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선동

 

1. 문선?
2. 문선의 역사
3. 문선의 현재
4. 문선을 배우려면
5. 응원단과 문예패


서울대학교 중앙 몸짓패 '골패'의 공연 영상.
학생운동의 컨텐츠 중 하나. 학생운동뿐만 아니라 각종 노동운동, 인권운동 등 운동권의 주요 컨텐츠 중 하나이다. 주로 '''문선'''이라고 불리우며, 사실 문선이 문예선동의 약자인지 문화선동의 약자인지는 불분명하다.

1. 문선?


문선이란 1980년대 6월 민주항쟁 전후로 대중의 의식화, 즉 이름 그대로 대중에 대한 선전, 선동을 위해 고안된 몸짓이다. 보통 민중가요+몸짓으로 구성되며, 몸짓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단위의 몸짓패, 문선패로 남아있게 된다. 지금도 운동권의 냄새가 풍기우는 장소인 시위 장소 등에서 공연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정치와 민주주의 등의 이야기가 오고가는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대학가에도 살아있다. 역으로 말하면 이게 살아있는 곳이라면 그런 분위기가 아직 단과대 또는 과에 남아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2. 문선의 역사


기본적으로 문선은 1960~70년대의 응원단 율동에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까지는 학생사회 문화라는 것이 철저히 인텔리겐치아의 문화였기 때문에 딱히 문화적 컨텐츠라고 하는 것이 없었다. 1960년대 조동일 박사가 학부생 시절 탈춤, 마당굿 연구가 있었고 전통문화 계승발전을 표방하며 학생운동에 접목시킨 예가 있었으나, 이때는 아직 그렇게 눈에 띄는 움직임이라 할 수는 없었다.[1] 1970년대가 지나면서 엄혹한 독재시대를 통해 보다 새로운 문화의 출현을 원한 학생사회는 대동제, 대동놀이를 비롯한 보다 전통에 기반한 학생문화를 출현시켰고, 이는 곧 독자적인 선전/선동 기법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시작된 것이 문선이다.
문선은 1980년대 창작되어 풍물놀이, 민중가요와 함께 운동권의 대중문화(...)로 자리잡았으나 90년대 이후 풍물놀이는 운동권의 색이 거의 배제된 우리 아름다운 문화 식으로 보존되었던 반면 다른 명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문선의 경우는 아예 사양길로 접어들게 된다. 21세기 들어서는 그나마 각종 대학의 사회과학대학이나 인문대학 쪽에 잔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가장 활성화된 대학교는 연례행사로 전교단위의 문선 공연 대회를 여는 고려대학교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고려대학교의 거의 모든 단과대에 문선패가 있다고 고려대가 아직도 휴교령이 떨어졌던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특수한 예외. 또한 문선의 전래 과정도 예전같은 방식이 아닌 맛있는 식사 대접이나 다단계식 마케팅(...)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문선패가 남아있어도 문선의 의미는 없어진 곳도 많은 편이다.

3. 문선의 현재


과거 말그대로 민중의 문화라고 불렀을 때와는 달리 이제 문선패, 몸짓패는 점조직화되어 그 전수방법이 몇 안 되는 선배들로부터 다시 몇 안 되는 후배들에게 근근히 배우고 익히는 방식밖에 남지 않아서 썩 잘 보존이 되는 편은 아니다. 민중가요의 경우는 원래도 악보 따위의 다른 매체로 전승되기도 하였으나 문선 같은 경우는 이렇다 할 보존 매체가 없었고 이제 21세기 들어서는 사문화화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라 아무래도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현실.
그렇다고 문선이 답도 없이 멸망할 예정은 아니다. 문선은 기본적으로 뭐 대단한 것이 없는 민중문화이기에 어찌되었던 전수 과정에서의 개악도 문화의 일부이며, 배우기 쉬운 특성상 사라지는 문선도 있는 만큼 창작 문선도 계속 나오고 있다. 또 민가를 벗어나 대중에게 친숙한 음악을 이용한 문선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시도되고 있다.[2] 다만 이런 창작 문선이나 각 패 내에 내려오는 문선을 서로 공유하며 배워가는 네트워크가 발달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4. 문선을 배우려면


보통 문선이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는 대학교 새내기의 경우 문선을 접하게 되는 장소인 대학교에서 단과대나 과(과반)단위에서의 문선패가 있다면 보통 그 때가 처음 문선을 알게 될 때이고, 또 본인의 의지와 큰 상관없이 문선을 배우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과, 특히 비상경계열에서는 문선을 접하기 어렵지 않은 편이나 상경계열, 특히 경영학과이과의 경우에는 학벌상에서 크게 높은 위치에 있는 몇몇 거대 사학이나 특별히 학교에서 문선을 보존하는 분위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애초에 문선따위의 존재를 살면서 영원히 모르고 살 수도 있는 게 보통이다. 그나마 다니는 대학교에 중앙 몸짓패따위가 보존되어 있다면 그런 곳을 가면 '''매우 친절하게''' 반겨줄 것이다.[3] 그나마도 없는 곳은 애초에 학교가 운동권따위는 예전에 고물상에 갖다 버린 곳일테니 주변의 타대학 몸짓패를 수소문하거나, 대학과 관련이 없는 문선패의 경우 각 노조의 문선대를 방문할 수도 있으나 노조의 경우에는 노동자를 받는 것이 원칙이라 문선대에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댄스교실따위의 환영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문선은 DB화나 온라인 보급따위가 거의 안 되있는 실정인데다가, 영상을 보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댄스에 지나지 않으므로(애초에 문선은 군무 성격이 짙다.) 문선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단체를 찾아가는 것이 그래도 여러모로 사정이 나을 것이다. 직접 바로 방문하는 것이 뻘쭘하다면 몇몇 대학 몸짓패에서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연락해보시라.

5. 응원단과 문예패


여러모로 똑같은 을 추는 단체로써 아주 대척점에 서있는 것이 바로 응원단이다. 어느 쪽에서 서로 우리는 적이라고 말하는 사이는 아니나 응원단이 매우 비정치적인 목적의 춤을 구사하며 아카라카, 입실렌티등으로 대표되는 학교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는 데 반해 문예패의 경우는 연대활동 등 학교사랑보다는 사회적 반골정신을 키워주기 일쑤인 단체이기 때문이다.[4] 이 두 집단의 갈등의 예시로 한양대학교를 들 수 있는데, 운동권의 등장 이후 한양대 최초로 비권 학생회「소명」이 당선되었을 때 학생회장 정 모가 응원단장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른 세 운동권 출신 후보들의 거센 공격 대상이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이후로 '한총련의 메카'였던 한양대는 고려대와 함께 비권 총학생회 연합을 구성하는 등 일명 한양대의 "명예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는 굉장히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또 이 비권총학생회인 '학생연대21'은 재벌3세가 의장을 지내고 전경련 캠프를 가는 등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반운동권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고 보인다.

[1] 1970년대까지 대학문화는 굉장히 서구적이었다. 비록 학생사회도 보수적이었고 기존 사회도 보수적이었지만 쌍쌍파티, 포크댄스, 메이퀸 선발대회 등 당시의 대학 축제는 미국의 학교 축제를 거의 본딴 것이었다. #[2] 대표적으로 2012년 선보였던 강남 스타일 문선이 있었다. 이름은 노동자 스타일...[3] 물론 중앙 몸짓패라는 곳은 본인의 순수한 궁금함 이상으로 굴릴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방문해야하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4] 물론 여기서 예시를 든 입실렌티의 경우에는 입실란티스에서 이름을 따온데다 구호중에 '''칼 마르크스'''가 등장하는 다분히 의도가 있는 응원구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