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바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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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코의 전 축구선수. 재능과 인지도에 비해 다소 아쉬운 클럽 커리어, 하지만 그에 비해 화려한 국대 커리어를 가진 선수.
2000년대 중반 체코의 황금세대를 대표했던 스트라이커 였다.
2. 선수 커리어
2.1. 클럽
가진 재능에 비해서 빅리그에서는 적응 실패와 잦은 부상, 감독과의 불화 등이 겹치며 꽃을 피우지 못했다. 여러모로 소속팀에서의 운이 따르지 않는 선수.
체코 자국 리그에서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바로시는 10대 후반부터 좋은 활약으로 EPL의 리버풀 FC로 이적하였다. 이적 첫시즌은 9골을 터뜨리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리버풀 이적 두번째 시즌에 발목이 부러지며 03/04시즌 리그 1골. 유로 2004에서의 활약 이후에는 꽤 폼이 올라와서 챔스나 리그에서 골을 넣어 줬음에도 리버풀 감독이었던 라파엘 베니테즈가 4강 이후 선발 출전을 시키지 않았고, 이스탄불의 기적 당시에도 선발이었지만 별다른 활약없이 벤치에서만 바라봐야 했다. 소속팀에서는 그 이후에도 애스턴 빌라나 올랭피크 리옹, 포츠머스 FC 임대 등 여러 팀을 전전했는데 역시 그저 그런 모습만을 보여주다가, 갈라타사라이 SK로 이적 후, 데뷔 시즌이었던 08/09 터키 쉬페르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클럽 커리어의 꽃을 피웠다. 이후 커리어를 시작했던 체코의 바니크 오스트라바로 돌아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으며, 2020년을 끝으로 노쇠화와 부상으로 결국 은퇴하였다.
그런데 은근히 우승을 부르는 사나이 기질이 있다..
가는 리그마다 주전으론 못뛰어도 굵직한 우승컵 하나씩 꼭 들어올렸는데, 리버풀에선 이스탄불의 기적 멤버였고, 리옹에선 리그 우승, 포츠머스에선 FA컵 우승, 갈라타사라이에서도 리그우승.. 그외 밑에 경력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소소하게 리그컵이나 슈퍼컵도 들어올렸다.
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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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부족했던 클럽에서의 활약과는 달리 국대에서는 '''애국자모드'''.
어린 시절 체코의 UEFA U-21 챔피언십 우승 멤버였으며,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다. 이후 성인 대표팀에서 얀 콜레르와 함께 유럽에서도 손 꼽히는 투톱을 형성하며 많은 골을 만들어냈다.[1] 리버풀에서 한골 넣던 03/04 시즌의 부진과는 다르게 국대에서는 유로 2004 대회 이전부터 7경기 5골을 터뜨리며 체코 황금세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다.
'''유로 2004'''에서는 파벨 네드베드와 카렐 포보르스키 라는 무시무시한 측면과, 토마스 로시츠키의 플레이메이킹, 월드클래스 골키퍼 페트르 체흐의 선방, 그리고 결정적으로 5골을 뽑아내며 득점왕에 올라선 밀란 바로시의 활약으로 잉글랜드와 함께 대회 최다 득점을 기록하는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주었고, 체코 대표팀은 큰 인기를 끈다. 죽음의 조라고 평가된 D조를 3승으로 완벽하게 통과하였고 덴마크를 8강에서 영혼까지 털어버리며 MOM에 선정되지만... 당시 대회 최고의 도깨비팀이었던 그리스와의 승부에서 바로시,콜레르의 슛팅은 빈번하게 빗나갔고 연장 승부 끝에 1-0으로 패해 대회를 4강에서 마무리하게 된다. 이 대회로 바로시는 소속팀 리버풀에서의 주전경쟁에 밀린 설움을 무려 대회 득점왕 차지로 풀어냈다. 이 대회에서 득점왕 뿐만 아니라 경기마다의 활약도가 굉장히 높아서 대회가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주가가 올랐다. 지금도 축구팬들이 바로시 하면 '''"아, 그 유로 2004 득점왕?"''' 이라고 할만큼의 바로시 축구 인생의 '''하이라이트'''.
이후에도 소속팀에서는 그다지 잘 풀리진 않았으나, 2006 독일 월드컵 전에는 애스턴 빌라에서 폼을 끌어올려 유럽 예선에서 5골을 넣으며 물이 오른 기량으로 체코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피파랭킹 2위를 찍고 좀 노령화되긴 했지만 2년전 유로 멤버들이 대부분 출동한 황금스쿼드[2] 였기 때문에 당시 체코의 대한 기대가 꽤 큰 상태였고, 당연히 공격수였던 바로시는 늙은 콜레르에 비해 물이 올라있던 상태였기에 꽤 많은 주목을 받는 상태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부상을 입어 1,2차전에서는 나오지도 못했다. 바로시가 없던 1차전 미국전 승리, 2차전 가나전 패배를 기록해 3차전이 굉장히 중요했기에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던 바로시를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3] 그러나 파트너인 콜레르도 1차전에서 부상을 입어서 출장을 하지 못했고 하필이면 3차전 상대는 그 월드컵 우승팀 (...) 결국 바로시는 후반 시작 후 얼마 안되어 교체되었고, 네드베드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폴락의 퇴장과 부폰의 선방쇼로 2-0 패배. 체코는 주전 공격진의 줄부상과 최악의 대진운으로[4] 누구도 예상치 못한 조별리그 탈락을 맛봐야 했다.
이후 유로 2008과 유로 2012에도 참가했지만 별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세대교체에 실패한 체코의 약화와 함께 국가대표 커리어도 서서히 저물었다. 유로 2012 8강전이었던 포르투갈전 패배 이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기사[5] 의 한 부분.
"바로시가 경기 직후 라커룸에서 은퇴의 뜻을 표했고, 코칭 스태프와 동료 선수들은 약 5분간 박수를 쳐주며 영웅의 퇴장에 예의를 표했다"며 "5분이라는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고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대목으로 봤을 때, 그간 바로시의 국대의 공헌도와 위치에 대해 짐작해볼 수 있을 듯.[6]
4. 플레이 스타일
탄탄한 체구를 바탕으로 민첩하고 순발력이 뛰어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양발을 모두 이용해 감각적인 득점력을 보이며, 빠르고 기술이 뛰어나 질풍같은 돌파력으로 하프라인 부근에서 부터 문전까지 질주하는 플레이가 일품. 타겟형 스트라이커인 얀 콜레르와 반대로 상당히 동적인 움직임을 가져가 둘의 시너지가 상당했다. 빅 앤 스몰의 대표적인 예.[7] 공에 대한 집착이 크고,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 수비는 물론 골키퍼까지 항상 압박을 하는 왕성한 활동성을 보여준다. 장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에 대한 집중력이 좋다.''' 리버풀 시절 마이클 오언이 워낙 뛰어난 선수였기에 부각되진 않았지만 바로시 역시 오언과 비슷한 강점을 지닌 선수. 때문에 논스톱으로 때리는 발리슛이나 세컨볼,아슬아슬하게 빠질 볼을 골로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절묘한 위치선정보다는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침투를 이용해 골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았고, 어린 시절 "동유럽의 마라도나"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훌륭한 드리블 돌파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페르난도 토레스처럼 뒷공간 털고 골키퍼 바보 만들기나, 드리블 돌파로 수비진 붕괴 후 동료에게 떠먹이는 어시스트를 해주는 플레이에도 능하다. 다만 수비진을 등지는 포스트플레이와는 거리가 먼 선수이고, 발 밑에 비해 제공권은 평범한 수준이다. 그 점은 동료인 콜레르가 압도적이니 서로의 장단점을 완벽히 상쇄하는 투톱..
유로 2004는 위에서 말한 바로시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콜레르가 머리로 떨궈준 세컨볼을 가슴 트래핑 후 바로 때려 넣고, 골키퍼가 잡을 볼을 죽어라 뛰어서 수비 실책 만들어서 골 유도(라트비아전), 단독 돌파로 수비진 초토화 후 콜레르에게 꿀어시하고, 콜레르가 떨궈준 볼 다이렉트 발리골, 측면 돌파 후 네드베드에게 중거리슛 찬스 내주고 스미체르 마무리(네덜란드전), 수비수 달고 돌파하고 슛팅 후 키퍼가 막아낸 세컨볼 끝까지 밀어넣기(독일전), 수비진 뒷공간 털며 오른발 칩샷 골 넣고, 스피드로 치달하며 왼발 강슛 골(덴마크전). 체코의 거의 모든 골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하며 관여했다. 이 대회에서의 바로시는 포처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 클럽에서 꾸준히 이러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가 묻는다면...
스피드와 활동량을 주무기로 하던 선수인만큼 큰 부상이 기량을 빨리 퇴화시킨 케이스. 실제로 저돌적이고 투혼을 불사르던 바로시의 플레이가 부상 이후 많이 퇴화되었다. 소극적으로 변한 플레이스타일 이후에도 어릴때부터 가지고 있던 특유의 침착성으로 갈라타사라이 시절 많은 골을 넣었지만, 그것도 순간적인 스피드가 받쳐줬을 때고, 나이가 든 이후에는 스피드를 이용한 특유의 침투 능력이 자취를 감춰 골문 앞에서의 침착성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5. 사생활
부상으로 제대로 못뛴 2006년 월드컵 종료 후 그 스트레스였는지 시즌 시작 직전까지 나이트클럽에서 만취된 상태로 자주 목격되 선배 선수에게 한 소리 듣고, 당연히 그 해 애스턴빌라에서 죽쒔다.[8]
08/09 터키리그 득점왕 찍고 나서 2009년 4월 매춘부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음식 파티를 한 것이 발각되어, 토마시 위팔루시, 마레크 마테요프스키, 라도슬라프 코바치, 마르틴 페닌, 바츨라프 스베르코시와 함께 대표팀에서 추방되었다.[9] 유흥으로 인해 구설수에 올라, 슬럼프때는 더 나락으로, 잘할 때는 기세가 꺾이는 등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는 모습과는 달리 사생활적인 부분이 아쉽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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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헤어밴드 스타일이 트레이드 마크던 선수였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그냥 짧게 자르고 다닌다. 원래부터 준수한 외모를 가진 선수인지라 둘다 잘 어울리는 듯 하고, 머리빨이 크게 없는 듯.
체코 이전에 요제프 비찬과 라슬로 쿠발라가 국가대표로 활약한 적이 있지만, 현대 체코의 공격수는 얀 콜레르에서 이어져 밀란 바로시가 대표하고 있다.
7. 경력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 2002년 UEFA U-21 챔피언십 국가대표
- 유로 2004 국가대표
- 2006 FIFA 월드컵 국가대표
- 유로 2008 국가대표
- 유로 2012 국가대표
8. 수상
8.1. 대회 실적
- 리버풀 FC
- 2002-03 풋볼 리그 컵 우승
-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 올랭피크 리옹
- 2006-07 리그 1 우승
- 2007년 트로페 데 샹피옹 우승
- 포츠머스 FC
- 2007-08 FA컵 우승
- 갈라타사라이 SK
- 2011-12 쉬페르리그 우승
- 2012년 쉬페르쿠파 우승
-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 2002년 UEFA U-21 챔피언십 우승
- UEFA 유로 2004 4강
8.2. 개인 수상
- 유로 득점왕 : 2004
- 유로 올스타팀 : 2004
- 유로 맨 오브 더 매치 : 체코 vs 라트비아 조별리그, 체코 vs 덴마크 8강전
- 쉬페르리그 득점왕 : 2008-09
- 체코 올해의 유망주 : 2000
[1] 바로시와 콜레르가 체코 국대에서 뽑아낸 골은 무려 41골, 55골이며 함께 8년간 국대에서 발을 맞췄다.[2] 바로시와 콜레르의 조합은 이전부터 검증이 되었고, 무려 네드베드,로시츠키,포보르스키,갈라섹이라는 괴랄한 미들진.. 얀쿨로프스키,체흐 등 주전 선수 대부분이 빅리그 탑급 선수들. [3] 콜레르 대신 투입되었던 등번호 12번의 공격수 로크벤츠마저 경고누적으로 이탈리아 전에 나오지 못하게되었다.[4] 당시 E조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회 최악의 죽음의 조 [5] 기사.[6] 이후 체코는 세대교체 실패로 인해 국제대회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7] 그렇다고 해서 바로시가 작다는게 아니다. 역할분담의 이야기[8] 참조.[9] 그 해 8월 벨기에와의 친선 경기에서 대표팀에 복귀하였다.