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1. 일본의 소설가, 수필가, 영화 감독
1.1. 개요
1.2. 상세
1.3. 작품에 대한 평가
1.4. 한국 출간작
2. 일본의 남성 성우


1. 일본의 소설가, 수필가, 영화 감독


村上 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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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요


1952년 2월 19일 나가사키 현 사세보시 출생. 1976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작가 데뷔하였다. 주로 청춘, 일탈, 변태 류의 소재를 다룬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여겨진다.

1.2. 상세


아버지는 미술교사, 어머니는 수학교사로, 듣기만 해도 바르게 자랐을거 같은 교사 부부의 자식이지만, 중·고등학교를 거쳐 히피 문화에 빠졌고 밴드부에 소속되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3학년땐 학생운동에 참가해 학교 옥상을 점거했다가 3개월 동안 정학을 먹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10대를 보냈다.[2]
무사시노미술대학 조형학부 기초디자인과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1976년 아직 대학생일 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썼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한국에서만 해도 5번이나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스테디 셀러이자 무라카미 류의 대표작이라 할만하다. 이 작품으로 상도 많이 탔다. 작가 데뷔 후 대학을 중퇴하였다.
'러브 & 팝'의 경우 안노 히데아키가 영화로 만들기도 했으며, '오디션'도 미이케 타카시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69'도 영화화되기도 하는 등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작가이며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나 'KYOKO' 같은 경우 무라카미 류 자신이 직접 영화화했다. 소설 원작 없이 연출했다고 알려진 '도쿄 데카당스'[3]도 단편집 '토파즈'의 단편들을 합친 것이다.
작중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SM 성행위 소재를 자주 쓰는데, 마치 이공계, 해부학적 수준의 차갑고 무미건조한 표현이라서 속된 말로 '''하나도 안 꼴린다.''' 그러니까 "하악하악 SM 변태물이라메 하악" 하면서 샀다가 "이게 뭥미 꼴리지도 않고 기분만 나쁘네" 하면서 책을 집어 던지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를 처음으로 읽고 충격을 받은 뒤 그런 식의 강력한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고. 그리고 쓰게 된 게 바로 '양을 쫓는 모험'.

1.3. 작품에 대한 평가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청춘, 일탈, 내재된 변태성, 상실감 등을 주 소재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를 말그대로 여과없이 묘사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읽는 독자들의 반응은 문자 그대로 극과 극이다. 긍정하는 쪽에서는 이러한 냉정하면서도 지독히 직설적인 묘사를 통해서 현대사회와 일본인들을 적나라하게 해부한 작품이라고 좋아한다. 즉, 쉬쉬하는 내용을 완전히 다 까발림으로서 이들의 내면과 현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작가라는 것. 반대로 부정하는 쪽에서는 그냥 작가는 정신나간 변태(...)라는 주장부터, 고증이나 사실도 무시하고, 그냥 소재만 끌어와서 그럴싸하게 쓴다는 비판도 크다. 특히 '반도에서 나가라'나 '5분 후의 세계: 휴가 바이러스'같은 작품이 그런 이유로 까인다.[4] 그리고 일본인 작가이다 보니 자꾸 한국 쪽에서는 이 사람의 작품을 평할 때 '''"일본을 옹호하냐 마냐?"'''만 자꾸 파악하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사람의 속물근성과 사회의 부조리를 싫어하는 사람일 뿐이다. 이렇다보니 작중에 나타나는 비판의 칼날은 한국을 비롯한 타국에도 똑같이 향하는 거지 우익이라서 "반도에서 나가라" 같은 작품을 쓰는 건 아니다. 자꾸 문학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 하니 우익이니 좌익이니 소리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딱히 무슨색이니 그런 거에 연연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염세주의'''적 사고방식을 지닌 것에 더 가깝다.
일단, 이 점에서 무라카미 류의 정치적 입장 문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사례로 다뤄지는 '반도에서 나가라' 같은 경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북한 공작원들은 고증이고 현실이고 죄다 무시하고 굉장히 기묘하고 우스꽝스럽게 왜곡되고 희화화되어 있다. 물론, 이런 왜곡과 희화화는 전통적인 일본 극우의 혐한적 관점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해당 작품에서 무라카미 류가 드러내고자 했던 주제의식, 즉 퇴폐와 억압, 전체주의의 문제를 다루기 편하도록 준비된 장치에 가깝다고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 현존하는 대상을 실명으로 등장시키면서 사실에 대한 고증을 무시하고 편의에 따라 왜곡했다는 점은 작가로써 비판받을 수 있는 문제다. 모든 작가에게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존하는 인물 사건 및 단체와 관계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는 명확히 해 달라는 이야기.
하지만 작가는 고증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 '플롯'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소설의 내용이 실제와 다르다 하여, 작가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작가의 저술을 그대로 믿는다면 이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는 근본주의자적 관점일 뿐이다. 어떤 사실이든 누군가의 저술로 나타나는 순간, 그 저자의 관점과 해석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가 '반도에서 나가라'를 집필하기 위해 수 많은 취재를 했고, 수 많은 문헌을 참고했음에도, '사실과 다르니 고증과 관계 없이 작가 맘대로 썼다'고 잘못된 비판을 받는 편이다. 오히려, 이해를 통해, 자신만의 해석으로 더 나아갔다고 평가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 그러나, 이와 같은 반론은 현실을 모사하는 데 대해 작가가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론 역시 가능하다. 예를 들어, 현실의 특정한 대상을 연상시키는 많은 작품들이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사건 및 단체와는 관계없습니다" 라고 고지하거나, 대상의 실명을 살짝 비틀어 바꾼 명칭 또는 약칭들을 사용하여 작중 등장하는 대상이 실존하는 대상과 동일시되는 것을 피한다는 것. 즉, 작품 자체는 작가의 창작이라 하더라도 작중에서 현실의 대상을 명확히 가리키는 개념을 등장시킬 때는 정확성과 공정성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작가는 고증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대상에 대한 왜곡을 '저자의 관점과 해석'이라고 덮어놓고 옹호하는 논리에 따르면, 소위 말하는 디스물, 즉 대상을 조롱하고 모욕하기 위해 대상에 대해 엉터리 흑색선전을 덧붙인 창작물을 비판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무라카미 류의 경우 노골적인 극우 작가로서 일본 극우이념을 선전하는 작품을 쓴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세계가 많은 부분 극우적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명백하다는 점이다. 즉, '무라카미 류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그의 작품을 억지로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프레임에 밀어넣고 있다'는 관점은 편파적으로 무라카미 류를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될 여지가 크다. 인간의 속물근성과 사회의 부조리를 싫어하는 것도 좋고, 한국을 비롯한 타국에도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도 좋고, 염세주의를 하든 염색공장을 하든 남이 뭐라고 할 문제는 아니지만, 구 일본의 제국주의나 현 일본의 극우 노선을 옹호하는 것에 화를 낼 사람은 아주 많다. 지금까지 예로 들었던 '반도에서 나가라'에서 이 문제의 예를 찾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 (1) 작품 전반에서 작가는 미국을 비롯한 일본의 전통적 우방들이 일본을 버리는 경우를 가정하고, 이런 상황에서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의 위기의식과 위기 관리능력 결여를 일본이 가진 사회적 부조리로 지목하여 비판하고 있다. 뭐,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더라도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지만... '외부의 적이 공격해 오는 상황'에서 '반격을 통한 방어능력의 결여'를 일본의 사회적 병폐로 지적하는 문제의식은 자위대의 군대 전환을 주장하는 일본 극우의 문제의식과 거의 일치한다.
  • (2) (1)의 문제보다 더 노골적인 문제로, 작중에서 노의사 세라키가 과거 일본의 한국 강점에 대하여 '공장을 짓고 철도를 부설하는 등 좋은 일도 많이 했지만 사람도 많이 죽였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욱 놀라운 점은, '사람을 많이 죽였지만 공장을 짓거나 철도를 짓는 등 좋은 일도 하지 않았느냐'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나쁜 짓을 한 것도 사실이다'라고 옥의 티를 지적하듯이 말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이익을 위해 건설한 공장이나 철도가 대체 왜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논조가 단순히 세라키라는 노인의 개인적인 입장일 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작중에서 세라키는 살인 행위에 반대하는 인간의 양심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현실에서든 작중에서든 북한이 하는 짓이 뭐같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구 일본군 병사였던 인간이 얼굴에 철판깔고 살인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 역시 뭐같기는 마찬가지고, 한국가서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사람도 많이 죽였는데, 역시 사람 죽이는 건 나쁜 일이더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신다면...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반도에서 나가라'에서 무라카미 류가 비판하는 대상은 평화의식에 찌든 일본의 관료주의적 행정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뒤틀리고 일탈했지만 넘치는 생명력을 가진 한 무리의 사회부적응자 청년들이다. 왠지 그 청년들이 평소에는 2ch에서 춍을 외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착각일까? 최소한, 작가와 그런 넷우익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뭐, 이 외에 '5분 후의 세계: 휴가 바이러스'같은 작품은 하도 막나가니 그냥 해당 항목을 읽으시면 될 듯. 요약하자면 연합국과 UG(지하일본세력)의 대결구조인데, UG의 심각한 신분차별도 묘사하나 기술력을 세계최고수준이라느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어떤 의미에서의 차별도 없는 나라는 UG뿐이다."라고 칭찬한다느니 한다.
결국, 무라카미 류는 적극적인 극우적 발언을 한 적은 없더라도 극우적 세계관에 기반한 작품을 심심찮게 출간하는 작가라고는 볼 수 있다. 이것을 '자꾸 문학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 드니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것이, 작품이 정치적으로 해석되지 않으려면 작품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마스크 클럽'이나 '토파즈', '러브&팝' 보고서 무라카미 류를 극우작가라고 까는 사람이 있던가? 그런데,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역을 사정없이 건드리는 작품에 대해서 왜 작품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냐고 한다면... 그건 좀 코미디다.
또한, 무라카미 류의 경우 '염세주의자'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염세주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행태를 실드치는 아주 좋은 수단중 하나다. 편견에 기반해서 남을 실컷 깐 뒤에, 자신도 조금 까면서 '난 염세주의자라 원래 그래' 라고 변명해 버리면 끝이니까. 이 부분에서 악명 높은 인물로, 쿠메타 코지가 있다. 신나게 혐한 네타 써먹은 뒤에 자조적으로 자신도 조금 깐다. 그런데, 위에서 예로 제시된 '반도에서 나가라'를 보면... 2차대전 당시의 역사를 왜곡하여 일본의 만행을 정당화하고, 다른 나라를 제멋대로 희화화하거나 음흉한 악역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일본과 일본인 자신도 깐다... 고 하지만, 이건 고작해야 자조적인 웃음거리거나 '''일어나라 일본!''' 류의 각성계 비판이다. 사실 쿠메타 코지와 무라카미 류의 행태는 이런 부분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옹호자들은 작가가 염세주의자라서 모든 것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비판적으로 보면 타인에 대한 혐오에 비해 자기 혐오가 너무 약하다. 이러면 염세주의가 아니라 중2병이 될 수 밖에... 더구나, 정치성 시비가 붙은 또 다른 작품 5분 후의 세계를 보면 무라카미 류의 작품에서 중2병적 색채가 강하다는 이야기가 절대 농담으로 안 들린다. 강하지만 나쁜 놈을 영웅시하고 그에 이입하여 약자가 짓밟히는 모습에 쾌락을 느끼는 것(무라카미 류는 이것이 '관능'이라고 주장하지만...)은 중2병 매체의 전형적인 특성 중 하나임을 생각하자.
하지만 해외 비평가들이나 저널리즘의 대체적인 평가는 무라카미 류를 중도 좌파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본의 저명한 문예비평가 고야노 돈小谷野敦은 일본의 전후 문학가들의 성향을 분석했는데, 무라카미 류를 서양소설의 경향을 따르는 정치적 좌파로 분류했다.#원문, ##한글번역 무라카미 류를 직접 인터뷰한 파이넨셜 타임즈 아시아 지부 편집장 David Pilling은 그를 일단 좌파로 보면서도 그의 정치적 입장을 쉽사리 판단할 수 없다고 첨언하고 있다.#원문 그의 글에는 좌파와 우파의 색채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지점을 부각시킬지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글을 어떻게 해석할지" 또는 "해석하는 사람이 좌우익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따라 무라카미를 좌익으로 보기도 하고 우익으로도 보는 것 같다.
  • 단, '무라카미 류는 좌파다' 라는 분석 자체가 상당히 조심스럽게 해석되어야 할 분석이라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문학계를 포함한 소위 '창작판' 에서 '좌파' 라는 개념은 상당히 명확한 정치적 입장과 지향성을 보이는 명확한 집단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즉, 통상 일본에서 '좌파작가' 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반성적인 태도를 보이고, 헌법 9조(평화헌법)의 개정에 반대하는' 정치적 입장을 보이는 인물들이며, 무라카미 류는 이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5] 다만, 좌/우파라는 개념 자체가 꼭 일본 문단 내에서 흔히 사용되는 구분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이런 기준에 따라 보면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 보여주는 특징중에 흔히 '좌파적'으로 구별되는 특징이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런 평가를 앞뒤 툭툭 잘라서 '무라카미 류는 좌파작가다' 라고 해석해 버리면 이는 당연히 심각한 오해와 오류의 원인이 될 수 밖에 없다.
  • 무라카미 류의 정치적 성향을 세세하게 살펴보자면 일단 그의 작품에서는 개인주의나 반 공동체주의적 경향, 그리고 기존 사회의 윤리관에 대해 냉소적인 경향등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는 문학적으로 통상 좌파적, 급진적 경향으로 간주되는 특징이고 따라서 이 점에 대해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 좌파적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류라는 '인물'의 정치적 정체성을 따져본다면 소위 신자유주의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여러번 보인 점 등도 감안하여 우파 자유지상주의+퇴폐적 탐미주의 정도의 입장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다만 또 무라카미 류가 보여준 신자유주의에 대한 호감의 경우 그의 작품활동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고, 하다못해 한국의 복거일같은 인물처럼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활동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라카미 류의 '작품' 에서는 '우파적 색체(신자유주의에 대한 호감)보다는 좌파적 색채(개인의 일탈에 대한 긍정, 사회적 윤리관에 대한 냉소)가 더 강하게 드러난다' 고 이야기하는 것 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걸 가지고 무라카미 류를 '좌파작가' 로 분류해버리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일 수 밖에 없다. 한국과 비교해 보자면 한국에서 좌파와 우파를 가르는 기준으로 '정치관(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 이나 '경제관(자유방임경제와 국가개입경제)'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북한 및 통일문제에 대한 입장' 인 것처럼 일본의 좌우파 분류 기준에서는 '식민지배의 과거사 및 국가의 재무장에 대한 입장'이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 이 부분에서 무라카미 류가 상당히 우파적 입장을 여러 번 드러낸 것을 무시하고 '작품에 좌파적 정치관이 드러나니 좌파작가' 라고 분류해 버린다면? 이런 기준으로 분류하면 조정래는 명백한 우파작가로 분류해야 할 것이고, 일본 극우의 대부분은 '별로 우파적 경향이 강하지 않다' 고 분류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이런 해괴한 분류법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다.
또한, 상기된 옹호론에서 사용된 <그가 일본 작가이기 때문에 한국인 독자들이 자꾸 그의 작품을 '일본을 옹호하냐 마냐'의 틀에 밀어넣어 우익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하는 것이다> 라는 논지 자체가 일본 작가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그 팬덤에서 작가를 옹호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논지라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모리오카 히로유키성계 시리즈에 대한 비판과 논란에서 옹호측이 사용하는 논지가 거의 복붙 수준으로 본 문서의 옹호론 논지와 똑같다. 문제는, 모리오카 히로유키든 무라카미 류든 그 정치성에 대힌 비판론은 단순히 '구 일본제국을 옹호하냐 마냐' 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 작가의 관점이 가지는 보편적 정치관, 정치색 및 그 의미의 영역까지 확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 일본 제국주의를 직접적으로 옹호하냐 아니냐' 의 문제는 이 비판론중에서도 지극히 지엽적인 일부분에 불과하다. 즉, 비판론자들이 이런 작가들의 작품을 '일본을 옹호하냐 아니냐'의 작은 틀에 밀어넣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옹호론자들이 광범위한 비판론을 (반론하기 편한) 작은 틀에 억지로 밀어넣어 억지로 봉쇄하려 하고 있는 것.
이외의 평가로는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데뷔작이자 대표작이었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그런 평가의 대표적. '''주인공이라는 캐릭터가 마약에 빠져서 중독이 심해지자 나중엔 환각을 볼 정도로 정신멘붕상태가 일어나서 마지막엔 결국 자신의 손목을 긋는 내용'''인데, 무라카미 류 특유의 표현법이 모두 표현된 작품이라해도 좋을 정도로 소재도 마약에 친구들과의 난교장면까지 서슴없이 등장하지만, 그 특유의 무미건조한 문체 때문에 보기 거북하고 심한 경우엔 구토를 유발할 정도로 정신이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간다는 평이 많다. 물론 그 특유의 무미건조한 문체를 좋아하는 팬들은 "어설프게 강도 높은 표현을 써서 단순한 중2병 소설이나 삼류 에로소설이 되는 것 보다야 낫고, 오히려 그런 문체이기에 소재와는 상관없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더 잘 투영할 수 있다"[6]고 평한다.

1.4. 한국 출간작


한국에서 이상하게 은근히 잘 팔리는 작가라서 발간된 작품이 너무 많아 문서가 있는 것만 링크.

2. 일본의 남성 성우


1의 항목의 소설가하고는 동명이인. 제3차 슈퍼로봇대전 Z히비키 카미시로역으로 주역을 맡았지만, 아라도 바란가역의 카이치 카즈야와 마찬가지로 무명에 가까운 성우로, 대표역도 이거 하나뿐이다. 이거 외에 맡은것은 제3차 슈퍼로봇대전 알파제2차 슈퍼로봇대전 Z의 '''이름없는 일반병'''이 전부...
공식 라디오에서의 스기타 토모카즈의 설명에 의하면 음향감독측의 제자라고 하며, 전술한 동명이인의 건에 대해서는 "소설가랑 딱히 관계 없어!", "소설가가 저렇게 멋진 목소리를 낼 리 있을리 없어."라고까지 했다(…).
확인된 일반병들은 이하와 같다.
  • 제3차 슈퍼로봇대전 알파: 바르마 제국 병사
  •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브리타니아 기사
[1] 본명은 무라카미 류노스케(村上竜之助).[2] 이 때의 자세한 경험은 '69'를 참고하도록.[3] 국내에서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4] 단 이 두 작품은 주로 한국에서 까이는 것이다.[5] 차라리, 작품 자체는 우파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여겨지는 무라카미 하루키 쪽이 이러한 '좌파 작가'에 가까운 입장을 자주 보인다.[6] 무라카미 류 본인 또한 이런 성질을 드러내고자 일부러 무미건조한 문체를 많이 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