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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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스티븐(Stephen)
'''부친'''
에티엔 2세 앙리
'''모후'''
노르망디의 아델
'''생몰년'''
1092년 혹은 1096년 ~ 1154년 10월 25일
'''재위기간'''
1134년 12월 22일 ~ 1141년 4월
1141년 11월 ~ 1154년 10월 25일(복위)
'''대관식'''
1136년 12월 22일
1. 소개
2. 생애
3. 재위기간의 의문점
4. 여담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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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세 프랑스어: Estiene (에스티엔느)
프랑스어: Étienne (에티엔)
영어: Stephen (스티븐)
라틴어: Stephanus (스테파누스)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으로, 노르만 왕조의 마지막 국왕. 윌리엄 1세의 딸 아델라와 블루아 공 에티엔의 삼남으로, 특히나 헨리 1세가 총애하던 조카였다.

2. 생애


헨리 1세는 하나뿐인[1] 아들 윌리엄이 죽자[2] 유일한 적장녀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하인리히 5세의 황후인 마틸다[3]를 여왕으로 즉위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잉글랜드에는 여왕이 없었기에 다른 왕족이나 귀족이 반발할 가능성이 컸고 헨리 1세도 그걸 우려해서 자신의 생전에 귀족들에게 마틸다에 대해 충성서약을 시켰고 여기에는 스티븐 역시 포함되어 있었으나 헨리 1세의 사망 당시 앙주 백작과 재혼한 마틸다가 국외에 있을 때를 틈타 스티븐이 그냥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해버렸다.
왕위를 찬탈당한 마틸다 왕녀는 남편인 앙주 백작 조프루아 플랜태저넷의 군사를 빌려 배다른 오라비[4]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와 손잡고 내전을 개시했으며, 이는 무정부시대라고 불리게 된다.[5] 마틸다 본인은 군사적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없었지만 이복형제인 글로스터 백작에게 뛰어난 군사적 재능이 있었고 그가 잉글랜드 전장에서 사실상 사령관 역할을 했다.[6] 그 덕에 한때는 마틸다 측의 우세로 스티븐은 글로스터 백작의 포로가 되고 폐위되었지만, 스티븐의 아내인 마틸다(불로뉴의 마틸다)가 켄트에서 군사를 일으켜 다시 글로스터 백작을 포로로 잡고 남편과의 교환을 요구했다. 마틸다는 눈 앞의 승리를 놓치기 힘들었지만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며 전쟁을 이끈 이복형제인 글로스터 백작을 내버릴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포로 교환이 성립되었고 구사일생했다.
이후, 결국 스티븐 왕이 마틸다를 잉글랜드 서부로 밀어내지만 사촌 간의 내전으로 잉글랜드 국내는 쑥대밭이 되어버리고 봉건 영주인 힘있는 가신들과 힘의 공백을 틈타 사실상 국내는 분열되고 스코틀랜드웨일스의 침공을 받는 등 내우외환이 그치질 않았다.
1153년 1월부터는 어머니 마틸다를 돕기 위해 아들 헨리가 군을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해 전쟁이 재개 되었다. 내전이 계속 되던 중 스티븐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생각했던 아들 외스타슈[7]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실의에 빠져 헨리와 윌링포드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8] 조약 내용은 스티븐의 왕위 승계는 인정하되 마틸다의 아들 헨리를 공동왕으로 삼아 다음 왕좌를 물려준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스티븐은 켄트 주의 도버에서 사망하며 파란만장한 생을 끝마쳤고, 윌링포드 조약에 따라 마틸다의 아들 헨리가 단독 통치자로서 즉위하였으니, 플랜태저넷 왕조의 시작이었다.

3. 재위기간의 의문점


참고로 스티븐의 재위 시기는 약간 애매하다. 어떻게 보자면 1141년엔 마틸다가 그를 폐위시키고 잠시 즉위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여왕'이 아니라 'Lady'로 즉위했었기 때문에, 군주로는 분류해도 왕으로는 분류하지 않는다고 한다. 국왕의 정통성에 있어서 중요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의 대관식을 치르지 못했기에 마틸다는 여왕(Regina)이 아니라 잉글랜드의 여군주(Domina Anglorum, Lady of England)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잉글랜드 '''전체'''의 (여성)지배자"라는 의미였다. 스티븐과 평화 협정을 맺은 후에는 이 칭호를 그만두고 다시 '황후'를 공식 칭호로 사용했다. 그녀의 왕호는 왕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애매모호한 칭호.[9] 허나 이러한 호칭이 있어도 마틸다 본인은 전 남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의 부인인 황후(Empress)라고 불러주기를 원했고, 자기 자신을 황후라고 칭했다.

4. 여담


용맹하기는 했으나 충동적이고 뒷심없는 성격은 친척이자 다음 왕이 되는 헨리 2세나 헨리 2세의 아들 리처드 1세, 존 왕 등이 물려받은 듯. 그래서인지 그 후 영국 왕 중에 스티븐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왕은 없다. 존 왕과 마찬가지.

5.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 '수도사 캐드펠' 시리즈가 이 바로 이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에서 스티븐 왕에 대한 평은 선량하되 뛰어난 왕은 아니라는 듯.
  • HBO에서 8부작으로 드라마화 시킨 역사소설 대지의 기둥의 배경 또한 이 시대. 여기서는 성직자 웨일런 바이고드와 영지를 얻고자 하는 기사 퍼시 등과 손을 잡고 헨리 1세의 상속자를 살해하는 젊은 야심가로 나온다. 야망이 크고 권력욕이 강하며 이를 뒷받침할수 있는 능력또한 충분한 인물이지만 계속 되는 내전과 정치다툼,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등으로 서서히 무너지며 결국 전투중에 전사한 아들의 환상이나 보며 죽을날만 기다리는 초라한 노인이 되고마는 맥베스형의 인물로 그려진다.

[1] 정확히 말하면 아들이 하나뿐인 건 아니다. '''적자'''가 하나뿐이었을 뿐이다.[2]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는데, 배다른 누이 마틸다 피츠로이(뒤에 나오는 윌리엄의 친 누나이자 헨리 1세의 적통 왕녀 마틸다와는 동명이인이며 두 사람은 배다른 자매다. 피츠로이는 정식으로 인정받은 왕의 서자녀에게 붙이던 성)를 구하려다 같이 익사했다.[3] 이 때문인지 모드라고도 불린다. 역사서에 모드 황후로 나온다면 바로 이 마틸다.[4] 즉 헨리 1세의 사생아.[5] 애시당초 앙주 백작과의 재혼 자체가 만약을 우려한 헨리 1세가 딸에게 군사적 배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시킨 결혼이다. 마틸다 본인은 재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6] 사생아 출신인 로버트는 헨리 1세에게 글로스터 상속녀와의 결혼과 백작위 수여 등 많은 힘을 부여받아 글로스터 초대 백작이 되었는데, 이 또한 마틸다와 앙주 백작의 혼사처럼 헨리 1세가 마틸다의 친위세력으로서 로버트를 키워준 거다.[7] 스티븐이 블로뉴의 여백작 마틸다와 결혼하여 낳은 3남 3녀 중 장남. 너무 갑작스럽게 사망하여 당대 사람들은 그가 신의 분노로 죽었다고 여겼다고 한다. 외스타슈 사망 당시 스티븐에게는 윌리엄이라는 아들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대신 어머니의 뒤를 이어 블로뉴의 백작이 된다.[8] 마침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도 사망한 까닭에 마틸다측도 군 지휘관을 잃은 상황이다.[9] 흔히 공후백자남의 순서로 외워서 알고 있는 유럽 봉건군주의 호칭은, 양판소 등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계급이나 신분의 고하로써 위계가 정해지지는 않는 유의어이다. 호칭 자체의 끗발로 따지자면 Lord나 Duke 등에 비해 King(Queen)을 훨씬 더 먹어주는 게 사실이지만, 각자의 영지는 독립국가나 다름없었고 자기 영지 안에서의 영주는 말 그대로 왕, 지배자였다. 물론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작위가 계급처럼 활용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