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군(1490)

 



'''조선 성종의 왕자'''
'''무산군
茂山君'''

'''군호'''
무산군(茂山君)[1]
'''시호'''
효정(孝貞)
'''본관'''
전주(全州)
'''이름'''
종(悰)
'''부왕'''
조선 성종
'''생모'''
숙용 김씨(明嬪金氏)
'''부인'''
군부인 평산 신씨(平山 申氏)
'''자녀'''
8남 4녀
'''묘소'''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생몰
기간
'''
'''음력'''
1490년 미상 ~ 1525년 8월 2일
'''양력'''
1490년 미상 ~ 1525년 8월 20일
1. 개요
2. 생애
3. 사망
4. 여담
5. 가족과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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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중기의 왕족. 성종의 13남이자 서12남이다. 어머니는 명빈 김씨이다. 친형제는 없으며 전주이씨 무산군파의 파시조이다.

2. 생애


어릴 때부터 성실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성종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갑자사화를 거치며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이에 종친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던 중 위험에 처하자, 이를 피해 경상도 춘양으로 내려가 위기를 모면했다. 중종반정 이후 한성으로 돌아왔다.

3. 사망


1525년(중종 20년) 8월 20일에 사망했다. 향년 35세.[2]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에 있다.

4. 여담


  • 평소에 문필에 능하고 문장이 뛰어났다고 한다.

5. 가족과 후손


군부인 평산 신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8남 4녀를 두었다. 딸들은 이름이 전해지지 않으며, 각각 주부 신태충, 별좌 이언상, 판관 황몽정, 참봉 박주와 혼인했다.
장남은 영선군 이구수(永善君 李龜壽), 차남은 영천정 이미수(永川正 李眉壽), 3남은 영안정 이학수(永安正 李鶴壽), 4남은 영풍정 이기수(永豊正 李期壽), 5남은 태안군 이팽수(泰安君 李彭壽), 6남은 부안군 이석수(扶安君 李碩壽), 7남은 중모수 이담수(中牟守 李聃壽), 8남은 영원군 이덕수(永原君 李德壽)이다. 이들의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의 전주 이씨 무산군파를 이루고 있다.
[1] 군호는 함경도 무산군(茂山)에서 유래했다.[2] 세는나이 36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