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놀이
1. 개요
風物
농악(農樂)[1] 이라고도 하며 농업 사회에서 특별한 날이 있을 때 흥을 돋구기 위해 연주하는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그외에도 풍장, 풍장굿, 풍물굿, 메굿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운다. 21세기 현재에는 무형문화재 보존회 등의 공연을 제외하면 일반인은 자주 접하기 힘들다. 2014년 10월 29일 북한의 아리랑[2] 외 32건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권고를 받으며, 2014년 11월 27일 농악이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기본적으로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태평소등의 악기를 다루며 기수(깃발 드는 사람), 채상(상모 돌리는 사람), 잡색 등 지역마다 조금씩 변형된 모습을 하고 있다.
2. 용어
- 굿판: 풍물놀이를 하며 노는 판을 말하며 무당이 하는 굿판(보편적이진 않지만 풍물굿과 대별되는 의미로 무굿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한다.)과는 다른 의미이다.
- 상쇠[3] : 농악대의 연주자들 맨 앞에 서서 꽹과리를 치는 사람으로 전체 굿판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역할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정도로 보면 된다. 농악의 성격 상 군악적인 특성도 있으므로 군대의 지휘관같은 역할도 한다.(상쇠가 입는 옷을 더거리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의 무관복과 비슷한 모양새이다.)
호남지역의 판굿에서는 후반부에 풍물굿 속의 연극이라 할 수 있는 도둑잽이굿을 연행한다. 이때 대사 중에 도둑을 잡기 위해 각 치배들에게 깃발을 들고 매복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며, 점고(점호와 유사) 및 행군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 치배: 악기를 치거나 분장 등을 하여 농악대에서 연주를 하는 사람을 말하며, 각 악기를 앞에 붙여서 말하기도 한다. (예: 장구치배, 북치배)
- 상치배[4] : 각 치배의 맨 앞에서 연주를 하는 사람으로서 농악대에서 해당 악기를 가장 잘 다루거나 가장 연륜이 있는 사람이 보통 맡는다. 악기 이름을 붙여 상쇠(꽹과리), 상장구(혹은 수장구) 등으로 부르며 북이나 징은 수북, 수징 이라고 한다. 채상은 수벅구 혹은 수벅고라고 하고, 소고는 수소고, 수법구, 수법고 등으로 부르며, 잡색의 상치배 역할은 대포수[5] 가 맡는다.
- 잡색: 악기를 다루지 않는 치배로서 대포수, 양반, 각시, 할미, 조리중 등 다양한 분장을 하고 악기 치배와 사람들 사이에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며, 연극을 하기도 한다. 잡색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농악대가 진을 칠 때 치배 간의 간격(너무 벌어질 경우 사이에 끼어들거나 하여 간격이 벌어지지 않게 함)과 각 진을 칠 때 마다 치배와 관객들의 사이를 잇거나 늘려 거리를 조절해 준다. 도중 치배의 채가 부러지면 잡색들은 치배에게 예비채를 건네준다. 또한 잡색들은 지친 치배들에게 음식이나 막걸리와 같이 먹고 마실 것을 건네주기도 한다. [6] 사실상 굿패가 아무리 음악, 시각적인 부분을 충족한다고 해도 연희자와 구경꾼을 연결해 주는 존재인 잡색이 시원찮으면 그 굿판은 흥하지 않기 마련이다.
- 치복: 치배의 복색. 풍물놀이를 할 때 입는 옷. 바지 저고리에 색색의 조끼, 삼색띠 등을 두르고 지역에 따라 고깔, 전립, 상모등을 쓴다.
- 상모: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쓰는 모자. 벙거지 모자에 달린 짧은 지지대에 길게 자른 한지를 붙여 만든다. 88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가 쓰고 있는 것이 상모다. 지역에 따라 채상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연주자들은 흥겹게 악기를 연주하고 뛰며 상모를 돌린다. 또한 쇠치배들은 '전립'이라고 부르는 상모를 쓰는 데, 이는 다른 상모와는 달리 긴 종이를 붙이지 않고 짧은 지지대에 부포 등을 달아 돌린다. [7]
3. 특징과 분류
삼분박을 기본으로 한다. 아리랑을 부르면서 3/4박자로 맞춰보면 그 느낌을 알 수 있다.
풍물놀이는 크게 웃다리, 호남농악, 영남농악 등으로 나뉘며, 웃다리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을 아우르는 말이다. 또한 더 세분하여 호남좌도, 호남우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좌도와 우도는 임금님이 계신 한양에서 호남지방을 바라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우측(서쪽 해안) 지방이 '우도', 좌측(동쪽 내륙) 지방이 '좌도'이다. 따라서 보통 사용하는 지도 상에서는 우측이 좌도, 좌측이 우도이다.
3.1. 웃다리
웃다리는 충청도와 경기도 일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웃다리 농악은 모든 치배가 상모를 돌리는 것이 특징이며 쇠치배가 쓰는 전립이 긴 빗자루 형태이다. 기본적으로 웃다리 농악의 파생분야가 남사당 농악이기에 비나리, 상모놀음, 쇠놀음이 매우 발달 했다. 대표적인 가락으로는 자진가락(사물놀이의 마지막 가락), 웃다리 칠채, 육채, 자진삼채, 덩덕궁이 있다.
3.2. 영남
영남 농악은 군사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장구보다 북이 위주가 되어[8] 힘차고 전투적인 느낌의 연주를 하고 진을 많이 짠다. 실제로 영남농악은 농악중에서도 진법과 강렬한 채상동작들이 주가 된다. 진주삼천포농악 같은 경우 1차 오방진풀이 시작 부터 춤이 아니라 뛰어 가면서 연주한다. 고대의 예비군훈련 같은 면모가 강하며 이른바 농군악적인 요소가 많다. 대표적인 가락으로는 별달걸이, 반길군악 등이 있다.
3.3. 호남
호남 농악은 쇠와 소고치배 일부가 상모 혹은 전립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고깔을 착용하고, 윗놀음(상모 혹은 전립)보다는 아랫놀음(악기 연주, 춤사위, 발재간)에 치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호남 좌도 농악은 척박한 산간 지방에 살던 사람들이 치던 것이라 빠르고 투박하다. 또한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보여주기'보다 '같이 놀기' 위주의 굿판을 짜는 경향이 있다. 대체적으로 힘과 강약조절이 뚜렷하며 개인놀음보다는 단체놀음이 발달한 편이다. 임실필봉농악의 경우 도둑잽이 굿이나 수박치기, 등지기, 춤굿등이 살아있어 사실상 공동체적인 요소로서의 마을굿이 특징적이다. 쇠와 소고놀음이 강한편이며 잡색놀음이 중심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웃다리의 정교한 쇳가락 및 마당밟이, 우도농악의 세밀함과 장구 및 부포놀음, 영남농악의 웅장한 진법과 강한 동작등이 골고루 섞여있어 농악을 처음 접했을 때 그 기초로써 공부하기에 적합한 농악이다. 대표적인 가락으로는 반풍류, 갠지갱, 영산굿, 짝드름(짝쇠놀음의 일종으로 좌도쪽이 원조라는게 국악계의 정설)이다. 후술한 바와 같이 대학 운동권에서 전통문화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당시 학생운동의 지도부(80년대 후반이니 전대협으로 추정)에서는 전국의 모든 풍물패를 필봉농악으로 통일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는 설이 있다.
필봉농악은 대학생 전수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 중 하나이며, 전수관 운영 등을 통해 가장 많은 대학생 풍물패가 연행하는 농악이다. 마을굿의 특성을 바탕으로 중요무형문화제인 다른 농악들과 구분점이 있었지만 현재 필봉마을의 인구가 많이 감소하여서 마을굿으로의 정체성이 감소하였고, 중요무형문화제로 지정된 잔수농악이 현재는 보다 마을굿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필봉농악은 좌도의 전형적인 농악 스타일이라고 하기보단 우도작 특성을 많이 지닌 농악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구분이 명확한 경계를 갖는 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이며 구분은 연구에 있어 어느정도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나뉘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호남 우도 농악은 비옥한 호남 평야에서 발생하여 돈 많은 지역 유지들의 요구에 맞추어 굉장히 화려한 공연 형식을 띈다. 쇠치배는 부포를 매단 전립을 쓰며 상대적으로 다른 농악대에 비해 개인놀음[9] 이 발달했고 좌도에 비해 느리고(좌도 농악에 비해 느리다는 거지 농악이기 때문에 느린게 절대 아니다!) 가락이 세밀하다. 또한 여러가지 가락들이 발달했고 한번쯤 들어봤다 싶은 농악장단들은 거의 우도장단들이다. 월드컵 장단이 오방진의 빠른 장단형인 진오방진이니 알게모르게 인지도가 제일 높은 장단. 맺고 푸는 수법이 매우 치밀하여 사물놀이에서 가장 많이 채용된 장단이다. 삼도사물놀이에서 별달걸이와 마지막 휘모리를 제외하면 전부 우도농악에서 쓰는 장단이다. 대표적인 장단으로는 오채질굿, 오방진, 세마치(양산도), 삼채, 굿거리(풍류굿)이 있다.
남원 농악은 지리상, 분류상 좌도에 속해있으나 호남 좌도와 우도의 특징을 모두 따온 연예농악이다. 위의 두 가지 농악의 특징이 모두 드러나는 것을 일품으로 치는데, 정박을 기준으로 통일감을 주면서 세부가락은 다르게 치며 세밀한 부분까지 하여야 한다. 농악단이 실력을 보이는 전굿에서는 도입-굿거리-채굿-진풀이-호허-영산 등의 장단을 사용한다. 설장구, 상쇠놀음, 소고놀음의 개인놀음도 발달되어 있다. 소고치배는 상모를, 장구치배, 쇠치배는 부들 상모를 쓰고 진행한다. 남원농악의 부들상모는 우도에서 쓰는 크고 아름다운 부포는 아니다.
우도농악의 부포
길고 얇은 막대에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
좌도 농악의 부들상모
막대는 없고, 구슬로 장식된 진자와 실로만 털뭉치가 고정되어 있다.
진도군에서는 '양북'이라 하여 북을 끈으로 몸의 중심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장구처럼 양 손에 북채를 쥐고 치는 놀음이 발달해 있다. 장구와 비슷하면서도 엇박과 강약 조절이 상당히 절묘하여 재미가 있다.
고창군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북을 어깨에 매지 않고, 팔뚝에 끈을 매고 한번, 또는 한 바퀴 반 정도를 돌려맨다.또한 가락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다는 것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특징이다. 또 고창 농악은 일반적인 굿판 뿐만 아니라, 매굿, 풍장굿, 샘굿, 길굿, 당산굿, 문굿등 다양한 굿이 있다.
4. 무형문화재
이하는 국가지정무형문화재이다.
- 진주 삼천포 농악 - 중요 무형 문화재 11-1
- 평택 농악 - 중요 무형 문화재 11-2
- 이리 농악 - 중요 무형 문화재 11-3
- 강릉 농악 - 중요 무형 문화재 11-4
- 임실 필봉 농악 - 중요 무형 문화재 11-5
- 구례 잔수 농악 - 중요 무형 문화재 11-6
이 밖에도 각 시도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농악들이 많다.
5. 대학교 풍물패
운동권이 발달했던 70, 80년대에 '우리 전통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자' 라는 취지에서 대학생들이 동아리를 조직하여 시골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농악과 탈춤 등을 배워왔으며 이때 처음 농악을 배운 이들이 대학 풍물패 1세대 들이고 많은 이들이 보존회원이나 전수관 사부님등을 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운동권 출신들 답게 사회 참여도 활발하여 시위가 벌어지면 농악대가 항상 진두지휘한다는 이미지는 이 때 만들어지기도 했다.
90년대에 운동권이 약화되면서 운동권에서의 풍물패의 입지도 좁아지고, 이에 따라 운동권에서 빠져나와 밴드 동아리같은 예술 분과 동아리로 발전하게 되며 이들이 대학 풍물패 2세대가 된다. 1세대와 비교했을 때 농악을 배운다는 것에 덜 적극적이며 사회 운동과 민중 해방과 같은 사회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문화 예술 활동 쪽으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많은 1세대들이 실제 농악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문예활동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이들은 폭넓은 문화 활동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다.
2000년대 들어 대학교 풍물패에서 운동권 경향은 많이 희석되었으며 선배가 밥 사준다고 해서, 그냥 호기심에, 사물놀이를 꽤 재밌게 봐서 꽹과리 한 번 쳐보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풍물패를 시작한 이들이 3세대들이다. 1, 2세대와는 달리 풍물을 배운다는 것은 이들에게 '좀 중요한 취미활동' 정도의 포지션을 갖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학생운동과 함께 대학 풍물패가 활성화되던 시절에는 같은 지역 풍물을 하더라도 중앙동아리와 단대동아리가 분리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시대상황상 학생운동과 순수 풍물사이에 갈등하던 옛 선배들 이야기가 되었는데 지금은 순수풍물을 하겠다고 독립을 주장하며 나온 단대동아리가 운동권 약화라는 현 시대상 모체 동아리를 먹어버리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전성기에는 굉장히 많은 풍물패가 존재하면서 여러개로 나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기가 사그라들고 합쳐지거나 망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난다.같은 학교내, 혹은 특정 지역 내의 여러 풍물패들이 모여서 연합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해 서로 필요한 물건과 인력을 공유하기도 하고[10] 단체로 행동할때 유용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건국대풍물패연합(건풍연), 경북대단과대풍물패연합, 경희대풍물굿패연합, 광운대풍물패연합, 동국대단과대풍물패연합, 서강대풍물패연합, 서울대단과대풍물패연합, 서울서부대학교풍물패연합(서풍-상명대, 연세대, 이화여대, 홍익대), 외대풍물패연합, 애국한양풍물패연합, 홍익대풍물패연합(홍풍), 부산대단대풍물패연합(단풍련)등이 존재한다.
5.1. 중,고등학교 농악부 등등의 경우
2020년 현재 중고등학교의 경우 위의 운동권과 같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유지하자' 라는 목적은 같으나 운동권, NLPDR같은 사상을 제외하고 정말 순수하게 풍물놀이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로 동아리 형태로 유지중이다. 대회 또한 청소년문화제 등등의 이름으로 자주 시행되며 각 지자체별로 지정된 강사밑에서 배우며 학교 축제에 자주 동원된다.
[1] 어원에 관하여 민속학자들에 따르면 농악이라는 단어는 일제가 전통문화를 비하하기 위해 붙인 단어라는 말이 있고 농악 전 부터 쓰였던 것은 풍물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문화재청 담당자를 통해 직접 확인한 결과 17세기 문헌에서도 농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왔고,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이 제각각 달라 단순한 악기연주로 격하하려는 일제의 시도였다는 설은 비약적이라고 한다.[2] 평양, 함경도, 평안도 등의 지역. 남한의 아리랑은 2012년에 이미 등재되었다.[3] 꽹과리를 쇠라고 한다[4] 수치배라고도 한다[5] 포수, 사냥꾼[6] 그런 와중에도 흥을 돋우는 것을 잊으면 안 되니 사실 제일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역할이다.[7] 실제로 외국인들은 손으로도 하기 힘든걸 머리로 하는 것에 경악을 하기도 한다.[8] 영남농악의 경우 북이 중시되어 치배의 배열도 쇠-북-장구-소고 순이다. 반대로 호남 농악은 쇠-장구-북-소고 순[9] 악기별 혹은 개인별 놀음. 쉽게 생각하면, 장기자랑 비슷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우도는 설장구의 본좌지방이며 뻣상모놀음의 원조이다.[10] 악기를 빌려주거나, 외부치배라고 하여 함께 판굿에 참여하기도 한다. 특히 여대 같은 경우에는 징치배가 적거나 없기 때문에 외부치배를 많이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