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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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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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의 제3·4·6·7대 대통령.
1999년 12월 31일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이래 2020년까지 21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러시아의 대통령이다. 기본적으로는 민주적 방식 속에서 자유선거를 통해 당선된 국가원수지만 다수의 선거개입, 조작 논란이 있어서 사실상 독재자로 간주된다. 통합 러시아당의 실질적 당수이기도 하다. 물론 통합 러시아당의 법적 당수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이지만, 사실 메드베데프가 당수인 이유는 당정분리를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에 불과하다.
정식으로 연방 대통령을 맡은 뒤 3연임이 금지된 헌법을 피해 당시 부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앉혀놓고 자신은 총리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실권을 장악했고, 메드베데프의 임기가 끝난 다음 치러진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2] 2018년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3] 2016년 총선에서 그의 정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의석을 과반수 차지 함으로써 그의 영향력이 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4기 당선에도 성공해 2024년까지 임기예정이다.
또한 푸틴은 2013년~2016년까지 4년 연속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4]
2020년 4월 22일 개헌국민투표를 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투표가 연기되었다. 이 개헌안이 통과되어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졌다. 푸틴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사실상 종신집권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952년 10월 7일 소련 레닌그라드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쥐들이 지나다니는 소련 노동자들의 낡고 허름한 공동 주택에서 자랐다.
부모가 모두 독소전쟁의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버지는 소련 해군 수병 출신으로 NKVD와 육군에서 복무하다 레닌그라드에서 중상을 입은 상이군인이며, 어머니 역시 친정 식구들 다수가 전쟁통에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참극을 겪었다. 이들이 가진 첫째 아이는 어릴 적에 일찍 죽었고, 둘째 아이는 레닌그라드 봉쇄 중 디프테리아로 사망했다. 그렇게 폐인이 된 30대 부부만이 살아남아 전쟁 후에 마흔이 넘어 세번째로 낳은 아이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다.#[5]
청소년기의 푸틴은 본인도 인정했듯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또래 불량학생들과 어울리며 크고 작은 비행을 저지르던 비행청소년이었다.[6] 그탓에 소련 공산당 어린이 조직인 피오네르 동맹에 한참 늦게 가입했고 학교생활도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전후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며 겨우겨우 지역 공산당 중간간부로 승진한 그의 부친과 독실한 정교회 신도이자 파트타임 일거리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던 모친은 당시 어린 푸틴의 행실을 교정하려 노력했으나 처음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부모의 꾸준하고도 엄격한 가정교육과 푸틴과 가깝던 운동코치들의 지도 덕분에 푸틴은 고학년 시절부터 모범적인 학생으로 거듭났고 부진했던 성적이나 당활동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19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푸틴은 철이 든 이후 학업에 집중하면서도[7] 어린시절 취미를 붙인 호신술(유도 등) 연마를 계속 이어갔다. 스파이 활동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에 체육을 업으로 삼지는 않았으나 대학시절에 유도 사범자격을 얻은 뒤 지방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등 성인이 돼서는 그럭저럭 프로급의 호신술 실력을 갖추게 된다. 또한 비행청소년 시절의 다소 자유분방한 기질을 잃지 않고 흐루쇼프 해빙기(1956~64)에 시작되어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집권 초기까지 짧게나마 이어진 소련의 낙관적인 사회분위기와 비교적 자유로운 소비/문화생활을 즐겼으며 친구들과 몰래 서구권 문화매체를 향유하기도 했다.
선전물에 등장하는 영웅적인 첩보원들의 모습에 사로잡혀 일찍부터 국가보안위원회를 동경한 푸틴은 청소년 시절에 만난 KGB 레닌그라드 지부 공보관의 조언대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법학부에 입학해 재학 도중인 1974년 KGB 수습요원으로 발탁되었다.
2.2. KGB
전직 KGB 요원으로 첩보 활동에 대한 세간의 환상이 있고 실제로 국외에 파견되기도 했지만 푸틴이 맡은 일은 낮은 단계의 보안과 연락업무 등에 그쳤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007로 대표되는 자극적인 블록버스터물의 첩보원과는 거리가 먼 셈이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ormer KGB man.
'''세상에 전직 KGB 요원이란 건 없습니다.'''
1974년 수습생으로 정보계에 발을 들인 푸틴은 1975년, KGB 레닌그라드 지부의 행정부서와 국내담당부서(제2총국 등)에서 근무하며 다른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업무와 각종 스파이 교육을 동시에 소화했다. 이후 해외부서로 이동해 보안업무를 맡으며 모스크바 본부와 레닌그라드 지부, KGB 아카데미를 오가다 1983년에 교제중이던 첫번째 부인 류드밀라 시크레브네바[8] 와 결혼하고 1985년 여름에 KGB 제1총국 소속으로 동독 드레스덴 지부 파견 근무를 명받았다. 이때의 출장이 푸틴 생애 최초의 외국방문이었다.
1990년 드레스덴 지부의 다른 간부들과 함께 본국으로 소환되기 전까지 푸틴은 동독에서 상당히 평이한 정보업무에 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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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6일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속 사진가 피트 수자가 푸틴의 젊은 시절(36세)이라고 주장하며 공개한 사진. '''관광객인 척 위장'''하고 근무했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알려져 있다시피 '''푸틴은 중간관리직 요원으로 드레스덴에서 쏟아지는 서류업무를 처리하며 현장에 나가는 일은 드물었기에'''[9] , 당시 모스크바에서 경호내지 사찰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라 보기 어렵다. 고로 저 사진 속 인물은 푸틴이 아니라 푸틴을 닮은 타인이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도 이에 대한 질문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말한 바 있으며 푸틴에 대한 인터넷 밈이나 영웅주의 서사와 함께 널리 퍼진 대표적인 오해 사례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러시아 TV와의 인터뷰에선 "성난 동독 사람들이 드레스덴의 슈타지(동독 비밀경찰) 건물을 공격하던 와중에 일부 무리가 KGB 지부로 몰려들었는데 나는 그곳에 있었고 ''''난 통역''''이라고 말해서 위기를 넘겼다"고 말했다.[10] 워낙 긴급한 상황이라 부재중인 지부장이나 KGB 모스크바 본부의 지시를 기다릴 틈이 없어서 동독 소련 주둔군 사령부에 연락해 당직장교를 통해 수 차례나 소련군의 지원을 요청했지만 당직장교는 명령 내려오지 않았다면서 병력을 출동시키기가 어렵다고 대답했다. 나중에서야 명령계통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시위대가 물러가고 나서 몇 시간 뒤에 소련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푸틴은 이때의 경험으로 수직적이고 경직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감이 심해졌다고 한다.
안그래도 전술한 동독에서의 위기를 넘긴 사건을 비롯하여 5년 간의 동독 파견생활 도중 서독의 균형잡힌 경제발전상과 뛰어난 산업모델에 큰 영감을 받았고 이후 동구권 침체, 동독 사회주의통일당의 분열과 호네커의 몰락, 독일 재통일 준비를 모두 지켜본 푸틴은 그 과정에서 소련에 맞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도입의 필요성을 점차 실감한다.
그와 동시에 푸틴은 이전부터 보수적이고 현실인식이 떨어지며 지나치게 복지부동적인 주류 공산당 지도부 및 원로들에 대해 큰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80년대 후반 체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던 와중에도 여전히 소련에 충성적이었던 그는 자신의 영웅인 유리 안드로포프와 정보부의 옛 위인들을 존경했고[11] 처음엔 고르비의 개혁작업도 긍정했지만 조국이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원하던 그의 바람과 달리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로 치닫았다.
경제난에 빠진 소련과 마찬가지로 귀국 후 푸틴의 입지는 줄곧 하락세였으며 무소불위의 KGB 역시 과거의 위엄을 잃어가고 있었다. 모스크바 본부, 제1총국 본부의 한직을 사양하고 KGB 레닌그라드 지부로 돌아온 뒤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에서 위장신분으로 근무하던 푸틴은 자유선거로 선출된 신임 레닌그라드 시위원장(시장) 아나톨리 소브차크[12] 를 만나면서 정보업계를 떠나 민간에서 그를 따르기로 하고 KGB에 사표를 제출한 뒤 출근도 안 했지만 정작 레닌그라드 지부와 본부에서는 푸틴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푸틴은 소브차크의 보좌관으로 들어가면서 KGB 윗선에는 '불온한 정치신인과 함께 일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라고 제안을 한 뒤 작전을 승인받고 '''KGB와 시위원장 사무실에서 동시에 월급을 받아 챙겼다.''' 게다가 소브차크와 만났을 때 자신이 KGB 요원이라고 밝혔지만 정작 소브차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오히려 푸틴에게 자기 편인 척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겠고 일하기 쉽지 않다고 속내를 털어 놓으며 하소연을 했을 정도로 소브차크의 주변 인물들은 부패해 있었고 차후에 여러 스캔들을 터트리게 된다. 오히려 솔직하게 말한 부분이 푸틴에게는 신의 한수가 된 셈이다. 2018년에는 그의 슈타지 신분증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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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새로 완공된 러시아군 정보총국 GRU(Glavnoe Razvedyvatel'noe Upravlenie) 본부를 방문했을 때 스테츠킨 권총을 쏴 보는 푸틴. KGB 출신이라 그런지 사격 자세도 상당하다.
그가 동독 드레스덴 지부로 보고되는 각종 정보들을 종합하면서 서독 및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심해지는 경제력, 기술력 격차로 내부 개혁의 불가피성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드레스덴 지부에 보고된 1급 정보를 가공한 뒤 KGB 본부에 보냈지만 산업이 정체된 탓에 그 정보를 소련의 기술로 구현하지 못해 결국 폐기 처분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자주 이런 쪽으로의 이미지를 어필하는 홍보 사진이나 영상물을 간간이 공개하고 있다. 야외에서 웃통 까고 캠핑하는 모습이라든지, 아래의 비행기 조종이나 무술 등등. 지난 대선 때는 폭주족처럼 오토바이를 끌고 오는 퍼포먼스를 하였는데, 당시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젠 좀 식상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러시아인들도 상당수.
여담으로 푸틴이 걷고 있는 영상을 보면 왼손만 평범하게 움직이고 있고 오른손은 근육 병이라도 생긴거 아닐까 싶을만큼 몸에 밀착해 거의 움직이지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KGB 사복 요원들이 언제든지 사격을 할 수 있도록 받은 훈련 때문이라고 한다. 이른바 gunslinger gait(총사 걸음걸이)라고 부르는건데, KGB에서 은퇴한지 오래되었지만 직업병이 몸에 밴 듯하다. 관련 가디언지 기사(영문)
2.3. 정치 활동
3. 평가
3.1. 정치
한국 인터넷에서야 희화화된 짤방들이나 방사능 홍차같은 밈이 유행한 나머지 푸짜르의 위엄이라는 둥 농담거리로 삼지만, 실제 푸틴의 행보를 보면 그냥 '''독재자 그 자체다'''. 스탈린 사후에는 '''서기장들의 임기제가 철저하게 지켜졌다.''' 물론 러시아 민주주의는 옐친의 급속한 변혁 속에 1992년에 시작하자마자 고꾸라져 버렸지만, 그나마 명목상으로나마 존재했던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박살내버린 사람은 결국 '''푸틴'''이다. 푸틴은 러시아 헌법을 가지고 놀면서[13] 현 정부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하거나, 기타 헐뜯는 일은 꿈도 못 꾸게 하며,[14] 실제로 언론인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는 사건마저 벌어지는 까닭에, 푸틴은 민주주의를 압살했다고 비판받는다. 일단 독재자들 중에서는 그나마 자국을 사랑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많은 비인권적인 행위에 비해 좋은 이미지도 그 영향이 크지만, 결국에는 빼도박도 못하는 독재자일 뿐이다.
특히 언론 탄압이 극심한데, 예를 들어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군 전쟁 범죄를 고발하던 인권변호사가 대낮의 모스크바 시내에서 총격으로 살해당하고 반정부적 논조의 언론사 기자가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 또한 폴로늄 홍차의 희생자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마찬가지로 자택에서 암살당한 친구 노바야 가제타의 기자인 안나 폴릿콥스카야 살해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기 위해 이탈리아 기자와 접선했다가 피살됐다고 한다. 2014년 4월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칼럼을 모은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부제가 압권. '러시아 민주주의의 실패와 냉소, 무기력에 관한 보고.' 그녀에 따르면 러시아 민주주의는 옐친 시대인 1996년에 이미 위기에 돌입했고, 2003년 12월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이 승리하면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암살 주도 의혹이 아니더라도 푸틴이 저지른 반민주적 행동은 한 둘이 아니다. 모스크바의 텔레비전 전파수신탑인 오스탄키노 탑에서 화재가 일어날 때 '''화재가 일어나는 동안 모스크바에 있는 웬만한 TV는 다 먹통이 된 적이 있었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원인 모를 화재에 가깝지만...문제는 그때 여론이 체첸 전쟁과 푸틴 통치에 대하여 꽤나 안 좋았는데, 그 화재 즈음해서 '''반정부적인 언론사의 주요 문건을 압수한 일이 있었다.''' 게다가 방송국 전파가 하나둘 복구되는 가운데에도 반정부적인 방송국의 전파는 가장 늦게 복구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정적들을 사형시키지는 않으며[15] 정치범수용소를 따로 건설하지는 않는다. 이는 러시아가 아예 제도적으로 비판을 막아버린 북한이나 이란, 싱가포르, 혹은 공식적으로 일당독재를 표방하는 중국이나 베트남과는 달리 대내외적으로 자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기 때문인데 푸틴에 반대하는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을 어느 정도 봐주는 이유는 자신이 자신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외부에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푸틴이 여태 권력자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 것도 체육관 선거 같은 것이 아니라 외면적으로나마 국민에게 선출된 덕분이니...그 탓에 '푸틴은 과연 독재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푸틴은 '독재자'인가? '''물론 끊임없이 제기되는 러시아 대선의 부정선거 증거와 언론 탄압을 보면 그냥 독재자의 가면에 불과하다.'''
보리스 옐친 시절의 다 망해가던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발전시킨 게 푸틴의 정치 능력이었다고 보면서 단순히 푸틴을 서구의 눈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서구에서 가장 좋아했고, 민주주의의 화신이라고 칭송했던 보리스 옐친 시기의 러시아에는 실제로는 사회 붕괴를 틈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었고 각종 이득을 독점해온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가 그나마 이룬 경제적 변화의 이점을 악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친족들의 독점과 부패, 재벌과 마피아에 대한 견제 따위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1998년 당시 디폴트를 선언하며 대놓고 돈 없다며 배째라 전술로 비판받기도 했는데 그에 비해 나라를 안정화시키고 정경유착의 정도를 완화한 푸틴이 러시아의 현실에는 더 낫다는 것이다.
푸틴은 자신에 반대하는 올리가르히와 레드 마피아를 쓸어내며(친푸틴 성향의 과두재벌과 마피아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 덕에 러시아는 구조개혁과 오일머니로 중산층이 성장할 수 있는 활로를 더욱 키웠다는 게 푸틴의 강권통치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강권 통치를 경제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은 그 뿌리에 "민주주의를 실행할 내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서구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비판적인 이들은 매우 약소한 민주주의 경험을 가졌던 폴란드나 그보다 더한 동유럽 국가들의 빠른 자유화 사례를 들며 그 내적 기반을 박살낸 게 바로 옐친-푸틴 정권이라고 반박한다.
일부는 인도와 중국의 차이를 두며 설명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인도는 불안정한 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경제 성장이 큰 일당독재국가인 걸 보면 알 수 있다. 푸틴을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표를 얻고 있는 자들은 심하게 분열된 좌파그룹과 매우 위험한 극우주의자들이다. 사실 러시아는 현 상태로는 푸틴 이외의 대안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물론 옐친과 푸틴 모두 대안이 될 만한 세력들을 떡잎부터 다 찍어냈긴 했지만, 지금 당장 표를 행사해야 하는 유권자들 입장에선 민주주의 선거에서는 역시 최고가 아닌 차악을 뽑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그러나 푸틴을 경제적 업적으로 옹호하는 논리에는 허점이 많다. 그가 보여준 성과가 일시적 유가상승에 의한 복권 당첨이라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제조업, 문화산업 같은 장기적 발전에 유리한 형태로 산업 구조를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를 제압한 이후 새로 들어온 무리 역시 푸틴의 친구들이었다. 러시아 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인 석유/천연가스 관련 기업들은 모두 푸틴과 연계된 이들이 장악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업체 가즈프롬으로 경영진이 전원 푸틴의 친구들과 KGB후배[16] , 집권 통합 러시아당 출신 인사들, 그리고 피제르츠라고 불리는 동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외에도 통신, 전력, 수송, 철도 등 주요 산업체는 모두 친푸틴 인사들이 장악하였으며, 불투명한 회계 처리로 막대한 돈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푸틴과 그 측근 그룹이 '''러시아 GDP의 대략 15%~30%를 직접 통제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이로 인해 석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 수출에 편중되어 있는 러시아 경제는 체질 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에너지 가격 변동에 울고 웃는 러시아 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산업구조의 변화(경공업, 중공업, 첨단산업, 서비스업, 문화산업 등의 육성 등 다양화가 필요하다.)가 필요한데, 푸틴과 그 측근들이 에너지 산업을 휘어잡고 있으니 에너지 산업의 비중을 줄이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리가 없다. 또한 경제개혁에는 필연적으로 단기적인 진통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푸틴이 지지를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에너지 자원 수출을 통해 다 죽어가던 러시아의 경제를 그나마 살만하게 만들었다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푸틴이 비록 일시적인 것일 지라도 개혁에서 수반되는 진통을 감당하려 할 지는 미지수.
하지만, 이는 푸틴의 공과가 뚜렷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일시적인 유가 상승이 있어도 자원의 저주에 걸리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반면에 엘친에 의해 완전히 망해버린 러시아를 지금의 러시아로 만든 업적은 인정해야 한다는게 지지자들의 변론이다. 어찌 보면 콜럼버스의 달걀이지만 러시아 국민 중 16%인 2천만명이 빈곤층인 것을# 보면 국가 경제가 발전하더라도 국민 생활 수준이 쉽게 좋아지기는 어려우며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가 실시되자 러시아 경제는 더욱 악화되어 2015년 1분기 물가 상승률은 16%를 기록했고 연간 실질임금은 5월 14%, 6월 7% 떨어졌다. 사실 빈곤율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통치했던 15년 동안 꾸준히 하락해 2014년에는 11%를 기록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다시 16%로 올라간 것이다. 1996년에 러시아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빈곤층이었으나 당시 러시아는 유가상승의 행운을 누리지 못했으며 '''푸틴 역시 옐친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예를 들어서 2010년 3월 29일 파르크 쿨투리 지하철역에서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있었다. 적어도 30명이 죽은 큰 사건이었는데, 푸틴은 자신의 분노를 이렇게 남겼다. "테러리스트들은 박살날 것이다."
2011년 1월 26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의 자살폭탄 테러로 35명이 죽고 160여 명이 다치자, 푸틴은 '''"그게 누구였건 간에, 어떤 사정이 있었건 간에 그들은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강권통치 이외에도 독재를 위한 발판을 임기 내내 만들어갔다. 러시아 총선은 원래 선거구제와 정당명부제의 '50 대 50' 혼합제였는데, 푸틴은 이를 100% 정당명부제로 고쳤다. 이에 따라 7% 이상 득표할 때만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정받고, 그 이하를 득표한 정당은 의회 진출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대통령 후보를 등록할 때 '''하원의 추대''' or '''20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게 만들도록 법을 고쳐버렸다. 푸틴측에서는 군소후보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직접선거식 지방자치제도 사실상 '''대통령 임명제(지방자치 간선제)'''로 바꿔버렸다. 푸틴 이전만 해도 지방자치단체장은 직선제로 선출되었는데, 푸틴 집권 후 의회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적합한 후보 3명을 '''대통령'''에게 제출하면 '''대통령'''이 결정해서 단체장을 앉히는 형식으로 바뀌었다.[17]# 바지사장 메드베데프 집권시에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린 것도 유명한 일.
이젠 비판마저 싫어하고 탄압하며 아예 듣지 않기 위해 중국처럼 검열제를 실시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중국과 손잡고 인터넷 검열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기다 '''인터넷이 CIA의 프로젝트'''라는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하고 있다.
종신 대통령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도, 러시아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 죽을 때까지 종신집권하는 모습이 대내외적으로 보기 좋지 않을 뿐더러 종신 집권 시도했다가 예기치 못한 실정이나 시민 혁명등으로 축출이라도 된다면 역사에 본인을 위대한 정치가로 이름 남기고 싶어하는 푸틴으로서는 영웅은커녕 로버트 무가베처럼 본인이 잘한 것들마저 부정당하는 최악의 결말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진심일 가능성이 크다.[18][19]# 이 경우 2019년 퇴임한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와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2018년 대선에 나갈 거냐는 질문에는 "러시아 사정과 '''자신의 기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대답하며 출마를 기정사실화했고 결국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출마를 확정했다.
2015년 2월 27일에 푸틴을 비판하던 야당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Борис Немцов)가 밤에 총탄 네 발을 맞고 사망하고 말았다. 푸틴은 '''공식적으론''' 넴초프의 살해를 비난했지만 경찰이 사건 현장을 깨끗하게 '''물청소'''하는 걸로 볼 때 아마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이걸 카디로프가 넴초프를 제멋대로 죽이고 푸틴은 이걸 눈 감아주는 상황이라고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카디로프는 명백히 푸틴의 후원으로 정권을 획득했고 유지하고 있다. 그런 카디로프가 딱히 이해관계도 없고, 푸틴 권력의 심장부인 모스크바에서 중앙 정계의 정치인을 '''제멋대로''' 죽이고 다닌다는 건 전혀 설득력이 없다.
2016년에는 야당(우파 연합(2008년 해체)) 소속의 니키타 벨리크 키로프 주 주지사[20] 를 부패 혐의로 체포했는데 미리 짜인 각본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사진. 게다가 2017년에 가정폭력처벌을 완화시키는 법에도 서명을 했다.#
2017년 3월 23일, 우크라이나로 망명 후 반 크렘린 발언을 하던 데니스 보로넨코프 전 러시아 연방 공산당 의원이 키예프 시내에서 총격을 당해 의문사했다. 보로넨코프 의원을 살해한 범인은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 출신이라고 하는데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러시아 FSB에 포섭된 인물이라고 한다.
인구수 4위 대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의 시장에 러시아에서는 정말 드물게 야당 후보 예브게니 로이즈만이 당선되고 2017년에 재선까지 성공하자 눈엣가시라고 판단하고 2018년 통합 러시아당이 예카테린부르크 시장직'''만''' 지방자치제를 '''폐지'''하고 관선제로 돌려버렸다.
정적, 반체제 인사 등을 지지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빚더미를 쌓아 버린다고 한다.## 중국처럼 독자적인 인터넷 체제를 만들며, 러시아판 위키피디아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2020년 3월 10일, 자신의 2024년 재집권 도전을 허용하는 개헌안 지지 의사를 밝혀 우려를 사고 있다. 물론 푸틴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애초에 러시아 헌법재판소가 푸틴의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을 내릴 리가 만무하다. 이 개헌안이 그대로 통과되어 푸틴이 재집권한다고 가정할 경우 푸틴은 무려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된다.
2021년 1월 19일 푸틴의 정적인 나발니에 의하면 유럽의 작은 나라인 모나코의 약 39배에 달하는 비밀궁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발니의 2차 폭로에 따르면 숨겨진 딸이 있다고 한다. 나발니가 숨겨진 딸이라고 주장한 여성의 인스타에는 구찌 마스크를 끼고 다니면서 입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톰 포드, 샤넬, 알렉산더 왕 등의 각종 명품을 착용한 일상이 담겼다. 게시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상황에서도 칵테일과 샴페인을 마시러 다니는 모습도 담겼다.##
3.2. 자국의 평가
지지율이 100%라고는 할 수 없지만, 러시아인들의 푸틴에 대한 지지는 확고한 편이다.
푸틴의 지지 기반은 주로 국가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에 근거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소련 붕괴 이후 초강대국의 지위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냉전에서 졌다는 패배감이 국가적 콤플렉스였다. 그렇기에 푸틴의 카리스마를 앞세운 권위주의적 행보와 호전적인 대외 정책은 열강으로의 복귀를 원하는 러시아인들의 욕구에 부합한다.
푸틴이 앞세우는 전통 문화의 부활과 보수주의, 러시아 제국의 범슬라브주의를 연상시키는 강경한 민족주의에도 러시아인들은 호의적이다. 이는 소련 붕괴 이후 아노미 상태가 된 러시아에서 중심 이념이 된 것이 민족주의와 정교회 신앙이기 때문이다. 즉, 푸틴의 행보는 소련의 영광을 꿈꾸는 유사스탈린주의자들과 우익 보수주의에 경도된 민족주의자들 모두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러시아계 유명인들도 푸틴에 대한 지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소련 시절에는 체제 비판자였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도 정교회를 믿는 민족주의자로서 생애 마지막에는 푸틴을 지지하고 나섰다. 2015년 10월 8일, 비정상회담에서 러시아 대표로 출연한 바 있는 일리야 벨랴코프가 JTBC 썰전에 출연하여 푸틴에 대한 러시아 내의 인식과 평가를 전한 바 있다. 일리야는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일리야에 따르면 러시아 사람들도 90년대까지는 푸틴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 1999년 옐친 전 대통령이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 또 푸틴이 KGB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엇갈린다고 한다. 선거에 대해서는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고 한다.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도 하고 러시아에서 푸틴을 대체할 후보, 푸틴의 강력한 지지기반과 견줄 후보가 없기 때문에 푸틴이 계속해서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는 것이라고 한다.
인기 비결은 역시 '''경제'''. 구체적인 배경과는 별개로 대중이 보기엔 푸틴이 집권하는 순간부터 경제가 살아나고 생활 수준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은 푸틴이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독재'가 아니라 프랭클린 D. 루스벨트나 앙겔라 메르켈 처럼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장기집권하고 있는 정도로 생각한다고.[21] 러시아인들은 북한이나 중국, 벨라루스, 타지키스탄과[22] 같은 국가는 명백한 독재국가이지만, 러시아는 러시아 유권자들이 푸틴과 통합 러시아당을 선택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푸틴이 독재자면 그냥 헌법 무시하거나 개정해서 종신 대통령을 했지, 왜 굳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을 했겠느냐. 푸틴은 충분히 종신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헌법을 존중하기 위해 독재자가 되는 걸 스스로 거부했다."는 반론을 펼치며 '''푸틴이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를 존중하니''' 자국을 독재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23][24]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생각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리야의 발언은 러시아 국민들의 생각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 내에서 푸틴의 평가는 대외적인 평가와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25]
일리야 벨랴코프의 발언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이 2015년 10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사상 최고치인 89.9%를 기록했다. 특히 2014년 3월 크림 반도 병합 이후부터는 줄곧 8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실을 보았을 때 러시아 국민들이 얼마나 푸틴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푸틴이 러시아 내에서 이렇게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요인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러시아의 내적인 요인이 아니라 국제유가 변동에 의지하긴 했지만 푸틴이 오일머니로 충당한 재원을 이용해 옐친 시대의 사회적 혼란을 비교적 잘 수습했다는 점이 있다. 실제로 옐친 집권기에는 급진적인 경제개혁이 처참히 실패한 뒤 경제관료들[26] 이 '''회복을 위한 과도기'''라고 규정한 최악의 러시아 경기/사회붕괴가 이어졌는데 이때 정부 실세들의 비호를 받으며 부상한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들이 사회 전반에서 무분별하게 활동하며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벌였다. 게다가 1996년 첫번째 체첸 전쟁에서도 사실상 패배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면서 소련 시절의 위상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인증하고야 말았다. 이는 한때 미국과 나란히 냉전의 양 축을 구성하던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상처로 다가왔다. 유고사변을 포함해 러시아에게 강대국다운 영향력이 증발했음을 확인시켜주는 일들이 점점 빈번해졌고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는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2000년, 푸틴이 처음 집권한 뒤 전임자 옐친과 협력하던 올리가르히들이 후계자인 자신을 한참 낮잡아 보며 상공업상의 독자적인 재량권을 휘두르려 하자 이들과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 푸틴은
1) 대통령이 가진 강력한 사정권.
2)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정활동 ~ 90년대 정계활동에서 형성된 우호적인 인맥, KGB/FSB의 선후배들(이후 실로비키), 친푸틴 올리가르히, 기타 여권인사들을 규합해 구성한 자신의 파벌.
3) FSB와 대통령궁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던 시기 수집한 옐친계 핵심인물 및 올리가르히들의 각종 비리정보.
2)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정활동 ~ 90년대 정계활동에서 형성된 우호적인 인맥, KGB/FSB의 선후배들(이후 실로비키), 친푸틴 올리가르히, 기타 여권인사들을 규합해 구성한 자신의 파벌.
3) FSB와 대통령궁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던 시기 수집한 옐친계 핵심인물 및 올리가르히들의 각종 비리정보.
를 이용해 상당수의 올리가르히들을 빠르게 제거하며 긍정적 이미지 구축에 애를 썼고, 막장화되었던 경제도 (비록 석유와 천연가스 몰빵이라 단기 처방이긴 하지만) 꽤나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여 나라를 구한 위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다만 여기서 기억해야할건 푸틴 역시 90년대 중후반에 친옐친파 인사이자 옐친의 최측근으로 크렘린과 관청가에서 일하며 '''옐친이 나라를 파탄내는데 충실히 협조했다'''는 것이다. 이후 선거와 대통령 임기과정에서 과거의 이런 이미지를 지우는데 성공했지만 옐친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출세가도를 달렸던 전적이 있는만큼 아예 남의 일인 것 마냥 책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27]두 번째 요인으로는 러시아 내부의 비정상적인 정치상황이 있다. 러시아의 사실상의(de facto) 여당은 푸틴이 실세나 다름없는 통합 러시아당이며[28] , 러시아 연방 공산당, 러시아 자유민주당, 정의 러시아당이 원내 야당으로 있다. 그런데 제1야당 공산당의 경우 독일 좌파당과 마찬가지로 과거 소련 공산당의 후신이고, 각종 극좌~중도좌파 파벌과 지지자들이 난립해 있으며 적어도 슬로건상으로는 '''소련으로의 회귀'''를 주장[29] 하고 있는 탓에 박스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제2야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의 경우 '''각종 범죄에 연루된 국수주의 민족주의와 대안우파'''들의 소굴이며 나름 여당과 협력하는 친푸틴 정당이다. 제3야당 정의 러시아당은 통일된 당론이라는 것이 없어서 존재감이랄 것도 딱히 없으며 푸틴에 반대하는 분위기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시말해 원내에서 푸틴의 지휘하에 표면적으로 일치단결해 움직이는 거대여당(통합 러시아)의 상대인 주요야당들은 내부적으로 상당히 분열되있거나, 자체적인 단점이 크게 부각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며 공산당(주가노프계)-자민당-정의러시아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야당치고 상당히 푸틴에게 협조적이다.''' 원외정당에 몸담은 중도 좌/우익 성향의 유력후보들은 푸틴에 맞서다가 대부분 해외도피나 정계 은퇴를 선택하거나, 정치활동이 아예 동결되거나, 갑자기 암살당하거나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또한 푸틴 정권은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반에 처음 형성된 폭넓은 실로비키 인맥을 중심으로 정보기관(FSB, GRU, SVR 등)과 러시아 군부, 심지어는 람잔 카디로프 같이 마피아에 가까운 친정부 토호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들은 푸틴을 위해 선거는 물론 러시아 국내의 각종 정치현황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상당히 신빙성 높은 의혹을 받고있다. '''투표조작, 경쟁후보 사보타주, 여당과의 유착, 폭력행사, 민간사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푸틴[30] 세력을 견제하면서 푸틴에게 지원사격을 해주고 여기에 정언유착의 표본격인 친푸틴 언론 매체들이 명백히 편향된 보도를 내보내 푸틴의 지지율을 뒷받침해주는 식으로 푸틴정권을 계속해서 원조한다. 또한 선거국면에서 매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러시아 국내외에서 공정성을 지탄받는 중앙선거위원회, 표적수사로 악명높은 러시아 사법당국은 '''정치적 중립'''과는 거리가 먼 조직들이다. 푸틴의 신뢰를 받으며 오랫동안 재산을 늘려온 친푸틴 올리가르히들도 러시아 정언유착 및 공공비리의 핵심적인 이해당사자들로, 정부로부터 막대한 이권사업을 따내고 특혜를 누리는 대신 홍보와 자금 제공 등으로 푸틴을 물심양면 지원한다. 무엇보다 러시아 시민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러시아 정교회와 푸틴정권의 유착은 정도가 매우 심한 편인데, 푸틴은 정교회의 지속적인 지지를 보장받기 위해 장기간 재정분리의 기틀을 파괴시켜 친정부 교회의 영역을 넓히는데 열중했고 정교회는 푸틴을 지지하며 반서구 여론조장과 정치개입을 '''교회의 미덕으로 여기는 수준까지 퇴행했다.''' 즉, 러시아의 정치구조가 상당히 불공정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측면이 강하며 푸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정치판에서 어떤 대항마가 등장하던 유의미한 경쟁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 이런 추세는 대부분 현재진행형이다.
때문에 무당층을 포함한 적잖은 러시아 유권자들은 아예 투표를 안하거나, 사표를 감수하고 원외의 군소정당을 선택하거나, 조직력(통합 러시아)이 강하고 공적이 증명된 푸틴에게 투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31] 결국 푸틴이 지지층을 다지는 와중에 야권은 삽질만 거듭한 나머지 여야간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져 2015년 러시아 하원인 국가두마 의석 기준으로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과 제1야당 러시아 연방 공산당의 의석수는 무려 146석이나 벌어져 있다. 그야말로 독주 상태인 것이다.
마지막 요인으로는 러시아의 민주주의 경험 부재가 있다. 러시아는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이 그랬듯 전통적으로 서구권에 비해 군주의 힘이 매우 강력한 전제국가였다. 서유럽에서는 귀족이나 부호, 지식인층이 나름대로 왕권을 견제했고 시민혁명, 노동계급의 부상이 내부에서 군주제를 지속적으로 개혁해 온 반면 러시아 제국은 근대 후반까지 전제군주인 차르와 소수의 귀족들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국가였고 이로 인해 국민들도 군주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당연하게[32] 여긴 채로 너무 오랫동안 살아오다보니 민주주의라는 것을 늦게 받아들였고 실제로 러시아는 서유럽 국가 대부분이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를 도입한 19세기, 20세기 초반까지도 19세기 이전에 비해 (차르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료 대신들의 영향력이 크게 증가하긴 했으나 여전히 전제군주제로 남아 있었다. 사실 1825년에 데카브리스트 난(12월 당원의 난)으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처참히 묵살당하고 주동세력은 처형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 패전과 함께 국민의 저항을 받은 니콜라이 2세가 입헌군주제를 수용해 1906년부터 1917년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혼합적인 입헌 군주제 국가였던 시기가 있긴 했다. 그러나 이 당시의 입헌군주제는 선거권의 제한이 심했던데다가 지주와 도시민, 농민, 노동자들이 각각 행사하는 표의 가치가 달랐다. 국회인 두마가 개설되긴 했지만 차르가 두마 해산권과 법률 거부권, 내외정의 실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늬만 입헌군주제였던 시기였던 셈. 그 후 러시아 제국이 붕괴된 이후에는 2월 혁명 정부가 수개월간 민주주의를 가동했으나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건국되었다. 소련 초창기에는 소비에트(인민위원회)를 기반으로 하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가동했으나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반대파가 죄다 백군 편에 붙어버리거나 적군과 대립하는 관계에 서면서 사실상 일당제가 되어 버렸고, 적백내전 종료 직후에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인민위원회는 스탈린이 장악한 공산당의 거수기로 전락하며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완전히 압살되고 말았다. 스탈린 사후 정치적 자유가 상당부분 확대되었긴 하지만 그것이 소비에트 민주주의든 부르주아 대의민주주의든 '민주주의' 일반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러시아 민주주의는 1990년대 초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1950년대부터 지속적인 투쟁 끝에 6월 항쟁으로 1987년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대한민국보단 정도가 약하지만, 1950년대의 일부 산발적인 저항에서 시작해 1980년대 중후반 대규모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동유럽권 국가들과 비슷하게 러시아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종합적인 개혁 작업이 진행되던 중 8월 쿠데타가 발생했다가 범국민적 저항시위로 쿠데타가 저지되고 이후 시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옐친의 우익파와 각종 급진 민주파가 소련 해체를 주도하며 풀뿌리 민주주의가 그럭저럭 햇빛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민주주의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고, 그나마 과거에 민주주의를 조금이나마 경험해본 극소수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이런 경험 자체가 전무한 탓에 대다수 러시아 국민들의 민주주의 의식도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식 민주주의의 열기는 옐친 정권의 초법적인 의회 탄압과 경제조치 실패에 따른 극심한 경제난, 극우 민족주의의 부상, 중도 좌/우익 정당들의 사분오열을 거치며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에 비해 유권자들의 회의론, 정치혐오는 폭증했고 게다가 자신을 자유의 투사로 둔갑시켰던 옐친이 집권 9년 동안 모든 분야에서 끔찍한 실수를 거듭하며 사회개혁과 민주주의에 대한 여론을 땅에 떨어뜨린 것도 한몫했다. 따라서 제정과 공산 독재가 전부였던 러시아인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생소했고 '''그나마 최악의 경제난 속에서 옐친이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망가뜨린 탓에''' 푸틴을 독재자로 인식하지 않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반대파는 있지만 그의 평가를 바꾸거나 입지를 위협하거나 그를 대체할 수준은 못된다.
3.3. 경제
GDP는 12위 정도인데 다음 GDP IMF 순위,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2018년은 이렇게 되어있다.#
푸틴은 초기에는 디폴트까지 추락한 옐친 치하의 경제를 살려냈다. 올리가르히를 처벌하고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에 많은 러시아인이 환호했다. 하지만 소수의 기업가는 푸틴에게 붙거나 푸틴이 장악하였고 폭넓은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받으면서 성장했다. 차후에는 아예 해당 기업가가 국가 장관직에 올라가기에 이르렀다. 국가의 장관이자 대기업의 회장인 이들은 올리가르히 이상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부패한 기업이 되었고 나중에는 옐친 때처럼 러시아 경제를 망가트렸다. 건전한 경쟁이 어려워지자 문제가 점점 늘어났다. 특히 푸틴이 사실상 그들의 주인과 같은 위치에 서있기에 그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그들을 상대하거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러시아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러시아는 산업 구조 개혁이 시급하지만 푸틴은 이들을 처리할 가능성이 제로다. 게다가 이렇게 막대한 지원을 받았음에도 이들의 국제 경쟁력은 형편없다. 중국의 대표 브랜드는 지난 10년간 엄청나게 늘었지만 러시아의 대표 브랜드는 여전히 가스프롬이다. 2018년 기준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상위 10위권에는 8개의 미국 회사와 삼성, 1개의 중국회사가 있는데 러시아는 300위권 밖에 가스프롬을 겨우 올리고 있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여전히 경제력의 대다수를 석유, 가스 등의 천연자원에 기대고 있다. 러시아/경제의 산업 비율만 보면 자원의 저주에 시달리는 중동, 동남아시아, 중남미 국가가 생각날 정도다. 사실 러시아는 옐친 치하에서 경공업이 망가지고, 선두주자와 후발주자의 틈에서 중공업을 키우기도 어려웠기에 국가 산업구조가 엉망친창이다. 이런 구조 탓에 저유가가 시작되면 바로 국가가 휘청인다. 유가가 오르면 경제가 살아나고 유가가 떨어지면 망하는 구조에서 20년에 가까운 통치기간 동안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예산의 쓰임새도 비판받는데, 군대 등에 과도한 비용을 쏟고 있어서 실제로는 한국 이하의 예산 활용을 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 삶에 중요한 복지와 사회간접자본 지원이 낮다. 연구지원 같은 경우 재앙 수준으로 군대 예산을 포함해도 매우 낮다. 특히 러시아는 옐친 시절 대다수 인재가 외국으로 이민 갔고 교육에 대한 지원도 낮기에 러시아 과학계의 침체가 오래갈 거라 예상되고 있다.
# 푸틴이 러시아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을 2000년 당시 러시아의 1인당 gdp는 1,900달러로 중국의 1인당 gdp는 951달러, 러시아가 1인당 gdp가 중국의 2배였으나 2020년 러시아의 1인당 gdp는 9,970달러로 1인당 GDP가 1만달러도 안되고 2020년 중국의 1인당 gdp는 10,058달러로 인구 14억의 중국이 1억 4천만명의 러시아를 추월해버렸다. 중국 정부도 푸틴 같이 악독하긴 매한가지이나 도덕성에 욕을 먹을지언정 기술 배끼기, 기술 탈취, 창조성 등으로 IT기업 등 여러가지 고부가 가치 기업 등을 많이 창출해냈지만 러시아는 그런것 거의 없이 사실상 천연 가스와 무기 수출이 주 산업이다. 사실 미국의 조지 부시, 네오콘으로 민주주의, 인권, 전쟁 같은 이념에 사로 잡혀 돈 낭비 하고 있을 당시 그 틈을 타 러시아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나 그정도 수준일뿐 어떠한 역량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특히 폭력성과 잔인성을 과시해 영국 등 해외에서도 정치적 살인을 계속 자행해 쓸데없이 서방 국민들의 어그로를 잔뜩 끌었다. 심각한 부정부패, 정경유착, 후진적 경제 구조, 빈부격차의 책임에서 20년간 독재를 하고 있는 푸틴이 책임이 없을수 없을 뿐더러 러시아가 충분히 역량이 있는 국가였기에 대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정상적인 유능한 민주주의 정치인들이 러시아 정부에 집권했으면 최소 1인당 GDP 1만 5천 달러 이상은 찍을 역량이 되는 국가가 러시아인데 그것을 생각하면 푸틴은 어느정도 옐친 시대의 경제적 혼란을 수습한 공이 있고 리더쉽이 아예 없다고 할수는 없으나 러시아가 정상 국가가 되었을때 자연스럽게 지탄의 대상이 돼야 할 인물이라고도 볼수 있다. 쇼나 이미지 정치에 능한거를 보면 사실 정치인보다 마피아 두목이나 연예인에 어울리는 사람이란 평가가 많다.
2013년까지만 해도 1인당 GDP는 15,000달러정도 되었으나 2014년 저유가랑 크림반도 침공으로 인한 서방 세력의 경제재재 때문에 2020년이 된 지금도 1인당 GDP는 15,000은 커녕 10,000도 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푸틴의 자산을 한화 212조 정도로 추정했다. 이는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 1위의 한화 140조를 뛰어넘는 수치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재자들 자금 세탁이 그렇듯, 저 212조라는게 순수 개인자산이 아니라 예산, 즉 국고를 빼돌려 사적으로 쓰는 금액일 가능성이 높아서 기업인의 유동적인 현주식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정치인은 퇴임하거나 정치생명을 잃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그게 다 쓸 수 있는 돈이었으면 적어도 미국의 뉴비 우주기업들의 만만한 트롤링 상대가 되어가는 러시아의 자존심 로스코스모스라도 살려서 정치적 치적을 쌓는다던가 하는 용도로 이미 사용하고 있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4. 개인성향
4.1. 카리스마와 밈
스트롱맨형으로 분류되는 각국 지도자 중 가장 먼저 집권했고, 그 중 가장 눈치를 보지 않는 편이다.[35] 예를 들어 중국의 시진핑에 대한 곰돌이 푸 희화화는 중국 정부에서 기를 쓰고 검열로 틀어막지만, 정반대로 푸틴은 오히려 푸간지 떡밥짤 같은 걸 일부러 뿌려서 본인에 대한 희화화를 장려하는 수준이다. 적어도 비정치적인 분야에선 밈화에 관대하다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푸틴 밈은 러시아 본국을 비롯한 전세계 인터넷상에 농담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별명으로는 푸차르, 차르 푸틴 등이 있다. 속칭 '''신 러시아 제국 제1대 차르.'''[36]# 양복 안에서 AKS-74U을 뽑아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무서운 남자. 미국 측 외교 전문에서는 푸틴을 '알파남(Alpha Male)'이라고 칭하는데 본래 동물 무리에서 리더가 되는 우두머리 수컷을 가리키는 용어로 '''1인자'''를 뜻한다.
세계 평화에 대한 물음엔 다음과 같은 협박성 답변을 내놓았다. "누군가 러시아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인류와 평화를 위해 이에 반격해야 하는지 신중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만약 러시아가 없다면 평화와 인류가 우리에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누구든 러시아를 건드리면 아주 좆된다'이다.[37][38]
코로나의 유행으로 모스크바를 버리고 교외 지역으로 피신했다.
4.2. 전략적 지각
본인의 세계적 영향력이 강한 것도 있고, 상대에게 자극을 주는 성격이라 일부러 기선 제압을 위해 다른 나라 높으신 분들을 난처하게 만들고, 중요 회담 자리에도 수시로 늦는 등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행동들을 한다. 그래서 '''지각대장'''이라는 별명도 있으며 이러한 행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푸틴 타임(Putin time)'이라는 용어까지 있을 정도다.
명심해야할 것은 푸틴의 이러한 행동이 절대 느슨한 시간관리나 성격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위 그래프를 보면 푸틴이 주로 많이 기다리게 하는 국가 정상들은 '''독일, 우크라이나, 일본 등 러시아와의 사이가 안 좋거나 껄끄러운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양국 간의 관계가 험악해지기 쉽고 서로 좋게 흘러갈 일이 별로 없는 나라들일수록 기선 제압을 위해 푸틴 타임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친러 성향의 독재자이자 마음만 먹으면 푸틴이 마음껏 조종 가능한 벨라루스의 알략산드르 루카셴카 대통령을 상대로도 가끔은 2-3시간씩 푸틴이 지각하는데, 천연가스 가격 인상으로 인한 벨라루스 측이 일방적으로 송유관을 막은 것에 대한 러시아 측의 보복으로 보인다. 또 이 두 나라는 내부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푸틴은 일본에 대해서도 지각을 자주 사용하는 편으로, 2018년 12월에는 일본 아베 총리와 만남을 앞뒀으면서 2시간을 지각했고 과거 일본이 선물로 보내준 유메라는 아키타견을 데리고 나왔다.# 일본 기자는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일본에 압박을 가한 행위냐"고 묻자 "절대 아니다"라고 되려 푸틴을 변호했다. 이처럼 지각 외에도 푸틴은 개를 사용해서 압박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하는 경우도 많은데,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맹견을 무서워한다는 소식을 듣고 메르켈 총리와 만날 때, 코니라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를 데리고 나와 비난이 있었다.[39]
가장 험악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우크라이나 상대로는 아예 '''술을 마시다 4시간을 지각'''한 적도 있다.#
기가 센 지도자들은 이러한 푸틴 타임에 맞서는 맞불 작전을 시행하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미러 정상회담 때 푸틴보다 20분이나 더 늦게 도착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푸틴 대통령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20분 가량 늦었는데, 상대는 트럼프였다.# 양국 정상의 기싸움 때문에 회담은 예정보다 약 50분 가량 늦게 시작됐다. 북한의 김정은도 2019년 있었던 북러정상회담에서 푸틴이 늦을 것을 예상하고 더 늦게 나오는 기싸움을 벌였다.
한국도 이에 대해 예외는 아닌데 실제로 2013년 있었던 한러정상회담에서 당시 대통령 박근혜를 30분간 기다리게 한 적이 있었다. 다만, 한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척을 질 일도 없고 우호적이다 보니 푸틴이 기싸움을 자주 벌이지는 않는 편이고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행동한다. 2018년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의 회담은''' 이례적으로 푸틴 본인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렸다. 당시에는 푸틴 입장에서 한국이 꼭 필요한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탓에 먼저 나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4.3. 전투기 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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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KGB 요원은 각종 군사교육을 받았는데, 푸틴이 받은 군사교육에는 전투기 조종도 있었다. 체첸 전쟁 당시 대통령이었던 푸틴이 공군기지 시찰을 위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군기지에서는 높으신 분이 오시는 만큼 가열차게 사열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에 Su-27 한 대가 비행장에 도착하자 그들은 호위기가 먼저 착륙했구나 하고 생각을 했는데, 캐노피를 열고 나온 파일럿은 평범한 파일럿이 아니라 바로 그 푸틴...긴장감이 돌던 비행장에 이런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벌어졌으니 몇몇 파일럿들이 감격해서 울기 시작하고 이후엔 말할 필요도 없이 사기가 왕창 올라갔다는 후문.[40]
2010년 8월에는 직접 Be-200를 타고 산불 진화에 나섰다. 항공기 비행 면장 없이 대형 항공기의 부조종석에 앉았다고 논란을 빚은 모양인데, 심지어는 조종석에서 직접 조종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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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훈련에서는 친히 Tu-160 블랙잭 폭격기를 조종하며 당시에 개발 중이던 공중발사순항미사일(ALCM)인 KH-555를 직접 발사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41]
4.4. 차가운 도시 남자
차가운 이미지이지만 웃을 줄도 안다. 여기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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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형도 이 남자 앞에서는 그저 신하균이 된다.[42][43]
2021년 현재로선 그냥 동네 할아버지로 보일만큼 후덕해진데다 눈썹도 빠지고 세월의 흐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본 문서에 나온 푸차르 시절(?) 사진들이랑 비교하면 더더욱...이 양반도 70이 다되가는지라 이상하진 않지만 말이다.
4.5. 운동
유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유도계에서는 은근히 푸틴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을 가끔 보인다. 2012년에 국제유도연맹으로부터 러시아인 최초로 명예 8단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용인대학교에서 명예 유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발명이야기'란 한국 출판사에서 ''''푸틴 대통령과 함께 유도를''''이란 책도 발간했다. 게다가 러시아 사람이니만큼 삼보에도 능통하여 삼보 협회와도 많은 교류를 한다고 알려져 있다.
2014년에는 국제공수도연맹 극진회관에서 극진공수도 8단을 인정해주었다. 몸으로 때워서 할 수 있는 건 5단이 한계이고 7단부터는 큰 대회 경기에 나가 공수도를 알리거나 국가 레벨의 공수도 보급에 일조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자면 명예직 형태로 준 것 같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직관하고 UFC 파이터인 코너 맥그리거와 기념 사진을 찍었다.#
현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에게 맥그리거와 시합후 승리하자 푸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해서 승리 축하를 해줬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19년에도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에서 열린 송년 '나이트 하키 리그' 경기에 참여했다.#
4.6. 기타 쇼맨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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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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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중 펜 세우며 아베 말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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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푸틴을 소재로 한 각종 노래들
원곡
러시아판 시집 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인 따꼬버 깍 뿌찐(Такого как Путин)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노래로 러시아에서 꽤 인기를 얻었으며 이 노래 가사에서 제목을 따온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통합 러시아당의 나쉬(Наши)등 친푸틴 청년 단체등을 중심으로 유행했다. 유튜브에는 다양한 버전이 올라와 있는데 친푸틴 러시아인 + 벨라루스, 세르비아등 친러 국가 네티즌들의 응원 댓글과 함께 반푸틴 러시아인 + 우크라이나인 등의 비아냥과 욕설도 같이 올라와 있다.내 남자친구는 또 문제에 빠졌어,
쌈질하고 이상한 거에 취했어
이젠 못참겠다하고 쫓아내버렸어.
그리고 이젠 푸틴같은 남자를 원해.
푸틴같은, 힘이 가득한
푸틴같은, 술 안 마시는
푸틴같은, 나를 상처주지 않는
푸틴같은, 도망가지 않는
중국에서는 이 노래의 인기를 보고 여기에서 착안, 더 노골적인 가사로 시진핑을 찬양하는 시집 가려면 시다다 같은 남자를 만나라를 만들었지만 처음의 호의적인 반응과 달리 문화대혁명 시대로 돌아간 거 같다고 욕을 들어먹었고 심기가 불편해진 시진핑에 의해 중국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영어 버전도 있다.
맨 윗 동영상에서 Такого как Путин을 불렀던 러시아 가수 나탈리(Натали)는 발로쟈(Володя)라는 노래도 불렀다. 발로쟈는 블라디미르의 애칭인데 '''그 블라디미르가 누구인지'''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푸틴의 다양한 모습과 푸틴이 리무진을 타고 크렘린으로 출근하는 모습이 나오는 영상은 노골적으로 푸틴이 연상되도록 개인이 편집한 것이고 원곡 뮤직비디오는 영상만 보면 평범해 보이긴 한다.
2012년에는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타지키스탄인 톨립드존 쿠드반하노프가 ВВП(베베뻬)[46] 이라는 찬양가를 만들어 역시나 꽤 화제가 됐다. Такого как Путин이 인기 많은 정치인에 열광하는 느낌의 노래였던 것에 반해 이 노래는 새 천년이 시작되면서 신이 그를 내려보내줬다느니[47] 국가와 국민을 지켰다느니 부패한 정치판을 바로 잡았다느니 하는 가사로 점철된 '''푸틴어천가''' 그 자체다. '''"이번에 올바르게 선택하자."'''며 노골적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에게 한표 주자는 마무리 부분은 덤이다.
Твой папа - фашист(너희 아버지는 파시스트 새끼다), Телевизор(텔레비조르)
물론 이런 식으로 푸틴을 까는 노래도 당연히 있다. 해당 곡은 원래 1987년 작곡되었으며 비판의 대상도 소련 정부였으나, 2000년대 이후 푸틴의 독재 행보가 가시화되자 가수 본인이 푸틴에게 바친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2000년대 이후 라이브를 듣다 보면 간혹 후렴구를 "Ваш Путин - фашист(너희 푸틴은 파시스트 새끼다)"라고 까는 용자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면 텔레비조르가 방사능 홍차 마시지 않겠냐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래에서도 보듯이 서양에서 군주나 위정자가 자기를 까는 것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을 보여야 되는 게 암묵의 룰 취급받는데다[48] , 그런 이유로 푸틴이 자신은 관대하다는 것을 보이고자 하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해도 무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가 중국이라면 자길 곰돌이 푸라고 놀리는 것에도 발끈하면서 코로 마라탕을 먹여대는 시진핑의 성격 상, 목숨이 열 개여도 모자라겠지만.
푸틴 찬가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3절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찬양곡을 빙자한 풍자곡이다(...). 풍자곡 주제에 쓸데없이 웅장하다.
Все как у людей(매사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Noize MC
2019년 9월 즈음 있었던 대규모 반푸틴 시위 이후 나온 노래. 유튜브 MV 조회수 1600만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원래는 예고르 레토프의 동명의 곡 커버로 푸틴과 그 일당, 아직도 CIA나 모사드 음모론을 치는 언론, 이를 수긍하는 대중 모두 비난하고 있다.
Разпутин(라즈푸틴), MoдеM
요승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라스푸틴(Распутин)과 푸틴(Путин)의 이름을 엮은 푸틴 풍자 노래.
북한에도 푸틴이 나오는 노래가 있다. 김정일 시기에 북한과 러시아 간 친선을 과시하고자 만든 노래인 "우리 친선 영원하리" 라는 노래의 후렴구에 등장한다.
4.8. 그 외
2014년.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52] 1위로 선정됐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11월 5일 자체 사이트를 통해 "2년 연속 푸틴 대통령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Most Powerful People)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제치고 1위에 오른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대한 군사긴장을 고조시켜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로부터 경제 제재를 당하기도 했다. 포브스는 "아무도 푸틴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아무도 그를 악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도 2위를 지켰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프란치스코 교황,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5위로 뒤를 이었다. 이들 '톱 5'는 지난해와 같았다.#
2015년에도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를 하여 3년 연속 1위를 하였다. 포브스에서 평하기를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도 책임을 면할 수 있을 만큼 힘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호주 G20 정상회담에서는 캐나다, 영국, 호주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돌아가면서 면박을 당했다. 수모를 견디다 못해 조기출국을 했다고.#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로 서방의 경제제재에 직면한 데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본격화 + 이에 맞대응한 사우디의 원유 증산으로 인한 유가 하락 때문에 경제 사정이 신통찮은 상황이 반영된 듯.
푸틴은 비공식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이며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푸틴의 자산을 2000억 달러, 한화 '''약 213조원''' 정도로 추정했다.#[53] 하지만 대부분의 독재자들의 자금 세탁이 그렇듯, 저 213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란게 순수 개인자산이 아니라 예산, 즉 국고를 빼돌려 사적으로 쓰는 금액일 가능성이 높으며 친구나 대리인의 명의를 통해 재산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기업인의 유동적인 현주식과 비교할 바가 못된다. 또한 정치인은 퇴임하거나 정치생명을 잃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타임지에 따르면 크렘린 궁을 포함한 저택 위에 스나이퍼가 지키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강대국 러시아의 대통령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기자와 식사를 하며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는데 본 코스가 나오기도 전에 "그럼 이만 마칠 테니 당신도 가보시오" 하고 훌쩍 들어가 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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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30일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는데 뉴스에서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를 보고 푸틴의 취향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2001년 한러 정상회담 당시 푸틴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청와대에 동원됐던 당시 초등학생의 증언에 의하면 다른 아이보다 발육이 좀 빠른 5학년 여학생을 보자 껴안았다고 한다.
과거 푸차르를 비꼬는 그림을 그린 화가가 체포된 적도 있다. ㅎㄷㄷ
일본의 에로게 회사인 ALcot사에서 제작한 게임인 『소꿉친구는 대통령(幼なじみは大統領)』서는 푸틴을 모델로 한 에로게 캐릭터를 내놨다. 이름은 푸차르의 이름을 살짝 꼬아놓은 '이리나 우라지미로우나 푸치나'. 이 에로게 때문에 푸차르도 모에선의 마수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덕분에 본 게임에 등장한 오프닝 영상을 패러디하여 이런 영상까지 등장하였다.
2008년 9월 1일, 우리에서 탈출해서 기자에게 달려드는 시베리아 호랑이를 마취총으로 한 번에 기절시켰다.
리듬체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리듬체조계 레전드인 알리나 카바예바는 러시아 국회의원으로, 사실상 푸틴의 차기 아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2013년 6월 6일 전 알렉산드로브나 류드밀라와 이혼하였음을 국영 뉴스 채널에서 공식적으로 밝혔으며 별거했던 사실도 인정하였다. 관련 기사.
2009년 12월 16일. 카바예바가 낳은 아들의 아버지가 푸틴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마디로 푸틴은 '''후궁'''까지 들여와서 첫 아들을 본 셈. 과연 푸차르. 이름은 드미트리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 말한 잡지처럼 폐간되기 싫은지 러시아 언론들은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다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없다.
2010년 8월에는 모스크바 인근에 산불이 나자 여름 휴가를 즐기던 푸틴이 부랴부랴 달려와서, 소방 비행기를 타고 직접 불을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멋있긴 한데 대통령이 전문인력 두고 이럴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2010년 10월에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여대생들에게 섹시 달력을 선물 받았다. 저널리즘을 전공하는 여대생들이 <사랑해요, 푸틴>이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달력이라고. 사진 1, 사진 2. 국경없는 기자회가 세계 최악의 "언론의 약탈자"로 선정하기도 했던 푸틴이니만큼, 절대 훈훈하게 볼 수는 없는 현실이다. 단, 국립대 여대생이라는 신분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2010년 12월에는 미국이 위키리크스 운영자 줄리안 어샌지를 체포한 것에 대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한때 러시아의 기밀을 공개하려 했을 때는 '''"아예 운영을 못하게 만들어버리겠다"'''라고 했던 적도 있는 이 불편한 진실#s-2.
2011년 3월 후반부로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21일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도호쿠 대지진 사고 때문에 무산된 2011년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가 1주일 안으로 새로운 개최지를 찾아야 했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매우 까다로운 상황이었는데 푸틴의 한마디, ''''러시아는 그 돈 얼마 안 드는 세계선수권 대회를 감당 가능하다.''''는 강한 개최 의지에 따라 ISU(국제빙상경기연맹)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단번에 확정시켰다.''' 푸차르의 위엄 한마디. 그리고 대회 예산으로 무려 '''700만 달러(80억 원)'''을 잡아놓았다!
2011년 9월에는 재선에 도전하는 국정을 처리하느라 바쁜 푸틴에게 '''유권자들의 기를 전달하기 위해''' 샘 니켈이란 남성이 '''여자 1000명의 가슴을 만진 손'''으로 푸틴과 악수하였다. 저걸 위해 '''5000~7000명의 여성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 기사
어쌔신 크리드에서 나오는 퍼즐에서는 성전기사단의 일원이라고 나온다. 헛쯔모없는 개혁에서는 오리지널과의 차이를 위해 '''진짜 KGB 소속 암살자'''로 나온다.
2013년 4월 8일 독일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하노버 산업전시회에 참석했는데, 우크라이나의 여성인권단체인 FEMEN의 여성 시위자들이 기습적으로 누드 시위를 벌이며 행사장에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행사장은 혼란이 빚어졌고 메르켈 총리도 순간 당황했지만 푸틴 본인은... 이후 기자 회견에서 푸틴은 해당 사건에 대해 "정치적으로 의논하려면, 옷부터 갖춰 입는 게 좋다"며 비꼬았다.
또한, 푸틴이 지난 10년간 러시아 축구계에 준 영향도 크다. "로만, 지갑 좀 열지 그래?"
2013년 7월 15일 씨 익스플로러 5를 타고 직접 수심 60m까지 내려갔다. 이유는 침몰한 러시아의 프리킷 함인 올레그의 잔해를 찾기 위해. 핀란드 만에서 30분 동안 수색했고 결과는 잔해를 찾지는 못했다. "터프한 푸틴 씨 이번에는 심해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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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가셰프 연방 임상병원에 입원 중이던 8살 어린이 환자를 초청하여 함께 다과회를 열었다.[54] 그런데 방사능 홍차 문서에도 이 사진이 쓰이고 있다. 이 이미지는 원래 사진에서 왼쪽에 소녀가 앉아있는 모습이 잘려 있다. 참고 링크(영문) 푸틴 앞에 있는 홍차와 색깔이 다른건 환자인 어린이의 건강에 맞춰서 홍차를 끓였기 때문이다.
더 보이스 러시아 판에서, 참가자로 깜짝 등장하는 합성 영상도 나왔다. 선곡은 Louis Armstrong의 'Blue berry hill' 원본.
위 동영상 같은 목숨 건 장난질처럼 보이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북한이나 중국, 싱가포르마냥 완전히 독재자에 대한 비판적 언급 자체를 틀어막는 독재자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외부에 주기 위해 합성, 패러디에 관대하게 대처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본인이 상남자 밈을 풀어서 '적당한' 희화화는 장려한다. 시진핑 관련해 곰돌이 푸 얘기도 못 하고 틀어막는 중국이나 아예 말실수만 해도 끌려가는 북한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한국에서 푸틴으로 치는 드립이 있거나 하면 홍차드립을 하곤 하는데, 일반인이 푸틴 소재로 농담하는 정도는 러시아 국내에서도 별로 상관없다. 푸틴에 반대하는 언론이나 국회의원들이 존재하는 것도 같은 이유. 아예 '국민과의 대화' 형태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푸틴 및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들이 나오기도 한다.
걸을때 오른팔은 거의 흔들지 않고 왼팔만 흔들며 걷는 습관이 있는데 이 걸음걸이 때문에 한 때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파킨슨병 같은 질환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말도 있었으나 서방 연구진들은 이것이 질병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거 KGB에서 받은 훈련으로 생긴 습관이라고 결론 내렸다.[55] 그리고 정말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면 사람간의 관계가 중요하고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정치인 활동에 큰 지장이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가능성이 거의 없는 무리한 주장이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가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푸틴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체코 수데텐란트 지방을 침략, 강탈한 히틀러와 비교하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푸틴을 푸틀러라고 부르며 맹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크림반도는 소련 시대 때 행정권이 우크라이나로 이전되기 전 본래 러시아의 영토였는 데다 그냥 독일인들만 살았지 실제 독일 영토였던 적이 없는 곳을[56] 체코에게 내놓으라고 강탈한 히틀러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고,[57] 또한 동부 우크라이나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친서방으로 확실히 돌아서는 게 명백해진 뒤에야[58] 개입했으므로 강대국이 주변 지역에 완충지대를 형성하려고 드는 쪽으로 보는 것이 맞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해서 하는 일이 결코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2015년 8월 18일 흑해의 발라클라바 만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구(球) 모양의 잠수정을 타고 물 속 83m까지 내려가서 9~10세기 동로마 제국의 난파선 등 '해저유물'들을 관찰했다. 푸틴은 러시아지리학회 창립 17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 행사에 참여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소개했다. 더타임스 등은 이번 잠수에 대해 "푸틴이 다시 '액션맨'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하다"고 평했다. 흑해에서 잠수한 푸틴... '액션맨 푸틴' 완결판
2016년에 대통령 직속의 국가 근위대가 생겨나면서 근위대가 '푸틴 근위대'라는 별칭까지 등장하고 있다.# 허나 오버스러운게 일단 국가 근위대(национальная гвардия)가 갑자기 생겨난게 아니라 기존 내무부 소속 병력들을 재편하면서 내부군 6개 집합을 통합시켜서 창설시킨 것이다.
푸틴을 주제로 한 RED ZONE MAD도 나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vfS30p2S-wk
2017년, 한국으로 치면 현충일 정도 되는 날에 폭우를 맞으면서도 헌화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알렉산드르 트카초프 농림부 장관이 돼지고기 수출에 대한 보고에서 인도네시아를 언급하자[59] 푸틴이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나중에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조선일보 EuroNews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 러시아 gazeta.ru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무슬림이 절대 다수인 국가가 맞지만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고 샤리아를 쓰는 국가도 아니며, 중국 화교의 영향으로 돼지고기 수요가 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국내의 돼지고기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 웹사이트에 실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포스트 기사
슬로베니아의 방송인인 Klemen Slakonja가 푸틴을 풍자해 만든 음악, ''' 'Putin-Putout'. ''' (한글자막 있음)
또, 랩에 대해서 섹스, 마약, 시위라는 세 가지 기둥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발언했다.#
푸틴은 아키타견과 미들 아시안 오브차카를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월간소년 시리우스에 연재 중인 이세계물 만화 '라이드 온 킹'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이름이야 저작권을 피하기 위해 '알렉산드르 푸르치노프'로 개명되긴 했지만 누가 봐도 이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국산 SF 모바일게임 엘라의 2048에는 푸틴의 DNA를 복제한 클론소녀 앤이 등장한다. 러시아 삼보를 마스터한 전투의 고수라는 설정이며 임무 중에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많다는듯.
독일에서 오래 근무해서 그런지 독일어도 곧잘 한다.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의 결혼식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기사
한동안 대역 설이 나돌다가 인터뷰에서 그런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발언했다.#
러시아 마피아와는 마음에 안드는 조직은 때려잡고 고분고분한 조직은 살려줘서 정치깡패로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국가이념은 애국심이라고 발언했다.#
연인으로 알려진 전직 체조선수 알리나 카바예바(37)가 언론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10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코로나19 사태때, 휴양지에 모스크바 근교 관저 내 집무실을 복제해놓고 머물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5. 한국과의 관계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노무현, 김대중 등등...21세기 대한민국 대통령들을 만나볼 대로 만나봤다.
한국에서 활동하거나 거주한 이력이 별로 없음에도 의외로 한국인들과의 인연이나 친분이 꽤 있는 편이다.
1980년대 후반 인기 여가수였던 양수경과의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는 1994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백야축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 양수경은 한국 대표로 참가해 <혼자만의 슬픔>이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했고,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었던 푸틴과 친분을 쌓게 된 것이다. 이들의 두터운 친분은 2001년 푸틴 대통령이 방한 당시에 양수경이 청와대 만찬에 초대받는 것으로 이미 공식 인증된 바 있고, 2007년 양수경의 남편이 경영하는 예당 엔터테인먼트에서 러시아 유전 사업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는데, 성공의 계기가 바로 양수경이 푸틴에게 직접 부탁하여 물밑으로 도움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2008년 4월 진행하던 유전 사업에서 대규모 석유 매장량을 확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주식의 상한가로 대박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에 한 달 사이 평가 수익률 300%가 올라, 34억 원의 차액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푸틴의 딸이 한국인과 결혼한다는 설이 알려졌으나 푸틴 대통령 최측근의 아들인 키릴 샤말로프와 약혼을 한 사실이 2015년 11월 11일 영국 더 타임스에서 보도되었고 한국에서도 조중동 등 여러 매체에서 이 사실이 기사화되었다. 한국인과 열애설 푸틴 딸, 자산 2조 러 부호와 결혼.
러시아어로 된 기사 404error
영어로 된 모로코 세계 뉴스 기사
그러나 푸틴이 딸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나 사진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푸틴의 별장도 한국 업체에서 인테리어를 담당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한국에 빚이 조금 있어서 들리는 말로는 러시아 측에서는 대한민국에 빚을 갚으려고 하지만[60] , 대한민국의 입장으로선 어떻게든 러시아 측으로부터 가능한 한 빚을 안 받고(!) 그것으로 인해 최근 불곰사업 재개를 시작 했지만 나로호와 같이 핵심기술과 기술이전은 안 해주려는 듯하다. 애당초 핵심 동맹국들한테도 미사일 같은 핵심기술은 안 넘겨주려고 하는데 친미국가인 한국에게 넘겨주는게 훨씬 더 이상하지만 말이다.
푸틴이 한국 정부에게 선물한 시베리아호랑이 수컷 '로스토프'와 암컷 '펜자', 한 쌍을 서울대공원에서 기르게 되었는데 순간의 미흡한 조치 때문에 사육사 한 명이 로스토프에게 물려서 중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상세한 내용은 서울대공원 문서의 호랑이사 사육사 사망 사건 문단 참조.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부터 온라인에서는 '한국의 버림받는 능력자들을 잡아채가려는 매'의 이미지가 박혔다. 그도 그럴 게 빅토르 안의 귀화 이후로 보란 듯이 날개를 펼치는 그의 기록에[61] , 그 동안의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비리까지 나노 단위로 까이며 줘도 자기네들 밥그릇 지키느라 선수에는 신경도 안 쓰던 그들의 모습과는 달리 그를 개인적으로도 총애하는 모습[62] 을 보이니 하필 소치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 나빠서 푸틴의 이미지도 반비례로 상승한 효과가 컸다.
그러나 피겨 스케이팅에서의 편파 판정으로 '''이미지는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푸틴이 직접 편파판정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욕을 먹고 있는 거냐는 주장도 있지만, 러시아 피겨계의 대모이며, CSKA Moscow 클럽이 주축이 된 모스크바 라인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타티아나 타라소바[63] 와 푸틴의 친분 관계는 피겨 팬들에게는 꽤 유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2013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에서 러시아 대표들이 부진한 성적[64] 을 거두자, '''푸틴은 바로 타라소바를 소환했다'''. 타티아나 타라소바는 미국에서 알렉세이 야구딘을 훈련시킬 때만 해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라인의 미신 코치에게 파벌 싸움에서 밀렸지만, 푸틴과도 친구 먹는 지금에 와서는...2013 세계선수권 직후 푸틴이 타라소바를 소환했을 때, 국내 피겨 팬들은 "닦달한다고 선수들이 갑자기 잘함? ㅉㅉ"이라는 반응들이었으나 그 후 1년도 안 되어 푸틴과 러시아 빙상연맹은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그 후 2017년 12월 5일 IOC는 러시아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금지시키기로 결정하고야 말았다. 대신 '''개인 자격'''은 허용한다고 IOC 측은 밝혔으나 푸틴은 IOC의 결정에 극노. 개인 자격으로도 선수를 보내지 않겠다고 밝혀서 졸지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흥행에 빨간불을 켜게 만들고 말았다.
넷상엔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심을 가져 90년대 초 박정희와 관련된 책들은 많이 읽었으며, 박정희에 관련된 책이라면 한국어든 러시아어든 무슨 언어든 다 가져오라고 하는 루머가 있다. 이 때문에 웹상에서 푸틴의 롤모델이 박정희라는 루머가 사실처럼 퍼지고 있는데, 실제 푸틴의 롤모델은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이다. 애시당초 이런 루머는 푸틴 뿐만이 아니라 내용물만 살짝 바뀌어서 수없이 유통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이석배 전 카자흐스탄 대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어쨌든 2012년 1월 대선 출마 국면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지난 1960~70년대)의 우리나라의 경제 역사를 예로 들며 산업 전 분야에 대한 국가적 통제 및 지원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을 꾀하겠단 포부를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KBS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을 공식적으로 처음 방문한 것은 1990년대 초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 재임 시절이라고 하며 서울과 부산, 남동임해공업지역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래서인지 총리로 재임하던 2010년 9월 현대자동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공장 준공식에 직접 참석, 정몽구와 함께 현대의 현지 전략모델로 나온 쏠라리스를 직접 시승하기도 해 화제가 되었다. 참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러 정상회담에서 특별선물로 박정희 대통령의 1979년 신년 휘호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한국에도 없던 걸 러시아가 입수하고 있었다.# 푸틴은 그 나라와 관련된 물건을 나눠주는 취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회견에선 18세기에 만들어진 인도 검과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의 수첩을 준 전례가 있다.# 그리고 시진핑한테는 고급 꿀을 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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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곰돌이 푸와 연관지어서 준 것인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에도 러시아 사상 최초로 먼저 축하전화를 했다. 세계일보 2017년에 둘이 만난 정상회담에서는 1800년대 것으로 알려진 조선시대의 검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허핑턴포스트 기사
근데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북핵을 옹호하는 듯한 말을 했었다.# 미국 등 서방세계 견제의 일환으로 나온 발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정은이 소양있고 성숙한 정치인이고 이미 전 세계 어디든 타격 가능한 사거리 등 핵개발을 다 했다고 하였다.#
2018년 6월 러시아 월드컵 경기 기간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직접 발표하였다.
북한이 개방 한다는 전제하에 남한으로 통하는 철도, 가스관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생산량 2위 국가이고, 한국은 수입량 2위 국가다. 이를 직통으로 연결하는 가스관이 개발된다면 러시아 입장에서도 큰 이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한 쿠릴열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에게 접근하려는 모습도 여러 차례 보인 적 있다 또한 간접적으로만 말했지만 일본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왜곡할려 한다는 발언과 일본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여준적이 있어서 한국 네티즌들에게 어느정도 지지를 받고있다.
6. 소련 관련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국방력이 약해졌기에, 비대칭 전력이자 정치적 협상무기로 강력한 핵무기 전력에 집중하고 있음을 자주 발표했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이나 서유럽의 강대국들과 비교했을 때이다.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동유럽의 고립된 나라들은 러시아의 위협에 무방비 상태이다.
소련 붕괴 이후 군사력이 숫자 면에서 거의 2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버렸고, 고급 인재들도 돈도 안 되고 미래도 안 보이는 군대를 죄다 떠나버리면서 1990년대 러시아군은 소련군 시절의 위엄은 온데간데 없어져 버리고 전략전술의 기본도 모르는 오합지졸로 전락했다. 하지만 시베리아의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2000년 들어서 이러한 인력부족이나 전략전술은 대부분 해결했으며 세계 8위의 GDP를 달성했고,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소련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과학기술로 지금은 미국과 비교해도 극단적으로 밀리지는 않는 군사력을 지녔다.
근데 독립한 소련의 위성국들이 미국과 가까워지고 있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차에, 마침 조지아를 조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오자 그대로 조져버리면서 다른 나라들에 대한 무력시위를 했다. 바로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일어난 남오세티야 전쟁이다. 그리고 2014년 3월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서 떼어냈다.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대통령으로서의 견해, 그리고 핵 및 군사전략에 대한 견해를 밝혀달라는 두 개의 질문을 받았을 때는 이를 하나로 뭉뚱그려 "이들 두 주제는 러시아 연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러시아 연방의 전통적인 신앙과 러시아의 핵방패는 러시아라는 나라를 강화하는 두 요소이며 이 나라의 내적, 외적 안보를 보장하는 필수조건을 구성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한 바 있다. 정교회와 핵을 '''하나로 묶어''' 말한 것이다!
공산주의 청년단체 콤소몰을 본따 '우리의'라는 뜻의 "나쉬(Наш)"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어 자신의 홍위병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65]
단, 소련이 러시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리즈시절이었다는 것은 긍정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함께 전세계를 양분하는 초강대국 이었고, 과학, 스포츠, 문화는 세계 정상급이었기 때문에 소련인들은 국가에 자부심을 느끼고 살았다. 게다가 복지 측면에서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시했고, 대외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천조국과 제대로 맞장 뜰 수 있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러시아 사회는 이런 것들이 무너져서 러시아 국민의 삶의 질이 소련 시절보다 훨씬 나쁘다. 2012년 현재 러시아에서 이유 없이 스탈린의 지지도가 60% 가까이 나오고, 괜히 러시아 사람들이 고르바초프를 욕하는 게 아니다.[66] 물론 소련의 각종 복지 정책의 이면에는 인민의 기본권을 억압, 제한하는 가운데 인민이 아닌 인민들 위에 군림하는 관료집단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비민주성이 있었지만...[67] 사실 그 복지 정책도 이미 1930년대에 니콜라이 부하린이 지적했듯이 러시아 혁명을 통해 성취된 것들 가운데 관료집단의 특권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것만 존치시키고, 불리한 것은 모두 폐지하거나 축소한 것이기도 하다.
소련 체제를 두고 명언이 있다.[68]
원래는 칼 포퍼의 말을 살짝 바꾼 것이다.[69]Кто не жалеет о распаде Советского Союза, у того нет сердца; кто хочет восстановить его в прежнем виде — у того нет головы.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가슴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소련 체제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류의 도치는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 이오시포브나도 "책으로 공산주의를 배운 사람은 공산주의자가 되고, 몸으로 공산주의를 배운 사람은 반공주의자가 된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기본적으로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 시절부터 유럽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서방주의자와 러시아만의 독자 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러시아주의자들이 대립했다. 제정이 무너지고 공산체제가 성립된 이후에도 두 노선은 계속 대립했다. 결국 이오시프 스탈린으로 상징되는 러시아주의자가 유럽 지향의 트로츠키를 비롯한 서방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여 독자 노선을 걸었고, 결국 이는 미국과 어깨를 겨루던 초강대국 소련을 만들어냈다. 소련 말기의 고르바초프나 옐친은 서방화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 러시아는 폭삭 망해버렸고, 푸틴은 서방과 거리를 두고 러시아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러시아주의의 관점에서 푸틴은 스탈린과 같은 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스탈린 체제의 부활[70] 이라고 보이는 듯하다.
신형 무기를 공개하면서 미국 플로리다주로 발사하는 그래픽을 보여주는 푸틴.#
7. 여담
푸틴의 연설 장면을 합성해서 'SUPER GAY PUTIN'이라는 합성영상을 만든 사람이 있다. 그 이후로 영상 제작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거나, 3차 세계대전은 한 영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거나, KGB에서 방사능 자X로 고문당한다거나 하는 드립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최근에 본인도 이 영상을 봤는지 러시아에서는 밈이나 블로그를 금지한다는 법안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제재도 일어나진 않은듯. 히틀러 버전도 있다.
이렇게 푸틴이 의외로 희화화에 관대하게 대처하는 건 사실 푸틴만의 특징이 아니라 서구권 군주나 정치인들의 전반적인 특징이라서 특별할 건 없는 에피소드이다. 서구 문명의 근간이 되는 로마 제국 시절부터 군주들은 교만해지면 안된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군주를 다소 비하하거나 낮잡아보는 행위를 허용해주는 문화가 발달해 있다[71] . 가령 로마 제국은 화려한 개선식을 가지는 개선 장군의 귀에 (지금은 네가 신이 된 것 같지만 언젠가는 필멸자로서)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말라며 속삭여서 장군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였고, 중세 군주들도 곁에 광대를 두어서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물론 당사자는 기분이 좋을리 없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화를 내는 순간 '고작 농담 따위에도 발끈하는 속좁은 인물'임을 셀프인증하는 꼴이라 넘어가는 게 미덕이였던 것. 이는 현대에도 유효해서 한 예로, 영국의 국민적인 코미디 그룹인 몬티 파이선은 찰스 왕세자의 환갑 기념 행사에서 아직도 왕위에 버젓이 앉아계시는 어머니때문에 왕세자 신분으로 늙어가는 그를 조롱하는 노래를, 그것도 '''찰스 왕세자 본인 앞에서''' 직접 부른 바도 있다. 비슷하게 입헌군주제로 왕이 있는 일본에서는 다 늙어서야 즉위한 나루히토[72] 를 조롱했다간 코로 와사비를 먹거나, 극우들의 손에 쥐도새도 모르게 끔살당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편이다. 과거 소련 시절에도 스탈린 집권기를 제외하면, 어지간한 비판이나 풍자를 해도 멀쩡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73] 한편 습근평은 민감하게 반응해서 세계적으로 곰돌이 푸로 찍혀버렸다. 동성애자라면 극혐하는 러시아에서 국가 원수가 굳이 부인해서 인정해버렸다면 "미국에 대한 소련의 비♂틀린 사상","스탈린의 욕♂망","알고보니 호♂모 나라","커♂밍아웃", "웃통을 벗고 과시한 이유가 알고보니 남♂성을 유혹하기 위함" 등등...이라는 미국의 역 프로파간다를 쳐맞고 정권이 몰락할 수도 있다. 굳이 CIA가 손을 안대도 일본에서 가치무치 레슬링 파티의 주인공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2018년 4번째 취임식 장면을 소비에트 마치와 합성한 장면. 웅장한 음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걸음걸이 덕분에 엄청난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상술한 KGB식 걸음걸이도 잘 볼수 있다.
표기로 구분하자면 러시아 푸틴은 Putin이고 이 음식은 Poutine이다.
의외로 목소리가 좋긴 하지만 박치이기도 하다. 위 영상에서 박자를 틀릴 때, 성악가 못지않은 목소리가 들린다.
본인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이상한 상들을 받은 적이 있다. 2011년에는 공자평화상을 수상했으나 "뭔 개소리야?"로 일축하면서 수상을 무시해버렸고 2016년에는 베네수엘라에서도 차베스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마찬가지로 "뭔 개소리야?"로 무시해 버렸다.
'''푸틴향 향초'''가 있다. 제품 링크(아마존) 푸틴 본인의 체취를 채취해 만든 제품은 당연히 아니고, 제품 설명에 따르면 소나무, 흙, 연기 향을 조합해서 러시아의 기상을 재현해 초를 켜고 눈을 감으면 푸틴과 같은 방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집 안에서 정치적인 분열을 일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2020년 6월부터 Wide Putin이라는 영상이 밈이 되어 유행중이다. 내용은 단순함의 극치인데, 푸틴이 걷는 영상을 x축의 방향으로 확대한 것일 뿐이다. 짧고 와이드한 몸으로 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배경음악[74] 으로 인기를 끌어 업로드 약 2개월 뒤에 2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주로 누군가가 자신감있게 걸어나오는 부분에서 해당 인물을 좌우로 비정상적으로 많이 늘려 패러디하거나, 영상에서 푸틴이 짜리몽땅해보이는 것에서 착안해 어린 아이가 자신감있어 하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푸틴 버전이 인기를 끌자 트럼프, 김정은 등 다른 국가의 정상들로도 패러디되었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2021년 1월 19일 유튜브에 '푸틴을 위한 궁전'이라는 유튜브 영상을 올려 푸틴의 비리에 관하여 언급하였다. 나발니의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러시아 흑해 연안에 위치한 겔렌직이라는 도시 인근에 한화 1조 5천억원 가량의 돈을 들여 리조트를 건설, 푸틴과 그 측근들이 이 건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시간 가까이 되는 이 영상에서는 푸틴의 부패 일지에 관한 기록으로 시작하여, 궁전 및 여성관계에 관하여 밝혔고, 궁전 평면도와 송금 내역 등을 공개하며 국영기업 및 푸틴과 가까운 기업인들의 건설비 충당, 보안 기관의 시설 경비, 단지 인근 해안 항해를 위한 사전 허가 의무화 등을 공개하였다.# 크렘린궁의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이러한 나발니의 주장을 '몇 해 전에 우리는 푸틴이 겔렌직에 어떠한 건물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부정하였다.
[1] 강세를 적용한 러시아어 발음은 '[vɫɐˈdʲimʲɪr vɫɐˈdʲimʲɪrəvʲɪtɕ ˈputʲɪn\](블라디미르 블라디미러비치 푸틴)'에 가깝다. 러시아에서는 남성 인명 블라디미르(Влади́мир)의 애칭인 보바(Во́ва) 혹은 볼로댜(Воло́дя)로 불리기도 한다.[2] 메드베데프는 총리로 다시 옮겨갔다.[3] 러시아 대통령의 임기는 한 번에 4년, 3연임 금지였다. 헌법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는 '4년씩 두 번만 하라' 였겠지만 푸틴은 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세 번 연달아 안 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주장하며 두 번 한 다음 친구인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앉히고 그 사이 자기는 총리 하면서 한 타임 쉰 후, 다시 대선에 도전하여 두 번 연이어 당선되었다. 그리고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던 시절 4년 임기를 6년으로 고쳐,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대통령을 지냈고,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해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계속해서 맡게 되었다.[4] 2016년 2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3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이다.[5] 본격 2차 세계대전 만화의 본 에피소드는 실제 일화를 살짝 각색한 것으로, 어머니가 숨이 붙어있음을 발견한 사람은 실제로는 푸틴의 외삼촌이었다. 극중에서 등장하는 타냐는 소련판 안네 프랑크라 할 수 있는 타냐 니콜라예브나 사비체바(Татьяна Николаевна Савичева)에게서 이름을 딴 캐릭터로 추정된다. 레닌그라드 공방전 문서 참조.[6] 물건을 훔치거나 불량학생들의 패싸움에 가담하고 아버지와 난투극을 벌이는 등[7] 수학은 잘하지 못했으나 문학, 역사, 철학, 독일어 성적이 좋았다.[8] 부부동성을 따르는 러시아의 관습에 따라 류드밀라 푸티나(Людмила Путина)로 알려져 있지만, 2015에 재혼하여 이후에는 류드밀라 오체레트나야(Людмила Очеретная)라는 인명을 사용한다.[9] 유일한 현장업무는 현지 정보원 관리였다.[10] 당시 KGB 드레스덴 지부장과 푸틴을 제외한 다른 간부진은 외출중이었고 일부 동독시민들이 KGB지부 침입을 시도하긴 했으나 큰 충돌없이 물러났다.[11] 소련이 사라진 지금도 선대 정보 베테랑들에 대한 존경심은 여전하다고 밝혔다.[12]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법학교수 출신의 비공산당 인사로 푸틴이 법학부 재학중 몇차례 소브차크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으나 서로 모르는 사이에 가까웠다. 89년 인민대표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뒤 새로운 레닌그라드 시위원회에 요청을 받아 시위원장이된 소브차크는 자신의 보좌할 KGB 출신 정보통을 원했고 공교롭게도 푸틴 역시 이무렵에 지인으로 부터 소브차크 밑에서 일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 소브차크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의 정치적 멘토이기도 하며,(실제로 푸틴과는 달리 메드베데프는 KGB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쌩 일반인 출신이다. 즉 푸틴과의 연줄은 소브차크를 통해 생긴 학연이 전부인 셈.) 심장마비로 죽기 전까지 푸틴과 각별한 사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딸 크세니야 소브차크는 열심히 반푸틴 활동을 하고 있다. 별명이 '''러시아의 패리스 힐튼'''인 크세니야는 НТВ에서 정치쇼 앵커로 활동하며 푸틴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자신의 반푸틴 성향을 전국에 인증을 했다. 러시아 국내에서 푸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적도 있다. 크세니야는 2015년 보리스 넴초프 전 총리 살해 이후 러시아 극우단체에서 암살 협박을 받고 있는 중. 결국 2015년 3월 14일, 국외로 도피했다가 다시 귀국해 2018년 대선에 출마했다.[13] 러시아 헌법은 3선을 금지했지 '''연속''' 3선을 금지하지는 않았다는 것은 오로지 블라디미르 푸틴의 '''주장'''이었다. 러시아 헌법은 분명히 대통령이 '''2선'''까지만 할 수 있다고 못 박아놨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의 주장 하나로 헌정을 무력화'''했고, 바지사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올려놨다가 정권을 되찾은 이후에는 논란의 불씨를 제거하겠답시고 아예 헌법에서 '''연임 제한 제도 자체를 없애버린다.'''[14] 물론 시진핑에 비하면 어느정도 비판을 수용하긴 한다. 실제로 2018년의 국민소통에서 푸틴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질문들이 올라오기도 했으며, 2019년 신년사의 유튜브 댓글에는 푸틴에게 쌍욕을 퍼붓는 러시아인들이 넘쳐나서 아예 싫어요 표기와 댓글을 막아버리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지금도 러시아 내에서는 푸틴 같은 정치인을 까는 풍자쇼가 유행하는 편이며 니발니 독살미수 사건 이후 2021년 1월부터 반푸틴 시위가 확산되기도 했다.[15] 러시아는 사형제가 유예된 국가이다. 법에 규정은 되어 있는데 영구 유예로 인해 판결도 안 되고 집행도 불가능하다.[16] 전직 KGB 출신 요원, 혹은 FSB 출신은 푸틴과 같은 라인으로, 승진에서 많은 특혜를 받는다. 이런 이들을 러시아에서는 실로비키라고 한다.[17] 이후 다시 주민 직선제로 선출하는 것으로 바뀌긴 했는데 무늬만 직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18] 물론 순수하게 정계 은퇴하지는 않고 후계자를 차기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푸틴 본인은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것이다.[19] 2018년부터 시작되는 집권 4기가 푸틴의 마지막 대통령 임기이며 집권 4기에서는 퇴임 후를 대비하는 준비를 할 것이라는 추측이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20] 알렉세이 나발니가 키로프 주정부 고문으로 있었다.[21] 실제로 푸틴 지지자들은 메르켈을 예시로 많이 들며 '''"푸틴이 독재자면 메르켈도 독재자냐?"'''고 항변하는 편이다. 메르켈의 경우 독일 내에서도 민주적인 방법으로 너무 오래 총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독일은 부정투표나 각종 정치공작, 정부-언론유착, 정적암살 등 비민주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인들의 항변은 궤변 그 자체다.[22] 러시아인들이 독재국가라고 비웃는 대표적인 나라들이다.[23]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독재자가 아닌 건 절대 아니다. 대외적으로 봤을 때 명백히 독재자였는데도 자국에서 독재자 취급을 받지 않는 정치인은 매우 많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샤를 드골이라든가, 터키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등이 있으며, 심지어는 로버트 무가베조차도 짐바브웨에서는 독재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여기 사람들이 코렁탕을 두려워해서 그런다기보다는, 과보다 공이 더 크다는 평을 받을 만큼 자국 내에서의 지지도가 높거나, 나라 자체가 전반적으로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인식이 낮아서 그런 경우가 많다. 당장 위에서 예를 든 무가베도 그의 정적인 모건 창기라이가 "그는 절대로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이다.[24] 그러나 푸틴은 독재자가 아니라는 일부 러시아인들의 주장도 2020년 푸틴이 개헌을 해서 종신 대통령을 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면서 설득력을 잃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그래. 푸틴은 독재자다. 그런데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푸틴을 독재자라고 인정하면서도 푸틴이 서구 정치인들보다 훌륭하다는 식으로 말이 바뀌고 있는 중이다. [25] 이에 대해서 이철희 의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푸틴의 이미지는 어찌 보면 미국적인 관점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제1세계에 속해 있는 한국으로서는 사실 많은 국제적 이슈를 미국적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신뢰하는 외신 역시 영미권이나 유럽, 일본 언론이 대부분이며(이는 차별이라기 보단 현지의 언론자유 보장여부나 보도의 질 차이가 크다.) 이 점에서 어느 정도는 형평성상의 문제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적 관점'''이나 '''중국적 관점'''이 제1세계의 관점보다 더 낫다는건 아니며, 여기에 균형 감각을 가하겠답시고 명백하게 문제 있는 집단에 대해서까지 '내재적 접근법' 등을 적용하는 것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당장 푸틴 이상으로 특정 정권이 전국민적 지지를 받는 북한의 사례를 상기하면 이해하기 쉬울 듯.[26] 보통의 공무원들 뿐만 아니라 이후 친푸틴, 반푸틴으로 나눠지는 적잖은 올리가르히들도 자신의 사업을 기반삼아 상공/경제 분야의 공직에서 활동했다. 이는 푸틴정권에서도 마찬가지.[27] 신념형으로 옐친을 지지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출세목적에서 당시 옐친의 정책과 행적을 옹호한 편이지만 이게 변명이 되긴 힘들다.[28] 푸틴은 의외로 총리로 재임하던 2008~2012년을 빼고는 줄곧 무소속이다.[29] 각 계파마다 어떤 형태의 소련을 복구한다는 건지도 해석이 다 다르다. 온건하게는 복지국가 스타일의 유라시아 연합부터 과격하게는 레닌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한 독재까지 구상안이 다양한 편.[30] 범야권 정당, 유명인사, 반정부 미디어, 운동권, 야당강세인 지자체나 각종 정치조직을 포괄.[31] 설령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더라도 만약 새로운 독재자가 나타난다면, 푸틴과 별 차이가 없거나 푸틴 정권에 대한 향수만 자극하게 되는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보리스 옐친도 비록 민주적으로 집권하고 표면상 민주주의적 요소를 적극 받아들였지만 사실상의 독재정치를 하여 러시아를 말아먹었으며, 이집트도 호스니 무바라크가 몰락한 이후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집권한 무함마드 무르시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폭정으로 새로운 독재자가 되었다가 압델 파타 엘 시시의 쿠데타로 몰락한 사례가 있다.[32] 실제로 마지막 왕조인 로마노프 왕조는 주변 국가들 대비 여성 군주가 일부 나왔는데 이는 여성이여도 ‘신의 대리인과 마찬가지인 차르니까’ 당연히 복종해온 탓이다. 이후 2월 혁명으로 왕조가 몰락했지만 결국 10월 볼셰키비 혁명에 의해 공산당 일당독재가 시작되며 차르의 이름만 당 지도자, 서기장으로 바뀌는 독재체제가 지속될 뿐이였다.[33] 그리고 이 치욕에 분노한 것은 러시아 군대도 마찬가지였고, '''푸틴은 즉시 스페츠나츠를 풀어서 마을 몇 개를 삭제시키는 수준의 소탕전을 벌여서 영상에 나온 모든 체첸인들을 사살했다.''' 당연히 주동자도 잡혀가서 감옥에서 죽었다. 사형은 아니고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 이 덕에 푸틴은 러시아내에서 상당한 지지율을 높일 수가 있었다.[34] 서명하는 재벌 총수는 알루미늄 회사 루살(Русал)의 회장인 올레크 데리파스카(Олег Дерипаска)로 대표적인 친푸틴 올리가르히다. 올레크 데리파스카는 2019년 지금까지도 친 푸틴의 정경유착 행보를 걸으면서 푸틴의 비호로 '''재산을 2009년 대비 2배로 불렸다'''. 때문에 해당 장면이 실은 친서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푸틴이 지지자들과 짜고 벌이는 쇼라는 분석도 있다.[35] 물론 도날드 트럼프 집권 후에는 대외 관계에서는 막나가는 듯한 미국보단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나, 이는 표면적인 말뿐이다. 당장 트럼프는 온갖 협박을 한 다음, 경제적으로 옥죄는 방식을 돈 많이 드는 전쟁보다 선호한다. 반면 푸틴은 군대로 짓밟아버리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남오셰티아 분쟁과 크림 합병, 시리아 내전의 화학 무기 사용 허용. 자국민 눈치는 트럼프보다, 타국의 눈치는 시진핑보다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위험한 인물.[36] 푸틴은 "자신에게 차르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라고 겸손을 떨었다. 실제로 러시아의 황제는 '''임페라토르'''라고 했고 차르라는 칭호는 '''왕'''에 불과하다.[37] 실제로도 이를 실현시키는지 소말리아 해적들은 러시아를 건드렸다가 호되게 당한 후 러시아는 잘 안 건들게 되었다.[38] 그 외에도 '''"테러리스트를 심판하는 것은 신의 몫, 그리고 테러리스트를 신에게 보내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말도 했다.[39] 다만, 개까지 회담장에 데려와 써먹는 건 좀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푸틴은 이에 사과했으며 메르켈은 "개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데 살짝 걱정되었다"고 말했다.[40] 나중에 주방위군 조종사(중위였다.)였던 부시도 이라크전 때 이를 따라했다. 문제는 부시는 니미츠급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에 착함을 하려 했는데 착함 자체가 그냥 착륙보다 훨씬 어려운 데다 그날 풍랑이 좀 있어서 자칫하면 딕 체니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줄 뻔 했다.[41] 러시아 공군 전문 블로그 <붉은별 통신>에 푸틴의 Tu-160 폭격기 탑승기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42] 당시는 카렐린이 푸틴의 경호원을 하던 시절.[43] 이 사진은 당연히 합성이다.[44]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2006년 8개국 유소년 회담 때 타스 통신(당시 이타르타스)의 기자가 찍은 사진인데, 손가락 구부린 건 누군가가 조작한 듯하다.[45] 당연하지만 합성이다. 그런데 댓글에서는 진지충이라고 까고 있다.[46]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의 이니셜.[47] 옐친이 하야하고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날짜가 바로 '''1999년 12월 31일'''이다.[48] 동양에서는 그런 문화가 없었으니까, 이런 반응을 보이는게 당연하다. 독재자도 아니고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인 문재인을 깠다는 이유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인 이해찬이 빡쳐서 국가원수 모독죄를 운운했다가, 여야 할것없이 전방위로 쪼인트를 까인걸 생각하면 쉽다.[49] 영어 중역[50] [image][51] 이를 두고 온갖 도시전설과 루머들이 사실인 것처럼 돌아다녔는데 올해의 인물 문서에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미국 역대 대통령 및 교황들을 비롯한 유명인 다수도 TIME 문자열 앞에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9년 후 문자열 앞에 서있는 사람이 한명 더 추가되었는데 바로 도널드 트럼프. 201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도널드 트럼프를 보면 TIME 문자열 앞에 서있다.[52] 알아둘 점은 이것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영향력'일 뿐, 그 영향력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전혀 따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여기에 선정되었다고 이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히틀러와 스탈린도 2차대전 중에 1위로 선정된 적이 있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53] 다만,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현재 기준이고, 과거까지 따진다면 푸틴을 뛰어넘는 갑부들이 많이 있다. 넘사벽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만사 무사는 논외로 치더라도 당장 앤드루 카네기 회장만 해도 푸틴의 2배가 넘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54] 원래 러시아인들은 홍차를 매우 즐기며 자주 마신다.[55] KGB 요원들의 훈련 메뉴얼 중에는 적을 만났을 때 품 안에 숨긴 총을 빨리 뽑기 위해 오른손의 움직임을 최대한 절제하고 신체의 왼쪽만 움직이며 걷도록 훈련 받는 내용이 있다. 참고로 푸틴 뿐만 아니라 KGB 출신 군장성이나 관료들 역시 이런 훈련 때문에 비슷한 걸음걸이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56] 오히려 독일보다는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던 시기가 더 길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기에도 오스트리아의 통치하에 있었고...[57] 그러나 히틀러의 수데텐란트 합병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려고 히틀러의 타국 영토 강탈 행위를 방조하다시피한 영국과 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들도 잘못이 어느 정도 있다. 자세한건 뮌헨협정 문서 참고.[58] 보통 러시아가 개입하고 나서 친서방 노선을 굳혔다고 보기 쉬운데 실상은 친서방 노선이 명백해진 뒤에야 움직였다.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화는 오래 전부터 뜨거운 감자였기에 사전에 준비가 됐을 가능성이 높고 일단 결정을 하고 나서는 엄청나게 빠르게 개입했기에 오해하기 쉽다.[59] 중국, 인도네시아, 일본, 남한 순으로 언급한다.[60] 러시아는 오일 달러가 넉넉한 상태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자국 경제에 타격을 받았긴 했지만, 아이슬란드에 돈까지 빌려주며 현금보유량이 충분함을 증명했다.[61] 다른 기록들보다 14 소치 올림픽에서 '''쇼트트랙 러시아 역사 최초 금메달.''' 이 기록 하나만으로 빅토르 안은 러시아 쇼트트랙의 영웅으로 추앙받으니 그를 섭외하고 관심 있어하는 푸틴의 이미지마저 상승하는 건 당연지사.[62] 빅토르 안의 아버지의 인터뷰에 따르면 가끔씩 빅토르 안이 연습하는 링크에 와서도 구경을 하고, 싱키 크네흐트가 그를 향해 욕손짓을 보이자 경기 주최측에 바로 전화로 항의까지 했다.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의 첫 쇼트트랙 금메달이 성사되자마자 바로 총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과 함께 축하까지 보내줬다.[63] 아사다 마오의 코치였던 그분 맞다. 당시 타라소바가 아사다의 코칭비로 받은 돈으로 러시아의 꼬꼬마 유망주들을 무료로 기른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 꼬꼬마들 중 하나가 아델리나 소트니코바.[64] 남싱에서는 올림픽 출전권이 한 장으로 줄었으며, 여싱에서는 소트니코바와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가 9위, 10위에 머물며 올림픽 출전권을 두 장 확보하는데 그쳤다. 한국팬들 사이에서는, 다음 시즌 러시아 내셔널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지켜볼 거라는 예상들이 많았지만...[65] 이는 반박할 여지가 많은 말인데, 우선 콤소몰은 아직도 존재한다. 공산당 산하에...게다가 나쉬는 시망 테크를 타고 있는지라...대신 통합 러시아당 산하의 청소년조직 "말라다야 가바랴(젊은이의 목소리)"를 밀고 있는 듯하다.[66] 소련 해체 후 대통령이 된 옐친도 욕을 먹는다. 사실 러시아 경제를 파탄낸 원흉은 고르바초프보다는 옐친.[67] 그러한 비민주성 때문에 소련의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못했고 결국은 관료집단 내부에서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등장함으로써 무너지게 되었다.[68] 게임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에서 플레이어가 사망했을 시에 나오는 명언 중 하나로 등장하기도 한다.[69]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20대 이후에 마르크스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말의 원조는 칼 포퍼가 아니라는 말도 있다.[70] 다만, 2001년부터 통합 러시아당이 러시아 공화국의 현재 우익 집권당(2008년에 푸틴이 입당)으로 우세하고 있기에 러시아의 야당 중으로도 자기 당원들끼리로만 소련 부활을 도모하려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마저도 압박하고 있다는 러시아 국가 현실로만 내비치고 있다.[71] 서구권의 여러 군주들마다 별도로 별명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이런 이유로 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들 중에는 정교회식의 세례를 받을 때, 제단에다가 대변을 봤다는 이유로 '똥싸개'라는 별명이 붙은 황제도 있다(...).[72] 나루히토가 즉위했을 당시의 나이가 딱 60살이었다.[73] 소련 체제가 멀쩡히 살아있던 1988년에 개봉한 영화인 이글라는 당시 소련 공산당이 예의주시하던 반체제 성향의 가수인 빅토르 초이를 주연으로 세웠으며, 내용 자체는 마약으로 점철된 소련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노골적으로 폭로하는 것인데, 영화 관계자들 중 그 누구도 이 영화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며, 영화도 1500만 관객을 모으는 등 초대박을 쳤다.[74] 1985년에 나온 Song for Denise라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