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철도

 

1. 개요
2. 상세
3. 제조
4. 특징
5. 관련 항목


1. 개요


'''흥아일심도(興亞一心刀)''' 또는 '''만철도(滿鐵刀)'''
만주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생산한 일본군도의 총칭.

2. 상세


만철도는 쇼와 10년대부터 1945년 패전까지 일본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생산한 일본군도를 일컫는다. 만철도라는 단어는 속칭이며, 정식 명칭은 '흥아일심'.[1] 철도회사에서 칼을 만든다는 게 언뜻 이상하게 비추어질 수 있겠지만 실상 만철은 단순한 철도회사가 아니었다. 일본 정부가 지분 50%를 보유했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1923년 이후로부터 종전 시까지 일본 제국 내 자본금 규모 1위인 거대 기업이었다. 미쓰이, 미쯔비시, 스미토모 재벌보다 큰 기업이었다는 뜻이다. 당연히 철도사업만 한 것이 아니라 철도 선로 부설 토지 및 배후 역세권 개발사업이라든지 토지 관련 사업, 각종 숙박업, 금융업 및 유통사업을 했고 광산 개발 및 제련업, 각종 군수품 생산을 담당했던 거대 복합기업이었다.
2차 대전 당시의 독일의 전차인 티거 중전차를 생산한 헨쉘 사는 중장비와 철도설비를 만드는 회사였고, 러시아의 전차 계보 중 중요한 1곳이 우랄열차공장임을 생각해본다면 군수품에 대한 철도 계열 회사의 참여는 결코 낯선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2] 본디 철도회사란 강철에 대한 이해와 기술, 공작기계와 열처리와 같은 쇠의 근본에 통달하여야만 가능한 것으로, 도검이라는 것도 근본적으로 이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걸맞은 회사가 걸맞은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철도회사가 칼을 만들게 된 것은 중일전쟁 이후 급속하게 불어난 일본군규모에 의해 장교용 군도의 수요가 폭증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골동품 칼날이나 장인에게서 조달하고 만들던 기존의 방식대로는 도저히 장교용 군도의 수요에 다 맞출 수가 없었다.[3] 이 때문에 원래 95식 부사관도만을 만들던 조병창에서도 일부 라인을 전용하여 장교용 군도의 칼날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다. 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에서도 이러한 어려운 세태를 감안했고, 관동군 등의 요청에 따라 능률이 낮은 전통 방식이 아닌, 기계를 이용한 생산 체계를 갖춘다면 군도 부족 사태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소화 12년 5월에 일본도 제작부를 신설. 차후에 남만주철도공사 대련공장에 독립된 작업장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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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 공장 전경

3. 제조


만철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 전통 방식과 현대 기계공업이 혼합된 제조 방식에 있다. 대략적인 제조 과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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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소함유량 0.5%의 강철괴 내부에 드릴로 구멍을 낸다.
  • 탄소함유량 0.06%의 연강을 내부에 삽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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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열하여 증기 해머로 늘임단조를 실시한다. 강괴는 주욱 늘어나 쇳덩이에서 철봉으로 모양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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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라인더를 사용하여 기초적인 모양새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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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로 갈아 도검의 모양새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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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인의 감독하에 전기로(電氣爐)를 이용하여 열처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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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바키[4]를 제조한다. 칼 하나하나에 맞추는 수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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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마 장인들의 손에 의해 칼날의 최종연마 및 날세우기 작업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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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장구 장인들의 손에 의해 쯔바와 손잡이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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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품질검사 후 출고된다.

4. 특징


만철도의 특징은 전통적인 제조방식을 현대적으로 재적용했다는 데에 있으며, 그럼으로써 전통 일본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형상을 지니면서도 그 성능은 크게 향상되었다는 데에 있다. 우선 장인의 감으로 두들겨 만드는 전통 일본도가 실제 절단하여 단면을 볼 경우 신가네의 분포가 매우 불규칙하고, 때로는 바깥으로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 데 비해, 만철도는 기계제조를 통해 신가네와 하가네의 비율이 일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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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철도의 도신을 5개소에 걸쳐 절단한 모습. 중앙이 유연한 신가네, 외부가 고탄소강인 하가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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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일본도의 좋지 않은 예. 위는 시즈사부로 카네우지, 아래는 아이즈노카미 후지와라 야스시게의 작품. 특히 아래 물건은 신가네가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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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철도의 우월함을 선전하는 내용.
또 강재 자체도 불순물이 많고 열처리 노하우가 적은 전통 강재를 쓴 전통 일본도에 비해, 현대적으로 제련된 강재를 사용하므로 도검의 휨이나 파괴 한계가 월등히 높다. 만철도는 4톤의 힘을 7분 동안 가했을 때 칼이 완전히 휘어지고 칼날 부분이 갈라진 데 비해, 전통 일본도는 1톤의 힘을 7분 동안 가하자 칼날이 갈라지고 휘어 버렸다. 열처리는 전통 일본도와 같은 부분 열처리를 하지만, 감으로 하는 장인의 열처리에 비해 온도계를 가지고 하므로 실패율이 월등히 낮았으며, 그에 따라 가격도 절감할 수 있었다.
부분 열처리를 가했기 때문에 통 열처리를 한 무라타도조병도와는 달리 하몬이 존재하며, 대체적으로 스구하(直刃)[5]나 미다레(乱れ) 하몬을 가지고 있었다. 이 하몬은 숙련된 연마사들에 의해 선명하게 표현되었다.
만철도는 육군 제식을 따르고 있어 그 외형으로는 당장 구분이 어렵지만 여타 일본도가 그러하듯이 칼날을 분해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슴베(나카고)에 메이(名)가 새겨져 있는데, 흥아일심 만철작지(興亞一心 滿鐵作之)라고 새겨져 있기 때문에 금방 구분이 가능하다.
만철도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호평일색으로, 일본군도의 문제점에 대해 군도 수리 반장으로써 재직하여 많은 글을 쓴 나루세 칸지(成瀬関次)도 자신의 저서 <실전도론>에서 만철도에 대한 호평을 쓴 바 있다. 또한 특수강 파이프에 연강을 넣어 제조하고 진흙 열처리로 제조했다는 점이 일본도와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완전히 특수강에 통열처리로만 제조한 조병도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 성능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만철도는 휘지도 부러지지도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또한 조병창에서 제조한 조병도와는 달리 하몬이 있어 패전 후 미군정 GHQ의 칼 사냥에서도 예술도로 분류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장 양산형이라는 점 때문에 전통 일본도의 칼날을 사용한 군도보다는 저평가되었으며, 10년 전만 하더라도 100~200만 원 선에서 진품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만철도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400~600만 원 정도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으며, 가격 상승에 따른 사재기 경향으로 진품 가격은 점차 올라갈 전망이다. 전통 일본도는 수작업의 결과물이 가지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그 실 성능면에서는 한없이 실망스러웠으나, 이 만철도는 전통적 일본도의 제법을 현대 금속 과학과 공업기술로써 구현하여 성능 면에서 일본도의 이상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 기념비적인 물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만철도의 성능은 전통적 일본도와 그것을 베이스로 한 군도의 내구성이 워낙 엉망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평가 된 것이 후대에 와서 칼덕, 밀덕들의 환상이 더해져 상당히 미화되어 있으므로, 만철도에 대한 예찬은 좀 가려서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6]
사진을 볼 수 있는 원본 글

5. 관련 항목



[1] 검신에 '흥아일심 만철작도'(아시아를 일으키는 한 마음으로 만철이 만든 검)라는 말이 음각되어 있다.[2] 멀리 볼 것도 없이 가까운 현대로템만 봐도 방산업체로써 K-1 전차, K-2 흑표 등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3] 장교용 군도는 개개인이 사비로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부사관 및 병사용 군도가 지급품인 것과 다른 점. 조병창 등지에서 만들어준 칼날이나 외장이라도 돈 내고 사야 했다.[4] 동호인(銅護刃)이라고도 부르는 칼날 뿌리 부분의 황동제 부품. 칼집에 넣을 때 칼집 입구와 꽉 맞물려 칼이 안 빠지게 하며, 이때 칼날은 하바키 덕택에 칼집 중간에서 붕 뜨므로 칼집 어디와도 닿지 않는 최적의 수납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5] 하몬이 일직선으로 있는 것.[6] 오늘날 자위대도 자국산 62식 기관총의 고장에 얼마나 학을 땠는지 양산형 FN 미니미를 무고장 기관총이라고 호평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FN 미니미가 진짜 막 우월한 무기인 것은 아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