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잉글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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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마틸다
(Matilda)
'''출생'''
1102년 2월 7일
윈체스터 또는 잉글랜드 서튼 코트니
'''사망'''
1167년 9월 10일 (65세)
프랑스 왕국 루앙
'''재위'''
잉글랜드 왕국의 여군주(Dominatrix) (논란)
1141년 4월 7일 ~ 1148년
'''배우자'''
하인리히 5세 (1114년 결혼 / 1125년 사망)
앙주 백작 조프루아 (1128년 결혼 / 1151년 사망)
'''자녀'''
헨리 2세, 조프루아, 기욤
'''아버지'''
헨리 1세
'''어머니'''
스코틀랜드의 마틸다
'''형제'''
윌리엄 애셀링
영어: Matilda (마틸다)
프랑스어: Mathilde (마틸드)
독일어: Mathilde (마틸데)
라틴어: Mathildis (마틸디스)
잉글랜드 왕국의 군주. 왜 국왕이 아닌지에 대한 이유는 후술한다. 신성 로마 제국 하인리히 5세의 황후이기도 했으며 모드 황후라고 불리기도 했다. 헨리 1세는 적통 왕위계승자인 아들 윌리엄이 사고로 익사하자 과부였던 그녀를 다시 불러들여 앙주 백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과 결혼시킨 뒤 잉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여성계승을 두고 귀족들이 반발하여 헨리 1세 사후 왕위는 마틸다의 사촌 스티븐이 강탈하였다. 이 때문에 무정부시대라는 내전이 벌어지나[1] 1140년대까지 이어진 내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스티븐과 평화협정을 맺기에 이른다. 이에 따르면 마틸다는 스티븐의 왕위를 인정하되 후계자는 그녀의 아들 헨리 2세가 잇도록 하였다.
그녀를 여왕으로 인정할지 말지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정확히 말해 마틸다는 내전의 혼란 와중 웨스트민스터에서 대관식을 치르지 못하였기에 여왕을 자칭하지 않았다. 대신 잉글랜드의 국왕(Rex Anglorum)을 칭하는 스티븐에 대항하여 라틴어 Domina Anglorum을 칭했는데 이는 '잉글랜드의 여군주(Lady of England)'라는 뜻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티븐 왕 문서를 참조.
프랑스 영토가 더 풍요로운 점을 들어서 왜 그렇게 상대적으로 빈약한 잉글랜드 땅에 집착할까 싶지만(영토를 반이나 잃는 것은 둘째치고), 당연히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게 잉글랜드 본토를 되찾아야 비로소 잉글랜드의 왕이라 자칭할 수 있지만, 프랑스 내의 잉글랜드 땅을 가져봤자 그건 프랑스 왕의 신하에 지나지 않게 되니, 본인과 본인의 후손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마틸다는 반드시 잉글랜드의 왕좌를 되찾아야 했다.[2]
그녀의 어머니인 스코틀랜드의 마틸다는 모계로 웨식스 왕조의 피를 물려받았기에 그녀도 앵글로색슨 왕족의 피가 흐르고있다. 그것도 알프레드 대왕의 후손이다. 이 피는 마틸다의 장남 헨리 2세와 그 이후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들에게도 계속 계승된다.

[1] 이 내전 동안 마틸다는 잉글랜드 본토의 여왕이라기보다는 잉글랜드 왕이 가진 프랑스 영지에서의 여왕에 가까웠다.[2] 조상이자 본디 노르망디 공작이던 윌리엄 1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원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