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글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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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작곡가.
Михаил 'Иванович' Глинка
Mikhail Ivanovich Glinka
1804년 6월 1일 ~ 1857년 2월 15일
1. 개요
2. 생애
3. 주요 작품
3.1. 오페라
3.2. 관현악곡
3.3. 실내악
3.4. 피아노곡
3.5. 성악곡


1. 개요


국제적으로 처음 인정을 받은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러시아 국민악파의 창시자.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Ruslan and Lyudmila)' 로 유명하다. 이 오페라의 서곡은, 광고 음악이나 방송용 배경 음악으로 많이 쓰여 대중에게 익숙하다. 들으면 "아아 이 음악!" 할 정도로 익숙한 곡.

이외에도 '차르에게 바친 목숨(A Life for the Tsar)'[1] 같은 다른 오페라들도 러시아를 중심으로 종종 상연되고 있으며, 그 외에는 러시아 혼례 음악을 주제로 한 관현악 환상곡 '카마린스카야(Kamarinskaya)' 등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소련 붕괴 후에는 1991년~2000년에 걸쳐 그의 '애국가' 라는 작품이 러시아 국가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집권 후 소련 찬가의 가사를 개작해 새로운 국가로 지정하면서 교체되었다.

2. 생애


1804년 6월 1일(구력 5월 20일) 러시아왕조시대 스몰렌스크(Смоленская губерния) 노보스파스코예 셀로(Новоспасское село)에서 귀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6살까지 할머니 손에서 길러졌고, 10살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13살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음악을 배웠다. 1822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학교를 다니며 졸업한 후에도 1830년까지 머물면서 피아니스트가수로 삶은 이어갔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본능적으로 민속음악의 멜로디가 스며있다.
1830년에 이탈리아로 간 그는 3년동안 머물면서 벨리니도니제티를 만났지만 이러한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맘에 안들었는지 베를린으로 가서 지그프리트 덴으로부터 제대로 된 정규 작곡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글린카는 얼마후 결혼했다.
1835년부터는 그의 첫 오페라인 《차르에게 바친 목숨(Жизнь за царя)》 작곡을 착수했다. 이 작품은 당시 차르였던 니콜라이 1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고 다음해 궁정악장으로 임명된다. 이혼 때문에 살짝 휘청인 다음에 글린카는 두 번째 작품인 《루슬란과 류드밀라(Ruslan and Lyudmila)》를 완성했으나 흥행에 실패했고 글린카는 1844년 파리로 떠났다. 거기서 엑토르 베를리오즈와 친분을 맺고 이어 스페인등을 여행한다. 1848년에는 바르샤바에 머물면서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마린스카야(Kamarinskaya)》를 작곡하였는데 이는 차이코프스키러시아 5인조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 후에 다시 파리로 갔다가 선생님이었던 덴을 만나러 베를린으로 갔으나 1857년 2월 그곳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3. 주요 작품



3.1. 오페라


차르의 삶
'''루슬란과 류드밀라'''

3.2. 관현악곡


서곡 D장조
서곡 G단조
안단데 칸타빌레와 론도 D단조
왈츠 환상곡 B단조
스페인 서곡 1번
스페인 서곡 2번

3.3. 실내악


7중주 E플랫 장조
현악 4중주 D장조
현악 4중주 F장조
비올라 소나타 D단조 (미완성)
그랜드 피아노 6중주 E플랫 장조

3.4. 피아노곡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변주곡 F장조
마주르카 G장조
녹턴 E플랫 장조
핀란드 노래 D장조
이별의 왈츠 G장조
3개의 푸가
왈츠 B플랫 장조
그랜드 왈츠 G장조
폴로네즈 E장조
폴카 D단조

3.5. 성악곡


합창곡 '러시아 노래'
그 외의 다수의 가곡, 합창곡 등이 있음.

[1] 여담으로 여기에 나온 곡중 하나인 영광(Славься)은 나라 사랑 노래나 군가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