓰긴 하지만, 노리쇠의 회전 각도는 90도가 아니라 리-엔필드와 유사한 60도로 맞추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에서 저격용 리-엔필드인 L42A1을 대체한 AW, 핀란드맛 AW라는 평을 듣는 TRG가 이런 경우다. 볼트액션은 아니지만 회전 노리쇠 구조를 채택하는 스트레이트-풀 볼트액션 소총, 반자동/자동소총들 역시 마찬가지로 노리쇠의 회전 각도는 대부분 90도 보다 작다.[7] 당장 탄피를 물고 있는 것이 노리쇠 머리 부분이다. 이쪽이 흔들리면 약실 내부에서 미세하게 탄약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8] 다만 마모에 의한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 리-엔필드의 노리쇠엔 두격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9] 탄창 급탄이 보편화된 현대에도 약실 검사 똑바로 안해서 오발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의도적으로 약실의 +1발을 활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걸 생각하자. 당시라고 달랐겠는가?[10] 분당 36발이란 소리는 1분에 36발을 쏘는 '''속도'''를 말하는 거지 1분 안에 36발을 쏜 걸 측정했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더 많이 쏘고 분당 속도로 환산한 것이다.[11] 30cm의 표적은 300야드(270m)에선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실거리 훈련에서 250m 표적이 어느 정도 크기였는지 생각해 보라.[12] 영상을 보면 리 어메이는 사격 준비 단계에서 견착할 때 개머리판을 손으로 파지한 채로 갖다 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미군의 경우 훈련소에서는 저렇게 사격 자세를 잡는다.[13] 5발 쏘고 중간에 다시 재장전 해야 하는 스프링필드 M1903에 비해 처음부터 10발이 장전 되는 리-엔필드가 더 유리한 것도 눈에 띈다.[14] 어메이 중사도 그걸 염두하는지 중간에 "개런드랑 엔필드 Mk.3은 같은 시대에 싸웠으니 공평함!" 라고 정신승리를 시전하신다.[15] 대전 당시 미군은 보병이 장비한 기본 화기가 반자동이기 때문에 소총수 화력은 그 어떤 군보다 강력했다. 이 화력을 그래도 맞받아 칠려면 적어도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물량은 되어야했다.[16] 사실 매거진 컷오프 스위치는 11발 사격이 가능해지는 등 상황에 따라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었고 딱히 달아봤자 손해도 없었기 때문에 1차대전 중에도 계속 쓰였다.[17] '''H'''eavy barrel '''T'''elescopic sight(중총신 망원조준경)의 약자.[18] 이는 총류탄 발사가 목적이었을 수 있다. 공포탄을 장전하고 총류탄을 사용할 때는 탄창 차단기로 탄창의 기능을 막고 공포탄을 장전하면 편하기 때문이다.[19] 하지만 됭케르크 이전에 이미 북아프리카에 배치되어 있던 영국군들은 SMLE를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이탈리아로 전선이 옮겨가면서도 상당수가 사용되었다.[20] 다른 1, 2차 대전 볼트액션 소총에 비해 저격용으로 현역 수명이 길었던 것엔 탄창 급탄이 가능하단 것이 결정적이었다. 클립 급탄으로만 장전이 가능한 당시의 대부분 볼트 액션 소총은 스코프 장착시 클립 급탄에 간섭이 나서 한 발씩 재장전 하거나 스코프의 위치를 조정해야 한다. M1 개런드의 저격용인 M1C/M1D처럼 스코프를 총기 측상방에 다는 경우 거리에 따라 탄도의 낙차 뿐 아니라 좌우 편차까지 고려해야 하고, 스카웃 라이플이나 현대의 CQB 세팅처럼 조준경을 가늠자 앞으로 밀어 눈과 멀리 둘 경우 고배율을 사용하기 어렵고 조준경의 시야가 좁아 장거리 정밀 사격엔 불리하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일반 보병 소총으론 더 평가가 좋았던 M1 개런드도 저격용으로는 리-엔필드보다 훨씬 빨리 퇴역하여 M21 SWS 등으로 대체된다.[21] 노리쇠야 집어넣고 손잡이 끝을 잘라내면 그만이고, 총열도 구멍 하나 내고 가스블록을 붙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탄창도 엔필드와 동일한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하웰에 자주 사용한 20발 탄창은 이후 영국이 각종 기관총 설계를 시험하는 데 사용해 오늘날에는 상당히 귀한 물건이 되었다.[22] 이 거리를 트리거 리셋(trigger reset)이라고 부른다. 자동화기를 논할 때 실용성 면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거론되는 부분.[23] 후에 P14는 미군이 1차대전에 참가할 때 M1917로 채용되어 준 제식으로 사용된다. 당시 제식소총이었던 스프링필드 M1903의 물량이 부족해서 M1917로 그 물량을 메우려 한 것.[24] -25°C에서 테스트시 M1 개런드는 몇번의 오작동이 있었지만 터너 SMLE는 완벽히 작동했다고 한다.[25] 하지만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도 있다. 사실인지는 의문. 1950년대에 미군의 제식소총 사업에서 성능이 좋아 야전교범까지 만들었던 FN FAL(T48)의 제식채용이 미 육군의 반발로 무산되고 M14가 대신 채용되었던 것(이건 실제로 있었다)과 비슷하다.[26] 수직 손잡이와 양각대가 있다. 호주에서는 무겁다고 이걸 떼서 사용했다. 총은 장전 안한 상태에서 7.3kg.[27] 사실 고수가 아닌 이상 소총 없이 활로 곰을 잡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28] 배에 탈 때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기를 버리고 목숨을 부지했다. 덕분에 영국군은 이들을 재무장 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는 바람에 스텐 Mk. II 같은 염가형 무기를 만들어야 했다.[29] 여기에 러시아인 테러리스트까지 돈을 내고 고용했다. 이때 에릭 카트먼은 중동계 전학생을 테러리스트로 오해했지만, 이게 오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